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그 진달래꽃도 어지러이 락화하는지라 어디로 구경갈 데도 마뜩잖던 차에 등산애호가인 윤선생이 4월 30일 저녁에 전화가 왔다. 래일 교외로 꽃구경을 가려고 하니 8시 30분까지 약속 장소에 모이라고 하였다. 이미 일기예보를 체크했는데 바람이 세차고 날씨가 추우니 두터운 옷을 입고 우산을 가지라고 세세히 일러주면서 봄나물 캐는 도구도 준비하라고 하였다.
필자 최소천
걷잡을 수 없이 변하는 날씨에 나는 우리들의 위챗 단톡방에서 부질없는 근심을 내비쳤다. 그러자 모두들 래일 비도 내리는데, 바람이 세찬데… 모레면 좋지 않을가 하면서 중구난방으로 한마디씩 하니 윤선생은 단호히 결정을 지었다. 아침 8시까지 비가 안 내리면 떠난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후에 비가 있고 날씨가 차서 야외 식사는 안되기에 점심은 돌아와서 먹는다 하고 그루를 박았다.
다행이 이튿날, 즉 1일 아침 우리가 출발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기분이 날아갈듯 즐거웠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쾌청한 날씨는 우리들의 가벼운 들놀이에 안성맞춤하였다. 차에서 내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넓은 벌이 한눈에 안겨왔다. 멀리 바라보니 쪽빛 하늘에서 하얀 구름이 뭉실뭉실 바람에 떠돌다 파란 언덕 우에 놓인듯한 절묘한 그림이 펼쳐졌다.
꽃나무밭에 이르기도 전에 지천으로 널려서 납죽이 땅에 들어붙은 민들레가 우리의 발목을 잡으니 윤선생은 아직은 흥분하기에 이르다면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소나무숲을 지나 비스듬히 경사진 언덕에 연분홍 꽃이 활짝 핀 꽃나무들이 우리 일행을 손짓하였다. 나무의 크기는 2메터 가량이였는데 너무 굵지도 않고 가지도 성기게 뻗어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남방의 홍매화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복숭아꽃 같기도 한 꽃들이 나무가지에 앙증맞게 피여있었는데 파릇파릇한 작은 잎사귀가 설피게 받쳐주고 있어 더욱 이채를 띠였다. 산들산들 부는 봄바람에 가지에 매달린 연분홍 꽃이 가볍게 하느작거리였다. 간밤에 분 바람에 꽃잎이 많이 떨어져서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유감이라면서 윤선생이 못내 서운해하였지만 사진에 담기에는 충분한 꽃나무였다. 이미 이틀 전에 등산팀과 함께 왔다 가고 오늘 우리한테 구경시키겠다고 일부러 다시 걸음을 한 그녀였다.
꽃과 함께
아직은 관광지로 알려지지 않았고 목장이라든가 경작지 등에 대한 보호 차원에서 홍보를 하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크게 닿지 않은 태고연한 청정지역이였다. 그러기에 윤선생은 우리에게 휴지 한 쪼각도 떨어뜨리지 말라고 재삼 당부하였다.
우리는 시가지에서 차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자랑하는 꽃나무들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로수 옆이나 공원에 심어놓은 꽃나무와 사뭇 다른 모습의 꽃이여서 윤선생에게 물으니 이스라지(이스라치라, 산앵두라고도 함)꽃이라고 하였다. 이 꽃나무는 윤선생의 남편이 20년 전의 봄, 사업상의 일 때문에 마을에 왔다가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한다. 그때는 수량이 많지 않았고 얼마 자라지 못한 묘목이나 다름없었는데 생장 과정에 나무뿌리가 뻗고 뻗어 여기저기에서 새 줄기가 나고 하더니 지금은 말 그래도 화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언덕에 웅기중기 아무렇게나 자리 잡고 제멋 대로 가지를 친 것이 다듬은 흔적이라고는 없었다. 야생 꽃나무 그 자체였다.
우리는 향긋한 꽃냄새를 맡으면서 꽃나무 속에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혼자서, 둘이서, 셋이서… 꽃나무 밭이 떠들썩하게 깔깔 웃으면서 찍고 또 찍었다. 연분홍 빛갈과 어울리는 노란옷, 파란옷 그리고 우리들의 해맑은 미소로 사진발이 실물보다 더 좋았다.
리더인 윤선생의 재촉에 우리는 아쉬운 발걸음을 민들레 밭으로 돌렸다.
민들레밭에서
나도 시골 태생이지만 그렇게 넓은 민들레 밭은 처음이였다. 발 디딜 데 없이 빽빽이 돋아나 땅에 딱 들어붙은채 야드르한 잎을 쫙 펼친 민들레는 어찌나 먹음직스레 자랐는지 캐면서 저도 모르게 감탄의 환성을 질렀다. 큼직한 민들레 한뿌리를 캐서 얼굴 가까이에 대보니 얼굴을 다 가리고도 남았다. 한시간쯤 캐니 우리 여섯은 저마다 큼직한 비닐주머니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그래도 민들레 밭은 뿌리가 뽑힌 흔적도 크게 나지 않게 그대로인 듯 하였다. 우리가 캔 것은 빙산의 일각이였다.
민들레도 듬뿍 캤으니 시들해진 우리는 또 노란 꽃이 핀 민들레 밭을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배가 고파서야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소나무 숲 근처에서 냉이를 발견하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우리는 또 허리를 굽히고 캐기 시작하였다. 점심 전에 돌아가려고 도시락도 준비하지 않아 배고픔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는데 다행이 음식솜씨가 좋은 전선생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찐 단팥빵을 가져왔기에 어느 정도 요기를 할 수 있었다.
냉이까지 캐고 차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을 가까이까지 내려왔는데 윤선생이 저 도랑 옆에 쑥나물이 많다고 하면서 지금은 철이 일찍하지 않을가 하니 모두들 차에서 내려 가보자고 하였다. 마른 쑥대 밑으로 푸르스름한 햇쑥이 머리를 내민 것이 눈에 띄였다. 우리는 또 생각지 않던 쑥나물까지 캐고 이젠 정말 그만하고 집에 가자고 자리를 떴다.
코로나19 때문에 연변 주내도 시름 놓고 다닐 수 없는 상황에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하루 일정으로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힐링했을 뿐만 아니라 민들레를 비롯한 제철 봄나물도 캐고 했으니 일거량득이였다.
우리는 다음 해는 좀더 서둘러 만개한 꽃이 온 들판에 향기를 풍길 때 오자고 약속하면서 귀로에 올랐다. 자연 모습 그대로의 꽃나무들을 구경한 즐거움이 좀처럼 가셔지지 않았다. 우리는 래년에도 꽃나무 밭이 누군가의 고운 발자국만 찍히고 초연한 모습의 이스라지꽃이 반겨서 맞아주기를 기대해본다.
행복은 별거 아니다. 웃을 수 있고 즐거우면 행복한 것이다. 그 행복은 기다리는 것도,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라 스스로 발견하고 가까운 곳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는 삶의 지혜 속에서 우리는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최소천
길림신문 20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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