조글로로고
[일본응모글짓기] 내가 걷는 이쁜 길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31일 13시26분    조회:176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애들이 작문배우러 오는 날이여서 여느때보다 일찍이 일어나서 아침 먹고 이쁘게 화장을 하고는 반시간 앞두고 림시로 빌려쓰고 있는 로인대학2층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몇몇 애들이 벌써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날 본 애들은 쫑그르 달려와서 저마다 나한테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받자 손태홍이 내 가방을 받아드는 것이였다. 애들에게 둘러싸인 나는 2층으로 향해 올라갔다. 걸음마다 가벼웠고 가슴은 저 바다처럼 설레이기만 했다.

  내가 어느새 이렇게 애들이 찾아와주고 또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 되였단 말인가!

  나의 가슴에는 저도몰래 문학이란 이 울퉁불퉁하지만 그래도 신비함과 즐거움이 동반된 길을 선택해왔던 추억들이 봄풀처럼 새파랗게 돋아나면서 나를 감미로운 추억속에 빠지게 했다.

  네살에 다리가 장애로 된 그날부터 나의 동년은 향기잃었고 가슴에는 검은 그림자가 자리틀고 앉아있었다.

  소학교와 중학교까지 공부했지만 그러나 다리가 불편한 탓으로 쩍하면 결석했고 또 다리치료를 하느라고 공부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시절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마음의 달래임이란 아버지께서 사주신 책들을 읽는 것이였다. 책을 읽고 또 읽고하는 사이에 어느새 작문쓰는 수준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성인이 된후에는 생활속에서 아름다운 색갈을 골라 황홀한 인생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선택한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어떤 때에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으며, 어떤 때에는 감동이었으며, 어떤 때에는 무지개같은 아름다움이었으며, 또 어떤 때에는 무거운 부담이였고, 또 어떤 때에는 밑지는 일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세상 취미중에서 아마도 글쓰기 취미가 제일 아름다운것 같았다. 중학교 수준밖에 안되는 나에게 있어서 문학의 길은 정말 어렵기가 말이 아니였다. 다른 문우들은 작가양성반에서 많이 배웠지만 나는 그럴 상황도 못 되여 단지 책을 많이 읽은 기초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무거워나는 삶이였다. 고됨의 시작, 실패의 아픔속에서 해가 뜨고 질때마다 가슴에 새겨넣는 한마디-힘을 내여 다시한번 성공을 위해! 바로 이런 야무진 결심이 날 그냥 이 길을 걷게 했던것이 아닐가!

  난 그 어느때면 어찌보면 좀 이악스런 여자가 아닌가 싶다. 30대에 함께 문학의 길을 선택한 여자친구 넷이 있었는데 후에 모두 포기했지만 나만은 그냥 고집을 꺾지않았다. 끝없는 동경, 무수한 기다림속에서 글들이 한편 또 한편 실리는 그때의 그 기분은 무엇으로 형용할수 없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때론 화가 복으로 전환되고 잃음이 얻음으로 바뀔때가 있나부다. 글쓰기를 통해서 나는 나의 심령을 세척시킬줄 알았고 아무리 세찬 파도도 이겨내고 오직 웃을수 있는 여인으로 될수 있었다. 그 수확이 너무나도 컸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오늘까지 애들에게 작문을 가르칠수 있는 기초로 된것이기도했다.나는 나의 삶을 살아오면서 글만 쓸것이 아니라 차세대들에게 우리문화와 전통을 알게하는것을 사명감으로 느끼고 2002년도에 소학교학생들에게 작문지도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내가 소학교교원인 황순자선생을 찾아 나의 생각을 털어놓았더니 대번에 찬성이였다.

  “참 좋은 생각이예요. 그러잖아도 지금 각 반의 담임교원들이 학생들의 작문수준이 너무 차해 골치 아파하거든요. 지금 애들은 이상할만치 조선어작문보다 한어작문을 더 좋아하고 있어요. 학교에 작문양성반이 따로 없어 애들이 과외로 지도받으면 좋지요.” (우리민족의 아름다운 글을 쓸 사람 많이 배양하는것이 인제부터의 나의 삶이구나.)나는 이렇게 마음을 굳혔다. 나는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는 날인 토요일와 일요일을 리용하여 작문을 배워주기로하고 그해 3월 16일에 첫 시간을 시작했다. 그날 안도현 제일 실험소학교 4학년의 열명의 학생들이 담임선생님인 이현자씨의 인솔하에 우리 집에 왔다. 귀엽게 생긴 애들을 보는 나는 책임감과 민족의 사명감을 느꼈다.

