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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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베이징동계올림픽 한복론난에 대한 재사고 댓글:  조회:419  추천:0  2022-02-24
베이징동계올림픽 한복론란에 대한 재사고   류대식   2월 4일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불거지기 시작한  한복(조선옷)론란에 대해 필자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첫째, 이번 일은 한국언론계와 정치권의 한차례 큰실수였다고 본다.우선 언론계의 실수였다.언론의 기본원칙은 진실한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사건을 진실하게 잘 보도하려면 사건의 본 면모를 제대로 포착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한복론란은 바로 그 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않고 경솔하게 경거망동하여 보도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 왜 올림픽개막식에 한복(조선옷)이 등장하게 되였는가?   중국은 주류민족인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총 56개 민족의 다민족국가인데 국기전달식에서 모두 자기 특색을 나타낼 수 있는 민족복장차림을 하고 등장함으로써  56개민족이 단결하여 오성붉은기의 주위에 굳게 뭉쳐있다는 것을 표현하려는데 있다. 조선족도 56개민족의 일원이므로 당당하게 민족복장을 차려입고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진실인데 그 주제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보통네티즌의 발견을 두고 사실여부와 시비곡직을 제대로 료해하지도 않고 나라를 대표할수 있는 언론매체들이 뉴스감을 잡은것 같으니 너도나도 앞다투어 경솔하게 보도한 것이다. 진실에 대한 파악이 부족한 한차례의 큰 실수였다.   중국이 또 ‘문화침략’을 하고 있다! 과연 관중청중의 이목을 잡을 수 있는 이슈거리렷다.   뉴스거리가 생기면 관중청중들의 이목을 잡기 위해 과장하고 부풀리고 극대화하여 이슈로 포장하는 한국언론생태의 병폐를 전형적으로 보여준 또하나의 사 례라 하겠다.   언론보도에만 그쳤어도 일은 그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언론의 단편보도만 믿고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불만의 태도표시를 하고 지어 대선후보들까지도 조사연구 없이 여론에 떠밀려 국민들의 지지와 득표율을 위해 반중적인 언론을 란발하는 바람에 일파만파로 퍼지며 전 나라적인 실수가 되여버렸다.   이번 일에서 한국정치생태의 병폐 일면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정치인들이 진정 국민의 리익과 나라의 발전을 우선으로 고려하는게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득표률을 위해 국민의 눈치보기에만 우선으로 전념한다는 것이다.   이문제에 대해 다른 례를 하나 들면 코로나로 인한 긴급재난지원금문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재난지원금이란 말그대로 코로나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이런 보상금 대상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우선으로 하여 확실하게 경제적피해를 입은 사람들이여야 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재정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야 모두가 전국민지급에 뒤질세라 앞다투어 찬성하였고 전국민 지원금이 되여버렸다. 월급이 꼬박꼬박 그대로 나와 한푼의 경제적 손해도 입지않은 공무원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떼돈을 번 사람들, 고만한 지원금액수는 간에 기별도 안가는 부자들에게도 모두 지급하니 말이다. 순 지지률과 득표를 위해서다.   물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기에 정치는 결국 국민을 위해 하여야 하지만 득표률을 위해서라면 옳고그름은 둘째고 말그대로 담장우의 갈대처럼 동풍이든 서풍이든 남풍이든 북풍이든 찬바람 더운 바람이든 가리지 않고 무슨 바람이 불어오면 그 바람에 우선 탑승하여 구애부터 하는 한국정치의 병폐가 적라라하게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에서 어떤 사람들은 중국의 소수민족 중 러시아족, 카자크족, 몽고족, 우즈베크족들도 모국이 있지만 그 모국들에서는 민족복장문제를 두고 반발하지 않았는데 유독 한국만이 그렇게 ‘유별나게’ 나오느냐고 꼬집기도 했다. 물론 이번 일에서 감성적이고 경솔한 민족적성격특성의 일면도 보여주고 있지만 중한간에 있었던 '사드문제' 등 여러 갈등으로 인하여 중한간 력사, 문화문제상에서  한국사람들이 많이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력사적으로 침적된 피해의식 속에 똬리 틀고 있는 예민한 신경은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는 민족에게 있어서는 력사문화문제와 민족자존심문제상에서 과격한 반응, 오류적인 반응을 할 소지를 갖추고 있기때문이다.   이번일은 ‘사드문제’봉합이후 많이 완화되고 우호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던 중한관계에 큰 악영향을 주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미국을 선두로 한 서방나라들의 ‘외교적 보이콧’에 한국은 합세하지 않았고 정계 제2인자인 박병석 의장과 황희 문체부장관을 코치로 파견하여 중국의 큰 환영과 호감을 샀다. 사드배치문제 이전의 밀월의 새로운 중한관계가 열리는가 싶었는데 이번의 한복론란으로 거의  ‘해방전’으로 돌아가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또 여기에다 올림픽경기 진행 중 음식타발문제, 반칙처벌문제, 재판불복상소문제 등이 합세하면서 중국내에서의 반한정서, 한국내에서의 반중정서가 꾸역꾸역 타래쳐오르는 추세이다. 바람직스럽지 않은 상황이라 하겠다.   이번 한복론란은 한국 언론계와 정치계의 소홀과 실수로 펀펀한 생살을 긁어서 커다란 부스럼을 만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이번 한복론란에서 한국언론계의 보도의 시발점은 조선족을 겨냥하여 진행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조선족을 상대하여 너희들이 왜 우리의 한복을 입고나오느냐고 시비를 걸고 생트집을 잡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림픽개막식에 한복이 등장한 그자체를 묘준하며 중국 정부를 향해 불만과 항의를 제기한 것이라 본다.   그런데 보면 한국언론과 정치계의 한복론란을 두고 중국의 주류민족과 여론에 비해 조선족권에서 더 일파만파로 퍼지며 부글부글 끓고 숱한 관련 글들이 매스컴을 이글이글 달구고있다고 생각된다.   한복(조선옷)도 우리의 복장이다, 조선민족의 일원으로 한복(조선옷)을  입지 않으면 중국복장을 입으란 말인가 양복을 입으란 말인가...등 등 한국을 '성토'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번 일이 우리 조선족과도 관련이 있고 본의는 아니지만 조선족의 근원적인 신경을 건드렸기에  중국의 실정과 한국의 실정을 모두 잘 아는 조선족의 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바로잡고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필요하고 역시 피할수 없는 사명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글들을 보면 그런 객관적이고 공정한 각도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이 아니라 아니꼽게 보아오던 옆집 나그네의 그 어떤 허점을 잡은듯 사건을 극단으로 몰아가고 부풀리고 지어는 어떤 피해의식속에 모종의 발설을 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일부 기회주의 문인들은 자신을 표현할 좋은 기회를 만났다는 듯 사건을 부풀리고 면을 확대하여 붙는 불에 키질하는 글들을 란발함으로써 한점의 불꽃이 료원의 불길로 타오르는데 큰 작용을 했다고 본다. 얼마든지 사건의 초기에 정확히 해명하고 오해를 풀고 무마할수 있었는데, 개미만한 일이 도미노렬차를 탄듯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산같은 괴물로 둔갑해버렸던 것이다.   필자는 조선족의 각도에서 응당 문제점을 바르게 지적하고 일깨워주고 타오르는 불길에 물을 뿌려 잠화하여 중한관계의 량호한 발전에 이로운 쪽으로 여론을 유도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과 한국이 반목하면 우리 조선족들한테 리로운 점은 꼬물만치도 없다. 오히려 첩첩의 백해(百害)가 앞을 가로막을 뿐이다.   한국의 실수와 더불어 일부 조선족도 적지 않게 실수했다고 본다.   한국의 실수와 조선족의 과분한 반발을 음미하노라니 필자는 한국과 조선족 사이에 놓여진 깊은 계곡을 보는것 같고 각양각색의 불협화음이 들리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석연치 않은 기분이다.   올해는 중한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한 두나라사이의 물고가 틔이면서 한국과 조선족의 본격적인 래왕도 30주년이 된다는 얘기다. 조선족들의 한국진출과 한국인들의 중국진출은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가져다주었고 조선족사회는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와 혀가 한입안에서 돌아가니 부딛치는 일이 발생하듯이 어우러져 살게 되니 조선족과 한국 사이에  경제, 문화와 습관 등 차이로 인한 불협화음이 적지 않게 발생하였다.하지만 주류는 긍정적이며 조선족은 한국의 큰 은혜를 입었고 한국 또한 조선족의 많은 덕을 봤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한국과 조선족은 장시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정치, 경제, 문화 제면에서 어우러져 함께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나이까’란 말이 있듯이 한뿌리에서 뻗은 줄기와 가지들이니 뗄래야 뗄수 없는 ‘동반자’인 것이다.   현실로 된 착오를 교훈으로 삼으면 그것이 덧거름으로 될수 있지만 착오에서 경험과 교훈을 얻지 못하면 더 큰 착오를 유발하는 기폭제가 될수 있다는 것은 제지하고 있는 도리다.   필자는 조선민족의 일원으로서 이번 일을 교훈으로 한국이든 조선족이든 더는 이런 ‘저급적인 착오’를 범하는 일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중한수교 30주년을 시발점으로 중한관계 그리고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의 융합이 새롭게 업그레이 된 밝은 미래상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글로계정보기
11    생명의 땅에는 분명 희망이 있다 댓글:  조회:1440  추천:1  2016-04-22
