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iz/korea 비즈홈 | 로그인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홈 > 기업활동

전체 [ 8 ]

8    맞춤에는 지존이 있다 댓글:  조회:574  추천:0  2018-04-20
모 피자가게에서 사정으로 가게문을 닫았습니다. 가게에서 사용하던, 그것도 반년남짓이 사용하던 기계( 工作台冰箱,煤气炉子,商用炸炉,商用烤箱,搅拌和面机,披萨火烤炉 )들을 헐깞에 처리하려고 합니다. 새것과 별반 다를바 없는 기계들... 피자가게를 차리고 싶은 분들께는 둘도 없는 기회라 생각합니다. 련계전화:138-0448-3188
6    [연길] 여왕네 BISTRO 품격이 살~아~있네~ 댓글:  조회:2953  추천:2  2016-05-05
[문야맛기행] 무엇을 먹느냐, 누구와 먹느냐, 어디에서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한단다. 커피 한잔을 마셔도 어디에서 마시느냐, 어떤 컵에 담아 마시느냐, 어떤 장소에서 마시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겠다. 그만큼 먹거리 하나에도 풍격이 살아있다는 얘기다. 5월 5일 오픈한 연변대학 복무중심 1층에 위치해있는 BISTRO(비스트로)-레스토랑이 바로 품격이 살아있는 곳, 품격을 높일수 있는 곳, 품격을 자랑할수 있는 곳이라 하겠다. 400평방메터의 규모를 자랑하는BISTRO, 빼곡이 앉아 닭다리를 뜯을수 있는 곳, 단둘이서 사랑을 속삭이는 데이트장소, 창업을 꿈꿀수 있는 무대…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록색빵, 화로를 이용해 구워낸 피자, 깔끔 떨만한 커피잔, 섹시미를 자랑하는 쥬스잔(컵), 누룽지의 구수한 맛이라 착각할가 겁나는 양념치킨… 훌죽한 대학생들의 호주머니사정을 고려한 메뉴판, 가격에 또 한번 반하게 된다. 같은 사이즈의 피자가격을 놓고보아도 20원 싸다. 커피, 쥬스에서도 6~7원은 능히 절약할수 있다. 게다가 오픈 이벤트로 11일까지는 15% 할인한다고 하니…얼씨구 좋다. 지화쟈 죻~다. 이 가게의 사장님은 ‘미쳐두 단단히 미쳤나보다’ . 미치지 않고선 어떻게 이렇게 가격이 싸지? 고품격의 인테리어에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BISTRO의 주인장은 누구? 으~흠, 하~하~ 바로 ‘여성세계’의 여왕인 손향사장님이네. 여왕의 품격이 음식의 맛과 환경에 고스란히 배여있는 BISTRO, 한밤중이라도 치킨, 피자가 생각난다. 그럼 어떻게 하지? 뭘 꾸물거려, 즉시 배달시키라구! 대학가에서만 인기를 누릴것이 아니라 대학울타리밖에서도 고인기를 누려 볼 심산이다. 꾹꾹 눌러주이소~ㅎㅎ 0433-2699000    
5    연변사람들의 개성적 이미지를 디자인해주고 싶다 댓글:  조회:1203  추천:0  2016-04-05
연변코리아패션 손향총경리 인터뷰      . 손향 프로필   길림성제11기부녀대표대회 대표 길림성녀성기업가협회 회원 연변주제10차부녀대표대회 대표,집행위원 연변주녀기업가협회 부비서장 연변주공상련합회 집행위원 연길시제12기~13정협위원 연길시공상련합회 부회장 연변주우수녀경영자상, 연길시 3.8붉은기수, 연변주녀성창업선봉상, 연길시및 연변주우수공상련합회 회원상, 연길시 녀성창업상 기업가상 애심천사상 연변주부녀아동사업기여우수상 등 다수 수상경력. 《코리아패션에서 정성들여 지은 맞춤식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멋있고 품위있는 자태로 세상에 나서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 저에겐 가장 자랑스럽고 행복한 순간인것 같아요…》 연변코리아패션 손향총경리의 진솔한 고백이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느낄때가 있다. 뒤돌아보면 《철밥통》을 과감히 버리고 자주창업의 길에 나선지도 어언간 20년이란 짧지않은 세월이 흘렀다. 가시덤불과도 같은 간고한 창업의 길을 헤쳐오면서 《코리아패션》이라는 업계가 인정해주는 연변복장업계의 명브랜드를 창출하기까지 쉼없이 앞만보고 달려왔다는 손향총경리의 창업담을 취재했다. 1993년이였다. 