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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71]인격적 미와 ‘판룡정신’의 핵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0월23일 08시35분    조회: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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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71](정판룡편6)

구술자 김호웅: 연변대학 교수,박사생 도사,정판룡의 제자,작가.

여섯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판룡교수의 인격적 매력입니다.

좀 풀어서 이야기한다면 바다 같은 흉금과 유머와 위트, 이것이 아마 정판룡선생의 인격적 매력인 것 같아요. 김병민선생은 정판룡교수를 두고 그의 인격의 핵심에는 인도주의에 바탕을 둔 호남아의 자유분방한 기질과 성격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선생은 분명 모스크바의 류학생답게 로씨야의 아름다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봅니다. 전반생은 적어도 로씨야의 표도르대제, 또 앞에서 이야기했다싶이 로씨야의 12월당인들, 마까렌꼬 이런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1997년 서재에서.

표도르대제는 로씨야의 황제인데 로씨야의 락후성을 탈피해서 서구화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200여명의 유럽 순방단을 이끌고 독일,프랑스 등 유럽 각국을 순방했지요. 그런데 황제의 신분으로 간 것이 아니라 시종의 신분으로 간 거예요. 보통 막료들과 함께 잠자리를 같이 하고 온갖 일들을 다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럽사회에서는 그를 로씨야 순방단의 보통군관인가 했지요. 표도르대제가 워낙 키가 크고 잘 생겼던 모양이예요. 멋진 군관정도로 생각했던 거지요. 맑스도 그 당시에 보면 세계적인 훌륭한 황제로 강희황제와 표도르대제를 꼽았거든요. 로씨야를 서구화시킨, 그리고 서쪽으로 많은 령토를 확장했던 훌륭한 황제로 인정하는데 정판룡선생은 그의 평민적인 성격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1989년도 일본에서 동훈 김용식선생과 함께.

그리고 쏘베트시대의 위대한 교육자 마까렌꼬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선생을 보면 아주 평민적이고 성품이 소탈하고 널리 친구를 사귑니다. 뽐내거나 그 어떤 틀에 갇혀서 전전긍긍하는 그런 타입이 아닙니다. 언제나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심지어 일국의 총리나 부장급 대신들과도 유머를 나눌 수 있고 시골의 촌부들과도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있는 그런 분이지요. 제가 한국에 몇번 모시고 간적 있는데 한국의 대학교 총장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재단의 리사장, 일반 교수들도 정판룡선생을 “아우, 아우” 하는 거예요. 이를테면 전남 금호문화재단에 갔더니 이강재라고 비쩍 여윈 어른이 계시는데 술만 마시면 정판룡선생의 목을 끌어안고 “아우, 아우” 하는 거예요. 제가 한양대에 1년 있었는데 이종은교수 역시 “아이구, 중국에 정판룡을 내놓고 사람이 있어? 내 아우가 최고지, 최고지…”하면서 서로 호형호제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거예요. 제가 호텔에 돌아온 후에 까놓고 이야기를 했어요. “선생님, 오늘 이강재 부리사장한테서 받은 산문집을 내놓으십시요.”“왜?” 하면서 내놓더군요, “여기 보십시요, 작가략력을 보십시요. 선생님보다 한살 아래입니다. 또 이종은 교수는 제가 한양대에서 모시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만, 역시 선생님보다 한살 아래입니다. 그런데 ‘아우, 아우’하는데 (왜)‘예, 예’ 합니까? ”그랬더니 “이 친구를 봐라! 이 친구를!” 하고 저를 보고 “한국에 와서 형님이 되지 마, 한국에서는 형님이 술을 사는 법이야, 우리 연변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밥을 사고 술을 살 돈이 어디 있어? 형님, 형님하면 간도, 쓸개도 다 빼주는 게 한국이야…” 아,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훌륭한 분이지요.

한국 고려대학교 홍일식 총장과 함께.

