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晓 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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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날씨와 땅과 올리브 댓글:  조회:633  추천:0  2014-03-29
                         그리스는 열대와 온대의 중간 지대에 위치하나 기후는 여름과 겨울로 확연히 구분된다. 고대의 그리스인들은 오늘날의 서기와 같은 연호가 없어, 4년마다 개최하는 올림픽을 연호로 쓰기도 하고, 1년이 임기인 최고 관직자의 이름을 연호로 삼아 역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아테네의 경우 최고 행정관을 ‘아르콘 에포니모스’라 하여, 아르콘의 이름을 연호로 사용했다. 예컨대 기원전 594년은 아르콘 솔론의 해, 기원전 584년은 아르콘 다마시아스의 해였다. 스파르타에서는 5명의 감독관 가운데 수석 에포로스의 이름을 연호로 삼았다. 그러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를 연대기 식으로 쓸 때, 아르콘의 이름 대신 여름과 겨울로 구분하여 사실들을 기술했다. 그만큼 계절의 변화가 뚜렸하기 때문이었다.     여름은 5월 중순에서 중순까지 약 4개월 동안에 비 한울 없는 쾌청하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된다. 강렬한 태양, 상쾌한 해풍, 그리스인의 모든 생활은 여름에 영위된다. 그러나 9월이 되면 구름이 모여 첫비를 뿌린다. 아고라에서 살던 시민들은 철학과 정치 토론을 그만두며, 양치기는 산 위의 목초 지대에서 양떼를 몰고 하산을 시작한다. 겨울에는 전쟁도 중지하고 휴전을 했다. 겨울 전쟁은 스포츠맨십에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스의 생활은 주로 여름에 활발했지만, 겨울에도 재판소와 극장은 개최되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1월에 개최되는 레나이아 제례에서 상연되었던 것이다.     겨울 날씨라 해서 그리 추운 것은 아니다. 요즘 아테네에는 때때로 눈발이 휘날리고 이메토스 산등성이에 흰눈이 쌓인 것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한겨울에도 영상5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는 일이 거이 없다. 하긴 기온이란 상대적인 감각이어서 10도 이상의 날씨에서 5도로 떨어지면, 여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피 코트를 몸에 걸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지중해성 기후이기 때문에 겨울이 우계여서 요즘은 날마다 비가 내리는 듯하지만 연평균 강우량이 400밀리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테살리아의 산간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골짜기를 흐르는 시냇물을 제외하고는, 강줄기는 있으되 강물이 흐르는 강을 볼 수 없다. 따라서 식수도 강물이 아니라 주로 빗물이나 샘물에 의지한다. 신화 속에서 님푸들은 강물이 아니라 샘물에서 목욕을 즐긴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옛 그리스인들은 한 그루 나무를 보면 울창한 숲속에서 뛰노는 목신을 상상하고, 한 줄기 샘물에서 헤엄치는 님푸들의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땅은 메마른 편이나 토양은 배수가 잘되는 석회암질이라 과수 재배에 적합하다. 따라서 그리스는 근본적으로 농업국가이며,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에 활발히 전개된 식민운동에서도 농업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다.     오렌지 무화과 포도 올리브가 풍부하며, 지금도 해외로 많이 수출되고 있다. 오렌지는 자몽과 같이 큼직해서 으레 실 것이라 짐작하여 입에 대지를 않았다. 그런데 권유에 못 이겨 맛을 보니 의외로 달고 수분이 많아 이후 매일 먹게 되었다. 그러니 그리스인에게 가장 중요한 과일은 단연 올리브이다. 