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한국 제쳐두고 北과 한글 이용 표준화 작업 진행할 것 "
남·북·조선족 사용하는 용어 달라 컴퓨터·모바일 시스템 호환에 혼선
"한국 제안했지만 논의 창구도 없어… 진전 없다면 北만이라도 진행할 것"
"20년간 조선문(한글) 정보기술 표준화를 한국에 제안했지만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논의 창구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중국이 한국을 제쳐두고 북한과 함께 한글 이용 정보기술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한국을 방문한 현룡운(玄龍雲) 중국 조선문(朝鮮文) 정보기술사업조 부조장은 19일 인터뷰에서 "한국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조선문(한글) 이용 기술의 표준화 작업을 북한과 함께 진행할 것"이라며 "북한은 이미 관련 전문가 18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옌볜대 교수인 현 부조장은 조선족 출신으로 중국이 진행 중인 한글 정보기술 표준화 사업의 실무 책임자다. 조선문 정보기술사업조는 지난해 10월 출범한 중국 국가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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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룡운 부조장은 “조선족자치주에는 공항에도 ‘연길’이라고 조선문(한글)으로 적혀 있는데 한국에서 ‘옌지(延吉)’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고 말했다. /김종호 인턴기자(경성대 사진과 4년)
중국 정부는 한어(漢語)를 비롯, 조선어 등 7개 소수민족 언어를 '유효 법정 문자'로 규정하고 있다. 전국인민대표회의 등 주요 국가 회의에서는 이 8개 언어로 동시통역하고 관련 문서를 제공한다. 중국은 전국 각지에 있는 소수민족 간 소통을 위해 정보기술 표준화 작업을 진행해 왔다.
현 부조장은 "카자크(카자흐스탄)와 따이(태국)어는 카자흐스탄·태국과 협의를 거쳐 표준화 작업이 이미 끝났다"며 "조선어는 남북한이 합의하면 그대로 받아쓸 수 있다는 게 중국 정부 입장이지만 남북 대립으로 진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기술 표준화 작업이 지연돼 조선족의 중국 내 지위가 떨어지고 있다"면서 "한국이 참여하지 않으면 북한만이라도 함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 부조장은 한글 정보기술 표준화 작업을 사회·과학·식품 등 66개 분야에서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남북한과 조선족이 같은 말을 쓰는 데도 정보기술 체계가 달라 빚어지는 혼선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한과 조선족이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고, 컴퓨터 및 모바일 자판이나 문서 시스템 등이 호환되지 않아 무역 등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막대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중국이 '한글 공정'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다.
현 부조장은 "표준화 작업은 과학기술의 문제이지 정치 문제가 아니다"라며 "공동 연구체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려고 해도 한국 정부에 창구가 없어 이야기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한글 용어 통일 등 어문 정책은 국립국어원, 컴퓨터·모바일 입력 방식 등 IT 분야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나눠 맡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남북한 및 조선족이 공유하는 한글 표준화 사업이 필요하다는 '총론'에는 동의하고 있다. 신부용 전 KAIST 한글공학연구소장은 "한국어(한글)는 한국만 쓰는 게 아니라 국제 언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우리 정부가 관련 기구를 만들어 조선족과 북한을 아우르는 한글 이용기술 표준화 사업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중국 내 한글 정보기술 표준화 작업은 자국민 보호와 편익을 위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서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할 경우 정부 기관 간 표준화 협력회의 등을 통해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