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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90]〈사과배동산에서〉등 고향노래 3부작(허동철편 6)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1월16일 22시24분    조회: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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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90](허동철편 6)

지금은 노래를 록음할 때 가수들이랑 다 방송국에 모셔다 록음을 하지만 그때는 연변가무단을 제외하고는 각 현의 음악작품들은 다 기층 문공단이나 문화관에 내려가 록음하였습니다. 몇십근씩 되는 록음기를 메고 음악편집, 가사편집, 록음사가 같이 따라 가 록음하였습니다.

1981년 안도현 문예일군들의 노래작품을 록음하기 위해 김태종선생님, 정정순 록음사 하고 저까지 셋이서 먼저 명월진 문화관을 찾아갔습니다. 문화관의 일군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며 먼 길을 오셨는데 먼저 안도의 산천을 구경시키겠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이끌고 〈명월구산천가〉에 나오는 "실버들 비껴선 금수강" 언덕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안도현 문예일군들과 함께 있는 허동철(오른쪽 두번째).

지금은 극작가로 불리는 리광수씨랑 〈교정의 종소리〉가사를 쓴 유영호씨, 작곡가 안홍민 등이 앞다투어 안도의 산천경개를 소개하였습니다. 리광수씨는 동쪽을 향해 가리키며 “저기는 토월산이요”또 돌아서서 서쪽을 향해서는 “저기는 명월산이요”, 남쪽을 향해서는 “이룡산(二龙山)이요”하며 흥미진진하게 소개를 했습니다.

그 때 그 이룡산의 모습이 그렇게도 신통하였습니다. 두마리 룡이 머리를 맞댔는데 그것이 또 "금수강"에 비껴 있었습니다. 너무도 감동을 받았던 터라 "밝은 달 걸리여 비끼였나 물이 맑아 비끼였다네”이런 구절을 선택하게 되였습니다.

이 노래를 짓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또 따로 있습니다. 리광수씨가 돌아오면서 하는 얘기가 “안도현은 장백산맥을 끼고 있어 아주 아름다운 산천을 갖고 있지만 벽지라서 많은 간부와 교원들이 외지로 빠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안도현 교육국에서는 교원들은 절대 외지로 빠지지 못한다는 문건까지 발부했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리광수는 이런 사실을 얘기하면서 우리 안도를 위해, 명월구를 위해 노래를 지어달라고 저에게 부탁하는 것이였습니다. 기실 리광수 본인도 가사를 쓰면서 저에게 특히 부탁하니 맘속으로는 기쁘기도 하면서 한켠으로는 마음이 무거워났지요. 그렇게 쓴 가사가 〈명월구산천가〉입니다.

 

〈명월구산천가〉를 처음 부른 가수 박정자.

그런데 저는 〈명월구산천가〉이 노래는 가사보다도 곡이 더 좋고 가사보다도 편곡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최창규선생님이 편곡을 했는데 얼마나 명랑하고 약동적입니까. 곡도 얼마나 참신합니까!

〈명월구산천가〉도 3.8절음악특집프로에 들어갔는데 김태종선생님은 먼저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록음하고는 아무 말도 없던 것이 〈명월구산천가〉를 다 록음하고 록음실을 척 나오면서 저와 록음사를 번갈아 보며 “야- 명곡이 나왔소!”하고 웨치는 것이였습니다. 정말 이 노래는 곡도 신선하고 편곡도 새롭습니다. 가사보다 썩 잘됐습니다.

〈명월구산천가〉는 1981년에 중국레이코더사에서 레이코더에 취입하였는데 저의 작품이 5수가 들어갔습니다. 그 중에는 〈꽃피는 동산〉(허상순 작곡, 송대윤 노래)을 포함하여 〈꽃나비〉(방룡철 작곡, 한국화 노래)도 있고 〈약수동〉(방룡철 작곡, 박정자 노래) 그리고 〈새아침은 우리를 반겨주리〉(최규봉 작곡, 박정자 노래)도 있습니다. 그 때는 레이코더에 취입된다는 것이 아주 희한한 일이였습니다. 아마 중앙방송국 조선어부에서 추천한 것 같았습니다.

국경 30돐 문예헌례활동에서 창작 2등상을 수상한 〈꽃피는 동산〉.

