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인생은 미완성 숙제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8월15일 09시32분    조회:232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생은 미완성 숙제
 

김 경 희
 
인생살이 굽이굽이 아리랑 열두 고개, 집집마다 말 못할 사정이 있듯이 나도 살면서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문 문제들에 마주하며 살아왔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인생 매단계마다에 의미를 부여하며 참으로 벅차고 억척스레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내 인생의 끝없는 숙제를 완성하는 작업이 어느덧 습관처럼 굳어져버렸다.
 
‘숙제’라고 하면 맨먼저 떠오르는 것이 학생시절의 숙제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은 숙제를 완성하지 못하면 선생님의 훈계와 부모님의 질책부터 걱정한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매단계마다, 인생의 매 고리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실행하는 일을 다른 말로 숙제라고도 한다.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숙제는 그때그때 완성하는 습관을 들여야지 미루어 버릇하면 습관이 되여 무엇이나 다 미루게 되는 고질병이 생기게 된다.” 낫 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엄마가 어떻게 이런 명언을 남겼을가? 그 말이 우리 형제들에게 준 영향력은 대단하였다. 우리 여섯 형제는 어려서부터 숙제는 물론이고 무슨 일이나 미루지 않고 제때에 완성하는 습관에 길들여지다보니 가정이나 사회에서 남들보다 더 충실히 살고 이 사회에 유익한 일들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자화자찬해본다.
 
나이 들면서 어쩌면 우리 인생도 끝나지 않은 숙제라는 생각에 늘 감개가 무량해진다. 인생에서의 숙제는 바로 자기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인생수업이다.
 
내 인생 첫번째 숙제는 농촌에서의 간고한 생활을 이겨내고 오래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대학 꿈을 이루어내는 것이였다.
 
1969년, 나는 열일곱살 어린 나이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떠나 농촌에 하향하여 집체호생활을 하게 되면서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게 되였다. 집체호에 간 그 해 가을이였다. 우리는 강건너 산비탈에 있는 한전으로 조가을하러 갔다.
 
내가 간 그 마을은 돈화시에서 약 60킬로메터 떨어진 시골인데 산비탈에 자리 잡은 밭에 가려면 마을과 사이에 있는 큰강을 건너야 했다. 당시 그 곳은 전기도 금방 들어온, 뻐스도 통하지 않는 아주 외진마을이였다. 큰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도 없었다. 우리는 열명밖에 싣지 못하는 쪽배로 강을 오고가면서일하러 다녔고 휴일이면 종종 산을 누비며 산나물 캐러도 다녔다.
 



그 날도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집체호 호장이 갈아준 낫을 쥐고 친하게 지내는 생산대 대장집 딸과 함께 먼저 배에 올랐다. 장난기가 심했던 우리 둘은 배에서도 히히닥거리면서 장난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배가 맞은켠에 거의 도착할 무렵 무슨 영문인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휘청거렸다. 우리 둘은 “어어” 하다가 어쩔 새 없이 함께 물속에 풍덩 빠져버렸다. 물에 빠진 우리는 허우적거리면서도 본능적으로 살려고 서로 손을 꽉 움켜쥐고 누구도 손을 떼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남성사원들과 함께 배를 타다보니 그들이 잽싸게 아침의 찬 강물에 뛰여들어 우리를 구해주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제일 소중히 여기던 손목시계가 없어졌다. 그닥 비싸지도 않은 낡은 시계였음에도 어린 나이에 농촌에 하향한다고 할빈에 있는 큰형부가 보내준 선물이여서 소중하게 여겼다.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 내여 울었다. 온 마을에 손목시계라고는 나 혼자 가지고 있던 때였다. 옆에서 상심하여 우는 나를 측은하게 지켜보고 있던 부녀주임은 내 손을 꼭 잡고 “목숨을 살리고 상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금방 너희들을 구했을 때 둘이 꽉 끌어안고 한손에 쥔 낫 끝이 목에 대여있었어. 정말 천만다행이야.”라고 따뜻하게 위로하였다. 
 
그 날 저녁에 중학교에서 교사로 있는 언니가 소식을 전해듣고 달려왔다. 나는 다시 설음이 북받쳐 언니를 붙잡고 한바탕 울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목숨을 구했으면 되지. 그깟 시계는 언제든지 다시 살 수 있어.”
 
