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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하루아침에 열매 맺는 나무 없다 댓글:  조회:375  추천:0  2021-11-02
하루아침에 성공을 한 것 같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지름길을 발견하고 편한 삶을 누리는 것 같지만 이 사람들에게 하루아침이란 없다.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힘들고 어렵던 과정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는 반복과 연습으로 무장해야 한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누구나 짜증이 나기도 하고 지겨워진다. 그러나 성취하는 사람들은 잠시라도 멈추지 않는다.   한국에서 ‘반복과 연습의 대명사’ 하면 발레리나 강수진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인터넷에서 강수진의 발을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되였다. 녀자의 발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뼈가 튀여나오고 심하게 문드러진 발, 하지만 그녀는 “몸이 아프지 않은 날은 연습을 게을리했다고 반성하게 된다.”라고 말해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침 6시 30분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건 가볍게 몸을 푸는 것입니다. 1시간가량 스트레칭을 하고 극장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연습을 합니다. 공연이 없을 때는 6시 30분쯤에 집에 돌아오고 공연이 있을 때는 밤 11시까지 연습을 합니다.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오직 연습만 합니다.”   멈추지 않는 반복과 지독한 연습이 그녀를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만든 것이다.   20세기 가장 뛰여난 바이올린 독주자인 이자크 펄만 역시 반복효과의 놀라운 기적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10살 무렵부터 세계적인 바이올린니스트가 되기까지 하루에 4시간씩 끊임없이 연습을 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는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게 정말로 싫었습니다. 똑같은 곳을 하루에 수시간씩 연습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로 넌더리가 납니다. 하지만 그런 고된 연습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것입니다. 공연을 할 때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결국 얼마 만큼 연습을 했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빛을 내기 위해선 스스로 열을 뿜어내며 타올라야 한다. 꿈은 고통을 동반한다. 때로는 안락함을 버려야 하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쉽게 그 자리에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들은 남들이 모르는 피와 땀을 흘리며 고통의 시간을 꾹 참고 견뎌야 했다. 처음처럼, 늘 변함없이 달리는 사람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큰 수확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대가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남이 한번에 능숙하면 나는 백번을 하고, 남이 열번에 능숙하면 나는 천번을 하면 된다. 과연 이 방법을 해낼 수 있다면 아무리 멍청해도 반드시 똑똑해질 것이고, 아무리 유약해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에 실린 이 문장은 재능은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어떤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힘은 타고난 재능이나 요행에 있지 않다. 열정과 노력 여하에 달려있을 뿐이다. 재능은 노력을 따를 수 없다. 불굴의 의지로 남보다 열배, 백배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미켈란젤로이다. 그는 살아있을 때는 물론 지금도 가장 위대한 조각가이자 화가로 칭송받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로맹롤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천재를 아는가? 나는 안다. 만약 천재의 존재조차 믿지 않는 사람이 있거나 혹은 천재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미켈란젤로를 보라. 그게 답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미켈란젤로 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평범하다. 내가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는지 사람들이 안다면 내가 그렇게 위대해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다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했을 뿐이다.” 실제로 그는 한번 작품을 시작하면 하루종일 일에 파묻혀 살았다. 잠도 침대에서 자지 않고 쪼그려 앉아 잠시 눈만 붙였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신발도 벗지 않았다. 다리가 퉁퉁 부어 신발이 벗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성공은 열심히 노력하며 행동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게으름 없는 노력은 재능이 생기는 토대이고 원천이며 성공의 초석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그림을 그렸고 이미 열네살에 미술학교 선생님들을 경악시킨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녹초가 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청년시절 그는 매일 새벽 6시까지 꼬박 그림을 그렸고 낮시간 동안 취침했다가 깨여나면 문을 잠가놓고 다시 9시간, 10시간씩 서서 그림을 그렸으며 74세의 나이에도 다른 화가들이 100일 동안 그리는 량을 며칠만에 그렸고 82세의 나이에도 30세에 그렸던 것과 같은 량의 그림을 그렸다.그는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동안 무려 2만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지금까지 지구상의 어떤 화가도 그만큼 많은 작품을 남긴 적이 없다.   오늘날 헤밍웨이와 스티븐 킹은 천재작가라는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이 작가의 꿈을 세웠을 때 그들은 천재작가는커녕 유망한 작가 축에도 못 끼였다. 헤밍웨이와 스티븐 킹은 빈민가에서 십년 넘게 ‘무명의 설움’을 톡톡히 맛보며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글쓰기를 해야 했다. 헤밍웨이는 녀자친구로부터 버림받아 신경쇠약에 걸렸을 때도 미친듯이 글을 썼고 시카고의 빈민굴에서 생활할 때도 그랬으며 공원의 비둘기를 잡아먹으며 살았을 때도 변함없이 미친 사람처럼 글을 썼다고 한다. 10여년에 걸쳐 출판사들과 잡지사들로부터 그토록 많은 절망적인 평가와 거절을 받았을 때도 단 한번도 실망하지 않고 매일같이 몸을 혹사시켜 가며 글을 썼다고 한다. 스티븐 킹 역시 15여년에 이르는 무명시절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온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게 글을 썼다고 한다. 그들은 이루어질 때까지 밀고나가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었고 마침내 그 믿음을 보답받았다.   하루아침에 열매를 맺는 나무는 없다. 좋은 나무가 되고 달콤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지독한 비바람을 견뎌내고 가뭄과 홍수를 참아내야 하듯 성공 역시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고통 없는 성공, 노력 없는 성공은 없다. “천재는 1%의 령감과 99%의 땀으로 이뤄진다.”는 발명왕 에디슨의 말은 명언중의 명언이다.  출처 : 연변일보   출처 : 동북아신문(http://www.dbanews.com)
17    감춤의 미 댓글:  조회:789  추천:0  2019-08-19
      미술에서는 가리고 숨기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 미술이 벌이는 수작이 번번이 그렇다. 보이기 위해 오히려 잘 숨겨야 하고, 드러내기 위해 마침내 더 비밀스러워야 한다. 감출 줄 아는 재주를 높이 친다는 얘기다.   그림에 깃든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송휘종은 그림을 매우 좋아했는데 한번은 천하의 화가들을 시험해보고자 "꽃밭 거닐고 돌아가니 말발굽도 향기로와라(踏花归去马蹄香)"란 제목을 내였다.제목의 뜻을 보면 꽃,돌아가다,말발굽인즉 구체적으로 보이는 물건들이라 표현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향기는 일종 냄새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어렵기에 수험생들을 곤란하게 하였다.어떤 수험생은 말을 타고 답청하고 돌아오는데 손에 생화 한 묶음 쥐어있는 것을 그렸고 어떤 수험생은 말발굽에 몇 떨기 꽃잎이 묻은 것을 그렸다……하지만 '향'자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오직 한 사람만이 훌륭한 구상을 하였는데 그가 그린 것인즉 한 필의 말이 질주하는데 말발굽 뒤에는 몇 마리의 나비가 춤추며 쫓고 있는 화면이었다.이 그림은 꽃밭을 거닐다 돌아가는 말의 발굽에 아직 짙은 꽃 향기가 가득 묻어있음을 형상적으로 표현하였다.이 그림은 간접표현의 수법을 운용하여 무형의 '향기'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송조 때 한번은 화공(그림쟁이)을 모집하게 되였는데 주임 시험관은 "심산에 숨은 고찰(深山藏古寺)"이란 제목을 내고 수험생들더러 그리게 하였다.수험생들은 저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세심히 구사하며 전심하여 그린 그림을 주임시험관에 갖다 바쳤다.주임시험관이 첫 번째 그림을 보니 고산준령이 잇닿은 산 아래에 한 채의 고찰이 그려져 있는지라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새로운 뜻이 보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이어 두 번째 그림을 본즉 수림이 울창한 높은 산에 한 갈래 고요하고 외진 오솔길이 있고 나무 우거진 곳에 고찰의 탑 꼭대기가 비껴있었다.주임시험관은 여전히 머리를 저었다.심산과 고찰이 그림 속에 체현되기는 하였지만 새로운 창의가 없었기 때문이다.계속하여 세 번째 그림을 주어 든 주임시험관은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이 그림에는 고찰도 없고 탑 꼭대기도 없이 높은 산에 구름과 안개가 감돌고 산기슭에는 맑고 투명한 한 갈래 개울물이 흐르는데 개울물 옆에서 한 노승이 물을 들이마시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계곡이 흐름은 물줄기가 긴 깊은 산을 의미하며 노승은 고찰을 상상케 하는바 창의가 신선하고 풍부하여 제목의 의경을 아주 철저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그림에서는 가리고 감추어야 묘미가 싹튼다   ''등 돌린 미인 난간에 기대네   섭섭해라, 꽃다운 얼굴 안 보여   불러도 불러도 돌아서지 않으니   어리석게도 그림 뒤집어서 본다네''   청나라 시인 진초남의 '뒷모습의 미인도에 부쳐'라는 제목의 시다.행간에 비치는 호기심에 웃음이 날 지경이다.   세계적인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에게는 신체적인 약점이 있었다.오른쪽 뺨에 깊고 흉측한 흉터가 있었던 것이다.전쟁터에서 승리의 훈장으로 달고 온 것이었지만 보기가 무척 흉했다.어느 날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겠다며 최고의 실력을 지닌 한 화가를 왕실로 불러들였다.