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해 솟았네
천리변강 비추네
장백산 아래 사과배 열리고
해란강반 벼꽃 피네
험산을 파헤쳐 보물을 캐고
강물을 가로막아 산에 올리네
에헤
연변인민 투지 높이
변강을 건설하며
모주석(공산당)의 령도아래 승리 향해 나아가네
지난 세기 60년대, <붉은 태양 변강 비추네>라는 한 노래가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울러퍼졌다. 당신은 이 노래에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는지 아는가?
연변주의 ‘홍색가요’,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리다
“우리 응전하자!” 1964년,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문예합동공연을 펼쳤는데 모주석, 공산당을 노래하는 우수작품으로 대결을 펼쳤다. 이 소식을 접한 김봉호는 자신의 직장동료인 한윤호에게 함께 참가할 것을 권했다. 1년후 그들이 창작한 노래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가 전국에 널리 퍼졌으며 김봉호, 한윤호의 이름도 세상에 알려졌다.
그후 전국 각지에서 대풍년행사가 열렸는데 조국의 동북변방에 위치한 연변주의 지도자들은 김봉호에게 ‘풍년의 노래’를 만들 것을 직접 요구했다.
‘풍년의 노래’라는 제목을 본 김봉호는 자신이 화룡현 상화생산대대(지금의 화룡시 용화향 흥화촌)의 농민들과 함께 먹고 함께 묵고 함께 일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김봉호는 1954년 농업생산활동에 참가해 초급 사원으로 되였다. 그는 낮에는 모내기를 하고 밤에는 독학을 견지했다. 그 때 김봉호는 18kg짜리 손풍금을 메고 각지 농촌으로 내려갔으며 새벽 한두시가 되여서야 휴식하군 했다. 당과 국가의 호소를 받들어 현지 농민들은 맨손으로 돌을 캐내고 토양을 개량해 량질의 논밭을 만들었으며 식량 생산량을 높였다. 김봉호는 바로 여기에서 령감을 얻어 ‘풍년의 노래’를 창작해냈다.
1968년 김봉호의 오랜 파트너인 한윤호는 이 노래에 새로운 가사를 쓰고 정식으로 <붉은 태양 변경을 비춘다>로 명명했다. 이 노래는 연변인민들이 당의 지도 아래 땜을 쌓아 물을 끌어들이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량식을 재배하고 황페한 구릉을 개간하여 과수원으로 만들고 석령을 곡창으로 변하게 한 정경을 보여주었으며 연변 각 민족 인민들이 당을 사랑하고 당의 은혜를 느끼고 당을 따라가며 분발하여 변강을 건설하려는 확고한 자신감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는바 반세기가 넘게 불려온 명곡이 되였다.
그 뒤로 예술의 불꽃은 연변에서 점점 더 왕성하게 타올랐다. 국가 유명작곡가인 김봉호, 쌍남 등 예술가들은 <장고야 울려라>, <당의 빛발 연변 비추네> 등 연변을 노래하는 많은 우수한 작품들을 창작해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