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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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기말의 방황 ( 상 ) - 리동렬 댓글:  조회:2835  추천:3  2011-08-18
중편소설                                           세기말의 방황                                                                                                         리동렬   해비      그는 그녀와 길에 나설적부터 자기가 멋적게 느껴졌다. 그건 불안이 섞인 멋적음이였다. 비줄기가 먼지 가득 낀 아스팔트길우에 내리꼰질적에 그런 느낌은 매캐하게 흩풍기는 흙먼지속에서 더 은은하게 가슴에 맞혀왔다. 불안은 불안이고 멋적음은 멋적음이였지만, 기어코 갈마드는 그런 야릇한 느낌을 어쩔가. 비 그으러 튕겨나가는 행인들의 란잡한 발자국소리들은 삽시에 그와 그녀를 멀리 떨구어놓았고, 둘만의 비길이 되였다. 그러나 둘은 약속없이 우두커니 서있다가 그녀가 먼저 야릇한 소리를 냈다. 고개를 젖히고 비물을 코, 눈, 입 할것없이 얼굴판에다 흠뻑 받아 적시고는, 갈증에 주린 어처구니없는 상이랄가, 하지만 그런 손짓 몸짓이 끈끈하게 그를 감염시켜왔다. 금방 얼굴을 젖히고, 그도 수없이 광한들이 비줄기속에서 어른거리는 황홀을 포착한것이고, 해비, 꽃비가 어떤 챤스처럼 맞띄운것이다. 흠뻑 젖은 그녀의 머리에서 미끄러져내려 동그란 어깨에 자연스럽게 가닿는 그의 손이였고, 몽글거리던 마음귀퉁이가 엿물처럼 촐랑이는 소리이다. 처녀에게 그런 맘을 가지다니? 그것은 다른 맘이라고 그는 변명을 한다. 무엇인가 기탁을 주고싶은것 같은, 사뭇 애련(愛戀)같은것이랄가.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눈을 곱게 빤다.   《아이참, 이 손 좀 치워요. 창피하게스리, 쯧쯧.》   《창피--해…? 헛--!》   하고 그는 멋적게 입을 벌리였고, 안해의 얼굴이 피끗 스쳐지나 갔었다. 잔잔하고 보글거리는 아름다움이 깃든 얼굴이다… 해비는 곧 그치였고, 그러나 그런 멋적음은 어디선가 끈끈하게 발효되고 냄새를 풍긴다. 바닥에 이는 신선한 바람, 그리고 둘사이 묘하게 이는 스릴이였다.   《오-- 머, 성나셨어-- ?… 아니 날 웃고있잖아요?》   하고 툭, 어깨를 쳐온다. 깐깐한 직업성적성미가 냄새를 맡은것같다.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게 되는 그런 눈길이다. 해비에 촉촉히 젖은 그 얼굴, 그 눈, 그리고 그 코… 그는 한숨을 풀, 했다. 해비 그친 뒤 금방 따온 참외 같은 싱싱한 그 모습.   《난 웃어도 죄요? 명길이라는 이 신임편집실주임은 오른손에 권력이 없고 왼손에 돈이 없는, 명실공히 이 아니고 뭐요? 남이 다 만들어놓은 기사문을 하나의 표준에다 밀박아넣고 가늠을 해서 살리고 죽이든, 이봐요 박기자, 나는 지금 자기를 천평우에 올려놓고 나의 존재가치를 따지고있는셈이요. 그래 웃지 않게 됐소?》   방금전의 일을 두고 역증을 내는것이다. 오-- 음, 하고 혀를 차면서 언제 저렇게 철학가가 되였느냐구, 그녀가 입을 삐쭉한다.   김명길이와 박순금이는, 둘은 M시 TV방송국 기자들이다. 어찌보면 명길이는 십년 기자생활끝에야 자그마한 감투 하나 챙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른일곱을 바라보는 그 나이에는 조금 늦었지만은 부주필자리와 맞먹는 편집실주임이 되였으니말이다. 그런데 그 주임이 얼마나 무맥한지 자기로도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였다.   그러니 소위 사건이 터진것은 그가 부임되여 일주일만에 박기자의 친구 김선월이라는 녀인의 일을 문자작성을 해서 신문프로취급여부를 확정하고저 주필실에 올려보낸데서 기인된것이다. 사느라면 고비가 있고 그 고비에서 재수가 없으면 덫에 치울 경우도 있을수 있는것이 우리의 삶이고, 지금의 김선월의 처지랄가. 열일곱나던 해에 그녀는 부친을 여의였고, 평소에 심장으로 늘 시름시름 앓던 그녀의 어머니도 그녀와 그녀의 남동생만 외롭게 남겨두고 보름전에 뜻밖에 세상을 하직하고, 빚더미에서 오누이는 오물늪을 헤매야 했었다. 그녀가 교원을 그만두었다는데서 느닷없이 심장발작을 일으킨 그녀의 모친이다. 그만두었다는것은 하나의 표현이고 실은 제명처분을 받은것이였다. 다방에서 따뜻한 차잔을 잡고 박기자가 자기의 친구를 위해 의분할 때 같이 의분을 느낀 그였다. 살길이 없으니 나이트클럽에 나가 밤아가씨로 노릇했고, 로임을 내주지 않는다고 시정부에 가서《시위》를 하고… 그래서 인민교원의 얼굴에 먹칠했다는것, 그것이 먹칠이라 해도 좋고 뼁끼칠이라도 좋으나 교원도 먹고입고 살아야지 않느냐구, 김선월이의 소위 무모는 무모밖의 동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 명길이다. 그래서 박기자가 그러루한 론리에 째워넣어 작성한 원고를 모르는척 주필한테 넘긴것이다. 그런데 주필이 어떤 분인데? TV에 그런 신문 낼수 있느냐구, 그런 관례도 모르냐 정신있냐 없느냐구, 생 야단을 맞은것이였다. 물론 그런 관례 모를리 없었고, 알면서도 하는 그런 짓거리에는 그의 어떤 충동이 깔려있었다는것은 더 말할나위 없었다. 측면으로 비쳐오는 그 파릿한 얼굴, 새초롬하게 굳어진 반달눈과 옴씰거리는 얄팍한 입술이 그녀의 기분을 랭빛으로 굳히고 있었다.   《지금 막… 어디를 응?》   《웃기시네… 아무데를 가면요? 술 사겠어요?》   《술… 사…?》   《오-- 머, 기차, 귀엽구!… 끌끌, 따라와요. 술은 제가 사구, 친구 소개해줄게요. 근사한 녀자거든요!…》   《근사한 녀자?… 아, 우리 박기자가 이제 오라버님 생각 제대로 하는 모양일세그려. 잘 부탁합니다, 네…》   머리회전이 되여서 얼씨구를 하니 그제야 그녀도 허리를 잡았고, 그때 무심결에 그녀의 등에 주먹 하나 살짝 안기는 장난질이 있었다. 단단한 손가락들에 싱싱한 살갗이 물큰 닿아오자 가슴에 야릇하니 생기는 맹점 하나-- 땀에 젖어든듯한 그녀의 체취와 살향기… 도대체 이 녀자는 나의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걸려온다. 동사자? 친구? 애인?… 딱히 그중 어느 하나라고 툭 찍을수 없을만큼 아이러니를 만드는 생활이다. 혹 기자들이 아직은 젊었기때문일가? 하고도 생각해보고, 사과즙액처럼 끈적끈적하지는 않아도 커피처럼 진하게 남기는 그런 뒤맛이랄가. 5년전 스무세살의 사범학원졸업생이 편집실문을 떼고 들어설 때부터 그와 그녀 사이에는 어쩔수없이 그런 스릴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었다.   《아니 이처녀, 눈은 두었다 어디에 쓰자고 그러오?》   《네--, 아, 미안, 미안해요… 어쩜 고만한 일에 신경을 내고 그러실가? 간 떨어지겠네, 훗…!》   한아름되는 재료무지를 엄벙덤벙 부딪쳐 떨어뜨리고도 그런 질문까지 깜직하게 하는 녀대생, 그리고 초면이다. 그러나 겪어보니 한가지, 남들이 곁에 있으면 깍듯함이 점차 마음에 들었다. 실은 예쁘고 너무 똑똑하고 바늘틈 들어가지 않을만큼 깐진 처녀이다. 눈이 이마에 가 붙은것이 흠이라면 흠, 스물여덟까지 련애 한번 해보지 않은 녀자라면 누가 믿을가, 그리고 뭐라 할가?…   해비 스친 거리를 박기자와 조금 동안을 두고 걸으면서 그는 다시 재글재글 끓고있는 해빛에 마음이 훝어져갔다. 더위가 이어질 모양, 김선월이라는 녀자생각이 난다. 어떻게 생긴 녀자일가? 박기자와 짝을 맞추어도 흠잡을수 없을만큼 대차고 이쁜?… 저만큼 멈추어서서 박기자가 손짓을 하고있었다. 서시장 가까이, 그녀가 들고있는 세집아빠트에 다가온듯싶다. 고개 들어보니 해가까이 물기 머금은 구름 몇송이가 떠있었고, 해비가 다시 이어질것 같지 않았다… 유혹      줌안에 착 붙은 예쁜 핸드폰을 펼치고 꾹꾹 신호를 넣는 녀자가 있다. 하얀 손톱눈우에 장미빛메뉴쿠어칠을 해서 버튼을 누르는 손끝에서는 앵두꽃잎 날리듯했다. 보드랍고 흰면질의 블라우스가 잔뜩 익어 당금 벌어질듯한 그녀의 앞가슴을 선명한 곡선으로 미끈하게 감싸고있었고, 까만 미니스카트가 우유빛 무릎우 살쩍과 예쁜 반차를 이루고있었다.   커피가 몰그락몰그락하고 은은한 서울가락이 구석구석을 울리고있었다고, 핸드폰을 닫고 흘깃 손목시계에 눈길 던지는 그녀는 은연중 미간을 찌프린다. 서른둘, 나이보다 서넛은 젊어보이는 녀인, 몸건사 하나는 철저하게 하는듯싶었다. 신호는 인차 명길이의 혁띠에서 삑삑 거렸고, 박기자가 심열에 정신이 빠져있는 명길이를 일깨웠다.   《이봐요, 주임님, 삐삐가 울리잖아요.》   《응… 그래?…》   허리춤을 보니, 4223888, 그녀의 전화번호였다. 짐짓 아닌보살을 하나 그래도 그의 손은 참지를 못하고 금방 수화기를 더듬고있었다. 실안의 눈길들이 키득키득, 어떤 흥분점을 포착한듯싶다.   《여보세요, 여긴 TV편집실… 제가 김명길인데 뉘신지?…》   금방 어김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잔잔한 비같이 차분하게 귀전에 젖어든다.   《저, 전데요. 저를… 영 잊으신건 아니지요?》   《아, 아니… 실례… 좀 갑작스런 일이라서… 혹 무슨 부탁할 일이라도 있소?…》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그래요, 부탁할 일도 있고, 저녁식사나 같이 할가 해서요… 미식성 에서 만나요. 여섯시정각에요…》   《… 그럼… 그럽시다.》    전화를 끓고 가만히 숨을 내쉬는데 곁에 앉았던 윤기자가   《김주임, 오늘저녁 우리사 절목이 있으니 우리 박기자나 같이 모시고 가줍소 네?》하고 대뜸 쑤셔온다. 