올리브는 심은 지7.8년 만에 열매를 맺고, 15년에서 30년이 성수기이나 수령이 500년에서 1천 년이 되는 노목도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올리브가 한 그루 서 있다. 태고에 아테네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아테나 여신과 해신 포세이돈이 대립했다. 그때 포세이돈이 소금물의 샘을 솟게 했는데, 올리브 재배의 보호신이기도 한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싹트게 해 승리했다고 한다. 현재의 올리브 나무는 아테나가 싹을 틔운 올리브의 3세손이라 전한다.     올리브는 열매를 날것으로나 소금에 절여 먹기도 하지만, 주로 기름을 짜서 식용유로 온갖 음식 속에 담뿍 붓는다. 옛날에는 그 기름을 등유로 사용했고 지금은 비누를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올리브는 그리스인에게는 생명수라고 할 수 있는 다목적 과일이며, 그래서 나라꽃도 올리브 꽃이다. 올림픽에서 승리한 시람에게는 올리브 화관을 씌워주었으며, 왕이 즉위할 때의 도유식에는 첫 수학한 올리브 기름인 버진 오일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물론 올리브가 생산되는 지중해 일대 나라들의 공통적인 옛 풍습이었다.      농업이 경제의 기본이기는 하지만, 지중해 일대는 풍토상 오히려 목축 지대이다. 가축은 산양이 대부분이며, 양의 수가 그리스 인구와 같은 900만 마리 정도라고 한다. 호머의 작품에는 영웅들이 쇠고기를 마구 먹어치우는 장면이 자주 나오나, 소나 돼지는 그리스에서는 드물었으며, 현재도 쇠고기나 우유 대신 양고기와 양유를 먹고 마신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식생할은 대체로 검소하고 빈약했을 것이며 위생시설도 극히 열악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과 사상가들은 의외로 장수를 누렸다.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는 71세까지 살았으며, 소포클레스는 91세, 아리스토파네스는 68세, 플라톤은 87세, 변론가 이소크라테스는 98세, 소피스트인 고르기아스는 95세, 크세노폰은 76세까지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70세에 처형되었는데, 보기 드문 강건한 체력의 소유자였으므로 처형되지 않았더라면 훨신 오래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장수했을 뿐 아니라 놀랄 만큼 정력적인 활동을 했다. 셰익스피어는 37편의 희극을 썼지만, 아이스킬로스는 72편 내지 90편의 비극을 썼으며(현존 작품 7편), 소포클레스는 무려 130편(현존 작품 7편), 에우리피데스는 92편 내지 98편(현존 작품19편)을 썼다. 아리스토파네스도 44편에서 54편(현존 작품 11편)의 희극을 썼으며, 크라티노스는 90세에 최후의 작품 를 완성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평생을 극작에만 전념할 수 있었지만, 그리스인들은’폴리스적 동물’ 이라, 폴리스가 요구하는 병역과 공직의 의무를 다하면서 저술을 해야 했다. 예컨대 소포클레스는 두 번이나 장군으로 임명되어 전투를 지휘하면서 130편의 비극을 썼으니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이러한 장수와 정력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서사 시인 헤시오도스는 에서 보이오티아 지방의 가혹한 기후와 비참한 농민의 생활을 개탄했지만, 기원전 4,5세기에 그리스인의 생활은 풍요롭지는 않으나 비참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상쾌한 날씨와 쾌적한 생활 환경, 양질의 토양에서 나는 소박한 음식, 그리고 호텔 지배인 가스톤이 말한 대로 영양가 넘치는 올리브 기름이 활력의 원천이었는지 모른다.                                         지중해 산책에서
8    겨울비 속의 아테네 댓글:  조회:544  추천:0  2014-03-28
