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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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말' 또 그 '말'을 말해본다(수정고) 댓글:  조회:1004  추천:4  2015-04-24
    인류의 사유 도구이자 사회 정보전달의 수단인 언어는 인류의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지목된다. 서로 다른 민족에게 언어의 체계는 다르며 언어의 상이성은 여러 민족공동체의 구분에서 중요한 징표로 된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의 언어학의 대가인 홈볼트는 자신의 언어학 리론에서 “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의 정신이며 민족의 정신은 그 언어”라고 설파하면서 “언어를 소유한다는것은 현실에 대한 관념과 더불어 그 문화를 전승케 하는 언어를 물려받는다는 뜻이며 언어는 각자가 고유하게 세계를 파악하고 기술하고 리해하는 토대가 된다”고 밝히고 언어는 세계관(Weltanschauung)의 형성에도 불가결의 요소임을 강조했다. 특히 조선족처럼 이중언어생활을 하는 민족에게 있어서 자민족의 언어규범과 언어를 포함한 문화적 패턴에 대한 소홀과 외면은 민족의 정체성에까지 영향을 줄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임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현실은 그 괴리를 심심찮게 선보여 주변을 안타깝게 한다.     민족언어를 고양하고 지키는곳이 바로 학교이고 교사이며 이들이야말로 우리 언어의 파수군이라고 말할수 있다. 하지만 이곳도 이미 무풍지대가 아니다. 행정사무 일상 언어가 이미 오래전부터 거의 다 한어로 된 현실은 어쩔수 없이 받아들인다쳐도 지금 민족언어의 산실이고 민족 문화 고양의 전초기지인 조선족학교도 주체민족 언어의 충격을 결코 비껴갈수 없는 현실에서 곤혹을 치르고 있다는 점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특히 산재지역의 적지않은 조선족학교에서 인젠 조선어문을 제외하고 우리 말로 출판된 교과서조차 쓰지 못하고 있으며 주요한 교수용어가 한어로 전이되고 있어 주변을 안타깝게 한다. 산재지역 모 조선족학교의 교장에 따르면 그 주되는 원인은 애들이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데 있다고 한다. 하지만 머리에 의문부호가 그려지지 않을수 없다. 그전에도 이 지역에 숱한 조선족애들이 무난하게 우리 말로 공부하고 우리 말 교과서를 썼는데 대체 어느때부터 애들이 우리 말조차 못알아들었는지? 사회여건이나 주변환경이 이렇게 만들었을가(?) 아니면…그나마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가정의 애들이 우리 말을 그래도 좀 낫게 구사한다고 한다. 여러가지 원인가운데서 결국 우리애들의 민족언어 사용에 차질을 빚게된것은 많이는 우리 말 언어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탓, 즉 가정언어환경으로 그 윈인의 천평이 기운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결론이 치밀한 조사와 접근으로 내려지지 않았지만 가장 일상적인 우리 말 대화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애들을 보면서 우리 부모들의 자성이 더러  요청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말 언어환경이 주로 가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산재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 중학교에 학생을 둔 부모라면 60년대말 아니면 70년대 출생한 세대들에 해당한다. 이 세대는 사실 정치풍파가 교육의 형식이나 내용 지어 기회마저 좌지우지 하던 시기와 구별되는, 개혁개방후에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은 세대들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 세대들 일부(?)가실리를 바탕으로 한 “미래지향적인 안광”으로 모두 한어에만 매달리고 우리말을 홀대했다면, 혹자는 가정에서 우리 말에 별로 신경 안쓰고 살았다면 사회나 행정시책들이 주는 영향력을 잠시 떠나서 우리 부모들 생각자체에는 문제가 없는지 한번 가슴에 손을 얹어봐야 할 일이다. 얄팍한 실리에 매달려서였든 아니면 불감증에 걸려서였든, 자의든 타의든 결과적으로는 부모의 방심과 차실로 후대들이 민족의 부호를 서서히 잃어가고 정체성의 상실속에서 살아가게 될것이라는것을! 공성은 언제나 개성과 공존한다. 개성이 없으면 공성도 역시 담론이 불가하다. 통합 역시 개성속의 통합일뿐이다. 서로 다른 개체와의 민족의 구분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적인 징표가 사라지면 다른 문화적인 부호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 상례다. 역사를 반추해봐도 한때는 중원에서 사슴을 쫓으며(中原逐鹿) 천하를 호령하던 민족이 지금은 자신의 말도, 글도 없이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는 무가내한 현실을 우리는 보아왔고 보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그나마 애들을 한족학교가 아닌 우리민족 학교에 보내온 부모들, 산재지역에서, 대도시에서 강대한 주체민족문화의 포위속에서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애들을 조선족학교에 보내는 그 몸부림을 눈물겹게 치하하고 싶고 그 뜻이 가상하다고 할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산재지역 조선족 학교의 현황을 들여다보면서 학교가 아닌 가정의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것도 역시 부모들 나가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초미의 문제로 대두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또한 가정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정부부문의 시책 역시 상기의 현상을 유발할수 있는 빌미가 될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당면 공무원 시험이나 기타 사업단위 인원등용제도에서 보면 부정비리 차단의 장치로 사람을 쓰는 단위가 행사하는 역할이 대폭 위축된것은 자타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획일화된 행정지침으로 전문성을 강조하는 실무위주의 사업단위의 인재 영입에는 부적절한 요소도 동반한다는 언중의 평가도 적잖이 들려온다. 그리고 정부행정관련부서에 힘이 많이 실려지게 되면 힘의 역학적 론리에 따라 역으로 또 다른 부정비리를 부를수 있는 소지가 있고 그 리스크도 감내해야 한다는 일가견 역시 간과해서는 안될것 같다.  순 우리말로 일하는 회사의 경우 이를테면 조선말 잡지사 같은 경우에 비록 영입 사원에 대한 회사의 요구가 어느정도 인사부문을 통하여 실현된다고 보아도 현재 실행되고 있는 필답과 면접이라는 이중 시스템으로는 그 사람의 직업적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지목되는 조선어 능력을 제대로 테스트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전문성과 덕목을 함께 테스트할수 있고 또 부정비리도 단절할수 있는 보다 완벽한 영입시스템이 고민되여야 할 시점이다. 인재등용에서 언어로 인한 불리익이 결국은 제반 사회 대중의 가치판단과 추향에 영향이 미치고 있음을 해당 관계자들은 명심해야 할것이다.    류동성이 강하고 강한 생활력과 적응력을 수반한 민족군체의 특질 역시 우리의 언어 사용에 문제점을 안겨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일례로 우수한 조선족 젊은이들의 교원직업기피와 동반한 한족교원영입 역시 일부 학과목에서 우리 말 교과서 사용이  불가능한 요소로 등장하고 나가서는 언어습득과 사용을 방해하게 만든다.    언어학의 차원에서 접근해보면 지금 세계는 다중언어구사능력(multilingualism)이 류행으로 되고 있으며 단일언어보다 이중언어거나 다중언어 사용자가 더 많다. 일반적으로 다중언어 구사능력이 지적 기능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다중언어구사능력을 이 사회가 필요로 하고 있고 또 다중언어능력소지자가 단일언어사용자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경험에서 우위한다는 점도 연구를 통하여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애들에게 그 플랫폼을 만들어주지 않거나 부모의 짧은 안목에 비롯된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에 안주하여 애들의 언어사용문제를 도외시하거나 안일하게 대처하는 애들에게 날개를 더 달아주지는 못할지언정 있는 날개마저 꺾는 우를 범한다면 참 통탄할 일이 아닐수 없다.     말은 언제나 말해야 말이 된다. 