현재 우리 조선족농촌은 말그대로 “나갈 사람은 다 나가고 남을 사람만 남은” 공동화(空洞化)의 극한치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흑룡강성의 조선족이 주요로 분포되여있는 오상, 밀산, 해림, 녕안 등 지역의 농촌상황을 료해해본 결과 인구의 공동화는 90%내외에 달하고있다. 조선족농촌의 이런 공동화는 이제는 “신상태(新常态)”를 이루어 사회적 큰 진동이 없는한 장시기 이런 상태가 지속될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것은 조선족농촌의 토지를 기본으로 한 “생산의 공동화” 역시 90%내외에 달하고있다는 점이다. 례를 들면 오상시 향양진의 민흥촌은 마을에 한사람도 없을뿐만아니라 토지도 모두 타민족이 부치고있으며 밀산시 동명촌이나 해방촌 같은 경우도 마을에 사람은 꽤나 있어도 농사짓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도시화와 함께 농촌사회의 위축은 필연적추세이다. 하지만 조선족농촌사회는 사회여건의 특수성으로 하여 오늘날과 같은 쾌속발전과 그에 따른 극단적인 상태가 초래된것이다. 한국을 주요로 한 해외진출과 관내 연해도시를 주요로 한 도시 진출을 통해 우리 조선족들은 단시일내에 중국내 어느 민족 보다 빨리 가난을 벗었다.    물론 조선족전통집거구의 해체를 비롯한 대가도 지불했지만 얻은것이 잃은것보다 많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하지만 공동화가 극한치에 이른 지금에 와서 우리는 리성적으로 현실을 다시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그것은 우리 조선족농촌은 우리 민족사회의 기반이 되고 후방이 되는 곳이고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곳이기때문이다.    그렇다 해서 “우리 고향을 우리가 지키자”고 텅빈 구호만 웨친다면 호응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다. 우선 생활의 기본인 물질기초가 따라가야 한다. 지금 물질기초면에서 농촌은 어떤 비전이 있을가? 고향에서 정말 나간 사람 못지 않게 보람있는 삶을 살면서 고향을 지킬수 있는 그런 가능성은 있을가? 필자의 생각은 많은 사람과 같이 긍정적이다.    첫째는 지금 농촌의 재부는 농촌의 기본인 농토와 농사이다. 지금 농사상황을 보면 이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농사 짓는 사람이 적고 땅이 많이 남아있기에 기회가 나타난것이다. 수전이든 한전이든 어느 정도의 량을 부치게 되면 농사도 지을만하다는것이다.    보편적으로 보면 헥타르당 평균으로 쳐서 순수입이 1만5000원에서 2만원가량 된다. 이것은 자기 토지를 부치는 경우이다. 만약 남의 토지를 부치게 되면 보통 헥타르당 1만원의 임대비를 줘야 한다. 경험자들의 말에 따르면 만약 15헥타르쯤 부치게 되면 임대비를 줘도 많이 남는다. 이것은 보통농사를 짓는 상황에서이다.    이 면에서 전형적 실례는 흑룡강성 밀산시 덕흥촌의 김장호씨, 흑룡강성 해림시 삼합촌의 김명철씨, 의란현 농장촌의 장수철씨 등을 들수 있겠다. 밀산의 김장호씨는 200여헥타르, 김명철씨는 50여헥타르, 장수철씨는 100여헥타르 논을 부치고있는데 주먹구구만 해도 그들의 1년 수입이 얼마인지 알수 있다. 정말 괜찮은 노다지가 아닐수 없다.    농토가 비교적 많은 밀산시의 경우 조선족농촌의 토지는 근 1만헥타르에 달하고 해림시도 6천헥타르가량 된다. 전 흑룡강성, 나아가서 전국 조선족농촌의 토지면적은 어마어마한 수치이고 그가 안고있는 경제효익도 어마어마하다. 응당 우리에게 속해야 할 재부가 지금 아깝게 밖으로 흘러나가고있다.    농사를 하나의 장사라 한다면 이는 성공확률이 아주 높은 장사이다. 특별한 재해가 없는한 땅은 가꾼만큼 보답을 주는것이다.    그다음 노다지는 농사를 기초로 한 고부가가치의 브랜드농업, 생태농업, 관광농업, 농산품심층가공, 축목업,농산품무역 등을 들수 있겠다. 브랜드농업의 경우, 지금 오상입쌀이나 녕안 향수입쌀은 이미 전국적으로 소문난 명브랜드이기에 같은 농사를 지어도 2-3배의 효익을 볼수 있다. 생태농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생활의 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진짜 생태농산품이라면 문제없이 좋은 효익을 거둘수 있다. 농산품 심층가공이나 목축업,농산품무역 역시 큰 가능성이 열려있는 항목임은 틀림없다.    이 면에 보기로 되는 례를 들면 10년간 오리농법을 고집하며 “아스하오리쌀”로 2014년에 성 10대유명브랜드의 하나로 인정받고 유기쌀인증도 받은 아성시 해동촌 백찬호씨, 한국에서 텅빈 고향에 혼자 돌아와 마을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겠다면 농사와 함께 목축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오상시 민락향 동흥툰의 리천우씨, 유기농 농사와 함께 선진적인 농기계기술을 중국 농촌현실과 접목시키고있는 오상익산농기계유한회사 정대일씨…이들은 모두 보다 먼 안목으로 남 떠난 고향에서 노다지를 캐고있다.    그리고 지금 떠오르고있는 농촌관광업은 역시 큰 비전이 있는 산업이다. 심심산골의 벽촌이던 설향(雪乡)의 성공경험은 우리에게 큰 계시를 준다.    셋째로 고향의 노다지는 국가의 여러가지 농촌지원의 정책과 형세이다. 농업세 면제로부터 시작된 국가부농(扶农)정책은 계속 좋은 면으로 발전하고있다. 종자금보조, 농기계금보조, 도로 및 주택건설지원, 수리시설에 대한 대량 투자, 도농일치의 각종 보험제도의 실시, 소수민족정책 등은 우리 농촌의 노다지가 아닐수 없다.    이 면에서 례를 들수 있는것은 밀산시 덕흥촌의 밀산시녹영고려미농민전업합작사가 마을의 환경과 농토수리건설에 정부의 1100만원의 지원을 얻은것, 밀산시 동명촌이 “아름다운 향촌 건설”에 정부의 500만원 지원을 얻은것 등을 들수 있겠다.    코리안드림이 시작되면서 10년쯤 외국에 가 있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일정한 밑천을 장만했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와 새로운 농사로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삶의 개척해나가는 사람들로 하나둘 늘고있다. 그들은 분명히 고향에서 희망을 보았기때문이다.    그리고 도시에 진출하여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역시 재기해볼수 있는 기회가 고향에 있다. 외국이나 도시에서는 가능할수 없는 주인이 되고 농장주가 되고 사장이 되고 지어 회장까지 될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고향에 있기때문이다.    생명의 땅 고향에는 분명히 희망이 있다.  흑룡강신문   
10    조선족전통사회의 해체와 판도의 재 형성 댓글:  조회:2003  추천:45  2015-04-29
조선족전통사회의 해체와 판도의 재 형성     지난세기 90년대초 중한수교와 중국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본격적 수립에 따른 도시화 물결에 급물살을 탄 조선족전통사회(동북을 주 집거지로 한 농촌과 농경문화가 중심이 된 조선족사회)는 급속한 해체를 맞아 지금 시점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따라서 조선족사회의 새로운 판도의 기본 추형을 형성하였다.   먼저 언급할 것은 조선족전통사회의 해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비애의 만가를 부르고 있는데 이제는 '눈물을 그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전반 중국사회의 발전추세에서 놓고 볼 때 조선족전통사회의 해체는 시간상 문제였다. 그런데 중국의 다른 민족에 비해 이런 급작스런 변화가 나타난 것은 바로 모국인 한국이란 존재로 인하여 가속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형성된 조선족사회의 판도를 보면 대개 아래와 같다.   첫째는 조선족 전통집거지인 동북3성의 동북권(东北圈)이다.동북권의 조선족사회는 본래 농촌중심에서 도시 중심으로 이전되어 조선족사회가 형성되어 있고 유지되고 있다.   물론 농촌에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진출과 도시진출로 거의 황폐해진 상황이며 소수의 노인들과 아이들,촌간부, 대면적으로 논을 부치는 사람들,자영업자들이 마을과 땅을 지키는 상황이다.심지어 어떤 마을은 단 한명의 조선족도 없다.   동북의 도시에는 그래도 조선족학교, 조선족단위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족사회가 형성되어 있다.구성원들을 보면 공무원,사업단위 간부,국유기업 임직원,경제인들 그리고 학생들과 그 가족들이 주류이다.인구의 감소로 지금도 계속 위축되고 하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전반 조선족사회의 기반이 되어 있고 후방이고 근거지다.   2010년 제6차전국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헤이룽장성의 현재 조선족인구는 17만 9천명인데 1990년 제4차전국인구보편조사에서 통계된 45만 4천명에 비해 절반이 넘게 감소되었다.지린성의 경우 2010년에 조선족인구가 56만 8천으로 1990년 118만 3천에 비해 절반 밖에 안되며 랴오닝성의 경우 2010년에 13만으로 통계되고 있는데 1990년의 23만에 비해 반을 좀 넘어선 상황이다.   조선족의 인구가 1990년에는 총 192만 3천인데 동북3성에 186만 8천명 거주하고 있어 총인구의 97.1퍼센트를 점하였다.그런데 20년이 지난 2010년에는 동북3성 인구가 87만 8천명으로 총인구 183만 9천명(자연 감소로10년 사이 거의 10만이 감소됐다)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아직 통계가 없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아마 이보다도 많이 적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다음은 중국의 도시화와 경제활동에 따른 관내로의 대거 진출로 새롭게 형성된 조선족집거지와 조선족사회인데 이런 관내권(关内圈)은 베이징,텐진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칭다오,옌타이, 웨이하이를 중심으로 한 산동반도권,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장강삼각주권,광저우,선전을 중심으로 한 주강삼각주권이다. 지금 이런 관내권에 조선족인구는 대개 40만정도로 예산하고 있다.   세번째는 노무,유학,비즈니스 등을 목적으로 해외진출하여 진출국에 장기 생활하고 사업하면서 형성된 해외권(海外圈)이다.조선족은 해외 많은 나라에 진출되어 있는 데 그중 중점지역은 바로 한국이다. 지금 한국에서 장기 거주하고 생활하는 조선족이 60만에 이르는 것으로 통계된다.   한국 다음으로 해외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이다. 이 3개 지역에 조선족이 각각 3,4만정도로 장기 거주하고 있다.   이런 해외권의 조선족들은 자신들의 집거지를 형성하고 상호연계하고 협력하면서 엄연한 조선족사회를 형성하였다.   2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새롭게 형성된 조선족사회의 이런 판도는 현재는 이미 온정된 기반을 형성하였고 사회적,자연적 큰 진동이 없는한 계속 이상태를 유지하며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볼 때 각 지역의 조선족사회는 각자로서 우단점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자체의 우세를 계속 발양하고 부족점을 보완하면서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조선족사회를 건설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 전통집거지인 동북3성을 놓고 볼때 거주인구감소에 따른 하강세를 어떻게 막느냐,어떻게 현재 실력을 보존하면서 발전을 기하느냐 등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동북지역은 중국 조선족의 고향이고 근거지고 후방이다. 이곳은 조선족들이 장시기에 걸친 피나는 노력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제방면에서 아주 완비하고 든든한 기반조건을 마련했다.집을 놓고 말할 때 기초와 같은 곳이다.때문에 동북3성의 조선족사회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전반 조선족사회의 온정과 발전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동북지역은 이런 기반조건과 우세를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계속 이곳을 지키고 이곳을 건설하고 이곳에서 살도록 제방면의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이다. 어떻게 동북의 전통집거지를 계속 보전하고 발전시키는가 하는 것은 앞으로 전반 조선족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여야 할 중요한 사명이다.   둘째는 중국관내권인데 이곳들은 중국의 개혁개방의 진척에 따라 비즈니스가 계기가 되어 조선족들이 새롭게 터전을 만들고 가꾼 제2의 고향이다. 이런 지역들은 경제가 활약적인 연해지구나 대도시들인데 지금 이런 곳들은 수십년의 노력과 분투를 거쳐 경제를 기반으로 하여 조선족사회의 기본틀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많은 부족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기반조건이 많이 부족하고 있다.중국의 호구제도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 호구가 대부분 동북에 있는 이들은 당지로 놓고 볼 때 외래인이다.때문에 정치적으로 당당한 주인적인 위치와 힘이 부족되고 있으며 정치적인 면에서 동북지구와 같은 자치구역(자치주,자치현, 자치향 등) 같은 든든한 기반을 형성하려면 아직도 먼거리가 있다.   