누가 어떻게 걸어와서 무슨 명목으로 절목 만드는지는 모르나 대방의 말 몇마디만 들어보아도 그아래 어떤 드라마가 전개될것이란것 기딱차게 눈치채는 기자들이다. 박기자는 입을 비죽했고, 그러니 앙금처럼 가라앉았던 감정의 어떤 분말들이 보얗게 피여오르는듯, 그와 그 녀자의 이야기이다…   이윽고 불고기점문을 당기자 가만히 하는 눈빗질에 금시 걸려드는 녀자가 있었다. 손가락 둘을 펴 신호를 보내면서 어떤 기분이 되여 앉아있는 그녀, 따듯한 물처럼 흘러와서 그의 몸뚱아리 부드럽게 감싸는것 같은 그런 눈길이 분명 과거의 어떤 분위기를 끌고오는듯싶다.   《저… 승직하셨다는 얘기 들었거든요. 그래 언제 술 사나 하고 손꼽아 기다렸는데… 결국 제가 사기로 한거예요. 괜찮죠?》   좌석 잡기 바쁘게 그녀가 눈빛을 새물거려온다. 명길이만이 아는 그런 숨결 어울어진 눈빛이다.   《아. 이거 미안, 미안!… 이나저나 이달도 재정이 힘이 든다는 소린 한다고 하는데…》   무엇때문이였을가, 그는 그런 말 꺼내였고, 그녀가 금방 어우러져왔었다.   《으--머, 그렇군요! 벌써 석달? 뭐 반년이 가까와와요? 기차다, 그러구 어떻게 살아요?… 다들 그래 가만 있어요?》   《가만 있잖으문?… 잠시적곤난이 아니요? 로임 내주지 않는다고 그래도 누가 굶어죽었다는 소문은 못들었는데… 이봐요, 다들 그래도 너무 잘먹고 잘마시고 사업열정만 높더구만. 한국같으면 데모가 일어도 열두번 더 나겠는데…》   《후--, 글쎄요… 하긴 초상인자사업을 적극 추진하고있으니 가불간 해결이 되겠죠뭐. 주기가 좀 길어 그렇겠지만… 아니, 이런 정치는 명길씨가 더 잘 알고있으니 구태여 말말고요. 우리 술이나 마셔요.》   《그러기요, 술이나 하지!…》   당지산《왕중왕》소주 한병 청했고, 컵에 반씩 갈라붓자 그녀가 킥, 했다. 자기의 술량은 명길이가 안다고, 무엇을 위해 들것인가? 여기 습관대로면 제목을 항상 들어 건배를 하는 법이다. 만남을 위해서? 아니면?… 명길이가 입을 뗐다.   《요즈음 나도는 술제목을 알아요?… 세금액을 올려 로임을 타기 위해서라도 을 마시자! 자자, 로임이 없다고 이야 없을소냐… 위하여!…》   《꼴꼴, 위하여!…》   잔과 잔이 열심히 부딪치였고, 불고기가 재글재글 굽혀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명길이는 이상한 감동에 야릇이 젖어들었다. 초련(初戀)의 련인 오경희, 결혼까지 할번했던 그녀이다. 실쭉, 한번 웃고 자기의 동그란 어깨를 왼손으로 내리쓰다듬는 거기에는 어떤 숨결이 있다. 녹지근히 타는 그런 숨결… 둘은 약속이나 한듯 말없이 술대결만 해나갔었고, 그녀와 결혼했더라면? 명길이는 생각한다. 그럴것이다. 지금의 안해처럼 밥상 깔금히 차려놓고 전화를 넣지 않으면 밤 여덟시고 열시고 기다릴 그런 멍청은 없을것이고 식사 끝난녘에는 따뜻한 보리차나 커피 끓여 올리받치고 피곤해하면 머리도 씻어주고 발도 씻어주고… 그런 순(淳)마디들도 보기 드물거고, 그러나 아니,《그러나》가 잘못인지 모른다. 그와 그녀 사이 응당《그러나》가 없어야 했었다. 하지만 그는 두달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찾아주고 만드는 기회와 장소에서 슬금슬금 비정(非情)을 불태워왔었다. 그는 그녀의 그 둥근 엉뎅이와 만월처럼 부푼 젖가슴, 그리고 끈질긴 배설의 유혹을 도무지 밀어낼수 없을것 같았다.   《이봐, 이러면 어쩔 참이요? 애당초… 나와 결혼할것이지그래, 웃기잖아, 지금?…》   《나만 웃기나요. 자기도 그러면서… 그렇게 좋고 좋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좋고 좋으면?… 명길이는 M시에서도 꽤 유명한 림업목재제품공장과 웨일딩얼음과자공장을 경영하는 윤사장 생각을 했다. 그녀는 자기보다 십년 년상인 윤사장과 성공적인 결혼을 했었다고 봐야 할것이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것인가? 아무튼 윤사장과도 그만큼 정분을 나누고있는 그로서는 그녀와의 관계를 더는 감당하기 어려웠었고 그래서 끓은것이였는데… 누가 남자와 녀자 사이는 칼로 물베기라 했던가? 그런 유혹이 있다면 악마의 유혹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형님은… 그래 잘 보내고있소?》   《잘… 보내는가구요?… 그럼요. 그이사 항상… 요사이 새제품 개발한다 어쩐다 눈코뜰사이 없이 보내는데…》   명길이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입만 벙긋하고말았다. 윤사장이 자기와 손잡고 한번 실체를 꾸려보자 했을 때 선뜻 나서지 못했던 후회, 지금까지 끈끈하니 감질거리는 그 후회를 생각한다. 하긴 명분이 돈이면 그만인 세상에 호주머니가 홀쭉해서, 그것도 로임도 받지 못하고 카메라를 메고 세상앞에 나와 우쭐거려본다?!… 그것이 희생정신이면 또 무슨 희생정신인가고, 자주 자기를 웃었었다.   미식성《부산항구노래방》으로 자리바꿈을 한것은 그로부터 한시간후이다. 물론 그녀네 노래방이였고, 그녀는 노래서비스업으로 불경기인 M시에서도 기적일만큼 호황을 누리고있었다. 장식, 설비, 서비스가 최만이여서 그런것도 아니고, 일종의 거품문화를 잘 료리해갈줄 아는 그녀이기때문이다.   자기 주머니 터는치들은 이십프로도 못되고, KTV를 하는 한족지구에서는 이런 호황을 잡을수 없다는 일가견까지 덧붙이는 그녀이다.   잠간 몸을 빼더니, 그녀가 명길이앞에 눈부시게 나타났다. 소매없는 몸에 착 붙는 원피스를 갈아입어서 흰빛이 린빛에 비치여 눈덩이같이 야했었다. TV는 화면 빤히 펼치고, 어서 선곡해주십오! 하고 전주 은은히 울리고, 그녀와 함께 마이크를 잡을 때 그는 잠간 숨을 들이그었다. 그렇게 길들여지게 되는 하나의 공간과 빛과 절주와 음절과… 그리고 녀인, 인간의 생명의식과 눈화의식이 서로를 갈구하게끔 묘하게 만들어진 곳이 KTV의 리듬이 아닐가. 그녀가 그의 앞으로 미미히 웃으면서 다가오고, 그녀는 천사가 아니다. 어떤 욕정일가?… 금시 살냄새 그윽한 그녀의 입술이 차고 따뜻하게 그의 볼에 와닿았다. 명길이는 무심결에 그녀의 목을 감아 자기의 무릎아래로 그녀의 몸뚱아리를 무너뜨렸다. 깊숙이 패인 계곡아래 꿈틀거리는 욕망이 으스름한 빛에 봉긋이, 아칠한 비명 지르고있었다.   이윽고 둘은 곡만 틀어놓고 점잖히 붙어 돌아갔다. 이러는 자신이 뭔가고, 명길이는 전의 물음을 다시 묻는다. 그녀에게 자신이 선정받았기에? 아니면 자기가 그녀를 무엇으로 선정했기에?…   《이봐, 감각따라 간다는 말이 있지? 꽃이 피면 꽃길로 락엽지면 산길로, 우리가 가는 길에 지금 꽃이 있을가 락엽이 있을가 응?… 그냥 서로들… 이렇게 애인할것인가?…》   《나도… 모르겠어요…》   《글쎄, 그렇겠지?… 이러다 어느날 당신은 또 나의 곁을 떠나고… 그때믄 나는 문이 되는거야! 일정한 과정이 있는 문, 그 문을 나서면 오경희는 지금의 오경희가 아니겠지! 더 풀어지고, 자유로와지고… 그다음은 어떤 녀자가 될지 모르지만… 그러찮아요?》   《제가 문이 되는 날에는요? 쯧, 됐어요. 심각한건 싫으니까, 오늘 오라 하신것은 여러가지로 여쭐 말도 있고 해서… 단위 바꿀 생각 없어요? 공상국이나 세무국 같은데… 세무국의 정과장 알지요?… 네, 네, 생회라면 기딱차게 잘 드시는, 우리 노래방도 그분의 특수배려를 받고있거든요. 불경기라도 일숙(一宿) 천오백, 경기가 좀 괜찮으면 삼사천 올리기에는 문제없어요. 돈과 사람 잘 주물러야 큰 일 해먹는 세월이 아니얘요?…》   말에 야릇한 냄새 풍긴다고 그는 생각했다. 돈이야기는 그렇게 꺼내는것이 아닌데… 그녀의 말이 진정일수도 있잖은가.   《헛, 카메라 들던 사람이 이 나이에 그런데 들어가서 뭘 해요? 선전란이나 책임지고… 헛!》   하면서 명길이는 안해 명언을 생각한다. 종이공장이 부도날것 뻔한데도,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이 기발을 지키련다! 하고 똥고집을 하며 사업단위 바꿀념을 안한다.《지금같은 M시 상황에서는 말이예요, 그래도 사업단위가 좋아야 해요… 정과장네만 봐도 공상국에 있는 녀자가 한채 정과장이 또 한채, 해서 집을 두채씩 가졌어요. 그리고 어디 아침 빼놓고 부부가 코맞댈 때가 있는줄 알아요, 매일 술이거든요. 하나밖에 없는 애까지 친정에서 기르게 하고있어요. 굶긴다고. 그러고는 주말저녁이면 감정교류한다며 매일 노래방 찾아다녀요… 호, M시에서 살자면 그래 단위가 좋아야지 않겠어요?…》   《글쎄… 생각해보기요, 아직은… 고맙소.》   《본인이 딱 싫으면 방법이 없는거구. 건데 왜 발길 딱 끊어요?… 보고싶어도… 호, 제하고 틀린 일이 있나요? 광고라도 한번 낼가 했는데…》   《틀린 일은 뭘… 하는 일 없이 바쁘다니까 그래요.》   피씩, 웃으면서 그는 손가락끝으로 그녀의 허리 단단히 걸었다. 가득 부푼 숨결이 낚시에 물린 고기처럼 왕창, 육감을 불러왔다.   《오늘저녁… 택시를 내서 Z시로 들어가요. 하루밤… 같이 있고싶어요. 네?》   명길이는 고개를 꺄웃했다. 다음번에요, 하고 무망간에 결단내리고 마음을 굳히였다. 그 서슬에 무던한 얼굴 하나, 어찌봐도 그녀와 잘 어울어질것 같지 않은 윤사장의 네모난 얼굴이 피끗 스친다. 때론 사리 전혀 먹혀들지 않은것 그것이 그녀의 맹점이라 할가?   《아--이참, 집사람때문에?… 나 질투나네요. 매일 저녁 안고 자면서 그렇게 깨가 쏟아져요?… 할수 있나, 그럼 다음번에 꼭… 알았죠?》   하고 다짐 단단히 받는 그녀이다.   돌아갈 때 오경희는 그에게 준비해둔 봉투를, 광고비를 내고 나머지는 사례금삼아 쓰라고 돈봉투를 넘겨주었다. 명목을 만들어 다문 얼마라도 돕자는 그런 맘이였고, 혹 그의 자존심 상할가 저어하는 구김살도 엿보인다. 맹한 녀자는 어쩔수 없다고 한탄하면서도 그는 야릇한 표정으로 그 봉투를 챙겨넣었다.     어떤 한낮    전화를 끊고나니 웬 이상한 눈길이 그의 뒤통수에 구멍을 뚫어놓은것 같은 느낌을 명길이는 받았다. 쟁반에 사과를 깎아 챙겨들고 오던 안해이다. 그건 며칠전부터 생긴 이상이다. 