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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뻐스정류장 (남송화)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3월15일 00시00분    조회:2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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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스정류장, 모두가 거부기 목이 되여있다. 칼바람이 윙윙- 살점이라도 베여갈 기세이다.

뻐스를 타고 다니기로 결심한 후로부터 나의 짝사랑이 시작되였다. 기다림에 지쳐 택시를 잡으려고 하면 나의 배신감을 느끼기라도 한 듯 택시도 나를 멀리했다. 그러다가 머리 뚜껑이 열릴 바로 직전 김이 씩-씩- 날 때면 저만치에서 배시시 나타난다. 정신없이 달려왔다는 듯이…

애간장 태우며 오매불망 기다리는 6선 뻐스는 오늘도 나하고 밀당중이였다. 평소에 타려고 하면 꽁꽁 숨어 안 보이던 50선마저 두개나 지나갔다. 택시를 타려고 생각했다가도 이 추위에 여태까지 기다려온 것이 억울해서 끝까지 버티는중이다.

갑자기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생각났다.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였다가…’

마음이 재가 되여 신경 곤두세우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까드득 까드득 소리가 났다. 설마 하고 돌아섰는데 역시 나의 설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익숙히 들어오던 해바라기씨 까는 소리… 그 것도 멀쩡하게 생긴 중년남자가…

얼어죽을 놈은 나와보라는 듯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저마다 따뜻하고 깊숙한 털가죽 속에 몸을 숨기느라 급급한데 저 멀쩡한 놈은 혼자 해바라기씨 까기 삼매경에 한창 취해있었다. 무슨 대회에라도 참가한 듯이…

평소 집안에서 들으면 그 고소한 냄새까지 정겨웠겠건만 오늘따라 그 해바라기씨 까는 소리가 그렇게 귀에 거스릴 수가.

윙윙 바람소리에 맞춰 그의 속도도 점점 빨라져갔다. 깨끗했던 땅바닥은 순식간에 속살을 빼앗긴 껍질들로 와자자하게 변신되였다.

멀쑥하게 생긴 놈이 옷만 멀쩡하니 차려입은들 뭐해? 자신의 체면은 해바라기 껍질처럼 새까맣게 된 걸 알기나 할가. 알면 저런 행동을 안 하겠지.

무시하려고 신경쓰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까드득 까드득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끼리끼리 이야기하느라고 아님 못 본척하는 데 습관이 되였는지 모두 무덤덤하였다. 나만 이렇게 신경쓰이나? 나만 눈에 거슬리나? 나만 이상한 건가?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소리를 꾹꾹 누르고 있다가 결국엔 그만 참지 못하고 홱 돌아섰다.

입을 벌려 말을 하려는 순간 그 남자가 앞으로 막 달려가는 것이였다. 기다리는 뻐스가 왔던 것이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침만 삼킬 뿐이였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식이 되고 말았다. 허허허 헛웃음만 나왔다.

좀더 일찍 말했을 걸… 아니, 차라리 말을 안하기 잘했어…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 와중에도 저 사람이 뻐스에 올라가서도 해바리기씨를 계속 까고 있지 않을가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소시민 의식, 이런 걸 두고 말하기도 한다. 저 해바리기씨남자도 전형적인 소시민이겠지만 나 같은 사람도 소시민의 의식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였다.

사전적 의미에서 말하는 소시민이란 로동자와 자본가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소생산자, 소상인 및 봉급생활자, 자유직업자를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소시민이란 일반적으로 매사에 따지고 눈앞의 리익만 챙기려 하며 남의 뒤담화를 하기 좋아하는 저속하고 악렬한 사회저하층 인간으로 많이 알려져있다. 하지만 로동자와 자본가의 중간에 위치하는 소생산자, 소상인 및 봉급생활자, 자유직업자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은 요즘에는 사회적 정의와 진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봉사를 관념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지만 이를 실제로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는 우유부단한 존재로 쓰이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우리 대부분이 소시민 근성에 쩔어있는 속물임이 틀림없다. 현시대 많은 사람들은 자가용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호주머니에 카드만 잔뜩 넣고 다니면 자신은 귀족이나 된 것처럼 타인을 소시민으로 취급한다. 차창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자기와는 무관하다는 듯. 하지만 무엇보다 언제나 안전하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무비판적인 락관주의가 바로 소시민들의 특징이라고 본다.

갑자기 바로 며칠 전 역시 뻐스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여느때와 같이 뻐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의 옆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던 한 소학생 녀자아이가 먹던 음식통을 땅바닥에 슬그머니 던지는 것이였다. 그 걸 보고 내가 쓰레기통이 바로 옆에 있는데 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땅바닥에 던지냐 하고 한마디 하였다. 나의 말에 그 아이는 무안해서 방금 버렸던 음식통을 주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 순간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어떤 아줌마가 아이를 홱 낚아채더니 나를 손가락질하면서 니깟게 뭔데 내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것이였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한 것이 잘못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그럼 니가 주어서 쓰레기통에 넣으면 될 걸 왜 내 아이에게 그러냐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였다. 이런 사람들 하고는 말이 안 통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당신 자식 교육하기 전에 당신부터 인간교육 다시 받아라고 한마디 하고는 그 자리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와버렸다.

불의를 보면 혹자는 주위 시선이 두려워서, 혹자는 자기에게 불똥이 튈가봐, 또 혹자는 나말고 다른 사람이 나서겠지 하는 식으로 늘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지켜온다. 일상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문명을 쌓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룬다는 것은 소학생들도 익히 아는 도리이다. 하지만 현실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입을 다물고 눈을 감게 하였다. 침묵은 금이라고 배우고 자란 우리, 우리의 많은 침묵들 때문에 문명과 정의는 아직도 갈길이 멀고 멀다.

갑자기 혹독한 추위에 두 손을 호호 불면서 해바라기껍질을 쓸고 있는 청소공아줌마가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내가 막 죄송스러워졌다. 아까 내가 그 남자를 제지했더라면 청소공아줌마가 이 추위에 덜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후회가 되였다.

나의 짝사랑 6선이 끝내 왔다. 왜 늦게 왔냐고, 왜 시간을 엄수하지 않냐고 오늘은 운전기사와 꼭 따져봐야지 하면서 뻐스에 올랐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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