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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혼부부 3쌍 중 1쌍은 20년 지기…결혼 초 문제, 노년에도 반복
"노부부도 솔직한 애정표현·배려 필수"…"이혼에 부정적 인식 바꿔야"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강혜영 인턴기자 = "며칠 전이 부부의 날(5월 21일)이더라고요.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날이 된 지 오래입니다."
김용택(80) 씨는 15년 전 이혼 당했다. 돈을 잘 벌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젊은 시절 건설업과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넉넉한 월급을 받아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일을 그만두면서 수입이 3분의 1로 줄었다. 김 씨는 "이후 술을 자주 입에 대면서 아내와 사이가 멀어졌다"며 "당시 아이들도 독립하면서 아내도 미련없이 갈라서기를 통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았다. 그러나 결혼식장에서 한 백년가약은 지키지 못했다. 더는 참고 사는 게 미덕이라고 여기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황혼 이혼을 하는 부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 탓만은 아니다. 이들은 "더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약화하는 부부간의 연결 고리가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연결 고리를 강하게 할 방법은 있다. 소통과 애정 표현이다.
◇ "참고 살았다"…급증하는 황혼 이혼
"70세 좀 넘어서 이혼했어요. 50년 참다가 내린 결정이었죠."
24일 오후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만난 A(82) 씨는 "가사일 안 도와주는 남편과 수십 년을 싸웠다"며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다가 얼마 전 다들 독립했고 거리낄 것이 없겠다 싶어 이혼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A 씨처럼 뒤늦게 갈라서기를 결심한 부부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고령층의 이혼 건수는 느는 추세다.
지난해 60세 이상 남성의 이혼 건수는 1만3천600건으로 10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55∼59세와 더불어 유일하게 매년 이혼 건수가 증가하고 있는 연령대다.
같은 연령대 여성도 마찬가지다. 2007년 3천500건에 그쳤지만 가파르게 증가해 2017년에는 8천건을 넘어섰다.
60세 이상 남성의 이혼율은 지난해 처음으로 3%를 넘어서기도 했다. 60세 이상 여성 역시 집계 후 최고치인 1.4%를 기록했다.
황혼 이혼은 우리만의 추세가 아니다. 지난해 미국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이혼한 1천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혼 비율이 급증하는 연령대는 5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1990년 당시 5%에 그쳤던 50대 이상 이혼율은 2015년 10%로 증가했다. 25년 만에 곱절 이상 불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40∼49세 이혼율은 18%에서 21%로 소폭 느는 데 그쳤고, 25∼39세는 30%에서 24%로 감소했다.
◇ 20년 넘게 함께 살다 이혼한 부부, 매년 증가
이혼한 부부의 혼인지속 기간을 보더라도 황혼 이혼의 증가세를 파악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의 평균 혼인지속 기간은 15년으로 10년 전보다 2.7년 증가했다. 혼인지속 기간은 실제 결혼 시작 시점부터 사실상 이혼(별거)까지를 말한다.
전체 이혼 중 혼인지속 기간 20년 이상 비중은 1997년 9.8%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31.2%까지 올랐다. 이혼부부의 3분의 1 가까이가 황혼 이혼인 셈이다.
혼인지속 기간 20년 이상을 제외한 다른 혼인지속 기간 비중은 줄었다. 4년간 결혼 생활을 한 부부의 비중은 1997년 31%에서 지난해 22.4%로, 5∼9년 비중은 24.3%에서 19.3%로, 10∼14년은 19.5%에서 14%로 감소했다.
◇ 왜 이혼을 선택하는가?
이혼을 고민하는 주된 이유는 함께 있지 않은 시간이 길어져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상담을 받은 남녀 모두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장기간 별거'를 꼽았다. 남성은 29.2%, 여성은 19.0%로 나타났다. 이어 성격 차이, 경제갈등 등이 뒤를 이었다.
노년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60∼70대 남성과 여성 모두 장기 별거와 경제적 갈등, 성격 차이를 가장 큰 이혼 사유라고 답했다. 이 밖에 배우자의 폭력이나 가출, 외도, 폭력 등을 꼽았다.
상담소 측은 "실제 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혼인 초부터 존재해 온 문제들이 노년에도 반복되는 경향이 강했다"며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이나 자녀 문제 등으로 참고 지냈으나 더는 견디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수십 년간 참았지만 뒤늦게라도 내 삶을 살아보겠다 결심하고 이혼 상담을 받는 사례가 급증했다는 뜻이다.
이어 "기대 수명 증가가 가장 큰 요인이지만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이나 재산 및 연금 분할 가능 등 경제적인 불안감이 감소한 것도 주요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 "나이가 많을수록 부부간 소원해져"
서울시 통계팀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고령층의 부부일수록 배우자에 대한 친밀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에 따르면 '배우자에 대해 솔직히 감정표현을 한다'고 답한 이들은 50대와 60대 이상이 가장 낮았다. 특히 50대의 경우,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5점대(10점 만점 기준)를 기록했다.
'부부의 공통된 가치관이 있다'는 항목 역시 50∼60대가 최저점을 기록했다. 60대 이상의 경우 5.9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20대에 비해 1점 가까이 낮았다.
정기적으로 함께 식사하고 있다는 항목에서도 60대 이상은 5.92점에 그치며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연구진은 "50세 이상 기혼자들은 20∼30대보다 부부 공통 가치관이 낮고, 배우자에게 솔직한 의사 표현을 못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 "소통 통한 갈등 해결 중요"…"더 행복해지려는 이혼 선택도 존중해야"
전문가들은 황혼 이혼에 대한 인식의 개선과 함께 부부간 소통을 통해 일찌감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재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령사회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이혼으로 갈 때까지 곪지 않고 개선될 수 있도록 교육과 상담을 통해 소통을 배워야 한다"며 "이를 통해 건강한 가정을 꾸리도록 유도 한다면 황혼까지 참다가 이혼하는 문제를 장기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윤진 세종사이버대(사회복지학) 교수 역시 "경제적인 대비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기 위한 준비도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며 "은퇴를 준비하는 50대부터 더불어 살도록 사전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웨드 오미화 본부장은 "상담 고객 중 결혼 30년 차인데도 서로에게 '예쁘다',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표현하던 부부를 종종 만난다"며 "이들 대부분이 오랜 결혼 생활에도 여전히 서로를 위하며 행복하게 잘 살더라"고 말했다. 오 본부장은 "노부부 역시 젊은 커플 이상으로 많은 애정 표현과 배려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개선을 꼬집는 목소리도 높다.
유재언 위원은 "미국 같은 경우에는 이혼이 잘못된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며 "우리는 아직 이혼하면 낙인을 찍는 문화가 있는데 이런 인식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미화 본부장은 "황혼 이혼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내린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이혼 후에 서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한 인격체로서 대하며 배려나 존중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며 "수십 년간 가족으로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줬던 상처에 대해 뒤늦게 깨닫는 부부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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