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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42]장인어른 조득현—현대무용리론의 개척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3월16일 11시05분    조회:2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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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문화를 말하다-42](채영춘편-7)


 

70년대 말에 제가 연변인민출판사 미술편집실에서 일하면서 연변대학 조문학부로 통신대학 공부를 다니게 되였어요. 졸업을 앞두고 5년간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론문답변을 진행하기로 하였는데 제가 그 가운데 들었지요. 그때 제가 선택한 졸업론문이 반문법을 다룬 것이여서 류은종 교수님을 론문지도교수로 모시게 되면서 교수님 댁을 자주 다니게 되였어요.

그런데 하루는 웬 멋쟁이할머니 한분이 그 댁에 와 계시니 수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분이 후날 저의 장모님이 될 분이였어요. 이렇게 류은종교수와 장모님의 모의로 저와 조득현선생님의 셋째 딸 조현희씨가 만나 1979년에 결혼하게 되였어요.

1979년 결혼식에서 장인어른께 술을 부어 올리는 채영춘과 조현희 부부.

결혼전 조득현선생님에 대한 저의 풋인상은 중국의 저명한 발레무용가 그리고 연변예술학교 부교장, 이런 정도로 알고 있었을 뿐이였어요. 결혼 후 장인어른과 가깝게 접촉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어요. 80년대초에 장인어른의 저서《농악무》가 연변인민출판사 출판선제에 들어가면서 제가 장정 디자인, 삽화제작을 전담하게 되였지요.

자연히 장인어른의 프로필에 관심이 가게 되였어요.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이‘중국 제1대 무용예술가, 무용교육가, 무용리론가, 연변예술학교 창시인’이라는 신분이였지요.

장인어른은 1913년 9월, 조선 평양의 가난한 한 선비의 아들로 태여나 1931년 평양 승인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어요. 1936년-1938년에 할빈쏘련발레단 발레배우였고 1939년 -1947년 할빈교향악단 발레단 배우였어요. 1947년-1948년에는 중국인민해방군 할빈 위수구 사령부 제3지대 선전대, 할빈민족사무처 문공단 무용교원 겸 안무가였어요. 1948년 주덕해동지를 따라 연변에 와서 연변가무단 부단장, 연변예술학교 개교시 부교장을 력임하였지요.

《농악무》책자를 편집하면서 보니 장인어른은 항간에서 농사와 관련된 년중놀이로 돼 있는〈상모춤〉을 무대화한 분이였어요. 제가 이 책의 표지설계와 책 속의 삽화 제작을 맡은거지요. 농악무의 여러가지 기본동작을 삽화로 완성하자면 일단은 해당되는 무용동작을 사진으로 담아내야 했어요. 그래서 사진촬영을 위해 연변가무단의 연기자들를 모시고 모든 동작을 장인어른의 요구에 따라 촬영했지요. 그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제가 삽화로 재창작을 했어요.

1957년 조득현선생의 가족사진.

이 책에 실릴 소도구와 의상, 기본동작 삽화가 100여폭은 잘될 것 같아요. 이것을 완성하다 보면 아무래도 관계되는 사료를 찾게 되고 장인어른과도 자문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이렇게 이 책이 완성되여 1981년 1월에 정식 출간되였지요. 장인어른의 첫번째 저서는 이렇게 나오게 되였어요. 저서편집에 참여하면서 장인어른의 무용생애에 대해서 처음으로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죠.

그리고 두번째는 저의 처제 조성희가 방금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연변문예’잡지사에 배치받아 갔는데 아버님과 관련된 수필 한편을 썼어요. 제목이 〈다시 찾은 사진〉입니다. 1953년 전국문련대표대회에서 장인어른이 전국의 문학예술계 대표들과 더불어 모주석의 친절한 접견을 받는 장면이 담긴 아주 귀중한 사진이지요.

그런데 이 사진이 지난 문화대혁명 때 분실되였더랬어요. 장인어른도 문화대혁명 때 숱한 고생을 했어요. ‘반동학술권위'요, 예술학교 부교장이니 당연히‘집권파'로 몰리여 집도 털리고 했는데 그 과정에 책이랑 이 사진도 분실된 것이였지요.