후에 언니가 알려줬는데 그 날 나는 온밤 잠꼬대를 하면서 시계를 찾았다고 했다. 내가 소리 칠 때마다 언니는 몇번이고 화뜰화뜰 놀라 바로 자지도 못하고 온밤 옆에서 뜬눈으로 밤 새우면서 울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대채를 따라배우는 열풍이 일어났고 우리 생산대도 례외가 아니였다. 산비탈의 밭을 허물어 다락밭을 만드는 대공사가 벌어졌다. 매일 아침 종소리가 땡땡 울리면 우리는 눈을 집어뜯으며 일터로 나갔다. 한창 잠 많고 공부할 나이에 우리는 일을 해야 했다.
 
그 날도 나는 우리 집체호의 친구와 함께 멜대로 흙을 나르게 되였다. 넘치게 담은 흙광주리를 메고어깨가 부서지는 듯한 아픔을 참으며 한발작 한발작 친구가 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그만 작은 돌멩이를 밟아 발목을 접지르며 가파른 산비탈에서 데굴데굴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원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굽어보고 있었다. 산비탈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뾰족한 돌멩이에 부딪쳐 다친 몸 구석구석이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파나 신음소리가 절로 나갔다. 그 날 밤, 나는 온 저녁 참기 어려운 고통이 몰려들어 앓음소리를 련발했다. 그후로 나는 일을 놓고 위생소에서 주사도 맞고 약도 복용하면서 상처를 치료했다.
 
그 때는 희망도 미래도 보이지 않았다. 참으로 많고 많은 어려운 고비들을 이겨내며 용케도 버텨왔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나는 언젠가는 꼭 공부를 하고 싶었으며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잘 받아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을 이뤄야 할 목표로 삼았다. 힘든 체력로동으로 코피도 터지고 손바닥도 부르텄지만 나는 저녁이 되면 짬짬이 시간을 내여 책도 보았고 한어사전을 찾아가며 한어공부도 하고 일기도 빼놓지 않고 썼다. 또 고된 농촌생활을 체험하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 역경을 이겨내는 법,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법을 익혀갔다. 
 
이렇게 나는 인생의 숙제를 하나하나 풀어갔다. 정성이 쌓이면 뭐가 이뤄지기 마련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그렇게 노력한 보람으로 나는 끝내 연변재정무역학교에 입학하여 인생의 반전을 맞이하게 되였다.
 
내 인생의 두번째 숙제는 녀자의 숙명을 완성하는 것이였다.
 
1976년 재정무역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에 참가하니 벌써 내 나이 25살, 한창 시집 갈 나이였다. 부모님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나의 배우자감을 찾고 있었다. 나는 배움에 목 마른 사람인지라 학력을 배우자 선택에서의 첫번째 조건으로 꼽았다. 여기저기서 소개가 들어왔는데 그중 길림대학 경제학부를 다니는 대학생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 사람은 째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남인 데다가 아버지는 오래동안 와병하고 있어 로동력을 상실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식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당시 그 이는 대학에 다니면서 기초보장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말린 무우짠지만으로 끼니를 이어가며 어렵사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는 지식인이면서도 훈훈한 시골 사람들의 인심이 뼈속까지 배인 사람이였다. ‘그래 이거면 충분하지.’ 나는 그에게 시집 가기로 마음 먹었다. 대학 3년 동안 련애하면서 나는 물심량면으로 그 이를 지원해주었다. 그 당시 나의 로임이 37원이였는데 로임을 받자마자 15원을 뚝 떼내여 그에게 부쳐주었다. 그가 대학을 무난하게 졸업하고 우리는 식을 올렸다. 결혼할 때도 나는 사돈보기, 례단 등 여러가지 례법들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산 넘어 산이였다. 결혼후 신혼이 다 뭔지? 현실은 달콤한 꿀맛이 아니였다. 시아버지 병시중도 탈망살이인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의 해마다 결혼하는 시동생, 시누이의 결혼준비까지 겹쳤다. 여러모로 가해지는 경제압력은 새각시였던 나를 쓰러지기 일보 직전으로 몰아넣었다. 새각시로서 여기저기 돈을 빌리러 다니기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지라 단위 호조금관리를 하면서 그때그때 보리고개를 넘어갔다.
 