손향씨가 연길시로동국 보일러검험소의 안온한 일자리에서 대담히 철밥통을 버리고 창업을 시작한 해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얼마안되는 고정직업 수입에 미련을 두지못하고 더 큰 꿈과 창업욕을 바라고 하해의 물결속에 뛰여들던 때였다. 물론 당시 세차게 불어친 하해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도 했지만 또 적잖은 사람들이 실패하기도 했다. 손향씨의 하해에도 원인이 있었다. 철밥통을 버리기전이였던 1992년도에 손향씨는 단위에 출근하면서 한켠으로는 남이 하다가 장사가 잘 안돼서 양도한 음식점 하나를 넘겨받아 개체음식점을 시작했다. 음식점을 넘겨 받은후 손향씨가 여러모로 애쓴 보람으로 장사가 꽤 잘 되였다. 당시 손향씨의 중급직함 로임은 72원밖에 안되였지만 식당경영에서 한달에 순리윤만 5000원이 넘게 나왔다. 얼마 안되는 고정로임에 철밥통을 붙잡고 앉아있을 필요가 없었다. 1993년도에 그녀는 대담히 철밥통을 버리고 연길시에 코리아패션 맞춤양복 전문영업점을 내왔다. 당시만해도 양복들은 백화상점이나 지하상점 등 시장가게 들에서만 팔던때여서 맞춤양복 전문영업점은 연길에서도 유일했다. 연해도시에서 전문영업모식이 점차 류행되고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대담히 남보다 먼저 시도한것이였다. 당시 연변의 복장업계 조류를 살펴보면 중한수교가 갓 이루어지고 상호교류가 왕성해지면서 한국기성복장문화가 앞선 품질과 디자인으로 류행을 타면서 각광을 받았는데 손향씨는 한국복장의 우수성과 품질에 영업초점을 모았다. 손향씨는 중한 합작의 형식으로 한국의 유명재단사를 초청하여 매달 1만5000원이나 되는 월급을 내주었는데 당시 근 30명이나 되는 직원들의 로임을 모두 합쳐도 한국 재단사 한사람의 로임보다 적었다. 창업초창기에는 들어오는 수입보다 나가는 지출이 더 많았다. 그러나 손향씨는 자기의 선택을 믿었다. 단시일안에는 지출이 더 많겠지만 품질이 좋고 디자인이 새로운 고품격의 옷들이 만들어지는 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것은 시간문제이며 수입은 반드시 늘게 될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지나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코리아패션의 맞춤양복을 점차 인정해주기 시작한것이다. 그동안 지불한 대가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수있게 된 계기를 시간과 그동안의 인고의 노력이 고험해준것이였다. 한국의 유명재단사와 함께 늘 맞춤복장을 연구하는 손향총경리 코리아패션에서 맞춤양복을 지어입은 사람들이 옷을 인정해주고 또 입고 나가니 주위에서 좋은 반응들을 보였다는 평가를 해오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맞춤양복주문도 쇄도하기 시작했다. 정계와 기업인 등 유명인사들을 시작으로 코리아패션 맞춤양복의 이미지가 높아지기 시작한것이다. 《코리아패션에서 지은 양복을 입고 한국에 갔는데 연변에서도 세련되고 품질이 좋은 우수한 디자인의 맞춤양복을 지어 입었다고하니 모두들 놀라워하더라》고 연변정계의 한 지도일군이 코리아패션에 엄지손가락을 내밀면서 격려하기도했다고 손향씨는 과거를 회고했다. 《옷의 디자인, 색갈, 무늬, 재질, 입는 방법 등과 장식에 따라 가치관이나 개성을 표현할수있습니다》손향총경리의 옷에 대한 일가견이다. 오늘날은 산업화로 물자가 풍부해지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복장차림을 하려는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맞춤복장이 날이 갈수록 각광받고 선호받는 리유이다. 손향총경리에 따르면 복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아 갈수록 코리아패션은 점점 전성기를 누리고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복장을 알고 아무 복장이난 몸에 맞기만 하면 입는 기성복 위주의 시대는 지났기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자기 체형에 맞는 옷은 물론 색상, 디자인 등 여러면에서 복장에 대한 개성적인 요구가 부단히 높아지고있으며 이러한 개개인의 까다로운 요구를 만족시킬수있는것이 바로 맞춤식복장이기때문에 날이 갈수록 영업이 잘 되여간다고 해석했다. 