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 저명한 중국조선족 음악가이며 길림성문련 부주석, 길림성음악가협회 고문, 원 연변주문련 당조서기이며 주석이였던 박서성동지가 심장질환으로 62세를 일기로 돌연히 서거했다. 이날 오전 박서성동지의 타계소식이 위챗으로 전해지면서 위챗모멘트는 애석함과 비통함이 가득찬 애도물결로 도배되였다.
1955년 길림성 교하에서 태여난 박서성은 1986년 심양음악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창작무극 “춘향전”, 무용시 “장백정”, 창작무극 “아리랑 꽃”, “천년아리랑” 등의 음악창작을 맡았고 바이올린협주곡 “장백혼” 교향광상곡 “신기한 장백산” 대합창 “나는 장백산을 사랑하네”, 가곡 “아! 백하” “아리랑 사랑” 등을 창작해 국가급, 성급 상을 여러차 받았다. 가곡 “아버지산, 어머니강”은 2003년 전국 성악 우수작품상을 받았으며 박서성작곡가는 성정부 2등공 및 주정부의 <중국청년학술선구자> 칭호를 받아 안았다. 행정직에 몸을 담고있으면서도 교향악, 음악극, 관현악, 무극음악, 성악 등 다양한 쟝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창작했던 박서성작곡가는 1992년에 길림성 정부로부터 대공1차로 기입받았고 1998년도에는 국가 문화부로부터 <우수전문가>칭호를 수여 받았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연변가무단 단장을 지냈고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연변문련 당조서기, 주석을 지낸 박서성작곡가는 2014년부터 줄곧 성문련 부주석을 맡았으며 연변조선족전통음악연구 및 보급에 앞장서왔다.
연변인민방송국의 전임 기자였던 한태익선생은 “1995년도에 박서성작곡가가 전국 작곡상을 받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우리 조선족음악예술계의 큰 별이 떨어졌다”면서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고 시인인 최룡관선생도 “박서성작곡가가 우리 민족의 걸출한 음악가의 한분인데 너무 일찍 간다”면서 몹시 애석해했다.
전임 연변청소년문화발전추진회 회장이였던 한석윤선생도 박서성음악가의 타계소식에 “한창 창작성과를 올릴 나이인데 참 아까운 분”이라면서 애석함을 감추지 못했다.
연변작가협회 부주석인 김영건시인은 박서성음악가의 서거에 대해 “우리 민족의 훌륭한 예술가이며 작곡가, 우리 민족문화의 탁월한 리더이신 그 분의 서거는 우리 민족의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면서 “아버지 산처럼 어머니 강물처럼 그가 남긴 불후의 업적들은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굽이칠 것”이라고 추모했다.
길림성음악가협회에서도 부고를 통해 박서성음악가의 서거에 대해 길림성 음악계를 대표해 침통한 조의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부고에서는 저명한 작곡가, 국가1급 작곡가인 박서성동지가 근 40여년래 행정사업을 잘하는 동시에 업무를 부단히 연찬, 근면하게 창작하고 정품을 추구하면서 대량의 교향곡, 무극음악, 가극음악, 무용음악, 합창, 독창 등 높은 수준의 음악작품들을 창작하였으며 조선족전통음악 전승과 보급 및 인재양성에서 걸출한 기여를 하였다고 인정했다. 부고는 이어 길림성에서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는데 이는 길림성음악계의 거대한 손실이라면서 우리 모두 비통을 힘으로 바꾸고 앞세대의 직업정신을 전승하면서 길림성의 음악사업을 위해 힘을 이바지하자고 적었다.
한편 박서성음악가의 유체고별의식은 7월 20일 오전 9시 30분 연길시장의관에서 펼쳐지게 된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