한번은 남편이 출장 갔다가 돈지갑을 잃어버려 현금 60원이 급히 필요하다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행여 남편 사업에 영향이 갈가 봐 급한 불부터 끄려고 호조금에서 60원을 돌렸다. 그런데 며칠후 시골에서 대리교원하던 막내시누이가 나를 찾아와 해쭉 웃으면서 오빠가 돈을 구해줘서 학교 교원들과 함께 북경 구경을 잘했다면서 나한테 선물을 건네주었다. 그 일로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다투게 되였다. 지금생각해보면 큰일이 아닌데도 그 때는 하도 어려운 살림에 그렇게 속히웠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앉았던 것 같다. 시간이 얼마간 지난 후에야 우리는 화해하고 몇가지 약속을 했다. 그후부터는 크고 작든 간에 집안일은 먼저 의론하고 결정하였다. 그 덕에 지금까지 무난하게 잘살아온 것 같다.
 
어느덧 우리가 결혼한 지 거의 40년이 되여간다. 귀여운 딸애도 낳고 자잘하고 사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푸근한 맏며느리 역할도 맡아왔다. 시누이, 시동생들도 맏며느리인 내 손으로 결혼식을 치러줬고 시어머니, 시아버지 환갑잔치도 남 못지 않게 차려드렸으며 두분이 병환에 계실 때도 지극정성으로 돌봐드리고 세상 뜰 때까지 마음 다해 모셨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흘러 직장에서 한자리하던 남편도 정년퇴직하였고 딸은 영국 유명 대학의 석사학위, 청화대학 석사학위를 따고 요즘 말로 잘 나가고 있다.
 

주위의 지인 분들이 나를 보고 성공한 녀자라고 말한다.
 
이제 내 앞에 차례진 인생 세번째 숙제는 보람 있는 후반생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건강부터 잘 챙겨야겠다. 건강이 좋아야 하고 싶은 취미생활도 즐기고 공익사업에도 많이 참여하여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2003년부터 나는 연변신세기리더십쎈터 소장직을 맡으며 근 15년간 1,500여명의 학원생들을 수료시켰다. 62기까지 학원생들을 수료시키면서 나는 재능봉사와 배려심이 뼈속까지 배게 되였고 이제는 아예 내 체질로 되여버렸다.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눈에 띄게 성장한 학원생들을 보면서 더없는 보람을느끼고 가슴이 뿌듯해나면서 짜릿한 행복감에 전률한다.
 
이외에도 나는 여러가지 공익사업에 적극 참가하고 있다. 꽃망울대학교입학등록금지원, 연변대학 평생교육동문회 연구생 대학 장학금지원,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 불우이웃돕기 등에 저그마한 후원금이라도 꼭꼭 지원을 한다.
 
그리고 중앙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 〈녀성세계〉프로그람, 연변인민방송국 여러가지 프로그람, 연길아리랑방송에도 나가 객좌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요즘 나에게는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다. 내 나이 70에 내 이름 석자가 박인 책 한권을 출판하는 것이다. 그 꿈을 실현하려고 독서량도 늘이고 자료들도 차근차근 준비하며 짬짬이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어느덧 문학아카데미에서 발표한 글이 이미 10여편 되였고 ‘애심녀성컵’ 응모작품으로《연변녀성》잡지에 발표된 글도 5편이나 된다. 이렇게 부지런히 더 발표하면 책 한권이 되는 것도 멀지 않다.
 
이 만큼 살아보니 삶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것 같다.
 
여직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이제부터라도 길지 않은 인생 제대로 즐겨야 하지 않을가? 와인잔 기울이며 남편과의 데이트도 즐기고 려행도 많이 하면서 잔잔한 행복 속에 자잘한 것들에도 감동하며 쉼표 인생의 묘미를 찾아볼란다.
 
앞서 집체호 때 친구들 3.8절 모임에서 한 중학교 동창이 간암으로 세상을 떴다는 비보를 전해들었다. 모두들 착잡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언제 저세상에 가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한번 병마와의 시련을 겪었었다.
 
1997년 음력 8월 초열흘, 추석을 앞둔 어느 날, 자궁의 혹을 떼내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의사가 진단을 내렸다. 나는 눈앞이 캄캄하여 견결히 수술을 만류하고 보수치료를 받으려고 어린애마냥 울면서발버둥을 쳤다. 한창 내 인생의 전성기였던 40대 중반에 이런 청천벽력이 내리칠 줄이야!
 
의사선생이 수술을 받지 않으면 나중에 종양이 악성으로 전환될 확률이 90% 된다고 알려줘서야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살고 싶다는 욕구와 가족의 권고로 나는 수술받기로 결심 내렸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였고 악성 종양이 아니였다. 그번 고비를 넘기고 나는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였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려고 더욱 노력했던 것 같다.
 
한번은 ‘존엄을 지키는 죽음’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연에 참석한 적 있다. “60대에 들어서면 죽음에 대한 준비를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는 강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너무 와닿았다. 얼마나 오래 사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다.
 