문화대혁명 후 정책락실을 하면서 가무단쪽에서 어떻게 요행 이 사진을 찾게 되여 우리 장인어른한테 되돌려 왔어요. 그래서 처제가 이것을 기본 단서로 〈다시 찾은 사진〉이란 수필을 쓴 것이였지요. 사진이 나오게 된 경우를 쓰면서 주요하게는 아버님의 파란 만장한 무용생애, 아주 짓밟혔다가 다시 소생한, 새봄을 맞게 된 과정을 담았어요.

1953년 9월, 전국문련대표대회에서 대표들과 함께 모택동 주석의 접견을 받고 있는 조득현(오른쪽 두번째).

처제가 완성된 원고를 저더러 한번 봐달라고 부탁하길래 그 원고를 읽으면서 저도 처음으로 이 사진을 봤어요. 아시다 싶이 이 사진은 오늘날 우리 조선족사회는 물론 중국에서도 상당히 브랜드로 각인된 사진이 아니겠는가 생각되지요. 이 사진에는 중국 문학계의 심한빙, 미술계의 동희문과 같은 분들이 한자리에 계시면서 마침 장인어른이 모택동주석과 악수하는 순간에 촬영사가 샤타를 누른 것이였어요. 아주 소중한 사진이‘탄생'한거지요.

그때 처음으로 이 사진을 보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어요. (우리 조선족가운데도 이런 인물이 있었구나! 그 인물이 바로 장인어른이시구나!).

1997년 두집 사돈들이 함께 남긴 기념사진(왼쪽 조득현 리미건 부부).

장인어른 조득현선생님은 저의 부모님과도 묘한 인연인 것 같아요. 장인어른과 저의 선친은 모두 1913년생이고 장모님과 저의 어머님 또한 같은 해 동갑이니 참 드문 일이지요. 워낙 옛적에 문학예술계 모임에서 자주 만나며 가깝게 보내던 사이셨는데 사돈이 된 다음 더욱 화기애애하게 지내셨지요. 타계하신 후에도 두집 부모님들은 사이좋게 경도릉원 명당에 가지런히 모셔져 있으니 이런 인연이 어디 있겠어요?

저한테 각인된 장인어른의 형상은 연변이나 조선족 범주를 벗어나 중국의 제1대 무용예술가 그리고 중국조선족무용예술의 개척자, 무용예술교육의 정초자로서 너무나 대단한 분이셨지요. 특히 발레에서는 중국에서 인정하는 권위자였어요. 쏘련무용 연구소는 전 중국치고 할빈에 밖에 없었는데 쏘련무용가에게서 직접 발레를 배운 분이니 경력이나 뭐나 중국에서 굉장히 인정받는 발레무용가였지요.

1954년 발레 훈련을 하고 있는 조득현선생(앞으로 세번째).

장인어른은 생전에 중국무용가협회 길림성분회 주석, 중국무용가협회 상무리사, 중국 무용가협회 고문 그리고 중국무용리론연구위원회 고문으로 계셨으니 길림성은 물론 중국무용계의 권위자의 한사람이였지요. 발레같은 쟝르는 중앙의 권위급에서도 우러러 모시는 분이였지요. 또한 전국정협 제5기, 제6기의 상무위원이니 중국조선족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였어요.그리고 제7기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이였어요. 이처럼 장인어른은 전국 문예계에서 명망이 높은 분이였죠. 그런 토대가 닦아졌기에 장인어른이 퇴임한 후에 김태갑선생님, 리승숙선생님이 차례로 그 뒤를 이어가게 된 것이지요.

제가 본 장인어른은 무용리론연구로 한가할 사이가 없이 하루종일 서재에 붙어 계시는 대학자이셨어요. 늘 과묵하시고 세상일에 관심이 없으신듯 하다가도 무용과 관련된 화제만 나오면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일변하시며 연구학자다운 일가견을 격정적으로 터치곤 하셨지요.