그리고 이 〈명월구산천가〉곡은 다시 편곡되여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 30돐에 대형무용곡으로 사용되였습니다. 〈오래오래 앉으세요〉, 〈꽃밭을 가꾸네〉 이 두수의 곡과 함께. 연길시공원 운동장(경축장)에서 수천명을 헤아리는 남녀로소가 민족옷차림을 하고 이 곡에 맞춰 너울너울, 나풀나풀 춤을 추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였습니다. 그 때 대형무용곡으로 사용된 것은 저와 방룡철선생이 합작한 곡이 세수나 되였습니다. 민요 〈도라지〉, 〈노들강변〉외에는 다른 사람들의 작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하여, 우리 자치주를 위해 저도 힘을 좀 보탰구나 하는 자부심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고향집 옛터를 찾아서.

이 노래가 방송된 뒤 출장길에 기차를 타고 안도역을 지나가게 되였는데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그냥 이 노래를 방송하는 것이였습니다. 야- 저는 그때 정말 자랑을 느꼈습니다. 리광수씨가 저한테 부탁하는 바람에 이 가사를 쓰게 되였는데 정말 리광수한테도 감사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언제 〈명월구산천가〉와 같은 향가(乡歌)를 쓰겠습니까.

〈명월구산천가〉로부터 시작하여 제가 여러 향진의 선전위원들의 부탁을 받고 〈량수진가(凉水镇歌)〉, 〈청수동〉, 〈룡수향가(龙水乡歌)〉를 련속 짓게 되였습니다.

〈량수진가〉는 제가 길림신문사에 있을 때 1989년도 신문발행을 하려고 량수진에 갔다가 진의 김선전위원이 량수를 노래한 가요를 써 줄 수 없는가고 해서 그의 부탁을 받고 쓴 것입니다. 가사에다 량수진의 지명과 바위이름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유서깊은 룡수석에 솟아나는 맑은 샘물

삼복에도 이가 시려 량수라 하였는가

이렇게 시작된 가사는 량수진정부와 인민대표들의 심사를 거쳐 통과된 뒤 역시 방룡철선생이 곡을 붙였는데 량수진 인민대표대회에서 진가로 통과되였습니다.

그리고 또 1986년인가 연변문련의 비서장 박장수선생이 삼합진에 가서 음악창작회의를 하니 참가하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 때는 제가 예술인생의 고향인 연변인민방송국을 떠나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낯선 길림신문사에 갓 전근을 한 때라 심기가 아주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박장수선생이 삼합가요창작강습반에 참가하라고 하니 갈가말가 주저하다가 우선 가고 보자고 길을 떠났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마을을 둘러 보았는데 ‘청수동’이라는 마을에 인공호수가 있었습니다. 인공호수에는 갈래갈래 내물이 모여들었고 또 그 호수에 다리까지 놓인 궁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궁전이름을‘문화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청수동의 맑은 샘물 갈래갈래 에워오니

두메라 이 고장에 배놀이도 별멋이로다

물우에는 공원산이 둥실 솟아

배놀이를 먼저 할가 꽃놀이를 먼저 할가

야 닐리리야 예가 바로 청수동

예가 바로 내가 사는 정다운 고향

 

호수가에 우뚝 솟은 문화궁전대청은

시로봉과 나란히 푸른 물에 비꼈구나

창너머 농악소리 귀맛도 좋아서

아리랑을 불러볼가 도라지에 춤춰볼가

야 닐리리야 예가 바로 청수동

예가 바로 내가 사는 정다운 고향

고향의 평강벌을 찾은 허동철 작사가.

박장수선생은 이 가사를 보더니 “야 명가사가 나왔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이 가사도 또 역시 방룡철선생이 곡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지만 길림신문사에서 신문발행을 총지휘하면서 여러 향진의 선전위원들을 만나게 되였는데 그들로부터 향가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였습니다.〈룡수향가〉도 이렇게 나왔고 역시 방룡철선생이 곡을 붙였습니다.

해란강 푸른물에 룡궁이 솟았더냐

이름도 좋구나 내 정든 룡수평

강물은 논판에 춤추며 흘러들고

샘물은 물독에 노래하며 흘러들어

자랑도 많구나 살기도 좋구나

내 정든 고향아

 