                                                                                   겨울비 속의 아테네       아테네가 가까워졌다. 비행기는 착륙하기 위해 오랫동안 서서히 내려가고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아도 흐린 탓에 시가는 보이지 않는다. 항공사진 찍는 것을 단념한다. 이윽고 착륙. 비가 오고 있다.     이때서야 내가 겨울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없이 푸른하늘, 찬란한 태양, 코발트색 바다의 밝고 아름다운 그리스의 여름, 그리스는 여름의 나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가 오고 북풍이 사납게 불고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이다. 어둡고 초라하고 가난한 그리스인의 생활과 역사, 음산한 비극의 무대, 검은 상복의 여인-----.     15년 전 처음 그리스를 찾았을 때가 여름이었고, 더욱이 모든 신들과 여인들의 조각이 나체이거나 여름 치장인 엷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뇌리에는 여름의 그리스만이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리스를 찾은 것은 나그네나 관광객으로서가 아니라, 반년 동안이나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내부인으로서 그리스의 모습을 보러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에 찾은 것이 오히려 시기 적절하다 할 것이다. 그리스의 비를 달게 맞기로 하자.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거리가 어쩐지 낯설지 않다. 자그마한 회색빛 건물들이 하염없이 계속되는 단조로운 풍경 비에 젖은 탓인지 건물은 한결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시내로 들어서면 풍경이 달라진다. 오렌지 나무 가로수에는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오렌지 향기---’ 하는 노래가 생각나서 낭만적인 남국의 정취를 느낀다. 이국에서 온 것이다. 빗속에 어렴풋이 아크로폴리스가 보이고, 하드리아누스 문을 지나 신타그마 광장에 이르니, 처음 아테네를 찾았을 때의 흥분이 홀연히 되살아난다.     오모니아 광장 뒷골목을 헤매다가 운전사는 가까스로 전에 묵었던 ‘ 아마리리스’ 라는 자그마한 호털을 찾아낸다. 프런트에서는 묘령의 아가씨가 한가로이 뜨개질을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초라하기는 매한가지이나 깨끗하고 한적한 것이 이 집의 장점이다. 전에 지배인이었던 가스톤은 은퇴해서 시골에 있다고 한다. 그는 퍽 유머러스한 친구였다. 모든 음식에 철철 넘치는 올리브 기름 때문에 배앓이를 해서 ‘ 파르테논의 모습은 잊어도 올리브는 잊지 못할 것이다 ’ 고 원망을 하자. ‘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인의 건강은 바로 올리브 때문이었어!’ 라면서 두 손으로 가슴을 쳐 보였었다. 아테네를 떠날 때 가드너의 추리소설 몇 권을 건네주자, 그는 페리 메이슨이 여비서 델라에게 키스하는 시늉을 하고는 이렇게 장담하였다. ‘너는 대통령이 될거다 ’고 예언은 빗나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내가 다시 이 초라한 호털을 찾았지만, 그는 이미 이곳 사람이 아니다. 그가 맞아주지 않는 것이 못내 섭섭할 뿐이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신타그마 광장 근처에 있는 한식점 ‘오리엔트’ 를 찾아갔으나, 문이 잠겨 있어 다시 오모니아로 되돌아 온다. 상점 앞에 쌓여 있는 대만제 싸구려 양산을 사들고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오모니아는 여전히 지저분하고 소란스럽고 활기에 찬 서민의 광장이다. 국회의사당, 부명용사의 묘지, 은행, 고급호털로 둘러싸인 세련된 신타그마에 비한다면, 오모니아는 초라하고 촌스로운 편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토박이 아테네인들은 신타그마는 외국인이나 관광객들의 거리일 뿐이고, 진정한 아테네의 중심, 아니 그리스의 중심은 오모니아라고 우긴다. 과장한 말이 아니다. 진정한 그리스의 맛과 냄새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오모니아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리브 기름이 두려워 그리스 음식을 파는 타베르나를 피하고 적잖이 비오모니아적인 카페테리아를 찾아 맛없는 빵조각을 씹는다. 거리의 늙은 군밤 장수한테 군밤을 한 봉지 사서 호털로 돌아온다. 알은 작지만 군밤의 단맛은 전과 다름없다. 그리스에 다시 왔다는 감회를 지긋이 씹는다.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지중해 산책에서