무얼 묻자고, 무얼 이야기 나누자고 아니면 무얼 후딱, 까밝히려 하는것 같은 눈길, 그건 그녀의 눈길이 아니였음에도 그런 눈길이다.   《한실에 있는 박기자한테서 온 전화요… 친구도움 주었다고 그 친구가 술 한잔 사겠다는 모양이요.》   《도움이라니요?…》   《학교에서… 제명당한 교원이 있소. 박기자의 딱친구이지, 그러니 돈을 벌어야 살게 아니요? 대부금을 내주었소. 큰것은 못하고, 상점이라도 자그맣게 하나 꾸리라 했소. 간단한 술상도 차릴수 있고 볶음채도 장만할수 있는, 로처녀가 부모없이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남동생까지 데리고있는데… 정상이 너무 불쌍해서…》   《그 녀자… 실험소학교의 김선월이라는 녀자겠군요.》   《당신이 어떻게?…》   《시정부를 들었다놓은 녀자 누구 모른다구요, 유명해졌는데…》   유명해져?… 차탁에 과일쟁반 내려놓고 웃을듯말듯 돌아지더니 그녀는 남편앞에서 스스럼없이 긴치마 내리깠다. 짧은 스카트를 바꾸어입을 작정을 한 모양, 밝은 해빛이 따뜻이 비쳐드는 그 한낮의 졸음을 왕창 깨면서 그녀의 풋풋한 살내음이 실안에 그윽그윽 차오른다. 까닭없이 지치고 찌든 몸이 후끈한것은 일종의 충동이였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토실토실한 그녀의 손목을 훌 나꾸어챘다. 딴딴하고 알맞춤하니 벌어진 그녀의 엉뎅이가 흐늘거리는 그의 허벅에 쿡 박혀왔다. 그런 순간, 밖의 가로수 느티나무들에서 난데없는 매미들의 울음소리 들리고 차들의 경적소리, 길가의 발자국소리, 말소리, 이웃집에서 무엇인가 뚝딱이는 소리들이 찌는듯한 무더위속에서 하얗게 바래지고, 녀자의 불라우스, 치마, 브래지어, 팬티 등속이 이내 꽃잎처럼 여기저기 흩뿌려지고, 그녀는 욕기 하나로 바닥우에 질퍽하게 퍼드러져있고.   《아이 이게 무슨… 누가 오면 어쩔려구 그래요. 대낮에, 문도 잠그지 않고 쯧쯧…》   《오긴 누가 온다고 그래…》   《미쳤어요. 당신… 요사이 참 별일이다싶더니…》   미쳐? 별일이다?… 그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한다. 으흐흐… 했다. 무지는 작아도 살결이 맑고 오골오골한 녀자, 그렇게 그득 안아주면 금시 신음이 터지고마는 녀자, 젖꼭지에 혀를 감아물면 아직도 처녀인가, 몸을 꼬며 부끄러움을 타는 녀자…   《당신 참…》   안해는 긴장을 탁 풀고 후줄근히 퍼드리고있는 그의 등을 쓰다듬어 준다. 나이 들었다는 생각이다. 안해나 물고 빨고 보다듬어주고, 세상의 섭리로써 바같세상과 모나지 않게 삶의 스스로움 구사해야겠다는 느낌이 먹혀든다. 그러다 김선월이라는 녀자 우렷이 떠오르고, 그는 고개를 조끔씩 흔든다.   《아이 당신… 뭘 생각하는데요. 참, 뒤뜰에 분꽃 핀것 봤어요? 시골집뜨락같이 얼마 좋은데요!…》   봄에 뒤뜰에 손바닥만한 땅이 나졌기에 목란꽃이나 심으라 했더니… 안해의 맘에 그런 순박이 가꾸어져있는것이 무척이나 푸근해보인다. 그런 느낌은 김선월이, 그녀를 만나서도 마찬가지였었다. 리(理)와 법(法)    간촐한 술상이, 오다가다 호프집에 들리여 호프 한고뿌 하듯이 부담없이 차려졌고, 그래 다가앉으니 넉넉하고 편해지는 마음이다. 말없이 하나의 기분에 차분히 젖어 웃음 느긋이 물고는, 마른 명태, 오징어 서너마리씩 찢어올리고 땅콩, 뉴티질(소힘줄) 네댓봉지씩 올려놓고 손수 한것 같은 김치도 한접시 썰어 선보이고, 맥주 네병을 식탁우에 올리면서 그녀는 자리를 찾아 앉는다.   직업이 직업이여서 그렇고 속에 스트레스 쌓이여 그렇고, 옆구리 동통 재발신호가 가끔 쿡쿡 찌르나 명길이는 새로 사귄 친구를 봐서라도 마셔야 할것 같았다. 그는 맥주를 젖혀놓고 맛들이고 감정까지 푹 들인《왕중왕》을 찾았다. M시 사람들은《왕》이 아니면 아니이다.   《그래요. 저도 소주로 하고싶은데… 다들 로임 못탄다고 아우성치는데, 우리 술은 우리가 아껴야죠. 우리 기자님은 뭘로 할래, 응?》   《허, 얘는… 일주일 장사를 하더니 막 변했어, 응? 하긴 네 말이 옳다. 은 같이 가져야 한다더라. 나도 소주로…》   《조 입, 저걸… 쯧쯧.》   해서 셋은 시원히들 웃고, 이내 잔들이 쟁그랑,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생각밖에 주인은 소주를 잘 마셨다. 박기자는 몇잔 못넘기고 벌써 골골 하는데 그녀는 한본새로 잔을 내고 담담히 웃는다. 두 볼이 더 희여만 갔다. 얘는, 얘는 글은 가르치지 않고 술 마시는 련습만 했느냐고 박기자가 이내 께껴들었고,   《…얘, 우리 주임님 좀 살리거라 응? 고것만 하고 그만둬요. 기분난다면 정신없이 쯧쯧…》해서, 선월이 그녀가 킥킥거렸다. 한실, 상하급 사이좋은 관계이니 보호는 해야지만 너무 그렇게 간섭을 하고 나서니 별나게 보일것이다. 새로 사귄 녀자친구가 은근히 좋아보였고 그래서 술이 더 당긴다.   첫대면에 그렇게 안겨오는 그녀였다. 정지문을 반쯤 열고, 누구니? 하고 눈을 비비는 처녀, 잠옷 그대로 머리 잔뜩 헝클어져서 식곤(?)이기지 못하는 녀자… 혹…, 안겨오는 인상은, 얼굴의 선들은 가늘고 섬세하고, 앞가슴 팔다리가 풍만하지는 못해도 몸매가 잘 빠지였다는것, 그리고 하나의 기질이 엿보이였다. 조용하고 끈진 그런 기질…   시정부를 들었다 놓았다? 피끗 보아서는 모를 소리 같은 녀인이다. 명길이는 깔금하게 거둔 가장집물보다 책궤에 그런대로 촘촘히 박혀있는 책들이 맘에 들었고, 그렇게 훌륭한 필법은 못되나 활달히 갈긴 붓글씨, 두폭의 족자에 시선이 끌리였었다. 사람에게는 무지라는 원쑤밖에 없다― 웃고, 리를 깨뜨리는 법은 있어도 법을 깨뜨리는 리는 없다―? 두번째 족자에다는 무엇때문에 의문부호를 달았는가?… 마침 박기자가 학자네 집 집 같지요? 해서 시무룩이 웃었던 기억, 많이 가르쳐주세요, 하고 주인이 손을 내미는데 희고 갈주름한 그 손을 잡고, 참 아름답고! 하고 감미에 빠지던 순간들이 다시한번 새김질해오는것 같았다.    셋은 술 한병 굽을 다 냈고, 그러다 선월이가 갑자기 길고 예쁜 목을 빼서 상점밖을 두릿거린다.   《명희니? 한시간후에 오너라 응?》하고는 땅콩 하나 입에 넣다가 그녀는 어색하게 흩어지는 명길이의 시선을 잡고 조금 놀라다가 이내 시무룩이 웃는다. 허, 하고 명길이도 이도저도 아닌 소리를 부지중 했다.   《누구세요, 집의 애?…》   《이 량반, 결혼도 안한 처녀가 애는 웬 애라고 그래요?》   하고 박기자가 곁에서 푹, 웃고.   《불쌍한 애예요. 리혼하고 엄마는 서울로 시집을 갔고 아버지는 일본배를 타고 돈벌러 가서 일흔에 가까운 할머니하고 같이 있어요. 본래 제 반 학생인데… 그래 지도를 해주고있어요. 지력이 좀 차하지요.》   《우리 이 친구는 말이얘요, 들었죠? 이렇게 항상 교육자의 따뜻한 성품 지니고 고있지요. 훗훗.》   《얘는… 손을 내밀어 할수 있는 일은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것이 살아가는 기본도의가 아니겠니? 참!…》   《오― 머, 봐요. 대단하잖아요!》   명길이는 조용하고 찬찬하고 꼼꼼한 그녀가 여간 조련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 족자말이요. 리를 깨뜨리는 법은 있어도 법을 깨뜨리는 리는 없다―에 왜 의문을 달았어요?》   《오― 머, 기자소주임이 그것도 몰라요? 많은 경우, 리는 있어도 법을 어쩔수 없는게 안얘요? 이를테면 김선월이의 경우, 리(理)는 닫는데 우리가 TV로 선양하는 법은 어쩔수 없었지요. 그것은 리의 비애일가? 그래서 의문으로 비분을 나타낸것이지요. 옳지, 선월이?》     《그런겁니까?》   《얘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구… 처음엔 누구의 말인지 몰라서 달았고, 후에는 생각해보니 리와 법의 리치는 그렇고 그러찮은가 해서 잘 달았다싶기도 하구… 그런거죠 뭐.》   그녀가 참말을 해서 박기자는, 얘가, 얘가… 친구망신을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하고 어이없어했고, 명길이는 곧 파안대소를 했다. 건실한 녀친구를 만나서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박기자의 허리춤에서 BP가 삐삐거렸다… 세 녀자      오경희는 수건에다 찬물을 적셔 짜서는 입에다 물었다. 두 녀자도 본을 따고, 세녀자는 수증기가 꽉 들어찬 사우나실문을 뗐다. 쑥내 짙은 실안의 훈기가 금시 벌거벗은 세 녀자의 몸뚱아리를 숨막히게 휩쌌다. 오씨가 걸상 하나를 찾아왔고 두 녀자도 그의 맞은켠 바닥에 퍼드리고 앉는다. 짙은 진짜 쑥탕이다. 셋은 하나 둘, 셈을 하면서 내기를 하고있었다. 오래 견디는 자가 물론 승자, 오씨는 서른둘을 헤고는 숨이 막힐것 같더니 사십을 넘어서는 그런 증상이 차츰 해소되는것 같았다. 오분정도는 무던히 견뎌내는 그녀이다. 쉰을 넘기고보니, 맞은편 키작은 녀자와 키 크고 몸매 잘 빠진 녀자가 서로를 손가락질하면서 고통스레 몸을 비틀고있었다. 그만 나가자고, 그러는듯싶다. 몸매는 작으나 어디나 그렇게 통통하니 잘 여문 녀자, 그곳의 다북쑥도 탐스럽다. 배를 감싼 팔뚝우에 비틀려진 목아래 잘 익은 젖통이 석달된 아기 엄마것만치 돼보인다. 야릇한 심기가 서물서물 가슴결에 일고, 다음은 푹푹, 웃음이 나온다. 명길이의 안해, 그녀를 도와준것이 잘된 일인듯싶다. 그녀네 종이공장이 부도가 났었고, 그 일로 명길이가 골이 아파한다는 말을 키 큰 녀자― 박기자한테서 들은것이다. 일은 잘 풀렸었고, 세무국의 정과장이 힘을 써서 식용경화기름공장으로 단위를 옮길수 있었다. 해서 명길이가 술을 샀었고, 그것이 끝나자 곧바로 사우나에 들린것이다.   오경희는 한 남자와 그의 안해, 그리고 자기와 박기자까지 해서 뭔가 배역을 하고있다는 느낌이 불현듯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배역은 무슨 배역이겠는가마는. 