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어느 휴일, 나는 강변을 거닐다가 우연히 연 띄우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였다.
연이 자유로이 날아오르기도 전에 연줄을 너무 세게 잡아당겨 조금 날다가 휙 돌아치며 땅에 곤두박질하는 ‘물고기 연’이 있는가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보일락 말락 까만 점으로 되자 급히 연줄을 잡아당겨 연줄이 툭 끊기며 휭― 어디론가 날아가버린 ‘제비 연’도 있었으며 바람의 속도와 연의 무게, 방향을 잘 파악하며 자유롭게 날아예는 ‘룡 연’ 도 있었다. 하늘에서 날아예는 여러가지 연과 강변에서 연줄을 풀었다 당겼다 하며 연을 조종하는 사람들을 보노라니 어쩐지 나도 매일 20여개의 ‘연줄’을 잡고 ‘연’을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지금 우리 반의 20여개 ‘연’들은 매일 나의 ‘조종’에 따라 창공을 날아예기도 하고 공중에서 둥둥 떠있기도 하고 곤두박질하다가도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필자 천춘해
담임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연’을 날려보내게 된다.
이전에 내가 맡았던 반급에는 공부하는데 엄청 어려워하는 녀자애가 있었다. 학급의 성적을 말아먹는 그 아이의 성적을 높여주겠다고 나는 휴식시간, 지어 하학 후에도 개별 지도를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한창 젊고 열정이 넘쳐 급한 마음에 아이에게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나 대로 힘들게 지도를 하였지만 성적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원래보다 더 차할 때도 있었다. 내가 성급하게 연줄을 잡아당긴 바람에 자유롭게 날아보지도 못하고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닐가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녀자애는 지금 푸른 하늘 어느 쪽에서 날고 있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연줄을 잡아당긴 나 자신이 후회스럽다.
내가 가르쳐주었던 아이들 중에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남자애가 있었다. 그 남자애는 늘 칭찬 속에서 학교생활을 보냈고 집에서는 장손이고 독자인지라 더 말할 것도 없이 떠받들리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애의 부모가 할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한국으로 갔다. 나는 그 애가 늘 우수하기에 그가 하는 일에 대해 무조건 믿고 어지간히 잘못을 저질러도 별로 엄하게 꾸지람하지 않았다. 연줄을 늦추어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6학년 후학기에 들어서고 그애가 점점 공부에 흥취를 잃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어 PC방에 드나들기까지 하여 나한테 넋살이 떨어지게 욕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그렇게 되였는지 점점 더 비뚤어져만 갔다. 여러번 담화도 하고 가정방문도 했지만 그 애의 눈빛은 이미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그렇게 6학년 후학기도 어느 새 지나가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어느 날 길에서 그 남자애를 만났는데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고 노란 새치머리를 하고 담배를 꼬나물고 한 녀자애와 어깨동무를 하며 생전 모르는 행인을 보는 것처럼 나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 저 애가 나의 손에서 너무 멀리 날아간 줄 끊긴 제비 연이 아닌가?’ 무언가 내 머리를 탁 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아파났다. ‘난 왜 그때 일찍 연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기지 않고 멀리 날아간 다음에야 당겼을가?’
하지만 내가 띄운 ‘연’ 중에는 잘 날아예는 ‘연’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또 엄마가 되면서 아이들의 마음의 ‘연줄’을 조절할 줄 알게 되였다. 이젠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아깝고 귀여워 할 줄도 알았다. 조금이라도 인간의 도덕에 어긋나거나 길목에서 헤매고 있으면 제꺽 알아채고 그 ‘연줄’을 잡아당길 줄도 알고 있다.
철이학생의 반급을 맡았을 때이다. 나는 40 고개의 성숙된 녀자로 또 모성애가 몸에 슴배인 엄마로 일정한 경험을 쌓은 교원으로 되였다. 부모가 리혼하는 바람에 철이는 아빠와 새 엄마와 함께 살았는데 늘 외로워하고 마음의 거처를 찾지 못하고 들떠 있었다. 공부에 전혀 취미 없는 그 애는 사회의 물을 먹은 듯 거들먹거리는 행동이 많았고 내가 좀 주의를 주면 빤히 쳐다보면서 ‘왜 자기를 관리하는가’ 하는 반항의 눈빛을 보였다. 다만 뽈을 찰 때면 운동장에서 독수리처럼 날랬다. 원래 운동에 뛰여난 소질이 있거니와 또 운동을 할 때만이 철이는 모든 정신을 공에 두고 즐기며 뽈을 찼다. 나는 사랑을 갈망하는 철이의 눈빛을 인차 감지할 수 있었고 또 마음을 안착시킬 거처를 찾지 못하는 〈삼모 류랑기〉의 주인공 삼모와 같은 그의 처량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애의 연줄을 항상 편안하게 당겨 나에게 다가오게 하면서도 날 수 있도록 했다. 그 애를 아들처럼 생각하여 스케트복도 사주고 조금만 진보를 해도 “철이는 지금처럼 공부하면 커서 헬스장을 꾸리고 코치가 된다면 참 멋 있을 걸”라고 칭찬해주었다. “선생님도 이제 철이가 꾸리는 헬스장에 가서 단련하고 우리 반 애들도 다 그리로 갈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한마디가 동력이 되였는지는 몰라도 그 뒤로 철이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축구 훈련도 매일 견지하고 있는데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쩐지 철이는 ‘룡 연’처럼 더 높이 더 멀리 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의 ‘연’들은 손에 쥐고 있는 연줄을 풀어도 푸른 하늘에서 자유롭고 온당하게 날아다닌다.
오늘도 나는 20여개의 ‘연줄’을 쥐고 ‘연’ 띄우기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 다시는 떨어지는 ‘연’이 없도록 바람과 무게와 방향에 따라 연줄을 잘 조절하면서 열심히, 꾸준히, 힘차게 띄우고 있다.
/ 천춘해(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
길림신문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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