문화적으로도 조선족학교를 우선으로 해서 신문,방송,출판,예술 등 면에서 기반시설이 턱없이 모자란다.특히 민족사회의 기초인 학교가 우선 급선무로 나서고 있다. 관내권에 국립조선족학교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물론 민영으로 베이징에도 칭다오에도 조선족 학교가 섰고 또 한국인이 세운 몇개의 국제학교가 있어 민족문화교육에서 적지 않은 작용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것으로는 태부족인 것이다.   민족학교가 없으면 진정한 민족의 후대를 배양하고 건전하고 튼튼한 민족사회를 건설하는데서 큰 어려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관내권의 이런 교육,문화시설의 부족은 정치적으로 위치가 있는 인사들이 나라의 민족정책을 이용하여 사명감을 안고 민족사업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쟁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다음은 동북3성 근거지의 지원을 받는 것이다.동북지역에서 분교,분사,분관을 세운다든가 혹은 폐교 위기에 이른 학교같은 것은 통째로 이전하는 방안도 연구해볼 바이다.   그리하여야 관내권 조선족사회는 더욱 완비한 기반조건을 갖추면서 전면적으로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다음은 해외권인데 규모를 이룬 것은 한국을 위주로한 선진국들이다.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런 곳의 조선족사회는 중국 조선족사회의 경제적인 큰 뒷심이 되고 있다.   전반 조선족사회가 오늘과 같은 발 빠른 발전을 할 수 있은 것은 한국진출을 우선으로 한 해외진출이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전통집거지의 해체, 동화진척의 가속화,가정의 파탄 등과 같은 사회적문제도 낳았지만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족사회의 해외권의 인구가 70만 된다는 것은 전체 조선족인구의 삼분의 일이 웃도는 숫자다.때문에 해외권의 조선족사회의 상황이 여하한가 하는 것은 전반조선족사회의 발전과 양상에 아주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해외진출의 인원구성을 보면 주로는 노무자이다.특히 한국의 경우는 중국 조선족 농촌의 노동력이 집단이전을 했다해도 관언이 아니다.   한국을 우선으로 해서 해외권의 나라들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중국에 비해 앞서 달리고 있는 선진국이다. 때문에 당지사회의 선진문화를 힘써 배우고 소질을 제고하고 기능을 연마하여 당지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융해되는 것이 우선 중요한 과제다.그래서 건전하고 희망찬 조선족사회를 만들면서 계속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중국조선족사회 발전의 보충이 되고 연계인이 되고 선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여년의 세월 속에 조선족은 보다 나은 삶과 발전을 위하여 엄청난 진통을 겪고 변화를 가져오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지금 세계는 고정보화시대,긴밀한 네트워크시대,고속 교통시대에 들어섰다. 위에서 제기했다시피 조선족사회는 문제점도 많고 곤란도 많다. 하지만 상호 긴밀히 협력하고 보완하고 노력한다면 조선족사회의 발전은 계속 관성을 잃지 않을 것이고 미래상은 더욱 바람직한 변화와 양상을 가져올 것이다./류대식          
9    한국어 '중국 인명, 지명표기'에 대해 댓글:  조회:3832  추천:4  2013-11-13
한국어‘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에 대해 새로운 한국어 '외래어 표기법'이 이런저런 시비논란이 많은 가운데 지금은 그대로 실행되고 있다. 하지만  실지 실행 중에서 상당한 불편함과 오해와 오도를 가져다주고 있다. 새로운 어법을 제정하는 것은 언어를 더욱 과학적으로 활용하고 언어생활과 언어의 발전에 도움을 주자는게 그 목적이다. 그러나 이번의 '왜래어표기법'은 상당한 역효과를 일으킨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는 한차례 틀린 결책이라 말하지 않을수 없다. 본문에서는 새'외래어표기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외래어표기법'중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법'의 실제 실행 중에서 존재하는 문제점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본문은 새 '외래어표기법' 실행 이후 요근년의 KBS,MBC방송,연합뉴스,중앙일보,조선일보,daum,naver 등 한국의 대표적인 방송, 신문, 사이트에 방송되고 게재된 글들을 자료로 하였음을 먼저 언급한다. 현행 한국어 '외래어표기법'중 '중국의 인명, 지명 표기법'에 따르면 중국의 인명, 지명은 중국어 발음 그대로 적고 발음하기로 되어있다. 그런데 중국의 인명, 지명표기가 실제 활용 가운데서 정확하지 않게 표기되는 것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대충 통계해 보아도 절반 이상의 인명, 지명표기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럼 아래에 필자가 수집한 것들을 몇가지 분류로 나누어 얘기해 보련다.   첫째,순하게 발음하고 표기하여야 할 것을 혀를 꼬부려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를 들면 중국 거물급 인물들인 '毛泽东'을 '마오저둥', '邓小平'을 '덩샤오핑', '胡锦涛'를 '후진타오','温家宝'를 '원자바오'로 표기하고 발음하는데 사실 '모우저뚱', '떵쇼우핑', '후진토우', '원쟈보우' 이렇게 표기하고 발음해야 가장 중국어 원음에 접근한다.지명을 표기함에 있어서도 '辽宁省', '랴오닝성'으로 '青岛'를 '칭다오'로 발음하고 표기하는데 '료우닝성', '칭도우'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중국어 원음에 접근하는 것이다.  둘째, 되게 발음하고 표기하여야 할 것을 순하게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를 들면 '上海'를 '상하이', '三东'을 '산둥', '深圳'을 '선전', '大连'을 '다롄'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는데 사실 '上海'를 '쌍하이', '三东'를 '싼둥', '深圳'을 '썬쩐', '大连'을 '따롄'으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보다 중국어 원음에 보다 접근한다.  인명을 표기함에 있어서도 '마오저둥', '덩쇼핑'으로 표기하는데 응당 '모우저뚱', '떵쇼우핑'으로 표기해야 더욱 원음에 접근하는 것이다.  셋째, 순하게 발음하고 표기하여야 할 것을 오히려 되게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를 들면 '绥芬河'를 '쑤이펀허'로,'成都'를 '청뚜'로, 장강의 별명인'扬子江'을 '양쯔장'으로 표기하고 발음하는데 사실 '수이펀허'로, '청두'로, '양즈쟝'으로 발음하고 표기하여야 중국어 보통말 원음에 접근한다.  넷째, 'ㅑ'로 발음하고 표기하여야 할 것을 'ㅏ'로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를 들면, 흑룡강의 지명인 '牡丹江'을 '무단장'으로, '佳木斯'를 '자무스'로, '浙江省'을 '저장성'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는데 중국에서 태어나서 중국에서 몇십년 산 나의 귀에는 아무리 들어도 '牡丹江'이 '무단쟝'으로, '佳木斯'가 '쨔무스'로,' '浙江省'이 '저쟝성'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다섯째, 'ㅝㅣ'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정확한 것을 'ㅞㅣ'로 발음하고 표기한다.  예를 들면 '威海'를 '웨이하이', '康有为'를 '캉유웨이', '潍坊'을 '웨이팡'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는데 응당'威海'를 '워이하이', '康有为'를 '캉유워이', '潍坊'을 '워이팡'으로 발음하고 표기해야 중국어 원음에 가장 접근한다.  이밖에도 분류속에 넣을 수 없이 틀리게 표기되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면 '黑龙江省'(허이룽쟝성)을 '헤이룽장성'으로, '汶川'(원촨)를 '윈촨'로, '即墨市'(찌머시)를 '지모시'로… 등등 수없이 많다. 이렇게 틀리게 표기하고 발음하면 아래와 같은 위해가 있다. 첫째 보다 중국어 원음에 접근하게 표기할 수 있는  것을 표기하지 않았기에 헷갈리고 이런저런 오해를 빚을수 있어 사업과 생활에 상당한 불편함을 가져다주며 숱한 웃음거리를 만든다. 둘째로는 중국어를 정확하게 배우는데 많은 지장을 가져다준다. 지금 한국과 중국의 상호교류 상황은 말 안해도 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중국어 붐이 일고 있고 한국인들이 중국에 유학오고 중국어를 배우는 수는 놀랄만큼이다. 그런데 언어특징상에서 한민족이 중국어를 정확하게 발음하는데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런데 이렇게 중국 인명, 지명을 틀리게 표기하고 말음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어학습이 더욱 어려워지고 설상가상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놀랄만큼 오류가 생기는 걸까? 필자가 생각하건데 두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한국의 권위적인 중국어학자들의 교육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런 학자들을 보면 대부분이 나이가 60이 넘은 분들인데 이런 분들은 중국 대륙과 한국이 문이 열리기전에 중국어를 대만이나 홍콩에 유학하여 배웠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땅이 큰만큼 지방방언이 상당히 많은 나라로 각 지방의 방언은 보통말(표준어)와 발음체계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북에서 남으로 가면서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때문에 대만이나 홍콩에서 중국어를 배운 이런 분들의 발음은 대만, 홍콩지역방언의 냄새가 배지 않을 수 없고 보통말을 해도 '대만식보통말' '홍콩식보통말'을 할 수밖에 없고  중국어 보통말과 큰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둘째로는 어떤 발음은 한국인들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고 어떤 것은 번연히 틀린 줄 알면서도 그렇게 발음하는 것이 편안해서 그렇게 발음하고 표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오류가 난무하는 새 '외래어표기법'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첫째 필자의 생각에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현애륵마(悬崖勒马)로 현행 '외국어표기법'사용을 중지하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로는 기어이 현행 법대로 하면 위와 같이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지금 세계는 지구촌으로 축소되었고 우리 조선민족은 점점 하나로 뭉쳐가는 추세다.그렇기 때문에 한국어도 이제는 한국의 한국어,한국인의 한국어인 것이 아니라 우리 전체 조선민족의 한국어다. 때문에 문제점이 있으면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같이 해결해야 한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언어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언어학자들의 참여가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중국어와 관련된 문제에 있에서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중국어 언어환경에서 자란 조선족이 절대적 우세가 있다. 때문에 이런 우세를 발휘하여 한국의 언어학자들과 중국의 조선족언어학자들이 마주앉아 한국어에 존재하는 이런 문제를 공동히 해결하고 한국어규법을 더욱 과학적이고 실용성이 있게 제정하여야 한다고 본다.       