평강벌 넓은 들 풍년새 날아왔느냐

듣기도 좋구나 구성진 벼꽃타령

기름진 이밥은 놋술에 감겨들고

다정한 이웃은 인품도 좋아서

자랑도 많구나 살기도 좋구나

내 정든 고향아

이런 향가들은 가사를 잘 썼다 못 썼다를 떠나서 또 잘 불렀다 못 불렀다를 떠나서 농업일선에서 로고를 마다하고 올리 뛰고 내리 뛰고 하는 기층간부들의 부탁을 달갑게 받아들이고 성의껏 가사를 써서 구슬땀 쏟아가는 농민들과 노래로 소통했다는 점에서, 또는 농사군의 후손으로서 초심을 잊지 않고 근본을 잊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스로도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고향노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사과배동산에서〉라는 노래입니다. 1984년 연변문예분야의 음력설맞이야회가 연길시로동자문화궁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좀 늦게 도착하여 이리저리 둘러보며 설자리를 찾고 있는데 (주당위) 선전부 김영택 과장이 불쑥 나타나 저의 손을 탁 잡으며 (주당위) 리덕수 서기가 지금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였습니다. 리덕수 서기는 옆자리를 가리키며 저더러 앉으라고 하고는 느닷없이 연길현문공단이 중남해에서 공연할 때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불렀는데 도중에 중앙수장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연변을 노래한 가사를 쓰라고 부탁하는 것이였습니다.

 

리덕수 서기의 ‘산수풍경 미술작품전'을 찾은 허동철, 한경자부부.

저를 믿고 맡기는 그 부탁이 한편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가사를 요구하는지 몰라 다소 근심스럽기도 했습니다. 혹시 "아름다운 조국변강 연변이여" "천하절승 장백산이여" 하는 구호식의 가사를 요구하지는 않는지. 무거운 부탁앞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무튼 자기 생각대로, 자기 방식대로 써놓고 보자고 생각하고 쓴 것이 〈사과배동산에서〉입니다.

1.

따사론 봄바람 불어오면

만무나 과원에

아름다운 사과배꽃 활짝 핍니다

아 꽃 피는 동산에서

하얀 사과배꽃처럼

깨끗한 마음도 고이고이 키워갑니다

2.

서늘한 가을바람 불어오면

만무나 과원에

울긋불긋 사과배가 주렁집니다

아- 꽃피는 동산에서

맛 좋은 사과배처럼

시원한 성미도 고이고이 키우며 자랍니다

진달래가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꽃(연변주화로 인정받음)이라면 사과배는 연변을, 우리 조선족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 아니겠습니까. 80년대에 들어와서 중화인민공화국 농업부로부터 연변을 사과배의 고향이라 명명하였습니다.

화룡현 서성진 명암촌 사과배 원예사 최일선선생을 모시고.

저는 가사에서 "하얀 사과배꽃"으로 우리 백의민족을 상징하고 "하얀"으로 우리 백의민족의 깨끗한 마음을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맛 좋은 사과배처럼 시원한 성미도"로 우리 민족 남성들의 호방한 (호매로운) 성격적 특징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완성된 가사를 가지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리덕수서기의 집무실로 갔습니다. 리서기는 가사를 보고 나서 아무런 꺼리낌 없이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오래오래 앉으세요가 나온 뒤 이런 저런 후론들도 있었기에 그 교훈을 살려 이번에는 제가 합평회를 주재(主宰)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얼마뒤 리서기한테서 합평회도 마쳤으니 이제는 그 가사에 곡을 붙여도 되겠다는 련락이 왔습니다. 저는 역시 방룡철선생한테 곡을 맡겼습니다.

얼마 뒤 곡도 나오고 편곡도 마치고 연변방송예술단 방은하의 노래로 록음도 끝냈습니다. 저는 테이프를 끼워넣은 록음기를 들고 리덕수 서기의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리서기는 친히 김성화 문교서기를 모셔와서 같이 이 노래를 듣고는 김서기의 소감부터 묻는 것이였습니다. 김서기는 “제가 듣기에는 참 좋습니다.”라고 하자 리서기는 “제가 듣기에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사과배동산에서〉를 열심히 부르고 있는 가수 장경옥.

‘따사론 봄바람 불어오면…'으로 시작된 이 노래는 공교롭게도 춘삼월에 연변인민방송국의 전파를 타고 울려퍼지게 되였습니다. 몇년 뒤에는 연변가무단의 장경옥가수의 노래(한어, 조선어 두가지 언어로)로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방송되였습니다. 저는 가사의 내용과 억양, 곡의 정서를 잘 소화하고 전달하는 그 감미로움과 표정, 동작까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그 노래를 늘 혼자서 조용히 감상하군 하였습니다.

이 노래는 유명가수들이 서로 부르고 싶어하는 노래로 되였고 이 노래를 위주로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제작한 〈연변은 사과배고향〉이라는 음악특집프로는 또 전국텔레비죤특집프로경연에서 2등상을 수상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이 노래는 지금도 연변의 사과배축제장의 가장 우렁찬 주제곡으로 되였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선후로 작사한 고향노래 〈명월구산천가〉며 〈꽃피는 동산〉,〈사과배동산에서〉이 3부곡은 모두다 히트송이 된 셈입니다.(끝)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사진 영상/ 김성걸 김파 정형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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