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안도현의 꽃차례] 동시를 읽는 겨울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2월10일 07시10분    조회:49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 안도현 시인

윤동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권태응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윤동주는 1917년 중국 룡정에서 태여났고 권태응은 1918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윤동주는 해방이 되기 전에 옥사했고 권태응은 한국전쟁중에 페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윤동주는 1943년 사상범으로 일경에 체포됐고, 권태응 역시 사상범으로 1939년 류학중에 체포됐다. 삶의 리력이 류사하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둘 다 빼어난 동시를 쓰는 시인들이었다는 것.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나는 윤동주의 ‘서시’나 ‘별 헤는 밤’보다 그가 쓴 40여 편의 동시를 더 좋아한다. “넣을 것 없어/걱정이던/호주머니는//겨울만 되면/주먹 두개 갑북갑북”(‘호주머니’ 전문)

겨울에는 이 동시를 혼자 되뇌여본다. 채워지지 않은 빈 호주머니는 힘든 시절을 통과하는 가난한 아이의 표상이다. 다행히 겨울에는 거기에 주먹 두개가 들어간다. 그 모양을 윤동주는 ‘갑북갑북’이라고 썼다. ‘갑북’은 ‘가뜩’의 방언이다. 이 말을 반복하면 마치 눈앞에서 주먹이 움직이는 형상이 그려진다. 비록 현실은 궁핍하지만 주먹 두개를 주머니에 가득 채운 아이는 현실을 비관하지 않는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권태응의 ‘감자꽃’이다. 공부와 놀이가 분리되지 않은 세계에 살던 아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안다. 새삼스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당연한 이치를 이렇게 간명하게 표현한 동시를 나는 만나 보지 못했다. 우리는 그동안 아이들의 눈을 가림으로써 어른들의 거짓과 음흉함을 숨기고 나아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세계가 마치 동심의 고향인 것처럼 왜곡을 일삼았다. 그 결과 우리는 동심으로부터 멀리 떠나왔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해가 금방 뜨자/일터에 간다.//해바라기 얼굴은/누나의 얼굴/얼굴이 숙어들어/집으로 온다.” 윤동주의 ‘해바라기 얼굴’은 렬악한 로동현장에서 일하는 누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권태응도 마찬가지였다. ‘누구 발자국’이라는 동시는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 덮인 동네 앞길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 “실공장에 다니는 이웃집 누나/아마도 새벽길을 갔나 보다.”라고 노래한다. 1930년대 일제는 ‘조선공업화정책’을 펼치게 되고 전국에 방직공장과 실을 뽑는 제사공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 어떤 시인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웃집 누나를 아이의 눈을 통해 읽어 낸 것이다.

윤동주와 권태응은 동심을 가족의 한정된 테두리에 가두지 않았다. 윤동주는 ‘오줌싸개 지도’에서 “돈 벌러 간 아빠 계신/만주 땅”까지 동심의 지형을 확대한다. 이웃에 대한 관심은 권태응의 동시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밥 얻으러 온 사람/가엾은 사람/다 같이 우리 동포/조선사람//등에 업힌 그 아기/몹시 춥겠네//뜨신 국에 밥 한술/먹고 가시오”(‘밥 얻으러 온 사람’ 전문) 요즘처럼 살벌한 세상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마음이다. 우리는 아파트 문을 꼭꼭 닫아걸고 산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권태응을 일찍이 세상에 호출한 이가 도종환 시인이다. 시인은 1997년부터 충주에서 권태응문학제를 열었고, 미국에 사는 선생의 아들을 찾아가 공개되지 않은 육필원고를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2018년에 ‘권태응 전집’(창비)을 간행하기에 이르렀다. 충주시가 권태응문학상을 제정해 해마다 수상자를 격려하고 있는 점도 보기 좋다.

우리는 그동안 동시를 읽는 일에 인색했다. 아이들과 함께 동시를 읽는 어른들이 늘어난다면 훼손된 동심이 조금이라도 회복되지 않을까?

“살구를 먹고는/살구씨 묻고//복숭아를 먹고는/복숭아씨 묻고//울안에 울 밖에/토다닥 묻고//날마다 싹 났나/ 찾아가 보고”(‘살구씨’ 전문) 살구씨와 복숭아씨는 유난히 단단해서 발아시키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오랜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단단한 씨앗에서 싹이 나온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 우리에게 이 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회초리가 된다. 철없는 아이가 철든 어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Total : 1576
  • 화룡시민간문예가협회에서는 자신들의 우세와 특점에 근거하여 활동을 활발하게 벌려 지방의 문화예술사업발전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고있다. 이 협회는 2003년에 건립되였는데 초기에는 몇명의 리사와 회원뿐이였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100여명의 회원을 가진 민간단체로 발전하였는데 회원들은 원 문화계통의 퇴직일...
  • 2013-09-11
  • 신조어 300여개 번역 새로 확정 조선어번역전문가회의 참가자들 《비춰보고 바로잡고 씻어내고 치료하자》(照镜子,整衣冠,洗洗澡,治治病)... 현하 중국의 열점구절이 된 습근평총서기의 지시를 번역전문가들은 최종 이렇게 번역하기로 하였다. 이는 9월 8일부터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열린 중국번역국 주최의 제4회조...
  • 2013-09-11
  • 개막식 중국관상석협회와 길림성공예미술협회, 길림성 장백산송화석연구회에서 공동주최하고 백산시 잠룡송화석문화산업유한회사에서 맡아하며 백산시 강원구송화석상업련합회의 후원으로 마련된 제5회 중국 강원 장백산문화박람회가 9월 8일 오전, 백산시 강원구청소년문화궁광장에서 성대히 개막되였다. 개막식에서 백산...
  • 2013-09-10
  • 1등상을 수상한 무용 《춘뢰(春雷)》의 한 장면. 9월 3일부터 5일까지 할빈에서 열린 흑룡강성 제5회 소수민족문예공연대회에서 목단강시를 대표한 목단강시조선족예술관의 10개 문예종목이 전부 수상하는 기꺼운 성과를 획득했다. 이번 소수민족문예공연대회는 흑룡강성의 한차례 성대한 민족문예활동의 대검열로서 전 성...
  • 2013-09-09
  •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재한조선족연합회 회원 12명이 무대에서 '고원에도 만풍년일세' 무용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 거주 조선족 동포들이 8일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악기와 춤과 노래로 가을을 수놓으며 대화합의 축제를 펼쳤다. 재한조선족연합회가 주최한 '2113 가을맞이 문화공연'에는 여...
  • 2013-09-08
  • 제3회 조글로 칼럼시상식 및 ‘문학창작과 민족정체성 지키기’세미나가 50여명의 문인,학자들이 참석한가운데 연길 대주호텔에서 성황리에 거행되였다.조글로포럼, 조선족작가네트워크가 주최하고 고향의 향기, 동북아공동체연구회, 연변기업가협회에서 후원한 이번 행사는 2부로 나누어 진행되였다.제1부에서는...
  • 2010-12-10
‹처음  이전 153 154 155 156 157 15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