장인어른의‘수행비서’역을 맡고 계신 저의 장모님은 일어가 프로수준이셨고 아주 박식하고 지적인 분인데 장인어른이 일본이나 미국의 무용계의 초청으로 국제심포지음에 참석하실 때면 직접 통역을 맡아나서기도 했답니다. 장인어른이 과묵하신 것과 반대로 장모님은 굉장히 쾌할하신 분이셨죠.

실기수업의 한장면(1979년).

장인어른의 수많은 이야기도 거의 다 장모님한테서 들었어요. 장인어른은 소년시절부터 꿈이 많으셨는데 테너가수가 되려고 모란봉 솔밭에서, 대동강기슭에서 목청을 틔우고 하였는데 발성법과 선생의 지도가 없이 맹목적으로 련습한 탓에 후두염에 걸리고 하여 그 꿈을 접었다고 했지요. 그리고 롱구도 아주 잘해 학교 인기 선수로 활약하였답니다. 그가 링에다 뽈을 넣을 때면 멋진 무용동작까지 창의적으로 곁들여 뽈을 넣 군 하였는데 관중들이 그렇게 절찬했다고 하였지요.

그러다가 쏘련인이 꾸리는 무용연구소에 발레배우로 가게 되는데  딱 1명이 뽑혔다고 했어요. 그가 열심히 회전도 하고 점프를 하며 훈련을 할 때 쏘련무용전문가가 무용을 한지 몇년이 되는가고 묻더래요. 금방 무용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 하니 믿을 수 없다며 꼭 몇년은 한 사람같다고 단정짓더라는 것이였지요.

1991년 조득현선생은 도꾜국제심포지엄에서 표현법에 대하여 강의를 하였다.

그렇게 뛰여난 재질을 익히고 할빈교향악단의 발레단에서 발레배우로 그것도 솔로로 활약을 하였지요. 1945년 광복이 나면서 교향악단 발레단이 해산되는 마지막 기념 공연이 있었대요. 마침 그때 장인어른이 다리를 크게 상하여 다른 사람이 대신 솔로역을 맡게 되였답니다. 리허설 현장에 가서 대역으로 뽑힌 그 사람에게 무용동작을 가르쳤는데 통증을 완전히 잊고 완벽하게 동작을 가르쳤대요. 그참에 옆에서 재삼 권고하여 결국 장인어른이 정식무대에 나서게 되였는데 아주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했어요. 그 솔로가 로씨야인이 아니고 동양인 조선족이 이뤄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많이 감탄을 했지요.

장인어른도 후날 그 일을 두고 생리학적 차원으로 무용리론을 연구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정신적인 것이 생리적인 것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그 현상을 〈표현예술〉리론에서 적고 있었어요.

장인어른의 생애를 보면 정말 당신의 명성에 걸맞게 굵직굵직한 큰일들을 일궈내고 성사시켰어요. 1954년도 그때는 중국전역에 무용학교가 없었어요. 북경에서 무용학교창립을 준비하는 단계에 우리 장인어른을 모셔간 것이였어요. 교원강습반을 좀 지도해달라는 부탁을 해 온 것이지요. 이 정도면 대단한 분이라고 봐야 겠지요.

그리고 1956년도에 중국무용가협회의 쏘련 무용고찰단 고찰인원으로 쏘련에 가게 되였어요. 모스크바, 끼예브, 레닌그라드 등 여러 지역을 견학하면서 주요하게는 쏘련에서 무용인재를 어떻게 양성하는가 하는 양성체계를 고찰하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장인어른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연변의 무용이 오랜 력사를 거치면서 민간무용을 발굴, 정리한 토대우에 창작공연을 펼치왔고‘가무의 고향'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게 되였다. 하지만 앞으로의 발전을 제대로 기하자면 정규화 학교가 있어야 한다. 이제 미래지향적으로 무수한 민족무용인재들을 양성, 발굴해야만 더 많은 인재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서 우리 민족 무용을 전승할 수 있다.”

그리하여 주덕해 초대 주장과도 여러 차례 토의하고 전국정협회의에 가서는 제안으로 상정하였으며 또 주덕해 주장과 함께 수차 중앙에 찾아가 예술학교 창립건을 제의하시여 끝내는 1957년에 연변예술학교가 창립된 것이였지요. 장인어른은 연변예술학교 창립에 직접적인 공헌을 한 공신이였어요.

