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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정신 못차리는 日本 댓글:  조회:5148  추천:7  2013-08-12
몆칠후면 태평양전쟁의 종말과 아시아 여러국가의 광복절이다. 온갓 만행과 약탈로 우리민족에게 씼지못할 아픔을 준 일본은 8월 15일 연합국들에게 항복을 서약하무로서 전쟁의 끝과 동시 우리민족에게 36년간의 식민지 생활의 끝의 광복을 맛볼수 있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이 끝이난 이후 지금까지 거의  70년이 다 돼가도록 일본정부의 행동과 행실은 어떻했는지.... 일본은 이번 8월15일 폐전일에 대다수의 정부 고위직 관계자들이 야스쿠니에 참배를 한다고 한다.   야스쿠니가 뭔가, 선량한 국민, 시민들에게 막대한 전쟁의 피해를 입힌 전범들을 매장하여 모여 있는 묘지가 아닌가.  수많은 인명을 직.간접적으로 죽음으로 몰아간 전범들을에게 일본정부의 최고의직 인사들이 참배를 하여 존경의 의식을 치룬다는것이 아닌가.  만약 독일의 고위관직 인사들이 2차대전의 주범인 히틀러와 나치 인사들의 묘소에 참배하고 존경의 인사표현을 한다면 과연 유럽 국가들이 독일을 어떻게 응징을 했을까...... 8월12일, 세계 최고 경제전문지 월스트리트저널(World Street Jounal(WSJ.com)에 전범들에게 참배를 하는 일본을 비꼬는듯한 기사가 실렸다.  세계 2차대전의 주범인 일본과 독일이 전후 어떻게 주위 국가들에게 사과를 했나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위 왠쪽 사진엔 독일 제 4대(1968~1974) 총리인 빌리 브란트가 무릅을 굵고서 세계에게 독일 침략을 사과하는 모습과 지금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세계에 독일의 잘못된 2차 세계대전의 실수를 사과하는 모습이다.   그럼 반대로 우측의 사진을 보면 일본자위대 전차위에서 군복을입고 망언을 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일본의 극우세력의 주동자이며 위안부를 몸파는 여인들로 묘사하여 세계의 지탄을 반고 또한 방문하고자 하는 미국에서 방문 거부를 받는등 개 망신 당한 일본 오사카시 시장 하시모토,  독일 나치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유명한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사진을 WSJ 신문이 독일 총리들과 비교했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은 이런 세계인들이 비웃음과 조롱을 모른다는것이 더 슬푼현실이다. 한술 더 떠서,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이 아시아를 현대화 했다고 우겨대니......(김 문학 교수 글 참조) 얼마전 유럽 그리스 축구장에서 골을 터트리고 독일 나치식의 경례를 표현 했다가 평생 국가 대표 선수로서 뛸수 없다는 징계와 소속팀으로 부터 영구 퇴출당하는 수모를 당한 한 유럽축구선수 영구퇴출된 이유는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긴 나치의 경례에 용서할수 없었다 라고 한다 그럼 일본은....  일본은 아직도 욱일승천기를 들고 아시아 국가들과 운동 경합할때 많은 아시아국가들을 조롱하듯이 욱일승천기(전범기)을 휘두루고 있다.  그런 일본을 아시아 축구 연맹과 한국, 중국은 관망만 하고 있는 상태...... 창피하고 쪽팔린것도 모르고 전범기를 흔드는 일본인들...... 중국과 한국의 이웃인 이들을 우린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마도 우린 너무 빨리 그리고 관대하게 전범 국가인 일본의 죄를  용서한것이 아닐까?  정말 미친개에게는 뭉둥이가 약일까?
35    강소성 강음시 화서촌(華西村)을 가다 댓글:  조회:3089  추천:4  2013-07-06
약 1 개월전, 회사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강소성 강음시에 있는 OOO 란 회사입니다. 귀사와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란 내용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1주일전에 우연하게 상해에 출장을 같다가 OOO 란 회사에 전화를 걸어 방문을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강은시에 도착한 전 입을 다물수 없을 정도로 깜짝 놀랐습니다. 강음시의 거의 모든 도로는 왕복 6차선으로 정말 잘 정돈된 도시로서 길 주위가 깨끝하여 뭐라 흠잡을수 없을 것이 없으며  도시의 대부분이 고층 아파트보단 잘 정돈된 별장들이 수도 없이 나열된 도시였습니다.  OOO 회사 동사장은 놀란 저의 모습을 보고선 "중국 제일 화서촌을 들어본적이 없는가?"란 그의 질문에 전 못들어 봤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OOO 사 동사장은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화시촌의 당서기 오인보 는 지난 40년간 당서기를 하고 있으며 오 서기가 30년전에 촌민들을 설득하여 가구당 2000원식 투자 못과 나사를 만드는 집단을 만들어 오늘날의 "화서그룹"이 시작 됐다고 합니다.  그당시 화서촌의 인구는 약 2000명으로 가구당으로 따지면 겨우 700가구정도.... 오늘날 화서그룹은 연간 매출 5000억元 으로서 화서촌 농민들은 대다수가 화서그룹구딩(대 주주)이라고 했습니다.  화서촌에서 인민폐 1000만元 소유자는 빈곤층이라고 놀린다 했습니다. 중국제일화서촌을 들어가 봤습니다.  겉으로 봐도 약 500~600平되는 집에 집집마다 모두 수영장이 마당에 있으니 집 값만도 1000만元 수준.... 왜 1000만元 소유자가 화서촌에서 빈곤층이라 하는지를 피부로 직접느끼게 했습니다. (화서촌을 구경하로 오는 관광객만 年120 만명으로  그런 관광객이 화서촌을 공중에서 구경할수 있도록 촌내에 8대의 개인비행기까지 있다고 합니다) 저의와 거래를 하자는 OOO 기업 역시 화서촌 출신 2세들 4명이 모여 설립된 회사로서 그들 4명 모두 OOO 회사 왜 각자 다른 공장을 하나식 가지고 있는 부유층이였습니다.  그들의 나이는 36~41세로서 화서촌에서 함께 자라면서 화서촌이 어떻게 발전했으며 어떻게 해야지만 성공할수 있는지를 보고 자란 사람들이였습니다. 동 사장과 구딩 4명은 저에게 "지금것 자기들이 만든 제품의 대다수가 일본, 한국, 대만....... 등으로 수출을 한다, 젋은 자기들은 미국 시장으로 자기들 브렌드로 미국 시장으로 직접 진출하고 싶다", "미국시장으로 진출할수 있게 도와 달라"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미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 2008년 부터 준비 해 왔다고 합니다.   전 그들에게 "미국내에 수많은 화교들이 있는대 왜 나에게 열락을 했는가" 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답은 명확하게 "우린 우리 브렌드로 미국시장에 직접 들어가고 싶다 주문자 생산방식은 사양하겠다"라고 하면서 "지난 2년 동안 중국 공산국 수출 실적을 다 뒤져가면서 조사한 결과 몆몆회사중에 하나가 우리였다" 라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기득하지만 또한 맹랑하고 겂 없는 청년들입니다. 그들의 젋음과 기백에 저절로 부러워 하게 했습니다.  중국 자체 브렌드로 미국 시장에 진입한다는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주문자가 요구하는 대로 생산하여 납품하면 그만인걸 힘들게 오랜 시간과 거기에 따르는 금전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자체 브렌드 진입은  젋음과 용기가 있기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희망처럼 일이 진행됄지 않됄지는 지금은 미 확정적이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젋은 그들을 보면서 연변지역이 생각납니다. 우리 연변지역도 화서촌 마냥 어떻한 제품을 "조합"을 만들어 생산과 수출을 한다면 화서촌 처럼 큰 사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2세들에게 세계로 진출할수있는 기백을 만들지 않을까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34    죽 끓여 개 줬다! II 댓글:  조회:2094  추천:3  2013-06-29
몆칠전에 올린 "죽 끓여 개 줬다"를 좀더 상세하게 말씀드리고자 다시 글을 씁니다.  말씀 드렸다 시피 이글은 저 개인의 생각 뿐이니 너무 큰 비중을 두시지 말기 바라며...      글을 계속 쓰기전에 왜 미국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됐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1785년 미국정부는 자국 화폐단위를 달러(Dollar)($)란명칭으로 지정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 금(金)보유량의 70% 이상을 보유한 미국은 풍부한 경제력과 금을 담보로 국제톻화로서 유통이 시작 됩니다.  세계 2차대전 이전엔 국가대 국가의 무역 지불은 금으로 하였기에 세계 금 보유량의 70%넘는 미국의 달러가 자연스럽게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메김을 합니다.      1995년 당시 미국의 화폐인 달러는 약380조 달러가 미국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유통되었으나 2005년 두배에 가까운 760조 달러가 세계 시장에 뿌려집니다. 아이러니 하게 2005년 부터 금 값은 청전부지로 올라 갑니다. 왜 올라갔을까요?   그 이유는 많은 화폐를 찍어낸 미국의 화폐 가치를 유지 하기 위해선 금 값은 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세계 국가마다 금을 담보로한 달러 가치를 믿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달러를 더 찍어내면 금 값도 같이 올라간다는 달러 대비 금 값은 정비례한다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재미있는 척도 하나를  말씀드리면 미국의 자국화폐이면서도 미국내에서 유통되는 달러는 경우 30% 선이며 나머진 모두다 재 3국에서 소유하거나 유통한다는 겁니다.   다른 국가들의 화폐 유통을 보면 미국의 경제적인 횡포에 대항마로 나셨던 유럽 연합의 유로화는 26%, 영국의 파운드는 4%, 한때 세계 제 2위의 경제대국이였던 일본은 3.9% 그리고 중국의 인민폐는 0.87%로만 자국외에서 유통을 합니다.  그러니 미국이 달러를 많이 풀면 풀수록 제 3국의 화폐량의 세계시장 유통량이 줄어들것이며 이것은 다시 제 3국의 화폐가치를 올려 미국부자들의 늘어난 화폐 유통량으로 투자되어 그들에게 손하나 까닥 안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 됩니다.     세계 국가들중 미국은 유일하게 정부가 화폐의 발행권이 없는 정부입니다.  미국정부는 단지 채무 발행권만 있습니다.  화폐의 조절은 연방준비위원 이사회에서 결정을 합니다.   미국정부에서 발행한 채권을 연방준비위원회에서 받아 그만큼의 달러를 찍어서 돌려주며 연방준비이사회는 채권을 재 3국으로 팔아 넘겨 다시 달러 현금을 미국으로 들여 옵니다.  시체 말로 채권을 3국에 팔고 필요 하면 달러를 더 찍어서 사들이면 된다는 방법입니다(좀더 구체적이지만 설명이 길어져서....이해 부탁드립니다).      얼마전에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인 벤 베넹키를 미국이 긴축정책으로 돌아 선다고 했습니다.  즉 그동안 풀었던 돈을 회수 하겠단 말이 됩니다.   막 풀어낸 달러로 인하여 제 3국의 회폐 가치를 올려 놓코선 풀렸던 달러를 회수하여 투자와 환차익을 보겠단 속샘입니다. 다시 말해서 $1달러를 찍어내서 $2 달러를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여 $1 달러는 원금으로 보관하고 벌여드인 나머지 $1달러로 당분간 편하게 생활 하겠단 이야기 입니다.     위에 말한것은 저가 좀더 쉽게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함입니다만  하지만  거의 같은 방식입니다.  제 3국들은 열심이 물건을 생산하고 개발하여 힘들게 돈 벌이하면 미국은 뒷마당에서 돈을 찍어 돈놀이 하고 돌아온 이득으로 당분간 생활하는 고리업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알면서도 당해야 하는 우리입장에서는 그져 죽 쉈 개줬다 란 말만 되풀이 됩니다.
