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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한사전의 편찬과 번역에 관하여 2 댓글:  조회:685  추천:0  2015-04-28
중한사전의 편찬과 번역에 관하여   2                                  남광철     필자는 2014년 제1기에 중한사전(흑룡강성 조선민족출판사 출판, 2012.8월)의 편찬과 번역을 둘러싸고 이미 첫 편의 론문을 발표하였다. 이제 그 계속으로 11-20페이지 부분에 관하여 일부 의견을 더 발표하려 한다.   (11폐이지)【安检】ānjiăn 動 안전검사하다. “安全检查”의 준말. ¶机场~人员;공항 안전검사원. /贩毒者被~抓获;마약 밀매자들이 안전검사 과정에서 붙잡혔다. 사전은 “安检”을 동사(动词)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고해야 할 문제는 “安检”이 “安全检查”의 준말이라는 것이다. 만약 “安全检查”를 동사로 본다면 동사 성분은 바로 “检查”에서 온 것이다. 왜냐하면 “安全”은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원래의 동사로 풀이한다면 그 역문은 응당 “안전하게 검사하다”로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安全检查”란 단어결합의 진정한 함의는 “안전분야의 검사(행위)”, 또는 “안전분야의 검사인원(기관)”이란 뜻이다. 바로 “纪检”이 “纪律检查”의 준말인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 경우 “纪检”은 “규률분야의 검사”, 또는 “규률분야의 검사기관”이라는 뜻이다. 례를 들면 “腐败嫌疑人被纪检调查”에서 “调查”는 동사이고 “纪检”은 조사 행동의 실시자 즉 규률검사기관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명심하여야 할 바는 이 단어결합은 바로 동사를 명사식으로 차용(借用)하기 위하여 취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중국어의 단어결합에서 늘 보는 현상이다. “贩毒者被~抓获”라는 “主谓结构(주어술어 구조)” 구절에서 동사술어는 “抓获”이다. 여기에서 “安检”은 “붙잡는” 동작을 주동적으로 실시한 측, 즉 주동자를 가리키지 동사가 아니다. 결론은 매우 간단하다. 즉 “ 名 안전검사”로 되어야 한다. 이외에 보충할 점은 “마약 밀매자들”이다. 원문에서는 복수토 “들”을 가해야 할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2. 【安靖】ānjìng 形文 (사회가) 안정되다. ¶边陲~;변경이 안정되다. “安靖”은 형용사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사회가) 안정하다.”로 해석하여야 한다. 그런데 사전은 동사 “안정되다”로 해석하였다. 왜 이렇게 형용사를 동사로 돌려 해석해야 하는가? 아무런 리론적 근거도 없다. 3. (올림말 “安静”의 부록 부분) 注意:“平静”과의 차이점: “安静”은 사람의 행위·동작·환경을 형용하고 “平静”은 사람의 심정·표정 또는 사회·국가의 질서 등에 쓰인다. “安静”과 “平静”이 이런 차이점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아래의 한어대사전 례문을 보기로 하자. “玄至镇,休兵养士,然后督诸将守讨击胡虏及伯固等,皆破散退走。在职三年,边境安静。”(교현은 진에 이르러 병사들을 휴양시킨 후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외적과 백고(伯固) 등을 토벌하여 모두 패전 퇴각하게 하였다. 재직 3년 간에 변강은 안정하였다.” “林白霜渐渐安静下来了。”(림백상은 점차 안정을 회복하였다.) “安静”에 관한 상기 2개 례문, 즉 “변강이 안정되었다.”는 말과 주인공의 심정이 점차 안정되었다는 내용은 바로 사회의 질서와 사람의 심정에 대하여 쓴 것이다. 즉 상기 “注意”에서 말하는 범위 내에서 “安静”과 “平静”은 예로부터 동의어로 사용되여 왔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이 그 사용 의미를 분류하는 것은 도리가 없다. 더욱 불가사의한 일은 (제1503페이지) 올림말 “平静” 부분에서 사전은 “국가나 사회의 질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도 않은 것이다. 4. 【安居乐业】ān jū lè yè 成 안거낙업. 평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하다. 이 올림말은 성어(成语)인데 아무런 례문도 주지 않았다. 이는 독자들의 리해와 실용에 불리하다. 그러므로 적당한 례문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례를 들면 “¶削平祸乱,乡村人各各~;난리를  평정하니 향촌 사람들은 저마다 평안히 살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와 같은 것이다. 5. 【安澜】ānlán 形文 ······¶天下~,比屋可封;천하가 안정되고 태평스러워 집집마다 덕행에 힘쓰다. (土褒«四子讲德论») 여기에서 “안정되다”는 동사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하였기에 중복하지 않는다. 그 뒤의 “태평스럽다”는 형용사이다. “安澜” 자체가 형용사이므로 역문을 “천하가 안정하고 태평스러워”로 하여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덕행에 힘쓰다.”에서 “힘쓰다.”는 동사의 원형으로 되었다. 이렇게 긴 구절에서 마지막 종결에 쓰이는 말을 동사 원형으로 처리함이 합리하지 못하다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문제는 본 페이지【安降】ānjiàng에서 출현된 “¶~机场;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하였다.”이다. “安降机场”은 동사와 그 목적어의 간단한 단어결합이다. 이 경우 시간적인 결과를 고려할 필요가 없이 “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하다.”로 처리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서술형으로 처리하여야 할 곳에서는 동사의 원형으로 처리하고 원형으로 처리하여야 할 곳에서는 서술형으로 처리하니 전반 문체가 매우 혼란하게 되었다. 간단한 것 같지만 이 역시 매우 중시하여야 할 문제이다. 다음, 례문의 출처에서 그 저자는 “土褒”인데 이런 사람이 대체 어느 시대의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잘못 쓴 글자인셈 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대사전도 아닌 이 사전에서 왜 반드시 례문의 출처를 밝혀야 하는가이다. 적지 않은 례문에서는 그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서도 왜 일부 례문에서는 이렇게 까다로운 출처를 밝혀야 하는지가 의문이다. 