7    다섯 여섯 일곱 여덟째 문 댓글:  조회:752  추천:0  2014-03-14
다섯째 문은 과일 창고의 문이다.   해가 드는 창문 앞에는 포도송이들이 끈에 묶여 매달려 있다. 한 알 한 알이 생각에 잠긴 듯 익어가며 은근히 햇빛을 되새김질한다. 그리고 향기로운 단맛을 빗는다. 배들, 수북이 쌓인 사과들. 과일들이여, 내 너희들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 과육을 먹었으니. 나는 어느새 땅 위에 씨를 뱉었구나. 싹이 터라! 우리에게 또다시 기쁨을 주도록. 미묘한 맛의 아몬드. 경이의 약속. 인. 때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작은 봄. 두 여름 사이의 씨앗들. 여름을 맞고 보낸 씨앗. 그다음에, 나타나엘이여, 싹 틀 때의 괴로움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그러나 지금은 이 경이로움을 보라; 저마다의 수태에는 쾌락이 따른다. 과일은 단맛에 싸인다. 생명을 향한 인내는 쾌락에 싸인다. 과일의 살, 사랑의 맛있는 증거.   여섯째 문은 압착실의 문이다.   아! 나는 왜 지금 헛간 아래---더위도 한풀 꺽이는---사과알들을 압착하는 곳, 압착된 새콤한 사과들 가운데의 그대 곁에 있지 못한가. 아! 술람의 아가씨여, 우리는 우리 육체의 쾌락이 축축한 사과들 위에서는---그 기막힌 냄새가 떠받쳐 주기에---너무 쉽게 바닥나지 않고 사과들 위에서는 더 오래 연장되는 것인지 알아보려 했으련만---. 맷돌 소리가 나의 추억을 흔들어준다.   일곱째 문은 증류실로 통한다.   어슴푸레한 빛. 불타는 아궁이. 컴컴한 기계. 구리 대야들이 어둠 속에서 떠오른다. 증류기. 귀하게 고이고이 받아 모은 신비로운 진. (나는 또한 송진을, 고무 진을, 탄력 있는 무화과나무의 젖을, 머리를 자른 야자수의 술을 받아 모으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주둥이가 조붓한 유리병. 도취가 물결을 이뤄 네 안으로 모여 출렁거린다. 열매 속의 가장 감미롭고 실한 것, 꽃 속에서 가장 달콤하고 향기로운 모든 것을 지닌 에센스. 증류기. 아! 이제 곧 스며 나올 황금 물방울. (버찌를 졸여 만든 즙보다도 더 맛이 진한 것들이 있다. 초원처럼 향기로운 것들도 있다. ) 나타나엘이여! 이야말로 황홀한 광경이다. 온 봄이 이곳에 압축되어 있는 것만 같다---. 아! 나의 도취는 이제 연극적으로 전개된다. 이 지독하게 어둡고 더 이상 내 눈에 보이지도 않게 될 방 속에 들어앉아 나는 마시고 싶다---나의 육체에게---그리고 나의 정신을 해방시키기 위하여---내가 바라는 저 다른 곳의 환영을 다시 부여할 수 있을 만한 것을 마셔보고 싶다------.   여덟째 문은 차고의 문이다   아! 나는 내 황금 잔을 깨버렸다---나는 깨어난다. 도취란 행복의 한낱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마차들이여! 모든 도망이 가능하다. 썰매들이여, 싸늘한 얼음 나라여, 나는 너희에게 나의 욕망의 마차들을 매단다. 나타나엘이여, 우리는 온갖 사물들을 향하여 갈 것이다. 차례차례로 우리는 모든 것에 도달할 것이다. 나는 안장에 달린 주머니에 황금을 지니고 있다. 궤짝 속에는 추위가 그리워질 것만 같은 모피가 들어 있다. 바퀴들이여, 달리는 동안 너희가 몇 번 회전했는지 누가 셀 수 있을 것인가? 마차들이여, 가벼운 집들이여, 날듯 떠오르는 우리의 환희를 위하여 제멋대로 노는 우리의 마음이 너희를 휘몰아 가기를! 쟁기들이여, 우리의 밭 위로 소들이 너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를! 말굽 깎는 칼처럼 땅을 따라 ; 헛간 속에 버려둔 보습들이 녹슬고 있다. 그리고 저 모든 연장들이 ---. 너희들, 우리들 존재의 하염없는 모든 가능성들이여, 너희는 괴로움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더없이 아름다운 고장들을 갈망하는 자를 위하여---그 어떤 욕망의 마차가 너희에게 매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쏜살같은 속도가 일으키는 눈보라 먼지가 우리 뒤를 자욱하게 따르게 되기를! 썰매들이여, 나는 너에게 내 모든 욕망의 마차를 매단다.   마지막 문은 광야를 향해 열려 있었다.   
