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는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있다. 을씨년스런 날씨가 밖에 나다니고 싶은 마음을 없앤다. 하루동안 몸을 움츠리고 사무실에만 박혀 있으면서 차를 마셨다.
요즘은 그렇게 좋아하던 홍차도 버리고 영지버섯과 상황버섯을 달여서 마시는 건강차를 대신했다. 영지버섯과 상황버섯을 조금만 많이 넣어도 차물이 쓰고 턻어서 여간 맛이 없는것이 아닌데 한 일주일간 양을 조절하면서 끓여보았더니 그제사 어느정도 넣어야 하고 어느정도 끓어야하는지 감을 잠을수 있었다.
그렇게 무엇이든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고 과정이 필요한것이다. 차 달이는것이 그러할진대 인생사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여름에 한줄금 내리는 비는 시원하고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봄비는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수나 다름없다.
우리 지역은 언제나 봄 가뭄때문에 무척이나 고생하던 곳인데 이렇게 여느해와 다르게 봄비가 내리고 있으니 농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다행이 아닐수 없다.
봄이되니 회사일도 다소 바빠지기 시작했다. 지난번 거래하던 회사와 새로운 계약을 했었는데 그 회사에서 오늘 우리 구좌에 계약금을 입금한것이 확인됐다. 계약서를 써놓고 계속 입금이 늦어져서 무척 마음을 썼는데 이렇게 입금확인이 되니 그 기쁨이 말할수 없이 컸다. 그것이 사업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가 싶다.
돈을 쫒아가는것이 아닌 일을 찾아서 하면서 한건한건의 일들이 성취될때마다 느끼는 성취감과 자부심은 사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느낄수 없는 기쁨인것이다. 그러나 계약을 맺고 계약금이 들어왔다는것은 그 일에 대해서 이제 비로서 시작한다는 의미이니 더욱 조심하고 노력해서 우리한테 믿음을 준 회사에 더 큰 신뢰를 심어줘야한다는 깊은 뜻도 내포되여 있는것이다.
중국의 “동주열국지”를 읽어보신분들은 다 잘 아시겠지만 여불위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썼던 <여씨춘추>라는 책이 있다. 물론 여불위가 쓴것이 아니라 그의 문객들이 쓴걸 집필한것이지만 말이다.
중국 사상의 원류라고 말해도 좋은 이 <여씨춘추>에는 논인(论人)이라는 장이 있다. 여기에서는 사람을 그 출처진퇴로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팔관육험”(八观六验)이라는것을 지적했다.
여덟가지의 관점과 여섯가지의 방법으로 검토하여 그 인물의 실력이나 각오 등을 종합 판단할수 있다는것이 그것이다. 그중에 여섯가지 시험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중 첫번째가 “그를 기쁘게 함으로써 그 지킴(守)을 시험한다.” 는 말이 있다. 인위적이든 아니면 하늘의 뜻이든 돈을 벌게 해준다든가 승진,승급을 해준다던가 등 바라던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게 해주고 그 사람이 어떻게 “자제”를 할수 있는지를 살펴볼수 있다는것이다. 의외의 즐거움이 주어졌을때, 무조건 좋아한다거나 감격에 목이 메이는것이 인정인데, 그때 자제할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신뢰할수 있다는것이다. 맞는 말인듯 싶다. 우리도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은 승진이나 승급을 했다고 해서 큰일이나 한것처럼 우쭐렁거리고 폼을 잡고 다니다가 패가망신하는걸 보아왔다. 그럴때 사람들은 애석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손벽을 치며 좋아한다. 인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 대한 답보이리라.
그 두번째 시험은 “그를 즐겁게 해서 그 치우침(僻)을 시험한다.”로 돼있다. 여기서 벽(僻)은 ‘버릇’이 아니고 ‘치우치는 것’을 뜻한다. 즐거운 일을 시켜 그 일에만 열중하여 사회인으로서 균형감각을 잃는지 어떤지를 보려는 뜻이다. 사람이 어떻게 좋아하는 일만을 하면서 살수 있겠는가? 즐거운일은 즐거워서 해야겠지만 때로는 궂은일도 찾아서 할줄 알아야 사회인으로서의 인정과 스스로의 인격의 발전을 거둘수 있는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서 헤여나오지 못해서 부모들이 상담을 해올때면 현대인들에게 다가오는 점점 더 커지는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야하는지에 대한 걱정이 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력으로서 그 유혹을 이겨내야만 하는것이다. 우리는 마음수련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필요한 시점에 직면한것이다.