한국 고려대학교 민족문학연구소에서 출판한 은 일체 례문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사전의 품위, 수준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왜서 그러한가? 그것은 바로 사전 자체의 용처에 의한 것이다. 즉 상기 은 중국어 학습 및 보급을 위한 교재이지 중국 문학사를 연구하는 자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를 비롯한 많은 자료는 《汉语大词典》,《辞海》와 같은 사전에서 망망대해와도 같이 얼마든지 제공하고 있다. 중사전 규모인 은 중국어 초학자나 중등 수준의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참고 교재로서 례문의 출처를 밝힐 필요가 없다는 점은 구구히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6. 올림말 “安乐椅”,“安眠药”,“安全玻璃”,“安全带”,“安全岛”,“安全门”,“安全梯”. 이상 몇 개 올림말은 전부 명사이다. 사전은 전부 례문이 없이 주로 대역본 식의 명사로 종결지었다. 대응되는 한국어 명사로 올림말을 해석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고 또 얼핏 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한 명사이기 때문에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즉 “안락의자”나 “수면제” 같은 단어는 매우 쉬운 말이지만 그것을 독자가 중국어로 단문을 지으려고 한다면, 즉 실제로 응용하려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사전은 전반 체계로부터 볼 때 올림말에 례문을 주는 것으로 독자의 리해를 돕는 동시에 특히 독자가 올림말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독자의 사유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단한 례문, 즉 주어와 술어, 동사와 목적어 같은 단어결합 식의 례문이라도 올리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이 경우 아래와 같은 간단한 례문들을 준다면 쉽사리 독자를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로 이끌 수 있다. 례문: “他在安乐椅上睡着了。”(그는 안락의자에 앉은 채 잠들었다.),“服用安眠药”(최면제를 복용하다.), “安全玻璃的透明度不亚于普通玻璃“(안전유리의 투명도는 보통유리보다 못하지 않다.),“乘车要按规定系安全带”(승차 시에 반드시 규정대로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在几十米宽的马路中间设置两米多宽的安全岛”(수십 미터 너비의 신작로 중간에 2미터 남짓한 너비의 안전지대를 설치하였다.),“在地铁安装安全门系统。”(지하철에 비상문 시스템을 가설한다.),“车辆上装有移动式安全梯”(차량 위에 이동식 철제 계단이 가설되어 있다.)。 그외 첨부할 문제는 올림말 “安全梯” 뒤에 붙인 자이다. 즉 이것은 “광업”에서 쓰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이는 시종 건물에 설치하는 안전 시설이다. 차량에 설치하는 것은 개별적인 실례이다. “광업”이라고 덧붙인 것은 책임감이 부족한 문제이다. 다음, 사전은 “비상용 계단”이라고 하였는데 실제는 “비상용 철제 계단”이라고 밝혀야 한다. 왜냐하면 그 재료는 반드시 비연소 재료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생활에서 건물에 쓰이는 비연소 재료라면 철제밖에 없으니 여기에서 철제라고 밝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7. 安全剃刀 ānquán tìdāo →[保险刀] 여기에서 올림말 “安全剃刀”에 해석을 가하지 않고 그저 화살표로 “保险刀”에 련계시키고 있다. 이런 경우 이것이 동의어라 할지라도 대역식의 해석 한마디만은 주는 것이 좋다. 독자들이 수고스레 찾아보았는데 만약 대역식의 해석만을 요구한다면 그저 “안전면도”라는 말 한마디면 바로 해답을 찾아 다시 수고스레 화살표를 따라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먼 74페이지를 따라 가서 다시 “保险刀”를 찾은 결과이다. 사전은 그 해석을 “안전면도기”라 하고 아무런 례문도 주지 않았다. 례문 이야기는 중복하지 않더라도 “안전면도기”라는 해석만은 의문을 가득 가져다 준다. 한국 에 “면도기”라는 말이 없다. “안전”과 결합할 경우 역시 “안전면도”는 대사전에 올렸지만 “안전면도기”라는 말은 없다. 그러면 어디에서 “면도기”가 왔는가? 혹시 민간용어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상관없이 그 어떤 근거도 없는 이런 말은 독자를 의혹에 빠뜨릴 뿐이다. 8. 安全填埋 ānquán tiánmái 안전하게 매립하다. 안전하게 파묻다. ¶ 污染物要做到~:오염물은 안전하게 매립해야 한다. 이 올림말은 별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安全填埋”는 그저 파묻는 것과는 좀 다르다. 즉 “오염물, 유해물질”에 대하여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석 뒤에 “(위험 폐기물 또는 유해 폐기물에 대하여 쓰임)”이라고 밝혀두는 것이 좋다. 9. 【安身】ān / shēn 動① 몸을 붙이다. 몸을 의탁하다.[어려운 처지에 많이 쓰임] ¶无处~;몸을 의탁할 곳이 없다. ②文 안신하다. 거처하다. 몸을 편안하게 하다. ¶今夜哪里去~?: 오늘 밤은 어디 가서 편히 잠잘까? ③文 입신(立身)하다. 출세하다. ¶人无刚骨,~不牢;속담에 “사람이 힘이 없으면 처신을 바로 하지 못한다”고 했어요.(施耐庵 «水浒传») 제2부분은 얼핏 보면 실수한 것 같다. 즉 문언문이라고 밝혀놓고서도 례문은 도리어 현대문 실례를 든 것이다. 그런데 중국어 사전과 대조하면 간단한 실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올림말은 제3부분의 문언문 해석을 제하고도 기실 또 하나의 문언문 해석이 있다. 즉 “몸을 보존하다. 몸을 의탁하다.”이다. 거기에 든 례문은 이러하다. “子之来也,非欲~也,为国家之利也,故不惮勤远而听于楚。”(그대가 온 건 몸을 의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리익을 위해서외다. 그렇기에 그 먼길의 로고를 두려움없이 초나라에 와서 이런 말들을 듣는 것이외다.) 이로부터 보면 제2부분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안신하다. 거처하다. 몸을 편한하게 하다.”는 해석은 기실 제1부분 해석 속에 이미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제2부분은 제1부분과 함께 해석하고 례문도 2가지를 다 포괄시킬 수 있다. 즉 “今晚只好在破庙里~了。”(오늘 저녁은 낡은 절에서 거처할 수밖에 없다.) 다음은 문언문이라는 동그라미 ‘文’자 문제이다. 