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부덕에서 뛰며 1년 동안 중국과 중국 슈퍼리그(CSL)를 몸으로 느낀 윤빛가람은 “많은 경험을 쌓았다”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이동거리를 이겨내며 원정 경기를 치르기도 했고, 관중이 꽉 들어찬 경기장에서 TV에서나 보던 슈퍼스타와 맞대결도 벌였다. 외국인 선수 책임감을 처음으로 등에 지기도 했다.
일도 많았다. CSL 주간 베스트11에도 수차례 선정됐고, 그 과정에서 3년 만에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에 부름을 받기도 했다. 체코와 친선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지만, 그 뒤로는 다시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윤빛가람은 강등 후보로 꼽히던 승격팀 연변을 CSL 9위에 올려놓으며 한 시즌을 잘 마무리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은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시야를 넓히고 한층 성숙해지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연변 전지훈련지 스페인 무르시아에서 만난 윤빛가람은 1년 전 일본 가고시마에서 만났을 때보다 조금 더 깊어진 듯 했다.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윤빛가람은 1년 동안 자신이 겪고 느낀 일을 담담하게 풀어놨다.
#1. 타지에서 경험한 외국인 선수 생활
“딱히 생활이 한국이랑 다른 건 없는 것 같다. 좀 심심하긴 하다. 제주도 한국에서는 가장 심심한 도시 중 하나인데, 그래도 카페를 가거나 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차도 없고 말이 잘 안 통해 택시 타기도 어려우니까 잘 안 나가게 된다. 조선족 선수들과도 잘 지내지만, 다 각자 생활이 있다. 집에 가거나 여자친구만나러 가는걸 알기 때문에 밥 먹으러 가자고 미안해서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힘든 것은 아니다.”
“외국인 선수로 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연변에 있으니 좀 더 책임감도 갖게 된다. 외국인 선수는 결국 경기가 안될 때 풀어줘야 하는 사람이다. 광저우헝다 같은 그런 큰 팀에서 뛰는 외국인들은 내가 못하더라도 다른 선수들이 풀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나. 연변에서는 내가 골을 못 넣더라도 태균이형이나 승대에게 뭘 만들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그래도 외국에서 뛰며 동료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다. 게임 때는 무엇보다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우리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한다. 내가 공격적으로 나가더라도 뒤에서 수비를 잘 도와준다. 그게 우리 힘이다. 여름에 강팀을 계속 꺾으며 4연승 했는데, 프로로 뛴 이후 4연승은 처음이었다.”
#2. 엄청나게 넓고, 믿을 수 없이 열광적인 CSL
“개인적으로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생각한다. CSL이 K리그보다 수준이 높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경기 스타일도 다르고 축구 문화도 다르다. TV에서만 보던 세계적인 선수들과 맞붙는 것도 의미 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동료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됐다. 아무리 세계적인 선수라도 옆에서 못 맞춰주면 혼자 경기를 바꾸기는 어렵다. 드리블을 즐기는 테세이라(장쑤쑤닝)나 제르비뉴(허베이화샤)는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데 하미레스(장쑤), 구아린(상하이선화) 그리고 파울리뉴(광저우헝다) 같은 선수들은 패스 플레이를 하니까 조금 위력이 반감된 것 같다. 결국 관건은 중국 선수들이 얼마나 잘하느냐다. 광저우헝다나 장쑤가 잘하는 것은 중국 선수들이 그만큼 좋기 때문이다.”
“원정은 정말 힘들다. 나라가 너무 크다. 상하이나 베이징은 괜찮겠지만, 우리는 구석에 있어서 어딜 가든 오래 걸린다. 베이징이나 창춘에 가서 2~3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야 한다. 사실 제주도에서도 비행기 타는 게 힘들었었는데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걱정이다 1년차 때는 잘 모르고 막 다녔는데 이제 대충 어디에 가면 어느 정도 걸리는지 알게 됐다. 물론 그래서인지 홈어드벤티지가 확실히 있다. 다른 팀도 연변 오기가 어렵다. 그리고 홈팬들이 열광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홈에서 확실히 강하다. 하지만 원정 가서는 정말 힘들기도 하다. 원정가서 딱 1승 했는데, 프로생활하고 원정 1승은 처음 있는 일이다(웃음).”
