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자의 말>
오늘 연변대학교 조선어학과 석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의 칼럼 8편을 추천한다. 한족학생들이지만 몇 년 간 조선어를 열심히 공부해 듣고 읽고 말하고 쓰기에서 상당한 실력을 갖추었다. 이 번 학기 <조선어글쓰기>를 배우면서 각자 쓴 칼럼인데, 좀 미숙한 점이 많지만, 이들의 풍부한 지식과 예민한 감수성 및 참신한 가치관과 사회비판의 힘이 돋보인다. 독자 제현의 일독을 부탁 드린다.
추천인:연변대학 조선-한국학연구중심 교수 김호웅
-칼럼 1 –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곽가환(연변대학 조선어학과 석사과정 2010년급)
요즘 두 편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하나는 힘 없고 빽 없는 50대 초반의 대한민국 남자 윤모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입니다. 그 남자의 자살 이유는 "장애를 가진 아들이 복지혜택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의 아들은 한쪽 팔이 불편한 장애아입니다. 그는 일용직 노동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해 왔지만 최근에는 일감을 거의 찾지 못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불구자인 아들을 부양할 형편이 되지 못하자 "살아있는 게 가족에게 오히려 짐이 된다"고 자책했습니다. 그래서 지신이 목숨을 끊으면 불구자 아들이 고아가 되여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거나 장애아동부양수당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듯합니다. 여러 정황을 감안할 때 그는 아들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하나는 뉴욕에서 열린 제38차 국제 에미상 시상식에 대한민국 최초로 이 상을 수상한 '풀빵엄마' 최정미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5년간 동거했지만 거듭된 불화로 헤어진 뒤 그는 자신의 성을 따른 두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이면서 아빠인 최씨는 아이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벌고 살림을 했습니다. 5년 전부터 그는 매해 겨울 풀빵을 구워 팔았는데, 맛있다고 소문이 나 제법 매출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2007년 7월 소화불량 때문에 찾은 병원에서 위암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대에 올랐으나 4개월 후 전이되었고 길어야 2년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최씨는 ‘아이들이 스무 살 될 때까지 반드시 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그는 풀빵 장사를 그만둘 수가 없어서 새벽부터 반죽을 준비하고 늦은 밤까지 칼바람을 맞으며 장사했습니다. 그런데 2009년 7월 30일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두 기사는 다 슬프고 감격스러운 기사입니다, 하지만 저는 윤모씨를 동정할 수는 있지만 긍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들 위해서라도 삶이 힘겨울 때 필사적으로 살지 않고 난관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자살로 현실을 도피한 것입니다. 그러나 최정미씨는 아픔을 견디고 누구에게나 낙천적이고 희망적인 사람으로 비춰지고 오히려 주변사람들이 그녀부터 힘을 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신체가 건강하고 살림이 넉넉하고 별로 불행을 겪지 않고 잘 살지만 행복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자기 자신이 제일 불행스럽고 억울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삶이 힘겨울 때,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질 때, 좌절과 실패를 두려워할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삶과 죽음은 한 순간에 결정됩니다. 부모님은 몇 십년동안 우리를 애써 키워주는데 단지 한 순간의 황당한 생각 때문에 죽음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죽고 싶을 때 병원에 한번 가보십시오.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버리려 했던 목숨,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려 애쓰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최후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또는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갖고 살아갑니다. 책임감이 있게 열심히 살아가야만 바람직한 삶, 의미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하느님은 일정한 사명을 완성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지구에 있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사명을 안수하지 못했기에 죽지 못합니다." 죽고 싶을 때 이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