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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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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사"한복"에서 보이는 가사창작의 귀감 댓글:  조회:641  추천:0  2018-09-22
 가사 “한복”에서 보이는 가사창작의 귀감                               김은철 우연한 기회에 필자는 2017년 11월 “해란강 여울소리” 가사문학지를 보다가 놀랍게도 리상각선생이 쓰신 가사 “한복”을 보게 되였다. 선생께서 지금 건강이 좋지 않은걸로 알고있는데 완쾌되여 이 가사를 썼을가? 나는 기쁘기도 하고 의심도 되는지라 즉시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이 가사가 리상각선생이 언제 쓴 가사인가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김상군편집이 한는 말이 이 가사는 리상각선생이 쓴지 오래된 가사인데 아직 작곡가들이 곡을 붙히지 않았고 또 당전 가사창작초학자들이 따라배울만한 창작기법이 있다고 생각되여 재발표를 하였다는것이였다. 김상군편집의 말을 듣고 나는 이 가사를 다시 보며 무엇때문에 작곡가들이 이 가사에다 아직까지 곡을 붙히지 못했을가, 그리고 가사창작을 하는 초학자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창작기법은 무엇일가에 대하여 곰곰히 따져보았다. 우선 가사를 보자.          한복 당신의 살결처럼 부드럽습니다. 당신의 체취처럼 향긋합니다. 당신의 모습처럼 어여쁩니다. 아, 당신 몸에 어울리는 깨끗한 한복 언제나 당신을 떠날수 없습니다.   조용히 서있으면 노을입니다. 사뿐히 걸어가면 물결입니다. 말쑥한 그모습 천사입니다. 아, 마음으로 만져보는 계례의 한복 이몸도 당신을 떠날수 없습니다.   1절에서는 주로 한복의 어여쁨을 사랑하는 사람인 “당신”의 “살결”과 “체취”에 비유하여 노래하면서 한복과의 련정(联情)을 표현하고있다. 2절에서는 상징적비유로 “노을”과 “물결”로 한복의 어여쁨을 노래하면서 한복에 대한 서정적주인공의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1절의 “당신의 살결”과 “당신의 체취”, 2절의 “노을”과 “물결”은 작자가 한복의 어여쁨을 표현하기위하여 설정한 한복에 비유되는 구체적사물이다. 필자가 보기에 비유되는 이런 구체적사물에 대한 묘한 설정이 바로 초학자들이 따라배워야할 스승의 귀감적인 솜씨가 아닐가 하고 생각해 본다. 당전 가사창작에서 초학자들인 경우 다양하고 적절한 표현방법을 찾지 못하고 오로지 직설적으로만 표현하려는 경향이 보편적이다. 례를들어 “한복”을 표현한다면 “한복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옷이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것은 한복을 보고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수를 일반적 방법으로 기술한것으로 밖에 평할수 없다. 30여년전이라고 기억된다. 흑룡강성조선족창작자들이 작품토론회의를 가졌는데 고 박철준시인이 과장이던 비유이던 상관없이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에 물고기가 많다는것을 한번 표현해 보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러자 서로들 자기가 사는 곳에 고기가 많다는것을 거짓을 꾸며가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때 필자는 우리 고장에는 그물을 강에다 늘이면 그물에 걸려드는 고기를 미처 뜯어낼수 없이 많다고 했다. 그러자 강효삼시인이  자기네집 뒤에는 개울이 있는데 아침에 나가 낙시질을 해서 낚는족족 고기를 뒤창문으로 뿌려주면 안해가 받아서 아침 고기반찬을 장만한다는것이였다. 그 소리를 듣고 동녕현에서 온 전경남이라는 시인은 자기 마을의 아낙네들은 개울에서 빨래질을 못한다는것이였다. 왜냐고 물으니 빨래방치로 모여드는 고기떼들을 밀어버리다나니 언제 빨래할수 있느냐는것이였다. 그 소리를 듣고 자기 고장에 고기가 많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왜냐하면 더는 전경남시인의 표현을 초월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수의 가사를 쓰더라도 넓고 깊은 범위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여 가사내용표달에 힘을 기울려야 한다. 