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가의 입장에서는 그 흉측한 상처를 커다란 화폭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이 영 깨름직하였다.고민하던 화가는 알렉산더에게 책상에 팔꿈치를 얹어 손을 턱에 받치고 앉으라고 부탁한다.그러자 뺨에 있는 상처는 턱을 받친 손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였다.화가는 무사히 그림을 그렸고 알렉산더대왕도 그 그림을 보고 크게 만족해 했다.화가의 지혜가 놀랍지 않은가?약점을 덮어주고 전체적인 조화를 꾀함으로써 멋진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어찌 그림에서뿐이랴.일상생활에서도 감춤의 미학이 작동한다.나는 가끔 라디오로 가수들의 건들어진 노래를 들으면서 그 가수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언젠가 한번 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그런데 정작 TV에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실망이 크다.그들이 출연할 때의 차림새나 동작,자세가 내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너무 많았다.결과 때론 그들이 출연하는 대목이 나오면 아예 다른 채널을 바꿔버리기도 하였다.그냥 라디오로 들어오던 때와 TV에서 그들의 출연모습을 볼 때의 감수가 완전히 달랐다.   "감추면 꽃,감추지 못하면 꽃이 아니다".이는 15세기 일본의 배우이자 연극 이론가인 제아미가 한 말이다.뭐든지 다 드러내 보여주는 것보다 감추듯 하여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더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다. 흑룡강신문
16    남의 손을 비는 지혜 댓글:  조회:847  추천:0  2019-02-26
     총명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어느날 엄마가 그를 데리고 슈퍼에 물건 사러 갔는데 귀엽게 생긴 그 아이를 본 슈퍼주인이 사탕단지를 열어놓고 아이에게 마음껏 한줌 쥐여 가지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주인이 몇번이나 권해도 꼼짝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은 몸소 사탕을 한줌 가득 쥐여 아이의 호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집에 돌아온 후 엄마는 그 리유가 궁금해서 왜 자기절로 사탕을 쥐지 않고 슈퍼주인이 쥐여주게 했는가 물었다. 아이의 대답은 너무 묘했다.   "내 손은 작고 슈퍼주인의 손은 크잖아요, 그러니 그가 쥐여 주면 나보다 퍽 많이 쥐거든요!"   얼마나 총명한 아이인가? 때론 우리도 그렇게 사유를 바꿀 필요가 있다. 같은 일을 너도 나도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이 몹시 서툴고 남은 익숙하다. 남이 하면 빠르고도 잘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일에 익숙한 사람을 청해 하도록 하고 나는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사회적 분업이 날로 세분화되는 오늘, 우리는 남을 청해 자기 일을 돕게 하는 것의 좋은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더는 '해 뜨면 나가 일하고 해 지면 돌아와 쉬는 농경시대'의 자연경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각 방면의 합작이 필요하다. 오늘 한가지 큰일을 이루려면 많고 많은 각 분업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융합해야 한다. 혼자서 아무리 잘한다 한들 수백 명이 해야 하는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때는 혼자 하기보다 남에 의거하는 것이 낫다.   자신의 약점을 아는 것이 지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자기 혼자서 해결하지 못할 일에 맞닥뜨릴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실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도움도 받아들여야 한다. 외부의 힘을 빌리는 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뭐나 다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 태여나는 사람은 없으니깐.   자신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일이 닥쳤을 때는 주변의 가능한 모든 힘을 동원한다면 어려운 문제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시기적절하게 외부의 힘을 빌릴 줄 아는 것도 일종의 지혜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 곁에 있는 물건, 환경, 사람 등이 모두 힘을 빌릴 수 있는 대상이다. 남의 산에 있는 하찮은 돌이라도 나의 옥을 다듬는 데는 쓸모가 있다는 뜻의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도 있다. 도움을 청할 줄 알면 급박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잘 대응할 수 있다.   허심하게 묻고 배우는 것도 지혜다. 남의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면 시간,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득을 본다. 나는 처음 '론어'를 읽을 때 한글로 된 책이 없어 한자로 된 것을 보았는데 한어지식이 짧아 이해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러다 TV에서 우단(于丹) 교수의 '논어심득강좌'를 들으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면서 그 까다로운 것을 쉽게 깨닫게 되였다. 즉 나는 우단 교수의 도움을 받아 '론어'를 깨친 것이다. 학생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것 역시 같은 도리다.   인생의 성공자는 외부의 힘을 연구한 사람들이다. 외부에 있는 힘을 배운 사람들이다. 하버드대의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힘을 빌릴 줄 아는 것 역시 중요하다."라고 가르친다. 우리에겐 수시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할 상황, 혼자서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 닥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남의 충고를 구하라. 남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여라.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때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만 한다. 혼자 가기에는 어려워도 조금만 도움을 받으면 안전하게 갈 수도 있다. 때로는 쓸데없는 자존심, 남의 이목 때문에 절망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는 것, 이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 인생에도 아웃소싱이 필요하다. 사회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고립되여 산다면 기댈 곳이 없다. 자신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푼다면 인생은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무릇 성공은 내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지만, 남의 도움을 받는다면 더 빨리 성공을 거머쥘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간단히 풀린다. "삼국지"에 제갈량이 안개를 리용하여 하루아침에 조조에게서 화살을 10만대 빌린 이야기도 있다. 그래 직접 화살을 만드는 것보다 빌리는 게 오히려 낫지 않은가?   "사람은 태여날 때 남의 손에 의해서 옷이 입혀진다. 죽을 때도 남의 손에 의하여 옷이 입혀진다." 이는 인생은 남의 도움을 받으며 왔다가 남의 도움을 받으며 간다는 뜻이다. 누가 한 말인지 최고의 명언이다. 남의 손을 빌리는 것도 지혜다! 흑룡강신문
15    석자 양보하면 어떠하리오? 댓글:  조회:769  추천:0  2019-02-11
      중국 안휘성의 옛 도시 동성(桐城)에는 유명한 륙척항(六尺巷)이 있다.     청나라에서 높은 벼슬까지 했던 장영(張英), 장정옥(張廷玉)부자가 동성에 살고 있었는데 이웃집 오씨가 담을 쌓으면서 장씨네 집터를 석자나 차지했다.이에 장씨 부인은 집을 멀리 떠나 있는 남편에게 편지를 써서 긴급사연을 알렸다. 장씨는 답신에 시 한 수를 지어 보냈다.     천리 밖에서 보내온 편지가 한낱 담장 때문이라니/ 석자 양보하면 어떠하리오?/ 만리장성은 여전하건만/ 당년의 진시황은 보이지 않도다.(一纸书来只为墙,让他三尺又何妨.长城万里今犹在,不见当年秦始皇)     답신을 읽은 장씨 부인은 크게 뉘우치며 집안 식구들에게 담장을 석자 들이쌓으라고 분부했다. 이에 몹시 감동한 오씨네도 담장을 원래 위치에서 안으로 석자 들이쌓았다. 이로부터 두 집 담장 사이에는 여섯자 너비의 골목길이 생겼으며 장·오 두 집은 서로 화목하게 지내게 되였다.     이것이 륙척항의 유래이며 례양(礼让)의 미담(佳话)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곳에는 장영을 칭송하는 글과 함께 륙척항 내력을 새긴 큰 비석이 세워져있다.     '한 걸음 물러서면 세상이 더없이 넓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웃끼리 땅을 두고 다투는 것은 늘 있는 일로서 해결방법도 매우 많은데 유독 "석자 양보하면 어떠하리오"란 말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성품으로, 고상한 풍모로, 아름다운 절개로 널리 칭송되고 있으며 후세대에 덕택을 베풀고 있다. 장영은 좁아지는 땅보다 몇만배나 더 큰 것을 얻은 것 같다.     한걸음 물러섬의 내재적 함의는 매우 풍부하다.모순 앞에서 한걸음 물러서면 모순이 격화되고 사태가 커지는 것을 피할 수 있으며 리익 앞에서 한걸음 물러서면 쟁탈의 소용돌이에서 뛰쳐나와 자신의 인의의 덕행을 키울 수 있으며 감정 앞에서 한걸음 물러서면 정의 늪에 빠지거나 엉키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사람간의 갈등이다. 그런 사람간의 갈등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갈등의 해결책은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양보, 배려, 존중, 믿음, 감사, 용서, 네 탓이 아닌 내 탓... 남이 아닌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손을 내밀 때 갈등은 눈 녹듯 사라지게 되여있다. 치(寸)를 굽히고 자(尺)를 뻗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즉 작은 일을 양보하고 큰 일의 리득을 취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서로 양보에 의하는 것 이외에는 사회에서 존속해 나갈 수가 없다.     "채근담"에는 "앞을 다투는 길은 좁나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절로 한 걸음 넓어지고, 짙고 고운 맛은 짧나니 한 푼(一分) 청담하게 하면 한 푼만큼 유장하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한 걸음 사양함을 높다고 하나니, 한 걸음 물러섬은 곧 몇 걸음 나아가는 바탕이다. 남을 대접함에는 조그만 너그러움도 복이라 하나니, 남을 리롭게 함은 바로 나를 리롭게 하는 바탕이다."     그 말은 즉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한 첫 번째 지혜가 한걸음 양보하는 것이라 했다     조금은 양보하며 살아갈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양보는 때로 성공의 가장 좋은 방법일 수가 있다. 한걸음 양보한다고 해서 지는 것이 아니다. 후퇴인즉 전진이다. 링컨이 말했던가? 시비를 가리느라고 개에게 물리는 것보다는 개에게 차라리 길을 양보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그것은 개를 죽여 보았자 물린 상처는 치유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의 여정은 한 걸음에 한 발자국이거늘 누가 알랴? 다음 걸음은 희로애락중 어느 것일지? 누군가 '인생은 극과 같다'고 했다. 하기에 우리는 모두 인생의 무대에서 자기의 배역을 잘 분장해 충분히 표현해야 한다.     인생의 무대에서 사람과 사람간의 모순은 수시로 생긴다. 이때 우리는 자기의 뜻만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한걸음 물러서서 피차간에 다 돌아갈 공간이 있게 하겠는가?     세상일은 무상하다. 세상 인연이란 다 똑똑히 보아내고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침통한 교훈이 있었다. 몇해전 회사에서 일하다가 동료와 말다툼이 생겼는데 이튿날 그 일로 또 시비가 붙어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일주일 뒤 그 동료가 나를 폭행죄로 경찰서에 고소할줄이야? 억울함에 나도 맞고소를 하였다. 결국 우리는 둘 다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받았으며 그 일로 이듬해 나는 비자연장시 공무원비자임에도 1년밖에 연장 받지 못해 1년후 재차 비자연장 신청을 해야만 했다.     옛사람 이르기를 "한 순간만 참으면 바람이 자고 파도가 고요해지고, 한 발자국만 물러서면 바다가 넓고 하늘이 높아진다" 하였다. 이는 실의에 빠진 사람을 위안하는 빈 소리가 아니라. 확실한 생존 지혜이다.     한걸음 물러서라! 우리 인생 어디든 도원경은 있다.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으면 인생무대에서의 매 동작이 그토록 가볍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자신만 원한다면 자신 역시 인생무대에서의 가장 훌륭한 주역이 될 것이다. 흑룡강신문