아니, 그녀는 생활이 곧 무대란것 잘 알고있었다. 해서 그녀는 처녀시절부터 자기의 각색 찾기엔 골몰했는지 모른다. 살아가느라면 인간은 여러가지 배역을 감당해야 하고 또 잘해내야 한다고 믿는 그녀였고, 그래서 그 시절에는 초련의 꿈허울 벗어던지고 명길이와 등까지 돌릴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각색 모르는 어떤 미묘한 각색에 빠질줄은 몰랐었다. 지금의 명길이와의 관계가 그런것이다. 옛시절의 미련때문만 아닌, 그런것이 있었다. 도적질하는 년이 없어서보다도 도적질하는 재미가 재미여서 그런것처럼, 그러루한 감질 견디지 못해서일가?… 어느 한 계절까지는 그런 지속속에 적라라하게 빠지게 되여있을줄 아는 예감이다.   박기자와 명길의 안해가 먼저 사우나실을 뛰쳐나갔고 오씨는 이백을 더 세고서야 천천히 그곳을 나섰다. 그리고 모공이 활짝 열린 알몸뚱이를 찬물에 훌훌 잠근다. 우, 시원해! 우―, 시원해! 하면서 뭘 그렇게 찧고 까부는가고 둘한테 묻는다. 박기자가 명길이 안해가 다니던 종이공장일을 묻고있는중이라고 했다. 오씨는 이내 혀를 쯧쯧 찼다.   《잘 빠져나왔지비! 중소기업들이 판로를 찾지 못해 쩔쩔 매는 판국에, 누군들 좋은 단위 찾아 일찍 자리를 뜨자 하지 않겠소?… 그런데 참, 시정부에선 왜 상부에다 보고는 척척 잘 올린다오, 공업산치는 얼마요. 농업산치는 얼마요, 총산치는 몇억을 돌파했소 하고말이요?》   그녀는 다시 분개를 한다.   《다 목을 따야 해?… 흥, 산치가 오를수록 로임은 더 못내주니 이거야말로 고오판(개판)이 아니고 뭐요!…》   은근히 그렇게 자기를 내비치고싶었는지 모르나, 그녀는 대리석판에 알몸뚱이를 쭉 뻗고 눕는다. 군살 하나 없이 텅텅한 몸매가 처녀같다고 명길이 안해가 혀를 찼다. 그리고 셋은 다시 그 일로 입방아를 찧는다. 박기자의 말에 조리가 있었다.   《그건 시정부에서도 말 못할 고뇌가 있어 그런 모양이예요. 금년에 을 하잖고 뭐얘요. 삼년험순데 금년이 마지막 해인것도 알겠지요? 시정부에서는 장원한 타산을 하고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있어요. 교육이 올라서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그래서 학교도 짓고 시설도 개선하고, 지금 학교들이 어디 그전의 학교 같아요. 반마다 텔레비 다 갖추어놓지 그리고 컴퓨터, 언어실험실… 아무튼 굉장해요. 어떤 학교들에서는 교장선생님이 텔레비앞에 나서서 학부형회의 사회까지 하고있어요. 이번 험수는 정부의 힘으로 반드시 관을 넘겨야 해요. 이번에 이렇게 하는것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오년 혹은 십년후이면 더 힘이 든다고, 시민들도 살기 더 애난다고, 단단히들 결심하는것 같아요…》   《저… 그런데 말이예요. 저… 그 험수에 통과하자면 시의 총산치가 얼마 높아요 하고 교원들 로임은 반드시 빚지지 말아야 하고… 뭐, 그런 표준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그러니 거짓말을 하지 않을수 있나요.》   명길이의 안해가 께껴들고, 둘은 조금 덩둘한듯이 한참은 어정쩡해있었다. 살기 올골거리는 허리부위가 부끄러운듯이 조금 탈리고《아니 왜― 그래 봐요?》하고 금방 몸을 옹송거리는 그녀, 수더분한 가정주부형의 인상 순순히 내비치던 그녀한테서 어쩜 그런 말이 나올가 해서였다.   《아아 아니, 내 생각엔… 거짓말을 해서 시민들이 덕 본 일이 없는것 같은데요… 그럼 올해는 이런 일로 거짓보고를 했더면 전에는?… 백성들이 어떻게 살든 관리들은 다 저들의 타산이 있고 그러기에 M시는 간부양성훈련소라잖아요. 주, 성급으로 올라가는 간부들치고 M시에 와서 허울 한번 벗고 도금을 해서 올라가지 않은 간부가 어디 있어요? 경제는 경제대로 발전법칙이 있는데 거짓말만 자꾸 해대니… 그래 악성순환이 생기지 않을수 있어요? 악성순환!…》   《그러게 말이얘요. 모든것 교육에 미는것부터 잘못이고요… 빈곤현시가 되여서도 상급에 잘 보일려고만 하고… 백성들이 어찌 살라고 그러는지… 의견이 없을수 있어요?》   오씨의 말을 명길이의 안해가 받고, 박기자가 두 녀자의 표정 번갈아보다 푹, 웃으면서 곧 손을 내젖는다.   《노, 노… 그만들 해요. 모두들 그저 정치가들이군요. 아마 M시 정치는 우리같은 녀자들이 해야 제꼴이 잡힐런지… 꼴꼴.》   세 녀자는 한바탕 웃고, 비누칠을 열심히들 해나갔다. 로임 못한다 어쩐다 해도 굶지는 않는 세월이니 혁명사업까지 할것은 없고, 박기자가 오경희를 간질군다.   《언니 노래방 가요. 양고기 뀀은 내가 낼게 응?…》   《암, 그야 더 말할나위 있소. 류수같은 세월 노래나 술로나 달래볼가. 오늘저녁 스케줄은 내가 잡을테니 따라만 와요.》   오경희는 찬물을 소랭이로 받아 제 몸에 왈칵 들씌운다. 그리고는 명길의 안해를 돌아보면서 히죽이 웃었다. 그런 밤      그런 말이 그녀에게 억수로 쏟아질적은 언제나 새벽 두시쯤이다. 손님들은 갈것은 가고 거리에도 인적이 끊어지고, 그러나 그런 부류의 손님들도 있다. 이미 깊은 밤, 아니 이튿날 꼭두새벽이지만 그녀는 낮과 밤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밤과 낮 사이에 기인 그런 류의 손님들을 마지막까지 보살펴야 한다. 술에 취한 손님 잠자리 잡아주기, 외로움에 젖은 손님 아가씨 찾아주기, 소힘줄처럼 질긴 손님 스트레스 받아주기… 손님 남김없이 보내고 영업액점검 깨끗이 하고, 그제야 자기의 밤으로 돌아가는 그녀이다. 두시를 넘기면 너무 바쁘다. 낮과 밤 틈사리에 끼인것 같은 사유가 자꾸 삐여져나가고, 때로는 자기가 꿈속을 떠다니고있다는 착각이 일 때도 있다. 한번은 손님도 거의 가고, 프론트에 서서 끄덕거리다 다시한번 자기의 그런 밤으로 빠지고 있었다. 그녀는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고 버튼을 눌러 익숙한 아라비아수자를 찾았고, 신호음은 재빨리 어느 한 공간으로 빠져나가서는 삐르륵삐륵 부산을 떨었었다. 그 남자의 안해가 받았었고, 누군가고 물었었다. 잠기 뚝뚝 떨어지는 소리, 해서 그녀도 누군가고 묻는다. 잠꼬대같은 그런 소리로, 별난 사람 다 봤네. 이 오밤중에 전화질을, 하면서 전화 찰칵 끊는다. 그제야 그 남자의 이름을 번지면서 잠에서 후딱 깨여났었다. 그 녀자가 그 남자의 안해란 의식이 피뜩 살아난것이였을가.   이튿날 오경희는 명길이한테 전화를 해서 그 일을 물었었다. 별난 녀자 다 있다. 이게 어느때인가, 아마 그런 녀자인가보다 하고 구시렁거리더라면서 껄껄거렸었다. 얼마만큼은 무심해진 나날들, 그러나 그런 밤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고 해서 불편한 심기 걷잡기 어렵기도 했다. 명길이 그 남자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하나의 과정을 겪는것일거고, 명길이란 남자의 문을 넘어서야 무엇인가 명백해질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들기도 한다. 그녀는 잠자리에 들면 팬티 하나, 브래지어까지 벗어던지고 몸을 꼬면서 이불안고 자는 버릇이 있다. 흰다리와 엉뎅이, 젖무덤이 그렇게 편한 모양은 너무 적라라한것이고, 가끔은 남편한테 꾸지람을 듣지만 도저히 그 잠버릇 하나는 바로잡지 못하는 그녀이다. 시무룩해서 남편이 툭 하는것처럼 자기는 피가 뜨거운 녀자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튿날 새벽 두세시부터 11시까지, 열두시 반부터 세시까지는 어김없는 그녀의 밤이다. 언제부터인가 오경희는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었고, 둘은 말없이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편한 기색 내보이기 시작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낮시간 쪼개면서 팽이질을 했고 그녀는 그녀대로 밤을 유혹해서 돈을 벌어야 했으니 윤사장은 그녀가 노래방에서 자고오는것을 탓하지 않았었다. 그녀는 절대 막 번지는 녀자도 아니고, 그러니 윤사정도 안심이 가는 모양이다.   《이봐요 경희, 윤사장 그 사람 나보다 나은데 뭐 있지 응? 학력, 출신, 가정배경?… 오, 그래, 하나는 나보다 낮지, 그 남자를 따르면 굶을 걱정은 없을거니말이야. 자기보다 십여년씩 년상인 남자… 그 시간이면 나는 뭘 해야 되는걸가?》하고 열을 내던 그날 밤의 남자, 그녀는 지금까지도 그 밤을 후회하지 않는다. 생활에서 그녀는 자신의 배역 찾기에 조금도 감정 흔들리지 않았었다. 주머니에서 맘대로 꺼내 쓰고싶은대로 쓰고, 남보다 화끈하게 살고싶은것이 그녀의 소원인지 모른다. 주머니가 깡깡 말라 한늬 로임으로, 지금같으면 언제 너는 세월에 나올지 모를 코묻은 돈 같은것으로 목을 매고 살수 없는 그녀이다. 노래방을 꾸리고 그 계렬로 다방까지 하면서 그녀는 짧은 시일내에 생각밖의 돈을 벌었고 그래서 남편을 고맙게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날이던가, 일이 있어 남편의 사무실로 찾아가니 남편과 어디에서 온지 모를 아가씨가 재미있게 나누고있었고, 들어서면서 훅, 안겨오는 냄새는 끈적끈적한것이 있었고 다음은 자기 없이 수없이 보낸 남편의 밤들이 의심스러워나는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뒤를 밟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또 어느날이던가, 그렇게 뒤틀리였던 심기가 느슨해진 뒤 남자가 문득 찾아왔었다. 버렸던 남자, 정장에 넥타이 받쳐매고 젊음이 눈부셔가지고 눈앞에 나타났었다. 그녀네 커피점에 노래방에 들리였다 갔었다. 