7    소 잃기전에 외양간 고쳐라 댓글:  조회:2894  추천:141  2008-05-15
소 잃기전에 외양간 고쳐라김창진  요즘 이른바 모아산 새 등산길 2기공사를 두고 인터넷을 포함해 항간에 반발이 거세다.그 파장의 초점은 하나같이 새 등산길 포장방식, 바로 천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하여 화강암, 대리석으로 넓이 2메터 되게 등산길을 포장한다는 해당부문의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된 공사추진에 있다.     연길도심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연길시민의 등산과 유람의 명소인 모아산이기에 그만큼 연길시민들의 관심이 뜨거울수밖에 없다. 열기가 확확 풍기지 않으면 차디찬 콩크리트와 매캐한 매연으로 숨이 턱 막히는 도심의 일상에서 탈출하여 자연에 잠간이나마 몸을 잠그며 지친 심신을 추스릴수 있는 곳 중에 가장 쉽게 발이 닿는 곳이 바로 모아산이다. 산이 좋은것은 공기 시원하고 물 맑고 자연의 훈향이 듬뿍듬뿍 묻어난다는데 있다. 산의 매력 포인트가 바로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원초적인 자연이라는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사실 산에 있는 나무를 그대로 두면서 원래의 등산길을 나무로 포장하여 만든 1기공사에는 별로 반발이 없었던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번만은 아니다. 산에 화강암이든 대리석이든 한벌 씌워보겠다는 정부의 착상이 어떻게 출범했는지 몰라도 그 대의명분을 살펴보면 시민들에게 여가생활을 즐길수 있는 쾌적한 공간을 마련해주려는데 있음이 분명하다. 정부행정시행의 목적도 바로 인간본위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친민적인 조처라는데 착안점을 둔것이라고 사료된다. 그럴진대 굳이 흙을 덮어버리고 풀을 파던지고 나무를 없애고 발바닥을 딱딱하게 올리받치는 포장길을 만드느라고 어렵사리 모아진 시민의 세금을 쏟아붇는다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너무 서뿔리 내린 용단이라고는 폄하를 받을만 하다. 시민에게 편의를 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것이라면 사전에 시민을 대상한 청문회같은것도 있어야 했었고 또 여러분야의 전문가들의 조언도 들어본 다음 움직여야 했을 사항이라고 보아진다. 물론 결책자체의 대의명분과 목적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지만 물건을 만들자면 쓸 사람의 입장을 우선시 해야 되는것처럼 그 활용의 주체인 시민들의 편의와 생각을 최대한 배려해주는것이 상식인듯 싶다. 황차 천만원이라는 꽤나 어마어마한 투자도 있고 하니말이다. 돈도 적게 쓰고 환경도 파괴하지 않는 방편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를 충분히 감안하고 고민하는것이 정부의 책임이고 도리이다.     친환경은 지금 국제적인 추세이고 국내에서도 환경에 대한 중시는 어느때보다 중요한 사안으로 다루어지는 시점이다. 환경을 희생하면서 이룩하는 발전은 지양되여야 하고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발전이 아니라는것이 지금 글로벌 사회의 정론으로 정립된지도 오래다. 그것은 그 소위의 《발전》으로 하여 치른 인류의 대가가 너무나 처절했고 또 지금도 계속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를 포함한 인류는 현재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현대문명의 향연을 만끽하는 동시에 그 발전과정에 짓밟았고 혹사하였던 자연의 보복을 받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가 바로 그 일례다. 지금 친환경주의가 지구촌에서 대두하고 환경보호에 대한 중시도가 날이갈수록 높아지는것은 일면에서 소잃고 외양간고치기가 된다고도 볼수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그것을 자각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하고있다는 자체가 불행중 다행이 아닐수 없다. 그 노력을 단순한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로만 볼수 없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모아산 등산길포장 론란도 돌이켜보면 아직은 그래도 경미한 상태, 그러니 소잃기전에 외양간고치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혹시 공사 진척이 너무 빨라서(7월에 공사를 마무리한다고 하니깐) 이미 소를 거의 잃은 상태가 되였다 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할 시점이다. 그것은 외양간을 영원히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영영 소를 보지 못할수도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제언하는데 우리의 해당부문에서 지금이라도 좀 스톱을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측으로 말하면 그것이 인간본위 즉 이인위본(以人爲本)과 과학발전관 시달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가!     뭇새가 지저귀고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자연의 내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등산길이 새로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6    조선문잡지의 현황과 그 진로 댓글:  조회:2706  추천:104  2007-04-28
 (2002년중국조선족출판문화학술론문집에 발표되였음) 조선문잡지의 현황과 그 진로                                 ―조선족독자군에 대한 몇가지 견해                              주지하다싶이 잡지와 신문의 생존의 기반은 독자군이다. 얼마만한 독자군을 보유하고있는가에 따라 잡지의 운영 성공여부가 결정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군의 다소와 중과(众寡)에 따라 잡지의 사회효익과 경제효익이 판가름나기때문이다.     조선문잡지는 중국이라는 대환경속에서 또 시장경제라는 여건하에서 국내 기타 잡지와 마찬가지로 격변기의 곤혹을 치러야 할뿐만아니라 조선문이라는 특수한 사정으로 인한 여러가지 문제를 감내해야 한다. 본문은 조선문잡지가 직면한 문제와 조선문잡지의 독자군의 형성과 실태 그리고 독자군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조선문잡지가 나가야 할 진로를 조명하는데 취지를 두었다.       국내에서 본 잡지시장과 그 특성     제반 잡지시장을 돌아볼 때 중국국내의 잡지시장은 그 분포가 넓고 불균형하며 아직도 많은 잠재적인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할것이다. 중국특유의 거대한 인구는 잡지의 생존에 필요한 광활한 시장을 제공해주고있다. 이런 넓은 시장으로 하여 많은 중국어잡지는 독자군의 확보에서 인위적인 노력보다도 자연발생적인 독자군의 형성이 위주였다. 특히 개혁개방초기에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했다. 경쟁사가 적고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으로서의 잡지의 위치가 경제분야에서 일으키는 역할이 선명하지 않는 특정된 력사환경에서 이런 잡지들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재래의 계획경제시대의 방식대로 잡지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개혁개방의 심화와 시장경제의 정립 그리고 국제와의 접목이 날로 원활해지면서 새로운 잡지시장구도가 서서히 형성되고있다.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잡지사태와 경제령역에서의 홍보물로서의 잡지의 역할이 점입가경이 되면서 잡지사이의 경쟁이 치렬해졌고 원래의 경제실력이 강하고 지역경제가 비교적 발달한 지구의 잡지들은 잡지본신의 부단한 변신과 운영체제에 대한 개혁으로 량성순환에 이르면서 날로 발전된 양상을 보이고있다. 이런 잡지들은 자체의 높은 질과 거대한 영향력에 힘입어 거대한 광고수입을 얻고있으며 강대한 경제실력을 뒤심으로 잡지원가를 끊이없이 낮추고 질을 높이면서 서서히 중국잡지의 일인자로 부상하고있다. 이런 잡지는 이미 본지구, 본성이라는 지연적 울타리에서 벗어나 전국을 대상한 광범한 독자군을 형성하였으며 국제와의 폭을 좁혀나가고있다. 감숙성의 «독자», 상해의 «이야기모임», 광동성의 «황금시대», 길림성의 «웅변과 구변» 등등을 례로 들수 있다. 그밖에 지연적인 범위를 아직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중국의 한개 성의 인구가 웬만한 나라의 인구와 맞먹는 자연적인 독자자원 우세로 여전히  운영에서 충분한 여유를 보이고 있는 잡지들도 많다. 많은 성의 지방잡지가 전국 대상의 특별한 노하우가 없으면서도 아직도 비교적 여유로운 발전모습을 보이고 있는것도 이 원인에서 많이 비롯되였다고 봐야할것이다. 다른면에서 시대적감각에 부응하거나 새로운 전업적기술특색을 바탕으로 새로 나타난 잡지들 역시 왕성한 생명력을 보이고있다. 연예인들의 생활양상을 다룬 디자인이 특색있고 고급스러운 연예전문지거나  컴퓨터며 복장같은것을 다룬 전문잡지들이 바로 이 부류다.     개혁개방후 특히 최근들어 중국은 경제의 고속도장성을 기록하고 있으며 경제의 고속도성장과 더불어 케뮤니케이션의 역할이 날로 뚜렷해졌고 잡지에게 보다 넓은 생존공간이 주어졌다. 특히 경제장성에 힘입은 독자군의 증대와 구매력의 대대적 증폭은 잡지의 생존에 량호한 외부적 환경을 형성하였다. 잡지가 더는 일부 사람들만이 보는 사치품이 아니고 정보를 획득하고 개인소양을 높이며 여가를 즐길수 있는 일상소비품으로 점차 전이하게 되면서 중국어잡지의 공간은 밝은 앞날을 예시하고있다.       WTO에 가입한후 중국의 잡지는 외국잡지의 충격을 받고있으며 저작권이거나 판권, 출판 등에서 많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였다. 비록 국가정책에서 의식 형태와 매체의 특수성을 감안해 정책적규제가 한동안 역할하기에 그 영향이 화물무역에서처럼 그렇게 선명하지 않지만 국제관례가 관례인것만큼 서서히 그 영향을 감지해야 할것이다.     이밖에 새로운 매체의 출현과 발전이 전통잡지에 대한 영향 역시 심각하다. 인터넷의 등장과 디지털기술의 일취월장의 발전으로 인쇄와 종이로 된 전통적 출판물시장이 충격을 받고있으며 잡지의 생존과 발전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가져다주고있다.     