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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책마을 현실을 생각하며 읽은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오마이뉴스 글:최종규, 편집:최은경]
몇몇 언론사에서 '새로 나올 하루키 책'을 놓고서 말이 많습니다. 하루키 책이 새로 한국말로 나오면 '100만 권'쯤 넉넉히 팔릴 만하리라는 말이 돕니다. 100만 권쯤 팔리는 책이 있다면 한국 책마을이 살아날는지 꽃피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하루키 책이 100만 권 팔린다면, 이는 한 군데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으로 100만 권입니다.
▲ 겉그림
ⓒ 유유
한 사람 책이 한 군데 출판사에서만 나오며 100만 권이 팔리면 책마을이 살아날 수 있을까요? 책마을에 도움이 될까요? 글쎄, 저는 고개를 가로젓겠습니다. 하루키이든 아무개이건, 한 사람 책이 100만 권이 팔리기보다는, 한국 작가 100사람 책이 100군데 출판사에서 나와, 저마다 1만 권 팔릴 수 있다면, 이리하여 '100 작가 100 출판사 1만 권'으로 100만 권이라는 숫자가 사람들 손에 간다면, 이때에 비로소 이 나라 책마을이 살아날 만하다고 말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일도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었습니다. 집에서는 엄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그게 제 안에서 꼭 지키고 싶은 규칙이었어요. 설마 제가 그렇게 변할 줄은 몰랐습니다 … 저에게 아이가 없었다면 그림책 서가에는 가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그림책 서가를 벗어난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읽을거리에 '그림'이 있는 책이란 이미지요 … 모든 것을 감수하고 앞으로 5년, 10년 팔고자 한다면, 제가 100퍼센트 만족하는 책이어야 일이 괴롭지 않아요. (22, 27, 36쪽/야스나가 노리코)
니시야마 마사코 님이 쓴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유유,2017)이라는 책을 읽어 봅니다. 혼자서 일하거나 두세 사람이 일하는 자그마한 출판사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도쿄 한복판이 아니어도 즐겁게 작은 출판사를 열어서 씩씩하게 책길을 걷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르는 책입니다.
더 많은 책을 팔겠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 책에 흐릅니다. 더 아름다운 책을 엮고 펴내어, 이 아름다운 책을 책방 일꾼이 기쁘게 팔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 책에 흐릅니다. 더 잘 팔리는 책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한 번 펴냈으면 100년이나 200년쯤 판이 안 끊어지도록 읽히고 사랑받을 만하게 단단하고 알차며 아름다운 책을 짓겠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 책에 흘러요.
▲ 사토야마샤를 일구는 기요타 마이코 님 일터
ⓒ 유유
▲ 도요샤를 이끄는 도요타 쓰요시 님 일터. 일터가 매우 단출하다.
ⓒ 유유
"내일은 눈 오니까 쉬자" 하고 말할 수 있는 사장이 몇이나 될까요. 사장조차 자유롭지 않은 회사에서 도대체 누가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을까요? (48쪽/도요다 쓰요시)
<하마유리 시절에>는 회전이 빠른 도심지에서 사고가 정지된 사람들에게 생각할 자극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출간했습니다. 저 자신도 일깨우면서요… 한 권 한 권 책을 낼 때마다 관련된 분들과 친해지고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서 기쁩니다. (70, 76쪽/기요타 마이코)
'빨리'를 외치지 않는 작은 출판사 일꾼은, 그렇다고 해서 '느리게'를 외치지 않습니다. 일본 책마을 가운데 작은 자리를 일구는 분들은 '아름답게'를 노래합니다. 빨리도 느리게도 아니에요. 외침도 아니에요. 그예 '아름답게 노래하기'입니다. 여기에 '즐겁게 춤추기'입니다. 덧붙여서 '신나게 꿈꾸기'예요. 그리고 '어깨동무하며 함께 웃기'예요.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바다를 보면서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막차 시간 신경 쓰지 않고 일할 수 있어서 좋아요 … 어쩌다 보니 가마쿠라로 왔지만, 기분 좋게 일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저에겐 중요했어요 …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마음을 잊기 싫어서 의사 표명의 한 수단으로 띠지를 빼기로 했어요. 띠지가 있어야 잘 팔린다는 근거 없는 안도감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87, 100쪽/우에노 유지)
▲ 치이사이쇼보를 이끌며 아이와 보내는 살림을 좋아하는 야스나가 노리코 님. 인터뷰하는 얼굴이 매우 환하다. 책 짓는 기쁨이 그대로 퍼지는 듯하다.
