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랑만(최화)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월19일 08시20분    조회:191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청춘노트]

문학임을 알고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시절의 나는 그랬다. 갓 상해에 도착했을 때의 나의 모습은 문학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찌는듯 한 8월의 오후, 나는 40여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상해역에 내렸다. 출구를 빠져나오면서 나의 시야에 들어온 건 사면이 빼곡히 들어 앉은 고층건물과 그 아래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차량들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상해의 방언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고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 꽂히는 듯한 더위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땀이 나를 착잡하게 했다. 이 도시에 유일하게 믿고 온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날 따라 하숙집의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했던 그의 룸메이트 때문에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 나는 기차역 출구에서 네 시간을 기다렸다.

20대의 햇내기에게 삶의 고민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가장 절박했던 건 생존본능이였다. 대도시는 화려하나 그만큼 또한 현실적이고 냉정하다. 집에서 가지고 왔던 밑천은 금방 바닥이 났고, 나는 월세마저 지급할 수 없을 정도의 궁지에 몰렸다. 취업이 안되던 날들, 머리속에서 한끼의 단가를 계산하며 먹었던 날이 있었고 교통비가 없어서 먼 거리를 걸어 다녔던 시간도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면접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빗속을 뛰였고 결국 속옷까지 다 젖은 상태로 면접실에 들어가 면접관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고 길에서 애 셋 데리고 길을 묻는 아줌마에게 친절하게 지도까지 그리며 가르쳐 줬다가 그날 받은 한달급여를 탈탈 다 털린 적도 있었다. 터널을 지나는 같은 막막했던 순간이 있었고 그걸 극복을 하게 해준 따뜻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머리가 복잡해서 찾았던 와이탄, 검푸른 강 너머로 맞은편 꺼질 줄 모르는 빌딩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강에 뛰여 들어 죽겠노라고 하던 한 여자를 만난적도 있다. 몸의 반쯤 나가 있었고 정작 뛰여 들 용기는 없었던 건지 란간을 잡은 채로 그녀는 엉엉 울면서 후회하게 해줄 거라며 욕 비스무레한 걸 내뱉고 있었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끌어당겨 겨우 내려오게 했더니 스무살 쯤 되는 여자가 바닥에 퍼더리고 앉은 채 통곡을 했다. 대개 회사에서 억울함을 당했고 세상이 두렵고 고향에는 가지 못하겠고 그런 넉두리였던 거로 기억한다. 다들 그녀의 청승에 웃고 있었지만 어쩌면 씁쓸한 이방인의 입장은 똑같이 경험하고 있었던건지도 모른다.

나는 가장 평범한 80후의 모습이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서로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80후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장경제하에 자기만의 불안감과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우리는 부모님의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빠른 절주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압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나는 이 도시에서 16년을 살았다. 화려한 도시의 외관에 혹했던 콩깍지가 벗겨지는 데는 불과 반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현실의 벽과 거기에 부딪쳤을 때의 아픔. 그로부터 오는 좌절감, 그리고 그걸 극복해가는 긴 시간의 성장통이었다. 의지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고 긴 밤을 잠 못 이룰 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만났던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들을 적었고 인상깊었던 순간들을 기록하였으며 내가 희망하는 상황과 세상들을 글에 담았다. 내세울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었으며 상당히 개인주의였고 거침이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응원이 필요했고 또 소통을 하고 싶었다. 그 때쯤 나는 날것 그대로의 내 생각을 온라인에 적어 내려갔다. 지금도 내 글에 달린 첫번째 리플을 기억한다. 딱 한구절이었다. “이것도 글이라고..” 피드백이 왔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 사람부터 붙잡고 설득해보고 싶었다.

운 좋게도 나는 나랑 비슷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잡지사의 프리랜서로 기사를 써주는 친구가 있었고 아이 둘을 키우며 무역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연구생 공부를 하는 학생도 있었고 알바를 하던 유학생도 있었다. 회사직원도 있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도 있었다. 온라인 창작의 활성화가 인터넷 문학을 형성하고 있었고 우리는 본명을 숨긴 채 아이디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각자 현실에서는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고 밤이면 글을 썼다. 누군가가 글을 올리면 밑에는 독자들의 리플이 수두룩하게 달린다. 잘 읽었다는 감사의 메세지일 때도 있고 가끔 따끔한 혹평일 때도 있었으며 간혹 가다가 제대로 된 수준급 글평이 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상상이 안될 정도의 교감이 이루어졌다. 원고료 한푼 안나오는 일에 다들 열정을 불사르며 글을 썼고 짧게는 몇천자 길게는 20만자 이상의 글을 적어내려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인터넷 저 켠의 사람이 익숙해지고 위로가 되였다.