조선문잡지가 직면한 문제     전국적인 형세에 비추어볼 때 연변의 조선문잡지도 전국의 잡지가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를 회피할수 없다. 많은 잡지의 출현으로 인한 독자군의 쟁탈을 포함한 상호간의 경쟁, 지방경제실력으로 인한 광고수입의 차이, 새로운 매체의 출현으로 인한 영향, 특히 IT산업의 흥기가 가져온 출판산업의 변화, WTO가입으로 인한 정면,부정영향 등등을 례로 들수 있다     1. 시장경제의 충격으로 잡지사사이의 경쟁이 치렬해지고 제한된 독자군이 분산되고있다.     10년동란시기후기 혹은 개혁개방초기만해도 연변에는 성인문학지로는 «연변문예»(현재 연변문학) 아동잡지로는 «홍소병»(현재소년아동) 등 몇개 잡지밖에 없었다. 개혁개방후 열려진 정치기후와 사회발전의 수요로 인해 많은 잡지, 신문들이 나타났다. 이는 잡지사이의 경쟁을 유발하여 생동하고 활발한 문화분위기를 조성하고 보다 많은 정신식량을 독자들한테 제공하여 리점이 많았지만 이 와중에 적지 않은 차원이 낮고 질이 낮은 신문, 잡지들도 나타났으며 내용과 형식이 비슷한 신문잡지들도 많았음을 부인할수 없다. 그리고 이런 신문, 잡지의 출현은 가뜩이나 졻은 조선문출판시장을 충격했으며 제한된 독자군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고 사회적으로 일부 불량한 효과와 영향을 초래했다. 지난 한시기의 일부 신문, 잡지에 대한 정돈을 거쳐 이런 문제가 완화되였지만 상기한 문제는 여전히 철저한 해결을 보지 못하고있는 상황이다. 지금 조선문잡지거나 잡지형식으로 출간되는 총서가 연변경내의것만해도 «연변녀성», «연변의학», «대중과학», «청년생활», «연변문학», «예술세계», «문학과 예술», «동북후비군», «지부생활»,  «법률과 생활», «로년세계», «중국조선족교육», «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 «중국조선어문» 등 10여종이다. 그외에도 청소년을 대상한 잡지 혹은 잡지형식의 총서로는 «소년아동», «아동세계», «아동과학», «별나라», «중학생», «소학생작문», «중학생작문» 등이 있다. 연변의 조선족인구를 80여만으로 계산한다할 때 그중의 청소년인구를 제외하면 대략 5만명의 성인자연인구에 잡지 하나씩 있는셈이다. 이외에도 지연적인소, 문화적인소와 기타 요소를 감안하면 기실 조선문 잡지독자군은 이보다도 훨씬 더 적은 수자이다. 그밖에도 산재지구에서 출간되는 조선문잡지인 «장백산», «도라지» 등 잡지까지 넣으면 정말로 천군만마가 험난한 소로길에서 고전하는 형편이다. 한개현의 인구가 100만명을 웃도는 내지와 비해볼 때 조선문도서시장은 형편없이 좁고 독서군체가 상대적으로 너무 위축되여있는 상태다.          2. 주변경제환경의 미비로 잡지의 운영의 경제여건이 렬악하다.         연변은 지리적으로 중, 로,조 삼국변경에 위치하고 장기간 발전보다 군사적인 전략적인 문제가 앞서 거론되였던 곳이기에 경제발전기초가 박약하다. 원래의 공업경제기초가 낮은데다가 교통이 불편하고 정보가 늦어서 개혁개방후 경제발전속도가 발달한 연해지구외 비해보면 많이 떨어졌다. 이로인해 조선족잡지독자군체가 가장 집중된 연변의 경제총량은  내지의 발달지구외 비해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있다. 따라서 경제총량의 부족 다시말하면 경제총량의 구심점이 되는 리윤기업이 적은 형편에서 경제생활에서의 불가결의 요소인 홍보는 자신의 시장을 찾기 어렵게 되였다. 게다가 대시장경제라는 개념속에서 지역을 초월하기 어렵고 민족을 초월하지 못하는 제한된 매체인 조선문잡지는 광고수입에서 내지의 잡지와는 비할수도 없게되였다.  이는 직접적으로 잡지본신의 질과 가격에 영향주며 이는 또 잡지의 경쟁력제고를 어렵게 하고 독자군의 형성에 새로운 애로점을 만들어주고있다. 이밖에 잡지출판의 원자재인 종이, 인쇄비용이 올라가고 우전발행비용이 오르고 또 잡지가 인쇄페지를 늘이면서 광고수입 지지가 별로 없는 조선문잡지는 가격이 많이 올랐다. 이는 원체 많지 않은 독자의 일부분을 또 독자군의 대렬에서 떨어져나가가게 하였다. 따라서 간접적으로 광고흡인력을 잃고 광고주를 잃게 되었다. 이처럼 조선문잡지는 량성순환인것이 아니라 독약으로 갈증을 달래는식의 악순환현상이 지속되기에 잡지의 장원한 발전을 기하기 힘들게 되였다. 그리고 조선문잡지의 질이 상대적으로 낮고 정품이 적으며 한어잡지보다 정보량이거나 차원이 낮기에 적지 않은 조선족독자군이 한어잡지에 쏠리여 원래 제한된 조선문잡지독자군을 더욱 왜소하게 만들고 있는것도 현실이다.         3.자연인구의 감소와 인구의 대규모적인 연해발달도시진출, 출국붐으로 조선문독자군이 많이 줄어들었으며 조선문잡지들은 독자군의 위축으로 새로운 위기를 맞고있다.           여기에서 연변이라는 조선족집거지구의 인구변화를 짚어봐도 알수 있다.     1949년 연변의 총인구는 83만명 그중 조선족인구는 52만에 달했다. 1979년 총인구는 178만, 그중 조선족인구는  72만. 1993년 연변의 총인구는 213만, 조선족인구는 85만. 1970년부터 1990년까지의 인구평균증장률은 1.5% 전국의 1.8%보다 낮았다. 1997년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인구는 217만 4788명으로서 전해보다 1752명 장성하였지만 조선족인구는 85만 4510명으로서 그 전해보다 4831명이 감소되였다.(연변인민출판사 중국조선족언론문화 학술론문집 p74 참조) 여기에서 알다싶이 조선족인구는 총적수자는 늘어났지만 같은 시기의 다른 민족보다 많이 줄어들었고 특히 개혁개방이래 나라의 인구정책과 생육관념의 변화, 경제여건 등 원인으로 인구자연장성이 완만해졌다는것을 알수 있다. 최근 십년이래 불어친 출국붐과 대규모의 농촌인구의 도시진출과 연해지구 진출로 의해 인구의 감소가 더욱 뚜렷해져서 조선족인구는 90년대초반에 십여개 향진의 마이너스 장성으로부터 전반 조선족향진이 마이너스 장성을 기록하게 되었다. 1997년 전국인구장성률은 1.81%에 해당하지만 조선족장성률은 -1.07%로서 마이나스 장성이다. 많은 인구가 출국과 연해지구 진출로 류실된데다가 원체 자연인구장성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현실로 하여 조선문독자군은 많이 줄었다. 특히 광범한 농촌인구의 감소는 농촌이라는 이 광활한 도서잡지시장을 잃어버리게 하였으며 농촌독자군의 위축을 초래하였다. 조선족인구가 기타 민족보다 인위적 장성이 늦은데다가 자연장성까지 완만해 문제는 심각해졌다.     4.WTO가입과 주변국의 문화충격 및 인터넷기술의 발전은 조선문잡지의 운영에 직접  영향준다.          WTO가입은 조선문잡지에 대해서도 례외없이 영향준다. 이전에 법적규제가 없거나 명확하지 못한 형편과 기타 원인으로 하여 동일한 문자로 된 외국도서의 저작권, 판권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한국이거나 조선의 도서, 잡지의 내용이거나 그림, 사진을 사용할 때 필연코 국제적인 규례에 따라야 할것이다. 중한수교후 특히 최근들어서 조선족사회는 한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있다. 영상, 음향제품을 동반한 한국의 각종 독서물들은 특히 청소년층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객관상에서 조선문잡지를 충격하고있다. 특히 같은 문자라는데서 그 충격은 선명하다. 이 와중에 대폭 보급된 인터넷기술은 그 영향을 더욱 심각하게 하고있다. 한국의 선진적인 IT기술로 무장된 전자출판물의 대거 출두는 조선문시장을 협소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짚어볼수 있다.     조선문잡지의 시장의 위축과 독자층의 감소원인     조선문잡지의 위기탈출을 규명하려면 그 원인을 우선 잘 진맥해야 한다. 조선문잡지의 불황의 원인은 우에서 제기한 전국적인 대환경의 영향도 보아야지만 조선민족공동체 본신의 문제 역시 간과할수 없다. 따라서 우선 우리자체에게서 원인을 찾는것이 옳은 자세라고 보아진다.          첫째, 조선족인구의 감소는 조선문독자층의 감소와 직결된다.       우에서 언급한바와같이 조선족 인구의 자연장성이 완만한데는 도시화나 출국붐같은 원인외에도 소수민족인구에 대한 정책적인 지도에서 계획생육을 단순환 산아제한으로 보는 획일성과 어린이부양지출의 대폭 향상으로 인한 경제적 원인에서 비롯된 조선족자체의 군체의식 변화와도 직결된다. 다시말하면 국가적으로 아이둘을 낳는것을 허용하는 전제하에서도 많은 가정에서 어린애 둘을 가지지 않거나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 이점은 일부 개변을 가져오고 도시중상이상 소득층에는 아이둘을 가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아직도 역부족이다. 특히 고심할 문제는 농촌이다. 많은 청장년인구의 농촌탈리와 정책적 제도적 장치의 미흡으로 농촌문화시장이 정체적인 위축을 가져온데다가 단순재배업을 위주로 하는 조선족농촌경제구도가 농민들의 수입향상에 불리하다. 처진 농촌경제력은 조선족 독자군 위축을 초래한 원인으로 짚어진다.     둘째, 조선문잡지의 독자군 위축은 조선문이 소외되는 사회적환경과도 관계된다.    조선문의 위상이 저하되는 문제는 하루 한시에 형성된것도 아니고 어느 한가지 문제에서부터 비롯된것도 아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역할했다고 볼수 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할것은 우선 우리 자체의 문제다. 한어의 수준미달로 많은 애로를 겪었던 조선족간부들은 자기세대에서 남긴 많은 유감을 자녀에게서는  재현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있다. 지금의 언어환경과 교육여건이 많은 개선과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이를 여전히 고집하고있다. 사회문화심리의 밑바탕에 깔린 실리주의와 사대주의 경향이 아직도 잔류로 남아 있다는것이 유감이다. 이리하여 조선문으로 된 신문, 잡지를 읽지 않으며 심지어 회의나 공식장소에서 조선말을 하는것을 자신의 수준미달로 그릇된 판단을 하고있다. 한족인구가 절대적으로 맣은 사회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주체민족언어인 한어는 확실히 필수적이고 잘 배워야 한다.  필수적인 한어수준의 미달로 많은  곤혹을 치르고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던다는데서 많은 조선족간부들의 가치관은 점차 한어만 잘하면 된다는 오도된 가치관으로 전향하게 되였으며 사회생활과 가정일상생활에서까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가치관을 주변에 전파하게 된다. 이는 최근들어 불어치는 조선족학생 한족학교전학 열조의 중요한 원인이다. 모종 의미에서 말하면 민족의 근간을 이룬다해도 과언이 아닐 민족간부들과 엘리트들의 가치관은 전반 민족공동체의 가치관에 영향주며 사회적으로는 조선글무용론이 대두하는 밑거름으로 되고있다. 