1990년대 중반에 우리 연변대학에 한국의 최고 교수, 최고 국문학자로 인정받는 조동일교수라는 분이 오셨어요. 도합 열두번 강의했어요. 명강의인데 우리 연변대학의 권철, 정판룡, 허호일, 리해산 등 그 교수보다 나이가 더 많은 교수들이 열두번 다 앉아서 강의를 경청했어요. 이분이 정판룡선생이 세상을 뜨신 다음에 연변에 오셨어요. “정판룡선생 그분을 좀 만나뵙고 사과를 드릴 일이 있는데…” 하고 말해서 “무슨 사과 드릴 일이 있지요? 몇 년전에 이미 세상을 뜨셨습니다” 했더니 “아차! 한발 늦었네.” 하더군요.

왜 사과를 드린다고 했냐 하면 처음 연변에 오셨을 때 열두번 강의를 하셨다고 했는데 어느 한번은 정판룡선생께서 자기가 쓰신 책 한권을 드렸어요. 이튿날 조동일선생이 제일 앞자리에 앉아 계시는 정판룡교수한테 슬슬 다가가더니 “정판룡교수, 어제 주신 책을 다 읽었거든요.” 했어요. 이만큼 두터운 책을 드렸으면 그걸 하루저녁에 다 읽었다는 이야기가 벌써 실례지요. 한술 더 떠서 한다는 얘기가 “정판룡교수, 그런데 그 책에는 왜 축사, 서문이 그렇게 많습니까? 선생님은 축사교수입니까?” 이렇게 당돌하게, 버르장머리’ 없이 이야기를 한 거예요. 저 같으면, 보통사람이라면 발끈 성을 내지 않겠어요? “그 책을 도로 주시요” 할텐데 정판룡선생이 그 자리에서 “여보시오, 조교수, 연암 박지원의 문집을 봐도 맨 발문이고 서문이고 축사입디다. 그래도 연암 박지원은 위대한 문학자가 아닙니까?” 이렇게 유머를 구사하시는 거예요. 조동일교수가 할말이 없게 되였습니다. 참으로 정판룡선생은 머리도 좋거니와 이런 난감한 장면을 슬기롭게 넘기는 아량과 지혜를 갖고 있었어요.

연변대학에 온 미국청년방문단과 함께.

김학철선생은 정판룡선생보다 15년 선배입니다.

김학철선생이 《20세기 신화》라는 장편소설을 썼어요. 그 소설은 한국에서 출판되였지요. 한국에서 출판되니 좀 문제가 된 거예요. 그런데 일부 좌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에서 부득부득 그 책을 가져다가 읽어 봤어요. 이상한 구절들은 다 밑줄을 그어 가지고 정부에 보고를 한 거지요. 이거 반동소설인데 한국에서 마음대로 출판을 했다, 그러니까 이걸 감정을 받아야 하겠는데 아무래도 연변대학의 최고교수인 정판룡교수께 의뢰했던가 봐요. 보라고 하니 정판룡선생이 뭐라고 하겠어요?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아, 그건 소설도 아닙니다. 필 가는대로 그 자신의 경력을 쓴 거지요.” 그런데 이 말이 와전된 거예요. 김학철선생의 귀에 들어 간 거예요. “내 소설을 소설도 아니라고 혹평을 하다니…” 김학철선생이 발끈 노했습니다. 그래서 《연변문학》에다가 우리 문단의 최고분인 정판룡선생에게 공개편지를 쓴 거예요. 정판룡선생을 대단히 비난한 거지요. 우리 제자들이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래서 정판룡선생을 찾아가서 “선생님,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없었다면 선생님이 변명하고 반론을 제기해야 할 게 아닙니까?”그러니 정판룡선생이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면서 하는 이야기가 이러합니다.

“깜짝 소리를 내지 말라.그분은 나보다 15년 선배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분은 일제시대때 한다리를 잃었고 중국의 력차의 정치운동에 얻어 맞아서 22년동안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았다. 내가 그분한테 화살을 날려야 되나? 까딱 말을 말라.”