단어 하나의 고름에도 심중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이 가사를 씀에 있어서 상각선생은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한복과 비유되는 구체적 사물들을 설정했다고 본다. 다음 이 가사의 독특한 의사표달에 대하여 론해보자. 1절의 후렴에서 서정적주인공의 한복과의 련정(联情)을 완곡(婉曲)의 수법으로 씀으로써 표달의 형상성을 높혔다는것이다.  1절의 후렴에서 작자는 자기가 아닌 “당신”을 내세워 한복을 떠날수 없는 한복과의 련정(联情)을 표현하였다. 자칫 독자들은 무엇때문에 작자자신이 아닌 “당신”을 내세워 표현했는가 하면서 지어 역심까지 가질수 있다. 그런데 2절의 후렴에 가서 “당신”을 내세워 한복과의 련정(联情)을 표현한 작자의 예술적기량이 확연히 보인다. 작자는 한복이 계례의것임을 강조하면서 마음으로 만져본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한복에 대한 작자의 진정인바 그러기에 작자는 한복을 떠날수 없는 “당신”을 떠날수 없다고 쓰고 있다. 작자는 “당신”이 입고있는 한복의 어여쁨을 “무지개” “물결” “살결” “체취”등에 비유하여 묘사했고  어여쁜 이 한복이 계례의것임을 쓰고있다. 계례의것이기에 서정적주인공은 한복을 마음으로 만져보고 있고 “당신”은 한복을 떠날수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놓고보면 작자가 “당신”을 내세워 한복과의 련정(联情)을 표현한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 않고 초학자들처럼 직설적으로 “나는 한복을 사랑한다”고 쓰면 그것이 일반적 표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리고 작자는 사랑한다는 뜻을 “마음으로 만져본다”라고 쓰고있다. 이런 표현은 직설적표현보다 훨씬 감칠맛이 있지않는가! 다음 추측이긴 하나 작자가 이 가사를 쓰게 된 동기와 충동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중국조선족은 거세찬 정치투쟁과 계급투쟁을 경과하면서 한복에 대한 태도도 그 기복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때론 한복차림을 겸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은것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도 상각선생의 부인은 독특하다 할 정도로 한복차림에 신경을 쓰면서 한복의 어여쁨과 매력을 과시해 왔다. 때론 연길거리에서 단 한명의 한복차림을 한 녀인을 보기도 힘들었으나 상각선생의 부인만은 늘 한복을 산뜻하게 차려입고 출판사(편집직원이였음)로 출퇴근하였다. 하기에 뭇 사람들중 한복차림을 한 상각선생의 부인은 남들과 다른 독특한 어여쁜 매력을 과시하였는바 이 어여쁜 매력이 바로 한복의 뽐냄인것이다. 상각선생을 알고있는 사람들은 상각선생이 부인과의 부부정이 얼마나 진지했는가에 대하여 모두들 감탄할 정도로 찬사를 하고있다. 그렇다면 상각선생이 가사 “한복”을 쓰게 된 동기와 충동에 대하여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하리라 본다. 필자의 긍정적추측은 상각선생이 한복을 즐겨입고다니는 부인의 어여쁜 모습에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실감으로 느꼈고 그 느낌이 작자의 심령에 이런 가사를 쓰고픈 령감을 불러일으켰다고 본다. 령감이란 심령에 생기는 미묘한 느낌인바 령감이 떠오를때 작품을 써야 그 작품이 예술품으로서의 질적가치를 가질수 있다. 지금 연변의 가사들을 보면 고향, 부모님,연변과 연변의 자연경물 등등을 노래한 가사들이 주로 많이 창작되는데 필자가 보기에 과연 이런 가사들이 작자들마다 령감을 가지고 썼을가 하는 의문이 들때가 많다. 왜냐하면 이런 가사들을 보면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내용과 형식에서 변화가 없고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추상적인 제재로 쓴 가사들이 많다. 특히 고향을 노래한 노래가 그러하다. 반면에 생활을 제재로한 가사들은 많지 않다. 필자의 주장은 가사는 될수록 생활의 세절에서 령감으로 떠오르는 제재를 찾아 써야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가사 “한복”에 왜서 작곡가들이 곡을 붙히지 않았을가 하는 문제에 필자 나름대로의 견해를 밝히려 한다. 가사 “한복”을 보면 다른 가사들과는 달리 후렴구를 제외한 가사의 기본행이 3행으로 되였다. 노래는 일반적으로 선률을 이루고 있는 악구(乐句)들이 대칭적으로 맞물려 있다. 악구들이 대칭적으로 맞물리자면 악구의 수자가 우수여야 한다. 그런데 이런 악구는 가사의 행과 관계가 있는바 가사 행의 수가 우수여야 악구의 수도 쉽게 우수로 설정되여 나올수 있다. 