ⓒ 유유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을 읽으면서 이 대목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한 작가 책을 100만 권을 팔려는 뜻은 아예 처음부터 안 품는다고 합니다. 한 작가 책을 열 해에 걸쳐 1만 권을 팔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을 곱씹어 봅니다. 한 해에 열 작가 책 열 가지를 만 권씩 팔겠노라 하는 마음을 되새겨 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르게 살림을 지어요. 다 다른 마을에서 다 다른 이야기가 피어나면서 다 다른 아름다움이 깨어나요. 우리가 나아갈 아름다운 길은 어디일까요? 우리가 누릴 기쁜 삶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함께할 따스한 사랑은 무엇일까요?
요즈음 한국에서는 전국 곳곳에 자그마한 마을책방이 하나둘 문을 엽니다. 열 해쯤 앞서를 떠올리면, 전국 곳곳에서 작은 마을책방이 다 죽고 문을 닫는다고 했어요. 참말로 얼마 앞서까지 한국에서는 전국 어디에서나 '마을책방이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춘' 이야기로 떠들썩했어요. 그런데 요새는 전국 어디에서나 '마을책방이 새롭게 문을 열며 활짝 기지개를 켜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회사는 사람이 전부이기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날마다 성장한다고 믿고 가야 출판의 밝은 미래로 이어집니다 … 젊은 편집자도 처음부터 "잘 팔릴 책을 만들어"라는 말을 숱하게 듣다가 가장 중요한 감성이 충분히 자라기 전에 '판다'는 가치만을 위해서 일하는 로봇이 됩니다. (128, 142쪽/미시마 구니히로)
우리가 믿을 건 작가의 힘이 담긴 사진집뿐이에요. 즉 잘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드는 일만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밝혀 줄 겁니다. (164쪽/히메노 기미)
▲ 미스즈도 이나 제본소에서 책을 살피는 다니카와 메구미 님. 1인 출판사는 편집 디자인뿐 아니라 인쇄 제본도 모두 살피기에 책마을을 더 넓게 헤아리며 새로 배우기도 한다.
ⓒ 유유
지난날 마을책방하고 오늘날 마을책방을 가만히 맞대어 봅니다. 지난날 마을책방에 놓인 책은 거의 모두 참고서나 학습지였습니다. 여기에 잡지 조금, 베스트셀러 조금 있었어요.
오늘날 마을책방은 지난날하고 사뭇 달라요. 오늘날 전국 곳곳에서 문을 여는 마을책방 가운데 참고서나 학습지를 들이는 데는 눈 씻고 찾아볼 수조차 없습니다. 책이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책방이란 무엇인지 이제 다시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마을에 깃든 책방은 얼마만 한 크기이면 되고, 어떤 책을 얼마쯤 갖추면 될는지 곰곰이 따져 보아야지 싶습니다.
▲ 우치누마 신타로 님이 꾸리는 서점 B&B
ⓒ 유유
파는 사람도 이 책을 좋아하고, 사는 사람도 한 권 더 사서 다른 이에게 선물할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을 목표로 삼고 싶어요 … 수익 때문만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작품을 (작가한테서) 받았으니 더 많은 분에게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223쪽/다니카와 메구미)
오늘날 한국에 새롭게 문을 여는 마을책방은 지난날하고 아주 다르게 참고서랑 학습지를 안 다루다 보니 책꽂이가 퍽 널널합니다. 책꽂이로 우리 눈을 고단하게 하지 않아요. 이러면서 걸상을 넉넉히 둡니다. 책꽂이를 줄이고 책걸상을 놓아요.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아닌 '마을책방지기가 사랑하는 책'을 놓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새롭게 문을 여는 마을책방은 참말로 '마을'에 깃드는 책방입니다. 서울에서든 부산에서든 똑같은 책만 있는 책방이 아닌, 서울 다르고 부산 다르고 대구 다르고 포항 다르고 광주 다르고 전주 다르고 대전 다른 ……, 이제 오늘날 새로운 마을책방은 이 마을책방이 뿌리를 내리려는 고장에서 태어나는 책에 눈길을 둡니다. 마을에서 함께 짓는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에 나오는 일본 1인 출판사 대표는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만한 수수한 아저씨이거나 아줌마이거나 아가씨이거나 사내입니다. 걸어서 집하고 일터 사이를 오갑니다.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자전거를 달려 집하고 일터 사이를 오갑니다. 베스트셀러로 한몫 잡으려는 살림은 처음부터 생각조차 안 합니다. 아름다운 책을 마을에서 지어내어 이웃들하고 나누려는 마음으로 책을 보듬습니다.