33    죽 끓여 개 줬다! 댓글:  조회:2800  추천:3  2013-06-24
불과 몆칠전, 미국 연방은행 준비제도 의장인 벤 베넹키(Ben Shalom Bernanke)의 말 몆마디에  지금 세계 경제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세계 경제는 폭풍을 맞은듯 날리가 났다는 표현이 정확할겁니다. 과연 베넹키란 사람이 누구이고 뭣 때문에 그의 말 한마디가 세계 경제를 흔들었는가를 저 나름대로 알아 봤습니다.  저 개인적 소견이니 저의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안기를 바람니다. 2006년 2월 미국 하버드대학과 MIT 대학 출신인 버넹키는 미국 연방은행 은행장과 준비제도 의장으로 선출됩니다. 2009년부터 서부 부라임 모게지 사태로 침울해진 미국은 버넹키의 양적완화(QE)를 외치며  하루에 60억 달러의 지폐를 찍어대며 돈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경기침체의 기로에 선 미국인들은 양적완화로 불어난 달러를 1%선의 은행이자를 내면서 쉽게 대출을 받은 돈으로 투짖;러 아시아 경제 신흥국에 대거 투자를 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의 주식, 부동산, 국채등을 사들여  미국이자보다 높은 아시아 국가의 이자로 본인들의 대출금을 값으면서 돈 잔치를 했습니다. 문젠 이자뿐이 아니였습니다.  마구 뿌려진 달러의 가치는 하락했으며 투자자들은  환률 차이만도 어마어마한 돈을 집에서 코 파면서 벌여 들였습니다.   또한 마구 뿌려진 달러로 아시아 국가들의 주식을 사들인 사람들은 해당 국가에 유입되는 달러 때문에 주식 값은 폭등했으며 그로 인한 수익은 숫자로 표현하기 힘든 금액입니다.  어디 그것 뿐입니까, 달러로 아시아 주요 도시의 부동산을 매입하여 부동산 거품을 만들어 현지인들의 현실과 동 떨어진 상상도 할수 없느 부동산 가격을 형성하게 했으며 은행들 역시 부동산 거품에 힘입어 자산가치를 거품으로 높혀서 하루 아침에 세계 10대 은행에 중국의 4개 은행이 진입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몆칠전 벤 버넹키는 미국은 양적완화를 멈추고 출구전략으로 그동안 뿌린 돈을 내년(2014녀) 6월까지 돈을 회수하겠다고 했습니다.  왜! 내년 6월까지 시행할 출구전략을 뭐하러 이렇게 일직 발표했냐 입니다.  그의 발언으로 인하여 아시아 주요 국가의 주식은 폭락을 했으며 불과 하루 사이에 한국, 중국, 인도 등에서 어마어마하 액수의 달러가 미국으로 빠져 나갔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적으로 빠져 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빠져 나갈걸로 모두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는 환률이 차익을 본 외국인 투자자들이 달러가 더 올라가기전에 투자하 돈을 회수하고자 함 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1 달러당 6.80 rmb 에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 회수를 하면 $1.15의 가치로 돌려 받을수 있으며 만약 그 투자가 주식, 국채 또는 부동산일 경우그동안 아시아에서 받은이자까지 포함하면 $2.00가 넘는  금액으로 돌아 오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젠 주식, 체권, 부동산 투기는 시장 잡배들이 하는 놀음과 동일합니다. 누군가가 따면 반드시 누군가는 돈을 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외국 투자자들이 돈을 벌어 같다면 과연 돈을 일어버린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24일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에 따르면 국무원 참사실의 탕민(湯敏) 참사는 전날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열린 국제금융교역박람회" 에서 탕미 참사는 중국의 심각한 부동산 거품으로 중국경제의 구조적 위기가 따른다고 발표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택값 폭락으로 금융권과 부동산 담보로 대출을한 지방정부가 심각한 자금란이 생길수 있다는 발표입니다. 금융가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중국의 4대 은행중하나가 심각하 자금란에 있다고 합니다.  저축을 많이 하는 중국에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져 열심히 일한 우리에게 미국은 돈으로 폭탄을 날렸습니다. 중국정부도 덩달아 긴축정책으로 나간다 했습니다. 같득이나 안 좋은 경제에 은행들은 기업에게  대출 상환을 독촉할거며 또한 대출 이자를 올려서 기업들에게 투자를 꺼리는 악순환이 될거라 예상됩니다. 베넹키의 위와 같은 발언과 행동은 깡패를 끼고 하는 사채업자들과 뭐가 틀립니까.! 물론 이 모두가  합법적이지만 지금 막 세계경제에 위상을 알리려고 하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찬 물을 끼얻는 미국의 행보는 당연하게 지탄을 받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미국본인들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내고 제3국에서 돈잔치 하여 불과 몆년 만에 투자한 금액의 두배가 넘게 달러를 회수하여 돌아 가는 파렴치한 사람들...........일어버린 돈의 고통은 고스란이 우리 목이 될겁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문구가 생각납니다.  "죽 쑤어 개 줬다"
32    연변 젊은이들의 성공담에 한마디 댓글:  조회:2622  추천:5  2013-05-29
지난 5월 5일부터 5월9일까지 미국 텍사스주(Texas) 휴스턴시(Houston)에서 매해 정기적으로 열리는 OTC(Ocean Technology Conference)전람회에 참가하여 본 몆가지를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OTC는 해양 석유 시추에 관련된 회사들이 자사의 최고 기술을 집약식인 제품을 가지고 나와 자웅을 겨루는 장소 입니다.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과 최고의 기술을 가진 기업들의 대 잔차라 할수 있습니다.  7년전만 하더라도 이 전람회에서 단 하나의 중국기업이 참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참가를 안한것이 아니고 참가할려해도 기술력이나 내 보여줄 제품이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올해는 예외 였습니다.  약 40여개(저의 짐작으로)에 가까운 중국업체들이 전시회의 참가자로서 나왔습니다. 아직은 초보적인 제품이지만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일본, 한국 만의 잔치에 중국이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놀라운건 해양에 필요한 선박과 강판을 위주로 나온 한국, 일본, 노르웨이 보단 중국쪽에선 훨씬 종류가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물론 아직 초보적인 제품들이지만 중국에서 많은 돈을 투자하여 해양쪽에 몰입한다는걸 피부로 느낄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번 OTC에 참가한 기업은 중국석유공사를 제외한 대다수가 개인 기업이란점에서 전 많은 걸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급, 고부가가치 산업에 이곳 연변지역이 빠지는건 아니였습니다.  단 하나의 연변지역 기업도 OTC에 참가를 못하는 실정이지만 참가한 기업들의 고급인력으로는 연변지역 조선족을 많이 찿아 볼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S 엔지니어링, 기업 이름만 대도 세계가 다 아는 S 엔지니어링에 조석족 K 씨가 대리라는 직책으로 S 엔진니어링 참가자로 나와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의 D 중공업에도 조선족 M 씨가 대리라는 직책으로 참가를 했습니다.  전 먼 미국에서 만나 이 두 사람이 고향 사람같은 느낌이 들어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는 저의 제의를 두사람이 흔쾌이 받아 그날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저녁식사 시간때, K 씨는 도문 출신이며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후 한국과학기술대학에서 석사를 수료하고 지금의 S 기업에 스카우트 됐다고 하며 M씨는 왕청 출신으로 중국에서  대학 졸업후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수료했고 지금의 D 중공업에서 스카우트 됐다고 했습니다.  이 두사람 모두다 "대리"라는 직책으로 근무하고 있다 했습니다.  그들이외에 이 두 대기업에 전문 고급인력으로 근무하는 조선족이 약 10여명 된다고 합니다.  전 두 사람에게 한국에서 공부하는데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 봤습니다.   두 사람다 이구동성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설계 도면 전문가인 K 씨경우 중국에서 쓰는 부호와 기호가 틀리며 중국에선 보지도 못한 ASME(미국기계협회 표준)방식을 배우니라 눈물로 밤을 지세운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였다고 합니다. 교과서는 거의 대부분이 영어책이며 그나마 있는 한국어책은 읽어도 무슨뜻인지 몰랐다고 하소연 했습니다. 전 다시 그들에게 한국회사에서 차별이 없느냐 라고 질문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 약간의 마찰을 있으나 피부로 느낄만큼의 차별은 못 느낀다고 했습니다.  업무에 실수로 상사에게 욕을 먹을때도 있지만 그건 다른 한국인 직원들도 똑 같이 욕을 먹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할수 없다 했습니다.  그들이  대리 직책으로 받는 월급은 한국인 대리들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또한 회사에서 내 직장동료들하고도 차별없이 잘지낸다고 했으며 오이려 고향떠나 멀리 있는 자기를 측은 하게 생각하여 한국명절때 너무 많은 직장동료들이 자기집으로 초청하여 그집들 다 다니니라 정말 바뿌다고하며 웃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호텔에 바랴다주며 호텔당으로 들어가는 그들이 저에게 연변말로 "고맙습니다 예"  하며 미소짖는 모습을 보녀 중국인이며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정말 대견해 보였습니다.  그들과 대화중에 M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중국인이라서 몰랐다"란 말은 변명이다 다시말해 "몰랐으니 봐 다랄" 또는 자기 자신을 상대에게 낮춰서 봐달라는 뜻과 뭐가 틀린가 라고 항변을 했습니다.  몰랐으면 배워야 하고 배운후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동을 해야 한다고 저에게 침을 튀며 역설했습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저로서는 M씨의 말이 괘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모를수도 있지 외국인인대" 라고 답을 하니 M씨는 저에게 "사업을 하는 분이 그정도 준비도 없이 사업을 시작하셨나요?  그럼 사업이 망하면 외국인이라서 차별 받아 망한거라고 변명을 할거며  성공하면 뭐라고 말씀하실 겁니까?" 그의 그말에 전 정말 할말을 잃었습니다(지금도 M씨의 말이 괘씸하지만 논리 정연하고 정확한 말이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음). 저가 여기서 알리고자 함은, 위에서 말한 M씨, K씨는 단순노동직이 아니며 중국어 한다고 통역 또는 중국진출을 위해서 고용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 한국인 명문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피튀는 경쟁속에 입사한다는 업체에  그들의 능력과 실력을 인정하여 중요분야의 전문인으로 고용된 사람들입니다. 그돌의 노력과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마지막으로 우리 연변지역 젋은이들에게 이들의 성공담이 학업정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31    마녀사냥 댓글:  조회:2371  추천:21  2013-05-09