그런데 가사 “한복”은 행의 수가 기수인 3행으로 되여있어 악구의 수가 우수로 되기 어려운것이다. 그러나 이 가사를 자세히 보면 이 난제를 해결할수 없는것이 아니다. 가사의 1절을 례를 들어 설명해 보자. 인과(因果)관계로 보면 1절의 첫 두행은 인(因)에 속하고 3행은 과(果)에 속한다. 즉 한복이 “살결처럼 부드럽고”, “체취처럼 향긋”하기에 3행에서 한복을 어여쁘다고 결론을 내린것이다, 그렇다면 가사의 내용으로부터 3행을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작곡을 할 때 3행을 중복한다면 작곡에서의 난제를 쉽게 해결할수 있다고 본다. 이상 가사 “한복”에 대한 필자의 짧은 견해나마  피력하오니 작사자, 작곡자 분들께서 참작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 생태문학" 잡지와 "해란강여울소리" 에 간략되여 발표되였음               
한동해시인의 가사창작에서 의상의 직설적표현과 상징적표현에 대하여               라주 한동해시인의 근작 가사들을 살펴보면 가사창작기법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것 같다. 이왕에는 주로 경물묘사에 작자의 의상(意想)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가사들이 많았으나 근래에는 경물묘사에 의상을 상징으로 토로하는 경향에로 전이하고 있는것 같다. 그 구체적인 실례로 얼마전에 연변텔레비죤매주일가로 방송된 “앞내가 버드나무”(리하수 작곡 임향숙 노래)를 실례로 들수있다. 우선 가사를 보자      앞내가 버드나무 눈이 녹은 내고향 앞내가에 버들개지 곱게 핀 버드나무야 아직은 푸른 잎새 피지 않아도 오는봄 반가워라 춤을 추누나 아, 앞내가 버드나무야 오는봄 반가워라 너울너울 춤을 추누나 봄물은 흘러흘러 멀리가도 고향땅에 뿌리박은 버드나무야 멀리떠난 철새들은 돌아오리라 새파란 꿈을 안고 춤을 추누나 아, 앞내가 버드나무야 새파란 꿈을 안고 너울너울 춤을 추누나 이 가사는 고향땅에 깊이 뿌리를 박고 봄을 맞는 버드나무의 형상을 의인화하여  애향의 짙은 감정과 아름다운 고향의 미래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고있다. 1절에서는 주로 봄을 즐겨맞는 버드나무의 형상묘사를 통하여 고향의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동경을 보여주고있다. 따라서 이 가사에서의 “봄”은 고향의 아름다운 미래를 상징하고있다. 2절에서는 멀리 흘러가는 봄물과 고향에 뿌리박은 버드나무를 대조시켜 묘사했는데 버드나무의 애향정신을 강조하면서 돋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멀리 떠난 철새”는 잠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상징하고있다. 고향사람들을 철새에 비유한것은 그들이 고향을 떠난것이 영원함이 아님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에게도 애향의 감정이 담겨있음을 말해주고있다.  “새파란 꿈”은 고향의 미래를 상징하고있다. 총적으로 이 가사는 의인화와 상징적수법을 타당하게 사용하였기에 작자의 의상이 독자들의 심미에 공명을 일으키면서 독자들에게 예술적인 향수를 뿜어주고있다. 다음 직설적 표현방법으로 쓴 가사 “빨간 단풍잎”(리하수 작곡 김선희 노래)을 보자. 이 노래는 “행복연변노래콩클”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빨간 단풍잎 내가 하냥 즐겨읽는 책갈피속에 곱게도 끼여있는 빨간 단풍잎 꿈을 안고 학원에서 공부할 때에 고향처녀 띄워보낸 빨간 단풍잎 아 세월이 흘러도 잊을수 없네 청춘시절 꽃펴주던 빨간 단풍잎 내 마음에 서리내려 허전할 때면 정열을 끓여주던 빨간 단풍잎 인생의 길 서로 달라 멀리 갔어도 그 순정이 그리워라 빨간 단풍잎 이 가사는 빨간 단풍잎을 매개로하여 이루어지지 못한 고향처녀와의 사랑을 애절한 심정에 담아 노래한 가사이다. 이 가사에서 사용한 “빨간 단풍잎”은 서정적주인공에 대한 고향처녀의 순정을 상징하며 “꿈”은 서정적주인공이 품은 리상,희망,지향을 상징하고있다. 그렇다고해서 이 가사도 상징적수법으로 썼다고 말할수 없다. 왜냐하면 전반 가사의 흐름이 상징적이 아니고 개별적단어만이 단어적인 상징적의미를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가사가 작자의 직설적인 서정토로로 씌여진 가사라고 본다. 이 가사에서 필자가 긍정하고 싶은것은 창작에서 한때 금지구역이였던 인간의 부당한 본질적인 사상감정실태를 진실하게 반영했다는점이다. 1절에서 단어 “하냥”은 후렴의 “세월이 흘러도”와 의미상 내재적 련관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루어 지지 못한 고향처녀와의 사랑을 애절하게 노래하고있다. 