▲ 사우다지북스를 일구는 아사노 다카오 님. 도쿄를 벗어나 한갓진 고장에서 책을 짓는다. 집하고 일터 사이에서 이러한 길을 거닐며 '출퇴근'을 한다면, 책에 담는 마음도 사뭇 다르겠지요.
ⓒ 유유
내가 서점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서점에서 샀기 때문에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그 사람이 권한 책이니까 소중히 읽는다. 책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서점 직원들이 '팔고 싶다'고 생각하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94쪽/도이 아키후미)
한국 책마을은 이제 첫 걸음을 새롭게 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키 새책을 놓고 선인세가 20억 원을 웃돌 듯하다는 말이 많습니다. 참 미친 짓입니다. 이런 짓은 더없이 미친 짓인 줄 알아채고 느껴야지 싶습니다.
한 사람 책을 놓고 20억 원을 미리 치른 뒤에 100만 권 넘게 팔려고 하는 장사는 제발 그만두어야지 싶습니다. 한국 책마을 모두 뜻을 모아 '하루키 책 선인세 계약'을 어느 곳에서도 안 할 수 있기를 빕니다. 하루키 책을 한국말로 내려 한다면, 선인세 계약 없이 내도록 해야지 싶어요.
하루키 책에 20억 선인세를 들일 돈이 있다면, 이 돈으로 적어도 젊은 작가 스무 사람한테 1억 씩 주면서 아름다운 책을 느긋하게 짓도록 북돋울 수 있어요. 또는 젊은 작가 이백 사람한테 천만 원씩 주면서 아름다운 책을 넉넉하게 짓도록 북돋울 만합니다.
베스트셀러로는 책마을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몇 가지 책만 유통시켜 떼돈을 거머쥐려는 대형서점하고 대형출판사 주머니만 살찌우겠지요. 우리가 책마을을 살리면서 책을 즐기는 아름다운 뜻을 나누려 한다면, 작은 마을책방과 출판사와 작가가 서로 아끼고 돕는 작은 마을살림으로 이야기꽃을 지피는 길로 가야지 싶어요.
▲ 아카아카사를 꾸리는 히메노 기미 님.
ⓒ 유유
책의 절반은 머리로 만들지만, 절반은 손으로 만든다는 걸 느끼고서야 제 안에서 충돌했던 두 세상이 서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83쪽/아사노 다카오)
깨어나야지요. 눈을 떠야지요. 마을을 바라보고 삶을 헤아려야지요. 우리가 저마다 손수 짓는 기쁨으로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작은 출판사 천 군데에서 해마다 다섯 가지쯤 새로운 책을 내놓아 이 책들을 해마다 만 사람한테 이어 줄 수 있기를, 이렇게 한 해에 만 사람을 잇는 책이 백 해라는 시간에 걸쳐 판이 안 끊어지고 이어질 수 있기를, 이리하여 '100만 권 팔리는 책'이 하루아침에 100만 권이 아니라, 백 해에 걸쳐서 백만 사람한테 백만 가지 이야기꽃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모든 책이 저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다 다른 사람들한테 베풀면서 기쁘게 노래로 퍼질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즐겁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 톰즈박스를 일구는 도이 아키후미 님.
ⓒ 유유
그리고 대선주자로 나설 분들이 정치나 사회 문제뿐 아니라, 우리 삶을 가꾸는 책마을(출판계)을 새롭게 북돋울 만한 정책을 밝힐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더 많은 책을 팔도록 하는 정책이 아니라, 작은 출판사가 여러 고장에서 저마다 즐겁게 뿌리를 내리며 아름다운 책을 오래도록 나눌 수 있도록 북돋우는 정책을 내놓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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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니시야마 마사코 글·사진 / 김연한 옮김 / 유유 펴냄 / 2017.1.14. /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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