문언문 용법이라 해서 고정불변으로 그냥 문언문이라고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 사용 빈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고대 어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 현대 어휘에로 전화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은 기본적으로 현대화되어 현대의 많은 소설, 저서들에서 상용하고 있다. 제3부분의 역문 문제: 속담에 “사람이 힘이 없으면 처신을 바로 하지 못한다”고 했어요. 국어대사전에서 “처신”을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몸을 가지는 일. 행신(行身).”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나 자신의 행실(구실)을 하다.”로 리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올림말의 해석은 “립신하다”로 되어 있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해석이다. 즉 “나 자신의 행실(구실)”이 아니라 그에 의거하여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번역은 응당 “사람은 굳센 의지가 없으면 사회적으로 입신할 수 없다.”로 되어야 한다. 다음, “속담에 ᠁했어요.”를 보면 이는 완전히 소설 역본 속의 대화를 그대로 베낀 것이다. 문제는 베끼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 역문이 잘못 번역되었다는 뜻이다. “처신”이란 주관적으로 하는 것이고 “립신”이란 객관적으로 “사회적인 인정”을 받아야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번역함은 물론 타당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명작이라 해도 사전의 례문을 번역할 때에는 반드시 자신의 힘으로 정확히 번역해야 한다. 이것은 명작 역본의 역자에 대한 존중 여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다. 10. 【安神】ān∥shén 動 안신하다. 정신을 안정시키다. 올림말 “安神”을 음독으로 처리하여 “안신하다”라고 했는데 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안신하다”의 한자 음독은 “安身” 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다 “안신하다”를 달아 주었으니 두 가지 올림말이 결국은 한 가지 해석으로 되어버렸다. 즉 이 두 올림말은 동의어라는 말이 된다. 이런 저급적인 오류는 구구히 분석할 필요조차 없다. 11. 【安生】ān shēng 形 ① 안생하다. 안거하다. 편안하게 생활하다. ¶到处奔波,不得~;도처로 분주히 돌아다니게 되면, 편안히 생활하지 못한다. 례문은 짧은 두 구절의 말, 즉 “도처로 분주히 돌아다니다”와 “편안히 생활하지 못하다”로 되어 있다. 이것을 련결시키는 곳에 쉼표 “, ”를 달았는데 여기에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짧은 구절을 련결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돌아다니게 되면,”이다. 이건 “가정”의 뜻, 즉 “만약 그렇게 된다면”의 뜻이다. 그런데 원문은 그저 “到处奔波,”뿐이다. 즉 “도처로 분주히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원문은 기성 사실을 들어 설명하는 것인데 역문은 “가정”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앞뒤 짧은 두 구절의 의미적인 련계를 보아도 가정의 뜻은 보아낼 수가 없다. 이 역시 분명히 보아낼 수 있는 오역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도처로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편안히 생활하지 못한다.”로 되어야 한다. 12. 【安适】ānshì 形 ① 쾌적하다. 편안하다. 호젓하다. 국어대사전에서 “쾌적하다”는 3부분으로 나누어 해석하였다. 그중 제1부분의 해석은 “심신에 적합하여 기분이 썩 좋음.”이다. 제2부분, 제3부분은 다른 차원의 의미여서 언급할 필요가 없다. 중국어 한어대사전의 해석은 “安乐舒服,安静舒适”(즐겁고 편안하다, 안정하고 쾌적하다.)이다. 그러니 첫 해석인 “쾌적하다”는 뭔가 좀 부족한 감이 든다. 역시 중국어 자체의 해석대로 하는 것이 상수이다. 두번째 해석 “편안하다”도 부족하다. 특히 세번째 해석 “호젓하다”는 너무도 동이 닿지 않는다. 국어대사전에서 “호젓하다”의 해석은 “무서운 느낌이 들 만큼 고요하고 쓸쓸하다”이다. 중국어 올림말의 원뜻과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세 마디 해석은 모두 한자어식으로, 즉 단마디명창식으로 해석하였는데 이 역시 론의할 필요가 있는 일이다. 이 올림말은 한국어에 “안적(安适)하다”라는 한자어가 없는 이상 풀어서 해석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올림말 자체에 내포된 2가지 내용을 제대로 풀이할 수가 없게 된다. 억지로 단마디명창을 추구하면 그 결과는 대혼란에 빠지게 될 뿐이다. 13. 【安守本分】ānshŏu běnfèn 안분지족하다. 편안히 본분을 지키다. 자신이 처한 지위 및 환경에 만족해하다. “안분지족하다”는 말은 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한 걸음 후퇴하여 뒤의 2가지 해석을 한곳에 집중시키기 위하여 “안분하다.”와 “지족하다.”는 한자어를 합쳐 형성하였다 하더라도 “안분지족(安分知足)하다”의 식으로 한자를 주어야 독자의 불필요한 혼란을 면할 수 있다. 다음, 이 2개 어휘의 말을 한곳에 집중한다면 좀 지저분한 감이 있으므로 국어대사전에서 올리지 않은 말은 될수록 피면하는 것이 좋다. 14. 【安泰】āntài 形 ①文 안태하다. 안정하다. 태평하다. 중국어 한어대사전에서 “安泰”의 해석은 바로 “안정하고 태평하다”이다. 즉 “안정하다”와 “태평하다”를 합쳐 풀이하여야 한다. 한국어에 “안태하다”는 한자어가 있는데 살펴보면 그 뜻이 바로 “안정하고 태평하다”이다. 그런데 왜 이 양자를 갈라서 “안태하다”와 같은 격식으로 3개의 어휘를 써야 하는가? 이 역시 단마디명창을 추구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다음, 본사전은 “安泰”를 문언문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문언문이 아닌 “安舒”라는 어휘는 왜 올리지 않았는가? 이 역시 이미 현대화되어 여러 작품들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다. 즉, 【安舒】ānshū 形 편안하고 쾌적하다. 마음이 편하다. 홀가분하다. ¶坐在椅子上很~;의자에 앉으니 편안하고 쾌적하다. /将来的梦想已不能~他的精神;장래의 꿈은 이미 그의 정신을 홀가분하게 만들지 못하였다. 15. 