《기업이 오늘날 성공하게 된 비결은 무엇일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손향총경리는 고객에게 한 약속을 어기지않고 믿음을 준것이 기업성공의 제일 큰 비결이라고 진솔하게 터놓았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코리아패션은 비싼 단가만큼 거기에 대한 보장이 있었고 복장역시 일일 매매에 그치는 단순상품 매매를 벗어나 장기적인 추적봉사와 철저한 판매후책임감을 례로 들었다. 코리아패션에서 옷을 맞춘후 10년이 지나 체형이 변해 다시 들고 찾아온 옷을 새롭게 디자인해준 일도 있다고하니 코리아패션의 고객향한 봉사의 성실성을 알것 같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내몸에 맞고 내 개성과 품위에 맞는 옷을 입고 나서면 자신감에 차넘치고 멋있게 보이지 않을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손향총경리는 코리아패션이 만들어낸 옷을 입고 나선 자신감넘치는 멋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것만큼 기쁘고 자랑스런 일이 없다고 소개했다. 내가 만든 옷을 입고 나선 그 사람의 품위를 내가 만들어준다는 자부심과 긍지, 기쁨은 이루 말할수없이 크다. 이때문에 손향씨는 《코리아패션은 단순히 한 사람의 옷을 만드는것뿐만은 아닌 한사람의 품위까지 창조해준다》는 생각으로 복장문화의 깊이를 새롭게 디자인한다고 말했다. 현재 코리아패션은 연변복장문화의 《코기러기》, 연변복장문화의 《1번지》 등 다양한 기업이미지들로 연변복장업계에서 홀시할수 없는 맞춤복장의 절대적인 권위를 차지하고있다. 향후타산에 대해 손향총경리는 《하면 , 하면 이라는 기업이미지를 사람들이 떠올릴수있도록 맞춤복장의 한길만을 고집하고 싶고 정상이 어데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내처 달리고 싶다》고 밝혔다. 손향씨가 이렇게 하고 싶은것은 맞춤복장업계에서 이미 쌓은 실력과 탄탄한 기술력으로 누구도 따라올수없는 최정상을 향해 도전하고싶고 맞춤복장으로 더 많은 연변사람들의 멋있고 품위있는 개성적 이미지를 디자인해주고싶기때문이다. 기업경영에서 성공한후 손향총경리는 사회불우이웃돕기와 여러가지 공익사업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불우학생돕기, 빈곤가정돕기, 재해지구의연 등 다양한 자선공익활동들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지난 몇년간 20여만원의 물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2012-1-21) 길림신문  김태국, 안상근 기자  
4    맞춤양복은 정성을 다하는 시스템이지요 댓글:  조회:1213  추천:0  2016-04-05
코리아패션 손향사장 복장문화를 선도 코리아패션 손향사장 “맞춤양복은 고객 한분한분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다하는 시스템이지요.” 이 말은 22년동안의 끈질긴 노력끝에 맞춤형양복의 제1번지를 고수하고있는 코리아패션 손향사장의 좌우명이다. 옷이 날개란 말이 있듯이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옷차림을 단정히 해왔고 흰옷을 좋와해 “백의민족”으로 불리운다. 양복 역시 우리 민족 남성들이 즐겨입는 옷이다. 양복이 연변에 류행된 시기는 지난 80년대초 개혁개방초기이다. 그러나 당시 맞춤형양복은 저가의 원단을 바탕으로 단조롭게 가공하였을뿐 소재, 색상, 패턴이 조화로운 고품격의 디자인을 운운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양복을 입을수 있다는것만으로도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일로 여겨왔다. 맞춤형양복이 연변에서 남성의 고귀한 품위와 격조에 어울릴수 있게 복장문화로 다가올수 있게 된것은 바로 코리아패션의 끈질긴 노력과 갈라놓을수가 없다. 고객들이 단골로 맞춤복을 선호하는 리유 기성복천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치렬한 패션세계에서 코리아패션이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맞춤복장만을 추구해온 리유는 무엇때문이였을가? 