14    실행만이 답이다 댓글:  조회:791  추천:0  2018-12-04
어느 날 한 사람이 저명한 사상가 윌리엄 블레이크를 찾아와 물었다. "위대한 사상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블레이크가 대답했다. "많이 생각하십시오."     그는 마치 보물이라도 얻은 듯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움직이지도 않고 천장만 올려다보면서 '생각'만 했다. 한달 뒤 그의 부인이 울상을 지으며 블레이크를 찾아왔다.     "제 남편이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온 뒤부터 식사도 거르고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생각만 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제 남편을 좀 말려주세요."     블레이크가 그 집을 방문해보니 부인의 말처럼 남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블레이크를 보고 가까스로 일어나 말했다.     "선생님, 그 동안 저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을 때까지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가 되려면 얼마나 더 생각해야 하나요?"     그러자 블레이크는 이렇게 물었다. "매일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는 않았군요. 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했습니까?"     남자는 "머리에 더 이상 담아둘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블레이크는 이렇게 충고했다.     "제가 깜빡 잊고 말씀 드리지 않은 게 있군요. 행동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은 쓰레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공담으로 바꿔오는 것은 후회의 한탄뿐이며 실행만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결심을 내리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성공할 희망이 없다. 우리는 흔히 남들은 성공할 수 있는데 자신은 좀체로 성공을 거둘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원망한다. 기실 일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 그 원인이란 바로 연약무능하고 공담만 늘어놓으며 견강한 의지가 없고 끈질긴 인내력이 없으며 과감히 실행하는 결단력이 없는데 있다. 성공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생각만 하고 말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재주가 있다 해도 성공하기 힘들다.     미국의 만화영화제작자 월트 디즈니는 "무언가를 시작하는 방법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몽상가로 불리던 그는 자신의 삶의 궤적에 대해 "나는 늘 꿈을 꾸며 살았으며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숱한 위험에도 맞닥뜨렸다. 하지만 난 언제나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용기 있게 실천하면서 헤쳐 나갔다."고 설명했다.     실행이 답이다. 모든 위대한 성취는 행동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지금껏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아이디어 때문도 아니고 운 때문도 아니다. 단지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과 지금이라는 입각점이다.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뒤로 미루는 것이며, 성공의 가장 확실한 디딤돌은 지금 실행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실천하기 가장 좋은 날은 오늘이고 실행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지금이다. 결심을 실천하기에 지금보다 좋은 때는 없다. 삶에서 가장 파괴적인 단어는 '나중'이고,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단어는 '지금'이다. 힘들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은 질질 뒤로 미루는 반면,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현재를 시점으로 한다. 그러므로 '내일'과 '나중'은 패자들의 단어이고 '오늘'과 '지금'은 승자들의 단어이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일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미룬다는 것이다. 꽤 유명한 자찬 묘비명이 있다. 1925년 "인간과 초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내용의 묘비명을 죽기 전에 스스로 지었다. 중요한 일을 미루는 것은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그들은 '나중에 다시 보자!'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닌다. 그들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실천을 미룬다. 미루기만 하고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우리에게 '실행력'부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성과를 내고 빠른 시간에 승진을 하고,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의 핵심자질은 무엇일까? 바로 결심을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행동지향성이다. 그러니 우리도 지금 하자. 하고 싶었던 일은 오늘부터 하자,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자. 오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도 모른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자, 노래 부르기엔 이미 늦을 수 있다. 흑룡강신문
13    강은 옛강이로되 댓글:  조회:769  추천:0  2018-09-27
      강이 좋아 강이 있는 곳에서 사는 나다. 어려서부터 고기잡이를 즐겼던 나는 봄, 가을에는 강에다 올리발이나 내리발을 놓았고 여름에는 아침저녁으로 낚시질을 다니고 낮에는 반두질을 다녔다. 수영도 너무 좋아해 여름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강에 나가 한두시간씩 수영을 즐기곤 하였다.   결혼 후에는 휴일이 되면 쩍하면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강으로 나가 함께 수영도 하고 빨래도 하고 고기잡이도 하면서 반나절씩 즐겼다. 때론 냄비와 양념과 도시락을 사들고 가서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끓여서 야식을 즐기기도 했는데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천륜지락이라고 하는가부다고 생각하였다.   바로 이렇게 낚시질을 좋아하고 수영을 좋아하고 강을 좋아하기에 나는 몇 해 전 상지 시내에다 집을 장만할 때 일부러 바로 마이허강변에 있는 곳을 택했다. 한국에서 귀국하면서 나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아파트 에 있는 강에서 낚시질을 하고 낮에는 수영을 하리라 단단히 계획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이 몇 년간 마이허의 수질은 예상과 너무나 달리 변해버렸다. 빗물에 씻긴 싯누런 흙탕물이 아니면 시커먼 도시 폐수물로 강물은 하루도 맑을 때가 없었다. 강변에서 거니노라면 물비린내 대신 악취가 풍겨오는데 그건 오물이 흘러든 강물과 강기슭에 연신 쏟아던지는 쓰레기들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오늘 이곳에서는 더는 마음 놓고 민물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강물이 이렇게 흐리고 오염되다보니 강에서는 반두질하는 사람도 수영하는 사람도 빨래하는 사람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여인네들이 강가에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빨래방망이로 빨래를 팡팡 치며 빨래하던 일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벌거숭이 아이들이 엄마들 옆에서 물장구를 치며 노는 모습도 이제는 전혀 볼수 없다. 강은 옛강이로되 강물은 옛날 강물처럼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깨끗한 강물이 아니다. 물 밑까지 환히 들여다보이고 지느러미를 하느작거리며 헤엄치는 물고기가 환히 보이는 그런 강물이 아니다. 강은 생명수라 하였지만 지금은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이렇게 오염된 강이지만 강에는 수많은 고기그물이 널려있다. 물고기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쳐놓은 고기그물들이다. 그물의 눈은 이제 작다 못해 모기장이나 방충망한데 손톱만한 고기새끼면 빠져나갈 수 있으랴. 그러니 과연 물고기씨를 말리지나 않겠는지 모른다. 자연수역에서의 '금어기(禁渔期)'를 정해놓았건만 정작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관자는 "강과 바다가 아무리 너르다고 하더라도 호수와 늪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고기와 자라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배와 그물은 마음에 그 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천하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으니 포획하는 자들이 적당한 기획을 잡아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오염된 강물로, 물고기가 없는 강물로, 자주자주 흐름이 끊기는 말라가는 강물로 사람들은 점점 강을 멀리하고있다. 따라서 지금 아이들은 강에서 수영할 줄을 모르고 낚시질 할 줄을 모르며 강에 대한 애착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스스로 바른 생태의식과 환경의식을 키워가면서 환경을 보호하고 생태를 지키는 이로 되어 맑은 강을, 물고기 우글거리는 강을 되찾아야 한다. 저 멀리 남방에서 강남 물의 고향을 되찾기에 애쓰듯 우리도 어미지향을 되찾기에 힘써야 한다. 과연 그날이 얼마나 멀까? 강만 보면 친근하게 느껴지던 시대가 그립다. 강가에 집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던 시대가 또 올까? 흑룡강신문 2018.9.27