돌아가면서 남자는 웃었고 남모르게 입술을 감빨았었고 피뜩 눈길 하나 던지고 갔었다. 그 입술에는 그 남자만의 스릴이 있었다. 그것은 외로운 불이였고, 그렇지만은 어울어질수 없는 불이였다. 그러니 유혹의 불을 누가 막을수 있을가?   그날도 그런 밤이였다. 아니 벌써 오전 열시가 넘었었고 해빛이 카텐에 너불너불 달아오르고있었다. 핸드폰이 꿈결에 귀뚜라미소리를 내고 그녀는 어김없이 그 소리에 깨여난다.   《여보세요… 제 오경흰데요…》   《응, 나임다. 박순금이, 뭐 아직도 자고있어요? 야― 팔자 하나 좋네.》   《으―응, 순금― 이? 난 또… 우리사 박쥐처럼 밤에만 활동하는게 아니고 뭐니, 그래 무슨 일이지?》   그녀는 벌써 잠을 깨고있었다. 팅팅한 젖가슴을 내놓고 부시시 일어나 앉으면서.   《뭐 손님?… 응. 모셔와요. 팁은 알아서 섭섭하지 않게 해결해줄테니… 기자들도 이런 때 좀 벌어야지!…》   《그럼 약속해요. 한국 부산서 관광단이 온다는데… 말이 관광이지 투자환경고찰 오는 분들이 많이 섞여있는 모양이야요. 배불뚝이 사장님들 잘 모시고 서비스 잘해드리라는 시정부 유관부문의 지시가 있거든… 그리고 중앙교육국에서도 검사단을 조직해서 다음달초순에 올 모양이얘요. 온통 비상에 걸렸어요. 시정부에선, 그때 일 보면서 련락할게, 팁 많이 줘요! 호호호…》   《우― 그러지, 좋을대로! 참, 그런데 가난해빠진 현성에 검사는 무슨 썩어빠진 검사라우 응? 쯧쯧…》   그녀는 핸드폰을 닫고 곧 언더셔츠를 입고 머리정리를 하고, 무언가 깜박 잊은듯이 핸드폰을 다시 펼쳐든다.   《네, 웨이딩얼음과자공장입니다. 전 윤경… 어, 당신이 어쩐 일이지? 일어났소? 아침두 먹구?…》   부형의 손길 같은 따뜻한 온기가 바람처럼 귀에 소르르 젖어오고, 그러나 그런 관습적인 음성에 이마살이 찡그러지는것을 어쩔수 없다.   《저… 한번 왔다가겠어요. 잠간만!…》   《일이 바쁜데 왜 응?…》   《이봐요… 자기 제가 굶고있다는것 알기나 해요?》   젖가슴 만져지며 불쑥 튕겨나온 말이였다. 공연히 성이 왈칵 난다.   《아니 어디 아프오? 굶다니?…》   《아이참 됐어요. 눈치 하나 무디긴!… 당신 얼음과자나 꼬장꼬장 만들도록 하세요!…》오경희는 핸드폰 찰깍 포갠다. 침대로 돌아가 부서지듯 무너지는 그녀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홍건히 고이고있었다. 남편한테 성나기는 처음이였고, 한참은 멍청해있다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런 밤으로 다시 빠져들기 시작한것이다. 그 남자와 그 녀자       네모난 공간속에 침대 둘과 침대우의 두 남자, 그리고 팬티 하나 달랑 입은 두 남자를 타고 앉아있는 두 녀자, 스무나문살쯤 된 아가씨들일가. 단단하고 탐스런 젖무덤이, 팥알같은 젖꼭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소매없는 런닝샤쯔만 입고 미니치마바람으로 두 남자를 가랭이에 끼고 혈을 주무르고있는 안마 아가씨들이다. 혈부위 꼭꼭 눌리우며 아픔끝에 시원히 이어지는 감각들… 어쩔수 없는 기분에 푹 젖어드는 명길이였다. 사우나 끝내고 이렇게 아가씨들에게 눌리우면서 안마를 해보기는 처음이였고, 그 남자와 이어지는 한 녀자의 기분이 이곳에도 서려있는것만 같아 어색했었다. 몸의 신경이 그래서 잘 풀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봐요 아가씨, 손아귀에 힘을 바짝 넣어요. 좀 더, 뼈마디가 쑤셔나게 주물러야 안마가 제대로 될것 아니요… 자, 이쪽 어깨 혈을, 옳소. 이제 제대로구만. 김주임은 어떻소, 그 아가씨 제대로 주무르는가 응?… 그저 위험부위만 빼놓고 싹 해달라 하오 양? 껄껄…》     《네, 이 아가씬 솜씨가 정말 보통이 아닌데요. 어, 그래― 아가씨 묘령이 얼마지?》   하고 명길이는 윤사장의 말을 이렇게 데쳐넘기면서 슬쩍 말머리를 틀었다. 혈이 눌릴 때마다 배살과 갈비뼈에 닿일듯한 엉치와 탄탄한 허벅의 부드러운 장단, 그건 말대로라도 좋다는 신호일가… 하지만 그는 그 남자앞에서는 그러는 자기를 보여주고싶지 않았다. 대범해보이고싶었다.   《아니 이 아저씨 봐! 훗훗, 누가 이런 장소에서 그런것 묻는데요. 열여덟 꽃분이가 아니면 스물하나 이쁜인걸 몰라요?…》   《미안, 미안…》   《괜찮아요, 제가 양보해드릴테니… 아저씬 싱글로 가실수도 있는데… 저 애와 나는 안마배울적부터 짝패가 되여 하길 약속했든요. 방선 허물만은 허물지 않기로… 이상해나나요?》   《아 아니… 꽃바람속에 홍도야, 하더니 훌륭해요 참!…》   《아니 홍도라니? 이 아저씬 말은 이래도 엉큼한 구석이 있는것 같은데… 그죠 윤사장님?》   하고 저쪽 아가씨가 참견하여 넷은 시원히들 웃고, 금방 어색한 분위기들이 가셔졌다. 명길이는 더는 안마아가씨들과 입씨름 않기로 했다. 윤사장이 안마까지 시켜줄 때는 무엇인가 있는것 같은데… 절대 산품광고 낮은 가격에 떨구어준 원인만은 아닌듯싶다. 도적이 발 저린다고 혹시?… 아닐것이다. 애당초 그녀와의 그런 관계를 모를것이고 언제까지나 몰라야 할것이다. 어쩌면 순박한 안해를 두고 그러는 자신이 너무너무 정신나가보인다. 왜, 왜서? 마약같이 박힌 인, 그런 인이 어디서 올가?… 그 남자가 입을 뗐다. 하자고 한 말인듯싶다.   《리사장 알지? 서라벌다방, 그 한국사장말이요… 공안국이나 소방대에 아는 사람이 있겠지 응?》   《아니, 왜요?…》   《그 량반, 허― 이곳에 와서 진짜 인생수업 쌓고있는 모양일세그려. 서라벌다방 문닫은것 아오?》   《네, 피끗 듣기는 했는데… 소방대에서 와서 안전시설이 차하다고 봉했다면서요?…》     《글쎄, 2층은 송목으로 깔았으니 화제발생 위험이 없는것은 아니나… 그럼 왜 처음엔 영업허가를 내주고 지금에 와서는 이래라 저래라 한다오?…》   《그건 그렇게 된 모양이더군요. 공안계통의 친구들 몇이 커피 마시러 갔다 나오면서 주머니에 돈이 없어 외상놀음하자고 신분까지 밝혔더니 마담이 기어코 돈을 내고 가라고 했다면서요?》   《웃기는 노릇 아니고 뭐요. 커피값이 없어 돈을 내지 않겠소? 치사한 일이지, 치사해요! 누가 돈 버는가싶으면 그저 생으로 먹으려고 드니 장사를 어떻게 해요. 외자유치… 항상 그러면서도 투자환경 개선은 못하고 이미 사업하고있는 사람들마저 잡으려 드니… 그러고 외자유치를 어떻게 하지?》   《글쎄요, 한국 사기군들이 많기도 하지만 리사장은 괜찮은 분같은데… 리사장이 하고있는 가죽신제품도 수출판로가 좋은 모양이더군요…》   그때 명길이의 배를 타고앉았던 아가씨가 참견했다.   《듣는 말에 의하면 공안국에 있는 그분이 소방대 대장한테 전화를 한거래요. 안전시설 인정서를 회수해들이라고, 쪽박 차고 두만강 건너 이까지 쫓아와서 이제 요만큼이라도 살만하니 한국 놈들이 또 와서 돈을 긁어가려 해?…, 이러던데요.》   《아니, 아가씬 어떻게 알아?》   《소방대에 있는 량반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그저 망나니들만 온다구, 한국에서는 살수 없으니까 이곳에 와서 사기쳐갈라 한다구… 정말 그런 사람도 많잖아요?》   《응? 허허, 많지! 그래도 많은것보다는… 허허.》   그는 애매한 뒤말을 사리고 명길이도 따라서 쓴 웃음을 피씩거렸다. 들어오너라, 들어오너라, 잘해줄게 오너라. 해놓고는 일단 오기만 하면 옷을 홀딱 벗겨 아가씨들처럼 깔고앉아서 꼼짝 못하게 하는것 같은 그런 기분이 되고마는 자기이다. 무엇이든 법으로 되여있지 못하고 법으로 되여있다손쳐도 탈을 잡아 다시 그 법으로 덮어씌우는, 명길이는 선월이네 집의 족자생각이 불현듯 났다. 법을 깨드리는 리는 없다 했으니… 리사장의 리는 어디에 가서 해본단말인가.   《김주임, 김주임은 발도 넓고 하니 한번 어떻게 해보오. 주관시장을 찾아가도 아래가 먹혀들지 않는다구, 참 별난 세상이라고 리사장은 탄식을 하고있소. 그 량반과 앞으로 합자기업을 하나 세울가 생각하고 있는데…》   《네… 한번 힘써보지요. 소방대 대장이 제 친구니… 되겠지요 뭐.》   명길이는 대답 한 시원히 꼭지 떼주었다. 그런 일쯤이라면… 혹, 다른 무엇이 또 있는것이 아닐가? 그만한 일이라면 윤사장의 능력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을것 같은데… 마치 대방이 일부러 자기한테 어떤 기회를 만들어주고있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신경과민일가?   안마를 하고 쏘파에 앉자 보스부인이 손수 커피를 두잔 풀어서 그들앞에 가져왔다. 늘 오경희신세를 진다고 여러번 곱씹었다. 젊고 예쁘고 손님 척척 끌어들이는데는 누구도 감당 못한다고, 조금은 부산스러웠고 그렇게 수다를 떨다 얌전하게 물러가는것이였다.   《이보게, 이렇게 반말한다 나삐 생각말게나. 어째 놀러오지 않지 응? 우리 집에서는 그래도 광고를 잘해서 영업이 잘된다고 곱씹는데…》   《네, 뭐 별일없이 얼마나 바쁜지… 그러찮아도 노래방신세를 자주 지고있는데 뭐…》     《암, 사람사는게 다 그렇고 그런거지, 그래야지!》   윤사장도 고개를 가로젓다 끄덕인다. 뭔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데 번져지지 않으니 고개짓이 잘되지 않은것처럼. 무슨 말을 하자고 그럴가? 광고비랍시고 스무장이나 찔러준 오경희 소행이 생각났었고, 광고비 내고 나머지 열두장을 선월이한테 꾸어준답시고 주던 생각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계속해...  
1    박꽃 (리동렬) 댓글:  조회:2721  추천:1  2011-08-08