6    셋째 문은 낙농장의 문이다. 넷째 문은 외양간의 문이다. 댓글:  조회:563  추천:0  2014-03-13
셋째 문은 낙녹장의 문이다.   휴식! 침묵. 치즈가 압축되고 있는 발 받침에서 끝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금속관 속에 압착되는 버터 덩어리. 7월의 몹시 더운 날씨에는 굳어진 우유 냄새가 한결 더 신선하고 김빠진듯--- 아니 김빠진 듯한 것이 아니라 싸한 맛이 어찌나 은근하고 연한지 콧속 저 깊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어 냄새라기보다는 벌써 맛이나 다름이 없다. 더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유지한 교유기. 배추 잎 위에 놓인 버터 덩어리. 농장 집 여인의 붉은 손. 언제나 열려 있지만 고양이나 파리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망을 씌운 창문. 크림이 다 떠오르기까지 점점 더 노란빛을 띠어가는 우유가 가득 찬 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크림이 천천히 떠오른다. 차츰 부풀어 주름이 잡히더니 거기서 유청이 생겨난다. 크림이 모두 빠지고 나면 걷어내는데---. (그러나 나타나엘이여, 그러한 것들을 모두 다 그대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넷째 문은 외양간의 문이다.   외양간은 견딜 수 없게 무덥지만 소들은 좋은 냄새를 풍긴다. 아! 땀이 밴 몸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농가의 어린아이들과 함께 소의 다리들 사이로 뛰놀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풀 말리는 시렁 구석에서 달걀을 찾곤 했다. 여러 시간 동안 소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우리는 쇠똥이 떨어져서 터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소가 제일 먼저 똥을 눌 것인가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암소 한 마리가 갑자기 송아지를 낳을 것 같아서 겁을 잔뜩 집어먹고 달아나 버렸다.                                                                                지드
5    둘째 문은 곡식 창고의 문이다 댓글:  조회:470  추천:0  2014-03-12
  둘째 문은 곡식 창고의 문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곡식의 낟알이여, 내 너희를 찬양하리라. 오곡이여, 갈색의 밀이여, 기다림 속에 묻혀 있는 보고여,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비축물이여.     우리의 빵이 바닥나도 좋다! 곡식 창고들이여! 나는 너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곡식의 낟알들이여, 너희가 거기 있구나. 내 굶주림이 지쳐버리기 전에 너희를 다 먹을 수 있을 것인가? 밭에는 하늘의 새들, 헛간에는 쥐들, 그리고 모든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의 식탁에---나의 굶주림이 다할 때까지 그들은 남아 있게 될 것인가?     곡식의 낟알들이여, 나는 너희를 한 줌 간직해 두었다가 나의 기름진 밭에 뿌린다. 나는 좋은 계절에 그것을 뿌린다. 한 알이 백 알을 낳고, 또 한 알이 천 알을 낳고---     곡삭의 낟알들이여, 나의 굶주림이 충만한 곳에 너희는 넘치도록 가득하리라!     처음에는 작고 푸른 풀처럼 돋아나는 밀이여, 말하라. 너의 휘어진 줄기는 누렇게 익어가는 그 무슨 이삭을 달고 서 있을 것인가!     황금빛의 그루터기, 깃털 장식들과 곡식 단들---내가 뿌린 한 줌의 씨알들---.                                                                               앙드레 지드  
4    첫째 문은 헛간 문이다 댓글:  조회:481  추천:0  2014-03-12