손향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의 기성복이나 중국의 기성복들은 우리 연변이라는 특정된 지역의 사람들에게 맞춰진 패션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객의 신체적인 특성뿐만아니라 취향과 걸음걸이,어깨의 형태와 허리드롭, 생활방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때문이다. 기성복을 사서 고쳐입는 사람들도 있지만 옷은 고치면 고칠수록 균형이 무너진다. 그런 원인으로 신체적 특징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맞춤복을 찾는 경향이 있고 그만큼 한번 빠져들면 그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맞춤양복은 당연히 제작도 기성복에 비해 훨씬 섬세한 공정을 거친다. 기성복처럼 접착방식을 사용하는것이 아니라 손바느질로 완성하는 비접착식을 고수해 착용감이 더욱 뛰여나다. 코리아패션에 들어서면 칠순이 넘는 할아버지로부터 30,40대에 이르기까지 복장점이 설립되여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단골로 찾아오는 손님이 적지 않다. 원인은 단 하나, 코리아패션 맞춤형양복이 우아하고 마음에 무척 들기때문이다. 손향은 한국재단사와 함께 차례로 시침질로 재단한 원단을 이어붙혀 만든 가봉옷을 입어보게 하고 치수를 꼼꼼히 확인한다. 처음 매장을 방문해 원단을 선택하고 체촌을 통해 정확한 신체사이즈를 측정하는데로부터 시작한다. 가봉단계를 거쳐 한벌을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3주다. 길게 느껴질수 있지만 자신에게 딱 맞는, 세상에서 단 한벌뿐인 옷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기다림은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가봉과정이 마무리되고 봉제작업에 들어간후 섬세한 손놀림으로 심사숙고해서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마음가짐과 정성으로 단추 달기와 안감, 마감 등의 수작업을 마무리지으면 오직 자신만의 수트가 완성이다. 맞춤복의 기본은 사람을 옷이나 브랜드에 억지로 맞추는것이 아니라, 옷을 각기 다양한 사람의 몸에 최대한 맞추는것이다. 특정한 라인과 패턴을 만들어내고 시즌마다 인위적으로 디자인을 변화시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브랜드에 종속시키는것이 녀성복의 황금률이라면, 전통과 클래식을 지향하는 남성복은 일단 디자인보다는 그것을 입는 사람의 몸 그 자체에 집중하는것이라고 손향은 설명한다. “양복점을 운영하며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을 콕 집어 자랑한다면 언제입니까?” 하는 기자의 물음에 손향사장은 “양복이 완성된후 고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흐뭇해납니다. 특히 비즈니스행사에서 저희가 재단한 양복을 입고 권위를 인정받는 고객들의 모습을 지켜보는것도 저의 큰 보람이기도 합니다.”고 대답한다. 기본적으로 코리아패션의 모든 옷은 1인1패턴으로 원단 선택부터 깃의 모양까지 모두 손님의 신체특징에 따로 최적화한 선택으로 만들어준다. 한 패턴으로 몇백벌을 찍어내는 기성복과 가장 차별화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기성복에 사이즈 단위가 없는것이 아니지만 정장은 착용감이 중요한 옷인만큼 맞춤양복의 섬세함을 따라올수가 없다. 손향사장이 지난 20년동안 변함없이 코리아패션이라는 맞춤복기업을 이끌어 올수 있었던것은 맞춤복 주문, 제작, 류행, 마케팅 등 각 분야의 책임성 높은 고수들을 가장 지혜롭고 가장 적합하게 가장 유능하게 리더를 한 출중한 경영인이라는 점에 있다. 고객의 립장에서는 시선을 더욱 잡아끄는것은 아무래도 코리아패션의 한땀한땀 지어낸 손바늘질이 아닐가 한다. 섬세하고 정교롭고 신사스러운 손바느질을 확인하게 된다면 당신도 "코리아패션은 맞춤복의 지존이구나!"라고 승복할것이다. 창업으로 맞춤양복의 성공일로를 손향이 1993년 연길시로동국 보이라검험소에서 출근하던 시절, 정부에서는 제3산업을 적극 지지하였고 사람들은 다투어 하해하던 시기였다. 