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7일과 8일, 올해 대학입시가 진행되던 날, 나는 차량통행이 엄격히 통제된 연변1중과 연길시2중 두 고급중학교 대문앞을 지나가다가 두곳에서 다 이런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학교부근 길목은 온통 사람들로 붐비며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학교대문앞에는 누군가 벌써 마련해놓은 대문짝 같은 널판자우에 새하얀 찰떡덩어리가 수없이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입시생 학부모와 일가친척들이 시험장에 들어간 입시생들을 위해 그들의 성공을 기원하고있는 장면이였다.
1954년 내가 중학교입학시험을 칠 때는 아직 초중교육도 보급되지 않은 때라서 입학률이 6대1이였는데 나의 할머니는 내가 혹시 시험에서 탈락하여 붙지 못할가 걱정되여 "쟤가 시험치려갈 때는 찰떡이나 한 함지 쳐가지고 가서 떨어지지 못하게 떡 붙여놓았으면 좋겠는데..."하고 말씀하시군 했다. 아마 우리 민족의 의식속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녀교육에 대한 찰떡같이 끈질긴 소망이 담긴 이러한 설법이 있었던것 같다. 다만 그때는 아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절이여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 그저 말로만 그랬을뿐 실천단계는 아니였던가싶다.
1992년 12월 22일, 한국 대학입시가 진행되던 날, 나는 서울에서 난생처음으로 입시생 학부모들이 시험장밖에서 돼지머리를 밥상우에 올려 놓고 고사를 지내기도 하고 찰떡덩어리와 엿덩어리를 입시장밖 담장에 덕지덕지 붙여놓고 입시생들이 시험을 잘 치르도록 기도드리며 전전긍긍 로심초사하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몇해가 지나지 않아 우리 연변에서도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이나 하려는듯 이런 진풍경이 연출되기 시작했고 해마다 그 규모가 날로 확대되고있는 추세이다.
도대체 대학이 무엇이길래 천군만마가 왜 이렇게 대학이라는 이 외나무다리로 몰려드는것일가?
대학은 원래 우리 인류의 력사에서 사회의 엘리트를 배양하기 위해 퍽 오랜 옛날에 발족되기 시작한 고등학부로서 이미 1500년전 구라파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이딸리아 등 제국을 중심으로 약 80여개의 유니버시티(university: 종합대학)가 있었으며 19세기초에 창설된 베를린대학이 근대대학의 본보기로 되였다고 한다.
그러면 대학에서 배양한다는 엘리트란 또 무엇인가?
영어에서의 엘리트(elite)란 정예, 지배층, 선택된 사람 등을 가르키는 말인데 아무튼 지식있고 능력있는 세련된 부류의 사람들로서 사회의 지도층이 될 사람들을 지칭하는것 같다. 한 사람이 기왕 이 세상에 고고지성을 울리며 태여났으면 힘들게 낳아주시고 애타게 키워주신 부모님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보다 높은 인생가치의 실현을 위해 설사 엘리트는 되지못할지라도 대학교육 한번 받아보고싶은것이 많은 사람들의 욕심이고 한낱 소망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오늘까지 국민의 다수가 대학생이 된 나라는 하나도 없다.
미국 마틴 트로우(Martin Trow)교수의 고등교육 3단계론에 의하면 선진국가의 대학교육은 엘리트단계에서 대중화단계를 거쳐 보편화단계로 넘어간다고 한다. 여기에서 대중화단계는 해당 년령층의 취학률이 15%를 넘어야 하며 보편화단계는 50%를 넘어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 나라의 대학교육은 어느 단계에 와 있는것일가?
2006년 2월 28일, 신화넷은 교육부장 주제(周济)의 말을 빌어 2005년도 우리나라 대학 입학률은 해당 년령층의 21%로서 국제상에서 공인하는 대학교육 대중화의 표준 15%를 초과했다고 보도했다. 뿐만아니라 2005년 우리나라는 대학교 재학생수 2300만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최대규모의 대학교육을 영위하고있는 국가로 되였으며 대학교육이 대중화단계에 진입하였다는것이다. 더욱 놀라운것은 북경 등 대도시는 승학률이 50%를 넘어 이미 대학교육 보편화단계에 진입했다는것이다. 최근 몇년사이에 북경시의 대학입시 록취률은 줄곧 70%를 유지하고있다고 한다.
1962년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는 전국적으로 고작 22만명을 초생하였는데 금년도 초생규모 530만명의 24분지 1밖에 안되는 수준이였다. 먼 옛날 얘기를 해서 무엇하랴. 근 10년사이의 변화만 보더라도 1998년 초생규모는 108만명, 1999년에는 164만명, 2000년 220만명, 2001년 260만명, 2002년 275만, 2003년 335만명, 2004년 400만명, 작년 2005년에는 504만명이였다.