박꽃  리동렬     모였던 아낙네들이 하나, 둘 흩어져갔다. 모두 그저 눈물을 흘리고 한숨만 자꾸 쉬며 위로의 말을 하다가 연복이가 애에게 젖을 물리고 벽에 기댄채 눈을 반달같이 내리깔아서야 자리를 뜨기 시작한것이다. 가뜩이나 통이 좁은 초가집안은 올망졸망 싸놓은 보짐들로 하여 더욱 좁아보였다.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어린애 담요가 그녀의 무릎에서 흘러내려 방 반을 덮고있었다. 천정우에서 팥알만한 거미 한마리가 그녀의 머리우에 은실을 드리우고 데롱데롱 그네를 타면서 내리고있었다. 사람들의 발자국에 휘말려오른 흙내가 꽉 들어찬 공칸 한구석에는 복슬강아지가 옹송그리고 누워 잠에 빠졌다가 가담가담 끙끙거린다. 아직은 사람의 땀내와 온기가 가시지 않은 방안이라지만 어딘가 썰렁한데가 있다.   은숙이의 촘촘한 속눈섭에는 어느덧 이슬이 맺혀있었다. 흰목을 빼서 왼쪽어깨에 살그머니 싣고 까칠까칠해진 입술을 반쯤 벌리고 코소리를 쌔근쌔근 내는 동무 연복이의 처지가 눈물겨웁도록 가긍해보였던것이다. 어쩌면 불행이란 전문 연약하고 마음씨 곱고 착한 녀자들한테만 붙어다니는것만 같았다. 이제 래일이면 그는 삼년을 이웃하고 친자매처럼 아기자기 지내던 연복이와 갈라지게 된다. 그녀는 이제 두돐을 좀 넘긴 애를 데리고 영영 이 집을 떠나고말것이다. 그녀는 새각시 꿈을 신록인양 곱게 키우던 제 보금자리를 털어버리고 떠나게 된다. 그녀는 정녕 그 길을 걸어야 했다. 한번 외곬으로 빠지기 시작한 사내의 고집을 그녀로서는 어쩔수가 없었다.   은숙이는 보따리들을 한곳에 모두기도 하고 옷가지들을 치우기도 하면서 방안거둠질을 하였다. 그리고는 창문을 닫고 창가에 다가섰다.   밖은 눈같이 흰 달빛이 그득그득 부풀고있었다. 사위는 잠나락에 빠져 고요하고 뜨락 어디선가 꽃향기가 물큰물큰 풍겨왔다.   은숙이의 눈길은 등산같이 우중충 막아선, 채마전 건너 새로 지은 벽돌집에 가 멎었다. 두달전만 하여도 저 집의 주인은 그녀의 동무 연복이였다. 낮이면 낮마다 저 벽돌집에는 그녀의 남편 문호가 깎고 맞추고 두드려대는 연장소리로 그칠줄 몰랐고 밤이면 밤마다 록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건들진 노래소리속에서 마실군들이 웃고 떠들어대는 소리로 조용할 새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저 집 주인은 왕청같은 남이 되고말았다.   녀인이 녀인을 제일 동정한다는 말이 있다. 사내들이란 마음이 돌같이 차고 굳고 또 돌사태처럼 자신을 걷잡지 못한다. 은숙이는 문호가 얼마나 미운지 몰랐다. 제일처럼 문호한테 미움이 갔다.   연복인 얼마나 착한 각시인가?   …타고장에서 1년 먼저 시집온 그녀는 연복이가 시집올 때 연복의 대반을 섰었다. 버들가지같이 늘씬한 몸매에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부풀게 차려입고 폭포같이 쏟아진 너울을 쓰고 사뿐사뿐 걷는 연복인 하늘의 선녀처럼 아름다왔다.   《아니, 곱기두 해라.》 은숙이가 감탄을 쏟으며 그녀의 섬섬옥수를 살짝 감아쥐며 탄성을 질렀다.   첫날저녁, 오락에 진한 청년들이 하나둘 흩어져 가버리고 은숙이도 일어나려 하자 연복이는 그의 손을 다급히 잡고   《언니 가면 난 어째요?》 하며 두볼이 빨개서 울상을 지었다.   《아니, 안가면 어쩌겠소.》   《제발 절…절 좀더 동무해주세요.》   《아니, 뭐라오?》 은숙이는 웃음보를 터치고야말았다.   《어쩌긴 어쩌겠소? 님 보구 옷고름을 풀어달라 하구 가지런히 누워 사랑을 하문 되지. 호호호…》   《어머―…》 연복이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숨 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참으로 순진하고 재미있는 각시였다.   그날 밤, 은숙이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연복의 말이 생각나서 저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이튿날새벽, 은숙이는 흰앞치마를 깡똥 두르고 버치에 재를 담아들고 나오는 새각시와 맞다들자 슬쩍 물었다.   《엊저녁 잘 지냈소?》   《아니, 뭐…》   연복이는 부끄러워 쩔쩔 매였다.   그런 연분으로 그들은 친자매처럼 다정히 지내왔다. 연복이는 시집올 때 올망졸망한 바가지들을 많이 가져왔었다. 그것을 이웃과 동네분들에게 하나둘씩 나누어주었다. 꼭 눌러도 손톱눈 하나 들어가지 않고 노르무레 빛갈도 고운 바가지를 받아든 아낙네들은 저저마다 새각시에 대한 칭찬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저녁밥을 먹고 설걷이를 끝내고나면 그들은 늘 한자리에 모여앉아 뜨개질하거나 잡담을 벌리군 하였었다.   《장동무를 어떻게 알았어?》   《우리 마을에 목수질하러 와서…그저 그래 알았지뭐.》   《그저 그런게 어떤거지? 련애담 좀 얘기해보렴.》   《아이, 언니두 참…》   그러면 다다. 새각시는 생글생글 웃으며 좀처럼 속마음을 터놓지 않는다. 그래도 은숙이는 요곳조곳 찔러가며 속내를 알아내자고 바등바등 애를 썼다. 연복이는 그 성화에 끝내 못배기고 입을 연다.   《아 글쎄, 뜨락에서 박꽃에 수정을 하고있는데 그이가 와서 물을 청하지 않겠어요. 그래 물을 바가지에 떠주었더니 마시진 않고 막 노려보겠지요. 아니, 저 사람이 왜 저러나? 하고 부들부들 떨고있는데 그이가 빙긋 웃으면서 이름을 어떻게 부르면 되느냐고 묻겠지요.》   《그래, 그래서?》 은숙은 재미가 나 뜨개질 손을 멈추고 재촉하였다.   《그래 박연복이라구 했더니 오오 하고 감탄을 하면서 왕청같이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를 한단말이예요. 세살먹은 애들도 이젠 청하지 않는 이야기말이예요. …호호, 내가 다 듣고 그건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간다는, 삼척동자도 아는거라고 했더니 그이는 ‘제비’ 한마리 ‘박’씨 하나 물고 왔으니 그 ‘복’이 뉘한테 떨어질가? 그 ‘박’씨를 나한테 주지 않겠소? 난 꼭 그것을 갖고싶은데, ‘박’―‘연’―‘복’씨! 하하하… 하고 휙 하고 사라져버렸어요, 후에야 나는 그 말의 뜻을 깨닫고 그만 ‘어머나!’ 하고 주저앉고말았지요! 호호호…》   《그다음은 그저 그래 된걸요. 보름동안 우리 마을에 있으면서 그이가 가구를 잘 짜서 소문을 놓구…사람이 대바르고 시원시원하고 일을 맵짜게 해치운다구 사람마다 칭찬이 자자했지요, 그래서…》   그러고보면 연복이와 문호의 결합은 《박씨》와 인연이 깊은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연복이는 제비와 박에 각별한 정을 묻어두고있는듯싶었다.   이듬해 해토무렵의 어느날, 은숙이는 이웃에서 떠드는 소리에 놀라 밖을 뛰쳐나가보았다. 연복이가 손벽을 치며 돌아가고 그녀의 남편 문호가 문설주를 붙들고 허허 웃고있었다.   《제비, 제비가 왔어요! 복제비가 왔어요. 오오―》 그 모양은 열두살잡이 계집애같았다. 봄에 그들은 울바자며 창고나 집주위에 돌아가며 다 박씨를 심었다.   7월이 되니 뜨락은 그윽한 박꽃향기로 차넘쳤고 꿀벌들이 붕붕 소리내며 분주히 오갔다.   은숙이는 가뜬히 앞치마를 두르고 돼지죽을 주느라 늘 바삐 돌아치는 연복이를 볼수 있었다. 욕심많게 돼지를 네마리씩이나 기르는데 탄복이 갔다. 그녀의 남편 문호는 집안에서 가구를 짜느라 쉴새없이 뚝딱거리고있었다. 그들은 포전도 그 뉘집보다 훌륭히 다투고있었다. 그야말로 손이 딱 맞는 부부였다. 그들을 보는 은숙이는 슬그머니 시샘까지 났다.   때론 마실을 가보면 둘은 코를 맞대고 누워서 정답게 소곤소곤 이야기도 했고 또 어떤 땐 문호가 색시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거나 아니면 연복이가 신랑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감정이 섬세한 은숙이는 찰떡같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랐다. 밥만 먹으면 엉치를 툭 털고 나가버리는 자기 남편, 잠자리에 들어서야 재미를 좀 볼수 있는 자기네 부부 생활에 비해 그들은 얼마나 달콤한 생활을 영위해나아가고있는가!   《연복인 재간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왜요?》   《범같은 남편을 손아귀에 후려넣고 코 꿴 송아지처럼 고분고분 길들이고있으니말이지.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면 나한테도 좀 못알려주겠어? 호호호…》   《아이, 언니두! 비결은 무슨 비결! 호호…》   《올해 연복이네 그인 얼마나 벌었어? 목수일을 해서?》   《뭐, 천오백원 좀 넘을가요?》   《어머나! 그리도 많이?!》 은숙이는 진심으로 감복이 갔었다.   금빛가을이 되였다. 연복이네 울바자며 헛간지붕우며 살림집지붕우며에 둥근 박들이 주렁주렁 많이도 열렸다. 은숙이의 눈에는 그 박들처럼 속에 금은보화라도 가득 찬것처럼 느껴졌다. 몰래 뚝 따오고싶도록 탐이 나고 샘이 났다.   씻은 금경같은 달이 동녘에 둥실 떠오른 어느날 초저녁이였다. 마실을 떠난 은숙이는 연복이네 집문앞에서 소곤소곤 주고받는 말들이 살갑게 귀속을 파고들었다.   《어디 말해보오. 흥부박이겠소, 놀부박이겠소?》   《예? 음―, 당신 흥부면 흥부박, 당신 놀부면 놀부박!》   《기막힌 대답인데…》   《당신이사 보살님처럼 언제나 착한 일 많이 하시구 흥부처럼 부지런하시니 이 박이야 물을게 있어요. 틀림없는 흥부박이지요!》   《아따 마른 비행기만 잔뜩 태우지 말구 자― 내 박을 켤테니 박타령이나 좀 해보우.》   《박타령을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아무렇게나, 흥만 돋구면 되지!》   《그럼 어쩐다? 호호…》 이윽고 딸기물 감도는 타령소리가 살랑살랑 들려왔다.     슬근슬근 톱집이야, 스리살짝 톱질이야   이 박은 무슨 박? 고운 내 님 보물박이로세   슬근슬근 톱질이야, 스리살짝 톱질이야   이 박은 무슨 박? 