8    인연(외1수) 댓글:  조회:2062  추천:2  2012-12-03
인연(외1수)              류대식   어느 봄날 아침   그대가 호젓한 기분으로   청신한 아침에 취해 뜨락을 거닐 때   지난밤 봄비에 어지러이 떨어진   하아얀 사과꽃을 서뿔리 밟지 마세요   아십니까? 그것은   저가 천년을 기도하여 얻게 된 저의 소원이   가장 어여쁜 모습으로 그댈 만나려   이 봄날을 기다려 어렵게 어렵게 그대곁에   핀것입니다   어느 가을날 식후   그대가 한가로운 기분으로   빨알간 사과 하나 깎아서 입다심할 때   보다 진한 그 향기를 무심히 삼키지 마세요   아십니까? 그것은   저가 2천년을 기도하여 갖게 된 저의 그리움이   그대의 몸속에 잠시라도 머물고싶어서   모진 진통을 달가이 견디며 정성껏 정성껏 발   효된것입니다   어느 잠풍한 오후   그대가 울적한 기분으로   하얀 눈을 밟으며 외롭게 바장일 때   어깨우에 조용히 쌓이는 눈송이를 귀찮게 털   지 마세요   아십니까? 그것은   저가 3천년을 기도하여 차례진 저의 꿈이   그대의 귀전에서나마 한겨울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싶었던   절절했던 갈망이 잉태한 소중한 연분입니다   아, 썩 오래전 썩 오래전 전생   우리의 오해가 너무 깊었던가요   춘하추동이 아무리 흘러흘러도   이생 연분 고작 이래야만 되는가봅니다   언젠가는 천상에서 만날 날이 있겠지요   하지만 상봉의 그날 우리는 알아볼수 있을가요   수없는 세월의 륜회속에 속눈섭마저 다 하야   져버린   서로의 모습을!                 어    둠   불을 끄니   어둠이 목을 조인다   아악ㅡ   주먹으로 어둠을 치니 주먹이 아프다   발길로 어둠을 차니 발이 아프다   이발로 어둠을 물어뜯으니 이발이 시리다   아악ㅡ   벌컥 불을 켜니   어둠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주먹이 아플뿐이다   발길이 아플뿐이다   이발이 시릴뿐이다.   어둠이 유리창너머에   서 멀거니 집안을 들  여다본다
7    방문취업제 시험,이렇게 하면 안되나? 댓글:  조회:2670  추천:122  2008-06-06
  방문취업제시험, 이렇게 하면 안되나?      2007년부터 실행된 무연고자방문취업제는 범조선민족의 화합과 발전도상나라 동포사회의 보다 풍요로운 생활과 발전을 위해 새로운 장을 펼쳤다고 보편적으로 긍정하고있다. 고국의 따사로운 동포애를 절실히 느끼게 하는 좋은 정책이다.하지만 구체실시에서 이런저런 여의치 못한 점들이 나타나 이런저런 론난이 일고 있다. 많은 문제점들이 많은 언론인들에 대해 언급되여왔지만 내가 말하려는건 방문취업 시험장소문제다.     중국 전영역에 18개 시험 장소가 설치되였는데 그중 조선족이 많이 살고있는 동북3성에 연길, 할빈, 장춘, 대련 4개만 설치되였고 그것도 몇천명으로 시험좌석이 아주 제한되여있는것이다. 그리하여 타지방에 등록한 수험생은 방법없이 불원천리하고 몇천리밖에 가서 몇천원의 비용을 팔며 시험을 봐야 하는 로고를 치러야 했다. 지어 전용뻐스를 파견한다던가 연길역에서는 전용렬차를 증가하는 등 큰 거동을 일으키지 않으며 안되였다. 경제상에서도 그렇다. 대충 짐작잡아도 한번 시험에  인민페 몇천만원이 소비되는 큰 경제활동이다.     관건은 시험좌석문제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 먼거리를 가지 않도록 본지방에서 시험을 치를수 있도록 수험생을 집중시키면 안되는가 하는 말이다.즉 연변의 사람은 연변대학 시험장에서 모두 치르게 하고 흑룡강사람은 할빈시험장에서, 그리고 관내에 사람들은 자기가 치르고싶은 곳에서 모두 치르게 하게 말이다. 시험장소의 좌석만 늘이면 되는는것이 아니겠는가? 교실은 얼마든지 있으니깐. 어떻게 시험주관부문이 정부와 협상하여 본지방에서 시험을 치르게 할수 없겠는가?그러면 경제뿐만아니라 여러면에서 수험생들의  부담을 크게 줄일수 있을것을.
