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수박할머니,고 리애신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5월29일 00시00분    조회:97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수박할머니 (西瓜奶奶),연변의 1세대 ‘왕훙’이라 칭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분이시다.
 
모멘트와 미니블로그(微博)가 성행하던 시절, 지금의 ‘왕훙’들만큼 얼굴이 많이 알려진 수박할머니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결코 SNS덕분이 아니였다. 바로 연변축구였기에 가능했다.
 
당시 연변의 온갖 관심은 ‘연변축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던 때였으니 수박할머니의 등장은 각본없는 드라마같은 것이였다. 그런데 얼마전 수박할머니가 쓸쓸히 돌아 가셨다는 가슴아픈 비보를 듣고 6년전 수박할머니를 취재하면서 못다했던 에필로그를 오늘 다시 적어보려 한다.
 
 
 
우리들에게는 리애신이라는 실명보다는 수박할머니라는 별명이 더 익숙하다
 
2015년 6월 24일 《인터넷 길림신문》에 발표된 본사 김룡기자가 쓴 ‘80세 할머니 우리 선수들께 수박이나 사주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수박할머니가 세상에 가장 먼저 알려지게 되였다.

연변축구구락부를 찾아가 무더운 날 땀흘리며 고생하는 선수들에게 수박이나 사먹이라고  1000원을 기부한 할머니의 축구사랑이 곧  파다히 퍼져 나가면서 할머니는 수박할머니로 불리우게 되였다. 할머니의 정체가 하도 궁금하여 나는 이튿날 어떻게든  할머니를 찾아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게 할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시 연변은 축구로 대동단결되여 있었고 수백명 축구팬들이 모인 연변축구팬 단톡방에서 할머니 이웃에 산다는 한 축구팬의 제보로 나는 연길 북대에 위치한 연북아빠트단지에 할머니가 살고계신다는 정보를 얻고 무작정 달려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경비원의 도움을 받아 집도, 할머니도 찾을 수가 있었다.

 
2015년 6월 24일 오후 연변축구구락부를 찾아 선수들에게 수박이라도 사주라고 1000원을 내놓는 리애신할머니
 
인턴도 중견도 아닌 입사 5년차 기자였던 나에게 그날의 취재는 기자생애 최대로 힘들었던 ‘푸대접’ 인터뷰였다. 긍정코 좋은 기사감인데도 할머니는 취재를 완강히 거부하셨다. 하여 설득에만 족히 한시간 반이 넘어 걸렸다. 조용한 곳을 찾아 집안으로 들어가려 해도, 근처 휴식터를 찾아 앉자고 해도 너무나 확고했다. 그렇게 아빠트단지를 훨씬 벗어나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 가다보니 길거리 인행도에 멈춰섰다. 도움을 청해 선배기자들이 연변축구소식이 실린 신문을 갖고 달려온것이 큰 작용을 했다.
 
 
수박할머니는 연변축구에 대해 환히 ‘꿰뚫고’ 계셨다

그렇게 완강히도 취재를 거부하시던 할머니가 거짓말처럼 신문을 반갑게 받아 펼치시더니 큰 소리로 연변축구기사를 읽으시며 즐거워 하셨다. 알고보니 할머니는 유일하게 신문으로 연변축구소식을 접하고 있었고  신문을 ‘코밑치성' 한 보람으로 어렵사리 인터뷰를 시작할수 있게 된것이였다. 할머니의 본명은 리애신이였고 78세 고령이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연변축구의 과거와 현재상황, 지어 매 선수들의 신상정보까지 속속들이 꿰뚫고 계셨다. 그러다 알게 된 가족사와 현재 지내는 상황이였는데 할머니는 북대신촌이 파가이주하면서 잠시 세집생활하고 있었다.축구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우리는 그날 리애신 할머니의 인생이야기를 덤으로 듣게 되였다.

당시 입고 계시던 옷이  20년째라는 단벌 신상 이야기며, 지붕에 물이 새서 대야 수십개를 받쳐 놓고 살던 이야기, 이곳저곳 수십번 이사를 하면서 살아왔다는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 지금도 텔레비죤과 집전화가 없다는 소박하고 썰렁한 살림이야기 … 길바닥에 멈춰 선채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세시간을 훌쩍 넘겼다. 확실했던건 연변축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애정이 대단한 분이라는 것이였다. 그리고 80고령임에도 홀로 살고 있고 하얗게 센 백발이 무척 외롭고 애처로와 보였던 기억이다.

할머니에게 드린 길림신문에 나의 전화번호를 함께 적어 드렸다. 나중에 신문이 나오게 되면 핸드폰이 없는 할머니셨기에 이 곳으로 전화를 걸면 꼭 신문을 갖다드리겠다는 약속을 남겨 주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야간근무를 해가면서 할머니 기사를 작성했고 지금 모두가 익숙히 알고 있는 그 이름‘수박할머니’는 그 기사에서 가장 처음으로 붙여졌다.그리고 후에 있은 이야기지만 수박할머니 취재기사는 길림신문상 1등상까지 수여 받았다.