중국에서 살면서 한어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가치관이 전반 사회가치관념으로 한구석을 자리잡는 이는 본민족언어의 위상을 떨어뜨릴 뿐만아니라 객관상에서 여러가지로 부정적 영향을 잃으키고 있으며 직접적으로는 민족교육, 신문출판사업에 영향주고있다.          셋째, 창의성과 창발력이 우선시되고 있는 자질교육이 아직 응시교육의 질곡에서 해탈되지 못하고있으며 보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이중언어교육이 요망된다.     비록 우리의 각종 교육기구들이 선도하고 여러가지로 자질교육의 발전을 추진하고있지만 아직까지 고중진학과 대학진학에서 판가름나는것은 그래도 시험이다.  비록 창신교육리념을 고착시키고 자질교육을 적극추진하고있지만 사회적 공중(公众)의 인지도(认知度)에서는 진학시험을 척도로 하고있다고 봐야할것이다. 연변의 경우를 보아도 초중은 그 교수질과 종합적실력의 여하를 불문하고 어느해에 연변1중에 간 학생이 많으면 그해의 그 학교 이름은 대뜸 손꼽히고 신입생도 자연 이런 학교에 쏠린다. 이러한 형편에서 각 학교들에서 진행되는 자질교육은 그 실행에서 여려움을 겪고 있으며 때론 자체의 곤혹에 빠지고있다. 입시교육의 체증이 빠지려면 아직도 정책적차원과 사회적 풍토에서 많은 조절과 개선이 수요되지만 빠른 시간내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시험에만 모를 밖는 입시교육은 잡지와 기타  출판물을 외면할수밖에 없다. 이는 조선문잡지 특히 청소년잡지의 독자군형성에서 넘기 어려운 하나의 벽이고 독자군위축을 초래하는 산으로 되고있다.     조선문잡지독자군의 형성에서 기초가 조선문교육에도 있지만 이중언어교육에도 있다. 우리 민족교육에서 교육수준이 높다는 이전의 평에서 만족하고 안이한 자태로 민족교육에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대하였다. 특히 이중언어교육에서 한어교육은 소학교부터 고중이라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의 교육임에도 기본언어관과 표달관, 습작관을 넘지 못한 학생이 많은 문제는 그 원인 여하를 불문하고 우리자체의 이중언어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있다. 이중언어교육의 사회적환경이 많은 개선을 가져왔음에도 이러한 현상이 계속 존재하는것은 한족학교전학풍을 초래한 다른 한 원인이 되여가고 있으며 조선족독자군 형성의 기석을 흔들고있다.       네째, 조선문잡지의 자체에 고유한 문제는 조선문잡지독자군 형성에 영향주는 또 다른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조선문잡지는 대체로 계획경제시대의 락인이 깊이 찍혀있으며 시장경제정립이라는 이 새로운 대환경에 대한 응변능력이 부족하다. 경제대환경의 영향으로 광고수입이 떨어지는데다가 내부의 개혁기제가 원활하지 못하고 잡지의 량과 질에서 많은 문제를 보이고있다. 특히 조선문잡지는 지역적차이의 제한과 정보의 페쇠로 외국이거나 국내의 많은 선진적경험을 답습하지 못하고 경영이거나 내용에서 남보다 많이 처지고있다. 선재의 부족과 정보성에 민감하지 못하고 글의 차원이 높지 못한 문제는 조선문잡지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으며 객관적으로는 독자군을 잃어버리는 부정적 역할을 하게된다.      조선문잡지의 편집구성진을 볼때 로화현상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 연변대학조문학부졸업생으로 구성되는 전공 단일화현상도 있다. 특히 여러방면의 지식을 소요하고 시대적 감각에 민감해야 할 성인종합지들로 말할 때 편집진의 구성은 잡지의 질과 직결되여있다. 참신하고 정보성이 강하고 시대적맥락과 이어진 잡지내용은 독자군의 형성에서 불가결의 요소이다. 따라서 편집진의 구성을 합리하게 하고 보다 우수한 편집인재를 유치하는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하지만 잡지사의 경제사정과 전통적 관습이나 체제로 인해 보다 우수한 인재에 대한 유치가 힘들다. 이는  편집일군의 년령구성과 자질제고에 어려움을 조장하고있다. 편집일군이거나 편집선재수준의 미달로 조선문잡지가 볼거리가 없다거나 정보에 뒤떨어졌다는 평을 들을 때 조선문잡지의 자성도 필요한 대목이다. 그밖에도 우수한 조선문출판인재의 결핍으로 편집, 교정 등 출판사업이 제대로 되지 못할뿐만아니라 발행이거나 경영관리에서도 과학성이 결핍하고 선재결책에서 실패하는 현상을 초래하고있다. 모두어말하면 우수한 출판인재 특히 우수한 경영형 인재의 부족은 조선문잡지에 존재하는 보편적문제이다.     조선문잡지의 진로         그럼 조선문잡지의 독자군을 확보하고 조선문잡지시장을 확보하는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여러가지 대안이 있으리라 사료되지만 사회적대환경의 개선에 진력함과 동시에 변화하는 사회경제환경에 걸맞는 일련의 출판, 발행, 경영기제를 정립하고 잡지자체의 문제를 포함한 제반 민족적인 문제를 옳바르게 정시하고 착실히 풀어나가야 하는것이 우선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보아진다.     정부적차원의지지가 필요하다.     민족문자출판으로 되는 잡지를 우선 먼저 민족경제를 발전시키고 문화사업을 흥기하는 대사로 틀어쥐여야 하며 변강과 내지의 차이를 줄이고 안정된 정치국면을 형성하는 대사로 틀어쥐여야 한다. 이렇게 하자면 재정면에서의 우대정책이 꼭 선행되여야 한다. 민족문자출판에서 교과서뿐이아닌 잡지거나 기타 도서에 대한 정부적 차원의 재정지원은 불가피하다. 지방재정에서 내놓기 어려운 형편이면 정책적인 지지를 주거나  기금회를 세우는 등 기타 방법을 모색할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련방정부에서 전문기금을 내와 인디안문화를 포함한 문화재에 대해 보호조치를 취하고있다.(흑룡강교육출판사 «출판기제 건립 경험과 리론» p93 참조) 이렇게 국외의 선진경험을 배우는것도 역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이다. 특히 인구정책면에서의 지지는 출판사업뿐이아닌 제반 조선족사회의 문제와 관계되는 문제이기에 구체적이고 가행한 조처가 나와야 하고 그것이 철저히 시달되게 하여야 한다. 인구장성은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전반 조선문잡지의 번영의 전제적조건의 하나라고 볼수 있다. 읽을수 있는 사람의 기본수가 있어야 읽는 사람수 즉 독자군이 있을수 있기때문이다. 학교에 학생이 없는탓으로 많은 조선족학교가 문을 닫거나 합병되는데 독자군이 없는 잡지도 조만간에 페간의 길을 걷지 않을수 없다.  인구장성에서의 가장 기본문제는 경제발전문제다. 경제발전수준이 일정한 정도에 도달해야만 인구장성은 가능한것이다. 특히 농촌의 경제발전은 조선족인구장성의 기본조건이며 조선족교육의 해결사이다. 고향을 등진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그들이 새로운 가정을 꾸밀때만이 농촌인구의 장성은 가능하다. 아이 둘을 낳아도 경제상에서 어려움을 별로 받지 말아야 그 정책도 정책구실을 할수 있는것이다. 조선족부부가 아이 둘을 낳을 때 경제적 지원을 망라한 정책지원과 법규가 출범되는것이 시급하다. 이밖에도 조선족들은 생육관념에서 산아제한의 개념인것이 아니라 우생우육과 둘씩 낳아야 한다는 생육관을 정립해야 한다. 이밖에도 조선족들의 도시진출과 인구이동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도시 조선족집거구에 대한 건설과 여기에 대한 합리한 정책, 규제를 내와야 하며 이런 곳에서 민족교육의 꽃이 스러지게 해서는 안된다. 특히 농촌에서 새로운 조선족집거구를 만드는 방법은 고려해볼 바이며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아진다.         교육제도장치에서 자질교육의 선행이 더욱 유력해야 하며 입시교육풍토가 지양되여야 한다.     우선 진학이 전반교육의 지휘봉으로 되는 현상을 하루빨리 타개해야 한다. 자질교육을 말로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학교교육의 기반이 되게 해야 한다. 모든걸 시험으로 확정하는, 모든 교육이 시험에 따라 움직이는 교육은 인간육성의 교육이 아니고  시험치는 기계를 양성하는 오도된 교육이다. 이런 교육으로 진정한 인간을 양성해내기 어려우며 진정한 독서풍토를 고양할수 없다. 지금 적지않은 학교들에서 조선문잡지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데는 학생부담경감에 대한 정확하지 못한 리해에서 비롯된것도 있지만 입시교육에 영향준다는 내면에 깔린 원인도 없지 않다. 별도로 학교의 입시교육때문으로 인한 과중한 학업부담은 학생들로 하여금 기타 잡지를 열독할 시간이 없게 할뿐만아니라 그 필요성을 망각하게 한다. 독서가 인간의 인격형성과 세계관 형성에 주는 영향은 거대하다. 시험에 나지 않기때문에 독서가 필요없다는 관념이 하루빨리 고쳐지고 올바른 독서풍토가 청착되여야 우리 민족문자출판물 도서시장은 비로서 활성화되고 상응한 독자군을 보유할수 있다. 특히 학교교육에서 과외도서와 잡지에  대해 정확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보아진다. 마구  풍기고 마구 주문하게 하는것도 틀리지만 무조건 학생부담으로 여기고 책을 학생들손에 들어가기전에 학교에서 먼저 막아치우는 현상도 바로잡아져야  할 바라고 생각된다. 조선문잡지나 출판물의 발행에서 정책에 대한 리해에서 새로운 인식을 가져올 필요성이 있다. 이는 도서시장과 독서군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작업이다.     조선문잡지의 특성을 살리면서 시장경제에 부응한 경영을 해야 한다.     조선문잡지가 살아나가자면 독자군을 형성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자타가 다 아는 사실이다. 잡지가 살아나가자면 주변경제활성화가 물론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변경제여건의 개선이나 제한된 독자군에 잡지의 사활을 거는것도 명지한 처사는 못된다. 때문에 외부환경개선이나 독자군 확보에서 여러모로 진력하는 동시에 잡지본신의 깐진 경영은 조선문잡지가 생존해나가고 발전할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지탱점이다. 잡지운영은 현재 시장경제환경에서 의심할바없이 경영이다. 하지만 조선족잡지는 경영이라는 리념바탕에 또 다른 하나 사회효익이라는 개념을 심어야 한다. 국내잡지의 운영취지가 사회적효익이 첫째라고 말할 때 조선문잡지는 더욱더 그 사회효과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아진다. 좁은 시장환경속에서 생존하는 민족언어지이기에 그 사명감을 더 강조하는것이다. 하지만 사회효익을 보는 동시에 발전보다도 우선 생존을 위한 경영철학이 정립되여야 한다. 조선족잡지의 생존에서 자신의 경영을 깐지게 하고 발행통로를 넓히고  잡지의 질을 부단히 높이는 동시에 정책면에서 가능한 정책을 쟁취해야 한다. 례하면 한문잡지의 출판이거나 한문도서의 경영이다. 