어떤 일정한 사람을 지정하여 계속적인 모욕내지 폭언을 하는 경우를 우린 "마녀 사냥"이라고 합니다.  지난 두번의 글이 이곳 조글로의 일정 인사로 취급받는 K.M.H. 교수를 표적했습니다.  오늘도 그가 올린 글들이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소위 K 교수가 말씀하신 지식인 양심과 지식인의 성찰이 결여 됬는지를 파혜처 보겠습니다. K 교수는 지식인은 항상 연구를 통해서 실적을 말한다 했습니다.  저가 보건대 K 교수님의 글은 대부분 일본내에서만 알려진 글로 일괄된 표현이며 세계 다른 나라의 글은 아예 읽어 보거나 연구는 하지 않은 개으른 지식인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 이류로는 K 교수가 얼마전 조글로에 올린 "{100년전 서양은 한국.....}"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K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유명인사들중에 "이자벨 버드 비숍", "조지 커즌","헨리 코번 등등은 우연하게도 모두 영국인들입니다. 당시 영국은 세계 여러곳에 식민지 정책을 함으로서 약탈을 일삼아 오던 국가 입니다. 또한 홍콩(샹강)을 식민지화 하려고 청나라와 일전을 벌였던 영국으로선  러시아와 중국이 연합을 하려하자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지지하며 러시아의 극동아시아 진출을 막으려했습니다. 일본은 일본을 지지한 영국에게 대가로 한국의 금광을 영국에 내주기로 했습니다.  하여 영국지식인들은 한국을 비판하는 글을 세계에 알려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 할수 있도록 했으며 식민지 정책에 강하게 반대 하는 미국에까지 조선의 식민지화의 타당성을 역설 했습니다.  식민지 정책을 가장 반대했던 미국을 일본은 가장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K 교수가 말씀하신 위 위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 보겠습니다. 이자벨 버드 비숍:  영국왕립연구소 연구원 입니다. 여성 탐험가로 더 유명하줘, 하지만 이자벨은 영국황립연구소 연구원으로 그녀가 하고자 하는 모든 탐험은 국가에서 지불합니다. 즉 연구비용 모두가 국가에서 지불하기에 영국정부에서 하라는 바른 말만 하게 되어 이씁니다.  그녀의 표현에 "조선인들은 시간 계념이 없다" 는 그당시 조선에 서양 시계 자체가 없었기때문에 시간 표현이 15분차였던 조선을 이해 불가 했던 겁니다.  이자벨 역시 훗날 그점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게으르고 더럽다" 그녀가 조선 방문 당시에 콜레라란 전염병이 조선을 덥칠때였습니다.  콜레라 환자들을 도성 밖으로 모이게 했으며 당시 예방 또는 완치할 약이 없었던 조선에서 그냥 죽어가는걸 지켜 볼수 밖에 없었다고 미국인 호머 헐버트는 글을 썼습니다.   이자베 버드 비숍은 글에는 명성황후와의 대면이 있습니다.  그 글엔 "피부눈 눈 같이 희고, 머리결은 윤기가 흐른다 그녀의 지성은 대화하는 사람을 앞도했으며 총명함은 이루 말할없다" 라고 기고 했습니다. 조지 커즌(Curzon):  영국에서 꽤나 유명한 전형적인 정치인 입니다.  그 역시 조선을 비판한 이유는 그당시 그의 직위가 식민지 인도의 총통 이였기 때문입니다.  인도 식민지 총통이며 조선의 금광을 주겠다는 일본의 제의를 받은 커즌이 무슨 말인들 못하겠습니까.  그와 같이 조선을 방문한 친구 코번은 커즌에게 조선인과 만나 보지도 않고 왜 그렇게도 조선을 나뿌게 보냐는 질에 식민지 사람들은 다 그렇타 꼭 봐야 아는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친구 코번의 자서전에 나온 말들입니다. 헨리 코번:  조선에서 하숙을 할동안 하숙집 딸은 미국에서 교육받은 현대적 여인으로 그녀와 언쟁을 했다고 자서전에 기록 되었습니다.  코번은 일본의 조선지배의 정당화를 주장했으며 하숙집딸은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고 나왔습니다. 코번은 그녀에게 완폐를 당했으며 방에 돌아와 자신의 수치스러움에 자살을 생각할정도라고 했습니다.  그 하숙집 딸은 비 공식적으로는 이화 여대 총장을 지낸 박?? 합니다. 코번은 하숙집의 바닥은 자신의 얼굴이 비춰질정도로 청결했으며 반대로 하숙집 딸은 보기에도 믿망할정도로 못생겼다고 기고합니다. 그럼 반대로 조선 식민지를 반대 했던 미국인, 카나다인들의 생각과 글을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헨리 아펜젤러(미국인) 조선을 조선인들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부인인 쓴 글에는 "조선인들은 매우 청결하다 흰옷을 즐겨 잆으며 때뭇은 옷은 양잿물에 빨아 입을 정도로 청결하다" 라고 기고했습니다.  헨리 아펜젤러는 일본선박(배)에 의하여 좌초된 조선배에서 물에 빠져 죽어가던 조선인 친구 조한규를 살리고 다시 돌아가 여고생들을 살리려다 그만 물에 수장됬습니다.  그당시 그의 나이 48세. 윌림엄 스코필드(카나다) 일본에 핒박 받는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평생을 조선에서 항일 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그의 항일 운동에 불만이였던 일본은 스코필드를 암살할계획까지 만들었습니다. 생명의 위헙을 느낀 스코필드는 잠시 본국으로 송환되었으며 해방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습니다.  한국에서 생을 마감하며 자신의 육체와 영혼을 한국에 머물겠다며 한국 국립묘지에 안장된 분입니다. 그분의 자선전을 보시면 "조선인들은 청렴하며 매우 정직하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 때뭇은 내가 숙연해질 뿐이다" 그 이외에도 호머 헐버트, 홀스 등등 많이 있습니다. 문젠 모두가 영국인이 아니란 점입니다.  그당시 영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세계 곳곳에 식민지화를 하고 그들 국가들로 부터 약탈을 했습니다. 유유상종인 이 두 국가는 상호 조약을 만들어 형좋코 누이 좋코 하다가 적으로 2차 대전당시 죽을 내기 하고 싸웠다는 겁니다.  섬나라 기질이 어디 가겠습니까. 또한 일본은 2차 대전 당시 미국과 상호 불가침 조약을 하고선 불과 3개월만에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했습니다.  역시 간사한 국가 입니다. K 교수님께서는 일본에서 일본어로 출간된 글만 보지마시고 좀더 공부를 하시여 영어원본을 보신다면 교수님의 글이 얼마나 허무 맹랑한 표현인지를 인지 할수 있을겁니다.   교수님 표현 대로라면 지식인이 왜 지식인입니까 모자란 부분을 더 연구하고 추구해가는 것이 지식인이 아닐지요. 일본 총리 아베도 역사부정을 하고 왜곡 하려 하는데 일본 출판사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심지어일개 대학 교수(?)신분으로서 이런 웃지못할 정당성을 말씀하시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하겠습니까? 선생님 말대로 한다며 "나는 힘이 강하고 지식이 풍부여 옆집 가장이 무능하고 가난하니 그집을 정령하고 그의 아내를 취하고 그의 자식들을 노예로 써도 된다"는 형식(사무라이) 입니다.   앞으로 글을 올리실때 좀더 연구하시여 정확한 글을 올려 주시기 바람니다. 전 정확한 글이 올라 올때까지 계속적으로 파고들어 교수님의 글을 질타 내지는 허황됨을 파혜질겁니다. 참고로 조잡스런 저의 글을 읽으시고 추천을 눌러주셔서 K 교수님에게 얼마나 많은 이곳 조글로 독자들이 그의 글에 반감을 가지는지를 알려 주시기 바람니다.  
30    이토 히로부미가 죽어야 했던 이유 댓글:  조회:3635  추천:15  2013-05-04
근간에 K 교수가 올린 "한복을 입은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을 좀더 알아본결과를 쓰려고 합니다.  일본에서 일본근 현대화의 선두주자로서 일본에선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 하나 과연 주변국들에게 그가 어떤 인물이였을까요? 그리고 이토가 왜 안 중근 의사에게 저격을 당할수 밖에 없었는지.... 참고로 전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도 아니며 역사연구가도 아닙니다. 하여 글 내용이 조잡하고 형평성이 떨어 진다 해도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한국의 황제를 폐위시킨 죄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철도·광산·산림·천택(川澤)을 강제로 빼앗은 죄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군대를 해산시킨 죄 교육을 방해한 죄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한국인은 일본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일본 천황을 속인 죄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살해한 죄 위 15가지 이유가 안 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입니다.  그럼 위 15가지 이유가 정말 사실인지를 알아봤습니다. 1. 명성황후를 시해한죄: 1895년 10월 6일 새벽 6시에 일본군 기미병 800과 보병 3만명과 한국의 남인의 자객들이 경복궁을 들이 닥치며 잠들어 있던 명성황후를 살해한후 그자리에서 화장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외국공사들이 일본의 개입을 추중하자 일본은 전혀 개입이 업다고 변명을 합니다.  하지만 그사건 당시 경복궁에 러시아인 사바찐과 미국 태평양 군 소속 다이 장군이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함으로서 일본은 외국 공관에게 "타국의 국모까지 죽인 야만인, 야만국"으로 몰리자 사건의 관련자들 모두를 일본으로 소환하여 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무죄.     그럼 그당시 일본을 보면 내각 총리는 이토 히로부미 였습니다.  타국인 한국에 전쟁선포도 없이 3 만명이란 군대가 촐리의 허락도 없이 움직일수 있다는 말은 정말 어불성설입니다.   즉 이토 히보부미의 결정아래 치밀하게 세워진 만행이였다는 겁니다.   또한 한 나라의 국모(國母)를 살해한 죄인들 모두가 무죄입니다.  일반 사람을 살인을 해도 유죄가 확실한대 어떻게 국모를 죽인 자들이 무죄가 성립된다는 겁니까?  세계 어느 나라가 군대의 수장격인 대통령, 총리, 총 서기 허락 없이 3만여명의 군대를 그것도 타국에서 움직일수 있다는 겁니까, 2. 한국 황제를 폐위 시킨죄: 1907년 6월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여 하려던 대한제국 밀사들이 가지고 있던 친필서(일본의 만행)가 발칶되면서 이토는 고종 황제에게 협박으로 억지로 황제 잘리에서 끌어 내렸습니다. 3~14번 까지의 이토 죄목은 설명할 필요 없이 여러분이 하시리라 생각하며 15. 일본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살해한죄: 위 3가지 죄목중 1가지만 저질러도 유교국가인 중국, 한국 일본에선 3대가 척결을 당합니다..  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는 K 교수님에겐 新韓국을 만들수 있는 절호의 통치자로 보인것같습니다. K 교수님 일본에 계신다니 저가 좋은 관광지를 알려 드릴까 합니다.   일본 미야기현 구리하라시에 위치한 다이린(대림사) 사찰을 한번  가보심이 어떨까요? 그곳에 가보시면 이토가 죽기전에 "바보, 또는 명청" 하다는 안 중근 의사의 위폐와 "위국헌신 군인 본분" 이란 글귀가 사찰 내에 있으며 매년 3월 4월엔 안 중근 의사의  정신을 기리는 추모 기도를 합니다. 수천명이 모여 추모 기도를 한다고 하내요..  그런 이유는 이토를 저격한후 뤼순 감옥에 수감된이후 안중근 의사를 고문하고 그를 사형장에 끌고간 지바 도시치란 일본군 소속 현병이 전쟁후 고향에 돌아와 "청렴한 인격의 소유자 였으며 진정한 평화를 향한 고매한 이념"을 가진 자라고 위폐를 모셨다고 합니다.   일본 우익의 영웅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중근 의사는 많은 일본인들에겐 평화를 상징하는 고매한 분으로 존재감을 보입니다" {“한복차림의 이토”, 문인답고 선비다운 풍모} 이글의 표현은 K 교수님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표현 하셨습니다.  정말 김밥 옆꾸리 터지는 소리이며 개가 하품을 한다고 해야 할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부터 알아본 일본내의 이토 히로부미와 해외에서 본 이토 히로부미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진짜 이름은 하야시 리스케 입니다.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이토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며 하급 무사가 되었습니다. 즉 이토는 문인(文人) 아니라 무인(武人)이였습니다. 그가 무인이라고 할수 있는 또 다른 사실은 이토가 고종황제의 아들 순종에게 병법과 검도란 무술을 가르친 선생이였습니다.  이토는 일본무인 사무라이 방식으로 모든걸 힘과 칼로 해결을 해 나갔습니다. 신분이 미천한 이토(하야시)는 입신양명을 하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정치대백과 사전, 위키피디아 사전). 또한 이토의 자질을 읽직 눈치채고 그의 입신양명을 도와준 사회 선배이자 스승인 도다 우지타카 가 해외 순방할때 이토는 도다의 부인 기와코를 연회장으로 불러 들여 선배이자 스승의 부인을 강간했습니다.  이 사건을 알아 차린 도다의 제자들중에 요시마쓰 와 사노등이 이토를 살해하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갔으며 이토는 자신의 동문 모두를 살해 했습니다. 이 증언은 그당시에 살아 남은 가야치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두번의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했습니다. 그중에 한번은 일본 막부의 힘을 빼내기위해서 그당시 천황을 쫒아내고 어린 그의 아들을 꼭두각시 천황으로 세워 막강의 힘을 가지게 됨니다.  이토가 일본 내각에 5번이나 총리가 된것을 보시면 그가 얼마나 막강한 정치적 힘을 가졌는지는 알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방화(영국영사관)살인(너무 많아 나열하기 힘듬), 강간(역시 너무 많음)을 수도 없이 저질러 일본애에서도 많은 적을 가겼던 사람입니다. K 교수님 역사 왜곡 속에서 이토는 일본의 온건파로서 근 현대 일본을 건축한 영웅일수 있습니다만 위에 안중근 의사가 나열한 죄목만으로도 그는 우리 민족의 원수 그 이상입니다. 또한 안중근 의사가 아니였어도 어쩌면 다른 일본인에 의해서 저격 당할 사람이였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대한민국과 중국에선 신한, 신중을 하려던 이토 히로부미의 위폐를 모시는 곳은 단 한곳도 없지만(K 교수님 제외, 일본국적) 일본 근대화의 핵심이였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위폐는 지금도 일본인들이 고개를 숙여 위령제를 올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대한의군 중장 안중근 장군의 위업을 폄하 하려는 글 그만 올렸으면 합니다.