《길림신문》에 실린 연변축구 소식을 읽으면서 즐거워 하시는 수박할머니

그 후로 모르는 번호로 번갈아가며 나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수박할머니였다. 길가던 행인의 휴대폰을 빌리기도 했고 슈퍼에 들어가서 공용전화로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연변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오전부터 경기시작전까지 나에게  몇번이고 전화를 걸어왔다. 정말이지 당시에는 할머니가 귀찮게만 느껴졌다. 전화를 받아보면 별다른 용무도 없었다. 자꾸만 언제 경기장에 나오냐고 물었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게 분명했지만 그때는 그게 나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솔직히 알면서도 나는 귀찮다는 리유로 모르는척 외면하고 싶었다.

“연화야, 연화야…” 내 이름은 영화라고 시정해주는데도 자꾸만 연화라고 불렀고 할머니는 영화라는 이름보다는 연화라고 부르는게 더 편했나 보다. 지금도 “연화야, 연화야…” 하는 할머니의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짠해난다.

수박할머니의 연변축구를 위한 뜨거운 열정과 애정이 길림신문을 시작으로 중앙매체들에서까지 널이 보도되면서 할머니는 하루아침에 ‘이슈 인물’로 되였다. 할머니의 축구사랑에 감동된 연변축구구락부에서도 할머니를 찾고 싶어했다. 할머니와 련락할 방도가 없어 길림신문사 기자에게 련락을 취해달라는 청탁이 왔다.

2015년 7월 18일, 연변팀 경기가 끝난 뒤 박태하 감독이 수박할머니에게 감사의 꽃다발 증정의식을 진행할 예정이니 할머니를 꼭 경기장에 모셔달라는 청탁이였다. 전화도 없는 수박할머니에게 이 소식을 알려 드리려고 나는 할머니집을 열번도 넘게 찾아 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갈때마다 문이 잠궈져 있어  궁여지책으로  집문고리에 쪽지를 끼워놓고 경기당일 지정한 위치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경기 당일 할머니는 쪽지의 약속대로 그 장소에 나오셨고 나는 매체 지정석인 옆구역에서 경기를 관람하면서 할머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후반전이 시작해 경기에 정신팔려있는 사이 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졌다. 구락부측에서꼭 할머니를 모셔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진땀이 바질바질 났다. 반시간 넘게 경기장을 헤매면서 겨우 할머니를 발견했는데 수박할머니는 글쎄 화장실에 들렀다가 관람구역 반대쪽에 찾아가 앉으셨던 것이다.

경기가 끝나갈 무렵 할머니를 모시고 대기실로 가야 하는데 안간다고 견결히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런 의식따윈 필요 없다는 것이였다. 꽃다발을 받으려고 쌈지돈을 내놓은게 아니라고 하셨다. 그래도 구락부측과의 약속이니 어떻게든 설득해서 모시고 대기실로 내려갔는데 그 와중에 꼴이 터져 할머니는 대기실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덩실덩실 춤추던 그 모습이 기억에 새록새록하다. 경기가 끝나고 약속대로 할머니를 경기장 잔디 한가운데에 모시기로 했는데 엄마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마냥 내품에서 우시는 것이였다. 이런 대단한 대접을 받으려고  돈을 의연했던게 아니라면서 혼자서는 도저히 못나가겠으니 꼭 나와 함께 나가자고 내 손을 잡아 끄시는 것이였다.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서 엉겹결에 할머니의 손을 잡고 그 영광스러운 잔디를 밟으며 나 역시 대본에도 없던 ‘배우노릇'을 해야 했다.

수박할머니에게 꽃다발을 걸어주는 박태하감독, 오른쪽이 이날 동행한 김영화 기자

“할머니, 할머니 덕분에 선수들이 힘을 냈습니다.”