  그날 작문을 씌여보니 들은바와 같이 습작능력이 차한 애들이 대부분이였다. 틀린 글자가 수두룩했고 사투리도 많았다. <<친구>>를 <<동미>>, <<고추>>를 <<고치>>, <<무우>>를 <<무끼>>, 거기에다 전기밥가마, 텔레비전, 냉장고, 아파트, 빵과 같은 명사는 조선말로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또 어떤 단어는 한어말 발음대로 쓰기도했다.

  “우린 무슨 민족입니까?”내가 묻자 애들이 일제히 “조선족입니다.”하고 소리높이 대답했다.

  “그런데 왜서 표준적인 조선말을 몰라요?”

  “아버지 엄마도 그렇게 말해서 배웠지요.뭐”

  “이제부터 작문에다 한어말을 쓰면 안돼요. 부드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자요”나의 말이 떨어지자 몇몇 아이들이 조선어작문보다 한어작문을 쓰기가 더 쉽다고했다. 천진하고 거짓없는 애들을 나는 리해할수 있었다. 한족이 80%비률을 차지하는 이곳에서 한어말과 접촉하는 기회가 많은것은 사실이다. 특히 학생들은 학교에 가면 한어시간을 보고 집에 가면 즐겨보는 동화이야기도 한어말로 시청하다보니 한어능력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이 주어진 환경만 탓할때가 아니다. 최대한으로 우리글을 중시하는것을 기반으로하여 하나의 운행의 축을 이루어야한다.

  나는 애들에게 미래와 결부시켜 표현이 풍부한 아름다운 우리 언어와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례의, 도덕 문제도 홀시하지않았다. 훌륭한 사람으로 되자면 수선 도덕수양을 갖추어야한다. 지금의 아이들은 남을 양보하고 리해하고 사랑함이 너무차하다. 생명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할줄도 모른다. 나는 애들에게 부모님께 감사를 표시하기, 문안드리기, 공공장소에서 지켜야할 도덕, 불우이웃돕기 등 아름다운 마음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매번 작문시간마다 애들에게 인성교육을 시키는것을 홀시하지 않았다. 그것이 처음에는 싹이 트고 꽃이피더니 날로 열매 맺어갔다.

  “선생님, 요즘 우리 애가 종래로 하지않던 아침인사를 엄마아빠한테 하고 있어요.” “제 밖에 모르던 우리애가 마음이 후해졌어요 선생님이 가르쳤다 했어요”

  "우리애는워낙내가만든음식이면늘맛없다고투정질했는데작문반에다닌후부터그습관이고쳐졌습니다."

  학부형들이 무척 좋아했다. 나는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한테 도덕 품질 교육 또한 중요한 과제란 것을 깊이 느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처음에는 한참 모지름써야 작문을 쓰던 애들이 시간이 흐르자 눈에띄우게 진보했다. 박소옥이라는 애는 처음에 작문한편을 쓰면 틀린글자가 수없이 많았는데 일년이되자 제법 잘 써 학교에서 진행하는 어느 활동에서글을 잘 쓴다고 반급을 대표하여 발언고까지 썼다.

  2003년 3월 16일 우리집에 온 애들이 나를 밖으로 나가란다. 무슨 감투끈인지도 모르고 나는 <<쫓기워>>나갔다. 한참후 애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선생님 들어오십시요"조심스레 문을 연 나는 그만눈앞의 정경에 멍해졌다. 천정에는 여러가지 고무풍선들이 드리워있었고 벽은 색종이로 만든 꽃들로 장식되였다.

  “선생님 오늘은 우리가 작문을 배운지 꼭 일년이 되는 날입니다. 원래는 모레 축하파티 열자고 하다가 그날 우리는 작문을 써야 하기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오늘 미리 엽니다. 그간 선생님 수고 많았습니다. 선생님 사랑해요.”조직자인 공련희가 이렇게 말하며 색종이로 만든 모자를 나의 머리에 씌워주자 와그르 박수소리가 터졌다. 그다음 애들은 자기가 가져온 음료와 과자를 나의 품에 안겨주었다. 순간 나는 눈시을이 젖어듬을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우리 애들은 우리글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길래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가! (좀 더 힘을 내야겠다 )그날 애들의 소행은 한줄기의 감로수로 되여 나의 가슴속에 찰랑대며 흘러들었다. 2013년 11월 나는 의외의 사고로 다리가 골절되였다. 석달동안 일어설 수 없는 형편이여서 작문반을 잠시 더 할 수 없는 상황이였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너도나도 전화가 왔다.