12    인생은 두 다리로 걷는 긴 려정이다 댓글:  조회:655  추천:0  2018-08-27
제일 좋은 운동이 보행이란것은 오늘날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보행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인류는 3백만년의 진화를 거쳐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였는데 인간의 신체구조는 보행진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보행은 가장 간편하고 하기 쉬운 운동으로서 아무런 체육도구도 필요치 않고 또 돈 들일 필요도 없는 운동이다. 오늘날 걷기운동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보편적인 운동방식으로 되었는바 지금 북아메리카에서는 8천만이상이 걷기운동에 참가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걷기운동과 도보여행이 날로 현대인의 생활방식으로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이 산다는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 걷기 위해서이리라.인간은 두다리로 걷기에 당당하게 걸을수 있다.달팽이나 거부기나 뱀처럼 배를 땅에 끌면서 괴상망칙하게 기여다닐 필요도 없고 개나 돼지처럼 네다리로 기여다닐 필요도 없다.이는 하나님이 인류에 하사한 특수한 은총이다.인류의 존엄과 고귀함은 바로 두다리로 걷는데 있다.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오늘 인류는 걷는것을 부담으로 시끄러움으로 여기고 있다.기차를 타거나 자동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오토바이를 타는것으로 보행의 성질을 점차 잃어가고있다.물론 현대화속도를 반대할순 없다.그러나 현대화속도는 인류의 생명질량을 담보하는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인간의 생명질량에 해되는 속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걸음이 줄어들거나 지어 없어지는것은 우리의 생명질량에 큰 영향을 주기때문이다.우린 차를 타는것으로 시간은 절약하였지만 아름다운 사물과의 접촉시간을 줄였다.우린 산과 멀어졌고 강과 멀어졌으며 들과 멀어졌다.풀과도 멀어졌고 꽃과도 멀어졌으며 나무와도 멀어졌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될수록이면 가장 아름다운 사물과 가까이하고 그것과 친근해지며 감싸안아야 한다.전야나 초원이나 수림이나 강가나 호수가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감상하면서 거닌다거나 혹은 가까운 친구나 따뜻한 가족이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천천히 거닐면서 오손도손 다정하게 얘기를 나눈다는것은 과연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경지이겠는가?   가끔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하염없이 걸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주변의 풍경에 한번 넋을 놓아보자.가끔은 막힘없는 구름처럼,거침없는 바람처럼,도시의 아파트숲으로,산과 들과 강으로 외진 늑대처럼 헤매고 걸어보자.걸으며 보노라면 모든것이 아름답다.눈에 보이는것마다 풍경이다.길가의 나무 한 그루도,풀 한 포기도,꽃 한 송이도… 걸으며 듣노라면 모든것이 감미롭다.새들의 지저귐소리도 풀벌레의 울음소리도,돌돌돌 구르는 시내물의 잔잔한 흐름소리도…   누군가는 걸음을 잘 걷는 습관 한가지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수 있다고 한다.또 누군가는 일이 막힐 때는 무조건 걸어보라고 한다.걷다보면 불필요한 생각은 떨어져나가고 남에게 그 답을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답을 알게 된다고.   걸으라,인생이란 바로 두 다리로 걷는 긴 려정이다.무조건 걸으라,그 길이 어떠하든지.세상사람 다 알고있는것처럼 우리 앞에는 항상평탄한 길만 있는것도 아니요,정해진 길만 있는것도 아니다. 걷다가 힘들면 조금씩은 쉬였다 다시 걸으라.우리의 인생은 구간구간 차례차례 지나가야 하는 고행의 길이다. 흑룡강신문 2018.8.27
11    쉬염쉬염 가는 인생 댓글:  조회:697  추천:0  2018-07-19
두 나무군 친구가 산에서 경쟁적으로 나무를 찍어 장작을 만들어간다. 한사람은 류달리 승부욕이 강했다. 그는 친구에게 지지 않으려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나무를 찍었다. 그러나 다른 한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50분 일하고 10 분 쉬는 식으로 숨을 돌려가면서 일했다. 어느덧 산을 내려갈 시간이 되여 두 사람은 각자 서로가 수고한 결과를 비교해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셈일가? 쉬여가면서 일한 친구가 더 많은 장작을 장만했다. 승부욕이 강한 친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투덜거렸다.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도 왜 자네 것이 더 많단 말인가 ? "   그러자 다른 한 친구가 점잖게 설명했다.   "나는 10분씩 쉴 때마다 도끼날을 갈았다네."   당연히 이길 수밖에 없었다. 도끼날이 무디여 지는 줄도 모르고 덮어놓고 열심만 한다고 되겠는가? 열심히 도끼질을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쉬는 시간을 갖고 도끼날을 갈며 기름을 바르는 것이 훨씬 더 일의 능률을 올리는 길이다.   일본의 혼다 기업 창업자 혼다 쇼이치로는 “휴식을 대나무에 비유하자면 마디에 해당한다.”고 했다.마디를 맺어가며 성장해야 키 큰 대나무가 될 수 있는 것처럼,사람도 중간중간에 쉬는 구간을 가져야 강하고 곧게 클 수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평소 많은 시간을 리용하여 산책하기를 즐긴다.특히 60 고개에 올라선 후 더욱 그러하다. 산책은 나로 하여금 잠시나마  정신상, 육체상에서 느긋함을 얻게 하며 후날 건강한 신체를 보존하게 하는데 건강한 신체는 바로 이런 중요한 일들을 하는 본전이다.휴식이란 개념은 지치거나 몸이 불편하기를 기다려 휴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량호한 휴식습관을 양성하는 것이다. 생활의 지혜는 다른 데 있지 않다.배가 지나치게 고프기 전에 밥을 먹고,너무 졸려 쓰러지기 전에 잠을 자며,피곤해지기 전에 휴식을 취하면 된다.   누구나를 막론하고 사업만 있고 휴식이 없다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신체에 대한 그 어떠한 과소비나 상해는 모두 우리의 몸이 충실하게 기록할 것인바 장래 어느 시기에 우리와 총결산을 할 것이다.잘 사는 인생을 만들려고 아무리 노력한들,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무슨 일을 하든 건강을 담보로 삼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쉬지 않고 달리는 말과 같이 계속 분주한 인생은 고달프다.그래서 쉬지 않는 것은 곧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휴식을 통해 피로를 적절하게 풀어줘야 일의 능률도 올라가기 때문이다.특히 지나치게 피로해지기 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일하는 것을 운전에 비유해 이렇게 말했다.   “일할 줄만 알고 쉴 줄 모르는 것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만큼 위험하다.” 카네기 역시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휴식은 시간 랑비가 아니다.오히려 휴식을 통해 정신을 맑게 만듦으로써 더욱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다.”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제동장치가 없는 자동차와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위험하기 그지없다. 일단 피로가 루적되기 시작하면 아무리 쉬여도 좀처럼 깨끗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쉴 줄 모르면 일도 못한다.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면 적절히 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걸음을 멈추고,숨 돌릴 여유를 가져야 한다. 잠간 휴식을 취하고 나면 더 멀리,더 오래 갈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휴식은 몸과 마음의 평안과 창의성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궁극적으로 자기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지름길이다.   인생은 기나긴 려정이다.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바란다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세심히 돌볼 줄 알아야 한다.졸리면 자고 피곤하면 쉼으로써 활력을 보충해야 한다.그래야 행복해질 기운도 난다. 쉬염쉬염 가는 인생에 행복이 스며든다. 연변일보 2018,7,19
10    손님초대밥상을 두고 댓글:  조회:740  추천:1  2018-07-10
[두만강칼럼]  손님초대밥상을 두고 사람마다 각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푸짐히 차려야 성의를 충분히 표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검박하게 차려도 대방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간 한 한국인이 친구네 집으로 초대되였다. 저녁때가 되자 친구의 며느리가 저녁밥상을 올려왔다. 시아버지 밥상 하나, 손님 밥상 하나, 남편 밥상 하나였다. 이렇게 밥상이 세개인데 작은 밥상마다 밥 한그릇과 된장국 한그릇, 반찬은 꽁치 하나 구워놓고 단무지 다섯개를 썰어놓았다. 그리고 자그마한 김 일곱장, 시금치를 데쳐 썰어놓은 데다 갓을 좀 올려놓은 것 뿐이다. 이것이 외국에서 온 시아버지의 친구를 초대하는 밥상이다. 만약 우리 조선족 녀성들이라면 아마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렸을 것이다. 벤츠회사는 독일에서 제일 큰 공업집단회사인데 한번은 슈트트가르트에서 년도보고회를 하면서 일부 기자들을 초청했다. 집행 행사를 회사 행정본부 식당에서 거행했는데 식사 때 매 사람당 국 한공기, 남새샐러드 한접시, 고기 한덩어리와 감자료리를 내주었다. 손님들은 빡빡 긁어먹었다. 어떤 손님들은 빵으로 접시에 발린 남새국물까지 찍어먹었는데 아주 자연스러웠고 ‘얼굴이 깎일가봐’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식사 후에 자기절로 선택하는 단음식을 공급했는데 식사량이 많은 사람은 자기절로 더 보충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라면 식탁이 좁을세라 산해진미를 가득 차려놓았을 것이다. 내가 이번에 한국에서 돌아와 고향에 정착하게 되자 여러 친척들이 번갈아가며 우리 식구들을 초대했는데 집에서 초대하든 음식점에서 초대하든 식탁마다 너무나 푸짐했다. 료리가 십여가지씩 되는 데다 접시마다 량이 또한 많아서 절반도 먹나 마나 했다. 어떤 음식에는 겨우 저가락 몇번 오갔을 뿐이다. 음식을 좀 적게 올리라고 미리 귀띔해도 어쩌다 초대하는 귀인인데 어떻게 약소하게 대접하냐며 듣지 않았다. 내가 계산해보니 끼니마다 천원씩은 소비하는 것 같았다. 옛 직장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적어서 몇년 많이는 20여년이나 함께 지냈던 동료들이라 귀국하자 마자 돌림으로 식사초대를 하는데 역시 식탁마다 풍성했다. 그대로 버려지는 음식도 아깝고 음식값도 만만치 않아 좀 적게 주문하라고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뭐, 그러면 성의가 부족하다나? 그래서 후에는 별수없이 이 핑게 저 핑게를 대며 극력 초대를 막는 수 밖에 없었다. 귀한 친척이라고 반가운 동료라고 진정을 다해 대접해주는 그 성의는 너무 감사하지만 그들이 번마다 적지 않은 돈을 팔고 또 많은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들은 손님초대에서의 과소비는 체면 때문이란다. 