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조선의용군활동 대중에게 알린 책… 중국서 일본군과 싸웠던 작가 김학철의 수기도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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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 항전별곡
이정식 한홍구 엮음ㆍ거름 발행
집 부근 버스 정류장 앞에 작은 여행사 사무실이 하나 있다. 얼마 전 버스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그 사무실 쪽으로 몸을 돌렸더니 이런 광고 글이 붙어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협곡…중국의 그랜드캐니언 태항산'.
태항산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 그 순간,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한국과 중국의 항일 운동가가 일본군과 맞서 싸우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바로 그곳이 지금 이렇게 여행 상품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태항산의 존재는 1986년 <항전별곡>이라는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중국 산시성과 허베이성의 경계를 이루는 이 산은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의 항일 근거지였다.
조선독립동맹은 임시정부의 항일 투쟁이 미온적이고 소극적이라고 주장하며 여러 세력이 힘을 합쳐 보다 강력하게 싸우기로 하고 결성한 정치조직이다. 조선의용군은 중국 팔로군과 힘을 합쳐 일본군과 직접 전투를 한, 조선독립동맹의 군사조직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에 대한 논문 모음이고 다른 하나는 김학철의 자전적 기록이다. 김학철은 일본제국주의와 싸우겠다며 혼자 중국으로 건너간 뒤 태항산에 합류, 문화선전활동에 참가한 조선의용군 용사로 훗날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작가로 활동하며 <격정시대> <해란강아 말하라> 같은 장편소설과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산문집 <우렁이 속 같은 세상> 등을 냈다. 그는 태항산에서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왼쪽 다리를 잃고 훗날 중국 문화대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반혁명 분자로 몰려 큰 고초를 당하다 2001년 작고했다.
당시 <항전별곡>에 실린 논문이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의 활동과 편제, 주요 인물 등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었던 것 같으나 오래 전 읽은 책이라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현재 시중에도 없고 공공도서관에서도 모습을 감추었으니 이 책은 다시 읽고 싶어도 읽기가 어렵다. 그러나 책에 실린 김학철의 글은 연변인민출판사 이름으로 출간된 김학철 전집에 포함돼 한국의 일부 도서관에 배포돼 있으니 조금 노력하면 찾아 읽을 수 있다. 실은 김학철의 자전적 수기만을 따로 <항전별곡>이라고 하는데 1986년 이정식과 한홍구가 논문을 추가해 같은 이름으로 책을 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항전별곡>의 김학철 수기는 조선의용군 용사 개인의 별명을 소개하고 여성에 대한 그들의 흥미를 보여주는 등 에피소드가 많아 재미있고 유쾌하다. 그것은 해학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 김학철의 뛰어난 글 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항일 용사들이 언제 어디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항일운동가를 다루면서도 비장한 분위기가 나는 <아리랑>과는 또 다른 <항전별곡>의 매력이다.
김두봉, 최창익, 김무정, 김창만 등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의 지도부는 해방 후 북한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 파와 대립하다가 대부분 축출되거나 숙청됐다. 이들은 사회주의 성향 때문에 남한에서, 김일성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배제됐다. 그래서 항일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도 남북 모두에서 잊혀진 존재가 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항전별곡>은 그런 그들의 활동을 한국의 대중에게 알린 책이다.
28년 전 <항전별곡>을 읽은 뒤 항일투쟁의 실체에 대한 호기심이 한층 더 커졌다. 그래서 그 뒤 김학철의 장편과 자서전은 물론 김사량의 <노마만리>나 염인호의 <조선의용군의 독립운동> 같은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럴 때마다 항일 용사들의 넋이 아직도 살아 있을 것 같은 태항산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산이 이제 한국의 여행객을 부른다니 혹시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
한국일보 박광휘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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