29    K 교수를 지탄하며 댓글:  조회:15440  추천:26  2013-04-30
요근간 조글로에 잘못된 역사 인식과 일본짐략을 미화하려는 일본에서 활동하시는 K.M.H 교수의 글일 읽고 피가 꺼꾸로 서는걸 참으면서 글을 쓰자고 생각했습니다. .  심지어 우리민족의 열사 안중근 의사를 들먹이며 일본침략을 정당화하려는 K 교수에게 한수 가르치고자 합니다.  몆몆 잘못된 인사들의 역사인식에 의하여 우리 젋은이 들이 왜곡된 역사를 배울까 염려됩니다. 이글에 올리는 대부분의 내용과 사진은 중국신문, 한국신문, 일본 신문에서 조사하여 나온 내용들입니다.(부실한 글 표현과 내용 그리고 받침자가 틀렸어도 이해를 요합니다) K 교수님의 글은 교묘하게 일본이 저지른 조선 침략과 중국 침략, 그리고 아시아 태평양 침략을 정당성이 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즉 능력없고 미개한 조선, 중국을 일본이 근대화 했으며 많은 조선이들이 한일합방을 긍정적며 평화롭게 살았다 였습니다 그러한 근거로 K 교수님께서 예로 유명인사(?)가 쓴 책들의 지은이 이름을 들먹였습니다.  그 책들의 저자들은 우경 일본인이거나 귀화한 일본인 또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교육받은 외국인들의 수필을 말함으로서 모든 중국과 한국을 뺀 세계지식인들이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 하고 단지 우리 민족과 중국만이 과거에 집착하여 한.중.일 미래 지향적인 일을 도모하지 못한다고 도리어 일본의 고립을 우리민족의 우메함에 떠넘기려고 합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K 교수가 쓴글중에 직접 말한 유명인사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 인가를 알아봤습니다.            라이샤워(Reischauer)교수: 일본에서 태어난 미국인으로서 조선, 중국 침략시기에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미국인이며 이후 미국이 핵 폭탄을 교토에 폭파하려 하자 일본의 유서깊은 고적지가 많은 교토말고 히로시마에 떨어트리라고 한 장본입니다. 주일 일본 대사를 지냈으며 부인 역시 일본인입니다.  이사람 역시 훗날 자기의 친일 적인 글에는 개인적 사심이 있었다고 고백 했습니다.            오선화(본명: 오승일): 한국 제주도 태생이며 90년대중반에 일본으로 귀화했습니다.  한국에서 대구대학을 나왔다고 하나 조사 결과 대구대학졸업 기록이 전무한 거짓말이였습니다.  일본 도교시 우에노의 “뉴태양”이란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근무한경험이 있으며.  일본내에서도 경제적인 이득을 받기위헤 우익편에 선걸로 알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빠순이" 몸팔고 술팔고 웃음파는 여인이 어느덧 일본에서 작가가 되어 일본 우익을 대변합니다. 일본인들도 그녀를 “일본우익의 애환견”이라고 부릅니다.  식민지화 시대를 반영 하는 억지적인 발언과 책으로  한국정부로 부터  한국출입이 금지 조치된 여성입니다. 간단한 대학 학위까지를 속여 가며   힘든  호스티스(술집아가씨, 도우미)에서 탈출하기 위함과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위해서 친 우경화 된 이 여인과  부인과 자식까지 일본인이 외국인 작가가 쓴 글을 어떤 기준에서 명사라 여겨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겟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쓴 책들이 진정한 의미가 있는건가요? 다행이 음(陰)있다면 양(陽)있는 법, 일본에도 양심 선언을 한 작가나 유명 일본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731부대 이야기”를 쓴 작가 니시노 루미코, 일본 관동군 731부대의 만행을 세계에 알린 일본인 입니다. 흑룡강 할빈에 위치했던 731 부대에서 조선인과 중국인들을 산체로 생체 실험을 한 내용을 그자리에 있었으며 현재 생존하는 일본인 군관, 병사들과 인터뷰하면서 그 당시를 자세하게 설명한 작가입니다.  아래 사진에 있는 한 중국인이  손이 뒤로 묵인채 일본 관동군 731 부태에서 생채실험을 당하기 바로전 생전 모습.       아래 사진은 위의 사람이 생체실험후 갈비뼈가 다 들어나고 얼굴의 피부가 벗겨졌으며 눈이 파여 나가고 생식기가 짤려 나간 시체입니다.        위 실험대 위에 누었던 중국인은 분명하게 실험대에 올라갈 당시 살아 있던 사람이였습니다.   일본에도 이러한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일본 인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특희 민간인 단체에서는 더더욱 많은 수의 사죄 성명 발표을 볼수 있습니다.  위 첫번째 사진은 일본인이 한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일본의 만행과 위안부 관련에 사과하는 모습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역사외곡에 관하여 일본인 여성단체장들이 직접 사과한다는 표시를 보이는 사진입니다. . . K 교수님 말씀대로라면 모든 일본국민들은 동아시아 근대화에 초석이 된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데 왜 저 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과를 받아 달라고 한국까지 찿아 왔겠습니까.  그들 역시 K 교수님 처럼 한국과 미래 지향적인 우호 관계를 가졌으면 합니다만 우선적으로 사과를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K 교수님과 일본정부는 그러지 못한 겁니까?    K교수님 말씀에는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잘 어우러진 식민지를 만들어 살았다고 했습니다.   일본인 개개인, 조선인 개개인 그리고 중국인 개개인 끼리는 잘 지낼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서로가 대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문젠 정부와 정치입니다.   오늘 이날까지 일본은 위안부에 끌려갔던 조선, 중국 등등 심지어 네덜렌드 여인까지 증언하고 말한 위안부 사태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평생 씼지못할 아품을 가진 이들에게 일본 정부는 돈벌이 하는 메춘부 낙인 찍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인정하는 일본군 위안부 사태 결의안을 통과 했어도 정작 사건의 장본인 일본은 이를 부정하고 이 불쌍한 할머니들을 매춘부로 매도 했습니다. 위 사진중에 있는 731부대의 만행은 더더욱 말로 표혈할수 없줘.  일본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생체실험을 한결과 60년대 70년대 까지 독일과 함께 세계최고의  의학 기술 보유국이였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는 임상 실험은  쥐 또는 여러 동물에게 하는 임상실험 결과와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왜 일본이 오늘 이날까지 독일과 더불어 세계최고의 광학 기술 보유국인줄 아십니까.   일본과 독일은 똑 같이 살아 있는 사람의 눈에서 실험을 해봤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세계 카메라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오늘날 일본의학 기술의 영광은 우리 민족과 중화민족의 생체실험 대상으로 인한  피와 살로 이루어진 결과 입니다. 목이 반쯤 짤려나간 여인의 괴로워하는 사진 보이십니까? 두번째 사진에 목이 도륙질 당한 시체들이 보이십시까?  위 사진은 남경(南京)대 학살의 사진중 일부입니다.  일본에게 항복을 안하고 끝까지 저항했던 중국 남경(당시 중국 수도)을 무너트린 일본은 중국인들 도륙질을 했습니다.   그당시 남경에 있었던 영국인기자(기자의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죄송)의 말에 의하면 “남경시 거리에는 돌뿌리 보다 목이 짤린 머리가 더 많이 딩굴어 다녔다 일본군들은 누가 빨리 100명의 머리를 칼로 짤라오는가 하는 시합을 했다”………”중국인들이 흘린피는 강을 만들고도 남았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역시 일본과 비슷한 만행을 저질렸습니다.  일본이 우리민족과 중화민족을 말살하려고 했다면 독일은 유대민족을 말살하려 했습니다.  그럼 독일과 일본의 전쟁후 차이 점은 뭘까요?  독일은 새로운 수상이 정권을 잡을때마다 홀러코스트(유태인 집단살인 수용소)에 참배하며 세계와 독일 국민들에게 자신들을 죄를 다시한번 일깨우며 백번 사죄를 합니다.   그럼 일본은 어떨까요?  정권이 바뀔때마다 수상이 직접 전쟁범죄자(전범)이 뭍혀있는 곧에  지발로 찿아가 참배를 합니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K 교수님?  인도의  20세기초, 영국으로 부터  독립을 외치던 비 무장 민간인들에게 총을 발포하여 375명을 죽음으로 몰고간 사건에  2013년 3월 5일 영국의  캐머런 총리가 인도를 방문하여  “영국역사에 수치스러운 일이다” 라고 했으며 먼 옛날 2차 대전 당시 에도 영국 수상이였던 윈스턴 처질은 “영국 군대의 극악 무도했던 만행’이라고 자국 군대를 야단 했습니다.  100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사과를 합니다. K 교수님 이잰 차이점을 알겠습니까?  위 사진들과 수많은 증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오늘 이날까지 이모든 만행을 부정하고 있습니다..더 기가찰 노릇은 이러한 일본 만행을 격은 같은 민족중 일부가 일본의 편에서서 그들의 만행을 옹호하고 미화 시킨다는 겁니다. 일본은 침략과 식민지화를 미화하고 정당성을 토론 하기전에 먼저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과를 하고 그들의 과오에 늬우침을 가진후 그다음에 미화를 하든 정당화를 하든 해야 합니다.  왜 그토록 한국, 중국 국민들이 일본을 적대시 하는지? 단 한번의 사과도 없이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그것도 모자라 K교수님 같은 사람을 앞장세워 자신들의 과거 만행을 정당화 하려 한다는 사실을…. 한국, 중국 국민들은 일본 개개인을 싫어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우리민족과 중화민족이  싫어 하는건 자신들이 저지를 죄도 모르고 사과와 늬우침  한마디 없이 설쳐대는 일본이며  그런 일본보다 더 미운건 물질적 이득에 눈이 멀어 그런 일본과 동조하여 같은 민족과 조국에 짖어대는 일본 극우 애완犬(? )들입니다. 참고:  우연일지 몰라도 불과 몆칠전 일본 수상 아베가 K 교수님과 똑 같은 발언을 하여 세계가 분노를 하고 세계 각 유명언론들이 아베 촐리를 지탄했습니다.  특희 미국의 WSJ(증권가 신문)은 역사를 왜곡하려는 멍청한 발언이며 왜 침략가 본인들이 잘못을 모르는가" 라고 지탄을 했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침묵을 지켜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하원 의원은 2차 대전의 전쟁범죄자의 손주인 아베는 잘못되 역사인식을 전쟁범죄자인 할아버지에게 배웠다" 라고 실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세계가 아베총리를 우경화 된 일본인 이라고 부릅니다. 과연 교수님은 우리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28    꾸준한 연길 택시 댓글:  조회:2901  추천:31  2013-04-25
전 작년 이맘때(2012년 4월)  연길시 공항의 택시 운영을 질타 하며 글을 올린적 있습니다.  바로 어재밤 북경발 연길도착 후 공항에서 택시 탑승에 느낌점을 적고자 합입니다. 우선 연길시 택시를 말하기전에 이번 출장은 상해, 북경 공항을 두루 걸쳐왔기에 먼저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해 푸동 공항에서 탄 상해 택시는 말 그대로 친절 그 자체였습니다.  공항 공안들이 공항 이용 승객들 하나하나 챙기면서 목적지 거리와는 상관 없이 택시를 안배를 했습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많은 한국인들이 상해 택시는 한국보다 더 좋타고들 합니다.  북경 역시 공항의 공안들이 이용객들 하나 하나 챙기며 택시를 안배했으며 심지어 택시 차 번호를 적으며 목적지를 썼습니다.  여러 모로 보아 국내외 관광객을을 위한 시 정부의 배려를 느낄수 있습니다.   작년(2012년)에 비해서 더 좋은 서비스로 상해, 북경의 첫 인상을 좋게하려는 시 정부의 배려와 발전 하려는 노력을 느낄수 있는 행정이였습니다.   북경발 연길행 비행기의 연길시 도착은 밤 11시 50분.  밤 10시에 북경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전 같이온 일행에게 "연길에 도착하면 또 택시 기사들과 전쟁을 치루어야 하겠지..."란 푸념을 떨며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저의 예상은 조금의 차이도 없이 적중했습니다.   물론 그시간에 공항 공안들은 택시 승강장에 두명이나 있었습니다.   두대의 택시에 승차거부를 당한 저는 옆에 서있는 공안이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도대체 연길시 교통대는 뭐하는 거야!!!" 하며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못들은 척 하시더군요. 잠시후 전 또 다른 택시기사의 손에 이끌려 차례를 기다리는 택시중 멘끝에서 3번째 택시에 올랐습니다. 텍시 기사왈 5분안에 떠날수 있다고 하더군요.  전 택시 안에서 30분 넘게 기다렸습니다.  앞줄에 서 있는 텍시들이 나갈때까지 기다릴수 밖에 없더군요. 택시 안에서 느낀건 자가용을 가지고 마중나온 사람들 빼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 커다란 짐을 들고 공항 밖으로 걸어 가는 거였습니다.  공항안에 있는 택시들과 흥정하는것이 싫어서 모두들 짐을 들고 공항 밖으로 나가서 지나가는 택시를 타는거였습니다. 택시를 타고 오면서 느낌점은 타 도시들은 지금도 연길보다 발전했지만 더 나은 도시 발전을 위해서 여러 모로 노력하는대 우리 연길은 변함이 없구나.... 적은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연길은 그래도 꾸준하게 연길 첫 방문객들에게 안좋은 첫인상을 변함없이 꾸준하게 심어 준다는 겁니다.