인터넷 문학의 형식은 자유롭고 특별한 구애를 받지 않는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가끔은 서로 끌리는 글쟁이들끼리 듀엣으로 작업을 할 때도 있었다. “냉정과 열정사이” 처럼 주인공의 다른 시선으로 같은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했고 한사람의 글에 각자 다른 캐릭터로 답글을 쓰기도 했으며 그게 밑거름이 되여 나중에는 열몇명이 모여서 하나의 릴레이를 완성하기도 했다. 앞사람이 글을 쓰다가 어느 쯔음에서 끊어주면 뒷사람이 그걸 이어서 쓰는 고난이도의 팀웍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였다.

우리는 그렇게 20대를 보냈고 30대를 함께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심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 할수밖에 없는 일 가운데 하고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왕이면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문학은 내게 그런거였다. 좋아서 하는 일.

우리는 여전히 글을 쓴다. 인터넷 위챗의 발전과 더불어 뜻이 같은 친구들이 모여 새로운 방식으로 글 동아리를 만들어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넷 문학의 단점을 보완하고 선배들의 노하우와 장점을 살려서 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다들 여전히 갈고닦고 있다. 꾸준히 글을 쓰고 발표를 하며 삶의 희노애락을 나누고 있다. 누군가 내게 글을 왜 쓰냐고 했다. 나는 여전히 문학의 참뜻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글을 쓰는 순간이 즐거워 꽤 오래동안 계속 써내려 갈것 같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거라 생각한다.

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장 근사한 랑만이다. 그리고 그 랑만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나와 생활과 삶을 마주한다.

최화(崔花),필명: 작도   1981.5월 조양천 출생. 현재 상해 거주. 연변 작가협회 회원. 자유 기고인. 창작노트: 삶의 모든 순간을 격하게 공감하고 싶다. 그리고 기록해 간다.

