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수기 ]엄마의 온돌(2)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1월11일 16시51분    조회:193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병원치료 포기

2017년 7월 21일

내 고향친구들한테는 엄마는 ‘어죽’으로 통한다. 고기잡이를 좋아하는 나, 어죽을 잘 끓이는 엄마 그래서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오기를 좋아했다. 놀러오면 엄마는 거의 혼자서 준비를 다해서 우리가 서쪽 강변에 나가 마음껏 천렵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군 했다. 처음 몇번은 내가 어죽을 잘 끓인다고 애들이 칭찬하군 했다. 불을 지피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전부 다 내가 직접 진행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한 일은 그냥 불을 지피고 물이 끓을 때쯤 엄마가 준비해준 내용물들을 그대로 쏟아넣는 것, 양념도 엄마가 마련해준 량을 그대로 퍼넣는 일 뿐이였다. 그렇지만 애들은 그 내용물들을 전부 내가 준비한 줄로 알고 있었다.

 

작자 김현철 엄마(우)와 김현철 사촌 누이 춘설

 

언젠가 애들이 사전계획이 없이 찾아왔다. 엄마는 그래도 준비를 해준다며 부랴부랴 씻고 썰고 넣어주느라 분주히 보냈다. 그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친구 놈들이 그제서야 이 어죽은 엄마표인 줄 알게 되였다. 그 때로부터 내 영향력은 많이 약화되였지만 나는 늘 기뻤다. 애들이 엄마표 어죽을 먹으러 우리 집에 놀러오는 것이 기뻤고 그런 어죽을 땀을 뻘뻘 흘리며 서너그릇씩 먹더라는 얘기를 듣고 엄마도 항상 즐거워했다.

고향에 있던 시절, 나는 시간만 나면 강에 나가 고기잡이를 했다. 물막이요, 통졸임통이요, 통발이요, 그물이요…다양한 방식으로 고기잡이를 하군 했다. 특히 고기잡이군들이 많던 시절에는 밤에 남의 것을 털어가거나 아침 일찍 털어가는 일들이 잦았기 때문에 밤중에 한번씩은 강에 나가 고기를 건져오고 이른새벽에 재차 나가서 건져오군 하였다. 밤에는 혼자 나가기를 무서워하는 나 때문에 엄마는 늘 손전등을 들고 함께 고기 건지러 가군 했다. 새벽에는 주로 나 혼자 나갔지만 가끔 늦어지면 엄마는 어김없이 강뚝에 나와 멀리서 내가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봐주군 하였다.

고기를 못 잡는 날도 많았고 아주 작은 새끼고기만 걸려드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엄마는 단 한 마리도 버리지 않고 하나하나 손질하여 말리우거나 랭장고에 랭동해두군 했다. 그렇게 모인 ‘세치네’는 아버지가 로씨야에 가 계셨을 때 인편에 부치기도 하고 특히 친구들이 오면 한번에 추렴을 해버리군 했다.

캄캄한 밤, 작은 손전등으로 어둠 속을 헤가르며 엄마랑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던 그 강변길, 가끔 새벽에 나가 잔뜩 걸려든 고기를 들고 멀리 강뚝에 서있는 엄마를 보며 시뚝해서 걸어오던 그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단 한번이라도 그 풍경을 재현해보고 싶은데 엄마는 더 이상 그 때의 건강한 엄마가 아니다. 그리고 나도 강뚝에 자애롭게 서있는 엄마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시뚝하게 웃을 자신이 없다.

강과 산을 옆에 끼고 산 덕분인지 우리 친척들은 천렵을 좋아했다. 이모부의 ‘동풍패’자동차에 열몇명 되는 가족들이 함께 타고 깊은 산골에 천렵을 가는 광경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엄마는 특히 강과 산을 좋아했다. 고기잡이, 산나물 캐기, 열매따기 등 뭐든 좋아했고 최선을 다했다. 솜씨가 잽싸서 날렵한 물고기도 맨손으로 잡군 했다.

특히 기름개구리를 잡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럴 때마다 친척들은 나를 보며 너는 엄마가 젊어서 참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큰 느낌이 없었다. 다들 젊었으니까, 건강 때문에 놀 것을 못 놀고 할 것을 못하는 사람이 아직 없었으니까. 엄마가 젊어서 좋겠다는 말이 그렇게 실감 있게 들려오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63세에 돌아가셨다. 그 때도 다들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며 애석해했고 특히 엄마네 삼자매는 몇달 동안을 울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며칠전 엄마는 외할머니가 참 빨리도 갔는데 자기는 역시나 외할머니보다도 훨씬 더 모질다고, 이제 만나면 외할머니가 엄마를 모질게, 모질게 욕할 것이라고.

