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대형련재]《한락연을 추억하여》(4)한락연 탄신 120주년 중국예술관 소장 한락연작품전 서언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9월24일 09시55분    조회:115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오위산(吴为山, 중국미술관 관장)

동쪽에서 서안으로부터 시작해 서쪽으로 로마에 이르는 ‘비단의 길’은 일찍 서한시기부터 동서방의 무역과 문화 왕래의 통로였다. 13개 왕조를 거쳐 동서방 문화의 충돌과 교류를 통해 여러 민족의 풍부하고 커다란 문화를 키웠다. 20세기 40년대, 많은 문화사업일군들이 다시 ‘비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부 고원의 큰 사막과 산천의 동굴 사이를 누비며 중화문화의 원천을 탐색하고 예술창작 가운데서 민족의 정신을 찾아냈다. 이는 중국예술가들의 문화적인 자성, 자각, 자신을 구현하고 있을뿐더러 중국 당대예술의 발전에 심원한 영향을 일으켰다.

 
한락연의 유화작품〈세느강에서〉

이런 ‘비단의 길’에 대한 탐색 물결 속에서 한락연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락연은 1898년에 길림성 연길현 룡정촌의 한 조선족가정에서 태여났다. 한락연은 예술가이면서 또 미술계의 제일 첫 공산당원이다. 그는 오래동안 당의 조직, 련락과 정보 사업에 종사했다. 이 두개 신분외에도 한락연은 또한 학자이다. 그는 계통적으로 키질석굴 예술을 발굴 연구하고 정리한 제일 첫 중국화가이다. 한락연의 세가지 신분은 그의 짧고도 전기적인 일생을 구축했는바 그의 인생은 예술의 인생일뿐더러 또한 리상으로 충만된 혁명의 인생이였다.

예술가로서의 한락연은 일찍 상해미술전과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929년 그는 홀몸으로 프랑스로 류학을 떠났으며 그 곳에서 계통적인 회화훈련을 받았다. 한락연은 심양에서 동북의 제일 첫 사립미술학교인 봉천미술전문학교를 세웠고 항일전쟁이 발발한 뒤 예술을 무기로 항일전쟁에 참가했다. 그는 동북구망총회 간행물 《반공》 잡지를 위해 표지를 창작했고 무한에서 저명한 황학루대벽화 제작에 참여했고 또한 전선기자의 신분으로 전선 촬영창작도 했다.

1945년 이후, 서북 대지를 전전하던 그의 발자욱은 감숙, 청해, 신강에 남겨졌다. 한락연은 예술창작과정에서 현지인들의 풍속습관, 생활상태를 진실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했으며 아울러 서북지역의 자연풍모를 생동하게 그려냈다.

이 시기는 한락연의 창작이 가장 집중되고 가장 풍부하며 또한 가장 성과를 거둔 시기였고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이런 작품들은 운필이 가뿐하고 류창하며 화면이 해맑아 랑만주의 정감으로 충만되여있다.

근대 제일 첫 패의 ‘비단의 길’ 예술 탐색자인 한락연의 예술창작이 구현하고 있는 력사적 의의와 현실주의 정신은 20세기 상반기의 진보적인 예술사조를 대표하고 있다. 그의 예술탐색은 중국예술의 발전에 심원한 영향을 끼쳤고 심지어 당대의 예술가들도 그 혜택을 받고 있다.

고고학 사업일군으로서의 한락연은 투르판, 구처, 카스 등 여러 곳의 유적을 발굴하는 데 참여했으며 우리 나라에서 키질석굴을 발굴하고 연구하고 정리한 제일 첫 사람이다. 키질에서 고찰할 때 한락연은 석굴벽화 속의 화려한 색상 혹은 비천제재의 류창한 선에 근거해 창조적으로 유화 혹은 수채화를 선택하여 모사를 했는데 키질석굴의 다양한 예술특색을 생동하게 복원했다.

혁명가로서의 한락연은 1919년 고향에서 항일운동에 참가했고 1923년에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에 참가했다. 1924년 그는 당조직의 파견을 받고 동북으로 갔으며 동북 조기 건당의 지도자중의 한사람이다.

동북에 있는 기간에 그는 사진관과 미술교원의 신분을 엄호로 하여 정보소를 세우고 중국공산당 6차 대표대회 대표들을 비밀리에 쏘련으로 호송했다. 기독교청년회의 활동과정에서 염보항을 알게 되였고 그와 평생의 절친으로 되였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기간 그는 회화예술을 련마하는 한편 국제반파쑈투쟁에도 적극 참가했다. 《프랑스석간》 기자의 신분으로 양호성을 취재했고 중공 프랑스지부에서 선출한 대표로 되여 양호성을 향항으로 호송했다.

그는 리제심이 령도하는 당정위원회에 참가했고 전선 소장 지도원의 신분으로 진동남(晋东南) 등 지역을 순찰하고 동북항일구망총회 사업에도 참가하여 적극적으로 항일선전에 참가했다. 서북 고찰 기간, 그는 중국공산당이 장래에 서북을 해방하는 전기 준비 사업임무를 짊어지고 장치중, 조수산, 도치악, 포르한 등 서북 국민당 군정요원에 대한 통일전선사업을 비밀리에 전개했다.

1947년 한락연은 키질석굴에 대한 두번째 고고학 고찰을 마치고 우룸치에서 란주로 돌아가던 중 비행기사고로 조난당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 렬사로 추인되였다.