그래서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고 우리가 말을 꺼냈다가 도로 찾았지요.

1996년 김학철(앞줄 가운데 사람)선생과 함께.

그런데 림종을 앞두고 선생께서는 작가일화를 썼는데 김학철편을 써가지고 이를 《장백산》잡지사의 남영전사장에게 보냈어요. 남영전선생이 그 글을 보고 큰 감동을 먹은 거지요. 우리 문단의 두 어른이 크게 한판 붙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정판룡선생은 아무 내색도 내지 않고 김학철선생의 작가일화를 쓰지 않았는가. 그 원고를 연길의 김학철선생의 아드님한테 보인 거지요. 김학철선생의 아드님이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님께 읽어 드렸어요. 김학철선생께서 눈물이 글썽해지면서 “과연 정판룡은 큰 그릇이다. 해양아, 내가 죽더라도 정판룡선생을 따르고 그분한테서 많이 배워라.”그러신 거예요.

김학철, 조룡호, 문정일, 조남기과 함께.

저물녘이 되였는데 김해양선생이 저한테 전화를 걸어 왔어요. 잠간 만나자는 거예요. 그리고 정판룡선생을 잠간 뵙자는 거예요. “그럼 형님, 연변대학 정문앞에 오세요.” 했더니 이제 이 얘기를 하는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정판룡선생은 큰 그릇’이라고 했어요. 그분을 따르고 배워라 했어요.” 그러면서 “이 말을 정판룡선생한테 꼭 전해 주시오.” 해서 정판룡선생한테 곧이곧대로 전해드렸지요. 이튿날 아침에 병실에 가니까 사모님이 나오더니 잠간 나를 보자면서 끌고 밖으로 나가는 것이예요. “엊저녁에 자네가 왔는데 무슨 얘기를 했기에 정판룡선생이 온밤을 궁싯거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몹시 흥분한 상태더라.” 그래서 내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하고 자초지종을 여쭈었더니 왕유사모님께서 내 어깨를 툭 치면서 “얘기를 잘했어요. 두 량반이 이젠 마음을 풀고 손 잡고 하늘나라에 가게 됐어요.”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사실은 두분이 화해를 하고 사회의 이런저런 소문을 다 불식하고 손을 잡고 하늘나라에 간 거지요. 보니까 정말 흉금이 바다 같은 분이지요. 김학철선생을 높은 산이라고 한다면 정판룡선생은 깊은 호수고 바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정판룡문학비 제막식.

그리고 정판룡선생님을 보면 굉장히 현실주의자예요. 리상주의적인 면도 있지만 구체적인 문제는 가장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활달하고 실사구시적이고 언제 어디서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제자 또는 후배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더라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정선생을 찾아가기 좋아하고 자기 아픔, 자기 고민을 터놓기 좋아하지요. 그러면 정선생은 하나하나 실제적으로, 그야말로 약이 되는, 좋은 조언과 가르침을 주는 그런 분이더라 그 말씀입니다.

정판룡교수와 그의 박사생제자들.

이상 여섯개 편으로 나누어 말씀드렸는데 그럼 판룡정신 의 핵은 무엇이며 정판룡선생한테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이 점에 대해 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정판룡선생은 하나의 성장소설 이며 신화 라고 봅니다. 빼여난 총기과 패기, 지칠줄 모르는 도전정신과 근면성, 그리고 성공의 신화는 자라나는 세대들의 영원한 교과서가 되고 그들에게 무궁무진한 힘을 줍니다. 그래서 이 점을 두고 김관웅교수는 파우스트정신 이라고 했어요. 파우스트는 독일의 작가 괴테가 지은 희곡의 주인공이지요. 학문과 지식에 절망한 로학자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져 현세적 욕망과 쾌락에 사로잡히지만 마침내 잘못을 깨달아 령혼의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지요. 김관웅교수의 비유에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아무튼 영원히 진리를 추구하고 그 어떤 유혹에도 말려 들어가지 않고 초지일관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 이게 정판룡선생의 힘이자 매력이라고 저는 봅니다.