  "우리애가 한창 작문에 취미를 두고 있는데 안하면 애가 취미를 잃을가봐 걱정이 되여서 어쩌죠?"

  "이거 정말 큰 일 났군요. 우리집 애가 그냥 중국말만 하다가 작문반에 다닌 후부터 우리하고 조선말하고 있는데 작문반에 안 가면  또 그 버릇이 도질 것 같아요"

  나는 정말 딱한 처지였다. 이런 기회에 정말 한동안 푹 쉬고 싶었다. 그러나 학부형들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나는 작문반을 그냥 하기로 마음먹고는 애들한테 다리에 한 깁스를 안 보이기 위해 포대기를 다리에 덮고 애들을 맞이했다. 처음에 오는 애는 남편이 문 열어준다. 그 다음 남편이 출근한다. 그 다음부터 먼저 온 애가 후에 온 애들한테 문을 열어주기를 하면서 석달동안 쉬지 않고 가르쳤다. 어떤 애들은 내가 일어서지 못한다고 장난을 쓰기도 했지만 그러나 대부분 애들이 내 아픈 마을을 헤아려 주었다. 작문 쓰다가도 일어서지 못하는 날 보고 물 마시겠는가고 묻는 애도 있었도 집에서 맛나는 간식도 가져 와서는 내입에 넣어주는 애도 있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나는 끝내 일어설 수 있는 석달동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힘들었지만 그러나 애들한테는 수확이 컸으리라.

  애들의 적극성과 신심을 불러일으키기위해 나는 애들의 좋은 글들을 여러간 행믈에 추천해서 발표되였고 여러 응모작에 추천했는데 큰 상으로는 대상, 다음은 금상, 은상, 동상 등에 선정된 작문들이 많다. 제일 가슴 뿌듯한 것은  kbs방송에 많은 애들의 글이 방송된 것이다. 아나운서의 이쁜 목소리로 자기가 쓴 글을 방송 듣는 애들의 얼굴마다 꽃물결이 출렁댔다.

  특히 2016년도 6월 16일에 방송된 노건우 학생이 쓴 작문 "고모님의 사랑"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그 글을 녹음한 걸 노건우 고모한테 보내주었는데 노건우 고모는 물론 그와 절친하게 지내는 열두 명 친구들도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런 사연을 들었을 때 나도 저도모르게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우리 글을 쓰기 싫어하던 노건우가 작문반에 와서 우리글을 사랑하면서부터 쓴 작문이 이렇게까지 큰 감동을 일으켰기때문이다.

  매번 작문 배우러 와서는 들어서기 바쁘게 우리말로 된 책을 펼치는 애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서로간에 표준적인 우리말로 대화하는 걸 볼 때면 내가 애써 온 결실이 보인다.

  2005년 여름에 안도현텔레비에 내가 애들을 가르치는 사적이 방송되자 안도현 교육국 새일대 관심협회의 유관책임자가 날 부르더니 여름방학에 진행되는 <안도현의 감동인물> 대면하기 활동에 참여해 달라고 청들엇다. 그래서 나는 그해 방학간 안도현 제일실험소학교와 제3소학교 그리고 5중 등 학교를 다니면서 학생들앞에 나서서 자신이 걸어온 작가길을 소개하게 되였다. 매번마다 백 여 명되는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나는 그때 얼마나 행복스러웠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애들과 만나고 헤여지고 또 만나고 이렇게 반복되는 삶속에서 애들같은 순진하고 천진한 마음으로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낀 감성을 시로 써보기도했는데 2016년도에는 동시집<<꿈나무 사랑나무>>도 출간했다. 그 책을 출판할 때 박민정이란 학생이 자기가 모아 둔 세배돈 8천6백원을 보태 주겠다고 했을 때 나는 진짜 눈물 흘리고야 말았다. 애들에게 자그만한 사랑을 베풀었을뿐인데 이같이 큰 사랑을 베풀려고하는 그 학생, 내가 하는 글 쓰는 일과 애들을 가르치는 일은 진정 보람이 컸다.내가 선택한 길은꽃무지개 활짝 펼쳐진 이쁜길이다. 그래서 내일도 더 먼 훗날에도 이 길을 걸을 것이다. 드팀없이 변함없이...