과소비는 어떻게 보면 랑비이다. 랑비는 최대의 수치이고 절약은 문명의 표징이다. 절약이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것이지 한끼 굶자거나 식사를 적게 하란 말이 아니다. 입에 맞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음식을 장만해 식탁을 꾸미라는 것이다. 손님초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평소보다 색다른 음식 하나만 더 올려도 괜찮다. 손님을 초대하는 식탁에서 차린 음식이 꼭 남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주인의 진심어린 성의를 표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절약은 결코 린색이 아니다. 절약을 린색과 혼돈해서는 안된다. 위인이고 부자라도 자신이 쓰는 비용이나 남을 위해 쓰는 비용을 랑비함이 없이 아껴쓸 것을 권장한다. ‘소 같이 벌어서 쥐 같이 먹어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어렵게 마련되는 돈을 가치없이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데 써서는 안된다. 프랑스 사람들은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례의는 지키고 있지만 음식에 대해서는 거의 개의치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유럽인들의 공통점이다. 이는 우리가 따라배워야 할 바이다. 한국인들도 손님초대에서 우리처럼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지 않는다. 전문점에 가서 순대국 한그릇이나 뼈다귀국 한그릇, 김치찌개 한그릇에 막걸리 한두병이면 그만이라 역시 공감이 가는 손님초대법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길림신문 2018.7.9
9    초불로 밤을 밝혀도 어둠은 밝아진다 댓글:  조회:644  추천:0  2018-06-20
   책 읽기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다들 책을 읽지 않는 핑계거리를 한둘은 가지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것의 하나가 나이가 들어서 책을 읽어도 금방 잊어버린다는, 그래서 쓸모가 없다는 핑계다. 이는 쓸모없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것이다.   춘추시대 진(晋) 나라의 악사(乐师) 사광(师旷)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어려서 배우는것은 해가 막 떠오를 때와 같고 젊어서 배우는것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것과 같고 늙어서 배우는것은 밤에 초불을 든것과 같다.”   하루의 삶을 인생에 비유한다면 청춘은 한낮의 밝기와 같고 늙음은 깜깜한 밤에 초불을 든것과 같다는것이다.어려서 배우거나 젊어서 배운다면야 더없이 좋지만 늙어서 배우더라도 늦었다고 하지 말라는 뜻이겠다.   “젊은 시절 배우면 더없이 좋지만 이미 늙어 배워도 늦었다고 말하지 말라. 초불로 밤을 밝혀도 어둠은 밝아지니 끊임없이 비추면 밝음은 계속 이어진다. 해와 초불이 비록 다르지만 밝음은 마찬가지이고 밝음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맛은 더욱 참되다”   이 글은 조선 후기 문신 장암 정호의 노학잠 중 일부를 번역한 글이다. 저자는 63세인 경인년(庚寅年1710, 숙종 36)에 죄를 지어 궁벽한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였는데 귀양을 가서는 오로지 책만 벗삼았다.이 시기에 글을 읽으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이 잠을 지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늙어서 배우더라도 배우는것은 배우는것이고 배우는 맛은 오히려 젊을 때보다도 좋다고 이야기하는데 비록 자신이 깊은 어둠속의 초불과 같은 신세이지만 그 초불로도 어둠을 환하게 밝힐수 있고 오히려 어둠을 비춰주는 초불이야말로 진정한 빛이 된다는것을 그는 알고있었다.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 사이로 달을 엿보는것과 같고 중년의 독서는 뜰가운데서 달을 바라보는것과 같으며 로년의 독서는 루각우에서 달구경 하는것과 같다. 모두 살아온 경력의 얕고 깊음에 따라 얻는바도 얕고 깊게 될뿐이다.”   이는 청나라 문인 장조가 지은 ‘유몽영’에 나오는 글이다. 틈 사이로 달을 보니 보려 해도 그 환한 빛의 전모를 알 수가 없다. 뜰 가운데 서서 보니 시원스럽기는 해도 울타리 밖으로 비추는 달빛은 볼수가 없다. 루각우에 올라가 달을 보니 천지사방에 걸림 없이 고루 비치는 그 선연한 달빛을 한눈에 볼수가 있다. 그러나 그 분위기를 즐길뿐 이리저리 재고 따지지는 않는다. 사물을 보는 눈은 살아온 길의 길이와 너비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책을 읽고도 읽은 보람이 같지가 않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젊어서 학문에 힘쓰라고 격려하는 말이라면 ‘늙어서 배우는 맛은 더욱 값지다.’는 말은 공부에는 끝이 없으며 학문하는 즐거움은 배우는것과 삶의 경험이 맞물릴 때 더 커진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우의 글들을 곱씹으면 책을 읽지 않는 핑계 하나를 잃게 될것이다. 흑룡강신문 2018.6.20
8    벽치(癖痴) 예찬 댓글:  조회:1166  추천:1  2018-06-19
    '벽(癖)'이란 병이다. 어떤 물건이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좋아함이 지나치면 '즐긴다'고 한다. 즐기는 사람이 즐김이 지나치면 이를 '벽'이라고 한다. 즉 벽은 버릇이요, 기호요, 취미요. 습성을 가리키나 원래는 좋지 않은 기호요 나쁜 버릇을 가리킨다.   '벽'과 비슷한 뜻으로 바보라는 뜻의 '치(痴)'도 많이 보인다. 모두 무엇에 대한 기호가 지나쳐 억제할 수 없는 병적인 상태가 된 것을 뜻한다. '치'는 상식으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벽'에 대한 일반의 반응을 반영한다.   '벽'이니 '치'니 '자(疵)'니 하는 것은 모두 무엇에 대한 기호가 지나쳐서 억제할 수 없는 병적인 상태가 된 것을 뜻한다.   예로부터 '벽'이나 '치'로 불리기를 좋아하고 '벽'이나 '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며 허다한 문인들이 '벽치'를 찬미하고 있었다. 그래서 청나라 초기의 소장가 장조(涨潮)는 이렇게 반문했다.   "치(痴), 우(愚), 졸(拙),광(狂), 이 네 단어는 모두 글자의 의미가 좋은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마다 여기에 속하기를 즐긴다. 과연 멍청하고 어리석고 졸박하고 미친 듯이 사는 인생이 뭐가 좋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싶어할까?   명나라 때 오종선(吳從善)은 그의 "소창자기(小窓自紀"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생을 팔았어도 이 멍청함[痴]은 다 못 팔았고, 평생을 고쳤어도 이 고질[癖]은 못 고쳤다. 탕태사(湯太史)도 '사람은 벽이 없을 수 없다고 했고, 원석공(袁石公)은 '사람은 치가 없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럴진대 멍청함은 팔 필요가 없고, 고질은 고칠 필요가 없다."   명말 문장가 장대(張岱)도 "오이인전 서문(五異人傳序)"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 벽'이 없으면 더불어 사귈 수가 없다. 깊은 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흠'이 없으면 더불어 사귈 것이 없다. 참된 기운이 없는 까닭이다."   무언가에 병적으로 미친 사람만이 깊은 정과 참된 기운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청나라 초기의 소장가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꽃에 나비가 없을 수 없고, 산에 샘이 없어서는 안 된다. 돌에는 이끼가 있어야 제격이고, 물에는 물풀이 없을 수 없다. 교목엔 덩굴이 없어서는 안 되고, 사람은 '벽'이 없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득실을 떠나 맹목적으로 몰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겠다.   원굉도(袁宏道)는 "병사(瓶史)"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상을 살펴보니, 그 말이 맛이 없고 생김새가 가증스런 사람은 모두 벽(癖)이 없는 사람이었다"   무언가에 온전히 미친 사람만이 아름답다는 뜻이 아닐까 한다.   청(清)조 시기의 시인 노존심(盧存心)의 "납담蜡谈"에 이런 말이 있다.   "아름다운 옥일수록 흠집(瑕)이 많고, 뛰어난 사람일수록 병통(癖)이 많다. 흠집이 없으면 아름답지가 않고, 그저 옥처럼 생긴 돌덩이가 된다. 병통이 없고는 기이함도 없게 되어 끝내 호걸이 되지 못한다."   그 벽이야말로 그 사람의 기특함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는 뜻일 것이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벽과 치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동중서(董仲舒)나 두예(杜預)는 학문에 벽이 있던 사람이고, 왕발(王勃)과 이하(李賀)는 시에 벽이 있던 사람이다. 사령운은 유람에 벽이 있었고, 미불은 돌에 벽이 있었으며, 왕휘지(王徽之)는 대나무에 벽이 있었던 사람이다.   '문벽(文癖)'에는 일생을 글짓기로 살아온 노신이 있고 '서벽(書癖)'에는 책을 제 목숨보다 중히 여긴 천일각(天一閣)의 주인 범흠(范欽)이 있으며 '사벽(史癖)'에는 궁형에도 뜻을 버리지 않고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이 있는가 하면 귀까지 멀어가며 역사연구에 깊이 빠진 곽말약이 있다. '문벽'이든 '서벽'이든 '사벽' 오직 '벽성(癖性)'을 버리지 않을 때에라야 글을 써낼 수 있고 책을 모을 수 있으며 역사를 연구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벽'이 있음으로 하여 그들은 시를 읊고 글을 쓰고 책을 모으는 문인생활에서 적극적이고 낙관적이며 적막과 고독을 즐기면서 책 속에 빠지고 책에 미치는 한 몸으로 학업을 연구하는 고아한 정서를 보여주었다.   어찌 중국뿐이랴. 우리 민족의 선조들 가운데도 빼어난 '벽'이나 '치'를 가진 이들이 수두룩하다.   조선 후기 화가 남계우(1811-1888)는 한마디로 벽치(癖痴)다. 그의 나비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쁜 나비를 보면 갓 쓰고 도포 입은 채 십 리 길도 마다 않고 쫓아가 잡아서 책갈피에 끼워놓고 그리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나비에 미쳐 평생 나비만 그렸고 마침내 나비 그림의 달인이 됐다. 그래서 '남나비'란 별칭까지 얻었다.   수만 권을 독파하고 눈병에 걸려서까지 실눈으로 책을 읽어 간서치(看書痴: 책만 읽은 바보)라 불린 이덕무(李德懋), 장서가 이명오는 빌려 본 책을 주인에게 돌려보내며 정인을 이별하는 것이상의 아픔을 절절히 노래하는 등 '서치'의 행태를 보였다.   이들은 모두 예술에 득실을 잊고, 영욕을 잊고, 사생을 잊었던 사람들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았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했다 남이 뭐라 하든 말든, 출세에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자신을 사로잡은 일에 전심을 다해 몰두한 사람들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벽이 있는 자만이 독창적인 정신을 갖춘 전문가"라는 예찬론을 폈다. 그는 꽃에 미친 규장각 서리 출신 김덕형의 꽃 그림책 "백화보" 서문에 이렇게 썼다.   "'벽'이 없는 사람은 버림 받은 자이다. 홀로 걸어가는 정신을 갖추고 전문 기예를 익히는 건 '벽'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벽치가 되라. 자신 안에 잠자던 거인이 깨어나리라." 누군가의 참진리의 말씀이다. 오늘도 벽치로 될수 있는 자야말로 자신이 하는 일에 미칠수 있다. 흑룡강신문 2018.6.19
7    착한 서비스에 느끼는 감동 댓글:  조회:591  추천:2  2018-05-09