정판룡교수 교육사업종사 40돐 기념모임.

두번째로는 세계문학연구분야에서는 더 말할 것 없고 조선족사회의 진로에 대한 모색을 통해 그야말로 조선족백성들이 우러르는 정신적 수령 으로 되였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가끔 물었어요. “선생님은 모스크바대학을 나왔고 북경에 취직할 수 있었는데 왜 부득부득 연변에 와서 ‘문화대혁명’때 그렇게 고생하고 한평생 이렇게 지냅니까?” 그러면 정판룡선생님은 어떻게 대답했겠어요?

“이늠들아, 내가 북경에 있었으면 기껏해야 재상 노릇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변에 왔길래 연변백성들이 좋아하는  이 되지 않았느냐?”

정판룡문학비앞에서의 정판룡교수 추모식.

이런 얘기로 슬쩍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은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해 평생의 땀이 스며있는 사재를 쾌척해서 정판룡교육발전기금도 만들었습니다. KBS해외동포상 상금이 그때 돈으로 2만딸라입니다. 큰 돈이지요. 이걸 쾌척한거예요. 그리고 약 2년동안 병환에 계셨는데 그때 사회에서, 학교에서, 제자들과 동료들이 조금 돈을 냈는데 그걸 꼬박꼬박 모아두고 있다가 또 10여만원을 몽땅 학교에 바쳐 정판룡교육발전기금으로 쓰게 한 거지요. 이게 쉽지 않은 일이지요. 세상을 뜨기 며칠전에 또 장학생들을 불러 하나하나 장학금을 쥐여주고 공부를 잘해라 하고 부탁했지요. 이러한 교육발전기금, 조선족아동장학회 등을 출범시킴으로써 후대사랑과 기부문화의 전범을 보여준 거지요. 연변대학에서 최초로 사재를 털어서 장학금을 만든 거예요. 지금도 장학금은 계속 지급되고 있지요.

1997년 정판룡교육발전기금회 설립대회.

세번째로는 전략가다운 혜안과 선견지명으로 연변대학의 특성과 우세 및 나갈 방향을 제시했고 현대대학의 리념으로 연변대학을 종합대학으로 끌어올린 연변대학의 명교수이며 걸출한 교육가라는 점입니다. 우리 조선족의  마까렌꼬 지요.

네번째는 압록강을 건너 중국에 온 코리안디아스포라의 후예로서 다문화적인 관점과 흉금으로 조선족사회의 진로를 모색하고 협애한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소수자의 주체적인 노력에 의한 여러 민족의 평등, 공존과 융합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힘을 키워라, 그리고 주류사회 여러 민족한테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라. 가급적이면 존경을 받고 살아라…이것이 바로 정판룡선생이 자신의 몸으로 실천해보인 철학이지요.

연변대학 조문학부 축구팀과 함께.

마지막으로 선생의 평민적인 성격입니다. 아침이면 매일 나와 조깅을 하는데 연변대학 운동장에서 보이라공하고도 롱담을 하고 시골에 가면 시골 아주머니하고도 춤을 추고 제자들과 술자리가 끝나면 2차를 가자고 하는 것이 정판룡교수예요. 또 가면 열심히 춤을 춰요. 제자들을 포근하게 꼭 안고 열심히 춤을 추시는 거지요. 그리고 선생의 18번 은 모스크바교외의 밤〉,허공과 같은 노래인데 마이크를 잡으면 또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그래서 선생은 아주 높은 존재이지만 우리한테는 가까이 다가오는 어버이 같은 그런 존재지요. 특히 이분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유머와 위트, 이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된다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정판룡선생의 이러한 정신은 우리 조선족공동체의 큰 정신적 자산이요,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빛을 뿌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정판룡편 끝)

길림신문 글 구성: 안상근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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