나젊은 학도들에게 대학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활짝 열려있다.
대학입학이 이처럼 쉬워졌는데도 입시생 학부모들의 근심은 아직도 태산같다.
"우리 아이는 아무 대학이라도 붙어야 하겠는데 속이 싹 타 죽겠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다 대학생인데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 대학에도 못 붙으면 이게 무슨 망신이야."
"우리 조카아이는 꼭 붙어야 한다이. 글쎄 동생하고 제수가 한국으로 돈 벌러 가면서 애를 우리 집에 맡겨놨는데 저애가 만에 하나 대학에 붙지 못하면 제새끼 공부 못하는 줄은 모르고 똑 마치 우리 집탓인것처럼 두고두고 원망하겠으니 죽을 때까지 그 싫은 소리를 어떻게 들어주겠소?"
"우리 안깐이가 이제 한국에서 제아들이 대학에 못 붙었다는 소리만 들으면 나를 죽이자고 덤빌께다. 집에서 빈들빈들 놀고있는 주제에 애 하나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하는 사람과 뭘 믿고 같이 살겠는가? 당장 이혼하자고 야단칠텐데…"
"우리 아이는 모의고사때마다 반급 10등안에는 들었는데 이번엔 시험을 제대로 치겠는지 모르겠다. 십년전 우리가 리혼할 때 내가 우겨대서 아이를 내가 키우기로 했는데 걔가 대학에도 못가면 내 체면이 어떻게 되겠니?"…
시험장안에서 입시생들은 답안을 쓰기에 여념이 없고 머리가 아플텐데 시험장밖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어른들은 서로 내심속의 고충을 하소연하면서 시험종료시간를 초초히 기다리고있었다. 나는 이러한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저도 모르게 오늘 쓰고있는 이 글, "대학으로 가는 길"이란 제목을 머리에 떠올리게 되였다.
대학으로 가는 길은 지식과 학문의 전당으로 가는 길이며 인격의 새로운 수련장으로 가는 길이며 진리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시대의 광장으로 가는 희망에 차넘치는 길이다. 오늘날 현시대에 있어서 대학으로 가는 길은 인생 성공의 유일한 길은 아니지만 인생 성공의 첩경임은 분명하다.
대학으로 가는 길에서 대학입시는 하나의 중요한 관문이다. 이제 시험이 끝났으니 오라지 않아 시험점수가 발표될것이고 뒤이어 록취결과가 발표될것이다. 그러면 대학입학의 영예를 받아안은 행운아들은 들뜨고 부풀어 오른 심정으로 오매에도 그리던 배움의 전당으로 달려갈것이다.
대학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곳이다. 진짜 공부는 이제 대학에서 시작된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여러가지 기존의 지식을 배우며 지식의 편린들을 주어모으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 세상을 폭넓게 리해하는 안목을 키워가면서 앞으로 혼자 공부하고 탐구할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것이다.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있으면 대학에 못가는 학생들도 있기 마련이다. 금년도 전국 입시생이 950만명이고 초생규모가 530만명임을 감안하면 절반이 넘는 55.5%가 입학하게 되고 절반이 못되는 44.5%가 락방하게 되는데 입학자가 락방자보다 11포인트나 많은 셈이다. 이것은 성공과 좌절이 교차할수 밖에 없는, 오늘 우리가 당면한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입시에서 락방한 학생들은 너무 실망에 빠져 의기소침하지 말고 청춘의 푸른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은 대졸생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이 세상엔 학자, 교수, 음악가, 예술가, 사회지도자, 우주로케트 설계사들도 있어야 하지만 농사짓는 사람, 집 짓는 사람, 옷 만드는 사람, 쓰레기를 처리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장군만 있고 병사가 없는 군대가 어찌 적을 무찌를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인간세상은 엘리트만 수요하는게 아니고 다양한 인재를 수요한다. 때문에 대학에 못붙었다 하여 인생이 끝났다고 비관하지 말라. 뜻있는 곳에 길이 있다. 결심만 있으면 한해 더 재수하여 재도전 할수도 있고 일하면서 배울수도 있다. 어떤 일에 종사하든지 최선을 다한다면 사회에 유익한 사람으로 될수 있으며 그 분야의 전문가로 될수도 있는것이다.
만약 진정 대학입학의 꿈을 접을수 없다면 기회는 언제나 얼마든지 있다. 몇년전에 우리 나라에서는 대학입학 년령제한까지 취소하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회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는 로익장들도 있지않은가!
세상은 언제나 노력하는 자에게 성공의 기회를 준다.
2006. 6. 15.
[강룡운수필집《무궁화련정》33-38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