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에 대한 나쁜 선입견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 단적인 실례를 연암 박지원의 <호질(虎叱)>을 들 수 있다. 어느날 배가 고픈 산중의 범들이 무얼 잡아먹나 토론하다가 결국 사람을 잡아먹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잡아먹을 것인가로 토론이 옮겨졌다. 토론끝에 범들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무당, 점쟁이, 거간군과 함께 의원(즉 의사)이 네번째로 올랐다. 의원을 잡아먹어야 하는 리유라면 의원은 환자가 사경에 처했을 때 죽어가는 사람을 상대로 사기친다는 것이다.
의사들에 대한 이런 선입관은 오늘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 연고로 나도 의사들에게 호감이 없다. 정직해야 할 의사들이 늘 감언이설과 商術로 환자들의 건강을 놓고 장난치기 때문이다. 차라리 옛날 의사들이 좋았다. 그때는 환자의 건의가 잘 받아들여 졌고 환자는 자기의 경제 형편에 따라 조제 치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의사들은 환자만 보면 당장 죽을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부산을 피우고 비싼 약을 골라서 떼 준다. 환자가 생각하는 것은 돈을 적당히 들이고 병을 치료하는 것이고 의사가 생각하는 것은 매상을 올려 보너스를 많이 받는 것이다. 그러니 몸에 돈 냄새를 피우고 병원에 갔다가는 바가지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3년 만에 귀가하니 온통 과로로 망가진 내 모습이 민망했던지 아내는 병원에 가서 전면검사를 받으라고 닦달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참에 푹 쉬며 ‘정비’에 들어갈 심산이었다. 병원에서 CT 초음파 심전도 X선 촬영에 혈액검사까지 하고 나오니 벌써 천여원이 들었다. 검사결과를 들고 의원실로 찾아가니 의사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외과의사는 다리뼈사이에 종양이 생겼다면서 3천원을 갖고 와서 입원수속을 하라고 한다. 비뇨기과 의사는 비뇨계통에 문제가 생겼다면서 그냥두면 부부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경제사정이 어떠냐고 묻는다. 내가 짐짓 ‘쥐꼬리만 한 월급쟁이’라고 대답했더니 의사는 심각하게 ‘고민’ 하더니 5천 위안만 갖고 오면 완치시켜주겠단다.
내과의사는 큰 문제는 없다면서 종합비타민 등을 800원어치 떼어준다. 이 때라고 나는 의사한테 한 달 월급이 얼마냐고 물었다. 의사는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면서 1500원이란다.
<만약 선생님이 한번에 800원어치 영양제를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집에서는 뭘 먹고 살겠습니까?>
의사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의사한테 의료검진영수증과 처방전들을 보여주면서 하루병원나들이에 1만원이 필요한데 월급쟁이들이 갑자기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해오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1만원은 1500원인 의사선생님 월급의 6배에 달하는데 선생님 같으면 먹지 않고 반년을 모아서 병원에 갖다 바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난색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동일한 약효의 저렴한 국산 약으로 바꿔달라고 건의했다. 의사는 순순히 처방을 다시 뗐다. 30원이었다.
비뇨계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 때문에 다음날 큰 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진을 받았다. 결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몇 가지 수치가 낮긴 하지만 정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마터면 5천 위안을 날릴 번했다. 알고 보니 그 병원은 소위 비뇨기과 전문병원이었다. 종양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아직 종양이 작아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병 보는 것도 의사나름이고 장사소견이니 아픈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싶었다.
어느 날 아내는 모병원에 용한 의사가 왔단다. 북경의 유명한 외과전문의한테서 2년간 연수받고 돌아온 의사인데 침구는 물론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密方까지 겸해서 쓴다고 한다. 여자들이 문제였다. 아내에게 떠밀려 병원에 들어서니 40대 초반의 의사가 반긴다.
<잘 왔습니다. 치료 가능합니다.>
의사는 펜을 날려 열심히 처방을 적고 있었다. 한 장이 모자라서 다음 장에도 반나마 적었다. 보니 한약이었다. 그리고는 다리를 걷어 올리라고 하고는 침을 10여대 꽂는다. 침구는 처음이라 기대가 되었다. 30분가량 지나니 침을 빼고 이번에는 유리용기에서 코 안에 마른 그것 같은 것을 반 스픈 떠내어 파스에 놓고는 알코올을 조금 부어 개인다. 그리고는 침 자리에 갖다 척 부치면서 내일 다시 오란다.
워낙 의심이 많은데다가 한번 당할 번하고 보니 아내가 들고 온 한약이 약이 아니고 소쿠리에서 뜯어낸 잡초같이 보였다. 아내는 그래도 기대에 넘쳐 소여물 같은 것을 들고 약 달이러 떠났다. 이튿날도 사흗날도 아침에 ‘소여물 끓인 물’을 마시고 중의원에 가서는 침을 맞고 코 안에 그것 같은 것을 파스에 개여 붙이고는 돌아왔다. 10일 째 되던 날 의사는 이미 선불금을 다 썼으니 다시 치료비를 지불해야 한단다. 나는 치료비의 내역을 잘 알고 있었다. 북경에서 배워온 침구가 한번에 10원, 코 안에 그것 같은 密方파스가 하루에 10원이었다. 나는 지갑에서 200원을 꺼내 슬쩍 의사한테 건너 주었다. 그러면서 계산대에 가기 싫으니 알아서 하라고 핑계를 대봤다. 그랬더니 의사는 금시 희색이 만면해지면서 서비스차원에서 하루 치료를 무상으로 해준단다.
매일 병원에 다니다보니 휴일이 없는 출퇴근이다. 다른 일은 아예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의사얼굴부터 떠오르고 그 다음은 검고 쓴 ‘소여물 끓인 물’이 탁상에서 나를 기다린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병원출입을 하고 나니 하루 쉬고 싶었지만 의사는 치료효과에 영향을 준다면서 그냥 다니라고 한다. 침자리가 퍼렇게 멍이 들었다. 거기다 密方파스까지 꼬박꼬박 붙이다보니 다리 고기가 하얗게 되었다.
50일째 되던 날 나는 ‘소여물 끓인 물’을 더 이상 먹지 않기로 했다. 의사한테 密方파스도 붙이지 않겠다고 했다. 이제 더 붙이다간 다리고기가 썩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거세게 나오자 의사도 하는 수없이 ‘의료방안’을 시정하고 침구만 했다. 3개월을 그렇게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X선 촬영을 해 보았더니 종양이 그냥 있었다. 혹시나 이제부터라고 생각하고 며칠 더 기다려 보았지만 다리는 다시 종전대로 아파나기 시작했다. 그때는 돌팔 의사가 소 한 마리를 꿀꺽 삼켜버린 뒤였다.
어느 날 나는 출근하는 아내를 불러 세웠다.
<앞으로 밖에서 코를 풀지 마오.> <네?!> 아내는 의아해서 나를 쳐다보았다.<우리도 모았다가 진료소를 차리잔 말이요.>아내는 한참 뒤에야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2005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