연길 세집

…짐이 꽤 많았다. 엄마는 중량을 초과할가봐 걱정을 많이 했다. 중량을 초과하면 내가 도로 들고 오면 되지 걱정 말라고 했건만 엄마는 들어갈 때까지 걱정하면서 자꾸만 공항 직원한테 물어보자고 했다. 물어보면 당연히 안된다고 할 것이니 그저 이 대로 들고 들어가라고 했다. 부피가 큰 데다 개수까지 많아서 엄마는 자꾸만 걱정을 했지만 무사히 다 통과되였다. 다 들어가면 오케이 손 모양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한참 뒤 엄마가 검사대 안쪽에서 손모양의 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나도 똑같이 흔들어보이며 들어가라고 했다. 엄마는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그윽히이 바라보며 나 보고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손조로왔다.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40분이나 앞당겨 연길에 도착, 친구 호남이가 마중을 나와 랭면도 대접하고 아버지가 사놓은 새 집을 구경시키고 나서 세 맡은 집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엄마랑 통화를 했다. 엄마는 불편한 데도 없으니 걱정 말라고 했고 나는 저녁에 두 분이 밖에 나가 드시라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하겠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짧은 통화에서 엄마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걱정 말라는 것”이였다.

장인, 장모랑 안해랑 그리고 라빈이 이렇게 저녁밥상에 마주앉았다. 엄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장인, 장모에게도 미안했다. 층계 오르기도 힘들어하는 두 분에게 또 애 봐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였으니 참 면목이 없다. 그런데 지금 이 단계에서 더 뾰족한 방법을 생각해내진 못하겠다.

엄마는 지금 쯤 주무실가? 또 라빈이의 사진과 영상을 무한 반복으로 들여다보시다가 잠 드셨을가? 와이파이가 아직 안되여있어서 드라마도 못 보았을 것이다. 그저 핸드폰만 뚫어져라 들여다보다가, 울다가, 눈물 닦다가, 그렇게 반복하다 잠 드셨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직 안 주무실지도 모른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된다. 그리고 주말이면 엄마 보러 연길에 가고 할머니도 만나게 된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부쩍 많이 한다…

2017년 8월 10일

엄마는 나에게 관한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였다. 소학교 시절 어느 겨울날이였다. 나와 한 친구는 운동장에서 눈덩이를 굴리며 놀고 있었다. 그날따라 눈이 참 잘 굴러졌다. 얼마 안 굴렸는데 엄첨 커진 것이다. 그냥 버리긴 아깝고 해서 학교와 가까운 우리 집 앞마당까지 굴러오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가방을 멘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집을 향해 굴렸다. 그런데 굴릴수록 커져서 절반 쯤까지 왔는데 벌써 날씨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학후면 바로바로 집에 가는 나인지라 엄마가 걱정되였는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을 따라 찾아왔다. 엄마는 단 한마디의 꾸지람도 없이 언제 이렇게 굴렸나며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 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랑 같이 굴렸는데 친구가 인츰 뒤떨어졌다. 그러면 엄마는 다시 가서 그 친구랑 함께 굴렸다. 이렇게 하다 보니 효률이 낮았다. 그래서 아예 함께 하나를 저만치까지 굴려가고 또 돌아와서 다시 하나를 굴려가는 식으로 해서 끝내 앞마당에까지 굴려왔다. 우리는 땀벌창이 되여 집에 들어와 털썩 주저앉았다. 나와 친구는 각각 작은 눈덩이를 더 만들어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해 겨울 우리 집마당에는 우리 키보다 약간 작은 눈사람 두개가 가지런히 봄까지 서있었다. 그 때 우리와 함께 그 눈덩이를 밀고 오던 엄마가 너무 고마왔다. 친구 같고 누나 같고 참 든든했다.

또 어느 겨울날, 톱을 들고 산으로 나무하러 갔는데 하필이면 뿌리와 줄기만 남은 구불구불하고 실팍한, 제일 못 생긴 나무가 눈에 들어와 그에 한번 도전하기로 했다. 거의 한시간을 톱질해서야 겨우 그 나무를 잘랐다. 그런데 자르고 보니 집에까지 운반할 일이 걱정이였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아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와서 엄마에게 자랑했다. 내가 엄청난 놈을 제꼈으니 가서 끌고 오자고. 엄마가 가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이건 끌고 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끌고 가도 별 리용가치가 없다는 것이였다. 온몸퉁이에 옹이 박혀서 자르기도 힘들고 패기도 힘들다는 것이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는 갖고 간 바줄을 풀어 나무를 동여맸다. 그리고는 나랑 같이 끌기 시작했다. 또 거의 한시간반을 들여서야 그 나무를 마당에까지 끌어올 수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와보더니 이 나무는 땔감이라기보다는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이 알맞겠다며 놀려주었다. 물론 엄마도 웃었지만 그 해 겨울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는 거기에 톱질, 도끼질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봄이 될 무렵 그 나무는 한쪼각도 남김없이 고스란히 엄마에 의해 산산쪼각이 나서 불쏘시개로 사용되였다. 그 때 엄마랑 둘이 그 나무를 끌고 오며 웃고 땀 내며 안깐힘을 쓰던 정경이 눈앞에 삼삼하다.