6    약한자의 슬픔 댓글:  조회:3419  추천:136  2008-06-01
  약한자의 슬픔 류대식   내가 연변대학 조선-한국학연구중심사무실에 홀로 있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낯선 두남자가 들어섰다. 앞에선 키도 좀 크고 꽤 실한 중년남자가 허리를 굽석굽석하며 “왜람되지만,저 일본에서 왔는대요,여쭤볼 말씀이 있어서요...” 하며 자아소개를 했다. 좀 더듬거리나 꽤나 류창하게 하는 조선말이였다. 나는 우선 자리를 권하며 용건을 물었고 명함장도 교환했다. 그 남자의 명함장에는 이름이 요리노(吉野)고 일본 모방송국의 보도담당 부부장이라 씌여있었다. 그리고 몇 년째 한국 모대학에 주재하고있다는것도 알게 되였고 이번에 중국에 온 목적은 여러 계층의 중국 조선족이 조선과 한국에 대한 태도를 료해하러 왔다면서 시간여유가 있으면 저녁에 같이 식사하면서 얘기를 좀 나누자고 했다. 나는 확실한 약속을 할수 없었으므로 그때 가서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들은 인츰 갔고 나는 그일을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 다섯시쯤 되자 그 일본사람한테서 저녁에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저녁에 별다른 일이 없고 그래서 일어회화훈련도 할겸 연변대학부근의 흥콩식당에서 배동한 통역과 셋이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였다.그는 거의 조선어를 했고 나도 거의 일본어로 대화를 했다. 요시노는 내인상속의 정밀하고 빤빤한 일본 사람과 달리 차림새나 모양부터 좀 텁텁한 그런 류형이였다. 그래서 우리사이는 인츰 가까워질수 있었고 우리 사이의 대화는 자연스러웠고 화기애애했다. 그는 중국 조선족들의 조선, 한국과 중국에 대한 태도, 조선족의 현황과 앞으로 타산 등등 문제를 물었는데 내식으로 적중하다고 생각되는 대답을 주었다.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사이에 우리의 식사는 끝나서 옆집 커피점으로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는 어느덧 일본의 조선과 중국에 대한 침략, 야스구니진쟈참배, 위안부문제 등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피할래야 피할수 없는 민감한 문제로 넘어가게 되였다. 왜 너희 일본은 철같은 침략사실을 진심으로 참회하지 안고 아직도 교과서에다도 침략사실을 외곡하고있으며 전쟁범의 령위가 안장되여있는 야스구니진쟈를 수상부터 계속 참배하는냐 왜 위안부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안느냐 등 질의를 나는 어지간히 격해서 성토했다. 그러자 그는 교과서가 여러종류 되는데 대부분 교과서는 침력사실을 외곡하지 않았고 지금 젊은 일대들은 대부분이 일본이 아세아국가를 지원했지 침략했다고 인정하고있지 않으며 그동안 일본은 아세아국가에 경제상 많은 지원과 보상을 했으니 빚을 많이 갚은 셈이고 야스구니신쟈참배문제도 그들은 전쟁을 일으켰지만 죽었기에 죽은 다음에는 응당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해줘야 되지 않겠느냐 라고  변명을 했는데 그의 태도는 나의 정서와는 달리 점잖으면서도 겸손하였고 그러면서 그어떤 자부감과 우월감이 몸자세와 얼굴표정에서 진하게 우러나고있었다. 그의 변명을 들으며 나는 화기애애하던 우리사이를 갈라놓는 게센 파도가 철석이는 차디찬 동해바다를 보았고 그물빛속에서 어른거리는 군인과 총칼과 포탄의 작렬을 보았다. 나는 지금 원쑤와 마주하고있는것이다! 개개인을 떠나서 화제가 나라와 민족의 원칙적인 문제의 초점에 닿았을 때 비록 그것이 비공식적인 일상대화에 지나지 않다만은 서로가 자기의 민족과 나라를 대표하여 말하고 있는한 조금치의 양보도 해서는 안될것이였다. 연발사격을 하듯 일본의 침략만행과 현재일본의 그릇된 태도를 성토하던 나는 불현듯 나의 성토가 요시노의 그 점잖은 자부감과 든든한 겸손함에 부딪쳐 산산히 흩어지는것을 보며 나의 분노가 얼마나 무력하고 비참한가를 뼈아프게 깨달으면서 허탈감에 빠져버렸다. 나는 지금 강자앞에서 “때려야할” 상대를 때리지 못하고 약자로서 약한자의 슬픔만을 하소연하고있는것이다. 내가 약한자의 슬픔을 하소연하고있는것은 결국 강자에게 무엇을 시사할것을 바라고있는것이고 지어는 가련하게 무엇을 구걸하고있는것이다. 어이하여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요시노처럼 강한자의 겸손함을 갖추지 못하고 일본앞에서 항상 약한자의 슬픔만을 하소연해야 하는가? 일본에게 내가 바라고 우리 모두가 바라는건 무엇인가? 아마도 우리의 원한이 풀릴만큼의 사죄와 반성과 배상이리라! 물론 우리가 요구하는만큼 일본은 영원히 사죄하고 반성하고 배상하지 않을 것이지만, 만약 그만큼 사죄하고 반성하고 배상한들 어쩌랴. 약한자의 슬픔으로 가득찬 우리의 상처와 력사는 영원히 지울수 없는것을! 제지하다싶이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약소민족이였고 시종 대국사이에 끼여 약한자의 슬픔과 한으로 가득찬 력사를 살아왔다. 물론 자부감을 갖게 하는 자랑찬 력사가 없은것은 아니지만 우리로 하여금 항상 강한자의 겸손을 갖추도록 하기에는 그 질량감이 많이 부족하다. 사람마다 국가마다 민족마다 다 이런런저런 각색을 맞고 력사를 써가고있다. 그렇다면 우리민족은 항상 약한자의 슬픔을 하소연하며 살아야 하는것이 숙명이란 말인가? 머리를 수긍하고 긍정적인 대답을 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다. 인생을 돌이켜 살수없듯이 력사도 돌이켜 살수 없다. 바람직한 자세는 희망차고 강한 래일을 기약하는것이리라. 약한자가 강해지려면 힘을 모아야 한다. 원래 약한데 흩어지면 더욱 약해질수밖에 없다. 때문에 조선반도뿐만아니라 전지구촌의 모든 우리민족이 상호 단합하고 상호 보완하고 굳게 뭉치는길밖에 없으리라. 그래야만 약한자는 강해지고 약한자의 슬픔을 딛고 강한자의 겸손함을 여유있게 갖출수 있는 길이 열릴것이다. 약한자의 슬픔, 강한자의 겸손앞에서 비참해진 그날의 그 약한자의  슬픔은 아직도 나의 마음 한구석에 굳은 응어리로 맺혀있다!
5    '한류'는 막대한 재부 댓글:  조회:2586  추천:116  2007-05-20
  ‘한류’는 막대한 재부 류대식     2006년도 할빈빙설제는 중국과 한국이 함께 개최하게 되여 빙설대세계속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경복궁, 첨성대가 휘황찬란한 모습으로 세인들 앞에 나서면서 중국의 한류(寒流)속에 몰아치는 한류(韩流)의 열풍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했다. 광활한 중국대륙에서 점점 거세지는 ‘한류’다. 중국의 방방곳곳에서 한국상품이 판매되고있으며 한국 텔레비죤드라마, 영화가 련속부절히 방영됨과 동시에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있고 이미 중국 백여개의 대학에서 한국어학과를 개설했고 많은 한국기업의 진출과 더불어 60만의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장기 거주하고있다 한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한국을 알고 한국말을 몇마디라도 하는것을 일종 류행으로 알고있다. 옛날에는 자본주의 나라, 적대의 국가, ‘남조선’으로만 미약하게 알려지고 한국이라는 그 나라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얼마 안되던 한국이 짧은 십여년 사이에 이제는 960만평방메터의 광활한 중국대지를 휩쓰는 ‘명브랜드’로 되였다. ‘한강기적’을 뒤이은 또 하나의 기적-‘한류기적’라고 하겠다. 그만큼 경제적면에서도 큰 재부를 산출했음을 의미하고있다. 중요한것은 앞으로의 비전이다. 중국에서 ‘한류’ 그자체는 바로 막대한 재부의 무한한 가능성을 배태하고있는것이다.     수요가 있고 접수가 있고 공급이 되고 구매를 하고 따라서 리익을 창출하는것, 이것은 아마 간단하면서도 철같은 경제법칙일것이다. 이가운데서 접수라는 연인소가 접착제와 같은 관건적인 역할을 하고있다. 아무리 수요가 있고 공급이 따라가도 접수하지 않고 따라서 구매하지 않으면 경제의 흐름은 단절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한류가 중국대륙에서 거세게 불어치고있다는것은 바로 중국인들에게 한국이라는 이미지가 호감과 함께 접수되고있다는것이다. 두말할나위없이 이것은 대중국비즈니스의 호세다. 남은것이란 이런 한류의 동풍에 어떻게 배를 띄우고 닻을 올리며 더욱 가세를 가하는가 하는것이리다. 그런데 이런 ‘한류’현상을 랭정하게 살펴보면은 그 기세에 비해 실리적인 결과가 뒤처지는, 우뢰만큼 소나기의 비례가 따라가지못하는듯한 감을 준다. 이것은 중국에서의 미국과 일본의 정황과 비교하여 살펴보면 알수 있을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개혁개방이후 중국과 가장 빠르게 경제협력이 진행되고 또 목전까지 협력관계가 가장 높은 수치를 올리고있는 나라다. 하지만 개혁개방부터 지금까지 회고해보면 사회생활가운데서 미국과 일본의 존재를 시시각각 느끼면서도 ‘미류’, ‘일류’ 같은 붐은 인것같지 않다. 미국은 그 막강한 힘으로 어쩔수 없게 중국의 경제기반을 뭉청뭉청 차지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거부감속에서 반발이 끊임없었지만 홀연 어느날 사회생활의 구석구석에 깊이 침투된 인자(忍者)처럼 조용히 다가선 일본을 발견하게 되였던것이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현상을 ‘한류’와 비해보면 미국과 일본은 많이는 ‘선진적인 힘’에 의거했다면 ‘한류’는 ‘선진적인 힘’도 힘이겠지만 우선은 중국인들이 결여되고있는 감정색채가 짙고 섬세하고 화려한 한국의 ‘표현주의문화’가 감정적으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은것 같다. 때문에 실리적인 비즈니스는 그 기세에 비해 포말이 많이 섞이게 된것이다. 하지만 어쨌던 ‘한류’자체는 막대한 재부를 배태하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한류’는 대중국비즈니스에서 한국뿐만아니라 중국 조선족 나아가서는 전세계 모든 조선(한)민족의 재부이다. 이 재부를 어떻게 발굴하는가 어느만큼 발굴하는가 하는것은 실력을 기초로한 구체적인 실천에 달렸다. 특히 중국 조선족들은 자신의 특수한 우세를 잘 발국한다면 이런 ‘한류’속에서 보다 많은 성공의 기회를 잡을수 있을것이다.