한국 한 대형할인매장에서는 '기다리지 않는 계산대' 서비스를 실시한다는 기사를 한국의 모 언론보도를 통해 읽었다. 즉 고객의 대기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새로운 개념의 계산대서비스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대형할인매장에서 수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장 개선되기를 바라는 부분이 바로 '기다리지 않고 빨리 계산하는 것'이므로 고객의 계산대기시간을 줄이는 등 '착한 서비스'를 실천함으로써 더 나은 쇼핑문화를 형성해 나가기 위해서다.   이는 또 하나의 서비스혁명인바 모든 것은 고객을 위한다는 이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착한 서비스', '최대의 서비스', '가장 훌륭한 서비스'. 이는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많이 떠올리는 구절이다. 지금 중국에서 부르짖는 '고객은 황제(皇帝)', '고객은 모든 것' 등과 뜻이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로 하는 처사와 효과는 천양지차이다.   한국생활에서 가장 마음 드는 것이라면 바로 '착한 서비스'이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재한조선족들의 공감인 것 같다. 고객을 위한 최대의 서비스를 보장해주는 한국사회에서 재한조선족들은 생활상 많은 편리를 얻고 있다.   어느날 은행에 통장을 내러 갔었는데 공교롭게도 점심 때라 직원들이 번갈아 식사하게 되었으므로 기다리는 고객들이 꽤나 되었다. 이는 중국에선 별 일도 아니요 또한 의례 그렇거니 여기게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 은행에서는 불과 30분도 안 되는 사이에 관리자인 듯한 분이 두세 번이나 고객들 앞에 나서서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기실 그날 누구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는데도 말이다.   처음 외국인등록증을 내러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 갔을 때다.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난생 처음 이런데 와보는 나는 도대체 무슨 갈래판인지 알길이 없었다. 그래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남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있는데 한 여직원이 다가오더니 무슨 일로 왔는가고 물었다. 그래서 사연을 얘기했더니 그는 나를 데리고 이리저리 다니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옆에 서서 일일이 어떻게 등록신청서를 쓰는가 가르치며 도와주었다. 그덕에 나는 그날 별로 어렵지 않게 외국인등록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서비스는 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로 제공되고 있다. 셋집에 입주한 후, 보일러를 재가동해달라고 도시가스관리센터에 전화를 하자 불과 한 시간 만에 직원이 달려와 보일러를 재가동시켜 주었고, 전기가 고장났을 때 전기안전공사에 전화를 하니 비록 퇴근시간이 되었지만 보수일꾼은 퇴근길에 일부러 우리 집에 들려 전기수리를 해주고 가는 것이었다.   텔레비와 컴퓨터선을 가설하는 날에는 전날 약속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헬로비전에 전화로 독촉하자 연신 사죄를 하며 곧 일꾼을 보내겠다고 하더니 과연 15분도 안 되어 가설을 책임진 일꾼이 달려왔다. 알고 보니 그 일꾼은 동료를 도와 한창 다른 곳에서 선을 가설하다 오는 중이었다.   그 일꾼은 우리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연신 사죄를 하더니 일을 끝내고 돌아갈 때 다시 한 번 시간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양해를 구했다. 그 바람에 도리어 내가 머쓱하고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날따라 공교롭게도 미리 예약한 컴퓨터가 배달되지 않아 선을 잇지 못했는데 헬로비전에서는 그날 두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와 아무 때건 컴퓨터가 도착하는 즉시로 전화로 알리면 곧 와서 선을 이어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휴일인 일요일도 괜찮다고 하였다.   이튿날 마침 켬퓨터가 배달되어 우리 절로 선을 이어놓고 사용하고 있는데 이틀 후 헬로비전에서 또 전화를 걸어와 컴퓨터가 배달되었는가 물었다. 배달되었으면 즉시 사람을 보내 선을 이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최대의 서비스를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문명한 나라일수록 서비스문화를 더욱 강조하며 시민들에게 최대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의 일상 생활에서의 편리를 도모하고 있다. 지금 허다한 재한조선족들이 한국은 참 살기 편하다고 하는데 이건 바로 잘된 서비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한국에서 조선족들의 삶 그 자체는 대부분이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나마 '착한 서비스'가 있기에 그 어려운 여건에서도 삶의 재미 또한 있는 것이 아닐까? 흑룡강신문 2018.5.8
6    과연 나는 술 마실 자격이 있던가? 댓글:  조회:664  추천:0  2017-09-26
    이 사회는 갈수록 술이 무서워지고 있다. 요즈음 한국의 언론 매체를 보면, 지나친 음주 때문에 야기되는 사건 사고 소식으로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지나친 음주 때문에 야기되는 각 개인의 건강문제에서부터, 청소년의 음주, 가정주부의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성추행, 음주 운전 등 각종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는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을 뜻하는 '주폭(酒暴)'이라는 말까지 새로 생겨나, '주폭과의 전쟁'이 선포되기까지 하였다.   지난 1일에는 서울에서 한 남성이 술에 취한 채 부인과 다투다 결국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고, 경북 구미에서는 지난 4월 50대 남성이 함께 술을 마시던 지인을 말다툼 끝에 살해하는 등 '주취(酒醉)범죄'는 비일비재하다.한국 경찰청이 최근 발간한 '2016 범죄통계'를 보면, 지난 한 해 검거된 살인범죄자 995명 가운데 범행 당시 정신상태가 '주취'였던 이가 390명(39.2%)으로 '정상' 상태였던 397명(39.9%)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그야말로 잘못된 술 문화가 만연된 '술 사회'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이젠 정말 우리 잘못된 음주 문화를 고쳐야 할 때이다.   술은 한민족과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우리 민족만큼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민족도 드물다고 한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술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다. 우리 민족이 즐기는 술, 이런 술에 대해서는 '백약(百藥)의 어른'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백독(百毒)의 으뜸'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술은 적절히 마신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마셔 자제력과 판단력을 상실하게 되었을 경우, 만악(萬惡)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세상살이에 경쟁이 심하고 살기가 힘들다 보니, 불안한 마음을 술로 달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술이 오히려 액운을 만났다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술을 지배해야 되는데, 술이 사람을 지배하니 너무나 안타깝다. 술만큼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음식이 또 있을까. 사람으로서 차마 못할 범죄가 술의 힘을 빌려 자행하고 있다 그래서 급기야 주폭(酒暴)이란 신조어까지 생기고 말았다   우리 민족의 잘못된 음주습관에 대해서 연암 박지원은 일찍 『열하일기』에서 "술을 마시면 반드시 취하고, 술에 취하면 반드시 술주정하고, 술주정하면 반드시 서로 싸움질을 하여, 술집의 항아리와 사발들을 남김없이 깨뜨려 버린다."라고 아주 심하게 비판하였다. 박지원의 이 말은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고질적인 음주습관을 고스란히 설파한 것이다.   술을 마시는 처음에는 대부분 술의 긍정적 요인을 기대하고 술을 마신다.어떤 기쁜 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자신의 울적한 기분을 풀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한 잔 두 잔 거듭되다 보면, 마침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끝내는 자신을 망치고 주위 사람들에게 폐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사람은 단연코 술을 끊어야 한다. 한마디로 술 마실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 민족의 문호인 송강 정철은 술을 즐기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다. 한민족의 대표적인 권주가(勸酒歌)인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세그려!'로 시작되는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지은 인물이다. 그런 송강이 46세 때 그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술이 백해무익이라는 것을 ,자신의 심신건강을 날로 해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술을 자주, 많이 마셨다. 보통, 필름이 끊긴다는 표현을 하는데 그런 경험이 많이도 있었다. 물론 많은 실수를 하였고 남에게 많은 피해를 끼쳤고 그 뒷날에는 후회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건강 생각도 하게 되고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자 하고 또 그 뒷날을 고스란히 낭비를 하는 것 같아서 절제 하려고 노력을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모든 일에 있어서 지나치면 반드시 폐해가 발생하는 법이다.이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잘못된 음주 문화에 물들어 있는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말이다.우리 스스로 술 마실 때마다 이 말을 염두에 두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술주정뱅이'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술꾼'이 되어야겠다.  흑룡강신문 2017-9-26
5    인생은 기다림으로 완성된다 댓글:  조회:668  추천:0  2017-08-07