그 때가 좋았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무조건 지지해주던 엄마다. 물론 그 후에도 줄곧 그랬고 지금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그렇다. 세상에서 아무 의심 없이 무조건 나를 믿어주는 사람 1번 우리 엄마다.

2017년 8월 21일

오늘은 엄마랑 산책 겸 새 집 구경을 갔다. 연변대학 캠퍼스를 지나면서 가장 좋은 산책코스를 추천해드렸다. 젊은이들의 활력과 싱싱한 수림의 세계를 많이 받으면 좋을 것이라고 했더니 하루에 한번씩은 산책을 나오겠다고 대답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배구장을 지났다. 파란색으로 깔끔하게 꾸며진 배구장이 엄마의 눈길을 한참이나 머물게 했다. “빨리 회복해서 배구장에서 날아다녀야지?”하며 아버지가 롱담을 하자 “이젠 글러먹었슴다”하며 엄마가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초두부집에 잠간 들려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다. 엄마는 식사보다는 밑반찬이며 복무원이며 주방이며 등 구석구석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 집에서 장사를 참 야무지게 하는구나.” 하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간소한 밥상이지만 맛은 일품이였다. 천천히 걸어서 아빠트단지까지 가니 한달 뒤에 열쇠를 받는지라 아직 마무리작업 준비단계에 있었다. 내가 기어이 우겨서 먼지투성이 길을 꿰뚫고 우리가 구매한 집에 들어갔다.

아무 것도 없이 벌거숭이 그대로였지만 난생처음 자신의 아빠트에 들어온 두 분은 무척이나 즐거워보였다. 아버지는 여기저기 가늠해보며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고 엄마는 이 구석 저 구석 돌아보며 여기는 뭘 놓고 저기는 어떻게 꾸미고 하며 쉴 새 없이 얘기를 했다. 내가 이 공간은 여차여차하게 사용하자고 하니 “그것도 좋지만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가?”하며 엄마가 의견을 내놓았다. 나는 웃으며 “좋은 생각입니다. 역시 엄마다!”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한참이나 여기를 두드려보고 만져보며 하다가 우리는 아쉬우면서도 기분 좋게 내려왔다.

 구석구석  재여보며 인테리어를 구상하던 엄마의 뒤모습

구석구석을 재여보며 인테리어를 구상하던 엄마의 뒤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쁘게 장식된 주방에서 엄마가 맛 있는 료리를 만드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그리고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며 즐겁게 웃는 모습도 보고 싶다. 집을 내려와 세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는 웃으며 얘기하다가는 조용해지고 그러다가는 또 얘기를 계속하군 했다. ‘발전’이라 불리는 이 거리에 먹을거리가 많아서 손님들이 오면 데리고 오면 되겠다 여기저기를 쳐다보고 가리키며 머리에 익히고 있는 것 같았다.

길에서 버섯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엄마도 버섯을 좋아하고 나도 엄청 좋아한다. 저녁에 좀 해주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아들한테 해줘야지.” 하며 버섯을 샀다. 엄마가 해준 버섯료리는 의연히 일품이였다. 엄마가 아프다는 데 엄마가 해준 료리는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간다.