그때 손향도 고민하던 끝에 창업을 위해 철밥통을 버리고 하해의 물결속에 뛰여들어 지하상가에 매대 하나를 세맡게 되였다.이렇게 그는 사업가의 인생에 첫발자국을 내디디게 되였다. 당시 시장에는 많고많은 한국옷들가운데서 고급스럽고 이쁜 녀성옷들은 많았지만 남성옷이 아주 희소했다. 남성들은 호주머니에 돈은 있어도 좋은 옷 한벌 해입으려고 해도 그만큼한 물품이 없는 상황이였다. 이 점을 파악한 손향은 좋은 원단, 선진적인 기술로 고급적인 남성복장을 개척해보려고 마음먹었다. 무엇이든 시작하면 꼭 끝을 보고야마는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인 손향은 최고의 질량이야말로 사업이 성공하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했다. 제일 좋은 원단, 최고로 되는 기술을 얻기 위해 손향은 한국의 개인사업가와 손잡고 합자기업을 앉히고 한국의 유명한 기술인원에게 복장디자인과 재단을 맡기고 일을 벌려나갔다. 한국의 사업가가 원단과 기술, 인재 등 기술을 제공하였고 손향이 공장, 매대 등 비용을 부담하기로 하였다. 손향은 고작 8000원밖에 안되는 투자금으로 집세, 공장, 매대를 세맡아 일을 시작했다. 첫달 회사원들의 월급을 발급할 시일이 다가오자 손향은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갔다. 사처에서 돈을 구해보았지만 조금 모자랐다. 그는 농짝에 깊이 보관해두었던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대물린 보배로 딸에게 주었던 지참금인 금가락지마저 과감히 꺼내 팔아 월급을 줄 돈을 마련했다. 장춘에서 개최된 세계급 모델 및 한국 유명배우들이 참가한 코리아패션쇼에서. 손향사장의 노력은 직원들을 감동시켰다. 회사가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서 첫달 월급을 받은 직원들은 그후로부터 자신들의 맡은바 일에 열성을 다했다. 손향은 또한 고객들이 언제나 만족할수 있도록 신용을 첫자리에 놓고 최선을 다했다. 한번은 해외로 출장 떠나는 한 고객이 출국을 한주일 앞두고 코리아패션을 찾아와 출국전에 양복을 급히 지어달라고 사정했다. 비록 정상시간으로 3주일이 걸려야 한벌의 양복을 만들수 있었지만 손향은 흔쾌히 승낙하고 밤낮을 패가며 옷을 지어 출국을 하루 앞두고 손님에게 양복을 지어드렸다. 몸에 맞는 멋진 양복을 입고 고객은 더없이 만족해했다. 그후로부터 입소문을 듣고 고객들이 회사의 문턱이 닳토록 몰려들었다. 1998년 1월부터 손향사장은 사업을 확장해 독자기업으로 등록했다. 그리고 종신제 무료가공를 실시하고 코리아세탁소를 세워 회사의 봉사수준을 끊임없이 높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손향의 피타는 노력끝에 코리아패션은 연변주내를 벗어나 전국 나아가서는 아시아복장분야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1998면도의 연변력사상 맨 처음 패션쇼를 개최한후 그 이듬해부터 작년까지 해마다 한국맞춤양복패션쇼를 비롯해 세계주문양복총회와 아시아주문양복총회에 참가해 《아시아양복련맹패션발표회 창작품우수상》, 《한국맞춤양복기술학회 작품표창상》 등 10여개의 영예를 수상했다. 재작년에는 장춘에서 세계급모델 및 한국유명배우들이 등장한 패션쇼를 열어 감동의 장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기업경영에서 성공한후 손향은 사회불우이웃돕기와 여러가지 공익사업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몇해사이에 불우학생, 빈곤가정, 재해지구를 돕는 자선공익활동에 도합 30여만원의 물자를 기증했다. 지난해 10월, 손향은 문화부의 주최로 북경에서 열린 “동방의 정—최경호음악회” 주요 출연배우들의 무대양복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현재 손향씨의 코리아패션은 연변복장문화의 “코기러기”, 연변복장문화의 “1번지” 등 다양한 기업이미지들로 연변복장업분야에서 홀시할수 없는 맞춤복장의 절대적인 권위를 차지하고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제35차 세계주문양복련맹총회가 개최됐다.