농부여! 너의 농장을 노래하라. 나는 잠시 거기서 쉬고 싶다. 그리고 너의 헛간 곁에서 마른풀 향기가 상기시켜 주는 여름을 꿈꾸고 싶다. 그대의 열쇠들을 집어 들어라, 하나씩 하나씩. 문을 차례로 열어다오.   첫째 문은 헛간의 문이니---   아아! 세월이 변함없는 것이기를! ---아! 왜 헛간 곁의 따뜻한 마른풀 속에서 쉬지 않았던가!---방랑하면서 정열을 못 이겨 사막의 메마름을 극복하려 드느니 차라리!---나는 추수하는 농부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그리고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수확물들이, 헤아릴 수 없이 풍성한 저장품들이 수레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으련만----내 욕망의 질문에 대하여 기다리고 있는 대답처럼, 욕망을 채워줄 것을 찾아 나는 벌판으로 가지 않아도 되련만. 웃어야 할 때가 있고---웃고 난 다음이 있는 것이다. 물론 웃어야 할 때가 있고, 웃은 것을 회상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분명, 나타나엘이여, 이 풀들이 넘실거리는 것을 보았던 사람은 나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던 것이다---베어진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지금은 시들어 건초 냄새를 풍기고 있는 이 풀들---이 풀들이 싱싱하게 살아서 푸르렀다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저녁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아! 잔디밭 가에 누워서 ---흐드러진 풀이 우리의 사랑을 맞아주던 그 시절로 어찌 돌아갈 수 없는 것인가. 들짐승들이 나무 잎새들 밑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솔길은 저마다 가로수 늘어선 대로였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고 땅바닥을 내려다보면 이 잎 저 잎에서, 이 꽃 저 꽃에서 수많은 곤충들이 눈에 띄었다. 초록의 윤기와 꽃들의 종류를 보고 나는 땅의 습도를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떤 풀밭에는 마거리트 꽃들이 별처럼 피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고 우리의 사랑이 깃들던 잔디밭은 산형화들로 온통 하얗게 덮여 있었다. 그중 어떤 것은 가볍고 또 다른 것들은 커다란 어수리의 꽃들로 짙은 색에 아주 크게 벌어져 있었다. 저녁 무렵에는 더욱 자욱해진 풀 속에서 피어 오르는 안개에 떠밀려 마치 반짝거리는 해파리들처럼 저유로이 줄기를 벗어나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 …                                                                      앙드레 지드
3    번역의 차이 댓글:  조회:586  추천:0  2014-03-11
시의 번역은 심장이식과도 같다 하였습니다.   아래 셰익스피어의 두가지 번역판 시 입니다. 현저한 차이가 있지요.                           1,  (피천득 번역) 내가 죽어 음산한 종소리가. 내가 이 저열한 세상을 떠나 가장 저열한 벌레와 살러 간 것을 알리거든. 그대 더 오래 슬퍼 말라. 그리고 이 시구를 읽더라도 그 필자는 생각지도말라. 내 그대를 극진히 사랑하기에, 그대가 나 때문에 슬퍼하는 것보다, 그대의 고운 생각 속에서 잊어지기를 바라노라. 내 말하노니, 아마도 내가 흙이 되었을 때 그대가 이 시구를 읽더라도 나의 대수롭지 않은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고, 그대의 사랑도 나의 목숨과 함께 소멸하게 하라, 영리한 세상이 그대가 애탄하는 것을 보고 나 죽은 후 그대를 조롱하지 않도록.                            2, (번역자 미상) 나 이 세상 떠나도 내 죽음일랑 서러워 말고 그저 침울하고 음산한 조종마냥 흘려 보내시오. 그리고는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나 한 마디 해 주시오. 내가 이 더러운 세상을 떠나 가장 더러운 구더기와 함께 살러 갔다고 혹시 그대가 이 시를 읽는다 해도 기억일랑 마시오. 이 시를 쓴 손을, 그대 이토록 사랑하거든 그대의 감미로운 생각에선 잊혀지길 바랍니다. 나를 생각하면 공연히 슬퍼지실 것이기에 내가 녹아서 진흙이 되었을 때 오 ! 설혹 이 시를 보신다 해도, 아예 내 가엽은 이름일랑 부르지 마시고 그대의 사랑이 나의 생명과 함께 썩어 버리게 하시오, 현명한 세상이 그대의 슬픔을 꿰둟어보고 나 하직한 뒤에 그대까지 비웃으면 어찌 합니까.