우연하게 엄마의 팔과 내 팔이 부딪쳤다. 항상 튼튼하고 탱탱하던 엄마의 팔이 아니라 축 늘어지고 흐물흐물해진 엄마의 팔이 느껴져왔다.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촉감으로 느낀 것은 완연 다른 느낌이였다. 탕약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더니 아직 이틀분이 남았다고 했다. 그럼 모레 쯤 가서 더 지어와야겠다고 하니 “약을 더 먹어야 되니? 한번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라고 한다. “무슨 감기에 걸린 줄 알아요?”하고 말하고는 인츰 후회했다. 엄마도 멋적게 웃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하루하루는 지루하고 단조롭기만 하다. 특별히 할 일이 없고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자기 나름대로 비밀에 부치고 있는지라 찾아올 사람도 없다. 유일한 소일거리가 바로 시장에 다녀오는 것과 산책이다. 이제 내가 북경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나마 눈앞에 보이던 아들도 없다. 그 외로움과 불안함을 엄마가 어떻게 견뎌낼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오늘밤도 평화로운 밤이다.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오고 엄마가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다가 조용히 주무시고 있다. 요즘 들어 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엄마가 깊은 잠에 빠져서 좋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김현철 (다음기에 계속)/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결혼 76년, 그리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사랑 모든 것이 판타지 같지만 실재하는 이야기다. 모든것이 아름다움을 넘어 감동 그 자체를 말한다. 이야기는 한국 강원도 횡성군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다. 나무꾼 처럼 "건장"해 보이는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수줍은 공주" 89세 강계열 할머니, 노부부는 겨울에 눈싸움을 하고...
  • 2015-08-02
  • 초록과 붉은 태양이 행운을 안겨주는 7월 5일 75기 화룡2중 3학년 6반(1975년 졸업)  동창들은 존경하는 한영헌담임을 모시고 아름다운 삼동리조트(도문 마패위치)에서 고중졸업 40주년 경축모임을 성황리에 가졌습니다.  반장 김승원을...
  • 2015-07-28
  • 원제: ‘박카스 아줌마’는 어떻게 ‘박카스 할머니’가 되었나? "나는 진짜 삶이 급해. 돈이 급해서 여기 나오는 거야. 다른 일은 몸이 아파서 못해. 당뇨도 심하고, 위염도 있고. 팔다리도 저리고 눈도 시리고. 약을 달고 살아. 자식? 있지. 그런데 걔들도 힘들어. 돈 달란 말은 못하겠더라고." 지난...
  • 2015-07-12
  • [여성조선] 김태원 아내 이현주의 가족 소통법 그룹 부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의 아내 이현주 씨가 엄마들과 시간을 가졌다.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과 독한 사춘기를 겪은 딸을 키운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많은 엄마가 공감했다. 전라남도 여수교육지원청 강의실. 특수교육 학생과 그 가족의 소통 이야기를 ...
  • 2015-07-12
  •   직업녀성의 당당함과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배움의 전당에서 쌓은 지혜와 수양으로 나눔의 행복을 가꾸어가는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연변대학 녀성평생교육총동문회 녀성들이다. “녀성시대 직업녀성의 앞선 의식과 매력,헌신정신을 한껏 보여줄것입니다…” 1999년에 직업녀성들의 종합자질을...
  • 2015-07-02
  • (흑룡강신문=하얼빈) 28일 오후 “내 친구 국량이를 살려주세요~”라는 애처로운 글이 위챗모멘트에 급속도로 퍼졌고 이어 국량이 살리기에 팔을 걷고나서는 조선족젊은이들의 열정적인 모습이 우리 사회에 찐한 감동을 주고있다고 료녕신문이 전했다.   “무슨 병인지 정확한 진단도 내리지 못했고 온 몸...
  • 2015-07-01
  • 연길시 화린무역회사 리덕봉사장(우)과 김복순할머니   지난 6월 29일, 연길시 화린무역회사 리덕봉사장과 연변비암미디어 홍욱사장일행은 연길시 신흥가두 민안사회구역 리마화서기의 안내로 로당원 김복순할머니를 위문했다. 올해 90고령인 김복순할머니는 리덕봉사장과 홍욱사장의 손을 꼽 잡고 “찾아주셔서...
  • 2015-07-01