조선문잡지는 200만에만 눈을 박지 말고 13억의 거대한 시장에 진출할수 있는 용기와 배짱을 가져야 하며 치밀한 계획을 안바침해서 한어문도서시장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한어문으로 조선문 경영을 보완해나가는 방법은 경제상에서거나 사회효익면에서 좋은 효과를 거둘수 있는 길이다. 이밖에 조선문잡지경영에서 잡지에만 매달려 있지 말고 기타 령활한 경영으로 조선문도서의 경영에서의 부족점을 미봉하고 잡지의 발전에 후속력을 실어주어야 한다. 모두어 말하면 조선문잡지는 자체경영에서 새로운 출로를 찾아야 한다.     제한된 자원을 최적화하고 규모경영을 이루어야 한다.     주지하다싶이 조선문잡지의 인력과 물력 등은 매우 제한되여있다. 이에 따른 독자군도 많이 제한되여있다. 전국적인 추세를 미루어볼 때 잡지거나 신문의 규모영은 불가피한적으로 보아진다. 특히 잡지규모가 작고 독자군체가 분산된 소수민족잡지는 규모경영을 추진하고 자원랑비를 감소하며 잡지시장을 최적화하는것이 조선문잡지운영의 지속성과 존속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물론 성을 뛰여넘고 지역을 뛰여넘고 각 지방의 해당 정책이 부동함에 따라 그 추진이 아주 어렵다고 사료되지만 앞으로의 장원한 발전을 기할때 잡지의 규모화경영은 독자군을 유치하고 잡지의 질을 높이며 잡지자원과 질의 최적화를 모색하는데 있어서 꼭 념두에 두어야 할 길임이 틀림없다. 많은 잡지가 험난한 소로길에서 서로 피투성이 되는것보다 유한한 자원의 최적화 조합으로 최상의 사회, 경제효익을 따내는것이 조선말잡지의 명지한 선택이 아니겠는가고 생각된다.     출판일군의 자질제고는 미룰수 없는 과제다.     조선문잡지 본신의 질도 그렇고 조선문잡지의 경영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출판일군이 없고 우수한 경영인재가 없다면 잡지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조선문잡지에서는 정책면에서의 령활성을 발휘하고 잡지의 특성을 발휘하면서 출판, 발행, 광고 등 방면의 인재를 적극 유치해야한다.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경영체로서의 잡지는 이면에서 인사정책이나 경제대우 등면에서 보다 령활성이 있는 조처를 강구하여 사회의 인재를 유치하고 활성화된 내부경영기제를 정립해야 한다. 물론  현재 사업단위로 존재하는 적지 않은 잡지사에서 인사제도거나 대우면에서 여러가지 제한과 규제가 많은것도 사실이지만 정황한 인재책략을 세우고 적극 추진해나간다면 인재의 발굴과 유치는 가능한것이라고 보아진다. 뿐만아니라 내부인재에 대한 적극적인 발굴과 일터양성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적지않은 잡지사들은 쓰기만 하고 양성은 하지 않기에 쓰기에 출판인재의 자질이 저하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마지막에는 도태되여 «강랑의 재간이 다 하는» 격의 페단을 유발한다. 때문에 밖의 인재를 유치하는 동시에 내부일군에 대한 양성훈련도 게을리 하지말아야 하며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해야 잡지의 생존에 부단히 새로운 생명력을 주입할수 있다.     좋은 잡지가 나오려면 좋은 편집이나 기자가 있어야하고 좋은 잡지가 많이 팔리려면 좋은 발행경로가 있고 좋은 발행일군이 있어야 하며 독자군이 있어야 한다. 잡지는 정품으로, 경영은 령활하고 활기있게 과학적으로 할때만이 조선문 잡지가 사는 길은 열린다.      별도로 조선문출판물에대한 선호도를 높이고 독자군을 보류하려면 우선 잡지의 질을 높이는것이 급선무로 나선다고 꼬집고싶다. 잡지가 내용과 질, 심지어 디자인에서까지 시대의 앞장에 서야만이 제한된 조선말독자군을 한어문잡지에 빼앗기지 않으며 심지어 한족말독자군에서 조선말독자군으로 다시 끌어올수 있다.     충격을 기회와 도전으로 바꾸어야 한다.          우에서 언급한바와같이 한국의 도서들이 최근들어 우리 도서시장에 많이 들어오면서 확실히 가뜩이나 졻은 조선문잡지시장을 충격하고있는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문자를 쓴다는데서 우리에게도 상응한 기회가 주어진다. 비록 리념과 출판여건이 다르고  출판질, 국제화의 접목 등에서 우리가 많이 처져있지만 그렇다고 기운을 놓고 당하기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 WTO에 가입은 우리에게 기회와 도전을 같이 가져왔다. 바로 외국의 출판물이 들어올수도 있지만 우리의 출판물이 외국으로 진출하는데 길이 열렸다는 점이다. 특히 조선과 한국이란 같은 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외국시장은 우리가 그저 기다려서만 될 시장이 아니다. 반드시 주동적으로 출격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림해야 한다. 국내뿐이 아닌 국외의 시장을 노크할 용기가 조선문잡지에게도 있어야 한다. 판권경영이거나 선재면에서 좋은 결책이 있다면 우리에게 상상할수 없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수 있다. 드라마, 음악 등 한국문화가 중국전역에 미친 영향을 감안할 때 지연적이거나 문자면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조선문출판사나 잡지사들은 과감히 도전하고 안광을 멀리 두면서 새로운 출로를 모색해야 한다. 이밖에 인터넷의 충격을 단순히 종이인쇄물에 대한 충격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외국의 선진적 경험을 답습해 전자잡지를 운영하고 인터넷을 리용한 온라인 서점과 오라인구매, 발행을 통해 재래의 발행범위를 더 넗히는 등 적극적인 방향의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 특히 지금 많은 도서의 검색이 서책으로서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진행되고 있다는점을 미루어보아 전자기술이 종이와 인쇄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잡지에 대한 충격을 그 우세로 변화시킬 필요성이 있으며 이는 완전히 가능하다고 보아진다. 21세기에 이르러 문화산업의 육성은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바로 IT산업이 문화발전에  대한 영향력이다. 때문에 이를 전통적 출판산업에 대한 충격으로만 보지말고 출판산업경쟁력제고의 하나의 기회라고 보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림하는것이 바람직하다.          격변기의 조선말잡지는 말그대로 진통과 질곡에서 몸부림치고있다. 렬악한 주위환경속에서 그 존속을 이어나가고 그 발전을 도모해나가는것은 조선족편집일군뿐이 아닌 전체 민족의 일이다. 어깨에 짊어진 그 무거운 짐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조선족교육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기하는데는 어느 한사람의 책임이라고 찍을수 없다. 그 누구의 몫이나 다 있기때문이다. 다만 여기에서 출판일군들의 책임은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싶다.
5    가을송가(번역문) 댓글:  조회:1973  추천:171  2007-04-28
  가을송가                                            로란     가을의 아름다움은 맑고 깨끗함에 있다.     어떤 사람의 눈동자는 가을을 닮았고 어떤 사람의 풍채는 가을의 운치가 력연하다.     가을을 대표하는 단풍나무의 아름다움은 그 서리를 맞은 담담한 빨간 빛갈에 있을뿐만아니라 또한 바람을 맞는 름름함에도 있다.     나무잎이 차츰차츰 성기여지면서 가을수풀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소탈함을 자랑한다. 이는 어떤 장식도 외면한 소탈함이요. 속세의 번화함을 개의치 않는 도고함이다.     가장 감동을 주는것은 가을수풀에 비낀 락조이다. 하늘가에서 취한듯 붉게 타는 빛갈은  깊어지는 황혼을 돋보이게 한다. 맑고 서늘한 기운을 가진  저녁바람은 짙어가는 황혼에 물들여져 일종 애상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당신으로 하여금 감회에 젖은 눈물을 흘리고 싶지만  차츰차츰 옅어지는 발가우리한 색조에 겁먹고 분방한 감정을 기꺼이 굳어버리게 한다.   일찍 한 화가가 서리의 세례를 받은 단풍나무숲을 화폭에 담은 ≪가을정원≫이라는 그림을 그린적 있다.  높다란 단풍나무가 정원의 정적을 조용히 덮고 나무뒤에 대문이 굳게 닫겨 있어 괴괴함이 넘쳐흘러 마치 내가 일찍 그 속에서 살면서 가을의 적막함을 맛본것 같았다. 그래도 난 남몰래 조용히 그 그림속으로 들어가 굳게 닫겨진 대문을 노크해보고  그 안에 얼마만한 세월의 먼지가 쌓였고 얼마나 많은 생활의 자취가 보관되여있는지를 살펴보고싶다.     가장 흥미를 끄는것은  가을하늘에 한가하게 떠도는 구름이다. 담담하고  여유작작하고 조용히 속세를 떠나 속세의 소란에 태연하기만 하다.     가을바람은 어떤 꾸밈도 없는 가장 순결한 바람이다. 시원스럽게 원림을 가볍게 스쳐지나가고 우수수 떨어지는 락엽을 돌봐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 계절도 신진대사도 생사도 비환도 모두 그 자체의 섭리대로다. 참여할 필요도 연연할 필요도  없다.     가을의 물은 바람처럼 맑다. ≪강물을 스쳐 날아예는 백로와 갈매기≫란 말은 바로 가을의 맑음을 그려낸 것이다. 근심할것도 긴장할것도 집착할것도 없는것이다. ≪인간세상 만호후(万户侯)도 깔보면서 까막눈노인처럼 안개자욱한 물우에서 고기를 낚네≫ 가을은 이처럼 티끌한점 없이 맑고 깨끗하다.     ≪한운야학(闲云野鹤)≫은 가을의 제목이다.  가을의 청청한 하늘에 떠있는 한송이 흰구름이야말로 한가하다는 한(闲)자에 부끄럼없을것 같다.들학의 아름다움은 가을물처럼 담박하고 가을산처럼 멀어보여 종잡할수 없는 소탈함과 대범함으로 안일이라는 일(逸)자에 손색이 없을것 같다.≪한≫과 ≪일≫ 두 글자야말로 가을의 본색임이 틀림없다.     이런 가을의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도 더러 있다. 또 이런 사람들이여야 가을의 아름다움을 가질수 있다. 이런 아름다움은 가슴깊에에서 흘러나오는것이다. 이들은 모든것을 다 가질수 있으면서도 그 무엇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이는 깊고깊은 인지(认知)와 깨달음으로 이루어진 투철함과 소탈함이리라.     가을은 성숙의 계절이고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또한 담박한 계절이기도 하다. 봄의 발랄함과 여름의 번성함을 겪을대로 껵은 가을은 찬미와 총애를 더는 영광으로 알지 않는다. 가을은 찬미와 총애를 담담한 가을빛밖에 몰아내고 한가롭고 유유하고 머나먼 바라볼수 있지만 가까이 갈수 없는 그런 가을이 되기를 원할뿐이다.