세계23개 회원국에서 6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코리아패션 손향사장은 조선족으로서 유일하게 참가했다. 손향사장이 그동안 밤잠을 설치면서 품들인 신사용 “봄가을 코트”와 “연회복” 2벌이 출품작으로 당선돼 당당하게 패션쇼를 통해 출시되였는데 동업계의 찬사를 받았다. “우리 연변에서도 외국 명품브랜드 못지 않은 남성신사복을 만들어낼수 있다는걸 보여주고싶었다”고 손향사장은 담담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향후 타산에 대해 손향사장은 맞춤양복업계의 좋은 기술과 정성이 담긴 대중적인 양복을 고객들에게 전하고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좋은 기술도 고객들이 외면하면 그 빛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축적된 기술과 디자인을 통해 보다 대중에게 다가갈수 있는 맞춤양복을 제작해 보급하며 시장을 넓혀갈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패션무대를 향한 코리아패션의 도전은 끝나지 않을것이다. 길림신문 강동춘특파기자 2016-3-17  
3    맞춤복의 지존-코리아패션 "100% 고객 만족만 추구한다" 댓글:  조회:13029  추천:2  2014-06-12
기성복천하라 해도 과언이 아닌 치렬한 패션세계에서 맞춤복만을 고집하면서 21년 외골길을 걸어온 코리아패션(考丽亚服装)은 요즘같은 불황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불황에서도 살아남을수 있었던 비결에 대하여 손향 대표는 겸손하게 말한다. "20년 세월을 함께 한 고객들의 변함없는 사랑덕분이였지요. 또한  100% 고객 만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 저희 코리아패션의 경영마인드가 고객들에게 다가갈수 있었던 가장 든든한 디딤돌이 된것 같습니다." 코리아패션의 맞춤복을 선택한 리유 "패션에 대한 감각은 나이하고는 상관없다고는하지만 요즘 신세대들을 보면 패션감각이 뛰여났습니다. 백화점에 가서 내남이 다 입는 똑같은 기성양복을 사입던 시대는 끝나고 자기만의 색갈을 살릴수 있는 개성만점의 맞춤복에 시선을 돌리는 새로운 류행이 불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손향 대표는 요즘은 70후, 80후들이 기성복 아닌 맞춤복에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고객층이 한층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소개했다. 연길시 삼꽃거리에 위치한 코리아패션에서 결혼양복을 주문제작했다는 30대 남성 리씨는  "저는 배가 나왔는데 입으면 품위있고 편안합니다. 게다가 한뜸한뜸 손바느질을 보면 명품으로 다가옵니다. 대만족입니다" 라고 소감을 말했다. 1993년에 설립된 코리아패션, 2008년에는 장춘 시가지 큰 호텔에 지사를 설립할만큼 성장하였다. 코리아패션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맞춤복만을 고집해왔다. 손향 대표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의 기성복이나 중국의 기성복들은 우리 연변이라는 특정된 지역의 사람들에게 맞춰진 패션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변 사람들은 몸매관리에 온갖 신경을 다쓰는 한국인이나 어깨가 넓고 하체가 늘씬한 한족들의 체형과는 엄연히 다른 체형을 갖고 있다. 나눔문화에 익숙한 우리 조선족은 나눠 먹는 음주문화(?) 때문에  두둑이 나온 배, 두리뭉실한 허리 등 특정된 신체적 부위로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여유롭고 살고 있는데 옷이 날개라고 엇비슷한 옷차림으로 조금은 보기 민망한 부위를 넉살좋게 가리우군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사스러운 사람에게나, 깨끗한 제복을 갖춰야 하는 직장인에게나 맞춤복은 우리의 아름다운 생활의 필수로 다가오는 것이다.    코리아패션 손향 대표   코리아패션의 맞춤복은 명품(名品) 맞춤복의 기본은 사람을 옷이나 브랜드에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을 각기 다양한 사람의 몸에 최대한 맞추는 것이다. 