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를 넘긴 인생의 막바지에 들어 서면서 나는 자꾸 지나온 날들을 뒤돌아 보게 된다. 이중에서도 소학교 시절의 담임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그는 나의 꿈을 펼쳐주고 지식의 낟가리를 쌓아 주었으며 더우기는 위기일발의 시각에 나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1954년 7월 나는 길림성 왕청현 동광진 동림소학교에 입학하였다. 박옥란 선생님이 우리 담임선생님이시였는데 그는 련속 4년 우리 반급을 맡았다. 마음씨가 비단결 같고 책임성이 강한 박선생님은 30여명 되는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관심해 주었다. 어느 학생이 아파서 학교에 오지 못하면 그는 지체없이 집을 찾아가 병문안을 했고 폭우가 쏟아지거나 날이 어두워지면 학교와 5리 넘게 떨어져 있는 마을까지 학생들을 데려다 주었다.
1958년 여름의 어느 날 내가 4학년을 다닐 때였다. 어느 날 박옥란선생님은 우리를 데리고 강에 나가 물고기를 잡았다. 나는 바위 밑에 숨어있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바위를 들다가 그만 독사한테 손가락을 물렸다. 삽시에 손가락이 퉁퉁 부어 올랐다. 뱀독이 팔과 몸을 통해 심장까지 올라가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나는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이 아파서 엉엉 울었고 곁에 있던 친구들도 어쩔바를 몰라 선생님을 불렀다. 20여세 밖에 안되는 선생님은 어디서 그런 지혜가 생겼는지 자기의 량태머리카락을 뽑아 뱀독이 우로 올라가지 못하게 뱀에게 물린 손가락을 단단히 조여맸다.
그 사이 나는 그만 혼수상태에 빠졌다. 한시 빨리 현병원에 가야 했는데 구급차를 련계할 방법이 없었다. 때마침 지나가던 소수레를 불러 선생님은 나를 왕청 현립병원에 호송했다. 담당의사는 뱀독이 이미 머리카락으로 동여맨 자리까지 올라왔다며 한 시간만 늦어도 학생은 목숨을 잃을 번했다고 말하며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소식을 듣고 30여리 산길을 허둥지둥 달려온 아버지와 어머니는 늦은 시간인 데도 나를 보살피고 있는 담임선생님과 담당의사를 바라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세월이 흘러 어언 60여년이 지났다. 나는 후대 교육 사업에 혼신을 다해온 박옥란선생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교육사업에 뛰여 들었고 30여년을 몸담그어 오다가 퇴직하였다.
최범수/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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