이제 남은 인생을 건강도 챙기면서 취미생활도 마음껏 즐기고 싶다. 봉사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보람 있고 가치 있게 살고 싶다.
 
앞만 보고 힘들게 달려온 내 인생,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나다.
 
결과보다는 인생 숙제를 하나 하나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내 인생 퍼즐도 바야흐로 수려한 한폭의 그림으로 완성되여가겠지. 나는 미완성된 그림 앞에 서서 벌써 혼자 감동하고 있다. 
 
인생을 즐기면서 숙제를 완수해나가는 과정에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을 나를 떠올려보니 눈시울이 뜨거워난다.  
 
글《연변녀성》2019년 제8호에서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일본인들의 특유문화 (花見) 해마다 2월에 들어서면 일본의 기상청에서는 벚꽃이 피여나는 개화시기에 대해 예상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꽃망울이 지기도 전부터 텔레비죤 뉴스, 특히 천기예보프로에서는 사쿠라전선(前線),사쿠라만개(満開)시기에 대한 예측, 사쿠라명소 등등 화제로 날마다 북적거린다. 봄을 맞는 풍습...
  • 2018-03-29
  • (사진 클릭하여 영상보기) 영길현조선족실험소학교 6학년 림호준이 아빠께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집자의 말] ‘가족사랑 영상편지(3)’을 펴내면서 네티즌들의 아낌없는 고무격려와 응원의 박수에 감사를 드린다. 이번기 주인공은 길림성 영길현조선족실험소학교 6학년 학생 림호준이다. 호준이의 편지내용을 통해...
  • 2018-03-29
  •   “경제리익을 우선시하는 요즘 시대에 이런 분은 보기 드뭅니다.” “자신의 리익을 챙기기 급급한 요즘에 이런 분이 몇분이나 될가요” 요즘같이 인정보다 자신의 리익을 먼저 챙기기 급급해하는 세상에 이러한 미담은 메마른 인정이란 사막에 목을 추기는 오아시스가 되군 한다. 대중교통이 ...
  • 2018-03-28
  •       (흑룡강신문=하얼빈)사람들은 세월의 흐름이 류수같다고들 말한다. 누가 말했는지 딱히는 알수 없는데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도 30대는 30키로로 달리고 40대는 40키로로, 50대는 50키로로 달리고 60대는 60키로로 달린다고 했다. 정말 그런것 같이 느껴진다. 1978년에 교편을 잡아 줄곧 교단을 지키다가...
  • 2018-03-27
  • —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김신숙 회장의 협회 사랑 이야기 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회장 김신숙(81세)은 연설을 할라 치면 발언고도 없이 청산류수로 쏟아내는가 하면 그 목청 또한 힘있고 쩌렁쩌렁하다. 게다가 훤칠한 체격에 걸음걸이도 젊은이들 못지 않게 날파람 있고 사유와 반응도 무척 민첩하다. 2...
  • 2018-03-27
  • 장춘조선족부녀협회 3.8절 경축 및 제45차 장학금 발급 행사 개최 장춘조선족부녀협회,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공동 주최한 ‘장춘조선족부녀협회 3.8부녀절 경축 및 제45차 장학금 발급’ 행사가 3월 25일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개최되였다. 여러 원인으로 뒤늦게 펼쳐진 녀성절 축하 및 장학금 발급...
  • 2018-03-26
  • 동방가무단의 안정, 미국에서 새로운 무용인생에 도전   쇼우스토펄(Showstopper)은 미국 아마추어무용가(본업으로 하지 않고 무용을 애호하는 사람)들의 최고의 경연대회로서 해마다 전미 40개 지역의 무용애호가들이 불꽃튀는 경연을 펼치며 프로급수준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 쟁쟁한 경연가운데서 미국...
  • 2018-03-2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 ◈김춘식(한국) 지금은 애완견을 많이 기르고 있지만 개에게 물려도 광견병 왁찐을 사지 못할가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병원, 위생방역소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아니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왁찐을 ...
  • 2018-03-21
  • 3차에 거쳐 8만원 가치의 박방표 파스 후원 박방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 박원일(좌)대표가 연변지체장애인협회에 1000통의 파스 전달 연변 지체장애인들에 대한 사랑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16일,상해박방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대표 박원일)에서는 각종 통증을 해소하는 박방백소통 파스 1000통(3만원)를 연변지체...
  • 2018-03-19