【安恬】 āntián 形 편안하다. 태평스럽다. ¶ ~地睡了一夜;편안하게 한잠 잤다. / ~度日;태평스런 나날을 보내다. 중국어 한어대사전에서 “安恬”의 해석은 “편안하고 조용하다”이다. 그것을 본사전은 “편안하다”와 “태평스럽다”로 갈라서 각각 해석하였다. 여기에서 “편안하다”는 그 해석이 좀 빠진 것이고 “태평스럽다”는 그 해석이 다른 차원에로 비뚤어졌다. 국어대사전 중 “태평(大平)”에 대한 “세상이 무사하다”는 해석이든 “태평(泰平)”에 대한 해석이든 모두 “安恬”의 본뜻과는 대등하지 못하다. “恬”자의 “마음심 변”이 말해주듯이 이 올림말은 주관적인 마음 자세와 조용한 분위기를 갈라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례문 “安恬度日”는 응당 “편안하고 조용하게 나날을 보내다”로 되어야 한다. 16. 【安妥】 āntuŏ 形① 무난하다. 타당하다. 안전하다. 이 경우 “安妥”에 대한 중국어 한어대사전의 해석은 “안전하고 타당하다”와 “안전하다”이다. 그런데 본사전은 첫번째 해석에 “무난하다”를 주었다. “무난(无难)하다”에 대한 국어대사전의 해석은 “어렵지 않다”이다. “타당하다”는 말과 “무난하다”는 말은 련결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这件事让他办很~;이 일을 그에게 맡기면 무난할 것이다”에서 역문은 응당 “이 일을 그에게 맡기면 매우 안전하고 타당하다”로 되어야 한다. 17. 【安息香】 ānxīxiāng 名① 안식향. ② 안식향나무. 사전은 “안식향”을 화학명칭으로, 안식향나무를 식물로 갈라 해석하였다. 정말 그러한가? 이건 상식 문제이다. “安息香”을 “안식향”이라 해석하였을 때 그 전체는 바로 , 즉 식물의 범주이다. 안식향은 나무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 나무 껍질에서 떨어지는 액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는 “바나나”라는 명칭이 그 식물을 가리키기도 하고 그 열매를 가리키기도 하는 것과 같은 류형에 속한다. 그외 많은 식물을 약용할 경우 그 식물 자체와 약의 명칭이 역시 같은 명칭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화학명칭을 론의하자면 “安息香酸”을 주어야 한다. 이건 완전히 다른 경우이다. 18. 【安闲】 ānxián 形 안일하고 호젓하다. 편안하고 한가롭다. 중국어 한어대사전에서 “安闲”에 대한 해석은 바로 “편안하고 한가롭다”이다. 앞의 해석에서 “안일하고 호젓하다”를 먼저 주었는데 “호젓하다”는 앞에서 이미 언급이 되었기에 중복하지 않는다. 즉 대등하지 못하고 올림말의 원뜻과 련결이 되지 않는다. 19. 【桉】ān 안석 안 名 유칼립투스(eucalyptus).   사전은 “桉”을 식물로서 그 명칭만을 전달하였다. 설명이 부족한 감이 든다. 즉 (상록 교목으로 목질이 굳어 침목이나 갱목 등으로 쓰이며 잎과 작은 가지로는 기름을 짬)과 같은 내용을 보충설명으로 주는 것이다. 20. 【氨】ān 기체 이름 안 名 암모니아. ᠁᠁ 【氨基酸】 아미노산.  ᠁᠁ 【氨水】 암모니아수. 사전은 “氨”과 “氨基酸”과 “氨水”에 대하여 3가지 류형의 기호, 즉 “천문학”, “화학”, “농업”의 기호를 주었다. “천문학”은 오자의 실수인 듯하나 “농업”은 그런 것 같지 않다. 기실 암모니아수 역시 화학공장의 제품으로 농업에서 그것을 비료로 사용할 뿐이다. 21. 【谙练】ānliàn ①動 숙련(熟练)하다. 능숙하다. ②形 능하다. 능란하다. 사전은 제1부분에서 동사의 경우 “숙련(熟练)하다. 능숙하다”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숙련(熟练)하다”는 동사이지만 “능숙하다”는 형용사이다. 중국어 동사를 한국어 동사로 풀이해야 된다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숙하다”는 “익히다”로 바꿔야 한다. 22.  【岸标】ànbiāo  해안의 항로 표지.       【岸冰】ànbīng  연안(沿岸) 빙층(冰层).       【岸吊】àndiào  연안(沿岸) 기중기. 상기 3개 올림말은 모두 례문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위에서 올림말 “岸边”에 대해서는 례문을 주었다. 기실 독자, 학생으로 말할 때 이 3개 올림말은 리해하거나 단어결합을 장악하는 면에서 모두 “岸边”보다 난이도가 크다. 그러니 역시 례문을 주어야 한다. 례: “建设塔型岸标”,탑 모양의 항로 표지를 건설하다.     “薄而透明的冰层叫做初生岸冰”,언덕에 앏고도 투명하게 깔린 얼음을 초생 빙층(初生冰层)이라 한다.     “岸吊是主要的装卸设备”,연안 기중기는 주요한 적사 장비이다. 이런 문제는 매우 많지만 다음 페이지(15)의 실례를 하나 더 들면 “按酬付劳”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반영된다. 이 올림말에 대하여 사전은 “보수를 주는 만큼 일을 하다.”라고 해석했을 뿐 례문을 주지 않았다. 이 올림말은 사회 생활에서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충고나 교양의 대상으로 쓰이므로 례문을 주지 않으면 그 무게를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对工作不能按酬付劳,每天应该多做一点点”(근무 시 보수를 주는 것만큼만 일할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이라도 더해야 한다)와 같은 례문을 주는 것이 응당하다. 23. 【按部就班】àn bù jiù bān 成 제대로 착실히 하다. 조리 있게 착착 진행하다. 순서에 맞게 해 나가다. [본뜻은 일정한 분류·순서에 따라 문장을 구성하고 어휘를 사용함을 가리킴. 파생적인 뜻은 일을 관례대로 순서에 따라 하는 것을 가리키거나, 또는 상규에 얽매이어 창조성이 부족함을 가리킴.]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괄호 []이다. 이것은 완전히 참고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본뜻은” 또는 “파생적인 뜻은” 그저 참고로 제공할 뿐이고 실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언어의 발전은 항상 사회의 발전과 같은 보조를 취한다. 또한 실제 생활에서 2대 부류는 모두 정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 번호①과 ②를 달지는 않더라도 동등하게 설명하고 례문도 동등한 자격으로 주어야 한다. 즉 “有些职工只是在意工薪,做什么工作都是~;일부 직원들은 노임에만 신경을 쓰면서 항상 규정에만 얽매이어 일한다.”와 같은 것이다. 24. 【按揭】ànjiē 動 저당 할부. 이 역시 동사를 명사로 해석하는 문제이다. 응당 “저당 할부로 대부하다.”로 되어야 한다. 25. 【按需分配】ànxūfēnpèi 수요에 따라 분배하다. 이 올림말은 공산주의 사회의 분배원칙을 가리킨다. 