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랑만(최화)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월19일 08시20분    조회:194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청춘노트]

문학임을 알고 시작했던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 시절의 나는 그랬다. 갓 상해에 도착했을 때의 나의 모습은 문학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찌는듯 한 8월의 오후, 나는 40여시간의 여정을 마치고 상해역에 내렸다. 출구를 빠져나오면서 나의 시야에 들어온 건 사면이 빼곡히 들어 앉은 고층건물과 그 아래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차량들이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상해의 방언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고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 꽂히는 듯한 더위와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땀이 나를 착잡하게 했다. 이 도시에 유일하게 믿고 온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날 따라 하숙집의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했던 그의 룸메이트 때문에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 나는 기차역 출구에서 네 시간을 기다렸다.

20대의 햇내기에게 삶의 고민은 한꺼번에 몰려왔다. 가장 절박했던 건 생존본능이였다. 대도시는 화려하나 그만큼 또한 현실적이고 냉정하다. 집에서 가지고 왔던 밑천은 금방 바닥이 났고, 나는 월세마저 지급할 수 없을 정도의 궁지에 몰렸다. 취업이 안되던 날들, 머리속에서 한끼의 단가를 계산하며 먹었던 날이 있었고 교통비가 없어서 먼 거리를 걸어 다녔던 시간도 있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면접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빗속을 뛰였고 결국 속옷까지 다 젖은 상태로 면접실에 들어가 면접관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적이 있었고 길에서 애 셋 데리고 길을 묻는 아줌마에게 친절하게 지도까지 그리며 가르쳐 줬다가 그날 받은 한달급여를 탈탈 다 털린 적도 있었다. 터널을 지나는 같은 막막했던 순간이 있었고 그걸 극복을 하게 해준 따뜻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머리가 복잡해서 찾았던 와이탄, 검푸른 강 너머로 맞은편 꺼질 줄 모르는 빌딩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강에 뛰여 들어 죽겠노라고 하던 한 여자를 만난적도 있다. 몸의 반쯤 나가 있었고 정작 뛰여 들 용기는 없었던 건지 란간을 잡은 채로 그녀는 엉엉 울면서 후회하게 해줄 거라며 욕 비스무레한 걸 내뱉고 있었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끌어당겨 겨우 내려오게 했더니 스무살 쯤 되는 여자가 바닥에 퍼더리고 앉은 채 통곡을 했다. 대개 회사에서 억울함을 당했고 세상이 두렵고 고향에는 가지 못하겠고 그런 넉두리였던 거로 기억한다. 다들 그녀의 청승에 웃고 있었지만 어쩌면 씁쓸한 이방인의 입장은 똑같이 경험하고 있었던건지도 모른다.

나는 가장 평범한 80후의 모습이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서로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80후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장경제하에 자기만의 불안감과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 우리는 부모님의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빠른 절주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압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나는 이 도시에서 16년을 살았다. 화려한 도시의 외관에 혹했던 콩깍지가 벗겨지는 데는 불과 반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현실의 벽과 거기에 부딪쳤을 때의 아픔. 그로부터 오는 좌절감, 그리고 그걸 극복해가는 긴 시간의 성장통이었다. 의지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고 긴 밤을 잠 못 이룰 때,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만났던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들을 적었고 인상깊었던 순간들을 기록하였으며 내가 희망하는 상황과 세상들을 글에 담았다. 내세울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었으며 상당히 개인주의였고 거침이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응원이 필요했고 또 소통을 하고 싶었다. 그 때쯤 나는 날것 그대로의 내 생각을 온라인에 적어 내려갔다. 지금도 내 글에 달린 첫번째 리플을 기억한다. 딱 한구절이었다. “이것도 글이라고..” 피드백이 왔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 사람부터 붙잡고 설득해보고 싶었다.

운 좋게도 나는 나랑 비슷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잡지사의 프리랜서로 기사를 써주는 친구가 있었고 아이 둘을 키우며 무역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연구생 공부를 하는 학생도 있었고 알바를 하던 유학생도 있었다. 회사직원도 있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도 있었다. 온라인 창작의 활성화가 인터넷 문학을 형성하고 있었고 우리는 본명을 숨긴 채 아이디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각자 현실에서는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고 밤이면 글을 썼다. 누군가가 글을 올리면 밑에는 독자들의 리플이 수두룩하게 달린다. 잘 읽었다는 감사의 메세지일 때도 있고 가끔 따끔한 혹평일 때도 있었으며 간혹 가다가 제대로 된 수준급 글평이 달리는 경우도 있었다. 상상이 안될 정도의 교감이 이루어졌다. 원고료 한푼 안나오는 일에 다들 열정을 불사르며 글을 썼고 짧게는 몇천자 길게는 20만자 이상의 글을 적어내려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인터넷 저 켠의 사람이 익숙해지고 위로가 되였다.