착한 내 님 쌀박이로세   슬근슬근 톱질이야, 스리살짝 톱질이야   이 박은 무슨 박? 모두모두 흥부박이로세…   주고받는 말도 노래도 다 꿀이였다. 은숙이는 달콤한 그 장면을 깨뜨리고싶잖아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되돌리고말았다.   이듬해 그들은 동자를 보았다. 이름을 일송이라 달았다. 한그루의 굳세고 푸른 소나무라는 뜻이였다. 또 이듬해 벽돌집을 지었다. 돼지를 먹이고 목수일을 하고 남이 넘겨주고 간 농사까지 한헥타르 도맡아 지어 수입을 톡톡히 올렸던것이였다.   인심도 좋은 갑부로 소문이 나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저녁만 되면 그 집으로 모여들었다. 트럼프치기, 화투놀이, 마작놀이, 무도, 개잡이… 그녀네 집은 손님들이 한시도 빌새가 없었다. 문호는 저녁에 하던 목수일을 그만두고 그들과 섭쓸리게 되였다. 은숙이도 연복이도 거기에 휘말려들어 이젠 제법 마작까지 놀줄 알았다. 마음이 헤픈 연복이는 사람들이 한창 번열이 나 옷을 벗어제낄 때면 의례 시원한 물김치나 감주를 해두었다가 양재기에 철철 넘치게 담아 들여갔다. 그러면 예이제없이 사람들의 대환영을 받는다.   《야, 우리 아줌마 제일이다!》   《임마, 네 아줌마니 문호 아줌마지!》   《엉? 핫하하…그래 문호 아줌마가 제일이다. 어― 시원하다. 한사발 좀더 주시오.》   《이젠 없는데요. 조금 남은건 냄새가 모자라서…》   《냄새라니?》   《문호 아줌마냄세말이예요.》   《아하, 그게 무슨 냄세인가요?》   《아이참, 지지콜콜 캐도 묻네. 맥주냄세말이얘요. 호호호…》   《엉?―, 맥주냄세라니? 오―, 핫핫핫…》 그제야 말뜻을 깨달은 사람들도 온 방이 떠나가게 웃음보를 터뜨린다. 그녀는 그만 얼굴을 감싸쥐고 방을 뛰쳐나간다. 어물쩍하게 말반죽을 잘하는데! 사람들은 경탄하여마지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그들에겐 제일 행복한 때였다. 그런듯 서있는 은숙이한테 뜨락의 박꽃향기가 물씬물씬 풍겨왔다. 그 향기가 싫어져 은숙이는 조용히 창문을 닫았다. 벽에 기대앉아 목을 떨어뜨리고 풋잠이 든 그녀를 바라보노라니 련민의 정이 밀물처럼 쓸어와 가슴을 아프게 저몄다.   은숙이는 그녀의 품에서 애를 떼내여 따로 눕히고 그녀를 안아서 베개에 조심스레 눕혔다. 그녀는 흠칫 몸을 떨며 《흐흑―》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굳어져버린다. 은숙이의 손은 어느덧 그녀의 윤택이 도는 머리에 가 닿았다.   …하루는 연복이가 옷고름을 감아쥐고 달려들어오더니 울음부터 터뜨렸다.   《언니, 난 이제 어쩌면 좋아요? 흑흑…이건 다 내탓이야, 내탓이야! 흑흑…》   은숙이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고 애기처럼 달렸다. 연복이는 연고를 터놓기 시작했다. 글쎄 문호가 동무의 꾀임에 들어 산삼장사를 떠났다가 돈 7천원이나 몽땅 떼웠다 했다. 그래서 지금 문호는 매일 술로 화를 끄고있다 한다.   《사내대장부라구 모든 일을 다 떠맡겼더니…내가 너무 믿었지요!…아,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은숙이도 당금은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범같은 사내가 한발자국 잘못 내디뎌 함정에 빠지자 그만 맥을 활 버리고만것이다.   《아이참, 밥은 드시지 않고 숨만 잡수시면 어떡하죠?》   《그렇게 벼락돈 빌려다 좀 봐요. 사람이 너무 욕심 많으면 안돼요, 그저 제 힘에 맞게 착실히 해나가야지요.》   《그잘난 돈 속히웠으면 속히우고 떼웠으면 떼웠지, 사람 있고 돈 있었지, 돈 있고 사람 있었나요? 신체가 중하니 식사를 좀 하시라요. 돈은 또 같이 손 맞잡고 벌면 되잖나요.》   종래없던 연복의 잔소리였다. 하지만 그후에도 은숙이는 문호가 술주정을 하다 망신도 당했다는 소문을 여러번 들었었다.   하루는 은숙이가 연복의 손목을 잡고 무작정 최과부네 집으로 뛰였다. 영문 모르고 끌려간 연복이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말았다. 하느님 맙시사! 이게 웬 일인가? 남편이 공안인원들의 압송을 받으면 만사람들이 눈앞에 지켜보는 가운데서 파출소로 끌려가고있지 않는가!   그녀는 그만 앞이 새까매나 그대로 물앉고말았다.   《원래 문호는 친구네 집 생일에 가 술을 잔뜩 먹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오다가 보도랑을 강물인가 해서 옷을 벗어 꿍쳐 머리우에 이고 건넜다. 그다음 근처의 최과부네 집 창고를 자기네 집으로 오산하고 들어가 북데기속에서 하루밤 강아지와 동무해 잤던것이다. 헌데 공교롭게도 아침에 일어나보니 옷이 없어졌다. 마침 석탄을 가지러 창고에 들어갔던 최과부가 벌거벗은 그의 몰골을 보고는 기겁을 해서 뛰쳐나와 파출소에 알렸던것이였다. 더욱 희극적인것은 문호의 옷을 강아지란놈이 물고 큰길을 나서는것을 소학교 1학년생들이 발견하고 쫓아가서 빼앗아다 선생님한테 바쳤다는 그 사실이다. 공안인원들은 문호가 건달짓을 했으니 구류해야 한다는것이였다.   《네? 건달짓을요? 그런데 하필이면 남 창고에는 왜 들어가요? 차라리 정주간에나 들어갈것이지. 그러다 강아지가 기소나 하면 당신은 입이 열둘이라두 변명을 못해요!》   그 말에 그만 뭇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배를 끌어안고 돌아갔다.   그틈에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고 슬쩍 빠져나왔다.   그 이야기는 한동안 린근마을의 일화로 널리 퍼졌다. 그후 은숙이는 문호가 이젠 아예 술을 뗐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이번 풍파를 통해 진정 그네들의 생활이 전과 같이 다시 미만해질것을 은근히 바랐다.   그런데 문호는 일을 다시 그르쳤다. 그날은 은숙이의 남편의 생진이여서 사람들은 문호한테 자꾸자꾸 술을 권하였다. 은숙이도 이웃이니 별일없을것이라면서 많이 들라 청을 들었다. 처음엔 문호는 연복의 눈치를 보더니 연복이가 묵인하는것 같자 또 허리띠를 풀어놓고 술을 퍼먹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는 연복이가 잡아끌어도 모를 지경으로 녹초가 돼버렸다. 은숙이와 그의 남편 천수는 문호를 자기네 집에 재우라면서 방미닫이를 닫아놓고 잠자리를 퍼주었다. 한밤중이 되여 갈증이 나 깨여난 문호는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오줌을 솰솰 쏴대며 혼자 중얼거렸다.   《어―, 오늘저녁 안개가 폭 끼였군, 별 하나 없는게…》   마침 자반뒤집기를 하면서 비몽인가 사몽인가 하던 은숙이는 오줌벼락을 맞고 그만 벌떡 일어나 앉으며 불을 탁―켰다. 그바람에 정신이 휘딱 든 문호는 바지춤을 어쩔 사이도 없이 몸을 홱 돌려 꼬리 빳빳이 집으로 내뺐다.   오줌벼락을 맞은 은숙이는 분이 상투밑까지 치밀어올라 그길로 문호네 집으로 쫓아갔다. 마침 등불이 환히 켜져있는 집안에서는 말소리가 도란도란 들려나왔다.   《아아, 이 일 어쩌면 좋아? 창피스러워 어찌 은숙언니 볼가?》   《여보… 이번엔 정말 고의로 그런것 아니였수! 정말이라니까!》   《저두 알아요. 당신은 속이 상하니 자꾸 술을 마셔대지요. 그렇다구 술로만 화풀이할수 있어요? 절제할줄도 알아야지요. 당신은 그저 이 극단에서 저 극단으로만 나가지 않으면 훌륭한 사내예요.》   《이젠 맹세코 술을 입에 대지 않겠소. 어찌겠소. 한번만 용서해주오. 은숙아주머니한테…》   《호―, 제가 어떻게 말을 떼요?》   《그래도 당신이야 방법이 있지 않소.》   《그럼 빌어볼가요? 그런데 은숙언니가 건달짓을 했다구 기어이 파출소에 보고하겠다면 어쩌나?》   《그, 그럼 난 우물에 뛰, 뛰여들어 죽을길밖에 없구려.》   《그럼 나도 뛰여들래요.》   그다음 내외간은 어쩐지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때 은숙이는 문을 떼고 들어서며 고아댔다.   《아니, 누가 용서를 해준대요?》 그리고는 까르르 웃음보를 터쳤다. 올 때 품고왔던 울화가 순식간에 날아가버린것이였다.   그 이튿날부터 은숙이는 연복이네 집에서 다시 울려나오는 연장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움푹 패였던 연복이의 량볼에도 다시 살기가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또다시 흐리흐리한 허리에 흰 앞치마를 깡통 동이고 돼지죽을 준다. 채마전을 다룬다 하며 눈코뜰새없이 돌아왔다. 행복의 교향악은 새로운 악장을 펼친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일이란 가늠하기 어려운것이였다. 지고나면 이를 갈며 이기고싶고 믿지고나면 기어코 봉창을 하고싶고 또 기어이 대방을 꺼꾸러뜨리고싶은것이 실패한 사내들의 자존심이라 할가? 어느때부터인지 누구도 모르게 문호는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한것이다. 이번엔 밑창없는 함정에 빠져들기 시작한것이다. 어느날 빚받이군들이 그녀네 집에 들이닥쳐서야 연복이는 그 일을 알게 되였다. 그들은 새 벽돌집을 내놓아야 했다.   하루저녁은 은숙이가 연복이네 집으로 마실을 갔더니 연복이가 찬물 한그릇을 떠놓고 동쪽을 향해 봉당에 꿇앉아 합장하고있었다. 중얼중얼 념불을 하고있었다.   금방 감은듯 함치르르 윤기도는 파마머리, 정성들여 다려입은 연분홍치마저고리, 늘씬한 코날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두눈, 두볼은 혈색을 싹 잃고 백랍같이 창백한데 분결같은 얼굴에는 눈물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두눈을 지긋이 감고 뭔가 중얼중얼 외우고있었다.   