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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여명 중 3분의 1이 장기수… 일과 시간엔 미용ㆍ조리 등 훈련
미지정 수용동 “옆방 소음” “물품 못 받아” 보고전에 쉴새 없어
육아거실 아기 생후 18개월엔 ‘이별’… 교도관들 “죄보다 사람 보려”
14일 방문한 청주여자교도소 전경. 청주여자교도소 제공
정해진 출입문이 아니면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6m의 담장. 이름으로 불리는 세상과 번호로 불리는 세상을 완벽하게 갈라놓은 교도소 담장 속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14일 충북 청주의 청주여자교도소로 향하는 동안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청주여자교도소는 1989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여성 재소자 교정기관. 750여명의 여성 범죄자가 수감된 곳이다. 15일 오전 9시까지 24시간 동안 교도관 제복을 갖춰 입고 사람이 번호로 불리는 세상을 교도관들과 함께 했다.
◇수형자 3분의1이 장기수…가볍지 않은 죄의 무게
교도관으로서 지켜야 할 수칙 등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수용동에 발을 디딘 건 정오쯤. 점심식사를 위해 수용동 구내식당으로 향하다가 수용자들을 처음 마주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 일반 재소자들이 입는 파란색과 모범수가 입는 분홍색 수용복을 입은 수용자들이 열을 맞춰 운동장으로 나왔다. 언뜻 동네에서 마주칠 수 있는 아주머니나 언니, 여동생 같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각자 어깨에 짊어진 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청주여자교도소 재소자 약 3분의 1은 장기수다. 죄명은 대부분 살인.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한 수용자들이 감당해야 할 삶은 지옥과 다름없다. 남겨진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이 저지른 범행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수용자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끝없이 자책하다 조울증을 앓기도 한다. 교도소 관계자는 “심하면 조현병으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죄책감 때문인지 치료보다 홀로 삭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쏟아지는 ‘보고전’, 교도소에서 울린 아기 울음소리
여자교도소라고 해서 남자교도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곳도 일과 시간에는 교육 훈련과 작업이 진행된다. 다만 훈련과 작업의 종류가 남자교도소와는 다르다. 남자교도소에서 목공 작업장이 인기라면 여기선 미용ㆍ한식조리ㆍ제과제빵ㆍ화훼ㆍ의상디자인 쪽이 붐빈다.
일과 시간에는 수용자들이 작업장이나 훈련장으로 향하기 때문에 수용동이 텅 비게 마련이지만 제1ㆍ4수용동은 그렇지 않다. 1ㆍ4수용동엔 질병이나 개인적 사유로 작업ㆍ훈련을 하지 않는 ‘미지정’ 수용자들이 수감돼 있는데, 교도관들 사이에선 업무 강도가 높은 곳으로 꼽힌다. 하루 30분 정도의 운동시간을 제외하면 종일 좁은 거실에만 갇혀 있어 예민한 상태인데다 싸움도 빈번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기자가 근무하는 동안 큰 싸움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교도관들이 편히 쉴 형편은 못 된다. 수용자들의 생활공간인 ‘거실(居室)’에서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인터폰과 수용자들이 요구사항을 쪽지에 적어 창문 쇠창살에 달아두는 ‘보고전’ 때문에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있을 틈이 없다. “옆방에서 누가 문을 차는 것 같다” “옆방이 너무 시끄럽다” “물품 구매한 게 있는데 못 받았다” 등등 요구사항은 다양하다.
근무 시작 1시간 만에 수거된 보고전만 11개. 보고전 한 장에 여러 가지 요구를 적는 경우가 많아 실제 처리 건수는 20건을 훌쩍 넘겼다. 보고전으로 접수하는 건 대개 약품이다. 교도소에는 국가지정의약품 33종이 무료로 지급되는데, 이 중 감기약이나 소화제는 사실상 비타민과 다름없단다.
정신 없이 쏟아지는 업무에 바짝 긴장해있던 찰나 어딘가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수용자들 사이에 시비가 붙었는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울려 퍼진 아기 울음소리는 교도소라는 격리된 공간과 어울리지 않아 이질적으로 들렸다. 울음 소리를 따라 발길이 닿은 육아거실에는 8개월 된 아기가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육아거실은 여자교도소만의 특별한 공간이다. 일반거실과 달리 한글, 과일, 채소 등이 그려진 포스터가 벽면을 수놓고 있었고, 보행기나 젖병소독기 등 육아용품도 잔뜩 놓여있었다. 한 교도관은 “전날까지만 해도 4명의 아기가 있었다”며 “18개월이 지나면 아기는 교도소 밖으로 내보내야 하기 때문에 그 전에 엄마가 출소하지 못하면 입양되거나 외부 친인척들에게 맡겨진다”고 말했다.
청주여자교도소 수용동 복도. 이동하는 재소자들이 부딪쳐 시비가 생기지 않도록 복도 가운데 경계선을 그어 놓았다. 청주여자교도소 제공
◇24시간 잠들 수 없는 파수꾼… “죄보다 사람을 보려 합니다”
밤이 되면 재소자들은 잠자리에 들지만 교도관들은 또 다른 업무가 시작된다. 재소자들이 잠자리에 든 오후 10시부터 4시간씩 선번과 후번으로 나눠 교대근무가 이뤄진다. 근무자들은 두 개 조로 나뉘어 1시간마다 순찰을 돌아야 한다.
야간 순찰 대상은 2개 층 168개 거실. 모든 방을 일일이 살펴야 하는데, 자해 등의 가능성이 있어 화장실은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공간이다.
야간에는 응급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개는 재소자들이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경우다. 첫 번째 순찰을 돌다 실제 하혈을 한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수용자를 만났다. 진통제를 먹고도 ‘골반이 무너지는 것 같다’며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고 주장해 보안과 계장까지 출동했다. 전에도 같은 고통을 호소해 진료받은 적이 있었던 수용자다. “진통제 효과가 날 때까지 좀 기다려보자”는 보안계장의 설득에도 수용자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수용자를 휠체어에 태워 의료병동으로 이동시켰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뒤 두 번째 순찰을 돌면서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고 돌아온 수용자가 곤히 잠든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여자교도소라는 특성으로 인해 교도관의 약 80%는 여성이다. 범죄자들이 수용된 공간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업무는 사실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외부 시선 또한 곱지 않다. 경력 20년이 넘은 한 교도관은 “아이 엄마들 모임에서 교도관이라 소개하면 대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무섭지 않냐’고 묻는다”며 “솔직히 초년병 때는 조금 무서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죄만 놓고 보면 수용자들을 대할 수 없다”며 “죄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보며 함께 징역살이를 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간다”고 덧붙였다. 25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베테랑 교도관도 “교도소에 발을 들여놓을 때 함께 들어온 수용자가 아직까지 수감돼 있는 경우도 있다”며 “이제는 식구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법의 심판을 받아 격리된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이지만 담장 밖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사람 사는 사회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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