인터넷 문학의 형식은 자유롭고 특별한 구애를 받지 않는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다. 가끔은 서로 끌리는 글쟁이들끼리 듀엣으로 작업을 할 때도 있었다. “냉정과 열정사이” 처럼 주인공의 다른 시선으로 같은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했고 한사람의 글에 각자 다른 캐릭터로 답글을 쓰기도 했으며 그게 밑거름이 되여 나중에는 열몇명이 모여서 하나의 릴레이를 완성하기도 했다. 앞사람이 글을 쓰다가 어느 쯔음에서 끊어주면 뒷사람이 그걸 이어서 쓰는 고난이도의 팀웍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였다.

우리는 그렇게 20대를 보냈고 30대를 함께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심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 할수밖에 없는 일 가운데 하고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왕이면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문학은 내게 그런거였다. 좋아서 하는 일.

우리는 여전히 글을 쓴다. 인터넷 위챗의 발전과 더불어 뜻이 같은 친구들이 모여 새로운 방식으로 글 동아리를 만들어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넷 문학의 단점을 보완하고 선배들의 노하우와 장점을 살려서 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다들 여전히 갈고닦고 있다. 꾸준히 글을 쓰고 발표를 하며 삶의 희노애락을 나누고 있다. 누군가 내게 글을 왜 쓰냐고 했다. 나는 여전히 문학의 참뜻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글을 쓰는 순간이 즐거워 꽤 오래동안 계속 써내려 갈것 같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거라 생각한다.

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장 근사한 랑만이다. 그리고 그 랑만속에서 나는 또 다른 나와 생활과 삶을 마주한다.

최화(崔花),필명: 작도   1981.5월 조양천 출생. 현재 상해 거주. 연변 작가협회 회원. 자유 기고인. 창작노트: 삶의 모든 순간을 격하게 공감하고 싶다. 그리고 기록해 간다.

