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가 사상 처음으로 미국 장편영화의 메인 테마곡으로 쓰인다.
웨인 왕 감독(70)은 다음 달 6일 캐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하는 영화 ‘커밍 홈 어게인(Coming Home Again·가제)’에 이문세의 노래 ‘옛사랑’을 삽입했다고 28일 동아일보에 단독으로 공개했다. 왕 감독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영화 ‘스모크’ ‘조이 럭 클럽’을 연출한 명장이다.
‘커밍 홈 어게인’은 재미 한인교포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작품. 원작은 재미 소설가 이창래 씨가 1995년 미 뉴요커에 기고한 동명의 자전적 에세이다. 헤밍웨이상, 펜 문학상을 수상하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 이 씨는 이번 영화 각본도 왕 감독과 공동 각색했다.
한인교포 가족의 갈등을 다루는 극 중에 노래 ‘옛사랑’은 주요 소재로 쓰였다. 영화는 주연 창래(저스틴 전)가 뉴욕 월스트리트의 근사한 직장을 관두고 샌프란시스코 집으로 돌아와 위암에 걸린 어머니(재키 정·한국명 정시내)를 돌보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극중 어머니가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회상 장면에서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하는 이문세의 원곡이 스크린 위로 흐른다. 가족사의 질곡을 은유하는 중요 장면이다.
‘옛사랑’을 영화의 흐름에 꼭 필요한 곡으로 본 왕 감독은 작사·작곡가인 고 이영훈 씨(1960∼2008)의 외아들 정환 씨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왕 감독은 편지에서 “저 역시 아시아계로서 아버님(이영훈)의 여러 곡은 제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수놓았다”며 “영화 속 부부의 지속되는 관계에서 갑작스러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하는 데 ‘옛사랑(Old Love)’이야말로 꼭 맞는 노래였다”고 썼다.
왕 감독은 영화 ‘차이니즈 박스’(1997년) 촬영 때 홍콩 거리에서 들은 ‘옛사랑’에 대한 추억도 털어놓았다. 홍콩 출신인 왕 감독은 당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미묘한 시점에 현지에서 느낀 감정, 지금은 고인이 된 슬로베니아 출신 촬영감독이 ‘옛사랑’의 멜로디를 따라 부르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 때문에 이번 작품에 ‘옛사랑’이 삽입된 것을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고인의 노래를 관리하는 영훈뮤직 측은 감동적인 한인 스토리, 세계 시장에 고인의 노래를 널리 알릴 순기능을 고려해 사용권을 허락했다. 왕 감독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상영 때 영화의 엔딩크레디트에 ‘옛사랑’ 원곡 전곡을 삽입할 작정이다. 토론토 영화제에서는 이 대목에 할리우드 음악가가 변주한 ‘옛사랑’ 피아노 연주 버전을 싣는 안을 고민 중이다.
‘커밍 홈…’은 왕 감독의 대표작인 ‘조이 럭 클럽’을 연상시킨다. ‘조이 럭 클럽’은 1993년 당시 출연진 전원을 아시아계로 꾸린 첫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로 큰 주목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중국계 이민 1, 2세대의 이야기를 다뤘던 그가 이번엔 인물과 배경을 한국계로 옮긴 셈이다. 주인공 ‘창래’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조연으로 나왔던 한국계 영화감독 겸 배우 저스틴 전이 연기했다.
왕 감독 측은 이 작품으로 10월 열리는 부산 국제영화제 참가 여부도 논의하고 있다. 또 올해 하반기에 왕 감독이 직접 한국에 와 이영훈 씨 유족을 만날 생각도 갖고 있다.
미국 제작사 측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갈비 같은 한국 요리를 가르치며 소통하는 등 한국적 정서를 투영한 만큼 한국에서도 꼭 상영되기를 소망한다”면서 “한국 쪽 배급사를 구하고 싶다”고 본보에 전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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