박태하 감독은 수박할머니 목에 정중하게 꽃다발을 걸어 드리며 오래도록 꼭 안아 주셨다. 할머니는 박감독의 품에서 또 다시 주체할수 없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꽃다발을 얼른 자신의 목에서 벗겨내여 다시 박감독에게 걸어 주었다. 관중석에서는 축구팬들이 그대로 남아 다 함께  수박할머니(西瓜奶奶)를 목터져라 외쳐주던 그 함성은 감동의 쓰나미로 밀려와 나를 비롯한 많은 축구팬들의 마음에 평생 잊지못할 연변축구의 감동을 남겨 주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렇게나마 수박할머니의 곁을 지켜줬던 나에게 할머니 비보 소식은 참으로 많은 과거를 떠올리고 또 생각해 보게 했다... 한때 축구팬들에게 누구보다 수박할머니 소식을 가장 발빠르게 전해주려고 애쓰던 나였지만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누구보다 뒤늦게 수박할머니의 작고 소식을 전해 들었고 그 미안한 마음에 괴로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누구보다 가슴 뜨겁게 연변축구를 열애하던 그 백발이 성성했던  모습, 전국 축구팬들에게 그 어떤 말보다 진심을 담아 연변축구를 알리는 빛나는 명함장같은 분이셨던 ‘수박할머니’, 그이의 모습은 나의 기억속에도, 우리의 기억속에도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연변축구가 프로리그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수박할머니는 알고 가셨을가?