《도라지》 ‘80후’시선 2019년 제3호 발표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일본인 아키코씨의 연변추억(1) “…붐비는 기차안을 벗어나 사람들은 큰 마대자루같은것을 어깨에 올려 놓은채 홈에 내렸다. 삼삼오오 떼지은 사람들의 속을 비비고 개찰구에 나왔더니 연변대학 반공실의 D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은 낡은 검은색 승용차가 우리 곁에 와 멈추...
  • 2018-07-11
  • 입원 가능 어린이병동 찾아 몇 달마다 전전…법적·사회적 배려 필요   '폭염 속 어린이 방치' 통학버스 사고 차량 [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밥 한 끼 못 먹이고 2년간 튜브만 꽂게 했어요. 몸이 훌쩍 자라는 동안 한 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가슴이 저려요...
  • 2018-07-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9) ▩리오로(장춘) 유정세월에 보낸 고중시절 류수촌 동창들과 함께. 뒤줄 중간이 필자 리오로. 교하시 로야령 상봉에다 뿌리박고 서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수천쌍 옥답을 적셔주고 수만명 생령들의 생명수가 되여 흘러흐르다 송화강수와 합수하는 강, 이 강이 바로 망우...
  • 2018-07-06
  • 지난 6월 30일, 백년돌솥밥음식유한회사 박성화 사장은 연길총점, 왕청, 훈춘, 도문 분점의 사장들과 함께 안도현 명월진의 왕수매가정과 영경향 류약근가정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연변애심어머니협회 방선화 회장의 알선으로 이루어졌다. 안도현 명월진에 살고 있는 왕수매 부부 모두가 장애인이다. 장애인의 몸으로 두...
  • 2018-07-03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8) ▩황혼호(대경) 촬영작품 〈밥 짓는 연기〉와 필자 황혼호 얼마전 나는 촬영 전시회에 참가했는데 한장의 〈밥 짓는 연기〉라는 사진 앞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사진을 보노라니 어릴 적 내가 태여나고 자란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워나며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 2018-07-02
  • 일본인의 연변추억(1) 올 봄에 들어서서부터 그림을 그리시는 오오무라 아키코(大村秋子)씨와 함께 사진앨범정리를 하게 되였다. 일찍 1985년 남편인 오오무라 마스오 (大村益夫)교수(일본 와세다대학 명예교수)를 동반하여 처음으로 연변대학에 1년간 체류하였고 그후 20여년간 해마다 한달씩 연길에 다녀갈 정도로 연변을...
  • 2018-07-02
  • 농민공을 자처한 한 사람이 두루마리 휴지에 쓴 ‘편지’와 함께 두고간 바지값 11원. 6월 마지막 주의 월요일인 25일의 아침 8시, 여느때와 다름 없이 아침 일찍 출근한 연길시 건공가두 장신사회구역 사업일군들은 사무실 문틈에 끼워있는 ‘편지 한통’에서 우연찮게 큰 감동을 받았다. ...
  • 2018-06-2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6) ▩김덕운(장춘) 1966년 민병패장으로 있은 필자(중간줄 왼쪽 첫 사람) 등이 입대하는 청년을 환송하며 남긴 사진 나는 흑룡강성 오상현 향양공사(지금은 향양진) 중원 3대에 살았다. 그 지대는 수전지구로서 아무리 곤난한 년대에도 주식은 입쌀밥이였다. 그래서 시...
  • 2018-06-15
  • - 로투구진 렴명촌 마을 주둔 사업대 대원 전봉씨의 빈곤해탈 분투기 “고향에 돌아오면 안일한 직장생활이 눈앞에 펼쳐질 거라 생각했지요. 지금껏 저는 공무원은 책상머리에만 앉아 일하는 신사스러운 직업인 줄로만 여겼어요.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허허…” 로투구진 렴명촌 마을 주둔 사업대...
  • 2018-06-1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5) ▩김숙자(길림) 소녀시절 친구들과 함께 남긴 사진. 뒤줄 중간 사람 춘애, 그 오른쪽이 필자. 춘애와 나는 초중동창생이다. 녀성의 온갖 아름다움을 한몸에 다 가진듯한 그는 고운 눈에 복스런 보조개에 얼굴형도 길지도 동그랗지도 않고 딱 보기 좋게 갸름한 데다 ...
  • 2018-06-06
  • 케이운칸 온천앞에서 리홍매특파원 원천수(源泉数)가 2만 7000개를 넘는 일본은 세계적인 온천대국이다.“온천에 한번 들어 가면 용모가 아름다워 지고 두번 들어 가면 만병을 치유한다”는 일본인의 온천문화는 1300여년전부터 시작되였다. 올해 2월말, 으로 기네스북에 등록된지 7주년을 맞이하는 온천려관 「...
  • 2018-06-04
  •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딸아: 안녕? 천사같은 네가 내 딸로 태여나주어서 엄마는 얼마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단다. 아빠를 쏙 빼닮은 네가 빨간 주먹을 꼭 틀어쥐고 세상에 힘찬 고고성을 울린 그날부터 엄마는 온 우주를 다 가진것 같은 기쁨속에 살아오고있단다. 소학교에 입학해서부터는 해마...
  • 2018-06-03
  • "저한테두 이런 날이 오네요. 요즘 저는 한마디로 살맛 난다고 웨치고 싶어요. 출근해 돈을 벌어본다는 건 상상조차도 못했던 제가 인젠 주위의 도움으로 위챗판매를 하면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고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고 하루 종일 텅 빈 공간에서도 외로움 없이 할 일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
  • 2018-05-31
  • 6.1아동절에 즈음하여 29일 연길시 하남가두의 31명 빈곤가정, 결손가정 아동들의 ‘작은 소망’이 현실로 이뤄졌다.활동준비 과정에 하남가두 사업일군들은 전화로 신청을 받거나 직접 빈곤가정을 방문하는 등 방법으로 관할구역 빈곤가정과 결손가정 아동들의 ‘작은 소망’을 수집했다. ‘새 책가방을 메고 싶어요.’, ‘...
  • 2018-05-3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4) ▩리진욱(연길) 1964년 1월 필자의 결혼식 기념사진(앞줄 모친과 조카) 1940년대 중반 부모님의 사진 
  • 2018-05-30
  • 20여년전에 일본에 갓 왔을 때의 일이다. 바다가의 모래밭에 성(姓)자를 새겨놓고 프로포즈하는 장면을 텔레비죤프로에서 보았다. “나의 성으로 되여주세요” “당신의 성으로 되고 싶어요” 깜짝 놀랐다.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의미로 ‘…면 성을 갈겠다’고 맹세를 하기도 하는 ...
  • 2018-05-24
  • 봄빛이 한껏 무르녹는 5월 23일,연변TV《사랑으로 가는 길》 제207회 록화프로 제작이 연변TV방송국 슈튜디오에서 진행되였다. 김광호,김춘희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프로제작은 이제 며칠후의 6.1절을 맞으며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행복한 명절을 보내길 바라는 방청객들의 소원을 담겨져있다. 프로 첫 사연으로...
  • 2018-05-24
  • 계동현 신봉중학교 제1기 졸업생     중학교졸업 50년 기념 동창모임 측기         ▲사진= 50년 전에 찍은 색바랜 졸업사진.     (흑룡강신문=하얼빈) 꿈 많고 승벽심으로 가득했던 학창시절, 우리는 서로 뒤질세라 경쟁을 하면서 공청단원으로, 모범학생으로 함께 푸른 ...
  • 2018-05-21
  • 애심을 천직으로 간주하고 빛을 밝히다 생을 마감한 고 강철수씨를 추모하면서 《사람으로 세상에 태여나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부동하다.그러나 생명의 의의를 가늠하는 척도는 생명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불타는 족적으로 세상에 남긴 한 사람의 선행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가치관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애심으로 오로...
  • 2018-05-21
  •     위해시 조선족로인협회 주원길 회장의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내 삶도 행복한 삶으로 가꾸어 가겠습니다."   위해시 조선족로인협회 주원길회장은 금년에 새로 당선된 간부이다. 4년에 한번씩 교체되는 규정에 따라 원 협회간부들이 임기가 차서 지난해 년말...
  • 2018-05-18
‹처음  이전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