27    생 이별과 연변경제 댓글:  조회:2026  추천:2  2013-03-30
몆칠전 저의 양 아들이 절 찿아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서로 대화하며 한 이야기를 오늘 해볼까 합니다. 조망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양 아들은 지금 깊은 고민에 힘들어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심수, 상해, 천진, 북경, 항주 등지에서 졸업후 출근을 해달라고 열락이 왔기 때문입니다. 보통 3500~5000 RMB 를 월급으로 지불하겠다는 회사들.... 이글을 보신 분들은 그게 무슨 고민이냐 또는 누가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생을 그렇게 많이 주냐 하시겠지만 왜 저의 양아들이 많이 받고 왜 고민인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의 고민은 노후된 연세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키워주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나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 한어가 약하신 할머님 할아버지가 만약 아푸시다면 누가 옆에서 도와주며 돌봐 주겠냐 였습니다.  키우신 은혜를 받았으니 이젠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되 돌려 드리기 위해선 자기가 옆에서 돌봐야 하는것 아니냐며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저는 참으로 그놈이 기득했습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저에게 엄청 많이 혼이났거든요(정말 많이 혼이난 놈입니다).  아무튼 육체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장한 양 아들을 보며 한편으론 다 컸다는 생각에 흐뭇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떠나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씁쓸한 생각이 동시에 생겼습니다. 위에서 말한것 처럼 "누가 고등 졸업생을 그렇게 많이 주냐" 하실겁니다.  저의 양아들은 초중(한족학교)때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를 걱정하는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전 공부 잘한다고 꼭 성공하는건 아니다 공부잘하면 성공할 거능성이 클뿐이다" 라고 저의 양아들과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설득했습니다.   그 대신 전 그가 중국주류 사회에 나갈수 있도록 준비를 해왔습니다.  조선어가 아닌 올바른 한국어 쓰기와 말하기 세계 공통어인 영어... 그중에 영어 발음과 회화.  여러분중에 가끔 연길시에서 미국인 영어 선생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아이들 보셨다면 바로 그놈이 저의 양아들입니다.  영어를 완전 잘하는건 아니지만 외국인과의 일상적인 대화는 지금 가능할정도 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저의 양 아들이 한국인 회사에 취업을 했을거라 가정했을겁니다. 물론 한국인 회사도 있습니다만 대다수가 중국회사들입니다.  중국어 한국어 영어를 구사 할줄아는 인재를 어느 회사가 싫타고 할수 있습니까?  또한 요즘 회사 사무에 필수인 파워포인트, 엑셀을 자유자재로 할수 있는 인재를 누가 싫타고 하겠습니까. 여기서 이글의 가장 중요한점은 이런 인재(?)를 이곳 연길에 둘곳이 없다는 겁니다.  빈약한 연길 또는 연변 산업 기반에선 그가 일을 할수도 없으며 같 고등필업한 그를 그 정도 금액을 주고 쓸수가 없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이곳 포럼에서 많은 인사들이 연변지역들 떠나는 조선족을 아타까워하며 심지어 조선족 디아스포라 라고 외쳐대지만 정작 그들이 돌아와 일할수 있는 산업기반에 대해선 아무 말씀도 없습니다.  연변지역 산업이 발전 한다면 그들이 왜 고향을 멀리하고 고되고 힘든 타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겠습니까.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니 또는 부인 남편 또는 아들과 딸....을 멀리하고 돈 벌러 먼 타향을 가야하는 이유는..... 간단하게 연변지역 산업 기반이 전무 하기 때문입니다.  연변지역 인사들께서는 이들이 다시 고향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할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연변지역 유명 인사들께서는 개인의 이득보단 지역의 발전을 위해  좀더  기업유치에 신경을 쓰신다면 위와 같이 사랑하는 가족들의  생 이별은 점차적으로 줄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올립니다.
26    필요 이상의 불친절 댓글:  조회:2765  추천:3  2013-02-07
오늘은 10 여년전 미국 서부 로스엔젤레스에서 남부 대도시 휴스턴 비행기에 탑승한 저의 경험과 지난 2월 3~4일에 걸처 상해홍차오 공항에서 연길까지의 비행경험을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10여년전 미국 로스엔젤레스 발 휴스턴행 막차(제일 저렴함) 비행기에 몸을 실은 저는 피곤함에 비행기가 이륙하기도전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시후 이륙중이던 비행기에 커다란 "빵" 하는 괭음과 함께 잠에 깨여 주위를 살펴 보았습니다.  갑자기 비행기가 요동을 지면서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머리위에서 산소 마스크가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기내방송으로 연습상황이 아닌 실지 상황이니 산소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했으며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방금 이륙한 LA 공항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좌우 아래위 로 흔들리는 비행기는 회항을 위해 큰 원을 그리며 돌때 저 아래 LA .공항에 응급차 소방서차들이 활주로 옆으로 대열하는걸 볼수 있었습니다.   비행기 내부에서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 기도를 하는 사람, 우는 사람, 옆사람과 손을 꼭잡은 사람등등 가지 각색이였습니다.   잠시후 비행기가 겨우 활주로에 착륙했지만 무슨일인지 계속 앞으로 전진하는 상태였습니다.  잠시후 LA 공항 멘 끝을 가로 질러가는 고속도로를 들이 받고선 비행기가 멈췄습니다.   기내 안내원들의 지시에 따라 비상구로 가는 순간 조종사가 조종실에서 나오면서 손님들에게 계속적으로 "미안하다, 죄송하다며 일일이 사과를 했으며 손님들은 그런 조종사에게 무사하게 착륙해서 고맙다고 답했습니다.   모든 손님들이 다시 대기실에 모였을때 항공사 관계자가 나와 사과를 하며 호텔이 준비됬으니 호텔에 머물며 또한 트라우마(trauma)어떤일에 매우놀라서 격는 비 이상적 심리현상)을 격은 분들에게는 심리상담을할 의사들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으며 또한 급한일때문에 당장 다시 목적지에 가야할분들을 위해서 특별기를 준비하겠으니 가실분들은 공항에 남아달라고 했습니다.  잠시후 특별기가 왔으며 전 그 비행기에 탑승을 했습니다.  비행기가 다시 회항한 이유는 이륙당시 비행기 조종사쪽으로 번개를 맞아 비행기 아래쪽으로 관통을 했으며 조종사는 번개 빚에의애 잠시 실명을 했고 그런 이유로 경험이 거의 없는 부기장기 조정을했다고 했습니다.  그런일에 놀라서인지 그 특별기에 탑승한 사람은 달랑 4명 180명 정원의 비행기에 4명만 타고 목적지인 휴스턴에 도착했습니다. 전 그후로 저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그 항공사가 간다면 무조건 믿음직한 그 항공사를 이용합니다 불과 몆칠전 상해 홍차오 공항발 연태를 거처 연길에 도착하는 저녁 8시 중국 남방항공 비행기를 탑승을 시도했습니다. 비행기는 2시간이상 지연됬으며 지연된 이유는 연태 날씨가 나빠서 였습니다.   그리고 10시가 넘어서 연길행 비행이 취소됬다며 무작정 인근 빙관으로 옴겨가라는 말뿐입니다.   경유지인 연태 날씨가 나빠서 비행을 할수가 없다 였습니다.  저의 입장으론 최종 목적지인 연길이 괜찮으면 떻나야 하는거 아니냐 또한 150여명의 손님중 98명의 목적지가 연길이면 당연하게 떻나야 한다 생각을 했습니다. 남방항공관계자는 초지일관 안된다 였으며 우린 할수 없이 인근 빙관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그다음날 8시 비행기를 타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날 역시 계속되는 지연으로 오후 4시가 되서야 연길에 도착할수 있었습니다.  남방항공 관계자 어떤 사람도 손님들에게 불편을 끼쳐 죄송하단말 단 한마디로 하지 않았으며 싱해공항에서 1시간 연태 공항에서 2시간 넘도록 비행기안에서 무작정긴다린 우리에게 왜 지연이 되는지 설명하는 사람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전 그날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중국남방항공과 협의된 전 세계 스카이 팀(Sky Team)에 접속하여 위와 같은 사실을 올렸으며 이런 상황이 시정되기 전까지 Sky Team 관련 항공사 비행을 하지 않겠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저 하나의 글에 어떤 반응이 오겠습니까만 그들이 알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졌으며 그래야지만 다음 소비자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 나지 않을까해서 올렸습니다.   21세기는 문화, 서비스 산업이 중점이 될거란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소비자 또는 손님에게 모든 불이익을 떠 넘끼는 기업과 반대로 손해를 보더라도 책임감있는 서비스기업을 비교함에 여러분이 알아야되지 않을까해서 글을 올렸습니다.