어느 네티즌이 할머니를 추모하며 남긴 댓글이 가장 눈에 띄였다. 연변축구가 바로 삶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던 수박할머니가 그동안 부진했던 연변축구의 힘든 나날을 어떻게 보냈을지 정말 궁금하다. 돋아나는 희망처럼 연변축구의 프로리그 귀환을 수박할머니는 살아생전 분명히 학수고대하셨을것이다. 수박할머니는 이미 떠나 가셨지만 할머니가 남겨준 연변축구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열정의 메세지는 영원히 연변축구팬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박할머니, 고 리애신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길림신문 김영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일본인들의 특유문화 (花見) 해마다 2월에 들어서면 일본의 기상청에서는 벚꽃이 피여나는 개화시기에 대해 예상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꽃망울이 지기도 전부터 텔레비죤 뉴스, 특히 천기예보프로에서는 사쿠라전선(前線),사쿠라만개(満開)시기에 대한 예측, 사쿠라명소 등등 화제로 날마다 북적거린다. 봄을 맞는 풍습...
  • 2018-03-29
  • (사진 클릭하여 영상보기) 영길현조선족실험소학교 6학년 림호준이 아빠께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집자의 말] ‘가족사랑 영상편지(3)’을 펴내면서 네티즌들의 아낌없는 고무격려와 응원의 박수에 감사를 드린다. 이번기 주인공은 길림성 영길현조선족실험소학교 6학년 학생 림호준이다. 호준이의 편지내용을 통해...
  • 2018-03-29
  •   “경제리익을 우선시하는 요즘 시대에 이런 분은 보기 드뭅니다.” “자신의 리익을 챙기기 급급한 요즘에 이런 분이 몇분이나 될가요” 요즘같이 인정보다 자신의 리익을 먼저 챙기기 급급해하는 세상에 이러한 미담은 메마른 인정이란 사막에 목을 추기는 오아시스가 되군 한다. 대중교통이 ...
  • 2018-03-28
  •       (흑룡강신문=하얼빈)사람들은 세월의 흐름이 류수같다고들 말한다. 누가 말했는지 딱히는 알수 없는데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도 30대는 30키로로 달리고 40대는 40키로로, 50대는 50키로로 달리고 60대는 60키로로 달린다고 했다. 정말 그런것 같이 느껴진다. 1978년에 교편을 잡아 줄곧 교단을 지키다가...
  • 2018-03-27
  • —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김신숙 회장의 협회 사랑 이야기 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회장 김신숙(81세)은 연설을 할라 치면 발언고도 없이 청산류수로 쏟아내는가 하면 그 목청 또한 힘있고 쩌렁쩌렁하다. 게다가 훤칠한 체격에 걸음걸이도 젊은이들 못지 않게 날파람 있고 사유와 반응도 무척 민첩하다. 2...
  • 2018-03-27
  • 장춘조선족부녀협회 3.8절 경축 및 제45차 장학금 발급 행사 개최 장춘조선족부녀협회,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공동 주최한 ‘장춘조선족부녀협회 3.8부녀절 경축 및 제45차 장학금 발급’ 행사가 3월 25일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개최되였다. 여러 원인으로 뒤늦게 펼쳐진 녀성절 축하 및 장학금 발급...
  • 2018-03-26
  • 동방가무단의 안정, 미국에서 새로운 무용인생에 도전   쇼우스토펄(Showstopper)은 미국 아마추어무용가(본업으로 하지 않고 무용을 애호하는 사람)들의 최고의 경연대회로서 해마다 전미 40개 지역의 무용애호가들이 불꽃튀는 경연을 펼치며 프로급수준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 쟁쟁한 경연가운데서 미국...
  • 2018-03-2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 ◈김춘식(한국) 지금은 애완견을 많이 기르고 있지만 개에게 물려도 광견병 왁찐을 사지 못할가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병원, 위생방역소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아니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왁찐을 ...
  • 2018-03-21
  • 3차에 거쳐 8만원 가치의 박방표 파스 후원 박방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 박원일(좌)대표가 연변지체장애인협회에 1000통의 파스 전달 연변 지체장애인들에 대한 사랑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16일,상해박방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대표 박원일)에서는 각종 통증을 해소하는 박방백소통 파스 1000통(3만원)를 연변지체...
  • 2018-03-19
  •   15일, 국제소비자권익 보호일을 맞아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비자권익보호를 둘러싼 소비자 고발과 선전활동이 펼쳐진 가운데 룡정시 백금향정부에는 ‘3.15’주제와는 무관한 흥미로운 ‘고발’ 3건이 련달아 제기돼 황당하면서도 훈훈한 감동을 자아냈다. 고발 1.'3.15'를 맞아 저는 저...
  • 2018-03-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 ◈ 류춘옥(일본) ‘동춘호’는 우리의 고향이였고 우리의 친인이였으며 우리의 꿈이였다   ‘동춘호’에 첫 컨테이너를 실었던 류춘옥 부부 2008년 10월 31일은 나의 40년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되여...
  • 2018-03-15
  • 22년전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첫날부터 대변인으로 나서준 히사타케(久武)씨, 내가 처음으로 접촉한 일본인이였던 그가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2007년 여름이였다. 마지막 병문안을 갔다 온 후 한달만에 전화를 받고 숙야(通夜)장소에 갔다. 생전에 리론적인 변론을 즐겼던 히사타케씨는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
  • 2018-03-13
  • 일전, 연길시 북산가두 단영사회구역의 ‘숙청언니작업실(大姐工作室)’이 정식으로 설립되였다. 이는 왕숙청과 같은 사회구역 사업일군들을 육성하고 단영사회구역과 같은 시범집단을 구축하는데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예견된다. 료해한데 따르면 왕숙청은 사회구역 사업에 종사한지 17년이 되였고 그가 몸담고 있는 단...
  • 2018-03-12
  • 연변의 배달왕에 도전한 한 조선족 젊은이의 이야기 컴퓨터앞에서 직원들을 관리하고 있는 168무역회사 지욱 총경리. 요즘 조선족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고 또한 그들이 창업하여 성공 일로를 걷는 기간도 무척 짧아졌고 세련되였다. 젊은이들이 막강한 경제실력이나 유력한 경제후원도...
  • 2018-03-08
  • 행복한 배상봉씨 가족 어머니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체험을 하듯이, 남자들도 슬그머니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웁니다. 원래 애 키우자고 내가 이 지구별에 온 것은 아니였지만 어쩌다 보니 애까지 있게 되였고 또 천하에 가장 맛있는 김치와 도라지무침을 모른다는 일본이라는 땅에서 당분간 애를 ...
  • 2018-03-05
  • 연길시 신흥가두 민부사회구역에 사는 한 독거로인이 보름명절을 맞으며 본 편집부(길림신문)에 보내온 감사 사연을 담은 편지이다. 독거로인이 흔히 부딛치는 병원가기 관심 문제 및 생활 보살핌 문제상 로인은 신변사람들과 사회구역으로부터 진정어린 관심, 보살핌을 받은...
  • 2018-03-05
  • 3월 1일,간밤에 내린 함박눈은 연길시내 곳곳을 하얗게 뒤덮었고 환경미화원들은 이른새벽부터 교통안전을 위해 거리와 골목에서 눈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연길대교 부근에서 눈을 청결하던 환경미화원들은 문뜩 찾아온 10여명 청년지원자대오의 소행에 저으기 마음이 훈훈해졌다. 청년지원자들은 환경미화원들에게 뜨근뜨...
  • 2018-03-02
  •   일본에 온 지 어언 19년이 된다. 그동안의 일본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내가 걸어온 길 자체가 바로 일본에서의 나의 성장과정이 아닐가 싶은 느낌이 든다. 물론 10명중 7명은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1999년 5월, 녀동생과 같이 바다를 건너 일본땅에 발을 내딛고 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일들...
  • 2018-03-0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 ◇리룡득(안도) 32년전 하경지어르신(좌)을 모시고 찍은 사진(중간 전파 주임, 오른쪽이 필자.)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86년 8월 25일 오후였다. 내가 안도현문련 사무실에 방금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따르릉 세차게 울렸다. 얼른 송수화기를 들자 현인대 과학교육...
  • 2018-03-01
  • 정월 대보름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눈 내리는 27일 아침, 정월 대보름을 맞아 윷판을 차려놓고 마을 로인들을 기다리는 연길시 건공가두 장해사회구역 로년협회 몇몇 회원들의 일손이 분주했다. 올해도 장해사회구역에서는 정월 대보름 행사가 미리 펼쳐졌다. 반갑지만은 않은 봄눈 때문에 로인들의 출행이 불편하지는 않을...
  • 2018-02-27
‹처음  이전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