4    중국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댓글:  조회:2747  추천:142  2007-04-16
중국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류대식        1992년도에 중한수교가 정식 확립되면서 중국과 한국간의 제방면의 교류와 협력이 대폭으로 발전해오고 지금에 와서는 한국은 중국의 제5무역국,중국은 한국의 제3무역국으로 상호 부상되고  앞으로도 량국의 협력이 계속 가강될 추세다. 하지만 협력과정중 불가피하겠지만 이런저런 여의치 못한점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고 대중국 진출 한국기업이 70-80프로 실패했다는 놀라운 수치가 나와 저으기 안타깝게 한다. 그것은 조선반도가 고국이라는 점뿐만아니라 우리 중국조선족의 발전과도 아주 밀접히 관련되여 있기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쌍방의 이러저런 원인이 다 있겠지만 중국조선족이라는 제3자의 립장에서 한국측의 원인을 찾아볼 때 한국인들이 우선은 중국에 대한 전면적이고 올바른 인식이 결여되여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보면은 많은 한국인들은 아집의 한국적인 시각과 사유방식으로 중국을 접근하고 인식하고 판단하고 실천하고 있는데 이것이 결국 왕왕 리상적이 못되는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지 않아나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우선은 중국을 대하는 태도에서 현시점의 앞선 한국의 차원에서 뒤떨어진 중국의 현실만을 보지말고 력사적으로 5천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고 세계최정상의 문명을 창조했던 나라라는것을 선입견으로 가지고 그 무궁한 문화저력을 인지하면서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150년전 청말전까지는 중국이 시종 세계의 강대국이였다. 크게 굴러왔고 크게 굴러가고있는 대국이기에 한국같은 소국에서는 미칠수없는 가능성도 창조할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무슨 일이든 겸손하면서도 확장하여 생각하여야 한다고 본다. 물론 자신심의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쩍하면 “우리 대한민국”, “우리 대한민국국민”하면서 호기를 부리는 경박한 태도같은것은 많이 삼가야 할것이다. 절대대부분 한국인들이 중국에 오는 목적은 사업에서 성공하자고 온것이지 그어떤 ‘발설’을 하자고 온것이 아니 잖는가?정말이지 나는 중국에서 몇십년 살면서 일상 사업, 생활에서 중국인들이 “우리중화대국”, “우리대중국” 하는 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리성적이고 현실적이고 내실적이다.    다음으로는 중국은 960여만 평방킬로메터에 56개민족으로 구성된 큰나라기에 천차만별의 지역적 특수성이 존재하는 나라라는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통성도 있다. 면적을 보면 중국은 한국의 백여배가 된다.그래서 한국처럼 서울에서 번개치면 부산에서 비가오는 식의 통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북을 좀 알았다해서 중국을 다 알았다 할수 없고 북경을 알았다해서 대도시를 다 꿰뚤었다고 장담할수 없는것이 바로 중국이다. 그만큼 중국은 지역성적인 차이가 크다. 편벽산골에서는 일인당 일년수입이 인민페로 몇백원이 되는데도 있지만 북경, 상해, 심수 같은 대도시에서는 보통 월급이 몇천원에서 만여원에 이른다. 서북지구의 일부 락후한 곳은 아프리카의 락후한 곳을 방불케하지만 북경, 상해,심수, 대련 같은 대도시는 그 발달수준이 발달한 나라의 일류도시들과 비길수 있다.   또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에 비해 물가가 그만큼 싼 나라이라는것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절대적수입은 발달한 나라와 큰 차이가 있지만 물가가 싸기에 승용차, 외국유람같은 고급소비는 보편화되고있지 못하지만 입을건 다 입고 먹을건 다 먹고 흉내는 다 내면서 유유작작하게 산다.좀과장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서민들이 제일 살기좋은 나라의 하나가 중국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에 와 장기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재한국 중국인들보다 3배나 되는 60만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셋째, 경제상황의 표면과 리면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중국은 아직 법제가 완비화되지 못했기에 엉성한 공간들이 많다. 따라서 발전도상나라들이 다 겪는 “암경제현상”이 엄중하다. 물론 이런 암경제는 비법적인것도 있고 합법적인것도 있고 그가운데 있는것도 있다. 어쨌던 많은 사람들이 업여수입이 다다소소 있는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표면상 한달 천여원수입, 몇천원 수입으로 실질경제 정황을 가늠하면 정확치 않다. 보통 월급쟁이들도 주먹구구로 따지면 먹고 쓰면 남는것이 없겠건만 실제생활은 입을건 다 입고 먹을건 다 먹고 자식공부 다 시키고 아빠트를 사고 그렇게 빠지지 않고 산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함께 어울려 사는우리 조선족들도 늘 고개가 삐딱해지고 리해안갈 때가 많다. 물론 이런 암경제는 정확한 통계수치를 내올수 없다. 하지만 놀라운 어마어마한 수치로 돌아가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때문에 중국의 평균 GNP나 GDP는 한국의 십분의 일정도지만 지금 중국의 수준에서 부유하게 잘사는 사람들의 수자는 한국의 인구보다 더 많다고 한다.  넷째,중국의 세계적인 영향력과 경제규모의 절대적수치와 미래의 비전도 보아야 한다.지금 중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제4위로써 절대적수치는 세계11위인 한국보다 많이 앞서고있다. 그리고 국제영향력에서도 그 작용이 점점 커지고있고 세계적으로 미국과 감히 <<동등하게 대화>> 할수 있는 몇개 안되는 나라중의 하나이다.그리고 지금 중국은 시종 급성장을 하고있으며 적지 않은 분야는 잛은 시일내에 선진국을 따라잡을것이다.   때문에 한국을 인식하는 사유방식으로 중국을 판단하고 처사한다면 왕왕 예산과 빗나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중 한국기업의 성공률이 가장 낮은것이 이문제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그러니 절대 중국을 만만하게 보고 간단하게 보고 편면적으로 보아서는 안될것이다. 많은 면에서 중국이 뒤떨어졌다해서 앞선것과 가능성을 보지 못하면 안될것이고 뒤떨어져도 어느만큼 뒤떨어졌는가를 공정하게 정확하게 판단해야 할것이다. 이면에서 한국인들의 판단은 왕왕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다. 례를 들면 북경역을 보고 “중국은 한국보다 50년은 떨어졌어.” 하는식의 결론를 내린다거나 위생정황을 보고 지금의 중국을 한국의 60년대와 등호친다거나 하는식의 종적이고 편면적인 판단같은것이다.   때문에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중국진출 및 대중국협력에서 성공할수 있는 기초적인 관건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3    [사회] "닭을 잡아' 누구를 보이려나? (류대식3) 댓글:  조회:2708  추천:134  2007-03-09
칼럼 《닭은 잡아》누구를 보이려나?  류대식 한어에는 《닭을 잡아 원숭이에게 보인다(杀鸡给猴看)》란 성구가 있다. 그 뜻인즉 한사람 혹은 소부분을 징벌하여 많은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그와 비슷한 뜻을 갖고있는 성구로는 《하나를 죽여 백을 경계한다(杀一儆百)》는 말도 있다. 얼마전 신문지상에서 이런 사진보도를 본적이 있다. 연해지구 모시에서 불의습격으로 유흥색정업에 종사하는 아가씨들을 100여명 잡았는데 모두 손에 수갑을 채우고 마스크를 끼우고 거리로 끌고나가 조리돌림을 시켰다는것이다. 수갑을 차고 머리를 푹 떨어뜨린 아가씨들옆에는 거쿨진 경찰들이 서있었고 각양각색의 관중들이길옆에 줄러런히 서서 희안한 구경거리를 만났다고 구경을 하고있었다. 얼핏보면 이렇게 하는것은 아마도《닭을 잡아 원숭이에게 보인다.(杀鸡给猴看)》는 격으로 유흥색정업에 종사하는 아가씨들을 징계하려는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사회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국을 들썩하게 하는 그시 사법부문의 이번의 특별한 행동이 또 하나의 눈감고 아웅하는격의 형식주의임을 간파할수 있다. 개혁개방을 한지도 어언간 20년이 가까와오고있다. 그사이 중국사회는 여러면에서 엄청나 변화를 가져왔고 사회생활도 여러모로 다양해졌고 풍부해졌다. 그중 유흥색정업(이 개념에 대해서 참 계선이 모호하다)도 관념상으로부터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이제는 중국대륙 어느곳에서나 여러가지 형식으로 암암리에 혹은 반공개적으로 밤생활을 장식하고있다. 물론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이기에 색정업에 대해 시종 금지하는 태도이고 자본주의나라처럼 《홍등구(红灯区)》도 없다. 하지만 《본전 없이 폭리를 얻는(无本万利)》 그 특점때문에 《달통된》 아가씨들이 이항업에 뛰여드는 수자가 늘어나고있는 추세며 그 기세도 점점 더 공개적이고 태연해지는 형편이다. 그리고 부정부패가 아주 보편화되고있는 지금에 유흥색정업을 경영하는 업주들은 모두 다다소소 정부의 관련부문과 이런저런 관계를 가지고있으며 관련부문에서는《한눈을 뜨고 한눈을 감아주기(睁一只眼闭一只眼)》 는 식으로 민분을 야기시킬정도로 과분하지 않으면 묵인하는 태도이다. 또 누구나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유흥색정업이 외국인 투자자들을 흡인하는 투자환경의 중요한 연요소(软要素)의 하나임을 뻔히 알고있기때문에 관련부문들은 《한눈을 뜨고 한눈을 감아주기》와 겉으로는 제지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일정한 정도에서 윤허하는 등 모순되고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일년에 몇 번씩 상급부문의 지시에 응부하여 형식적인 단속을 하고 제수없고 뒤심이 없는 아가씨들을 조금 붙잡아서는 법률적 제재를 하여 전과도 올리고 임무완성도 한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이런 미묘한 내막을 업주들이나 아가씨들이나 관련부문이나 많은 방관자들은 속으로 빤히 알고있는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여러면의 원인이 결합되여 유흥색정업이 계속 보편화되고 심화되고있는 추세다. 실제 정황이 이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진데 그시의 사법부문에서는 무엇때문에 눈감고 아웅하는것도 모자라서 문명국가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거리조리돌림징벌을 고안해내고 실천에 옮긴것인지? 이번 닭은 잡아서 도대체 어느《원숭이》를 보여주자하는것인지? 이전에 농촌에서 작풍이 단정치 못한 녀인들을 목에 헌신짝을 걸치게 하고 조리돌림을 시키던 일이 떠오른다. 아무리 죄를 진 사람이기로서니 법률규정에도 없는, 무지몽매한 시대의 최저한도로 인격을 무시하는 징벌과 비슷한것이 문명국으로 달리고있는 지금에 재현되고있다는건 참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감히 묻노니 그시의 사법부문 공직자들중 유흥색정장소에 가서 아가씨들의 손을 잡아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모르긴몰라도 몇이 안될것이다. 물론 성자체는 인류의 륜리도덕의 기초이고 건전한 사회질서형성과 밀접히 련계되였기에  도덕, 법률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인도하지 않으면 않된다. 문제는 도덕원칙대로 법률적규정대로 리행하지 않은데 있다. 기왕 실제정황이 법률규정대로 철저히 다스리지 못할 형편이고 앞으로도 계속 《한눈을 뜨고 한눈을 감아주기》를 할수밖에 없다면 관례대로 아가씨들을 붙들어 벌금이나 시켜서 돈이나 우려내고 말것이지 그렇게 요란하게 야만적인 인격모욕을 하는 거리조리돌림을 시킬 필요야 있겠는가? 그렇게 한다해서 유흥색정업의 기세가 절대로 숙그러들지 않을것임을 당사자들도 뻔히 알고있다. 그러니 이렇게 닭을 요란하게 잡는 목적은 경계대상의 원숭이에게 보이려는게 아니라 바로 상급부문에 보이고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들이 고심참담 고안해낸 특별한 행동이 오히려 정부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임과 코웃음을 사는 역작용만 일으킬뿐이라는걸 어찌 모른단말인가. 그러니 이런  눈감고 아웅하는격의《닭을 잡아 원숭이에게 보이》는 유희는 놀지 않는것이 더 고명한 처사가 아니겠는가?