25    친절한 자치주 공무원에게 댓글:  조회:2757  추천:4  2013-01-12
지난해 12월초,  전 연길은행들의 뒤늦은 행정에 관하여 글(연길기업활동의 저해)을 올린적 있습니다.  저의 글을 읽으시고 연변자치주 상무국 리**처장께서 직접 저와 전화 연결이 되었습니다. 리 처장과 몆번의 만남과 대화로 인하여 저의 생각을 많이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길시 산업발전에 대한 정부의 행정에 부정적인 생각만 가졌던 저로서는 리 처장과의 만남은 획기적이였습니다.   처음 만남은 리 처장과 연변에 투자 계획을 가졌던 한국 모 대기업의 부장과 함께 점심자리였습니다.  리 처장의 첫 인상은 관리적인 태도가 전혀 없는 그냥 옆집 아저씨같은 부드러운 인상과 말투였으며 오히려 한국 대기업 부장이란 사람은 시체말로 깐깐해보였습니다.   간단한 점심식사를 그들과 함께 하는동안 리 처장은 연변의 은행업무는 남방보단 뒤쳐져 있는건 사실이지만 연변상무국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리 처장에 말에 전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했으며 그런 저에게 리 처장은 인민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공무원으로서 당연하며 또한 지역이 잘되야 자신의 일에도 보람을 느낄수 있는거 아니냐 라며 답했습니다.  리 처장의 답변은 얼뜻들으면 상투적인 공무원들의 발언으로 들리수 있었습니다. 그후 전 몆번에 걸처  리 처장에게 전화를 하여 굼굼한점을 물어 봤으며 그때 마다 리 처장은  이곳 저곳은행을 알아보고 심지어 우리 회사에게 가장 편리한 은행 업무를 해줄 은행까지 찿아줘 저와 회계를 직접대리고 은행을 찿아 갈 정도로 열성적이였습니다.   또한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요청하면 그날로 멜 또는 펙스로 대답 해줬으며 만에 하나 늦어질 경우 모모````한 이유 때문에 늦어진다고 직접 전화를 걸어 주셨습니다. 그런 리 처장의 업무태도는 저에게는 감동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저의 감동은 저만 느끼는것이 아니였습니다.  위에서 말했뜻이 한국 모 대기업 부장도 저에게 리 처장이 아니였다면 연변투자 계획은 옛날에 포기 했을거라며 리 처장때문에 아직도 진행하고 있다고 리 처장이 잠시 자리를 비웟을때  저 에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리 처장님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 하고 싶습니다.  리 처장님의 빠른 발거름과 정확한 정보때문에 저의는 공장을 연길에 유지할수 있게 됬으며 더더욱  다음주에는 연길에서 공장확장을 반대하던  2명의 해외 투자자들이 연길에 들어오게 됩니다.  저의 글때문에 리 처장이 곤경에 빠질지는 모르겠으나 저의 입장에선 이런 리 처장을 꼭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리 처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고자 하는 일 모두 일익번창함을 기원하며 도와 주신 점 감사하단 말 꼭 전하고 싶습니다.
24    외국인 선생이 바라본 교육 댓글:  조회:2530  추천:4  2013-01-04
신정 설을 맞이하여 이곳 연길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선생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글을 씁니다.   이글 내용은 단지 저와 외국인 선생들의 개인적 생각이니 너무 나무리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2013년 1월 1일 3명의 외국인 영어선생들과 점심식사를 하게되었습니다. 갖 대학을 졸업하고 또는 대학 필업과 약간의 사회생활을 한 그들은 아직 30대가 안된 젋은 이들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먹성이 좋아 양냥 갈비를 우리 식구와 함께 6명이서 12인분은 먹으것 같습니다. 즐거운 식사후 이들과 함께 이곳 교육의 실정과 학생들의 실정을 이야기중 가장 중심적인 말은 "이곳 학생들에게 부모들의 과다한 관심과 용돈이였으며 또한 무작정 외우기식 교육이였습니다. 과다한 보호:  외국인 선생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학교 방과후 정문에서 서성거리며 학생들을  모시(?)려온 부모들 이였습니다.  초등학교 1,2,3 학년들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겠으나 초중, 고중 학생까지 그러는 부모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했습니다.  또한 학생이 교문을 나온후 나이든 할머니, 할아버지 쯤의 연세의 노모들이 무거운 학생들 가방을 받아서 어께에 멘 상황을 이해할수 없으며 더욱이 당연하게 가방을 건내준 학생은 더더욱 이해를 하기 힘들다 하였습니다.  마중나온 부모 또는 조부모들은 학생과 같이 무단 횡단, 무단 주차로서 학교외 활동을 불법으로 시작한다고 개탄해 했습니다. 과다한 용돈:   고중 선생의 경우 학생들이 적개는 월 1000원에서 많을경우 월 2000원 이상 쓰는것 같으며 그 비싼 스마트 폰을 구입하여 사용한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어떠한 대가도 없이 무책힘하게 용돈과 선물로 재물을 손쉽게 구입할수 있다는 생각을 준다고 합니다. 미국 대학생들의 용돈에 비하면 턱없이 많은 금액이라고 했습니다. 무작정 외우기:   학생들에게 창의력을 주는 교육은 찿아 볼수 없고 단지 무작정 교과서를 외우기식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영어의 경우 거의 모든 학생들이 영어 교과서를 달달 외워 읽을수는 있지만 막상 글의 내용과 뜻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영어 교과서 내에도 분명 틀린 부분이 있어 지적을 해도 학생들은 그런 부분을 무시하고 무작정 외워서 성적 올리기에만 급급하다고 합니다. 과다한 보호는 학생으로 하여금 사회에 나와서 독립적인 활동과 악착 같은 생활보다는 "일이 잘 안되면 고향으로 돌아가면 되지"란 안이한 생각을 가지게 할뿐입니다.  과다한 용돈은 노력의 대가를 치르기보단 보다 쉬운 방법으로 사회생활를 접하려 할것이며 더 나가 부모님에게 개인적인 요구도 서슴없이 요구할거라 예상됩니다.  무작정 외우기는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활동에 능동적인 자세보다는 누구의 지시에서 움지이는 수동적 자세로서 자기 개발에 뒤쳐지게 될거라 예상됩니다. 불과 2주전 연길에서 고중 2학년인 저의 양 아들에게 이번 겨울방학에 뭘 할거니 라고 물어 본적이 있습니다.  공부한다는 대답만 한 양아들에게 이번 겨울방학동안 1000원을 벌어들여 할머니에게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을 전하고 용돈을 드린다면 난 너에게 최신형 노트북을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1월 2일짜로 저의 양아들은 연길시 모 작은 식당에서 아침 10시 부터 오후 4시까지  허드레일을 돕고 있습니다. 무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후 공부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습니다.  저의 양아들이 받는 월급은 1100원, 그중 1000원을 빼면 버스 차비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하지만 양 아들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껴야 한다는 것과 무궁한 노력뒤엔 그만한 대가를 받는다는걸 알게될거라 생각을 합니다.  노력없이 대가성없이 받는 선물보다는 본인의 노력으로 얻게되는 이번 노트북 콤프터는 그가 오랜시간 애착을 가지면 사용할거라 생각합니다.
23    연길 기업활동의 저해 댓글:  조회:2239  추천:10  2012-12-07
3년전,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전 연길에서 공장을 해보겠다고 정든 청도(靑島)떠나 이곳 연길에서 시작했습니다.  이곳 연길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가 우리 민족의 손재주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상한대로 중국에서 중소공장이 생산하기 힘든 제품중 하나를  단 4개월만에 개발, 생산을 끝냈습니다. 처음 시작은 불과 4명, 지금은 25명이 가족처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제품을 개발한후 미국등지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도저히 저의 공장 생산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량이기에  이곳 은행을 방문하여 설비를 증설을 요구했습니다.   은행은 답은 간단했습니다.  "연변은행들은  더이상 설비 투자에 은행이 대출을 하지 않는다" 였습니다.  하는수 없이 저의는 해외에서 들어오는 주문의 80% 정도를 강소성 난통시에 위치한 3개 공장에 하청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와중에도 조금식 돈을 모아 설비를 하나둘씩 늘려 나갔습니다.   이상한점은 강소성 난통시에 위치한 저의 하청 업체는 계속적으로 설비를 늘려 가는겁니다.  난통시 하청업체를 방문 할때마다 새로운 설비를 보며 전 "당신들 나에게 얼마나 바가지를 쒸워서 이렇게 설비를 넓혀가는가" 라고 했더니 "여기서는 주문계약서만 있으면 설비증설은 은행에서 대출해준다" ..... 전 "뭐 ???????" 지난 2년 넘도록 거래를 해온 미국 거래처에서 얼마전에 신용장(L/C)으로 결재를 하면서 거래 량을 넓혀가자고 열락이 왔습니다.  전 기뿐마음에 신용장소식을 가지고 이곳 연길시 은행을 찿아 같습니다.   통상적으로 해외 거래처와 거래를 할경우 신용장으로 거래를 합니다.  신용장을 받은 중소기업들은 신용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를 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산업기반을 수출 중심인 국가에서는 항상 있는 일이기때문입니다.   중소기업들은 다 량의 원자재를 구입할 자금이 필요하기때문입니다.  은행을 찿은 저은 또 다시 "않되"라는 소식을 접하게 됬습니다.  연길시 은행은 신용장 담보 대출을 안한다고 합니다.   고민을 하던 저는 강소선 난통에 있는 하청 업체에게 알아봤습니다.  그들의 답은 "왜 안되냐, 여긴 항상되는 일인대...." "난통은 보통 신용장 금액의 70~80% 정도는 기본이며 은행직원들과 친분이 있을경우 95%까지도 가능하다"   전 황당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몆칠후,  난통 거래처들이 다 함께 모여 저녁을 하면서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공장을 이곳 난통으로 옴겨라,  여기 은행하고 이야기 하니까 이곳 난통으로 오면 나머진 알아서 해준다고 하더라".    현금을 빌려 달라고 하는것도 아니고 설비 증설에 우리가 계약금을 지불하고, 신용장을 담보로 원자재 구입 요구도 해주지 않는 이곳 은행들을 보며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저가 이곳에 가겠다는걸 반대 했는지 이제서야 알것 같습니다. 전 아직도 이곳이 좋습니다. 인정많은 사람들이 많고, 수려한 경치가 있고, 또한 식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손재주가 뛰어난 우리 민족이 있기에 앞으로도 좋은 물건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방에서 불어오는 달콤한 유혹이 저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저의 마음이 끌리는건 사실입니다. 연변지역 인사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연변지역 행정업무, 은행업무를 연해지역 또는 중국남방지역보다도 발전 시켜달라고 부탁하지는 않게습니다. 단지 타지역 하는 만큼만  해주십사하는 바램입니다. 연변경제가 발전해야지만 떠나간 우리민족들이 다시 돌아올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요? . 연변지역이 발전할거다,.... 발전된다..... 등의 겉치레적이고 상투적이 말만 하지 마시고 중소기업들이 발전하고 지역 경제가 발전할수  있는 기본적 기반과 제도를 마련해 줌이 어떨까 하여 글을 올려봅니다
22    21세기 차기 세계폐권(覇權)은 누구? 댓글:  조회:3007  추천:9  2012-09-26