손자가 한돐이 다 되도록 바로 걸지 못해 집식구들은 퍼그나 속을 태웠다. 뒤집 손녀는 돐이 되기 썩 전부터 걸어다녔는데. 그래서 나는 말했다 “조급해 하지 마, 때가 되면 어련히 걷지 않을라구” 과연 손자는 돐이 지난 두달 후부터 걸음마를 타기 시작하더니 넉달째인 지금은 걸음이 얼마나 빠른지 길을 나서면 달리다 싶이 하여 주야로 따라 다니며 돌보는 제 할머니를 힘들게 한다. 육아는 기다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어른들의 역할은 기다려 주는 것. 아이의 힘을 믿고, 개입하지 않으며 지켜 보는 기다림이다. 기다림이란 어떤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시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다. 일찍 피는 꽃이 있으가 하면 늦게 피는 꽃도 있다. 애들의 성장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뒤늦게 인생이 개화되는 애들을 보게 된다. 어려서는 그렇게 속을 썩이다가 뒤늦게 공부에 재미를 붙여 인생을 바꾸는 그런 자녀들도 있다. 하기에 애를 키움에 있어서 절대로 조급증을 삼가해야 한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일이건 모두 때가 있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애들도 기다려 주어야 성장하고 기다려 주어야 성숙이 가능하다. 천지분간을 못하던 아기가 어느새 지혜와 열정으로 가득한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기다려주는 것, 기다림이야 말로 어른이 지닐 미덕이다. 애들이 온전할 때까지 참아주는 것, 제 몫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랑, 그것이 바로 바른 사랑이 아닐가 싶다. 조금만 시간이 지연되면 락심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철부지 자식이 스스로 깨닫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라 너무 성급하게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설사 지체되더라도 믿고 기다려준다면 저절로 일어나서 나아갈 신심이 생기겠는데도 말이다. 자식의 내면에 스스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모들은 자식의 그런 점을 알지 못하고 또한 믿어주지 못하고 그리고 기다려주지 못해서 항상 닥달하고 꾸짖기 만 한다. 인생은 기다림으로 완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 누구나 성장의 필요한 조건은 다름아닌 기다려 주는 것이다. 길림신문 2017-8-4
4    풀이 아닌 나무가 되는 꿈을 꾸자 댓글:  조회:714  추천:0  2017-07-28
      누군가는 "위대한 포부가 위대한 사람을 만든다"고 하였고 또 누군가는 "하늘을 겨냥하는 자는 나무를 겨냥하는 자보다 훨씬 더 높이 쏜다"고 하였다.그리고 고리키는 "뜻을 산꼭대기에 둔 사람은 절대로 산허리의 기화이초를 떠나기 아쉬워 등산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고 하였는가 하면 발자크는 "위대한 욕망이 없으면 위대한 천재도 없다."고 하였다.   공자의 제자에 자하(子夏)란 사람이 있었다.그 자하가 거부 땅의 유수로 임명되었을 때 정치에 대해서 공자에게 물었다.그때 공자는 이런 대답을 했다   "급히 서둘지 마라,작은 이득을 꾀하지 마라.급히 서두르면 통달하지 못하고,작은 이득을 얻으려 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이 마음가짐은 정치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도 해당된다 하겠다.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전진한다.그렇게 하면 서두르는 일도 없을 것이고 작은 일을 넘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공자의 말은 언뜻 보기에 평범한 것 같지만 우리의 정곡을 찌르는 면이 있다   '열자'에 이런 말이 있다.   "배를 한입에 삼킬 만큼 큰 물고기는 강의 지류에서 놀지 않는다.(呑舟之魚不游支流)"   인생의 목표는 크고 높게 가질수록 좋다.처음부터 작고 낮은 목표를 세웠다가는 그만한 수준에 머무르고 말기가 쉽다.그런 점으로 볼 때 큰 목표를 세우고 일에 착수한다면 설령 반밖에 실현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목표를 세웠으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환경을 갖출 일이다.'支流'와 같은支路에 한눈 팔지 않도록 하고 항상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여야 한다.때에 따라 천천히 가도 상관없다.그러나 큰 목표에서 눈을 떼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겠다.   "그릇이 큰 사람은 작게 받아들일 수 없고,그릇이 작은 사람은 크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이 글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이승소(李承召:1422~1484)가 한 말이다.사람은 저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현재는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미 한계에 도달한 사람이 있으며, 앞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이는 각자의 그릇이 다르기 때문이다.작은 그릇을 가진 사람은 조금 채우고 나면 아무리 더 담고 싶어도 더 이상 담을 수가 없다. 그러나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은 담는 대로 모두 받아들여 차후에 큰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도 살피지 않고 무작정 채우려고만 들지 말고 우선 그릇을 키우는 데에 힘써야 할 것이다.   하나는 풀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처럼 사는 것이다.전자는 살아 있다 해도 얼마 자라지 못하며 사람들에게 밟혀도 동정을 받지 못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후자는 밟혀서 흙 속에 묻혔더라도 스스로 자랄 수 있으며 살아서는 아름다운 풍경이 되고 죽어서도 의연히 기둥감이 된다. 여기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모두 쓸모 있어야 한다"는 표준을 견지해야 한다고 깨우쳐주었는데 이 표준은 인생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정신적 좌표가 될 것이다.   고리키도 "한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가 위대할수록 그의 재능도 더욱 빨리 발전하는데 그것은 사회에 대해서도 아주 유익하다.나는 이것도 하나의 진리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인류 최고의 물리학자인 뉴턴은 금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30년간 연금술을 공부하며 10만 페이지에 이르는 기록을 남겼다.비록 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뉴턴은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후대에 그의 기록을 읽은 한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뉴턴은 이 시대의 첫 번째 인물이 아니라 마지막 마법사였다"   꿈을 품으려면 기왕 큰 꿈이어야 하니 이제 더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아야겠다.꿈과 이상은 드높고 크게 키우고, 그 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야겠다.   "우리에겐 세상에 없는 것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JF 케네디의 이 말을 영원한 진리로 삼고 싶다. 흑룡강신문 2017-7-28
3    이웃사촌 댓글:  조회:758  추천:0  2017-05-09
“발 뒤꿈치도 한번 들지 않았었구나/몸 낮추어도 하늘은 온통 네게로 왔구나/울타리 하나 세우지 않고도/꽃밭을 일구었구나/올망졸망 어깨동무하고 사는구나”   이는 란 제목의 지하철 시로서 제가 서울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에서 베껴온 것입니다.‘몸을 낮추고’,‘올망졸망 어깨동무 하고’이웃들과 함께 사는 삶의 소중한 리치를 시인은 작은 꽃 채송화에서 발견합니다.   속담에 멀리 사는 형제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려운 일, 즐거운 일에 항상 부닥치며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즐거운 일은 함께 나누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맛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다정한 형제자매 지간이라 하더라도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면 마음뿐이지 실제로 이런 정과 어려움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담장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이웃 간 사이 좋게 지내다 보면 이런 일은 흔히 이루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엊저녁 빌라 주인이 한 빌라에서 세를 내고 사는 사람들을 몽땅 자기가 살고 있는 3층에 불러다 풍성한 저녁상을 차려놓고 함께 식사를 나눴습니다. 한 빌라에서 사는 사람들인 것 만큼 서로 얼굴도 익히고 얘기도 나누며 정을 쌓아 앞으로 화목하고 따뜻한 이웃으로 될 것을 기원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주인의 이 처사에 매우 감복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고층 아빠트에 비하면 낮고 아담해서 단출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과 빠듯해지는 생활만큼 각박한 마음 탓에 지척에 있어도 천리에 있는 듯 같은 층에 살고 있는 이웃과 안부조차 나눌 여유가 없다는 건 이곳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빌라에는 모두 여섯세대가 사는데 그중에는 주인을 포함해서 우리까지 네세대가 올여름 주인이 이 집을 사서 수리한 후 새로 이사온 집들입니다. 그러니 주인 내외를 내놓고는 여적 어떤 이들과는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고 어떤 이들과는 가끔 만나기는 하지만 아직 말 한마디 건네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의미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단지 전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이웃과 안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는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지는 것 뿐이 아닙니다.   누군가 이웃이란 힘이 들 때 가서 얘기할 수도 있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서로 기뻐해주는 곳이라 했습니다. 작은 관심사 하나로 모이고 즐기고 소소하게는 반찬도 나누어 먹고 술자리도 갖고 퇴근길에, 주말에 찾아가 수다를 떨고 싶은 소통의 온기가 가득한 공간이 바로 이웃들입니다. 안 쓰는 것 나눠쓰고 필요한 것 같이 만들고 작아진 아이 옷도 나누고 안 쓰는 물건들도 나누며 부침개며 팥빙수며 음식도 나누고 그리고 무엇보다 정과 소소한 재미를 나누는 곳입니다.   무엇을 하지 않고 쉬고 놀고 수다를 떨고 같이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곳이지요. 이웃 분들이 혼자 산다고 반찬도 가져다 주고 김치도 챙겨주는 등 서로를 알아가고 챙겨주는 일이 이웃사촌의 본질입니다 우리 빌라의 주인집은 이 면에서 항상 본보기를 보여줍니다.주인님은 남이 선물한 좋은 술을 곧잘 이웃한테 보내주고 사모님은 김치를 담그면 꼭꼭 이웃에 보내줍니다.   이번에도 참 좋은 이웃들을 만났습니다. 짐을 무겁게 들고 오면서 복도 문을 어떻게 열가 근심하는데 3층 집 처녀애가 멀리서부터 달려와 문을 열어주고 짐까지 들어줍니다. 안해가 량손에 남새를 들고 오는데 멀리서부터 봤는지 4층 집 대학생 총각이 복도문을 연 채 안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웃사촌이란 말 그래서 생겨난 것이 아닐가요.   “출근합니까?”, “김장고추를 샀네요.” 평범한 인사말이지만 이런 인사말을 주고받노라면 마음이 더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비록 농촌의 인심과는 비할 바가 없겠지만 나름대로의 시내인심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이웃들이 있으니 삶이 참 성수가 납니다.이웃과 마음을 활짝 열고 산다면 삶이 한결 신바람 나고 그리고 세상도 한결 밝아질 것입니다.   전에 《좋은 생각》이란 잡지에서 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산골 마을에서는 이웃보다 소중한 사람이 없습니다. 