4    바람에 보내는 축복 댓글:  조회:1657  추천:99  2007-04-28
바람에 보내는 축복                                                                                                            누군가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   그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해 줄 사람이 있다면 나는 더욱 행복하다   내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모를수록 나는 더더욱 행복하다 …         ―김성년의 시≪누군가를 위하여≫에서         최근들어 가는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래서인지 늘쌍 마음이 조급해지고 자신을 주체못한다. 무엇을 해도 여유와 넉넉함이 없고 그저 세월에 쫓기고 쫓기는 기분이다. 이렇듯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일상에 쫓기면서도 때로는 조용히 혼자 걷고 싶은 충동을 불쑥 느낀다. 혼자 걸으면서 나만의 세계를 가지고 싶고 그 세계에서 나만의 마음의 자유를 만끽하고싶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난 이 거리를 걷는다. 떠들썩한 거리의 목소리를 등뒤에 남겨둔채로 말이다. 세속의 소란함과 번잡함이 나와는 전혀 무관한듯 나의 사색도 혼자 달리다가 멈추고 또 달린다…     문득 그녀가 생각난다.  하필이면 그녀일가? 물찬 제비처럼 쭉 빠진 몸매에 웃는 눈을 가진 그녀, 년하이지만 나이 이르게 헴이 들고 이상누이처럼 챙겨주던 그녀…     ≪곡이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진(曲终人散)≫ 오늘의 마당에 그녀가 생각났다는것은 나로서도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면서 마음구석엔 언제나 가정을 위해 로심초사하는 집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슬그머니 괴여오른다. 그 미안함이 마음의 배반의 빌미가 될수 있는 나의 생각을 제자리에 비끄러매려고 지꿎은 노력을 경주한다. 하지만 숨기고 또 숨기는 자체가 사랑에 대한 더 큰 배반이고 불충이 아닌가 하는 변명같은 생각때문이여서인지 추억의 렬차는 몸을 멈칫하다가도 또다시 달린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또다시 추억의 향연이 되여 나의 머리속에 풍성하게 챙겨진다. 허나  추억은 꽁꽁 덮어두었던 마음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놓아 나를 몸 둘바를 모르게 하고 가슴을 아프게 한다. 부끄럽고 치졸하고 얄팍한 자신이 지금도 돌이켜보기가 역겹다.     역겹고 아프고 또 오해를 사기도 다반사지만 세월의 흐름에 모든걸 묻어버리기엔 자신이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아서 적어보는 글, 어쩌면 되새겨보았자 아픔만 남는 추억이고 또 자신에 대한 변변찮은 변명의 소지가 될수도 있지만 진실한 자신을 마음의 천평에 거리낌없이 담아보는것도 역시 당당함이고 용기가 아닐가싶다.     다행스럽다 할가? 운명의 배치라할가? 지금은 그녀도 잘살고 있다고 들었고 나역시 그녀와는 상극의 성격과 타입이지만 나름대로의 매력과 우점을 가진 미더운 안해와 남부럽지 않게 살고있으니 마음 한구석이 차분해지기도 한다.  그녀의 신상에 나쁜 일이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만 들려와도 아마 난 영원히 벗을수 없는 마음의 오라를 지고 살것 같다. 난 진정으로 그녀가 잘되기를 빌고 빌었다. 그건 나의 고상함도 련민도 량심의 발견도 아닌것 같다. 아마도 나의 욕심때문이라고 표달하는것이 더 적절할것 같다.  그녀가 잘 되여서 나의 량심과 나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자는… 그래서 난 때로는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자사적이였나 하고 마음에 채찍을 안겨보기도 한다.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에 이런 생각도  많이 가졌다. 그 어떤 조건부도 없는 순수한 감정으로 내가 눈동자처럼 아끼는 녀자와 인생을 함께 하리라고. 하지만 사회생활의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나한테 주어진것과 보여진것은 그 생각을 깨고도 남음이 있었다. 4년이란 대학시절을 보내고 하늘까지 치솟았던 오기와 자부심을 구기고 그때만 해도 가난하고 사회지위 낮다고 저마다 등을 돌리던 중학교교원으로 남게 된 나다. 권세없고 돈없는 부모도 원망해보고 때아니게 들이닥친 정치기후도 탓해보았지만 결국은 사정때문에 엄연한 현실을 정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출근 첫날, 구질구질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학교에서 숙소라고 정해 준 학생숙사의 어느 한칸에 이불짐을 들여다 놓고 농촌의 작은 거름산처럼 무져있는 숙사안의 쓰레기를 퍼내고나니 온몸이 다 해나른해났다. 어느덧 땅거미가 깃들고 저녁때가 지난지도 이슥했지만 난 저녁이고 뭐고 귀찮아서 삐꺽거리는 침대에 그대로 몸을 던져버렸다. 거미줄이 여기저기 데룽데룽 달려 그네를 뛰는 숙소의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난 처음으로 좌절감과 실의에 몸을 떨었다. 출근하여 첫 몇달은 그야말로 하루 보내기가 지겨웠고 인생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다른 길을 찾으려고 헤매보기도 했지만 우연하게 맡게 된 학급담임사업에 그만 넋을 빼앗겨버리고 그애들만은 내손으로 졸업시켜 볼 욕심에  바람속의 갈대처럼 우왕좌왕하는 마음을 간신히 추스렸다. 하지만 홀애비 살림에 이 서말이라고 늘쌍 호주머니 사정으로 전전긍긍하는 어려운 생활형편과 따분하고 무료한 생활은 새파란 나이의 나에게 점차 지극히 공리주의적인 생각을 심어주었다. 연길처녀를 얻어서 살아라는둥 가정조건이 중요하다는둥 인물 뜯어먹고 못산다는둥 주변 사람들의 선의적인 권고도 변주곡처럼 귀가 따갑게 가끔씩 들려왔다. 변명같지만 아마 나도 저도모르게 그런 생각의 포로로 된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출근 첫날부터 학생식당의 밥을 같이 먹으면서 항상 옆에 두고 보는 착실하고 예쁘고 사리밝은 그녀한테 눈길이 가지 않을수가 없었다. 누가 어떻게 어느 시간에 서로의 마음을 고백했다고 구태여 적고싶지는 않지만 아무튼 우리는 같이 ≪한솥밥(숙사밥)≫을 몇년 먹은 다음인 그것도 내가 다른 곳으로 일터를 옮길 무렵에야 비로소 앞날을 약속하게 되였다. 정리에 서투른 나, 그때로부터 아마 난 더러워지고 주름으로 구겨진 옷을 단 한번도 입고 다닌적이 없은것 같다. 그처럼 나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그녀는 누이처럼 모든걸 꼼꼼히 챙겨주었다. 하지만 다른 회사로 간후로부터 잠 잘 자리마저 마땅치 않아서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펴놓고 잤고 학교식당에서 그 나마 보장이 되던 하루세끼도  제가 알아서 챙겨먹어야 하는 어려운 생활은 나로 하여금 또다시 실리라는 얄팍한 생각을 되새기게 했다. 어찌보면 나의 마음구석에 늘 잠들고 있던 생각이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결혼하면 정말 잘 살아나갈수 있을가? 아무도 믿을구석이 없는 우리들이 정말 이대로 계속 살아나간다면 어떻게 될가? 또…)     때아닌 의문과 속된 생각이 나의 머리속에 자꾸 자꾸 꼬리를 물고 그려졌다. 그녀의 집은 연변이 아닌 외지에 있었다. 게다가 나이차가 얼마 안되는 동생들도 둘이나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가정형편도 농촌인것만큼 별로 넉넉하지 못했다. 이런 계산이 결국은 속물밖에  안되는 나의 마음을 좀먹으면서 우리 둘 사이는 소원해졌고 결국은 파국에로 치닫았다. 지금도 가슴에 아픈 응어리로 남아있는 일― 나의 부모님의 회갑이 띄웠을 때 난 그녀의 그 절절한 눈빛을 등뒤에다 뿌리치고 혼자서 집으로 향했었다. 참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자신이 죽도록 미워진다. 내가 정말로 그밖에 못되는 인간이였던가고?! 그리고 씀씀이가 헤프고 정리가 서투른 내가 로임도 나보다 적고 두 동생이 연길에 와서 공부해 부담이 태산같은 그녀한테 시뻘건 손을 내민 일은 또 어쩌고…내가 언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그런 속물로, 시정배로 변했는지 지금도 의심스럽다. 하지만 그 마음의 참궤지감을 어디다 더 표현하랴. 결국 난 그녀가 싫어서가 아니라 소위 현실생활을 정시해야 한다는 짧은 생각에 소중한 사랑을 실리라는 저울에 올려놓았던것이다. 후에 와서 땡전 한푼없이 잔치하고도 잘만 사는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난 자신의 암둔함에 질려본적도 있다.     세상에는 귀중한것이 많다. 필요되는것도 많다. 난 내가 필요로 하는 소위 현실생활에서 더 쉽게 살아남기 위한 방편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것을 포기하고 속물로 변신했던것이다.     현실과 사랑의 틈서리에서 우왕좌왕 갈등하는 이들이 어찌 한둘이랴? 생활을 택하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택하자니 울며 생활해야 한다는 말도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진정한 사랑을 모독하는 구차한 변명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는 허황한 꿈에 고무풍선처럼 잔뜩 부풀어서 사는 유토피아적인 사람도 있고 시정배처럼 모든걸 저울에 다는 못난이도 있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유상종이나 천차만별이라는 말 그대로 삶의 방식과 사랑에 대한 인식은 제가끔 다르다.  다만 실제생활을 위한 소위 방편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것은 자신을 잃는것이고 자신마저 잃었을때는 결국 모두를 포기하는것이나 진배없다.     아직도 다 풀지 못한 내마음의 십자가를 벗기 위해 난 지금도 주변의 모두를 열심히 사랑하고 삶에 충실하려고 모지름을 쓴다. 그러면서 난 또 두손모아 빈다. 그녀 또한 어디에서라도 부디 잘 살아주기를…언젠가 따뜻한 차 한잔에 이 모든것을 부담없이 주고 받을 날이 있으리라는 믿음이 차곡차곡 가슴에 겹친다. 모든것을 초탈한 풍요롭고 느긋한 마음의 대문을 분명 보았기때문이다. 걱정하고 축복해주고 나누어주는 마음이 퐁퐁 솟음쳐나오는 샘물처럼 우리들의 마음을 정갈하게 씻어내고 서로를 이어줄 때 세상은 그야말로 살맛나는것이 아닐가?      혼자 바장이며 하염없이 걷는 나의 눈앞에는 어느덧 천고마비의 가을의 하늘이 펼쳐진다. 가을은 성숙의 계절이고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또한 담박한 계절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화끈한 여름을 담담한 가을빛밖에 몰아내고 한가롭고 유유하고  멀고멀어서 바라볼수 있지만 가까이 갈수 없는 그런 가을이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의 하늘은 높고 푸르다. 가슴을 확 틔워주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풍요로운 가을의 선물인듯 얼굴에 와 닿는다. 그리고는 총총걸음으로 하늘가 저 멀리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가을바람은 저 멀리 그녀한테에도 가리라. 보이지 않는 바람이지만 느껴지는 바람이기에 나의 진정과 축복을 타고 멀리 갈것만 같다. 풍요롭고 유유하고 편한 가을의 모든것과 함께.                                                     2004년 가을 연길에서  