“축구 열기는 인상적이다. 중국와서 첫 경기를 상하이선화 원정으로 치렀다. 상하이 공항에 내렸는데 우리 팬들이 몇 십 명이나 기다리고 있더라. 공항에서 열광적으로 응원가를 불러줬다. 경기 당일에도 2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선화 팬들이 경기장 주변에 가득했다. 우리 버스를 보더니 박수 쳐주더라. 승격팀에 대한 응원이었다. 선화는 팬도 많고 단합도 잘돼있다. 광저우헝다도 인상적이다. 어딜 가든 경기장이 거의 만원이다. 박수도 많이 치고 못하면 욕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뭘 하든 경기장이 가득 차니 선수 입장에서는 정말 재미있다.”
#3. 달콤쌉싸름한 대표팀
“체코전을 뛰고 다시 부름 받지는 못했다. 내 생각이지만 당시 체코전은 게임 내용보다도 결과가 중요한 경기였다. 전 경기에서 너무 크게 졌기 때문에 내용보다는 승리가 필요한 경기라고 봤다. 내 스스로도 경기 결과에는 만족하지 못했다. 당시 감독이 전반 끝나고 불러서 ‘왜 몸싸움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느냐. 부딪히면서 경기하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내 스타일이 그렇지 않은데 그 지시를 받고 바로 몸싸움을 적극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후반에는 몸싸움을 할 그런 상황도 별로 없었다. 결과적으로 포인트를 (두 개) 올려서 팀 승리를 도왔는데 그 다음부터는 대표팀에 계속 못 갔다. 그런 부분에서는 아쉽지만, (선발은) 감독이 결정할 문제다. 감독도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그런데 그 전에도 3년 동안 대표팀에 가지 못했다. 다 내려놨다. 열심히 하다 기회가 되면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게 된다면 주전으로 뛰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다.”
#4. 화끈한 연변 생활
“연변은 축구 열기가 엄청나다. 인스타그램에 사진만 올려도 난리 난다. (지)충국 형이나 최인 형 사진 밑에 장난으로 연변 말투로 댓글을 남기면 그게 캡쳐돼서 연변팬 사이에서 돌아다닌다. 진짜 관심도 많고 열정적이다. 하이난 1차 전지훈련 마치고 코칭스태프와 선수 6명이 팬미팅을 했다. 사실 한국에서 팬미팅이 어디 있나 그냥 사인회 정도지. 그런건 아이돌이나 하는 거다(웃음). 그런데 저녁에 행사장 가보니까 1천 명 이상 왔더라. 팬미팅 하면서 다시 한 번 축구 열기를 느꼈다. 경기 끝나고 밥 먹으러 가면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밥 먹으면서 우리 이야기를 한다.”
“팀 지원은 좋다. 숙소와 음식은 항상 좋다. 한국팀에서는 감독님이 뭘 해달라고 해도 (팀에서) 다 해주지 않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여긴 안 그렇다. 감독님이 해달라면 바로 해준다. 감독님이 숙소와 음식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여기선 그런 부분이 정말 좋다. 전지훈련도 좋은 데로 왔지 않나(웃음).”
“지난 시즌과 비교해서 바뀐 부분이 거의 없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잔류 경쟁이) 어려울 것 같다. 작년에는 승격팀이었으니까 심리적으로 준비가 잘 돼 있었다. 의욕도 강했다. 그런데 1년 해봤기 때문에 올해는 정신적으로 조금 긴장이 풀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작년에도 정신적으로 약해졌을 때마다 졌다. 우리는 정신력이 강점인데 그 부분이 약해지면 안 된다.”
사진= 풋볼리스트, 길림신문
풋볼리스트 류청 blue@football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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