흑룡강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일년중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 왕청현 복흥농장 하니베리재배원은 그야말로 독야청청이다. 태양을 피할 나무 한그루 없이 재배원 주변은 훤하고 전망이 좋았다. 2008년 4무 될가하는 밭에&...
  • 2016-07-19
  • 길림성 룡정시 장애인정양보호원 원장 박해옥은 1989년부터 지금까지 장장 27년간 장애인사업을 해오면서 장애인들의 고통을 가장 잘 헤아리고 그들의 보호자가 되여주면서 자신의 사랑을 몽땅 쏟아 넣고 있다. 장애인어린이들과 로인들로부터  “즐거움의 사절”로 불리우는 그는 각급 정부로부터 “...
  • 2016-07-04
  •   김복순할머니께 위문금을 전하고있는 연길시화린무역유한회사 리덕봉총경리(우1) 2016년7월1일,중국공산당창건 95주년을 기념하고자 연길시신흥가도민안사회구역 리미화서기의 안내로 연길시정협상무위원이자 연길시 화린무역유한회사 리덕봉총경리는 본 당위지부위원회 서기로서 지부전체 당원(량승만기검위원,한경...
  • 2016-07-03
  • 국제온돌학회, 중국 봉사활동 "우리 전통에 관심 가져줘 감동"   한국의 전통 온돌(구들) 전문가들이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농촌 마을을 찾아 우리나라 방식의 구들에 성공적으로 불을 댕겼다. 사단법인 국제온돌학회(회장 김준봉 우석대 교수)는 지난 13~20일 중국 지린성 투먼시 캉닝춘(康寧村) 한옥마을과 옌지 ...
  • 2016-06-28
  • 지난달 갑작스럽게 골육종 진단을 받고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김호진(가명`16) 군. 농구선수가 꿈인 호진이는 어린 시절부터 손에서 농구공을 놓아본 날이 없다. 건강하고 활발했던 호진이가 이렇게 병상에 누워있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중학교 3학년인 지금 호진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힘든 항암치료보다 ...
  • 2016-06-15
  • 천진시조선족로인협회는 천진시조선족친목회와 상회의 후원하에 진남구 송원 생태 향촌구락부 (津南区国家 农业科技园区 松江生态乡村俱乐部)에서 2016년 단오절 민속 활동을 진행했다. 8시 반부터 륙속 도착하는 전용 버스들에서 내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명절을 맞는듯한 환한 얼굴로 줄지어 대회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 2016-06-12
  • 연길시 조양천진 중평촌의 세 농민이 창업과 치부를 함께 꾀하고있어 주목받고있다. 2일, 중평촌회관 부근에 있는 무우와 수박 종자 육성 하우스에서는 벌들이 꽃을 옮겨다니며 “작업”에 충실...
  • 2016-06-06
  • “노다지농사꾼” 황만성인터뷰   지난5월 20일, 필자는 도문시 석현진수남촌 시선툰 김계월씨(62세)의 추천으로 남봉오동 두개 툰(신선툰, 흥진툰)의 유일한 한족 황만성을 인터뷰를 했다. 김계월은 지난 세기 8, 90년대에 성, 주, 시정부로부터 “축산왕” , “성로동모범”, &ldquo...
  • 2016-06-06
  • 어린이들의 명절인 6.1국제아동절에 즈음해 지난달 29일 주당위 조직부는 연길시 공원가두 원예사회구역과 손잡고 사회구역의 결손가정자녀, 빈곤가정자녀들과 함께 영화관람을 하며 특별한 명절을 보냈다. 이른아침,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은 한껏 들뜬 마음으로 사업일군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처음 오는 영...
  • 2016-06-01
  • “손자”“손녀”살피기 연길시 연춘지역사회와 연길시 동광소학교는 자매결연단위이다.4년전부터 지역사회의 6명 ”5로”들이 이 학교 6명 불우아이의 “대리할머니” ,“대리할아버지”로 나섰다.    28일,  “대리할머니” ,“대리할...
  • 2016-05-30