  •   15일, 국제소비자권익 보호일을 맞아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비자권익보호를 둘러싼 소비자 고발과 선전활동이 펼쳐진 가운데 룡정시 백금향정부에는 ‘3.15’주제와는 무관한 흥미로운 ‘고발’ 3건이 련달아 제기돼 황당하면서도 훈훈한 감동을 자아냈다. 고발 1.'3.15'를 맞아 저는 저...
  • 2018-03-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 ◈ 류춘옥(일본) ‘동춘호’는 우리의 고향이였고 우리의 친인이였으며 우리의 꿈이였다   ‘동춘호’에 첫 컨테이너를 실었던 류춘옥 부부 2008년 10월 31일은 나의 40년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되여...
  • 2018-03-15
  • 22년전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첫날부터 대변인으로 나서준 히사타케(久武)씨, 내가 처음으로 접촉한 일본인이였던 그가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2007년 여름이였다. 마지막 병문안을 갔다 온 후 한달만에 전화를 받고 숙야(通夜)장소에 갔다. 생전에 리론적인 변론을 즐겼던 히사타케씨는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
  • 2018-03-13
  • 일전, 연길시 북산가두 단영사회구역의 ‘숙청언니작업실(大姐工作室)’이 정식으로 설립되였다. 이는 왕숙청과 같은 사회구역 사업일군들을 육성하고 단영사회구역과 같은 시범집단을 구축하는데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예견된다. 료해한데 따르면 왕숙청은 사회구역 사업에 종사한지 17년이 되였고 그가 몸담고 있는 단...
  • 2018-03-12
  • 연변의 배달왕에 도전한 한 조선족 젊은이의 이야기 컴퓨터앞에서 직원들을 관리하고 있는 168무역회사 지욱 총경리. 요즘 조선족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고 또한 그들이 창업하여 성공 일로를 걷는 기간도 무척 짧아졌고 세련되였다. 젊은이들이 막강한 경제실력이나 유력한 경제후원도...
  • 2018-03-08
  • 행복한 배상봉씨 가족 어머니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체험을 하듯이, 남자들도 슬그머니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웁니다. 원래 애 키우자고 내가 이 지구별에 온 것은 아니였지만 어쩌다 보니 애까지 있게 되였고 또 천하에 가장 맛있는 김치와 도라지무침을 모른다는 일본이라는 땅에서 당분간 애를 ...
  • 2018-03-05
  • 연길시 신흥가두 민부사회구역에 사는 한 독거로인이 보름명절을 맞으며 본 편집부(길림신문)에 보내온 감사 사연을 담은 편지이다. 독거로인이 흔히 부딛치는 병원가기 관심 문제 및 생활 보살핌 문제상 로인은 신변사람들과 사회구역으로부터 진정어린 관심, 보살핌을 받은...
  • 2018-03-05
  • 3월 1일,간밤에 내린 함박눈은 연길시내 곳곳을 하얗게 뒤덮었고 환경미화원들은 이른새벽부터 교통안전을 위해 거리와 골목에서 눈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연길대교 부근에서 눈을 청결하던 환경미화원들은 문뜩 찾아온 10여명 청년지원자대오의 소행에 저으기 마음이 훈훈해졌다. 청년지원자들은 환경미화원들에게 뜨근뜨...
  • 2018-03-02
  •   일본에 온 지 어언 19년이 된다. 그동안의 일본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내가 걸어온 길 자체가 바로 일본에서의 나의 성장과정이 아닐가 싶은 느낌이 든다. 물론 10명중 7명은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1999년 5월, 녀동생과 같이 바다를 건너 일본땅에 발을 내딛고 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일들...
  • 2018-03-0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 ◇리룡득(안도) 32년전 하경지어르신(좌)을 모시고 찍은 사진(중간 전파 주임, 오른쪽이 필자.)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86년 8월 25일 오후였다. 내가 안도현문련 사무실에 방금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따르릉 세차게 울렸다. 얼른 송수화기를 들자 현인대 과학교육...
  • 2018-03-01
  • 정월 대보름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눈 내리는 27일 아침, 정월 대보름을 맞아 윷판을 차려놓고 마을 로인들을 기다리는 연길시 건공가두 장해사회구역 로년협회 몇몇 회원들의 일손이 분주했다. 올해도 장해사회구역에서는 정월 대보름 행사가 미리 펼쳐졌다. 반갑지만은 않은 봄눈 때문에 로인들의 출행이 불편하지는 않을...
  • 2018-02-27
‹처음  이전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