 21세기 차기 세계폐권(覇權)은 누구?   폐권(覇權)이란 “일반적으로 승리자·우두머리가 가지는 권력”등을 말 합니다.  세계역사를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대영제국시대등은 월등한 무기로 타국을 침략하여 지배국으로 부터 저인금과 무상 원자재로서 자국의 번영을 이루워 왔습니다.  하지만 근대사에서는 무력적인 무기가 아닌 기술력과 경제적인 무기로 폐권을 쥐는 형대로 바꿔나갑니다. 18세기 초, 스페인에게 대승을 거둔 영국은  화력이 좋은 석탄개발에 몰두합니다.  석탄을 땅속 깊은곳에서 석탄을 파낼때 생기는 고인 물을 갱도 밖으로 퍼내기위해서 말로 하여금 물래를 돌기게 했습니다. 1765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에 의하여 발견된 증기터빈 엔진이 말(馬) 대신 그자리를 대처했으며 그로 인하여 말을 대처하는 힘을 마력(馬力)이라고 하여 오늘날까지 모든 엔진의 힘을 측정하는 구호가 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자동차 엔진힘을 표시하는 마력이 여기서 형성이 됐습니다. 이러한 증기 터빈엔진은 영국으로 하여금 더 멀리, 더 빨리 먼바다 해양으로 진출할수 있도록 했으며 그로 인하여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란 이름으로 세계 곧곧에 식민지를 만들어 세계폐권을 잡을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석탄 시대는 19세개 중반에 이르러 내리막길을 걸으며  미국 펜실바니아주 한 우물에서 찿아낸 검은 액체가 현대사회를 바꾸는 이정표가 됩니다. 돌과 돌사이에서 나온 기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은 바로 Rock Oil 측 석유(石油)입니다. 1859년 미국의 에드워드 드레이크에 의하여 개발됬습니다.  석유는 그전부터 미국본토 인디언들이 약재로 사용을 해왔습니다. 또한 에드워드 트레이크도 석유를 집과 길거리에 쓰이는 등잔불에 불을 키기위해서 사용을 했습니다.  석탄과는 달리 무개와 부피가 적으며 화력역시 강한 석유의 등장으로 세계산업에 획기적인 변형을 가져오게 됩니다. 석탄보다 부피가 적으며 보관이 쉬운 석유는 미국으로 하여금 대양 해양으로 더 멀리 더 빨리 나갈수 있도록 했으며 근대 산업혁명의 개척자로서 영국이 1세기가 넘도록 소유했던  세계폐권을 미국으로 가져 올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만 봐도 석유의 역량이 얼마나 큰지를 알수 있습니다.   유럽을 다 차지못한 독일은 군사적 이동에 필요한 석유때문에 북아프리카 대륙을 침략하는 무리수를 둘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며 독일 전쟁영웅인 “사막의 여우”로 더 유명한 아르힌 롬멜 장군이 북 아프리카 지역에서 미국 전쟁영웅인 페튼장군과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이유 역시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미국군에 숫적인  우위에 밀려 폐한 독일은 그후로는 연합군에게 유럽본토를 상륙하게며 풍부한 석유로 진격해오는 연합군을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일본 역시 2차 대전 당시 최고의 전투비행기 알려진 “지로”가 있었음에 불구하고 석유 부족으로 전장에 나가는 전투기에 기름을 반(1/2)채워서 전쟁터로 보냈고 석유가 부족한 비행기들은 돌아 올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비행기들을 가미카제 특공대라고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후 미국은 세계석유 가격은 달러로 한다는 페그제도를 만들었으며 오늘 이날까지 달러로 공시 지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로 세계 경제의 원동력인 석유를 개발 기술을 앞세워 영국으로부터 세계폐권을 완전하게 가져옵니다. 다시말해서 세계경제의 원동력이인 에너지를 미국 손안 넣는 결과가 됬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석유생산량의 65%를 소모 했으며 이러한 미국은 자국의 소비를 위하여 원유 가격을 최정점에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70년대 초반까지 1배럴당 $4~5(지금은 평균 $100)유지하도록 노력했으며 그로 인하여 중동원유생산 국가들의 반발로 1973년도 1차 오일 쇼크가 일어납니다.  중동, 남미, 동남 아시아 석유산유 국가들이 모여 OPEC 기구를 만들어 드디어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형성된 가격은 베럴당 $10~13. 1979년에 다시한번 석유파동이 일어나며 베럴당 $20 선까지 올라 갑니다.   원유의 산유국들인 OPEC 국가들은 원유는 나오지만 원유를 정재할수 있는 정유공장이 없는 관계로 미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그후 80~90년대에 들어 한국, 일본등의 국가들이 OPEC 가입 국가들에 직접적인 정유공장을 만들어 줌으로서 원유 산유국가들에게 미국의 독보적인 산업구성에서  독립을 할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줬습니다. 2000년도에 이르러 원유가격에 미국의 영향력이 점점쇄약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의 원리로 따지만 수요보다 공급이 많을 경우 당현 하게 가격은 떨어 집니다.  세계시장의 65% 사용했던 미국의 포션이 35%대로 떨어진것이 가장큰 이유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느 바로 신승 경제대국들의 등장 입니다.  인도, 중국, 브라질……… 이러한 신흥 경제대국들의 등장 으로 석유의 수요가 급증 하며 미국이 차지했던 시장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석유시장의 판도에 따라 세계 경제가 술렁일수 있습니다. 원유에서 나오는 화학제료로 약 3000가지의 제품을 만들수 있는 실정이며 지금 우리가 사는 실 생활에 알게 또는 모르게 직간접 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석유란  자체가 세계경제의 중심이 아니라 석탄, 석유 또는 다른 원자재에서 형성 되는 에너지란 자체가 세계의 중심이며 국가체재의 원동력 이기 때문 입니다.  이러한 사태를 눈치첸 미국은 지금 쥐고 있는 폐권을 100년더 유지하고자  또다른 에너지 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쉐일(Shale gas)가스가 될지 그린 에너지의 원동력인 베터리가 될지는 아직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테입니다.   21세기에 걸 맞는 에너지는 지금보다는 친환경적인 에너지가 되야 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쉐일가스와 베터리 는 21세기 에너지 요구조건을 충족하고 남습니다.   미국은 우선적으로 쉐일가스 개발에 필요한 개발 기술을 끝마친 상태로 세계최초로 쉐일가스를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은 미국내에서만 사용 하는 것으로 아직 제 3국에서 적용을 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불과 몆달전 중국의  요녕성과 미국의 Shell(헐렌드, 본사는 미국에 있음)사가 요녕성 쉐일가스 개발에 합의 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 엑손사의 지질학 팀의 조사 결과 중국의 쉐일까스 매장량은 세계최고로서 중국 인구 13억이 앞으로 150년을 쓸수 있는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21 세기의 폐권이 쉐일 가스에 의하여 결정될지는 아직 미지수 입니다.  만약 쉐일가스일  경우 세계최대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중국과 최초의 기술을 보유한 미국 두 국가간에 폐권을 쥐기 위해 암투가 벌어지리라 예상이되며 이글을 올립니다
21    염치 없는 이웃!!!!! 댓글:  조회:2613  추천:3  2012-09-12
작년 이맘때, 주차장마다 아파트 주민들이 수확한 가을 고추를 건조하기위하여 이곳저곳 깔려 있는 고추 때문에 퇴근후 아파트 내에서 주차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전 퇴근후 추차 할때마다 "사람들이 몰지각하고 염치 없어" 자기생각만하고 주차장을 점령한다고 투덜대곤 했습니다.  심지어 저의 심술이 발동되어 햊빚을 가릴려는 심산에 깔려있는 고추앞에 주차를 하며 심술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퇴근후 집에서 TV 를 보던때에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아래층 할머님께서 빨깐 고추가루 한뭉치를 내밀면서 햇고추가루 이니 먹어보라고 했습니다. 그후 옆집에서는 마른 무말랭이, 위층에서는 옥수수, 등등 올해 수확한 곡식과 곡물들은 나눠주셨습니다.  전 그때마다 이런 귀한걸 집에서 사용하시지 뭐하라 가줘왔냐 하며 수선을 떨면 할머님께서는 우린 충분하게 있다 남는걸 서로 나눠주면 좋치안냐 하며 말씀하시는겁니다.  그후론 산에서 딴 머루, 처음으로본 겜 버섯, 솔 버섯등,  얻어 먹는것이 죄송한 본인은 그분 식구들을 모시고 저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됬습니다.  그후 우리 아파트 단원 사람들은 서로 인사도하며 서로의 안부도 물어보고 때에 따라선 같이 식사도 하는 정말 이웃사촌이 되었습니다.  각박한 현대 사회, 돈 벌기위해서 혈안이된 이 시점에, 연변엔 아직은 이러한 인심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민족만의 끈끈하고 소박한 정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연변이 살기 좋타고 생각하며 애정을 가지게 됩니다.  타지에서온 한국인으로서 이러한 향수를 누릴수 있는곳은 연변밖에 없을거라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래집 할머니에게 " 할머니 저의 주자장을 고추 말릴때 쓰시고 이번에도 고추가루 저도 좀 주세요, 저 역시 삼겹살 파티 하기위해서 고기 많이 사놨음다"  염치 없는 이웃의 바램입니다.
20    9.3 절 이후 연변경제 댓글:  조회:2731  추천:13  2012-09-08
얼마전에 연변 자치주의 60번째 생일은 성공적으로 성대하게 치루어 졌다고 생각합니다.   경축행사에 참관하고난 후 외국인 투자자들과 이곳 연변지역 공인들과 식사 자리를 하면서 주고 나눈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이곳 조글로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을 글일 읽어보면 민족자치주에 대한 자부심 말씀하시며 심지어 "무궁한 발전","영원 하리라" 등의 구호를 말씀하십니다.  또한 앞으로 연변이 발전할거다 라는 식의 말씀을 하시지만 어떻게 무궁한 발전을 해야 하며 어떻게 영훤하게 유지를 할거며 어떻한 방법으로 연변이 발전해야 할 계시는 없어서 글을 읽는 독자로서 답답함을 뭐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우리 연변이 처한 상황을 먼저 직시하고 대처 한다면 모를까 지금 이 상태로 얼마나 발전할지는 미지수가 아닐수 없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란 말이 삼국지에 나옵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불패,   우리가 처한 상황을 먼저 파악해 보겠습니다. 지형적 위치:   동북에 위치한 연변은 수출을 하고자 하는 기업에겐 최악의 조건입니다.   내륙 깊은곳에 위치했으며 가장 가까운 국제적인 항구는 대련(나진항 재외) 까지는 콘테이너가 연길을 떠나 7일이 걸립니다.   이러한 위치의 연변은 농수산물의 수출은  건조됐거나 염장을 하지 않을 경우 대련항 도착하기도 전에 밀폐된 콘테이너에서 상하게 됩니다.   또한 노동 집약적인 경공업(의류, 장난감 등)의 경우 겨우 3~5% 이익을 챙길경우 운송비에서 이익을 날리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위치의 연변에 어떤 경공업과 식품회사들을 유치 할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악조건의 연변이 발전하기 위해선 고부가 가치적 산업에 뛰어 들어야지만 가능합니다.  단적인 예로 송이버섯의 경우 고부가 가치이기 때문에 비행기로 일본 한국으로 수출이 가능합니다. 현실성 없는 토지 가격:   여러 방면으로 알아본결과 연길시의 경우 개발구 토지값이 연해지역 보다 비싼걸로 나와 있습니다.  지형적 악조건에서 연해지구와 경쟁하기가 버거운  마당에 토지 가격이 연해지구 보다 더 비싸다면 누가 찿아 오겠습니까. 교통:  다행이 연길에 국제공항이 있지만 국제노선이라 봐야 한국행입니다.  하루에 3편으로 출장을가거나 돌아 올때면 항상 좌석이 없어서 몆날 몆칠을 가다리거나 아님 장춘, 심양, 무단장등으로 돌아오는 실정입니다.   얼마전 연길편이 만원이라서 장춘으로 돌아간적이 있습니다.  인천발 장춘 비행기의 탑승자 대다수가 연길로 가는 손님들이 였습니다.  이러한 시점을 아시는 연변에서는 대한항공, 아시아나, 중국국제항공에 증편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9.3 경축행사에 참여 했던 외국인 예비 투자자들이  기차로 17시간 걸리는 대련으로 가면서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   또한 비행기표 값은 터무니 없는 가격입니다. 2시간도 않걸리는 연길행 비행기 좌석 가격은 55만원선 4시간 30분이 걸리는 광동성 광주시와 같거나 더 비싼 가격입니다.  여기 연길에 사시는 동포를 봉 으로 보는것 같습니다. 산과 계곡이 많은 연변지역, 잘 찿아보면 뭔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올린글 "쉘 가스" 미국에서 조사한 봐로는 길림성이  중국내에서 가장많은 매장량이 있다고 나왔습니다.  정말 높은 고부가 가치 산업이며 많은 인프라를 생성할수 있는 산업입니다.   또한 얼마전 중국정부의 수출중지로 일본 전자산업에 겁을 먹게 했던 "희토류".  희토류는 세계 첨단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정도로 히귀성인 광물, 세계 매장량의 35%가 중국에 있으며 그중 50%는 내 몽고 지역에서 생산이 됩니다.  또한 많은 량은 중국과 국경지역인 북조선 지역에 매장된걸로 나와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사진이 삽입이 안됩니다)  이역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개발이 된다면 연변 지역에 많은 발전을 줄수 있는 산업이라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 투자를 하겠지..... 누구는 왜 같은 민족인데 투자를 않하나... 막연한 기대심리와   남 탓을 하기 보단 우리 자체에서 民官이 합심하여 문제의 해결점을 찿아 연변의 미래를 개척해가면 어떨지 하여 글을 올려 봤습니다.
