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은 '인간 대표' 수식어를 달기에 충분한 승부사였다.
앞선 대국을 통해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약점을 파악한 뒤였지만 스스로 그 약점을 택해 시험대에 올랐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했다.
이세돌 9단은 15일 서울 종로구의 포시즌스 호텔 6층 특별대국장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알파고와의 5번기 최종국에서 280수 만에 흑 불계패했다. 이로써 이번 챌린지를 1승4패로 마무리했다.
대국장에서 현장 해설한 김성룡 9단과 바둑TV에서 대국을 풀어준 유창혁 9단은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바둑을 뒀다"며 "후회는 없을 것 같다"고 평했다.
이세돌 9단은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경기 내내 즐겁게 바둑을 뒀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3국까지 모두 내줘 챌린지 패배를 확정했을 때 일어난, 컴퓨터의 무한 자원을 활용해 정보 불균형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사된 이 대국이 그에게 불리하다는 논란에 대해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이세돌이 진 것일 뿐 인간이 진 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밤샘 연구 끝에 4번째 대국에서 78번째 수로 알파고의 허를 찔러 첫 승리를 거뒀다. 오로지 반상에만 집중했다.
당시 이세돌 9단은 "알파고가 백보다 흑을 잡을 때 고전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적의 약점을 파악했는데도 이 9단은 굳이 본인이 힘든 길을 택했다.
4국까지 이 9단과 알파고가 흑과 백을 번갈아 집었기 때문에 제5국은 돌 가리기로 흑백을 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이겼던 백을 또 잡고 싶을 것이다. 게다가 백은 이번 챌린지에서 7.5집의 덤을 얻기 때문에 유리하다.
그런데 이세돌 9단은 제4국을 이긴 뒤 "백으로 이겼기 때문에 마지막 대국에서 흑으로 이겨보고 싶다. 흑으로 이기는 게 더 값어치가 있다"며 흑번을 자청했고, 알파고가 대국 처음으로 초읽기에 들어가도록 끈질긴 승부를 벌였다.
팽팽한 접전을 벌였지만 상변을 타개하는 과정에서 소극적으로 나왔고, 하변 삭감에서 별다른 이득을 얻지 못해 추격을 허용했다.
열세에 몰린 가운데 이 9단은 좌변과 하변에서 바꿔치기를 시도했으나 간격을 좁히지 못했고, 끝내기에서 알파고에게 1.5집~2.5집의 우세를 내주며 280수 만에 돌을 거뒀다.
미국의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이날 "이세돌이 제5국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흑돌로 알파고를 상대할 것을 결정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더 큰 도전을 위한 선택으로 응원할 가치가 충분하다"며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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