비교적 높은 차원에서 경제학을 접촉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일반적인 한국어 독자는 그 용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역시 례문을 주어야 한다. ¶ 共产主义实行各尽所能,~的原则;공산주의는 각자는 능력을 다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하는 원칙을 실시한다. 26. 【案】àn B) ④ (중대한 사회적) 사건. ¶ 五卅惨~;오삼십 참사사건. 사전은 “惨案”을 “참사사건”으로 번역하였다. 국어대사전에서 “참사(惨死)”는 “아주 참혹하게 죽음”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대한 사회적) 사건과는 대등하지 못하다. 게다가 더욱 불가사의한 일은 “참사하다”로 쓰일 경우 이는 자동사라는 점이다. 즉 저절로 참혹하게 죽었다는 뜻이다. 세상이 다 아는 학살 사건을 “저절로” 죽은 사건으로 풀이하다니, 이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5·30대학살(또는 학살사건)”이라고 번역하여야 한다. 27. 【案件】ànjiàn 名 사건. 안건. [소송(诉讼)이나 위법(违法)에 관련된 안(案)] 국어대사전에서 “안건”은 “토의하거나 조사해야 할 사실. 문제가 되어 있는 사실.”로 해석하고 있다. “소송이나 위법에 관계되는” 사건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러므로 “案件”은 한자어식으로 “안건”으로 해석에서는 안 된다. 그 해석은 바로 “사건”이다. 28. 【案目】ànmù ①動 주시하다. 이 올림말은 현대어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즉 동그라미 “文”자를 주어야 한다. 29. 【暗淡】àndàn 形 암담하다. ① (광선이) 어둡다. (색깔이) 선명하지 않다. 진부한 모양. 국어대사전에서 “진부하다”는 “묵어서 썩음. 낡고 헒”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어 한어대사전이든 현대한어사전이든 “暗淡”에 대한 해석은 모두 “진부하다”는 뜻이 없다. 이것은 억지로 갖다 붙인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 30. 【暗渡陈仓】àn dù Chén cāng 成 ☞ [暗度陈仓] 일반적으로 “暗度陈仓”으로 표기함. “渡”와 “度”는 확실히 같이 쓰였지만 현대에 이르러 이미 “渡”로 규범되어 쓰이고 있다. 이는 , 등에서, 특히 에서 모두 통일적으로 지적한 바이다. 그리고 “渡”의 뜻을 “飞跃”로, 즉 “지나가다, 건너다”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두 글자는 응당 그 위치를 바꾸어 놓아야 한다. 31. 【暗扣】ànkòu 名① 속단추. ② 부정 할인. 이 올림말은 제2부분의 경우 본래 동사이다. 중국어 한어대사전의 해석은 “몰래 잘라내다(공제하다)”이다. 그것이 실제 사용 빈도가 많아짐에 따라 명사로 활용될 때도 있지만 그 원형이 동사란 점은 반드시 교대하여야 한다. 이것은 “回扣”라는 말이 명사로만 쓰이는 것과는 다르며, “活动”이란 말이 원형이 동사이지만 동시에 명사로도 쓰이는 것과 같은 도리이다. 그러므로 동사라는 점을 반드시 교대하여야 한다. 32. 【暗射】ànshè ☞[影射] 이 올림말은 그 원형이 “影射”와 대등하지 않음은 물론, 본래의 형상적인 내용이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반드시 그 원형을 소개한 후 확대된 의미를 소개하여야 한다. 【暗射】ànshè 動①文 암전을 쏘다. ¶长箭不~;긴 화살은 암전으로 쓰지 않는다. ② 빗대어 말하다. ¶这首诗用的全是~,没有一句明言;이 시는 한 마디도 점찍지 않고 전부 빗대어 말하였다. →[影射] 33. 【暗算】ànsuàn 動 몰래 음모 또는 흉계를 꾸미다. 해칠 궁리를 하다. 이 올림말의 원형은 바로 “속으로 계산하다”이다. 우리 말의 한자어 “암산(暗算)하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왔는데 이 내용을 삭제해야 할 리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올림말은 반드시 2부분으로 나누어 해석하여야 한다. ② 암산하다. 마음속으로 헤아리다. ¶~乡程隔数州,欲归无计泪空流;헤아려 보니 고향 길 여러 주를 거치거늘, 돌아 갈 노비가 없어 눈물만 흘리누나. 34. 【暗息】ànxī 名 …… ② 고리대. 사채. ¶民间的~借款; 사채를 내다. 이 올림말 제2부분의 례문에서 “사채를 내다”는 동작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다만 모종 성격의 고리대를 말해줄 뿐이다. 즉 명사를 동사로 풀이하였는데 이렇게 번역하면 한국어 학생들의 기본기능 훈련에 큰 지장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역문은 아래와 같이 고쳐야 한다. ¶民间的~借款;민간의 고리대금. 사채 35. 【黯】àn 시꺼멀 암 形 검다. 어둡다. ¶露明星~;이슬은 밝고 별빛은 어둡다. 이 올림자는 “검다. 어둡다.”는 뜻 외에 또 “실의에 찬 모양”이란 두번째 뜻이 있다. 그리고 이 뜻은 사용 빈도가 제1부분의 뜻보다 훨씬 더 많다. 먼 것은 그만 두고라도 바로 아래의 “黯然”,“黯然失色”,“黯然销魂”이란 3개의 올림말도 모두 이 뜻을 떠나지 못한다. 즉 그 어원으로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2부분으로 나누어 해석하여야 한다. ② 실의에 찬 모양. ¶悄无语,~沉吟; 아무 말도 없이 실의에 찬 기색으로 침묵을 지킨다. 36. 【昂昂】áng′áng 形 헌앙하다. 기세가 드높다. 기운차다. 이 올림말의 원뜻은 “기세가 드높다. 기운차다.”이다. 그런데 사전은 그 앞에 우선 “헌앙하다.”를 주었다. 한국어의 “헌앙하다”는 한자어로서 그 해석은 “풍채와 의기가 당당하고 너그러워 린색하지 않다.”이다. 다음 한자어의 한자 “轩昂”의 중국어 해석을 보아도 역시 “기세가 드높다”는 뜻이다. 한국어 “헌앙하다”는 어원이 “轩昂”이지만 그에 부여한 의미는 훨씬 더 넓다. 그러므로 번역 시 이를 대역어로 쓰기는 적합하지 않다. 이것은 중국어와 한국어 한자어 간에 대등하지 못한 경우에 대한 하나의 실례이다. 그러므로 “헌앙하다”는 넣지 말아야 한다. 37. 【凹】 āo 오목할 요 形 오목하다. [가운데가 들어간 모양] 이 올림말은 형용사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동사로도 쓰인다. 그러므로 동사의 해석도 주고 례문도 주어야 한다. ②動 꺼지다. 패이다. ¶眼窝深深地~进去; 눈구멍이 옴푹하게 꺼졌다.
1    중한사전의 편찬과 번역에 관하여 1 댓글:  조회:583  추천:0  2015-04-28
