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걸어온 길. ▶학창시절 독일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Heine)의 시를 좋아해 독일어는 못했지만 시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 대학에 가서는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노래분야를 독일어로 번역하던 중 아리랑을 처음 접하게 됐다.
아리랑 가사 중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 구절은 한국어로 봤을 때 정말 발병이 난다는 것이 아니라 ‘아쉬워서 못가고 돌아온다’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독일어로 직역했을 때는 ‘발병난다’가 독일 사람들에게는 ‘발에 병이 걸렸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학 졸업 후에도 아리랑 연구·복원에 대한 사명감을 놓을 수 없어서 고향인 강원도 정선에 내려와 1991년 정선아라리문화연구소(정선아리랑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정선아리랑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채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리랑을 공부하다 1992년 중국 만주 땅에 조선족 190만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때가 아리랑을 통해 세계관에 눈을 뜬 시기로 스스로 자금을 모아 중국을 15년동안 43차례 다녀오면서 아리랑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이것을 집대성한 것이 지난 2008년에 발간한 ‘중국 조선족 아리랑연구서’다.
특히 지난 2014년에는 1991년부터 2013년까지 정선군 9개 읍면과 중국 동북 3성에서 채록·조사한 2만3000여수의 정선아리랑 가사 중 중복되는 가사를 제외한 4993수와 국내외 문헌 및 음반 속 가사 510수를 묶은 ‘정선아리랑 가사사전’을 발간했다.
이 책은 연구소 설립 이전 1988년부터 조사한 가사도 일부 포함돼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외에도 50여권의 달하는 책을 발간하면서 부지런한 삶을 살아왔다.
-정선아리랑 각종 자료 수집 동기 및 계기는. ▶1991년 정선아라리문화연구소를 설립했던 25년전에는 정선에만 아리랑제를 개최했지 다른 지역에서는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1988년도 서울 올림픽이 열렸을 때 아리랑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나타났던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정선지역을 돌아다니며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꾼 등을 대상으로 메모, 녹음, 수집 등의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쉽게 녹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방을 만나면 아리랑 가사 하나하나 받아 적기에 바빴으며 메모하는 습관이 생겨 정선의 지명, 떼꾼, 약초 등의 자료들도 종합적으로 수집이 됐다.
지금에 와서는 과거 적어놨던 메모들이 무형물인 정선아리랑을 유형물로 체험시켜줄 수 있는 하나의 콘텐츠로 재탄생하게 됐다. 아리랑 노래는 실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연구하면서 아리랑의 활용과 효용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학문이라는 것은 연구하는 사람들이 대중에게 쉽게 이야기해주고 설명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무형물인 정선아리랑을 대중에게 유형적으로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아리랑을 부른 사람, 지리적 배경 등의 사진부터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각종 아리랑 관련 문헌, 자료, 음반 등을 하나하나 모으게 됐으며 20년 넘게 모으다 보니 지금 정선아리랑센터 아리랑박물관에 4분의1 분량의 자료를 전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찍부터 정선아리랑은 정선이라는 공간을 넘어 문학, 미술, 연극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갔다. 땀 흘리고 가꿔온 정선아리랑에 대한 사랑에 그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더해져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마침 아리랑이 지난 2012년12월6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근래 들어 정선아리랑의 전승 현장은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소리꾼들이 세대를 달리하면서 시대와 정서에 맞는 가사들도 차근차근 쌓여가고 있다. 정선아리랑은 한국의 아리랑이자 세계의 아리랑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집과 마을에서 불리던 소리가 공연과 극으로 대중에가 다가가갈 수 있는 시설들이 가시화 되고 있다.
정선아리랑이 이제 세계 사람들이 눈여겨보고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한국의 소리’로 가치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현재 정선아리랑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내실 있게 제공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그간 아쉬웠던 점. ▶그동안 아리랑을 연구하며 정선아리랑 및 한민족 아리랑을 연구·채록할 수 있는 젊은인재 발굴이 시급하다는 것을 느꼈다. 본인처럼 연구와 채록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젊은 인재가 많아진다면 한민족 아리랑에 대한 연구는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고 해외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 아리랑에 대한 녹음, 채록 등의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도 시간이 없다. 이번 중앙아시아 고려인 아리랑 연구서를 발간하면서도 운명을 달리한 분들이 적지 않다. 이만큼 해외 곳곳에 생존해 있는 한민족 아리랑에 대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시간이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않다. 1분1초가 아까운 때가 지금이다.
이번 책을 발간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중앙아시아 아리랑 연구 시기가 빨랐어야 했다. 중국 고려인 아리랑을 연구했을 무렵인 1990년대부터 조사를 시작했다면 지금보다 자세하고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 ▶내년에는 정말 중요한 해다. 과거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한민족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된지 80년이 되는 해다. 이에 맞춰 ‘아리랑 로드’를 계획하고 있다.
아리랑 로드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중국의 실크로드처럼 정선아리랑이 정선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리랑이 전승된 길을 따라 가면서 문화적 교류를 통해 문명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전 세계 분포돼 있는 한민족 네트워크를 만들어 아리랑에 대한 문화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 해외에 있는 아리랑에 대한 자료를 수집한 ‘아리랑 로드 전’을 개최해 한민족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젊은이에게 한마디. ▶아리랑은 무형이라 이것을 유형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다양한 아리랑을 경험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리랑의 과정 중 문화적인 요소들을 모아 노래만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교재, 학교교육 등의 다양한 분야로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스스로 아리랑을 가지고 꿈꾸고 국민 모두가 신명나게 아리랑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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