2    [칼럼] 동화현상의 엄중성 중시하라 댓글:  조회:2553  추천:92  2007-03-04
동화현상의 엄중성 중시하라류대식우리 조선족이 차츰차츰 타민족으로 동화되여간다. 동화는 어쩔수 없는 추세다. 50년 후이면 중국에서 조선족이란 민족이 사라진다.우리는 이런 말들을 주위에서 심심찮게 들을수 있다.보통사람들도 이런 얘기를 화제속에서 담론하고 지성인들은 민족적사명감으로 강력하게 호소하며 이런저런 대책안들을 내놓고있지만 조선족들이 줄어드는 수자가 력연히 알리지 않고 하니 절대대부분 사람들이 좀은 심드렁하고있는 상태인데 우리 주위를 세심하게 살펴보면은 조선민족의 동화현상이 얼마나 엄중하게 서서히 소리없이 되여가는지를 소스라치게 발견할수 있다.우리민족의 동화현상은 조선족정체성해체의 주요한 원인의 하나이기도 하다.보면 조선족의동화현상은 대개 세가지 방식으로 나타나고있다.첫째는 어렸을적부터 타민족학교에서 공부하고 타민족들의 생활권에서 생활하면서 조선어와 조선문자, 조선족의 풍속습관를 모르거나 거의 모르고 결혼도 비슷한 상황을 갖고있는 조선족 이성과 하고 그리하여 호구에는 모두 조선족이고 자식들도 순수한 조선족이지만 실제 생활모습은 타민족이나 다름없어서 후대는 더욱 타민족화되는것이다.둘째는 조선학교에 다니고 조선족민족교육을 받았지만 타민족생활권에 생활하면서 차츰 타민족으로 실질적인 동화가 되는것이고 셋째는 이런저런 원인으로 타민족과 결혼하면서 타민족으로 동화되는것이다.타민족과의 결혼은 두가지 정황인데 하나는 조선족녀자가 타민족남자에게 시집가는것이고 하나는 조선족남자가 타민족안해를 맞는것이다.첫번째 경우는 법률적으로나 풍속습관적으로 볼 때 절대적으로 동화되는것이고 둘째경우는 법률적으로나 풍속습관적으로 볼때 응당 타민족안해가 조선족으로 동화됨직한데 중국에 살고있기에 경우가 다르다.두번째 경우 왕왕 조선족남자가 주위환경에 의해 타민족으로 동화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식들도 분명히 아버지의 성씨를 따르고 민족을 따르지만 왕왕 어머니쪽의 영향을 많이 받아 타민족으로 차츰차츰 실질적인 동화가 되어버리는것이다.목전 우리조선족이 얼마나 동화되였느냐 타민족과의 결혼수자가 얼마이냐 하는 구체적인 통계수자가 나오고있지 않아 믿음성이 있는 구체적 수치로 동화현상을 설명할수 없지만 자기주위의 친척들,친구들,이웃들의 정황을 통하여 확률적으로는 알수가 있다.우선 나의 주위를 살펴보자. 나의 친형제는 셋인데 결혼 두사람은 모두 동민족끼리 결혼하였다. 하지만 먼 친척은 제쳐놓고 사촌들만 보아도 타민족과의 결혼비률이 아주 높다.나의 친사촌은 셋이 있는데 련애중에 있는 사람이 하나,그것도 녀자이고 석사연구생인데 타민족하고 련애하고있다.외사촌형제들은 모두 12명,그중 결혼한 사람이 8명, 그런데 타민족과 결혼한 사람이 셋이나 된다.그러니 그비률이 놀랄만큼 엄청난것이다.다음은 우리 단위의 정황을 살펴보자.우리단위는 전형적인 조선족단위이다.단위의 임직원은 정년퇴직한 분들까지 합하여 40명쯤되는데 다 조선족지식인들이기에 혼인에 대해서 민족성이 아주 강하다. 그래도 두분의 세자식이 이런저런 원인으로 각각 타민족남자, 타민족녀자와 결혼했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에 우리 단위에서는 대학졸업생을 네명 받았는데 그중 세명(녀성)은 어려서부터 타민족학교에 다니고하여 한사람이 조선말을 겨우 알아듣는정도이고 둘은 조선말이 깜깜부지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습관, 기질,사유방식 등은 완전히 타민족과 다를배 없다. 만약 그들이 우리 단위같은 조선족단위에 오지 않았더라면 십상팔구는 타민족의 예비며느리감들이다.이외에도 친구들,이웃들이나 아는 사람들의 가정에서 타민족들과의 결혼정황이 비일비재로 나타나고있다.아마도 이런 정황은 모든 사람들이 다 발견할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일것이다.그리고 보면은 혼인에서 우리 조선족들의 관념도 많이 변화를 가져온것같다. 20여년전만하여도 우리는 타민족과의 결혼을 민족을 배신하는 부끄러운 일로 알고 절대대부분의 부모들은 견결히 반대하는 태도였고 지어는 부모자식관계의 단절,자살 등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되였는데 지금은 많이 관념이 바뀌여 대부분 부모들은 서운해하면서도 <저들이 좋다면 된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있다.그리고 기분을 내느라고그러는지 진심인지 타민족과의 혼인이 기성사실이 된다음에는 조선족부모들은 거의가 그것도 서투른 한어로 <한주 쵸센주 더우 이양(조선족이든 한족이든 다 한가지이다)>하며 며느리, 사위 삼은 기쁨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는데 그때마다 참으로 무거워지는 심정이다. 정말 조선족의 동화는 만족처럼 어쩔수 없는 력사의 추세인지.때문에 우리는 조선족의 동화현상의 엄중성에 대해 중시하지않은면 안된다. 뿐만아니라 리론적인 탐구에만 그치지말고 실질적인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어느 민족처럼 멀지 않은 장래에 저도모르는 사이에 전면적인 동화가 기성사실로 되어버릴것이다.보면 조선족들의 동화현상은 상대적으로 조선족이 집중되여있는 연변지구에 비해 산재지구거나 대도시들에서 비률이 높고 조선족이 상대적으로 집중되여있는 동북에 비해 관내의 조선족들의 동화비률이 더 높다.그러면 어떻게 하면 조선민족의동화현상을 극복하거나 적어도 그수자를 줄일수 있겠는가?첫째, 민족간부들이 민족정책을 선전하고 집행하면서 신문, 잡지, 방송,인터넷 등 언론 매체를 통하여 민족성 지키기의 선전을 보편적으로 진행하여 대중들의 관념속에 자기민족지키기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여야 하며 조선민족의 일원으로 되는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여야 하고 동화되는것에 대한 위기감과 함께 민족정체성지키기의 사명감을 갖게 하여야 한다. 둘째,동화의 시작은 민족언어를 못배우고 민족교육을 받지 못한데서부터 시작된다. 때문에 여론과 선전을 통하여 조선족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조선학교에서 공부하게 하고 민족교육을 받게 하도록 보편적인 관념과 인식이 형성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동화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고 대비하는 관건이기도 하다.셋째, 동화의 주요한 원인은 타민족과의 혼인에서부터 시작된다. 때문에 동족혼인프로젝트를 내와야 한다고 본다.목전 조선족의 타민족과의 혼인리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선족 당사자가 진짜로 사랑하는 타민족상대를 만나 결혼하는것이고 하나는 조선족을 찾고싶지만 합당한 상대를 찾지못하거나 순혼인을 위하여 타민족과 결혼하는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극소수이고 또 방법없는 일이고 때문에 될수 있는한 대방을 동화시켜오는 방법밖에 없지만 후자의 경우 가능한의 여러가지 방도를 모색할수 있다. 첫째, 가능하다면 정부차원 혹은 민간차원에서 관련조직기구를 내와 동족혼인자들에게 여러가지 장려 등 고무격려를 진행할수 있다. 둘째, 조선문 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 등 매체에서 지면, 화면을 무상으로 할애하여 미혼자들의 정황을 실어서 소개하여 미혼자들이 보다 많은 배우자선택의 기회를 제공할수 있고 구역별로 사교를 위한 모임도 마련할수 있다.셋째,조선족 처녀들이 한국을 위주로한 섭외혼인으로 대량 류실되고있는데 대비해서 우리도 이것을 미봉하는 국제혼인도 적극 추진하여 동족혼인의 량을 증가할수 있다.이렇게 구체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일정한 정도에서 효과는 보지 않겠는가 생각된다.력사를 보면 소수민족이 일정한 시기를 거치며 주체민족에게 흡수되고 동화되여버리는 일들이 많이 나타나고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많이 달라 비관만이 아닌 락관도 가질수 있다.그것은 우리의 뿌리인 조선반도가 엄연한 독립구가로 존재하고있기에 조선반도가 존재하는 한 조선반도가 계속 발전하는 한, 또 민족전체가 동화문제를 중시하고 여러가지 방도를 대고 조취를 취한다면 국부적인 동화가 되고 수량상에서 줄어들수 있지만 최하로 다른 민족처럼 완전히 소실되는 비운은 겪지 않을것이다.