중한사전의 편찬과 번역에 관하여 1                                              남광철   중한사전의 편찬과 번역은 관계 범위가 극히 넓고 복잡하지만 그 기본 원칙은 복잡하지 않다. 그것은 바로 중국어를 전면적으로 정확하게 한국어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이미 출판된 사전에 관하여 여러 독자들이 평론하는 것 역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래에 중한사전(흑룡강성 조선민족출판사 출판, 2012.8월)의 편찬과 번역을 둘러싸고 일부 독자들과 본인의 의견을 종합하여 1-10페이지 부분에 관한 몇 가지 평론 및 의견을 서술하려 한다. 음독자의 처리 문제. [吖] ā 입을 크게 벌린 모양 아: 이 올림자는 현대 화학물질의 영어발음 “아(a)”를 표현하기 위하여 새로 “ā”음을 채용한 글자이다. 즉 “ā”로 발음할 때에는 화학물질만 표시하지 “입을 크게 벌린 모양” 같은 건 표시하지 않는다. 바로 그 아래에 표시한 “吖啶 아크리딘”과 같은 경우이다. 그러므로 천자문 음독자는 응당 “화학물질 아”로 써야 한다. 만약 “입을 크게 벌린 모양”이라고 올렸다면 해석 부분에 반드시 이에 상관되는 례를 들어 설명하여야 한다. 천자문식 음독자와 올림자의 해석이 일치하지 못하다면 이는 공연히 독자의 의문을 자아낼 따름이다. 다음, 예로부터 이 글자는 “yā”로 발음한다. “입을 크게 벌린 모양”이란 말처럼 형용사 격으로 쓰이는 말이 아니다. 이는 “웨치다”는 뜻의 동사이다. 그러므로 “yā”음으로 올린다면 “웨칠 아”라고 올려야 한다. 문제는 사전에서 “yā”음의 경우는 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毐]:ǎi음란할 애. 인명에 쓰이는 글자. 이 글자의 음독 해설이 “음란할 애”인 이상 “음란하다”는 내용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러므로 ①에서 “남자의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를 밝혀야 한다. 물론 례문을 준다면 더욱 좋다. 연후에 ②에서 인명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올림말 해석 문제. (1) [阿訇] āhōng 이맘(iman). 이는 본래 “아홍”이라 쓰고 “지식인 또는 교사”로부터 시작하여 해석하여야 한다. 이 말은 페르시아어 “ākhūnd”에서 온 말로서 ”ahung”이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맘”은 본래 “지식인 또는 교사”라는 뜻이 없다. 그리고 만약 이 경우에 쓴다면 “imam”이라 쓰는 것보다 “Imam”이라 쓰는 것이 타당하다. [阿混] āhùn 게으름뱅이. 어성꾼. 건달. (현 상황에 만족하여) 그럭저럭 살아가는 자. “어성꾼”은 한국 출판 이희승 편저 (이하 모두 이 사전에 준함)에서 우선 방언이라 밝힌 후 3가지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방언이란 차원에서만 말해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외에 3가지 뜻은 게으름장이, 한산인(闲散人), 거간(居间)이다. 그렇다면 이 뜻을 몇 번째에 맞추는가도 시끄러운 일이다. 이런 경우 어성꾼은 쓰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례문에서 보아도 그러하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자”. 이 말에서 “자”는 “얕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전부 얕잡아 이른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腌臜] āzā ① 지저분하다. 더럽다. 불결하다. 이 올림말의 원 뜻은 “더럽다. 불결하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맨 처음에 “지저분하다”로 해석하고 있다. 이 “지저분하다”에 대한 한국어사전의 해석은 2가지이다. ① 거칠고 깨끗하지 못하다. ② 어수선하고 더럽다. 이 2 가지 해석은 어느 것이나 원뜻인 “더럽다, 불결하다”와 대등하지 않다. 비슷한 점이 있다고 이렇게 보태어 넣는 것은 올림말에 대한 독자의 리해를 방해할 뿐 아무런 도움도 없다. 대조적인 의미가 강한 올림말을 올리는 문제. 사전은 올림말 “哀乐(āiyuè)”를 올렸다. 그런데 이 악(乐)자는 다음자(多音字)로서 다른 한 발음은 즐거울 락“乐(lè)”이다. “哀乐(āilè)”는 위 올림말과 대조하는 의미에서 보든지, 아니면 그 자체의 사용 빈도로부터 보든지 모두 올릴 필요가 있다. 례를 들면 “十多个县分的城镇给我留下了人世哀乐的印象:10여개 현의 도시들은 나에게 세상의 슬픔과 즐거움에 관한 인상을 남겼다.”와 같은 경우이다. 물론 “哀乐(āilè)”에서 “喜怒哀乐”와 같은 성어(成语)와 대조하도록 기회를 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다. 다음에 “→”로 “哀乐(āiyuè)”와 련결시킨다면 학생, 독자들의 전면적인 리해에 훌륭한 역할을 일으키게 된다. 사전은 성어(成语) “爱才若渴”는 올렸지만 사용 빈도나 뜻이 매우 비슷한 “爱才如命”은 올리지 않았다. 사전은 성어(成语) “爱财如命”, “哀鸿遍野”는 올렸지만 “爱财”나 “哀鸿”처럼 성어(成语)는 아니지만 독립적으로 쓰이고 그 빈도 또한 높은 단어는 올리지 않았다. 례를 들면 “君子爱财,取之有道: 군자는 재물을 사랑하더라도 도(道)에 맞게 취한다.”거나 “哀鸿失群;무리에서 뒤쳐진 기러기가 슬피 운다. /连年灾荒,哀鸿满路;해마다 연속되는 기황으로 이재민이 넘친다.”와 같은 경우이다. 사전은 “爱女”는 올렸지만 “爱子”는 올리지 않았다. 또 “安检”, “安监”은 올렸지만 “安纪”는 올리지 않았다. 사전은 올림말 “安好”에서 첫째로 그 형용사 용법, 즉 “평안하다”는 해석하였지만 두 번째 용법, 즉 “安好机器 기계를 설치해 놓다”와 같은 경우의 동사 용법은 해석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학생, 독자들의 전면적인 리해에 큰 지장을 주게 된다. 사전은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는 올림말에 대하여 홀시하는 경향이 뚜렷이 보인다. 례를 들면 “爱戴 애대하다.”는 올렸지만 이와 거의 반대로 쓰이는 경우인 “爱戴高帽子”는 홀시하였다. “人老了就容易爱戴高帽子: 사람이란 늙으면 흔히 춰주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는 말은 속담 범주에 속하지만 “애대하다”는 의미와는 반대이면서 그 사용 빈도 또한 상당히 높다. 성어(成语)에 관한 인지 문제. 사전은 “挨饥受冻”을 올리고 성어(成语)라고 밝혔다. 그러나 성어(成语) 사전에는 모두 “挨饿受冻”, 또는 “挨冻受饿”으로 올리거나 이 두 가지를 함께 올렸다. 즉 “饥”와 “冻”은 결합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성어(成语)를 올림에 있어서 제대로 대조하여 보지 않은 문제이다. 사전은 “爱搭不理”,“爱理不理”를 모두 성어(成语)로 올렸다. 그럼 이 두 올림말이 성어(成语)가 맞는가? 그렇지 않다. 이 두 가지 말은 모두 성어(成语)가 아니다. 특히 “爱理不理”는 매우 흥미 있는 구조를 가진 말로서 “아랑곳하지 않거나 냉담하게 대하다. 본체만체하다.”는 식으로만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爱理不理”에는 “爱…不…”라는 고정 격식이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응대하고 싶으면 응대하고 그렇지 않으면 응대하지 않다.”는 격식을 교대하여야 한다. 이로부터 숫한 올림말들이 파생하게 된다. 