2    좋은 글 다시 본다 댓글:  조회:578  추천:0  2014-03-10
    지난 휴일 오랜만에 친구의 집에 들렀다가 그놈이 릴케의 글이라며 한번 보란다. 슬쩍 보니 언젠가 오래전에 본적 있는데 오늘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다.        당신의 생활이 비록 아무렇게나 다루어지거나 쓸데없는 순간이라도 그 충동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연에 근접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게 될 것을 모방하지 말고 말로 표현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사랑의 시는 쓰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선 흔이 있는 일상적인 형태는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것들이야말로 가장 힘든 것입니다. 비록 얼마 되지는 않지만 훌륭하고 빛나는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숱하게 많은 형편에, 독자적인 것을 나타내자면 보다 힘차고 무르익은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즐겨 택하는 보편적인 주제는 피하고 당신 자신의 일상이 주는 주제를 택하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열망 그리고 무엇이든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 자신의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나 믿음을 묘사하십시오. 그것들을 내심에서 올려오도록 은근하고 겸손하게 묘사하십시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사물들, 당신의 꿈의 영상, 추억의 대상들을 인용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이 비록 빈약하게 보일지라도 그걸 탓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탓하십시오. 즉 훌륭한 시인이 못 되여 그 일상의 풍요로움을 불러낼 수 없음을 자책하십시오. 창조하는 자에게는 가난이 없으며, 그냥 지나쳐 버려도 좋을 빈약한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당신이 감옥에 갇혀서 외계의 소음조차 당신의 의식에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에라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그 귀중하고도 풍요한 추억의 宝库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로 주의를 돌리십시오. 지나가 버린 아득한 과거의 가라않은 감동을 다시 캐내 보려고 애쓰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개성은 굳어지고 고독은 넓어져서 어두컴컴한 방이 될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음은 멀리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안으로의 전환에서, 자기 세계 속으로의 침잠으로부터 시가 나오게 되면 당신은 그 시가 좋으냐고 누구에게 물어 볼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겁니다. 또한 잡지사에 보내 그 작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려고 애쓰지도 않게 됩니다. 그저 당신은 자기 작품 속에서 자랑스럽고도 자연스런 재화, 즉 자기 생명의 한 편린, 그 생명의 목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적 필연성에서 이루어진 예술 작품은 훌륭한 것입니다. 시의 원천에 의해서만 시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판단은 있을 수 없읍니다. 자기 자신으로 파고들어서 당신의 생명이 근원한 그 깊이를 음미하도록 하라는 겁니다. 그 원천에서부터 창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 해답이 어떻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모르긴 해도 당신은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실이 밝혀질 겁니다. 그러하면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외부로부터의 보상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말고 그 무겁고도 힘든 짐을 지고 가십시오. 창조자는 그 자신이 하나의 세계이어야만 하며, 자신 속에서나 그 자신과 어울려 하나가 된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찾아내야만 하기때문입니다.
1    수선화에게 댓글:  조회:622  추천:0  2014-03-09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않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 온다. 종 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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