《도라지》 ‘80후’시선 2019년 제3호 발표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4) ▩김수철(룡정)/오기활(도문) 대필 김수철 교수. 김교수는 이 토배기 현미경에 의거해 자신이 채집한 2600여종의 식물표본을 사생하였다. /오기활 찍음 나의 식물채집은 만년에 또 한번 잊을 수 없는 고행을 겪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13년 전인 2006년 9월 10일에...
  • 2019-01-25
  • - 글 / 박선희-        중국의 작은 시골에서 태여나고 작은 도시에 나와 공부하고 작은 꿈 안고 한국으로 유학가고 지금은 여기 일본에서 사네   태여난 곳 산 좋고 물 맑은데 공부하던 곳 아담하고 정겨운데 유학했던 곳 우리 말 친숙한데 낯설고 언어가 안 통하는 여기에 사네   태여난 곳 ...
  • 2019-01-21
  • 음력설을 맞으며 연변무역협회(회장 남룡수)에서는 1월 18일, 연길시 의란진 룡연6대에 자리잡고 있는 연변중증장애인위탁양성센터를 방문하고 입살, 콩기름,우유,옹기된장, 이레네 유기농사과 등1만여원에 달하는 생필품을 전달했다.   회원들은 연변중증장애인위탁양성센터 관계자의 안내하에 모의미용원, 모의상점...
  • 2019-01-1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1) ▩김규칠(화룡) 1974년 7월, 화룡현 동성공사 해란소학교 제5회 졸업 기념사진. 앞줄 왼쪽 세번째가 필자. 해마다 청명, 추석이면 나는 어김없이 진정부 소재지 동네에서 10리 가량 떨어진 해란촌에 있는 어머님 산소로 찾아간다. 해란촌은 전에 내가 15년 남짓 때묻...
  • 2019-01-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0) ▩신기덕(장춘) 글의 주인공 박정양선생님 이 세상에 돈이 존재하여 사람들을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만든다. 부유하다와 가난하다도 그 돈을 기준으로 하여 나뉘여지며 도적과 강탈 사건도 많은 경우 그 돈 때문에 생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
  • 2019-01-16
  • 단동시조선족로인들의 우스개 같은 진담 1989년 2월 27일 성립된 단동시조선족로인협회는 지난 30년간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건실하게 발전해왔다. 협회 회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굳게 뭉쳐 로인협회를 진정으로 로인들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즐거운 만년을 보내고 있다. 단동시조선족로인협회...
  • 2019-01-14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9) ▩윤미란(장춘) 어린 시절 필자(오른쪽 뒤)가 형제, 사촌들과 함께. 지난 세기 80년대에 태여난 우리를 80후라고 부른다. 개혁개방의 급물살을 타고 중국의 40년을 거쳐 이룬 성과를 몸과 마음으로 감수하면서 성장한 우리 세대이다. 이렇게 40년 가까이 품어왔던 많...
  • 2019-01-10
  • 일본 관광길에서 필자부부 2018년을 마무리하면서 일년내 주문하였던 각종 잡지들을 류별로 정리하다가 10월호를 그만 빼놓고 읽지 않은것을 발견했다. 하여 모든 일을 접어놓고 늦게나마 잡지를 펼쳐들게 되였다. 권두언에 림중수적(林中水滴)이 쓴 문장 《마무리를 잘하라》가 눈길을 끌어 읽었다. 1964년 일본땅에서 ...
  • 2019-01-07
  • 10일 사이 진흥총회 등 조선족 단체 개인 백혈병환자에게 수만원 기부 2018년 12월 27일, 길림신문 인터넷,  위챗 공식계정을 통해 백혈병에 걸린 안해 고양(29살)을 살리기 위해 마음을 조이고 있는 조선족 조금룡(30세)가정의 사연을 담은 글 가 발표된 후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회원과 매체인, 사회 각...
  • 2019-01-07
  • 태여난 지 두살 반 되는 아이가 부득불 엄마의 품을 떠나 할머니와 함께 있게 되였습니다. 지난 7월말부터 29살 나는 애 엄마가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려 병상에 누워있기 때문입니다. 12월 25일, 우리는 환자가 입원한 길림대학 제1병원 종양중심에서 환자의 남편 조선족 조금룡(30세)을 만났습니다. 12월 25일 오후 길림...
  • 2018-12-27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6) ▩전영실(연길) 등산길에서 필자 전영실 나는 단위 종업원 운동대회를 비롯해 운동경기에 자주 출전하는 스포츠맨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참으로 ‘기적'이다. 나는 소학교 2학년 때 하학길에 부주의로 넘어지면서 다리를 상했는데 설 수도 걸을 수도 없게 ...
  • 2018-12-26
  • —나어린 손녀, 반평생 남호촌에서 살아온 할머니를 글로 쓰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에서 동남쪽으로 50키로메터 쯤 가면 ‘송이버섯 고향'으로 불리우는 삼합진이 있다. 삼합진정부 소재지에서 7리 가량 더 가면 조선의 함경북도 회령시와 두만강을 사이두고 있는 남호촌이 보인다. 할머니네 집에...
  • 2018-12-19
  • 명동서예사랑총동문회 애심부 회원들과 연변문자예술협회 당지부에서는 12월 12일, 룡정시 신광촌에 위치한 고아원- 을 찾아가 애심과 문화를 전달했다. 이에 앞서 명동서예사랑총동문회에서는 지난 12월 10일 운영위원회의를 개최하고 년말을 맞으며 애심활동을 개최하기로 결의했다. 당일 전체 회원들에게 공지사항을 전...
  • 2018-12-12
  • (흑룡강신문=하얼빈) 일본관서지역조선족망년회가 오사카에서 지난 12월 9일 열렸다.   이번 망년회는 일본관서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과 조선족문화에 관심이 있는 일본인 약 70명 가까이 모여 타국에서도 고향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망년회는 관서지역에서 현재 활약하고 있는 관서조선족...
  • 2018-12-1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2) ▩조려화(도문) 10여년전 부모님을 모시고 유람길에서 남긴 가족사진(왼쪽이 필자 조려화) 며칠전 시장에 갔다가 친정에 들렸다. 아빠의 3년제를 치른 뒤 엄마는 부인이 돌아가시고 홀로 계시는 마음씨 좋은 분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셨고 친정은 평소에 늘 비...
  • 2018-12-05
  • 연변항공승무학교 연변TV '사랑으로 가는 길' 통해  빈곤가정 어린이들에게 1만원 후원      "이 추운 겨울 어떻게 날가?" 걱정하는 이들이 있어 이 사회는 더욱 아름답고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  지난 11월 24일, 연변한공승무학교(교장 최옥금)의 사생들은 연변TV '사랑으로 가는...
  • 2018-12-04
  • —치부의 ‘코기러기’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 촌민위원회 주임 김만혁의 이야기   방천촌 당지부 서기이며 촌민위원회 주임 김만혁 연변에서 최근년간에 변화가 제일 큰 마을을 꼽으라면 아마도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을 대야 할 것이다. 10여년전까지만 해도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외국의 전기...
  • 2018-12-04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1) ▩원죽순(화룡) 필자 원죽순 부부 1976년도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우리 부부의 꿈은 먹고 입을 걱정 없이 아담한 집에서 아기자기 잘살아보는 것이였다. 70년대의 생활수준은 집집마다 거의 가난에 쪼들렸다. 병약한 시부모를 모셔야 하는 우리 가정도 례외가 아니...
  • 2018-11-28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0) ▩최금란(대련)     텔레비죤 화면을 통하여 당대표와 인민대표, 정치협상회 위원들이 북경에 모여와 인민대회당에서 국사를 의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솟구치는 감회를 금할 수 없다. 인민대회당을 건설하던 의무로동의 잊지 못할 나날들이 어제런...
  • 2018-11-23
  • ‘로3기’를 새중국 력사에서 가장 전기적 이야기가 있는 한 세대라고 말한다. 올해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걸어온 ‘로3기’학생들이 학교를 떠나 농촌으로 내려간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2018년 11월 14일 오후, 통화시조선족학교 ‘로3기’ 학우들의 주최와 통화시조선족학교의 주관하에 &...
  • 2018-11-17
‹처음  이전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