즉 “你爱看不看” “너 보고 싶으면 보고 싫으면 그만 둬라.”, “你爱吃不吃” “너 먹고 싶으면 먹고 싫으면 그만 둬라”, “爱管不管” “상관하고 싶으면 상관하고 싫으면 그만 둬라”는 등등이다. 그래 이런 말들에 다 성어(成语)라는 모자를 씌워줘야 한단 말인가? 세심한 학생, 독자들이 성어사전과 대조하여 본다면 그 후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초학자들을 그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출판사나 나라의 위신에도 손상이 되는 것이다. 올림말 해석의 삭제 및 증가 문제 (1) “艾子水” 쑥을 달인 물. 쑥탕. [민속에서 아이가 태어난 지 3일째 되는 날에 이 물로 씻어 주는 것을 “洗三”이라고 함.] 여기에서 민속의 함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약효에서 기원했음을 밝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성인 피부병에 대하여는 상용약으로 쓰이고 있다. (2) [哀荣] 사후에 받는 영예. 중국어 사전의 해석은 “생전이나 사후에 모두 존경을 받음. [특히 사후에 받는 영예를 가리킴] ”으로 되어 있다. 이것을 단순히 “사후에 받는 영예”라고 줄이면 너무나도 무단적이다. [哀子] 애자. [어머니가 돌아가고 아버지만 계신 상중의 사람이 자기를 일컫는 말] 중국어 사전의 해석은 “본래는 부모를 여윈 아들, 후에 어머니를 여윈 아들을 가리킴”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본래의 의미를 삭제한다면 이 역시 어원을 단절시킨 것이다. [哀婉] 애완하다. 애절하고 느리다. 완곡하고 처절하다. “애완하다”는 한자어에 대하여 한국어사전은 “슬프고 어여쁘다”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어 사전에서 “哀婉”에 대한 해석 중 “어여쁘다”는 말이 없다. 이것이 바로 중국어와 한국 한자어의 섞갈리기 쉬운 문제로서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글자 음독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면 쉽사리 오류가 생기게 된다. 다음, “애절하고 느리다”는 말을 보면 “느리다”가 “婉转”에서 온 듯하다. 그러나 중국어 사전에는 역시 “느리다”는 해석이 없다. 이렇게 대등되지 않는 해석을 가하는 것은 절대 취할 바가 못 된다. (5) [爱怜] “爱怜幼子” 어린 자식을 귀여워하다. 중국어 “幼子”는 “어린 아들”이란 말이다. 그런데 “어린 자식”이란 “어린 아들이나 딸”을 가리킨다. 즉 이 번역은 그 의미를 보탰으므로 대등하지 못하다. [挨不得] “非专业人员挨不得污染物品” 전담자가 아닌 분은 오염물을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역문은 완전히 대중에 대한 경고 패쪽에 쓰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바로 여기에 현묘한 차이가 있다. 중국어 원문은 그런 풍격이 아니라 그저 객관적인 립장, 또는 평소의 대화에서 하는 말투이다. 만약 역문의 풍격대로 말한다면 중국어 원문은 “非专业人员请勿挨近污染物品”이라고 써야 한다. 이는 중국어 원문 풍격에 대한 리해 문제이다. 중국어 원문에 상대하면 역문은 “전담자가 아니면 오염물을 다루지 못한다”로 되어야 한다. [挨肩儿] 년년생이다. 년년 터울이다. “挨肩儿三姐妹” 년년 터울인 세 자매. 올림말 “挨肩儿”은 “손아래, 손위 관계”를 말할 뿐이다. 년년생과는 상관이 없다. 또 부녀들이 년년생만 낳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년년생”이란 말이 확실히 많이 사용되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중국어를 번역할 경우 반드시 그 뜻을 정확하게 반영하여야 한다. 중국어 원문을 보고서는 세 자매가 “년년생”인지 아닌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즉 원문을 잘못 번역한 것이다. [挨着] 가까이하다. 잇대다. “在班级我俩挨着” 우리 둘은 짝꿍이다. 이 례문 번역에서 우선 “在班级” 즉, “학급에서”를 삭제하였다. 여기에서 이것을 삭제해야 할 아무런 리유도 없다. 다음은 “짝꿍이” 문제이다. 한국어 사전에서 “짝꿍이”는 “딱친구”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학급에서 우리 둘이 잇대어 앉는다” 하여 꼭 “짝꿍이”라는 법은 없다. 둘이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하면 바로 잇대어 앉기 때문에 사이가 버성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늘 쓰는 말이라 하여 역문에서 경솔히 써서는 안 된다. 그 다음 여기에서 반드시 지적하여야 할 엄숙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올림말 “挨着”는 동사라는 점이다. 간혹 동사가 명사로 번역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동사가 명사로 번역이 되어야 할 아무런 근거도 없다. “잇대어 앉는다”라는 동사 체계로 번역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또 이렇게 하여야 한국어 독자, 학생들이 정확한 체계를 갖추도록 인도할 수 있다. [艾] ài A)…B)…C) 아름답다. “少艾” 젊고 아름답다. “少艾”는 고문(古文)에서 젊고 아름다운 녀자, 즉 미녀를 가리키는 말이다. “慕少艾”라는 말은 바로 “아름다운 소녀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녀자라는 뜻을 삭제하니 마치 남자도 가리키는 듯하다. 이 역시 독자들에게 혼동을 일으키는 말로 된다. [哀苦] 슬프고 고통스럽다. [挨淹] 물에 잠기다. 물에 빠지다. [矮个] 난쟁이. 왜인. 키작은 사람.  이상 3개 올림말은 아무런 례문도 없다. 앞의 2개는 비교적 적게 쓰이는 말인데 적게 쓰이므로 례문을 주어야 리해를 도울 수 있다. 세 번째 올림말은 자주 쓰는 말인데 바로 자주 쓰기 때문에 례문을 잘 주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이 경우 “哀苦无依的人; 의지할 곳 없는 슬프고 괴로운 사람”, “家园挨淹吓不倒这些农民, 고향이 물에 잠겨도 농민들은 힘을 버리지 않았다”거나 좀 유모아적인 방식의 례문으로 “她是个身高只有1米65的矮个排球明星; 그녀는 신장이 불과 1미터 65의 난쟁이 배구 스타이다”는 식의 참고 례문을 주는 것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哀戚] 슬퍼하고 서러워하다. 비통하다. “孝子之丧亲也,哭不偯……食旨不甘,此哀戚之情也, 효자가 어버이 상을 당하면, 곡을 하되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아니하니, 이것은 슬퍼하고 서러워하는 정 때문이니라.” 