《연복이!》 은숙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허나 그녀는 석고상마냥 그냥 그본새로 꿈적을 않는다.   《얘 연복아, 이게 웬 일이냐, 응?》 은숙이는 가슴이 섬찍해서 좀더 큰소리로 부르며 그녀를 감싸안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샘에서 두줄기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그녀는 은숙의 가슴에 얼굴을 와락 파묻고 어깨를 들먹거렸다. 은숙은 그러는 그녀의 등만 자꾸 쓸어주었다.   그날 밤, 은숙이가 돌아간지도 이슥해서 낯모를 두 사내가 그녀네 집의 문을 뚝 떼고 들어섰다. 하나는 키꺽다리 말라꽹이고 다른 하나는 난쟁이 땅딸보였다. 얼굴에 징글맞은 웃음을 띠우고 성냥가치로 여유작작 이를 쑤시며 그녀앞에 버티고 섰다.   《이봐 색시, 색시가 연복씨인가?》 꺽다리가 먼저 말꼭지를 뗐다.   《네, 당신들은?…당신들은?》 연복이는 와들와들 떨며 뒤걸음질쳤다.   《야―고것, 한입에 삼켜도 비린내 안나겠다.》 땅딸보가 헤헤거리며 다가들었다.   《알아두라구, 네 남편이 널 걸구 도박을 했어. 하루저녁 몸값이 5백원이야, 졌으니 넌 오늘저녁 우리를 잘 섬겨야 한다. 그만하면 몸값 비싸기로 춘향이도 울고 가겠다.》 꺽다리의 지껄임이였다.   《어때? 우리 한번 질탕 놀아보자구, 녀자란 사내맛을 고루 봐야 태여난 보람이 있는거야, 그렇잖아? 하하하…》 땅딸보가 배풀무질을 마구 해댔다. 둘은 능청능청 자꾸만 다가든다.   벽까지 물러선 연복이는 절망을 느끼며 땅에 풀썩 꿇앉았다. 이때 눈에 얼핏 띄우는 물건이 있었다. 감자 깎던 칼이였다. 그는 잽싸게 그것을 집어들고 제 목을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썩들 물러가요! 한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전 죽고말겠어요.》   두 사내는 무춤했다. 그러자 연복이는 마음이 한결 커졌다. 그는 두 사내를 집어삼킬듯 쏘아보며 말을 내뱉았다.   《알아둬요! 이젠 나와 그 사람은 아무 관계도 없어요! 그래도 계속 덤벼든다면 당신들에게 차례질것은 주검뿐이얘요. 살인범혐의를 안쓰겠거든 얼른 물러가요!》   이렇게 결사적으로 달려들어서 요행 욕을 면한 그녀는 이튿날 남편한테 리혼을 제기했다. 그들은 끝내 이렇게 갈라지게 된것이다…   창밖은 달빛이 그냥 하얗게 부풀어있고 박꽃향기가 마냥 물씬물씬 그윽 차넘치고있었다. 찢어놓은 구름송이 같은 박꽃은 물결치는 달빛속에서 무엇이 마득지 않은지 고개를 푹 숙이고 까닥하지 않는다. 잠든 연복이의 얼굴은 비맞은 박꽃잎처럼 창백하다. 가끔가다 헛소리를 하며 허공에 손짓을 해대던 그녀는 악몽에 가위가 눌리는지 갑자기 숨 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앉는다.   《연복이는 자기를 끌어안은것이 은숙인것을 알자 그의 품에 와락 얼굴을 파묻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언니, 언니! 난 어쩌면 좋아요? 난 어쩌문 좋아? 아아…우리 일송이 불쌍도 하지, 에구에구…이 일을 어쩌문 좋아?…》   동무의 넉두리를 듣는 은숙이의 가슴도 칼로 에여내는듯 아팠다.   《연복아, 이 불쌍한것아, 참아야지, 참는게 녀인이란다. 어떤 역경앞에서도 머리 숙이지 않고 참고 견뎌가는것이 녀인이란다. 넌 아직 젊고 아름다우니 전도가 창창하다. 앞날을 믿구 이를 악물고 참고참아 나가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은숙이는 자꾸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은 어쩔수 없었다.   이때 웬 거쿨진 사내가 쑥 들어왔다. 은숙이의 남편 천수였다.   《아니, 정말 리혼한 모양이구먼!》   《오늘 리혼장까지 뗀줄 몰라요?》 은숙이의 대답이였다.   《허―그것참, 펀펀한 가정이 그저 쪽박깨지듯 박산났구려.》   《그러게말이예요. 사람이 변하니 그렇게 변할줄이야 참!》   《정신이 쑥 나갔지, 엥이, 집안을 이 꼴로 만들어놓구, 환장을 해두, 참! …오늘저녁도 금철네 집에서 외지서 온 사람들과 붙었다누만!》   《예? 외지사람들과 금철이네 집에서요?…》   갑자기 연복이가 몸을 발딱 일으켰다.   《그이한테 무슨 밑천이 있어요? 이 초가집까지 팔아먹으면 그인 자살하구말거예요. 아,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어쩌면?…》   《넌 그저 ‘어쩌면 좋나?’밖에 모르니? 죽든살든 네 관계가 뭐야? 리혼까지 한 처지에…》 은숙이가 악이 나서 쏘아붙였다.   《아니 그래두 죽는 길로 나아가는걸 보고 어찌 가만놔둬요? 아이참, 이걸, 이걸…》 뱅뱅 맴을 돌며 동동 발을 구르던 연복이는 눈물을 닦을념도 않고 갑자기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간다.   《얘, 넌 어디를 가니?》 은숙이가 뒤쫓아가며 물었다. 그러나 연복이는 벌써 저만큼 달아가고있었다.   달이 엷은 비닐구름에 가리우며 사위는 잠옷을 입기 시작하였다. 은숙이는 헐금씨금 쫓아가서야 향파출소문앞에서 마침 문을 열고 나오는 연복이를 만날수 있었다.   《얘, 여긴 뭘 하러 왔니?》   《콩밥 먹으면 정신 좀 차릴가 해서요. 함정에 빠져드는걸 보고 어찌 가만두겠어요. 이젠 늦긴 하였지만…》 불빛에 비친 그녀의 눈확엔 이슬기가 번쩍이였다. 은숙이는 그러는 그녀를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게 어디 리혼한 녀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인가? 은숙이는 그래도 그 말에 동감이 갔다.   《그것참 잘했다. 한 십년도형에 떨어져야 얼이 쑥 나갈게다.》   《어마나, 그리 많이? 도박놀았다구?…》   《그럼! 요사인 도박군들을 엄하게 다스린단데. 모르긴 해도 몇년 콩밥은 잘 먹어야 할게다…》   《아니, 정말?!…》   《정말 아니문? 넌 또 왜 그러니?》   《글쎄요, 나도 모르겠어요…》 연복이는 또 무작정 골목길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은숙이는 그러는 연복이를 얼없이 바라보다가 파출소문이 열리면서 공안인원 네댓이 출동하는것을 보고서야 정신이 펄쩍 들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공안인원들의 뒤를 따랐다. 공안인원들은 곧추 금철이네 집으로 빠른 걸음을 놀리고있었다. 아직 달은 비늘구름속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사위는 그냥 어두운 장막에 가리워져있었다.   금철이네 집부근에 다가가자 은숙이는 공안인원들이 달아가며 웨치는 소리를 들었다.   《서라! 움직이면 쏜다!》   은숙이는 저 멀리 큰 길로 두 그림자가 나는듯이 달아나고 거기로 또 두 공안인원이 쫓아가는것을 볼수 있었다. 찰나 귀청을 째는듯한 요란한 총소리가 한방 울렸다.   《에구머니나!》 은숙이는 분명 한 녀인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누굴가? 연복이가?…은숙이는 허둥허둥 달려갔다.   달은 마침내 비늘구름층을 뚫고 나왔다. 박꽃같이 희디흰 달빛은 주위를 삽시간에 환히 밝혀주었다. 은숙이는 먼발치에서도 두 공안인원이 장대처럼 서있고 두사람이 무릎을 꺾고 부둥켜안고있는 장면을 볼수 있었다. 사나이는 무릎을 꺾고 녀인의 품에 골을 묻고있었고 녀인은 사나이의 등허리를 어루쓸며 흑흑 느끼고있었다. 연복이와 장문호가 분명하였다. 은숙이도 두 공안인원과 마찬가지로 그 장면앞에서 화석이 되고말았다.   《어마나! 저 피를…》 은숙이가 먼저 연복이의 왼쪽팔에서 슴배여나오는 벌건 피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총알이 팔을 스치고 지났던 모양이였다. 그제야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연복이를 부추켜 세웠다…   인젠 다 옛말로 된 과거사였다.   이듬해봄이였다. 강남갔다 돌아온 청제비, 구제비가 연복이네 낮다란 처마밑으로 다시 찾아들어 지지배배거렸다. 연복이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흰앞치마를 깡똥 두르고 밖을 뛰쳐나와 손벽을 짱짱 울리며 돌아갔다.   《오오, 제비가 왔어요. 복제비가 왔어요!》   7월이 되자 그녀네 울바자며 헛간지붕이며 살림집지붕이며에 백설같은 흰꽃이 송이송이 피여 하얗게 웃으며 꿀벌을 부르고있었다.   달빛이 말쑥한 가을의 어느 초저녁 은숙이는 연복이네 집으로 놀러 가 집안에서 도란도란 들려오는 말소리에 귀를 강구였다.   《자, 타령을 좀 해보우, 박은 내가 켤테니.》   《아니 그건 ‘놀부학’이 아니얘요? 재화가 쏟아지면 어쩔려구요?》   《올해는 ‘놀부’의 못된 버릇 철저히 떼잖았소? 그러니 금은보화가 막 쏟아지는 ‘흥부박’이 틀림없을거요.》   《그래요? 호호호…그럼 한마디 해야죠.―》   슬근슬근 톱질이야, 스리살짝 톱질이야.   이 박은 무슨 박? 고운 내 님 보물박이로세   ……   예쁜 타령소리는 까딱없이 서있는 은숙이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어느덧 그녀의 두볼을 타고 맑은것이 흘러내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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