  •   新文化延边讯日前,珲春法院首次采用云会议系统审理了一起特殊的离婚案。丈夫到法院起诉离婚,妻子远在外地不肯回珲春参加离婚庭审,怎么办?   主审法官使用云会议系统采取视频开庭的方式,让原、被告和法官三方同时在电脑屏幕上进行庭审,困扰了双方七年的问题,30分钟内在网上解决了。   7年不见妻子 丈夫欲诉离...
  • 2016-05-28
  • ▲ 청주한국병원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조선족 심장내과 전문의 김용철씨. 청주한국병원 제공 “최첨단 장비와 의료진들의 뛰어난 의술을 겸비한 청주한국병원에서 심장시술 등 여러 가지 선진의술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지난 달 26일부터 한달동안 청주한국병원(이사장 송재승) 심장내과에서 연...
  • 2016-05-27
  • ▲ 한국 생활 9년차인 백승아씨가 청계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 아직은 ‘조선족’이라고 말하기가 두려운 김명숙씨가 서울시청광장을 돌아보고 있다(오른쪽).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 '다문화 편견에 마음 아프죠' 결혼이주 여성의 한국생활 한국 발전에 이바지 하고파 [천지일보=강은...
  • 2016-05-23
  • 28년전 세종병원서 심장수술로 새 생명 얻은 강수월씨가 지난 달 세종병원서 아이를 출산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박찬금 간호본부장, 문경원 행정부원장,권정복 간호1부장,강수월씨, 박진식이사장/세종병원 제공 28년전 심장전문병원인 세종병원에서 심장수술로 새 생명 얻은 조선족 강수월씨가 지난 달 세종병원에서 아이 ...
  • 2016-05-21
  • 어머니학교 12기 수료생들과 함께  연길 가정 행복협회 (회장 전웅렬, 부회장 김란영)에서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으며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 초점을 두고 5월 12일,19일 이틀간 메가스터5층 (원 신흥 파출소5층)에서 아버지학교14기와 어머니학교 12기 수료식을 거행했다. 5월에 수료한 71명 원생들은 "비...
  • 2016-05-20
  • 지난 9일 오후에 우연히 만난 연길시중로년깃털제기협회 초대회장 김해룡로인(74세)은 매일 연길시 모아산 부근 민속촌뻐스정류장동쪽 깃털제기장에서 오전에는 바드민톤을, 오후에는 깃털제기를 즐긴다고 한다. 겉...
  • 2016-05-17
  • 2016년 4월 중순, 기자는 광동성 조선민족 련합회 사무국이 위치한 심수시 보안구 미란빌딩(美兰大厦)에서 서재봉(徐在峰 67세)로인과 김정덕(金正德 73세)로인을 만났다.  하루종일 축축하게 내리는 매우(梅雨)도 마다하고 먼곳에서 온 두 어르신의 몸에서 중년 못지 않은 름름함 풍채가 엿보였다. 이 두분은 현임 광...
  • 2016-05-15
  • 안녕하실줄을 믿고 인사말씀 생략하오니 리해바랍니다. 오늘 저 김용복은 무척 행복하고 기쁜 날입니다. 오늘 저는 저의 인생 3단계의 마지막 세번째로 사재 현금 33억원을 출원해서 “월정어린이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사회 각 계층에서 존경을 받는 일곱분들로 “월정어린이문화재단 준비위원회” ...
  • 2016-05-10
  • “조선족이 남방에 오면 조선말 하나 아는것이 큰 우세입니다. 거기다가 대학전업 하나 잘 쥐면 잘 나갑니다. 어지간하면 관리직에서 일할수있습니다.” “협회 하나 만들자, 서로 교제를 하고 서로 도우면서 지낼수있는 조선족협회를 만들자고했습니다.” 녕파조선족협회의 형성 녕파 호혜영성무역유...
  • 2016-05-10
  • 옌볜 허룽시 봄 진달래꽃 축제 조선족 마을 ‘진달래촌’ 7일간 축제  기와집·비빔밥 등 전통 관광상품화 옌볜의 봄은 한국보다 한 걸음 늦게 왔습니다. 가지만 휑하던 모노톤의 나무들 사이로 분홍, 빨강, 하얀 ‘색’이 피어납니다. 6개 시와 2개 현이 있는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의 면...
  • 2016-05-09
‹처음  이전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