1985년 연변문예공연대의 출국공연 협상차로 미국 로스안젤스에 도착(왼쪽 세번째).

1985년 장인어른은 초청을 받아 미국을 방문하게 되였는데 그 때 연변예술학교 미국방문공연을 주선하고 성사시켰어요. 그리하여 연변예술학교의 미국방문공연은 우리 나라 개혁개방이래 소수민족예술단으로서는 제일 처음 외국방문 공연을, 그것도 미국방문공연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번 미국행에서 연변문련의 2명 전문가를 시카코 바이올린제작학교에 류학보내고 연변병원의 2명 연구생을 시카코병원에 연수를 보내는 일을 성사시켰어요.

장인어른은 무용가로서 〈농악무〉,〈활춤〉등 무용극과 시리즈무용, 쌍무 다수를 창작하였으며 〈조선족무용의 특점〉,〈창작법〉등 수십편의 론문을 발표하였어요. 저서로는 《농악무》 외에도 생리학을 기초로 한 배우의 표현에 대하여 저술한 《표현방법론》을 완성하였어요. 《농악무》는 20세기 중화민족경전작품의 하나로 선정되였고 길림성 제5기〈장백산문예상〉특별상을 수상하였어요.

장인어른께서 민간예인 하태일과 같은 민간의 농악무전승인을 연변가무단의 상모춤 지도교원으로 모시고 각종 연구를 곁들이며 시작한 현대무용리론의 개척자로서의 노력은 평생을 관통하였지요. 퇴직 후에도 조득현 무용심포지음, 조득현학술세미나가 여러번 있었고 이러한 학술모임을 통하여 많은 안무가를 양성했지요.

장인어른은 평생을 무용리론연구에 전념해오셨어요. 당신의 일생연구의 결정체인 《표현방법론》은 림종에 이르러서야 저술을 마무리하시고 출판사에 교부했어요. 이 책이 출판되자면 시간이 퍽 걸리게 되는데 장인어른이 눈을 감기전에 책의 형태라도 보여 드리려고 제가 부랴부랴 표지설계안을 내놓고 디자이너의 손을 빌어 《조득현 표현방법론》 디자인을 완성하였어요. 급히 규격을 뽑고 책갈피를 만들어 갖고 장인어른의  병실로 달려 갔지요.

조득현선생과 그의 작품들.

장모님도 꼭 이 책을 보여드리려고 혼미상태에 있는 장인어른을 흔들어 깨웠어요. 운명하기 전에 딱 한번 눈을 번쩍 뜨는 회광반조현상이 생기는 그 순간에 저는 '특제'된 책을 장인어른 눈 앞에 딱 들이댔어요. “아버님, 이 책이 나왔어요!” 표정은 없으나 장인어른의 눈길이 이 책에 와 멈추더니 그대로 눈을 감으시는 것이였어요.

“아, 내 책이 세상에 나왔구나!” 아마 그런 마음을 품고 저세상으로 갔으리라 생각돼요. 그때가 2002년 2월 12일이였어요.

지금까지 중국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무대표현에서 심리학을 토대로 방법론을 제기한 연구론문은 있지만 생리학을 토대로 제기한 무용표현방법론은 공백으로 되고 있다고 하셨어요. 장인어른은 바로 이 점을 겨냥하시고 일생동안 연구를 해온 것이지요.

장인어른의 탄신 100돐을 기념하여 《조득현과 그의 무용예술》이라는 책이 출판되였고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교정에 조득현 동상을 모시게 되였어요. 장인어른은 중국에서도 인정하는 무용예술의 개척자, 그리고 평생을 무용리론에 투신한 연구학자였지요. 세계무용사에서도 공백으로 되고 있는 생리학을 기초로 한 무대표현연구가 장인어른이 건재해 계셨더라면 더욱 완벽하게 보완될 수 있었겠는데 아쉽게 돌아가셨으니 후배들이 계속 그 연구를 지속해 나아간다면 우리 조선족무용사는 물론 중국무용사에서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김성걸 안상근 김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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