특정한 라인과 패턴을 만들어내고 시즌마다 인위적으로 디자인을 변화시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브랜드에 종속시키는 것이 녀성복의 황금률이라면, 전통과 클래식을 지향하는 남성복은 일단 디자인보다는 그것을 입는 사람의 몸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손향대표는 설명하였다. 재단사들은 고객의 몸에 딱 맞는 가장 아름다운 맞춤복을 제작하는 관건적인 노하우를 익혀온 기술자들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적합한 옷을 제작해주는 재단사에게 자신의 몸과 취향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재단사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개선시키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동시에 자신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도 솔직히 말해주어야 한다. 키가 커 보이고 싶은지, 슬림해 보이길 원하는지, 섹시해지길 바라는지, 아니면 더 젊어 보이는 느낌이 좋은지 그런 최종적인 목표를 정해두고서 옷을 통해 그 방향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좋은 맞춤복은 만든지 몇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멋지다. 특히 수작업으로 꼼꼼하게 만든 수트는 구조에 유연성이 있어 수명이 더 길고,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해준다. 기성복은 가능한 수선하지 않고 입는 것이 최선이지만, 맞춤복의 장점은 상의의 버튼이나 벤트(Vent; 저고리의 양쪽 옆이나 뒷자락 가운데에 터놓은 곳), 바지 주름의 수를 선택하고 취향을 반영하면서 점점 자신만의 스타일 원칙을 주체적으로 정립해 나갈 수 있게 해준다는 "미덕"이 있다. 절대적인 지침은 아니지만 잘 만든 맞춤복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데는 바느질행태를 꼼꼼히 살펴보면 안다는데 좋은 맞춤복이라면 손바느질이 기본이고 그런 손바느질은 바늘땀의 길이가 완벽하게 똑같지 않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 밖에 맞춤이라는 특성으로 자신만의 물건들을 만드는 방법은 개인 상상력의 문제다. 포켓스퀘어(양복 주머니 따위에 장식용으로 꽂는 손수건), 자신이 좋아하는 글귀를 넣는다든지, 맞춤복의 안감을 자신이 좋아하는 컬러로 해둔다든지, 아니면(블레이저 화려한 색의 신사복풍의 상의)의 버튼을 특별하게 선택한다든지. 너무 과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만의 취향이 담긴 복장, 맞춤복에서만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손향 대표가 지난 20년동안 변함없이 코리아패션이라는 맞춤복기업을 이끌어 올수 있었던 것은 맞춤복 주문, 제작, 류행, 마케팅 등 각 분야의 책임성 높은 고수들을 가장 지혜롭고 가장 적합하게 가장 유능하게 리더를 한 출중한 경영인이라는 점에 있다.  고객의 립장에서는 시선을 더욱 잡아 끄는 것은 아무래도 코리아패션의 한땀한땀 지어낸 손바늘질이 아닐가 한다. 섬세하고 정교롭고 신사스러운 손바느질을 확인하게 된다면 당신도 "코리아패션은 맞춤복의 지존이구나"라고 승복할것이다. 찾아오시는 길: 연길코리아패션 주소:연길시삼꽃거리 28-6  전화번호:0433-251-0551  장춘코리아패션 주소:장춘시인민로 1128호 전화번호:0431-88532888 조글로미디어 김단비기자 원문보기
2    손향사장 "연길10대걸출녀성"칭호를 수여받아... 댓글:  조회:1274  추천:0  2012-08-29
 연길시코리아패션의 손향사장을 비롯한 10명의 녀성이 3월 6일 연길시정부에서 주최한 표창대회에서 “10대걸출녀성”칭호를 수여받았고 왕추 등 15명은 "우수녀성상"을 수여받았다.
1    제30회 한국맞춤양복패션쇼 댓글:  조회:1771  추천:0  2012-08-2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