3    [사회] 환경보호와 연변의 승부수 (김창진3) 댓글:  조회:1847  추천:127  2007-03-11
환경보호와 연변의 승부수김창진《…산 좋고 물맑은 여기 바로 내 고향 연변이로세…》라는 노래가사가 아직도 서먹하지만은 않다. 간혹 그 가사가 감미로운 추억의 편린으로 떠올려지기도 하여 감회가 여간하지 않다.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삶의 터전, 아름다운 우리 고향을 과연 그냥 산 좋고 물 맑고 정자 좋은 곳이라고 할수 있을는지?! 물이 맑다는 이야기는 저쪽 산골 깊숙하게 들어가면 모를가? 적어도 도시랍시고 우리 족속들이 오구작작 많이 모여사는 연길의 도심에서는 순수한 자연이 가져다 준 맑은 물 구경을 해본지 너무 오래된다. 천만다행으로 그래도 그나마 몇백리밖에 백두산도 있고 인류의 발자욱이 적게 닿은 곳에서 아직도 울울창창한 수풀과 산골자기를 감돌아 흐르는 맑은 시내물 구경을 할수가 있어 외지손님들이 오면 언제나 엄지손을 내밀고 감질을 내는것이 연변의 청산록수다. 하지만 그 내속을 들여다보면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이 천혜의 땅은 경제발전의 상승그라프와 함께 몸살을 많이 앓고있다. 우리의 경제발전전망기획을 조명해 볼 경우 환경보호에 대한 중시도가 아직도 미비하다는 점에 유감이 없지 않다.. 우리의 경제건설대안은 언제나 공업이다. 공업흥주(工业兴州), 공업흥시(工业兴市)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다. 물론 지역경제의 발전에서 공업의 발전은 불가결의 요소다. 하지만 획일적인 단언은 금물이다. 무조건 자금인입이고 무조건 공업총량의 증대라는것은 과학적인 요소가 결여된 판단이다. 경제총량이 부족한 문제가 지역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고 우선적인 치유대상이라고 전제할 경우 경제총량은 반드시 공업을 통해서 늘여야 한다는 론법이 쉽게 나올만도 하겠지만 기실 경제의 총량과 종합경쟁력의 제고는 한가지 해법만이 아니다. 일원일차방정식인 것이 아니라 이원일차 혹은 삼원일차방정식이 될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국가적 차원에서 종합국력을 운운하듯이 우리의 종합경쟁력도 말그대로 종합적인 우위가 실현되여야 한다. 우리의 사고방식에는 아직도 기획경제시대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이 잔류해 있으며 일부 지도일군가운데는 치적의식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랭정하고 과학적인 판단에 힙입은 합리하고 가능성있는 결책만이 과학적인 발전을 가져올수 있는 첩경(捷径)이다. 연변과 연해의 발달도시를 비해보면 공업발전규모나 제품구조 류통면에서 우리가 많이 처지고 있는 실정이다. 자금인입도 떨어져도 한참은 떨어졌다. 광동성의 동관시를 례를 들어도 그곳의 웬만한 조그마한 진의 공업생산총액이 우리주의 한개 현 혹은 몇개 현을 초과한다고 한다. 연해발달지구에도 이런 례는 기수부지이다. 지어 한개 촌행정규모의 공업생산총액이 우리주의 총공업생산총액을 초과하는 곳도 있다(화서촌 같은 것이 일례). 단순히 공업발전으로 그들을 따라잡자면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미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졌다. 게다가 우리가 이면에서 제대로 달리지 못하기에 거리가 좁아지기는 희망이 아주 묘연하다. 남이 걸을 때 우리가 달아도 따라갈가 말가하는 정도다. 성정부에서 제기한 경제발전의 쾌속질주라는 사로도 여기에서 나온것이라고 제나름대로 리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기실 우리는 뛰기도 숨가쁘다. 짐이 무겁고 다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꼭 공업 하나에 매달려 연해발달지역과 발전을 겨루는것은 연변의 약세로 남의 강세와 비하는 지는 게임이 되기 다반사. 남들한테 있고 나한테 있는것을 비하는것도 미타한데 하물며 남에게 있을뿐만아니라 우리보다 더 좋은것을 우리가 기어이 비하려 해서야 될말인가? 어쩌면 패배는 당연지사다. 연변과 내지를 비해볼 때 우리의 강세는 곧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풍부한 자연자원, 그리고 민족특색의 전통과 독특한 풍토, 변경지역이라는 지연특점에 내재한 문화적인 인문우세이다. 아마 여기에 승부수를 띄워야 승산이 크지 않을가. 지금도 우리 연변에 머물러 있었던 내지사람들은 우리의 맑은 물과 산 그리고 입쌀, 토산물을 잊지 못해한다. 김치, 랭면, 찰떡, 장국도 언제나 이들에게 있어서 지울수 없는 추억의 향연이고 끊을수 없는 끈끈한 인연이다. 이들은 당년의 자상한 이웃들과 소박하고 넉넉한 인심들을 눈물나도록 고맙게 생각하고 가슴깊이 차곡 차곡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것이 바로 자원이고 남에게 없는 우리의 강세다. 나무를 채벌해내고 공장을 세워 오물을 방출하고 시내물이 말라버리고 전통마저 색바래진다면 우리한테 앞날은 정녕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그 누구의 차지도 아니다. 누구나 다 이 땅에서 머무르다 가는 나그네 일뿐이다. 내 이 한몸이 하루밤 잘 주무시고 잘 먹자고 다음날에 올 나그네 생각을 안해서 될 말인가! 프랑스의 어느 국왕처럼 《내가 죽은 다음 홍수가 밀려온들 무슨 대수랴》 하는 식은 용납될수 없다. 《우리가 던진 오수를 우리의 후대가 마십니다》라는 공익광고의 대사를 잘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미국의 콜로라도대협곡에 국가공원을 세워 보호하지 않고 당초의 기획대로 땜을 만들었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가? 아마 전기도 냈을거고 짧은 시간에 경제효익도 꽤나 짭짤하게 봤을것이다. 하지만 지구촌에는 콜로라도협곡이라는 이 유일무이한 비경이 사라졌을것이고 지금의 미국애들은 그림에서나 협곡을 볼수 있었을것이다. 물론 몇개 땜을 건설하고도 남을 거대한 관광수입도 그림의 떡이였을거고. 더우기는 그 자연환경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음으로, 양으로의 혜택을 누려보지 못했을 것이다. 환경보호를 돈이 들어가는걸로만 생각하고 환경을 적당히 희생하더라도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치적의식은 애초부터 잘못된것이다. 좋은 생태환경은 인간의 건강에 좋은것은 물론 무진장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매년 장가계, 구채구에 구름같이 몰려드는 인파를 못보았는가…. 자연의 원초적인 미가 그윽한 진짜 산 좋고 물 맑은 곳이기 때문이다. 천리 두만강이 바다에 흘러들어갈 때까지 푸른 파도를 처절석이며 흐른다면 그 관광의 경제적가치는 그야 말로 무진장할 것이다. 부르하통하의 물을 물막이를 해서 억지로 가두어놓지 않아도 푸른 물이 감돌아 흐르고 고기떼가 뛰논다면, 시내복판을 흐르는 연집강에서 물장구치고 미역을 감는 애들로 시끌벅적하고 아낙네들의 얼씨덩 빨래방치소리가 귀맛을 댕긴다면, 푸른 해란강, 푸른 가야하, 푸른 훈춘강...오염없는 강물로 관개하고 화학비료가 없이 생산한 윤기 자르르한 진짜 록색입쌀을 우리가 먹는다면... 여름에는 피서의 명승이요 겨울에는 빙설천국의 묘미를 즐길수 있는 진짜 살기좋은 고장 친환경의 연변, 무한경쟁력을 가진 천혜의 땅―산 좋고 물 맑은 내 고향 연변으로 거듭날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가 이길수 있는 승부수가 아닐가?!
2    [사회] 승냥이는 과연 왔는가?! (김창진2) 댓글:  조회:1503  추천:78  2007-03-11
승냥이는 과연 왔는가?!김창진 연변교육출판사 총편판공실 주임 거짓말 잘하는 애가 거짓말로 승냥이가 왔다고 마을사람들을 여러번 얼렸다가 결국 진짜로 승냥이가 왔을 때 마을사람들은 거짓말로 여기고 누구도 구하러 가지않는 바람에 목숨을 잃게 되였다는 교훈적내용을 담은 이야기가 생소하지는 않을것이다.적신호는 있었는데…90년대초반을 좌우로 학계에서는 이미 조선족인구의 마이나스장성에 대해 거론했고 그후부터는 부분적 조선족향진의 인구가 마이나스장성이라는 사실이 매스컴에도 다루어지게 되였다. 다시말하면 승냥이가 왔다는 적신호를 우리 사회에 보내준것이다. 그때로부터 7, 8년사이에 조선족인구마이나스장성문제는 급전직하(急轉直下)의 일로를 걸어 제반 조선족향진에 파급, 지금에 와서는 그 충격을 도회지에서도 체감할수있다. 진정 승냥이는 온것이다. 사회발전행정에서 농촌인구가 줄어드는것은 도시화의 추세로 인한 필연적 결과라는 해석이 설복력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조선족집거지구가 그 충격파의 선두에서 허덕인다는 점에서 우리는 민족자체의 자성이 필요한것이다. 충격의 첫대상―농촌교육우리는 돈을 벌었고 생활수준도 제고되였다. 하지만 우리가 치른 대가 또한 가볍지 않다. 전원생활의 랑만을 선물하던 그 아늑하고 평화스러운 삶의 터전이 점차 삭막해지고 있고 피페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수 없다. 동구밖에서 오구작작 떠들어대며 놀음으로 해를 지우고 마을의 조용함을 허물던 애들을 인제는 별로 찾아볼수 없다. 응석을 부릴 나이를 잃은 소학교기숙생들, 그것을 학교운영분포조절이라는 명분하나로 여린 마음을 감싸주고 농촌교육발전의 일환으로, 추세로 해석하기에는 너무나 힘벅찬 일이 아닌가싶다. 여나문되는 학생을 두고 학교랍시사고 운영나간다는것도 무리인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애어린 기숙생들이 나타난것이다. 풀만 무성한 운동장과 함께 주인없는 한산함과 쓸쓸함을 꾸역꾸역 토해내는 농촌학교의 현주소를 도시화라는 한마디말로 덮어감추기는 역부족이다. 