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86세인 중국공정원 왕택산 원사가
그가 획득한 국가최고과학기술상 등
상금 총 1050만원 을
한번에 남경리공대학에
전액 기부하였다
이 상금은 교수 일선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둔 교원과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장려하는데 쓰이게 된다
동업계 종사자들은
화약을 60여년동안
연구한 왕택산 원사를
“화약왕”이라고 부른다
왕택산은
“그것은 제가
왕씨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국가가 필요로 한다면
반드시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1935년 왕택산은
길림성 길림시에서 태여났다
당시 동북은
일본침략자의 통치하에
삶의 터전이 함락되였던
그 시절 어린 왕택산은
“나라가 있어야 집이 있다” 는
도리를 알게 되였다
고중을 졸업한 왕택산은
할빈군사공정대학에 진학하여
전반 20명 안되는 학생중에
유일하게 화약을 자원으로
배운 학생이였다
화약 연구의 령역이 좁고
위험성이 높았지만
왕택산은 “국가가 필요로 한다면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고
생각하였다
이로부터 화약을 연구하는 것이
그의 평생의 사명으로 되였다
“나의 생활은
과학연구와 갈라놓을 수 없다”
왕택산의 과학연구의 돌파는
“페기화약의 재활용”으로부터
시작하였다
그는 페기화약의 재활용의
여러 관건기술을 공략하였고
그의 연구성과는 해당 령역의
기술 공백을 메웠다
그후 왕택산은 국제적으로도
해결하기 힘든 첨단 기술에
도전장을 냈다
발사약 연소의
보상리론 연구를 통하여
왕택산은 저온감
에너지재료를 발견하였다
여러번의 실험검증을 거쳐
무기당압의 온도감도를
3%이하로 낮출 수 있고
발사위력은 15%이상으로
제고할 수 있었다
화약령역에 대한 걸출한 공헌으로
왕택산은 국가과학기술진보상
1등상을 획득하였고
국가기술발명상 1등상을
두번 획득하였다
그리고 그는
중구과학기술계의 최고영예인
2017년도 국가 최고
과학기술상을 획득하였다
왕택산은 본인의
능력이 제한되여 있어
평상 한가지 일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화약연구를 제외하고
다른 일은 잘 하지 못합니다
나의 생활은 과학연구와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왕택산 원사는 지난날에는
과학연구에 열중하였고
지금은 인재양성에
힘 다하고 있다
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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