우선 올림말 해석에서 “서럽다”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한국어 사전에서 이 말에 대한 해석은 “원통하다”, “분하고 억울하다”, “몹시 원망스럽다”로 련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올림말 자체는 “비통하다”는 뜻으로 끝이다. “서럽다”는 말과는 련결이 되지 않는다. 대등하지 않은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상수이다. 그 다음, 중국어 례문에서 “偯”라는 글자를 썼는데 이 글자는 리해하기 몹시 어렵다. 그러나 본 중한사전에서는 올림자로 올리지도 않고, 례문 중 글자 뒤에 괄호로 병음, 즉 발음을 표기하지도 않고, 또 역문에서 이 글자를 번역하지도 않았다. 또 하나 불가사의한 일은 이 글자 뒤에 생략부호를 주어 독자가 더욱 오리무중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慈母新逝,不胜哀戚, 자애로운 모친께서 돌아 가셔서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소이다.”는 식으로 례문을 준다면 간단하기도 하고 리해하기도 쉬운 것이다. 중국어 올림말 사용 규범 문제 [艾滋病]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 注意: “爱滋病”으로도 표기함. [瑷] ài ① … ② 지명에 쓰이는 글자. [瑷珲] 애휘. [중국 흑룡강성(黑龙江省)에 있음. 일반적으로 “爱辉”로 표기함.] 우선, “爱滋病”은 초기에 사용한 문자로서 후에 “艾滋病”으로 규범하여 지금은 모두 이것에 준하고 있다. “‘爱滋病’으로도 표기”하는 문제가 아니다. 다음, “爱辉”는 “일반적으로 표기”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무원 유관 부서는 이미 1956년에 “爱辉”로 규범하여 지금까지 반 세기도 넘게 사용하고 있다. “瑷珲”는 단순히 “瑷”자가 지명으로 쓰인 력사를 반영할 뿐이다. 언어문자의 규범에 대하여 과학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큰 문제를 초래하는 근원으로 된다. 8. 이상은 1페이지부터 10페이지까지의 문제점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10페이지 마지막 부분에 들어가야 할 올림말에 대하여 한 가지 언급하여야 할 문제가 있다. 중한 사전은 “安徽”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安徽”란 올림말을 올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기타 올림말을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안휘성”이란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올리지도, 해석하지도 않은 “안휘성”을 가지고 다른 올림말을 해석하다니 이런 문제는 어떻게 리해하여야 하는지? 독자에게 대하여 말하면 의문을 푸는 것이 아니라 의문을 더해줄 따름이다. 그래서 두루 펼쳐 보면 이것은 우연히 빠뜨린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모든 인명, 지명을 다 빼버린 것이다. 심지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 북경마저 빼버린 것이다. 그런데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은 “北京烤鸭”를 올린 것이다. 그래 북경과 북경오리구이의 문화적인 가치나 내포를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사전의 첫 페이지에 “阿尔巴尼亚”를 올리고 그 수도는 티라나라고 밝혔다. 그런데 중국을 올릴 경우에는 수도를 언급하지도 않고 북경을 올려야 할 경우에는 북경오리구이만 올린다면 이는 중국을 일부러 내리깎는 편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 사전 자체가 중한사전인데 중국을 이렇게 홀대한다면 이 사전의 가치가 어데 있겠는가! 여기에서 한 가지 대조하여 말할 문제가 있다. 즉 1960년도에 조선에서 출판한 (6권)에 확실히 모든 인명 지명을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평양”이라는 올림말도 그 줄은 텅 비고 그 아래에 다만 “평양 나막신”이라는 등의 속담밖에 없다. “함흥”이라는 올림말도 그 줄은 텅 비고 그 아래에 다만 “함흥 차사”라는 속담밖에 없다. 아마 그런 영향으로 인하여 이렇게 처리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로부터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아무런 도리도 없는 일이다. 필자는 그 당시 조선의 사회배경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고 있지만 확실히 이러한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 언급되고 있는 사전은 중한사전이다. 즉 중국어를 한국에, 또는 한국어 독자에 소개하는 사전이다. 한국에서 출판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5년)은 인명, 지명에 대하여 매우 명심하여 올리고 있다. 중한사전은 물론 대사전은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그러한 풍격은 통일하는 것이 마땅하다. 분명히 눈에 뜨이는 상기 평양의 경향을 한국에, 한국어에 강요한다면, 그래 이것이 공평한 일이며 순탄하게 통과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 다음, 인명과 지명이 대체 문화에 속하는가, 속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땅에서 이 사람들이 살면서 문화를 창조하는데, 그래 땅 이름과 사람 이름이 가장 중요한 문화가 아니란 말인가? 물론 그렇게 많은 지명, 인명을 다 올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예로부터 내려오는 명인 리백, 두보라든가, 현대의 명인 모택동이라든가 하는 명인마저 올리지 않는다면, 40개 정도밖에 안 되는 성급 지명마저 올리지 않는다면 중국의 문화에 대하여 크게 손색이 가지 않겠는가? 또 하나 대비하여 말할 문제가 있다. 중한사전은 “八国联军”, “鸦片战争” 같은 력사학 올림말은 올렸다. 여기에서 보면 력사학에 대해서는 문화로 인정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리학은 문화가 아니란 말인가? 대학의 력사학부는 문화학부에 속하고 지리학부는 문화학부에 속하지 않는단 말인가? 총적으로 사전이 고도의 과학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은 자명한 일이다. 중한사전의 편찬과 번역에 있어서 우리가 시종 명기하여야 할 점은 독자, 특히 학생들에게 책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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