어찌보면 농촌교육의 부진이 도시화에 가세했다. 자식망치겠다고 무작정 시가지로 들어와 사는 시골사람들, 그들의 선택을 그르다고만 할수 없다. 교육이 살아야 농촌이 살고 농촌이 살아야 도시도 산다는 말을 또 한번 실감케한다. 현재 조선족농촌의 다른 한풍경, 덜먹총각은 많은데 처녀들은 보기 어렵다. 도회지로 장사길에 오른 사람, 외국으로 돈벌이간 사람, 자식공부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도회지의 구석에 몸을 비비고 사는 사람들로 농촌의 인구는 줄고 농촌에서 처녀구경하기 어렵다. 일년가도 아이돌생일잔치음식한번먹기 어렵다. 《생산》은 못하고 《수출》만 하니 시간이 가면 바닥이 날것은 강건너불보듯하다. 후공업사회로 이전하는 발전행정에서 농경문화가 감내해야 할 응분의 고통이고 필연적 충격이라는 《유식》한 해석하나로는 너무나 창백하다.무풍지대가 아닌 도회지네온싸인이 명멸하고 도회지의 유흥가들이《연변의 명동》이요. 《작은 향항》이요하며 번화함을 자랑하는 도회지 역시 무풍지대가 아니다. 인구의 마이나스장성으로 인한 충격은 도회지에서도 피부로 닿아오고있다. 그 충격을 가장 실감하는것이 교육인가본다. 사회적으로 일컫는 《병목현상》이 나타난것이다. 연길시를 일례로 초중은 아직까지 초부하상태, 한개학년 10개정도의 학급을 보유하고 학생도 정원을 초과해 초대학급을 이루기에 학교를 증설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소학교의 상황은 《머리가 크고 다리가 약한》 구도를 이루고있다. 6학년이나 5학년은 6개내지 8개 혹은 그보다 더 많은 학급으로 규모를 이루고있지만 저급학년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적어지고 올 7월에 6학년이 졸업하면 학급이 대폭 줄것으로 예정된다한다. 일전 모 소학교의 책일일군은 올해 8개학급이 졸업하는데 새 학기엔 두개 학급의 정원(定員)이나 채워지겠는지 하며 한숨을 톱았다. 실리를 바탕으로 하는 한족학교입학열여기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일찍 7ㅇ년대에 불어치던 본민족어의 무용론이 쇄도하기 시작한것이다. 민족의 근간을 이루고 민족군체의 리더가 되여가고있는 지식층, 우리민족의 지적힘이 되고있는 엘리트들마저 분분히 자식을 한족학교에 입학시키고있다. 모 한족소학교의 한개학급 50여명학생가운데는 조선족학생이 20여명, 절반을 점하고있다. 한족학교에 붙고 전학해가는 조선족산재지구의 개별현상이 조선족집거지구의 보통현상으로 옮겨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놀랍게 아니,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있다. 인구자연장성의 감소와 거기에 가세한 한족학교로의 입학과 전학은 조선족소학교 소학생수의 격감을 유발하고있다. 조선족소학교학생수의 격감은 인젠 리론으로서가 아니라 피부로 다가오고있다. 모시에서 졍협의안으로까지 제기될 정도로 문제는 심각하다. 《…민족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선전강도를 강화하고…조선족교원의 한어교수수준을 높여야한다…》는 의안에 대한 처리대답 또한 《신을 신고 가려운데를 긁는》 격으로 명답은 못된다. 공식적인 인상이 다분하다. 문제의 심각성으로 감안할때 너무 간단하게 내린 답안이 아닌가싶다. 실리적인 가치관 지양해야민족자치의 권리는 국가에서 부여한것이고 신성불가침이다. 당과 국가의 성공적인 민족정책과 배려를 더 충분히 향유하지는 못할지언정 저절로 그 권리를 포기하는 못난짓은 할수없다. 우리가 지금 그 못난 짓을 하고있는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영달 혹자는 자녀의 립신양명(立身揚名)을 고집하면서 실리적인 삶의 방식을 택한다 할 때 이런 사람들로 합쳐진 군체의 저력 또한 있을수없다. 저력없는 군체의 존재는 무기력한것이고 쉽게 허물어지고마는것이다. 유태인은 나라없고 땅없는 천년을 넘는 력사의 풍전등화속에서 자신의것을 지켜왔기때문에 세계우수민족의 수림속에서 끈끈한 뿌리를 내리고있는것이다. 설명해둘것은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주자는것은 절대로 편협한 민족주의와 협애한 지역사상이 아니라는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의 리유와 존재의 뿌리를 회멸하며 일시의 영달을 꿰하는 그런 실리적인 일대를 후날의 력사에 살게 해도 안된다. 경제발전이라는 광환으로 모든것을 가리자는 생각은 어리석다. 경제의 발전과 우리를 지키는 작업은 모순될수없고 또 모순되여서도 안된다. 이면에서 우리 자치주의 리더역할을 하는 부분적민족간부들에게 섭섭한 감을 금할수없다. 우리의 농촌교육, 우리의 농촌, 우리의 도시 우리의 제반교육, 우리의 언론, 출판, 문화가 상품경제와 실리본위주의의 충격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와중에 승냥이가 왔다는 이야기는 분명 들었을 이들이 불감증에 걸려있다는 슬픈 현실을 감지하며 마음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조선말을 하지 않고 조선글을 보지않는이들, 혹자는 될수록 하지않고 될수록 쓰지않는 우리민족의 간부들이 구경 어떠한 책임을 져야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책임이라야 도의적 책임이나 량심적 책임일뿐이다. 조선문신문발행을 일례로 《조선문신문은 농촌에서 보고 한어신문은 기관에서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선문신문은 정부기관에서 소외당하고있다. 조선문신문발행이 난항인 여러가지리유가운데서 한가지를 꼽으면 조선족간부들부터 앞장서 민족어로 된 신문을 보고 홍보하는것이 아니라 자신부터 민족언어를 홀대하는데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어수준이 간부로서는 중요한 능력일환이고 필수적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제어디서나 그나마 변변치않는 한어를 들먹일 필요가 있을가? 이들은 본의아니게 우리민족지역사회의 가치관에 막중한 영향을 주고 있다. 상품경제가 가져온 실리적인 가치관과 전통적인 관본위(官本位)사상에 걸직한 거름을 붇는다는 얘기다. 지도일군이 되자면 우선 한어를 잘해야하고 한어를 잘하자면 한족학교에 가야한다. 조선어는 글을 뜯어볼정도면 된다. 이런 비뚤어진 론리가 제반 민족공동체의 가치관을 좀먹고있다. 지도일군이 되는데서 한가지조건이던 한어가 선결조건으로 자리매김되였으니 조선족학생이 한족학교로 가는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순으로 되였다. 《내가 죽인것이 아니지만 나로 인해 죽었다.》는 중국의 고전이 떠오른다. 우리의 민족간부들은 정부사업보고나 인대보고만 조선말로 할것이 아니라 처처에서 그 모범을 보여줘야할것이다. 민족언어불감증, 대학가부터 치유해야연변의 엘리트의 산실이라고 칭해도 전혀 과분하지않는 연변대학을 사업관계로 여러번 취재했지만 적지않은 경우 들리는것은 조선말냅새가 다분한 한어발언이고 보이는것은 한어표지뿐, 아마 두가지문자를 함께 쓴다는 조선어문사업위원회의 결정도 잘 모른는가본다. 아이러닉컬한것은 적지않은 모임에서 주석대에 앉아있는 교수님들이 중국조선어문의 권위들이고 제일인자라는것이다. 또 풍자적 의미를 띄는것은 그런 모임이 많이는 박사생학위수여식같은것이였고 조선어문학부의 행사가 많았다는 점이다. 소절에 구애되지 않아 그런것인지 모르겠지만 신문 잡지 론문에서 민족성과 민족진로를 가장 많이 거론하던 엘리트들이 민족언어불감증에 걸려있고 심지어 제자식의 손목을 잡고 한족학교의 대문을 두드린다는 사실에서 또 한번 마음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수 없다. 우리민족의 미래문제에 대해 모 교수는 인구가 계속 줄어도 연변지역의 조선족은 앞으로 지금의 산재지구의 조선족처럼 조선말을 잘모르는 정도이지 동화는 되지 않을것이라고 가볍게 예언, 또 한번 대학가의 불감증을 감지하였다. 세계일일권시대에 언어나 교육의 민족적인것만 고집하는것은 틀린것이라며 승냥이가 왔다는 사실조차 인정하려하지않는 지성인들도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지성인은 그 《지성》이라는 두글자에 부끄럽다.민족적인것과 세계적인것가장 민족적인것이 가장 세겨적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락후한것을 지양하고 선진적인것을 받아들이는 민족, 자신을 지키는 민족만이 희망있는 민족이다. 고루한것, 뒤떨어진것을 고집하고 진취를 거부하며 개혁을 경원시한다는것과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담보하는 자치권리인 자신의 언어, 자신의 교육문화를 지키고 발전해나가는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일본은 고대에는 선진적인 당조를 따라배웠고 근대에 와서는 선진적인 서방을 따라배웠다. 넓은 바다와 폭풍, 죽음을 무릎쓰고 고국을 등뒤에 둔채 중국에 온 견당사들, 란학(蘭學)을 배우고 구미를 읽으면서 바꾸후의 통치에 도전해나선 개혁파들, 이들로 하여 일본은 자신을 언제나 부정하면서 부강에로 가는 길을 이루었고 구미와 어깨를 겨루는 아세아의 강국으로 되였다. 비록 팽배한 야망으로 아세아와 세계를 전쟁에 휘몰아넣은 장본인이 되였지만 자신에 대한 과감한 부정은 우리가 따라배울바이다. 전쟁의 페허우에 경제의 기적을 이룩한 일본의 발전은 결코 민족성과 전통성에 대한 부정으로 이루어진것은 아니다. 상반대로 민족성의 철저한 발휘와 지킴으로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또 알아야한다. 자신의것을 지키지 않고 혹은 그것을 대가로 이룩한것은 오래 갈수 없다. 또한 그것은 결국 자신의것이아니다. 농촌으로부터 도회지까지, 교육으로부터 문화, 출판, 신문업 나가서 제반 문화사업까지 영향주고 심지어 민족의 존속까지 관여되게 심각한 문제를 대안이 없이 그저 보고만 있어서는 안될줄 안다. 《잘먹고 잘살면됐지, 한족학교면 어찌고 조선학교면 어떠냐? 애가 하나면 어쩌고 둘이면 어떠냐? 내가 편안하면 되지》 하는식의 자사적이고 실리적인 삶을 더는 고집하지말았으면 한다. 책임감 없고 사명감 없는 민족이 되여 자사적인 전통을 후대에게 그대로 심어주는것이 잘못되였다고 권장해본다. 승냥이가 왔다는 얘기도 한번 더 해보고싶은 마음이다. 인젠 믿어도 좋고 안믿어도 좋지만.로씨야의 명작가였던 뚜르게네브는 림종직전에 로씨야의 작가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우리들의 귀중한 유산인 로씨야어를 지켜주시오.》
1    김창진 프로필 댓글:  조회:1879  추천:101  2007-03-11
김창진연변교육출판사 사장총편조리,연변미래문화유한회사부총경리.1989년 남개대학 력사학부 졸업.1993년까지 연변1중 교사.1993년~1999년 연변일보사 기자,편집국 부국장 전화:13943373210 cz-kim@hanmail.net ,mrkim@16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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