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을 꾼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해빛이 창문에 따갑게 비추던 어느 하루, 여섯살 난 나는 집에서 이야기책을 보고 있었고 어디선가 뿡뿡하는 기분 나쁜 승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빚쟁이들이 들이닥친다. “엄마는 어디 갔니?” 이젠 “아빠는 어디 갔냐”도 생략이다. 얼어붙은 나의 입에서 “서시장”이라는 소리가 새여나오기 바쁘게 그들은 문을 쾅 닫고 씩씩거리며 사라진다.
다음 화면은 서시장에서 옷가지를 파는 초췌한 엄마 모습이다. 갑자기 란폭한 한무리 악당들이 나타나 옷가지를 내동댕이치고 돈을 내라고 란동을 부린다. 어디 나가 절대 지지 않는 엄마지만 혼자 몸으로 그런 난봉군들을 당해낼 리 만무하다. 빨갛게 언 손으로 돈주머니를 뒤져 하루 일당을 고스란히 내여준 채 엄마는 허탈하게 쓰러져있을 새도 없이 널린 옷가지를 줏고 다시 흐트러진 매대를 주섬주섬 챙긴다…
나는 오래 동안 이 꿈에 시달렸다.
“서시장”이란 말을 그토록 곱다라니 내뱉은 그 여섯살짜리 아이를 나는 심하게 비난했고 엄마의 그 처량한 모습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내 가슴을 허비였다.
이 꿈의 상반부는 내가 저지른 생생한 현실이였고 하반부는 내가 얻어들은 말에 근거해 각색한 허상이다. 단 꿈 속에서 그 허상들은 너무나 또렷이 나타나 언제부턴가는 상상인지 현실인지가 구분이 안될 때도 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미워했다. 꿈 속에서 나는 그런 나를 후회하고 질책했고, 깨여나서는 다시 꿈이 온다면 꼭 거짓말을 할거라 결심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정작 꿈에 들어서면 내 모든 결심은 허무하게 날려가고 나는 여전히 무력한 모습으로 값싼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거짓말이 ‘새빨간 거짓말’과 ‘하얀 거짓말’로 나뉜다면, 진실은 과연 어떤 색일가? 진실 자체가 그닥 명쾌하고 밝은 색갈이 아니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흔들린다. 내가 믿고 있던 밝고 명랑하고 옳은 것들, 그들은 항상 옳은 게 아니였다.
1. 내 진심은 늘 외롭다
언제부턴가 ‘이건 말해도 괜찮을까?'를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항상 조심스러운 내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은 점점 적어졌고 삼키고 감춰둔 마음들은 점점 많아졌고,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성적인 사람이 되였다.
나는 진실을 얘기하는 걸 심하게 가늠질했고, 내 진심을 보여주는 일에도 극히 태만했다. 그렇게 토해내지 못한 진실들은, 내 진심들은, 점점 쇠납처럼 내 몸에 가라앉아 나를 무겁게 했다. 내 주위에는 항상 친구가 많았지만 나는 어쩌면 늘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진심을 꺼내보이는 게 너무 조심스러웠고 밖으로 튀여나와 계면쩍어할 진심이 벌써부터 창피했다.
나는 어쩌면 한껏 웅크린 고슴도치와도 같았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였으나 정말로 가까웠던 친구들은 내가 까칠하다고 했다.
미소가 닿을 수 있는 거리, 위장이 들키지 않는 거리까지가 나의 한계였던 것 같다. 가까이 오면 올수록 어려웠다. 몸과 몸 사이의 거리가 자꾸자꾸 좁혀져 그 가시가 들켜버리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그 가시를 어떻게 꺼내놓을지 한참이나 허둥댄다 나는.
내 진심은, 늘 외롭다.
난 그걸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 나는 써야만 했다
삼켜온 내 과부하의 진심을 부리울 수 있었던 건 일기장이였다. 아무한테도 얘기할 수 없던 이야기를 쏟아놓고, 어디에서도 부릴 수 없던 성깔을 부리고, 어디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억지도 써보았고, 괜히 세상에 떼질도 써보고 속시원히 원망도 했다.
나의 일기장은 이렇게 어지러운 내 감정들로 가득했다. 단, 일기장에서의 나는 명쾌했고 자신의 감정에 주저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은 과하게 칭찬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심하게 욕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나는 정의롭고 패기있고 용감하다. 현실에서, 꿈에서도 어려웠던 성품들을 일기장 속에서 나는 두루 지녔다.
나의 절대적인 안전령역은 글이 써지는 일기장 안에서였다. 거짓에 힘겨울 즈음이면, 세상에 찌들어 지쳐갈 즈음이면 나는 슬금슬금 기여들어갔고, 한껏 치유를 받은 후에는 그닥 명쾌하지 않은 회색빛 현실에 또 푹하니 고개를 숙인 채 시들한 진실과 환한 거짓을 얘기했다.
3. 글과 현실의 줄타기
한껏 움츠러든 나는 도피처가 절실했고 그 완벽한 도피처는 글이였다. 퍼붓지 못했던 내 마음속 찌꺼기들은 글로 버려졌고, 시들시들 메말랐던 내 마음들은 글 속에서 환히 꽃피웠다. 일기장에 꼭꼭 숨겨있던 그 사람들은 이제 시원히 바깥세상에 나와 누군가에게 읽히기도 하고, 누군가의 공감,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현실 속 나는 여전히 썩 명쾌하지 않다. 대신 글 속에서의 나는 진실되고 내 감정에 거침이 없다. 정확하진 않아도, 감히 솔직하고 감히 정직하고 감히 버럭한다. 쓴다는 것은 이렇듯 이다지도 평범한 내가 이렇게도 멋진 세상 앞에서 떠엉떠엉 소리를 내며 살아갈 수 있는 축복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고인이 얘기한 지행합일(知行合一)처럼 나도 나만의 서행합일(书行合一)을 이루어야 할 텐데 오래 동안 몸에 배인거라 고쳐지지를 않는다. 현실에서 뿜어내지 못한 삐딱함은 가끔 글 속에 나타나 울퉁불퉁한 근육을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현실에서 찾지 못했던 쾌감을 글 속에서 찾느라 괜히 인상 쓰고 힘을 주기도 한다. 이것이 글과 현실의 줄타기가 주는 페단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딱 이만큼한 것이 아닐가?
‘글은 무엇인가'를 고민할 새도 없이,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공부할 새도 없이, 글의 밝고 큰 의의 따위는 담론할 깜냥도 안된 채, 그냥 당연하게 씌여져서 쓰는 그런 자연발생적인 행위. 그리고, 그 속에서 생생히 전해받는 살아있다는 느낌.
이게 내가 오늘도 어줍잖은 글이지만 진심을 털어, 정직하게 쓰고 있는 전부의 리유다.
봄보미 프로필:
본명: 리분선(李粉善), 1983년 룡정시 출생, 길림대학 광고학부 졸업. 글밤/드림북 공식계정 작가로 활동.
《도라지》 2019년 제3호 발표/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