2절에서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할 고향처녀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원인을  시인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있다. “인생의 길 서로 달라”란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원인을 직접 밝히고 있다. 그럼 왜서 인생의 길이 서로 달랐는가? 바로 서정적주인공 나는 학원에서 꿈을 안고 공부하고 있었기때문이다. 개혁개방전에는 성향차별이 아주 컸는바 도시와 농촌의 청년남녀들지간에 혼사가 이루어진다는것은 극히 희소한 일이였다. 작자는 바로 이점을 틀어쥐고 인생이 서로 달랐기에 고향처녀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애절함을 토로하고있다. 이 점은 독자들에게 순결한 사랑을 추구함에 있어서 부당한 느낌을 줄수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실재한 현상들이였고 인간의 심리에 내재하고 있는 인간행위의 본능인것이다. 문학이 정치와 도덕에 얽매여 있을 때에는 “단풍잎”과 같은 이루지 못한 이런 사랑을 두고 두고 잊지못하는것을 도덕을 벗어난 부당한 행위로 보았던것이다. 최저한도 이것은 현실의 안해에게는 배반적 행위요, 사회에 끼치는것은 독해로  보았던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인간들의 생활에 이런 현상들이 실재해 있는것만은 사실이다. 하기에 문학적견지에서 본다면 쓰지 못할 리유가 없는것이다. 작자는 바로 이 점을 틀어쥐고 금지구역이라고 생각되는 틀에서 대담히 벗어나 이 가사를 쓴것같다. 여기에 바로 작자의 문학창작관점이 보이는바 필자 역시 이 점에 공감이 간다. 현실의 가사창작을 보면 생활의 어느 한 세절적인 측면을 틀어쥐고 쓴 가사들이 많지 못하다. 그런데 이 가사는 “단풍잎”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틀어쥐고 이루 지못한 사랑에 대한 애절한 정서를 조화시켰기에 독자들의 심미에 즉시적인 공명을 일으키고있다. 지금 가사창작자들은  대부분이 고향을 노래하는 가사나 부모님, 혹은 연변의 자랑을 노래하는 가사창작의 범위를 크게 벗어못나고 있는데 이는 우리 가사창작자들의 협소한 안광을 보여주며 정치와 도덕의 속박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못났음을 그대로 보여주는것이다. 때문에 이런 가사들을 보면 류사성이 많기에 예술작품으로서의 개성이 결핍하다. 개성이 없는 예술작품이 어찌 관중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킬수있는가! 다음 생활속의 세부적인 사물, 사연, 현상등을 틀어쥐고 쓰는 경우가 많지 못하다. 대부분 큰 제목에 대중들의 공성으로 느껴지는 현상을 소재로하여 가사를 쓰기에 여전히 류사성이 많고 개성이 결핍하다. 때문에 독자들의 심미에 공명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있다. 한마디로 생활의 맛이 풍기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한동해시인의 이 두수의 가사는 생활의 맛이 풍기는 가사로서 가사창작의 기법을 놓고 보거나 가사의미의 건실(健实)을 놓고 보거나 당전 가사창작에서 귀감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점이다. 그리고 이 두수의 가사 언어들을 보면 타당한 단어사용, 세련되고 간략한 짜임으로 하여 별로 흠잡을데가 없다. 총적으로 이 두수의 가사는 같지 않은 수법으로 씌여진 비교적 완미한 경지에 이른 가사들이라고 본다. 이 가사에서 서운하게 생각되는 점도 없지 않는바 례하면 첫수의 가사에서 “봄물은 흘러흘러 멀리 가도”에서 느껴지는 감수이다. 버드나무가 기다리는것이 봄인데 봄물은 멀리멀리 떠나가 버린다. “봄”이 상징적으로 고향의 아름다운 미래라고 할진대 봄물은 멀리멀리 떠나버린다면 시의를 나타내는 론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마땅히 봄물은 고향의 전야에 흘러든다라고하든지 아니면 봄물을 강물로 바꾸어 멀리멀리 떠나가 버린다라고 한다면 론리적으로 별모순이 없을것으로 볼수있지 않겠느냐는 견해다. 이상 한동해시인의 두수의 가사에 나타난 부동한 창작방법을 대비하면서 필자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력했는바 앞으로 가사창작에서 약간의 참작이라도 되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평론문장은 2014년 제4기 "문화시대"에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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