  • —생태미술에 희망을 건 중국조선족민속촌 목수집 주인장 오운봉씨의 이야기 얼마전 가랑비가 잔잔히 내리는 날, 기자는 정식개원을 앞둔 중국조선족민속촌을 거닐다 《목수집》이라는 간판앞에 발길을 멈췄다. 담너머로 들여다보니 뜨락에는 온통 각이한 뿌리조각공예품들이 진렬되여있었다. 《구새목》(굴뚝)에...
  • 2015-06-27
  •      신수리를 하느라 점심식사도 미룬 전영춘씨      3일 오전, 연길시 8중 맞은편에 위치한 애심신수리부에 도착했을때 한창 솔로 바닥의 먼지를 꼼꼼히 털어내고 있던 전영춘(55세)씨와 그의 안해 김화(51세)씨는 어서 들어오라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연길시 신흥가두 민화사회구역의 ...
  • 2015-06-04
  •           “내 팔뚝 좀 만져보오, 이런 알통 만져봤소?” 거짓말 안보태서 주먹만한 근육이 불끈 솟아오른 서영옥할머니의 팔뚝, 올해 76세라고 소개했을 때 놀라고 팔뚝을 만져보고 두번 놀랐다. 록두가루와 살구씨기름을 파는 할머니라하면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할머니, 그냥 보따...
  • 2015-06-03
  • 김광선성형미용병원 김춘자실장의 삶의 지혜   “인생은 가치투자여야 합니다. 그 중심에는 비전이 있어야 하지만 사랑하고 성취감느끼고 행복을 느끼는것이야말로 내 인생에 삶의 가치가 아닐가 생각합니다.” 김광선성형미용병원(이하 미용병원) 김춘자실장의 삶의 가치관이다. 김춘자실장은 나이 60에 가...
  • 2015-05-29
  • 지난 5월 23일 연길시 연신소학교 1학년 3반 학생들은 김향선담임선생님과 함께 룡정시 광신촌에 위치한 "도촌자애원"에 봉사활동을 진행하였다.  부동한 년령단계의  오갈데가 없는 20여명의 지체장애자들이 있는 도촌자애원에서 원장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고 있었다.  제일 오래 있은 아이는 15년이 되였...
  • 2015-05-28
  •   '서로 다른 장애 보완하고 배려하며 살아야죠' 26일,맹인들한테 나누어줄 옷들을 챙기러 달려온 룡정4급 지체장애인인 주순옥(51살)씨가 맹인사업을 도와나서게 된 동기를 이같이 겸손히 터놓았다. 식당을 경영하다가 그만둔후 우연한 기회에 맹인들과 인연이 닿아 8년전부터 맹인돕기사업에 나서게 되였다...
  • 2015-05-28
  •   올해11살인 추해도는 엄마아빠사랑을 잃고 할아버지막벌이로 공부하는 한족어린이이다.    2012년부터 연길시로인뢰봉반의 조선족할머니 김봉선의 “손자”로 되면서부터 사랑의 품을 느껴보게된다. 김할머니의 추천으로 중국국제방송국조선어부의 김동광주임도 해마다 추해도에게 1000씩...
  • 2015-05-26
  •       아이들에게 전통교양을   “6/1”국제아동절을 맞으며 연길시 신흥가두 민창지역사회에서는 22일 “5로”들을 모시고 신흥소학교 6학년 5학급에가  “전통 배우기”로 아이들과 명절맞이 기념활동을 벌였다.   일찍 항미원조전쟁에 참가...
  • 2015-05-26
  • 들의  “6.1”선물    5월19일 연길시의 들인 리성복 김봉숙 왕효평 세 로인은 연길시 연남소학교에 찾아가 뢰봉정신을 전파하며 별장학금을 발급하여 아이들의 작은 가슴에 큰 꿈을 키워주었다.   세 모범로인은 모두 연길시 북산가두의 뢰봉자원봉사자이다. 국제아동절을 맞으며 그들은 연...
  • 2015-05-22
  • 이름난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 마흔다섯 살 주부의 고민이 한 줄 올랐다. 몇 십 년 만에 나간 초등학교 동창 모임. 한 남자가 "네가 나의 첫사랑"이었노라 고백했단다. 외모와 직업 번듯한 데다 자상하기까지 해서 모임 끝나고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더란다. "이를 어쩌면 좋으냐"는 물음에 댓글이 와르르 달렸다. 부러움 ...
  • 2015-05-21
  • 올해74세인 김월선할머니는 연길시 건공가두 장해지역사회에 사신다. 자식들이 외국돈벌이 나가고 집에서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는 하루도 쉴사이 없이 동네로인들의 도우미로 나서 “이웃사촌”이라 불리며 로후를 즐겁게 보내고있다.  김월선할머니도 퇴행성관절염을 앓다보니 허리도 휘고 걸음걸아도 퍽 불...
  • 2015-05-14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5년 전국부녀련합회에서 조직한 '가장 아름다운 가정'활동을 전개한이래 전국적으로 많은 가정의 적극적인 참여와 추천을 받았다. 주최단위에서는 그 기초상에서 층층의 선발을 통해 도합 300호의 가정을 전국 '가장 아름다운 가정'후보명단에 입선시켰다. 그중 조선족 김미란...
  • 2015-05-07
  • 5.4청년절을 맞으며 연변대학 과학기술학원 AMP 총동문회 산하조직인 축구협회(회장 리덕봉)에서는 축구시합, 기부 등 다양한 행사로 5.4청년절을 뜻깊게 맞이했다. 축구협회에서는 5월 3일 신라월드 5층 회의장에서 좌담회를 열고 5.4청년절의 의미와 애국운동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으며 이를 통해...
  • 2015-05-05
‹처음  이전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