19    문명시, 문명시민 댓글:  조회:2756  추천:15  2012-08-28
1년에 9개월 이상 연길시에서 지내며 식구가 연길에 있는 사람으로 연길시를 생각하면 이글을 올립니다. 요즘 9.3기념 행사를 앞두고 연길시는 안밖으로 이쁘게, 멋지게 포장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누가 봐도 연길시는 잘 포장된 도시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 연길시를 다니다 보면 도시 곳곳에 "문명시, 문명시민" 이란 글을 자주 볼수 있습니다.   과연 잘 포장된 도시에 우린 문명시 이며 문명시에 어울리는 문명시민 일까요? 법은 크게 민사법과 형사법으로 나누어 지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중 형사법의 가장 기초는 교통법규입니다.  교통법규를 어겼지만 형량대신 벌금은로 해결할수 있는 유일한 형사법입니다.    과연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문명사회 구성의 가장 기초적인 교통법규를 지키는 사람은 몆몆이나 보셨나요? 연길시에서 운전을 한다는건 인생을 건 모험에 가깝다고 할수 있습니다.   뒷차가 있던 말던 아무곳에  정차하는 차들,  2차선에서 좌회전 하는 차들,  직선으로 달려오는 차를 보면서도 우회전 하는 차들, 아무곳에서나 U 턴을 하는 차들,  역주행을 하는 차들,  끼어들기 하는 차들....... 뭐 하도 많아서 글로 쓰자면 책을 한권을 써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차와 운전자들만 잘못된걸까요?   시민들은 어떻습니까? 행단보도가 없는 차도를 자기 집인냥 차가 다가와도 불구 하고 천천이 걸어가는 사람들, 분명 홍색등으로 건너가면 안되는 건널목을 걸어 가는 행인들,  옆에 인도가 있는대도 불구하고 굳이 차도로 걸어가는 이유는 또 뭡니까...  오죽하면 길 사이에 철장으로 바리케이트를 칠까요.(하기사 나지막한 바리케이트를 남녀할것없이 넘어다니더군요) 부모로서 또한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자식들에게 이런 간단한 법규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훗날 그것을 보고자란 아이가 법을 지키겠습니까?  본인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자식에게 법을 지키라고 한다면 그 자녀가 부모님의 말을 따르겠습니까? 도시를 멋지게 치장과 포장을 한다해도 그 도시의 일요원인 우리가 간단한 법규하나 지키지 못하다면 과연 연길시가 문명도시이며 그도시의 일원인 우리가 문명시민이겠습니까.   얼마전에 연길에 잠시 들렸던 아프리카 손님께서 연길을 떠나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국은 분명 자기국가보단 부자이지만 시민들은 수준은 자기들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자기들 나라에는 돈이 없어서 인도가 없는 관계로 길옆을 걸어다니지만 적어도 차도와 다가 오는 차를 보고 무단으로 길을 건너지 안는다고 합니다.  저가 이런 글을 올리는 이유는 그 아프리카 인에게 받은 모욕과 망신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저 역시 이곳 연길 시민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신경을 쓰고 조금만 늦게 도착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모두 편안하고 안전할거며 좀더 문명시, 문명시민이 되질 않을까해서 글을 올려봤습니다.
18    세계 석유 매장량은? 댓글:  조회:3108  추천:1  2012-08-25
세계원유 매장량에 대한 기사가 나와 올려봅니다 2008년은 국제석유시장이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해로 기억된다. 중동 정세불안과 중국ㆍ 인도 등 신흥시장의 에너지 수요 증가로 그 해 7월3일 검색하기">국제 유가는 140.05달러(두바이유 기준)를 찍었다. 이런 추세라면 유가 200달러 시대가 멀지 않았고, '제 3의 석유파동'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값 비싼 기름은 다시금 석유 고갈 논쟁에 불을 댕겼다. 그러나 곧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그에 따른 금융위기 여파로 유가는 불과 5개월 만에 37.61달러(12월5일)로 급락했다. 이후 유가는 조금씩 오르더니 2012년 현재 '100달러의 유가'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19세기 후반 이후 인류의 삶을 떠받쳐온 석유의 전성시대, 그 파티가 끝나가는 걸까. 석유재고 얼마나 남았나 유기체의 퇴적물인 석유는 무한대로 존재할 수 없다. 계속 퍼 쓴다면 언젠가는 바닥들 드러낼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채산성이 없다면 유정을 파서 기름을 계속 뽑아낼 리 없다. 때문에 석유 고갈 논란은 석유가 물리적으로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시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량 감소와 함께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경제성 있는 자원으로서의 지위를 잃느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 현재 전 세계 1차 에너지 소비량에서 석유(순수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2%다. 주요 에너지원 중 가장 높은 점유율이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인 수치도 아니다. 석유의 파급력은 다름아닌 연관산업에서 나온다. 화학산업의 기초 원료는 물론, 섬유 플라스틱 등 우리가 먹고 쓰고 입는 대부분은 석유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검색하기">호모 오일리쿠스(Homo Oilicus)'라는 지칭이 괜한 말은 아닌 셈이다. 문제는 머지않아 경제적 관점에서 석유시대가 종언을 고할지, 아니면 먼 훗날에도 에너지 최강자의 위치를 공고히 할 지 여부이다. 불행히도 석유 고갈 시점에 대해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5~10년 내에 석유생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것이란 주장이 있는 반면, 100년이 지나도 수요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영구설까지 분석은 천차만별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석유관련 자료는 모든 산유국에서 기밀에 속해 확인이 어려울뿐더러 정치적 특성까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러시아에서는 석유 정보를 누설할 경우 최대 징역 7년형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석유 잔존 매장량의 60%를 점유하는 중동 산유국의 석유 통계는 아예 추정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영국의 석유 메이저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내놓은 추정치가 많이 인용되는 편이다. BP는 석유의 확인매장량을 약 1조2,400억배럴로 보고, 가채년수(확인매장량을 전년도 생산량으로 나눈 것)가 42년 정도 남았다고 예측했다. 현재 소비 속도를 고려할 때 40년 뒤면 석유의 수명이 끝난다고 판단한 것. 하지만 석유 고갈론을 기우로 치부하는 쪽에서는 BP의 전망이 중요한 변수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당대의 기술과 경제적 여건만을 반영한 확인매장량은 탐사기술의 진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1970~80년대 석유파동 당시의 40년 잔존설이 지금도 유효한 것은 기술발전으로 경제성 없는 광구를 새로 개발하고, 기존 유전의 추가 회수율(reseve growth)을 크게 높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1980년 29년에 불과했던 석유 가채년수는 2007년 41.6년을 기록,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다. 검색하기">피크오일 논쟁 재점화 석유 비관론자들은 '피크오일(Peak Oil)'설을 내세워 석유의 시대는 종지부를 찍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석유 생산이 절정에 이르는 지점, 다시 말해 석유 소비가 급증하거나 유전 개발이 부진해 증가하던 생산이 한계에 부닥치는 시기를 일컫는다. 석유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다가 특정 시점에서 급격히 줄어든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석유 고갈론만큼이나 피크오일의 도래 시기도 논쟁이 첨예한 사안. 이미 2006년 석유 생산이 정점에 도달(독일 에너지워치그룹ㆍEWG)했다고 보는 견해와 2060년은 돼 봐야 피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세계에너지협의회ㆍWEC)는 주장으로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제 누구나 "값싼 석유의 시대가 끝났다"는 데 동의한다는 사실이다. 환경단체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이유가 어떻든 천정부지로 솟은 유가 탓에 생산피크 시기가 앞당겨진 만큼 석유가 공공재의 가치를 잃어버리기 전에 검색하기">대체 에너지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논리다. 가격 외에 석유 생산의 이상 징후를 알리는 경고음도 도처에서 감지된다. IEA는 지난해 발간한 '세계 에너지 전망'에서 2035년까지 석유수요가 13.8%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거대 유전의 상당수는 성숙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미 에너지부가 작성한 '허쉬보고서에는 "48개 산유국 중 33개국이 감산으로 돌아섰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총의 성능(개발 茱?만 좋아졌을 뿐, 정작 사냥감(석유)은 적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석유도 초창기에는 엄청난 정책적ㆍ재정적 지원을 등에 업고 최고 에너지원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며 "생산 부담이 계속 늘어난다면 석유에 들어갈 돈을 차라리 검색하기">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투입해 제2의 석유로 육성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17    세계 500대 기업에 대한 단상 댓글:  조회:3494  추천:1  2012-07-10
몆칠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가진 포춘(Fortune) 이란 경제 잡지에서 메년 발표하는 "세계 500 대" 기업을 발표했습니다.   많은 기업인들과 경제 학자들은 포춘의 이러한 발표를 매우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돌아 오는 새해에 경제를 측정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결과에 놀라운 사실은 미국(132), 중국(73), 일본(63), 3개국이  전채 500 기업중에 과반수가 훨씬 넘는 268개의 기업이 등록했습니다.  또한 중국과 일본을 주측으로한 아시아 지역 기업들이 200 회사가 등록을 했습니다.  세계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세계 경제가 이젠 아시아가 주축이란 말이 허황된 말이 아니란것을 증명했습니다.   오늘 여기에 나열하는 저의 분석은 저의 개인적 분석이라고 말씀드리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중국 세계 10대 기업:    세계 10대 기업중 8개 기업이 석유와 천연가스에 연관된 기업들입니다.  중국 역시 2개 기업이 6위에 시노펙(SINOPAC),  국가전력망国家电网公司(STATE OF GRID) 가 10위에 위치했습니다.  또한 아쉽지만 중국석유공사(CHINA NATIONAL PETROLIUM)이 11 위에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열된 기업들의 기준은  총수익 [ gross profit , 總收益 ] 을 기준으로 나열됨을 미리 알립니다. 총수입과 순수익[純收益]은 분명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포춘 500 기업에 등록된 73개의 중국 기업중 67개 기업이 중국정부산하의 공기업들로 나왔습니다.   민간 기업으로 400대 기업안에 들어가는 기업은 단 하나도 없는 실정입니다.  공기업이란 중앙정부의 산하로 실적위주로 운영하여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킵니다.  단 적인 예를 보면  중국 시노펙 보다 2배의 총수익을 만든 세계  1위 엑산모빌(EXXON) 경우 총 직원은 82,000 여명 반대로 중국국가전력망国家电网公司(STATE OF GRID) 은 1,564,000 여명 입니다. 또한 세계 6위기업 중국시노펙(SINOPAC)은 400,000 여명의 직원이지만 8위에 위치한 코노코 필립(CONOCO PHILIPS) 는 경우 29,800 명이 직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즉 이러한 기업은 실질적인 순수입純收益]이 타 기업보다 현져하게 낮든가 아님 손익분기점損益分岐點 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세계 112대 기업으로 등록된 중국철도부(中华人民共和国铁道部)의 경우 일년에 내는 대출 이자만 5조元 이라는 뉴스가 있습니다.  중국철도부의 총이익은 중국석유공사에 1/4 정도이지만 직원수는 약 550,000 여명 입니다.  공기업들의 이러한 방만하고 부실적인 운영에 피해는 고스란이 소비자와 국민들에게 돌아 옵니다.   부실적인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국민이 낸 공적자금인 세금이 투입될거며 적자 생존을 위해서라도 공공요금 인상이 불가피하게 됩니다.   부실을 내고도 운영하는 이유는 유아독존 唯我獨尊  식 태도 이기 때문입니다. 즉 방만한 경영을 견제하고 경쟁할수 있는 기업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철도청의 부실운행으로 생긴 적자를 가격인상과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기업의 부실은 1. 비합리적인 인사이동:  전문가들이 아닌 자들이 중앙정부로 부터 인사를 받아서 간부에 취임하기때문이며 2. 능률부족: 기술과 능력부족의 인사로 적자가 만연하고 또한 아님 말고식의 서비스를 국민과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며 3. 제재부족:   국가 운용과  유아독존 唯我獨尊 태도 서비스로 인한 국민들이 통제를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방만한 공기업들이 운영을 한 예로 들면:  소비자들에게 예고도  없이 준비 없는 상태에서 전기, 수도물 등을 단전 또는 단수가 발생하는 일이 종종일어나늘걸 볼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내용은 모든 국영기업들이 적자에 허덕인다는 말이 절대아닙니다.   매출과 이익부풀리기로 만연하는 사회에서 부당한 피해는 우리 소비자들에게 돌아 올까하여 개인적인 생각을 써봤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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