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의 작가 루쉰은 당초 의학도를 꿈꿨던 인물. 하지만 청진기 대신에 펜을 잡고, 당시 노예의식에 절어 있던 중국인들의 자화상을 가감 없이 비춰 줬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는 조선인은 물론이고 중국인들조차 일본 유학을 앞 다투어 갔다. 다른 세상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상물림 도령도 ‘사서오경’ 대신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 같은 책을 손에 쥐던 시절,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알 듯 말 듯한 이야기가 흉흉한 소문처럼 총포소리와 함께 떠다녔다.
22세 중국인 청년 루쉰, 그도 일본 유학을 감행했다. 중국에서 이미 독일어와 서양 지식을 익히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배부를 수 없었다. 그런 그가 24세에 최종 선택한 학문은 ‘의학’, 병든 조국에 꼭 필요한 학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본 센다이대에 들어가 서양 의학을 배웠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환등기를 켠 채로 필름을 보며 수업이 진행됐는데,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수업 시간 마지막에 환등기를 통해 러일전쟁 뉴스를 보게 됐다.
필름에서 보게 된 것은 중국인이 묶인 채로 참수당하는 장면이었다. 포승줄이 묶인 중국인은 러시아를 위한 군사기밀을 정탐한 죄로 참수되는 것. 그런데 하필 화면에 나온 것은 중국인 1인과 일본 병사만이 아니었다. 참수당하는 중국인을 둘러싸며 엿보고 있는 한 무리의 또 다른 중국인, 말하자면 중국 동포들이 구경꾼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본때를 보이기 위해 피의 축제를 벌이는 일본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무자비하게 참수당하는 동포의 죽음을 퀭하게 재미삼아 들여다보는 중국 동포들이라니. 아무 감정도, 의식도, 윤리도 없이 제 동포의 죽음을 쳐다보고 있는 저 무감각한 얼굴은 루쉰에겐 참수 그 자체보다 더 심한 충격이었다.
루쉰은 이 사건 이후 조국 중국에 필요한 것은 병든 몸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아니라 ‘정신’에 대한 문제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문학자 루쉰이 탄생하는 배경이다.
루쉰은 중국인들의 근원적 병폐에 관심을 가지며 소설을 썼다. 첫 번째 작품은 ‘광인일기’다. 이 미치광이는 요즘 말로 하면 망상증에 가까운 병을 앓고 있는 인물로서, 누군가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다며 사람을 무서워한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가 읽는 책 어느 구절이나 샅샅이 뒤져 보면 인의도덕(仁義道德) 이외에 어김없이 ‘식인(食人)’이 쓰여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환시(幻視)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수만은 없을 듯하다. 1918년 신문에서도 대서특필이 된바 며느리가 병든 시부모를 낫게 하려고 자기 살을 베어 먹인 이야기가 ‘효부’ 이야기로 소개되고 있었고, 또 몇 세기 전에는 한 장군이 부하에게 첩, 부인 등을 먹게 한 사건이 있지 않았던가.
이 망상증 ‘광인’은 먹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루쉰은 ‘광인일기’에서 사람을 죽여 가면서 유지하는 봉건적 질서를 개조하지 않는 한 중국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가 1918년 중국의 현실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낡은 사상이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면서 연명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 다름 아닐 터.
루쉰의 이와 같은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있으니 바로 ‘아Q정전’이다. ‘아(阿)’는 사람 이름 앞에 덧붙이는 접두사 정도로 생각하면 되고, ‘정전’은 심청‘傳’, 춘향‘傳’ 할 때 이야기의 형식으로 붙는 장르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능한 중국 자화상 ‘아Q’와의 작별
이렇게 놓고 보면 ‘큐(Q)씨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하필 왜 ‘Q’인지 그게 관건이다. 일단 편의상 ‘아큐’라고 불러 볼 텐데 그 누구도 아큐의 이름이 뭔지 출생지가 어딘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는 ‘왕년에 내가’라는 말을 종종했기 때문에 예전에는 잘살았던 사람이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으나 마을 사람들은 이 말마저도 아큐의 허세 정도로밖에 믿지 않았다.
더 확실한 것은 아큐의 머리에 항상 부스럼 자국이 있다는 것, 실은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을 잘 노려본다는 사실이었다. 상대를 봐서 자기보다 못한 자 같으면 욕을 하거나 때리거나 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아큐’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려보기’였다.
이 연장선상에서 ‘노려보기’와 쌍벽을 이루는 아큐의 특기가 있는데, 바로 ‘정신승리법’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동네 건달들이 아큐의 머리채를 벽에 찧으며 “짐승”이라고 욕하면 아큐는 아무렇지 않게 이 경멸과 혐오를 다 받아 내며 건달에게서 풀려난 뒤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네까짓것들”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그들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쉽게 위안한다.
그런데 아큐가 잘하는 것이 실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버러지 같은 놈’의 대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류를 파악한 후 ‘힘센 자’ 옆에 붙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원래 ‘혁명’이나 ‘반역’에 별 생각이 없었으나 사람들이 겁먹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본 후 ‘혁명도 좋은 거구나’ 하며 ‘이 놈들을 혁명해 버리자’라고 생각을 바꾼 것. 하지만 아큐의 자각은 언제나 그렇듯이 남들보다 빠르지 않았고, 오히려 늦었으나 그것을 자신만 모르고 있다.
이로 인해 오히려 누명을 뒤집어쓰게 됐고 결국 총살형에 처하게 된다. 총살형 직전 아큐에게 전달된 서명지. 아큐는 총살형 직전이라는 현실보다 난생처음 붓을 쥐게 된 상황이 혼란스럽다.
“글자를 모르는데요”라고 부끄럽게 답하자 동그라미 하나 그리면 된다는 대답을 듣고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하지만 마지막에 힘이 풀리면서 붓이 조금 어긋났다. 일종의 ‘Q’ 모양 같은 것일지도 모를 그런 동그라미. 어찌 보면 변발한 그의 머리 모양 같기도 하지만 실은 죽음의 사인에 깃든 무능과 두려움의 흔적인 동시에, 또 유일하게 이 세상에 남긴 알 듯 말 듯한 표식으로서의 ‘Q’이다.
‘아큐’, ‘노려보기’와 ‘정신승리법’으로 살아가는 자, 겉으로는 공경한 척하나 실은 힘센 자에게 굽신거리는 노예. 19세기 중국의 단면이라고 하면 과할까.
‘위대한 개츠비’ 속 ‘개츠비’가 개천에서 용 된 서자의 속물성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미국적인 인물로 표상된다면 ‘아큐’는 노예의식에 절어 ‘정신승리법’으로 가장한, 무능한 중국의 인물상을 대변한다. 미국인과 중국인들은 이 두 인물을 성찰하며 한 세기를 준비했으리라. 아큐적인 것과의 단절. 그런 의미에서 루쉰이 100년 전 중국에 던져 준 것은 문학이라는 거울 그 이상일 것이다.
박숙자 경기대 교양학부 조교수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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