1952년, 한락연의 미망인 류옥하녀사는 한락연의 작품 135폭을 무상으로 나라에 기증했다. 작품들은 여러번 전전하다가 1962년에 중국미술관에 전부 소장되였다.

이런 작품들은 시대의 경전으로 되였고 미술관에서는 여러번 한락연선생을 위해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전시회는 한국, 오문과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도 전시되여 한락연선생의 예술창작과 심미리상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올해(2018년)는 한락연 탄신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이를 계기로 한락연기념전시회를 펼치려 한다. 전시회는 혁명과 예술인생, ‘비단의 길’ 고고와 ‘비단의 길’ 사생 세개 부분으로 나뉘여지는데 우리는 한락연 연구가 끊임없이 발전한 토대 우에서 더욱 전면적이고 더욱 깊이 있는 전시를 하려 한다. 이로써 그의 혁명예술 인생을 펼쳐보이고 중화민족의 문화와 중화민족의 해방을 위해 한 한락연선생의 중요한 공헌을 기리려 한다.

/번역: 《길림신문》 최승호기자

/사진 민족출판사 제공

파일 [ 1 ]

Total : 1576
  • 우리는 하나다 -세계조선족문화절 주제가가 만들어지다   손에 손 잡고 부르자 우리의 노래를 정과 정 담아 꽃피우자 우리의 사랑을 이쪽에서 불러도 아리랑 아리랑 저쪽에서 불러도 아리랑 아리랑 훈민정음 소리로 노래를 엮어서 찬란한 우리의 문화를 빛내가자 진달래꽃 빛으로 인생길 밝히며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 2020-01-02
  •     최근 중앙방송 3 채널의 “쟁쟁한 메아리(回声嘹亮)”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조선족 가정이 출연해 우리 민족의 전통 민요인 아리랑을 불러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12년부터 중앙텔레비전방송국 3채널에서 방송된 ‘쟁쟁한 메아리(回声嘹亮)’라는 프로그램은 유명한 예술인이나 사회 각...
  • 2019-12-31
  • 27일,  제1회《로년세계》 ‘설봉컵’생활수기 콩쿠르 시상식이 연길 국제호텔에서 있었다.    이번 공모에는 총 150여편에 달하는 응모작품들이 접수, 그중 33편을 선정해《로년세계》잡지에 게재했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 대상 1명, 금상 2명, 은상 4명, 우수상 8명, 가작상 4명을 선정했다...
  • 2019-12-27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문화를 말하다-31](림원춘편-3) 1960년도에 연변대학을 졸업하면서 제가 연변인민방송국에 가게 되였습니다. 방송국 문예부에 가게 되였는데 왜서 거기에 갔는가 하면 방송국에서 기자로 일하면 취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내가 다니면서 우리 민족에 대해 리해하고 그들의...
  • 2019-12-25
  •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 −《청년생활》 창간 40주년에 부쳐 장수철(《청년생활》 주필)   《청년생활》이 창간 40주년을 맞게 되였다. 기나긴 인류의 력사에서 40년은 손가락 한번 튕기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인생에 40년이 몇번 있을가? 더구나 격변과 격동의 시대를 거쳐온 《청년생활...
  • 2019-12-25
  • "한번 정법대에 들어서면 평생 정법대인인 것이고, 한번 정법대와 맺은 인연은 정법대와의 평생 연분인 것이다(一进法大门,一生法大人,一结法大缘,一世法大情.)" 중국정법대학의 비준을 거치고 학교학우회판공실과 일본학우회준비위원회에서 일년 가까이 세밀주도한 준비 끝에 2019년 12월 15일 중국정법대학 일본학우회...
  • 2019-12-19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문화를 말하다-30](림원춘편-2) 제가 1950년도에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1953년 여름, 그러니까 저는 초중을 2년반을 다녔습니다. 원래는 2년제로 겨울방학 후에 승학하였는데 제가 다니던 해에 여름방학이 끝나서 승학하는 제도로 고치다나니 저는 2년반을 다니게 된 것입니다. 한...
  • 2019-12-19
  • 지난 15일,일본간사이조선족총회 현판식 및 2019년 송년회가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호텔에서 성대히 열렸다. 협회 골간성원과 귀빈 단체사진 이날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허영수 회장,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가나야마 장호 명예회장, 간사이 중화총상회 아키야마 히카리 부회장, 재일 화인권 간사이회(在日华人圈关西会)...
  • 2019-12-19
  • 일본간사이조선족총회 현판식 및 2019년 송년회가 오사카에서 성대히 열려   단체사진 귀빈과 협회골간성원들 사진       지난 12월15일(일)에 일본간사이조선족총회(http://kcj.korean.net) 현판식 및 2019년 송년회가 오사카 도톤보리호텔에서 성대히 열렸다.     당일 주오사카...
  • 2019-12-18
  • 글 / 고향련    고향련 약력 : 2000.4 일본유학. 2000.4~2002.3 도쿄아카데미-일본어학교(東京アカデミー日本語学校). 2002.4~2006.3 중앙대학교 상학부 경영학과(中央大学 商学部 経営学科). 2006.4~2009.3 중앙대학교 대학원 상학연구과(中央大学大学院 商学研究科). 2009.4~ 현재 전원장비메이커 반도체영업부...
  • 2019-12-16
‹처음  이전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