세번째는 “그를 화나게 하여 그 절제(节)를 본다”로 돼있다. ‘절’이란 절조, 절도이다.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들, 즉 일이 잘되면 자기가 잘해서고 일이 안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다. 각종 핑계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람은 사회인으로서의 척도를 자기 기준으로만 생각하기에 자신의 가치기준이 없다. 그런 사람들은 절제의 도를 모른다. 젤제는 스스로의 가치기준이나 사회의 척도에 맞추어서 한발 물러서는 용기인것이다.
네번째는 “그를 두렵게 하여 그 독립(独)을 본다.” 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공포를 느낄때 흔히 무엇인가에 매달리게 되거나 도망치거나 아니면 굴복하게 된다. 두려움앞에서 독립심을 가지고 대항하는지 어떤지를 살펴보라는것이다. 현대로 말하자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위기관리’ 능력을 시험해보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다섯번째는 “그를 슬프게 하여 그 사람됨을 시험한다.” 이다.’ ‘인’이란 인품, 인간으로서의 내용을 말한다. 사람은 정이 있어야 하고 정이란 인품에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의 인품은 슬픔에 빠졌을때 가장 잘 나타난다고 보고 있는것이다.
여섯번재는 “그를 괴롭게하여 그 뜻(志)을 본다.”로 돼있다. 역경에 빠졌다고 녹초가 되어버리는것은, 확실한 목표와 빈틈없는 계획의 부족으로 선인들은 보고 있는것이다.
맹자의 유명한 말 한마디가 기억난다. “天将降大任于斯人也,必先苦其心志,劳其筋骨,饿其体肤,空乏其身”이라는 말이다. 하늘이 중요한 임무를 모 사람에게 주려한다면, 꼭 그 사람의 의지를 괴롭히고 그 사람의 근육과 뼈를 단련시키고 그 사람의 장과 위에 굶주림을 가하고 그 사람의 신체를 구차하게 만듬으로서 그 사람의 능력을 증가시킨다는 말이된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이 역경에서 성장하고 어려움속에서 발전을 하는것임에는 틀림 없는듯 싶다.
학생시절 가끔씩 다니던 교회에서의 기도생각이 난다. 불교의 법회에 나가거나 다른 어떤곳에서는 잘 듣지못하는 기도가 있는데 그때 교회에서 사람들은 목사따라 기도를 하는데 “저희를 시험에 들지말게 해주소서”하는 말이 있었다.
그때는 무슨말인지 잘 몰랐었는데 썩후에 가서야 그 말이 ‘별탈없이 평안하게 해주소서’하는 기도를 좀 더 기독교적으로 하는 말임을 알게되였다.
누구나 시험에 들기를 원하지 않을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아마 하느님도 시험을 쳐봐야 비로서 사람의 됨됨이를 아나본다.
내 직업이 직업이니 만큼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일일이 시험을 쳐서 사람됨됨이를 알수는 없겠지만 간단한 언행이나 행동거지에서 우리는 그 사람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은 건너가야 그 깊이를 알수 있고 사람은 지내봐야 그 마음을 안다고 했듯이 서뿔히 독단하는것도 바람직하지만은 않을것이다.
예전에는 손님이 오면 커피를 많이 올렸는데 요즘은 영지버섯차로 대신한다.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 영지차는 너무 뜨거울때보다는 끓인후 약간 식혀서 마시는것이 좋다. 그래야 비로서 영지의 순수한 자연의 향기를 음미할수 있기때문이다. 영지버섯만 끓일때는 모르는데 상황버섯과 같이 끓이면 차에서 약간의 흑냄새가 난다. 아니 흑냄새라기 보다는 시골산길에서 한줄금의 비가 내린후 나는 그런 청신한 향기가 난다.
봄비가 내리는 이런날 차를 마시는 나에게는 차향기와 함께 따뜻한 인연의 향기가 피여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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