1    [칼럼] 조선족발전을 위한 나의 일가견 댓글:  조회:2437  추천:111  2007-02-28
조선족발전을 위한 나의 일가견류대식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조선족은 또하나의 새로운 격변기속에 처해있다고 말할수 있다.전지구적인 랭전의 결속과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인한 세계와의 밀접한 련계,중국과 조선반도와의 점점 열려지고 밀접해지고 발전하는 관계,중국소수민족 일원으로서의 중국조선족의 특수성,이런 현실상황하에서 우리조선족은 어떻게 하여야 천변만화하는 소용돌이속에서 자체의 바람직한 발전을 기할수 있겠는가?아래에 필자는 자신의 약간의 소견을 피력해보려 한다.우선 국가적,정치적차원에서 말해보자.첫째,우리는 국가적으로 중국에 소속되여있는 중국의 공민이고 중국이란 나라가 우리의 삶의 주무대란 현실을 똑똑히 정시해야 한다.때문에 중국의 대기후에 따르는 정치,경제,문화…등 제면에서의 유관 정책,법규는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결정적인 여향을 줄것이다.물론 이것은 나라적인 거시적 책략으로서 우리로서는 좌우할수없는 일이다.하지만 우리의 능동적인 노력은 유관 정책과 법규가 가능한의 범위내에서 우리의 발전에 유리하게 제정되도록 직접적,간접적으로 여향을 줄수는 있다.이런 인위적인 노력은 주로 우리조선족을 대표할수 있는 유권인사,지명인 사들에게 의거하여야 할것이다.중국이 소수민족정책을 잘 펼쳐나가고있다는것은 세계적으로 공인하는바이고 우리소수민족 스스로도 자인하는바이다.하지만 필경은 소수민족이기에 보이게 안보이게 발전공간의 국한성이 존재하는데 조선족유력인사들이 민족적사명감을 안고 정책,법규 제면에서 쟁취할수 있는것만큼 쟁취하여 우리 조선족사회의 더욱 좋은 발전을 위한 기반적조건을 만들어주는것이 아주 중요하다.1950년대의 자치주의 설립,민족경제와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한 제정책…등은 오늘날 우리조선족이 이만큼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동화되지 않고 자기식 중국조선족문화를 보유하고 발전시켜 올수 있은 기반적 조건이였다. 또 몇년전에 이룩된 연변지구를 서부개발권안에,연변대학을 ‘211공정’100대대학안에 넣어 여러분야에서 정책적,경제적혜책을 받고있는것은 구체적실례라 할수 있다.때문에 이런 정치적인 조건의 쟁취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조선반도의 영향도 중요한 작용을 일으키고있다. 그것은 우리의 뿌리가 조선반도에 있기때문이다. 반만년의 력사를 이어온 조선민족의 한가래로서 중국조선족은 19세기말부터 생존을 위하여 오랜시기부터 밀접한 련계를 유지해온 이웃나라 중국의 동북에 새로운 삼의 터전을 마련하였지만 민족성을 지키는데는 세계의 그 어느민족보다 세계 어느나라의 조선족보다 완강하였다.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서부터 중한수교가 되기까지는 리념적,체제적 동질성으로 하여 중국조선족 문화가 북부조선의 여향을 많이 받으면서 형성,발전되였다면 개혁개방,중한 수교이후는 상황이 확 바뀌면서 한국의 영향이 중국조선족사회에 천지개벽적인 작용을 일으켰다.또 이런 영향은 앞으로 오랜시기동안 계속될것인바 중국조선족 사회의 건전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의 정부적차원에서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유익하고 합당한 정책들을 제정하고 실행하는것이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할것이다.목전 중국조선족에 있어서 가장 초점적인 문제가 되고있는 한국방문과 재한국취업문제,상관보장사항,국적취득문제…등등을 정부적각도에서 합리하게 거시적으로 해결한다면, 좀 극단적이지만 “조선족이 코리안드림에서 얻은것은 돈이요 잃은것은 일체다”, “잘된 사람보다 망한 사람이 더 많다.”는 론조가 더는 나오지 않을것이다.한국정부차원에서의 대중국조선족정책은 중국조선족사회의 이후 발전에 중국의 국책다음으로 중요한 작용을 일으킬것이다.다음으로는 중국조선족의 구체적행위실천에서 말해보자.마련된 기초적조건하에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 하는것은 주체인 인간에게 달렸다.여기에는 큰 가변성이 존재한다.그럼 행위의 주체로서 중국조선족은 어떻게 하여야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며 바람직한 발전을 기할수 있는가? 첫째,집중구의 건설을 가강하고 집중구가 조선족정체성 지키기의 근거지가 되고 조선족사회발전의 핵심이 되여야 한다고 본다.집중구건설에서 첫자리에 놓아야 할것은 바로 연변지구이다.자치주의 규모를 형성하였고 중국조선족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중국조선족의 경제,문화,교육의 중심지인 연변은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 그렇고 중국조선족의 “본가집”이 되는 곳이며 얼굴이 되는 곳이며 조선족의 위상이 결정되는 곳이다.때문에 연변을 살려야 하고 연변을 건설해야 하고 연변을 발전시켜야 한다. 연변지구의 튼튼한 기반건설은 연변지구의 매개인의 신성한 사명일뿐만아니라 중국조선족들, 나아가서는 전지구 코리안들의 리성적인 영명한 선택이여야 할것이다.그리하여 연변이 진정 중국조선족의 기반이 되고 조선반도의 남북을 이어주는 매개의 작용을 하여 조선반도의 통일을 이룩하는데 더욱 중요한 작용을 발휘하게 하며 나아가서는 동북아의 뜨는 지방으로 부상되게 하여야 한다.다음 흑룡강,길림,료녕 등 산재지구의 전통적집거구을 잃지 말고 고수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기해야 한다.이런 조선족집거구들은 중국조선족들이 몇대를 내려오면서 피와 땀으로 가꿔온 삶의 터전으로서 2세대,3세대,… 사람들의 고향으로 되고있는 곳이다.물론 거시적인 사회발전과 경제분포에 따르는 인규류동은 불가피하지만 땅을 팔지 않고 집을 팔지 않는한 최저한도로 머물수 있고 물러설수 있는 근거지가 있게 되지 않겠는가?또 이런 지구는 이미 닦아놓은 기초우에서 손을 펼칠수 있는 실리적인 경제,생활공간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데 조선족특색경제를 창업해본다거나 외지로 진출한 사람들의 땅을 대량 붙인다거나 소수민족의 정책혜택을 쟁취한다거나…어쨌던 잘될수 있는 기회가 있는것만은 사실이다.다음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새롭게 형성되는 할빈,장춘,심양,북경, 상해,천진, 산동반도,주강삼각구 등 도시중심의 코리아타운을 제2의 고향으로 잘 건설해 나가 야 할것이다.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한 도시의 진출은 막을수 없는 력사의 추세이다.중국조선족 200만 인구중 이미 50~60만이 농촌과 동북을 떠나 도시로 ,산해관 이남 대도시로 진출했다는건 그만큼 우리조선족이 경제,사회의식이 뛰여나다는것을 설명하며 발전이 빠르다는 설명도 된다.이런 대도시중심의 코리아타운은 정책적으로 형성된것이 아니라 경제와 삶의 질 향상을 중심으로 하고 동질성에 의한 “우리군체의식”에 끌려 형성된것이다. 때문에 이런 지방에서는 의식적인 기반건설,후대들의 교육문제,문화전통발양문제,상호의 협력문제…등등을 잘 해결해 나가야 할것이다.둘째, 중국조선족정체성지키기와 사회발전을 위한 리론적인 탐구,정신적호소와 더불어 실질적인 일계렬의 프로젝트를 내와야 한다고 본다.하나의 군체는 단개의 개체들의 집합이다.때문에 군체의 성질은 매개 개체의 성질에 의해 좌우된다.때문에 이런 개체를 어떻게 인도하느냐가 관건이다.그런데 주류를 결정하는 개체는 왕왕 군체의 선구자들에 비해 본능적인 생존을 앞자리에 놓고있으며 실리적인것에 많이 치중하게 된다.따라서 정신적인 추구가 실리적인혜택과 결합될 때 왕왕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다.지금 보면 중국조선족사회에는 이런 큰문제들이 존재하고있다. 조선족 전통 거주지역의 해체와 인구의 분산화현상,민족의식의 결여로부터 오는 실질적인동화현상,조선족인구의 감소,민족교육과 민족문화사업의 후퇴, 경제구조의 불균형과 실업문제…등등이다.이런 문제해결의 방안으로는 이런저런 도경이 있을수 있지만 실리적 유혹이 있는 일계렬의 프로젝트를 내오는것이 문제해결의 첩경이 되지 않겠나 생각된다. 례를 들면 집중구건설프로젝트,동민족혼인장려프로젝트,다출산장려프로젝트,민족교육과 민족문화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대조선족취업프로젝트,범민족네트워크의 건설…등등의 프로젝트를 내올수 있다. 물론 이런 프로 젝트의 진행은 경제의 뒤받침을 전제로 하여야 하는바 중국 내지는 범민족의 유지인사들과 유력인사들의 노력이 우선이 되여야 할것이다. 셋째,우리 중국조선족문화의 특수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정확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100여년의 력사를 걸쳐 형성된 조선족사회는 피와 땀과 목숨까지 바치는 험난의 력사를 거쳐 오늘날의 중화민족의 떳떳하고 당당한 일원이 되였다.동시에 우리의 문화는 조선반도의 문화를 원천으로하는 강한 맥락을 확보하고있는바 이런 이중성의 결합으로 조선반도문화와도 다르고 중화의 본토문화와도 다른 우리의 이색적인 문화를 형성할수 있었다.때문에 이런 특이성은 중국조선족문화의 생명인바 어떤 상황하에서든 이중성을 확보하면서 평형을 잡고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할것이다.즉 “민족적인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오직 “중국조선족적인것이여야 세계적”인것으로 될수 있고 따라서 더욱 바람직한 조선족사회와 조선족문화의 발전을 이룩할수 있을것이다.이렇게 중국조선족사회의 발전을 위한 일가견을 내놓아본다.물론 실천과정에는 많은 애로점이 존재하겠지만 방향이 명확하고 모두가 합심하여 작은것으로부터 한보한보 하나하나 실천해나간다면 중국조선족사회의 밝은 미래는 결코 지상공론만이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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