팽기할아버지 집 아궁이 옆에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났을 때 얼른 달려가 불을 끈 사람도, 갑자기 가을비 내릴 때 길 우에 여기저기 널어놓은 나락을 함께 덮은 사람도, 혼자 사는 인동할머니가 살아 계신지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사람도, 사슴농장 아주머니가 화상 입었을 때 아침마다 보건소에 모시고 간 사람도, 설매실 어르신이 경운기 사고로 피 흘리며 쓰러졌을 때 병원에 모시고 간 사람도, 새터할머니가 날이 갈수록 정신이 없어 가스레인지 불을 켜 놓고 산밭으로 나갔을 때 가서 가스렌지 전원을 꺼준 그 사람도, 밤새 눈이 내리면 아침 일찍 동네 길 눈을 치는 사람도 모두 가까운 이웃입니다… 피붙이가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이웃만큼 소중하지는 않습니다. 119구조대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이웃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오늘 이 도시에서도 바로 이와 같은 옛 이웃의 풍경을 만나니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크고 작은 일들을 겪다 보면 남에서 이웃이 되고 이웃에서 이웃사촌이 되어간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길을 내고 살아야 하리/마음에 가선도로/그대와 거래할/사랑의 회선 하나/고독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 하나/속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이야기 나눌/별자리 하나쯤”(서울 지하철 6호선 역촌역에서 베낌)   유감스럽게도 10여년을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이웃들, 층간 소음 때문에 고소는 물론 살인까지 저지르는 이웃들. 이웃 사이에 너무도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래서 마음에 간선도로,사랑의 회선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시인도 안타까워 했을 것입니다.지금 곁에 있는 이웃들을 좋은 인연으로 만들며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길림신문 2017-5-9
2    부부의 사랑이란 댓글:  조회:1255  추천:1  2017-05-09
썩 전에 인터넷에서 라는 제목의 시 한수를 베껴 놓은 적 있다.    “그날 당신의 새 차를 몰고 나갔다가 충돌사고로 차를 망가놓았을 때 저는 당신이 노발대발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날 당신이 새로 사온 주단 여기저기에 딸기과자를 토해놓았을 때 저는 당신이 꼭 저를 역겨워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날 제가 당신을 억지로 끌고 바다가로 나갔을 때 과연 당신의 추측 대로 비가 내렸어요 저는 당신이 ‘내 언녕 비가 온다고 했잖아’하고 원망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날 나는 모든 남성들과 희희닥거리며 일부러 당신이 질투하게 만들려 했어요 당신은 과연 질투했어요 저는 당신이 꼭 저를 떠나갈 줄 알았어요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날 무도회에 갈 때 례복을 입어야 한다는 걸 저는 미처 알려드리지 못했어요 청바지를 입은 당신은 그만 체면을 잃었어요 저는 당신이 꼭 저를 버릴 줄 알았어요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래요, 당신은 허다한 일을 그러지 않았어요 당신은 많은 것을 인내하며 저를 사랑하고 보살폈어요 저는 당신에게 보답하고픈 것이 너무나 많았어요 그래서 당신이 윁에서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렸어요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요”   한 미국 부인이 지은 이란 이 시는 솔직한 고백과 서술로 사람들을 깊이 감동시키고 있다.   이 시의 저자는 평범한 미국 부녀로서 딸이 네살 때 그의 남편은 윁남전에 나갔는데 불행히도 전사하였다. 부인은 더는 재가하지 않고 종신토록 딸과 함께 서로 의지해 살다 년로하여 병으로 세상 떴다. 딸은 어머니의 유물을 정리하다 뜻밖에도 당년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쓴 이 시를 발견하였다.   이 시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부부 간의 이야기를 묘사하였다. 장난기가 심하고 데면데면한 안해에 대하여 남편은 항상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남편의 새 차를 몰고 나갔다가 운전 잘못으로 차를 망가놓아도, 과자 부스레기를 온 침실에 널어놓아도 , 공식적인 연회임을 알려주지 않아 청바지 차림으로 참석하여 체면을 잃어도 종래로 화를 내거나 불쾌해하지 않았으며 반대로 매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안해의 손을 잡아주고 살뜰히 보살펴주었으며 추호의 원망도 없었다.   부인은 남편이 전쟁터에서 돌아와 함께 락을 누리며 지금까지 자기를 보살펴준 은혜에 보답하려고 했지만 다시는 남편을 만날 수 없게 되였다.   부부란 바로 이처럼 아끼고 사랑하고 그리며 살아가야 한다. 부부의 사랑이 꼭 화려한 이벤트와 요란한 선물로 가늠되는 것은 아니다 .부부 간의 사랑이란 것은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가운데서 소리없이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부부란 육체적인 강렬함보다 정서적인 안정감이 바탕이 되여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인생을 더욱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늘 서로 아끼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방법뿐이다. 길림신문 2017-5-9
1    오늘 밤도 '명심보감'에 미쳐본다 댓글:  조회:670  추천:1  2017-04-19
오랜 세월 수많은 책을 읽어오면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가 많기는 하지만 《명심보감》처럼 나를 미치게 하는 책은 없다. 벌써 세번째로 읽는데 아무리 읽어도 지루한 줄 모르고 점점 더 읽고 싶은 책이다. 《명심보감》은 도덕적으로 사람의 심신수양에 알맞는 말과 행실을 성현들이 남긴 책 곧 경사자집(經史子集)에서 뽑아 엮은 문집이다. 그 내용도 생활적인 지침에서부터 옳바른 처세를 위한 여러 경구들, 행동의 좌우명, 그 밖에 인생에 지혜가 될 만한 말들을 다양하게 수록해 놓았는데 수천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자연과 인생에 대한 격조 높은 생활철학은 어느 것 하나 동양정신의 향기로운 진수를 담고 있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이름대로 사람의 마음을 밝혀주는 보배로운 거울이 될 만한 값진 책이다. 여러 고전 중에서도 《명심보감》은 고금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폭넓게 읽혀진 책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서양의 《탈무드》와 견줄  수 있는 책이라 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여러 고전 중에서도 《명심보감》은 특별히 애독되여온 수양서요, 오랜 세월에 걸쳐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이 반드시 숙독해야 할 교훈집이요, 처세훈집이였다. 이 책은 고려 충렬왕 때 추적(秋藡)이라는 사람이 지은 것인데(명나라의 범립본(范立本)이 지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여기에서 ‘명심’이란 마음을 밝게 한다는 뜻이며 ‘보감’은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뜻이다. 《명심보감》은 옛사람들의 격언을 모아서 귀감으로 삼은 것인데 그 모든 말들이 일관된 하나의 흐름으로 통일되여있으니 그것이 바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道)이다. 즉 이들 내용을 한마디 말로 묶으면 사람은 마음가짐과 행실을 바르게 기르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한 것이 대부분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되비추어주는 거울 앞에 서면 누구도 적라라한 자신의 모습을 숨길 수 없다. 특히 마음의 거울 앞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명심보감》은 바로 우리에게 그 마음의 거울이 돼주는 의미 깊은 명저(名著)이다. 내가 《명심보감》을 즐겨 읽는 것은 또한 이 책에 실려있는 문장들이 결코 어렵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요, 바로 나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는 것, 배움에 게을리하지 않는 것, 남과 어울려 살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물건을 아끼는 것 등이 모두 《명심보감》에 나와 있는 이야기다. 이렇게 작은 것들이 내가 옳고 바른 사람이 되는 밑거름이 되여주고 내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바른 행동들을 알려주고 있다.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 책에 실려있는 명언이나 경구를 값진 나의 생활신조로 삼아 어진 품성과 착한 슬기를 기르고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닦으며 나와 남, 우리 가정과 사회가 어울려 사는 복잡한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며 살아간다면 나의 삶도 빛이 더 나지 않을가?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는 해법의 하나가 고전 읽기이다. 《명심보감》에서는 인간은 무엇이며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인지 자극적이지 않게 조근조근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 나는 이 글을 읽어가면서 지혜를 배운다. 옛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법을 배운다. 방금 읽은 한구절에서도 심오한 도리를 체득했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의를 알지 못한다.” 사실 옥인지 돌인지는 다듬어 놓았을 때나 아는 거다. 다듬어 놓기 전에는 보통사람들이 보면 그냥 돌일테니까 말이다.아무리 눈부신 보석이라도 땅속에서 캐내여 다듬지 않으면 영원히 그 빛을 발할 수 없다. 아름다운 옥도 깎고 다듬을 때 비로소 옥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제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 해도 그것을 찾아내여 계발하지 않으면 결국 쓸모없게 되고 만다. 바로 이 때문에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호기심도 많아지고 얻는 지식도 많다. 소강절은 뭘 하는 사람이고 사마온공과 소열황제는 또 누구 누구이지? 그리고 《경행록》이란 어떤 책이고 그래서 상세한 한자풀이와 더불어 배경지식까지 함께 읽는데 그 재미 또한 쏠쏠하다.가끔 눈을 감고 금방 읽은 구절들을 외워도 보는데 짧은 문장이라도 직접 외우면서 뜻을 되새기노라면 고전은 어렵다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묘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삼라만상이 잠든 깊은 봄밤, 책상을 마주하고 환한 등불 아래 서책을 펼치니 이제는 가고 없는 옛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처음 읽을  때는 보석처럼 찬란하게 다가와 눈이 부시게 하더니 다시 앞으로 돌아와 거듭 읽어가는 사이 점점 그 말에 젖어들어 마음 깊이 전해온다.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 읽고 또 읽으면서 전에는 소홀히 지나치고 미처 보지 못했던 의리(義理)를 깨닫고는 그 기쁨에 시간가는 것도 잊어버린다. 나는 옛것을 좋아하는 성벽(性癖)으로 밤마다 고전을 읽으며 서향(書香)에 취해있다. 《역경》에 재미 붙인 공자의 ‘대나무쪽을 꿴 소가죽끈이 세번 끊어졌다’는 력사상 유명한 〈위편삼절〉도 과연 멋있음을 이젠 알았으니 나의 《명심보감》도 보풀이 일 날이 멀지는 않겠지 ? 길림신문 2017-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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