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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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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라: 흙냄새는 밥냄새보다 구수하다(시평)
2019년 07월 09일 21시 29분  조회:341  추천:0  작성자: jinhua

흙냄새는 밥냄새보다 구수하다

-북방 강효삼 원로시인의 근작시에 기대여

강혜라

 

북방 조선족시단에는 본래 3두마차가 있었다. <두 사람의 풍경>의 리삼월시인(본명 리경희), <주소 없는 편지>의 한춘시인(본명 림국웅), <먼 후날 저 하늘 너머>의 강효삼시인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이제 리삼월시인과 한춘시인은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셨고 망팔을 넘어 70대 중반의 강시인이 아직도 지칠 줄 모르는 문필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며 건재함을 세상만방에 알리고 있다.

특히 강효삼시인은 다른 두분에 비해 짙은 서정이 특징적이며 요즘은 현실고발의 명칼럼들을 쏟아내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리삼월시인이나 한춘시인이 도시적인 시들을 쏟아내신 데 반해 강효삼시인은 오로지 흙에 두발을 깊숙이 파묻고 헌걸찬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북방의 흑토에 대한 다함없는 감정을 활화산마냥 분출해오신 원로시인이시다.

원로시인이라는 호칭에 늘 의견이 많은 강시인은 밥냄새보다 흙냄새를 더 구수하게 여기고 농민들의 삶을 항상 눈물 그렁한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농사를 짓지 않는 농민시인이다. 그의 시에 너무 몰입된 탓일가? 그한테서는 어쩌면 된장에 풋고추 냄새가 날듯하고 밭두렁 흙냄새마저 그대로 묻어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그런 강시인의 구수한 근작시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럴 때는 커피 대신 숭늉 한대접 옆에 떠놓고 권연 대신 구수한 엽초를 실팍하게 말아쥐고 성냥을 드윽 그어 불을 붙인 다음 원고를 마주하는 것이 어울리리라.

 

<이른봄 강물의 소리에서>는 아닌 게 아니라 북방의 강이 등장하고 있다. 시작부터 우리 말들이 들려온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이 풀린다더니’ 이 한행으로 이 시는 시독자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우리 민속도 속에 함몰시켜버린다. 이어 등장하는 ‘북방의 강’은 ‘움찔움찔 몸을 풀 차비’를 하고는 ‘울컥거리며 제 목소리를 낸다’ 북방 농민의 모습에 다름 아닌 강은 그렇게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여럿의 소리를 합칠수록’ ‘웅글은 소리로 범람한다’. 그것은 어떤 소리인가? 그것은 ‘두터운 얼음장에 눌렸어도 / 침묵하지 않았기에 낼 수 있는 소리’이다. ‘모두가 제 목청을 감추며 사는 계절에 / 남먼저 목청 터진 저 강물의 소리는 … 깊은 어둠 쪼개는 칼의 소리’인 것이다. 순박한 농민의 목소리다. 순수하지만 자신만의 색갈이 있다. 해토무렵의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살펴보면 례사롭지 않은 목소리요, 그런 목소리의 여운은 사뭇 길다고 해야겠다.

<락엽에 대하여>에서는 락엽을 ‘노오란 교훈’이라고 이름을 달아주고는 삶과 죽음의 철학을 펼쳐보이고 있다. 살아가면서 가지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결론은 시인의 인생 나이테에서 우러나온 경험일 것이고 ‘저렇게 말끔히 가진 것 다 내려놓고 … 본래의 그 무로 돌아갈 수 있는가’라는 시구는 락엽에 대한 최고의 칭송이며 시인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이다. ‘가장 낮은 땅바닥에 뒹구’는 락엽이고 ‘가진 것이란 온통 절망할 것들 뿐’인 락엽은 결코 후회도 원망도 없다. 또 ‘더러는 아직 아픔이 남아있는듯 / 밟으면 아삭바삭 뼈 부스러지는 / 소리 들리기도 하’는 락엽이다. 시인의 세심한 관찰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시인은 세심한 관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철학을 견인해낸다.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세상에 보여주고저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쉽지는 않지만 버리며 살아야겠음을 느끼게 해주는 시이다.

<나무가 쓴 문장>에는 거거익심, 점입가경, 흥미진진, 화룡점정 등 사자성어들이 총동원될 수 밖에 없다. 나무잎 하나를 가지고 시인은 시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나무잎 하나하나는 그대로 문장부호가 된다. 그리하여 나무는 많은 문장을 품에 안고 있고 수림은 나무가 쓰는 대작들을 집대성한 서림으로 된다. 또 산은 서림을 가득 진렬해놓은 도서관이다. 시인이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결과이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승승장구한다. 그토록 ‘혼신을 다해 쓴 글이지만’ 한해가 지나면 ‘나무는 미련없이 훌훌 다 지워버리고’ 단 한줄만 몸통 속에 나이테로 새겨둔다. 시에서 ‘유명하다 저명하다 따위 / 턱없이 춰올리는 형용사는 외면하는’ 나무의 덕성을 닮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겠지만 여기서는 저명한 시인이 아니라도 이렇게만 쓰면 유명한 시가 맞다고 우기고 싶다.

시인의 타이틀이 되다 싶이 한 <북방>을 보기로 하자. 시인의 눈에서 북방은 ‘진창에 흙이 매달려도 걷고 싶은’ 곳이며 ‘솔나무가 한결 더 싱싱한 곳’이다. 그리하여 ‘나의 사랑’인 북방은 ‘도처에 빙판길’이여도 그리움도 즐거움도 되는 곳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이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하얀 백골’이 있는 곳이다. 배고픈 우리에게는 그대로 찰떡이 되는 곳, 내 겨레가 있고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인 것이다. 이 시에는 북방에 뿌리 내린 시인이 고향땅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끝없는 사랑을 그대로 려과없이 토파하고 있다. 북륙의 칼바람에서 푸른 기상 잃지 않는 소나무의 지조를 가진 시인의 고향사랑이 눈물겹다.

<정>에 대한 시인의 풀이를 들어보자. ‘고향’, ‘어머니’라는 말처럼 따스한 좋은 말이 정이란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 비빔밥처럼 섞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꽁꽁 언 사람에게 김이 문문 나는 따끈한 국밥 같은 것’이란다. 정은 ‘흩어져 제각기 제 갈길만 가던 물줄기들이 / 한데 모이는 것’이란다. 묵은지로 끓인 찌개 같은, 질박한 옹배기 속 텁텁한 탁배기 같은, 메주내와 썩장내가 감돌거나 함지 냄새, 돌절구 냄새 같은 그 모든 것이 고향으로 대변되고 그 모든 것이 정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과 두고 온 고향과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시이다. 이래서 사람들이 강효삼, 강효삼 하는 모양이다.

우리 민족의 상징인 <진달래>는 시인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가. 이번 근작시들 중 가장 짧은 시이다. 그런데 단시의 묘미를 그대로 잘 보여주고 있다. 

 

분명 제 또래들보다 일찍 

바람난 시골 계집애가 분명하다 

사랑이 무엇인지 딱히 몰라도

이성에 대한 집착만은 

놀랍도록 무서워서 

부끄러움도 잊고 왈칵 터뜨린 

빨간 사랑고백 

                                     -<진달래> 전문

 

그랬다. 진달래는 봄이면 가장 먼저 꽃이 핀다. 그리고 그 꽃은 핑크색이다. ‘일찍 바람난 시골 계집애’라는 표현이 찬탄을 자아내고 ‘부끄러움도 잊고 왈칵 터뜨린 / 빨간 사랑고백’에 엄지손가락을 펼쳐들게 된다. 내숭도 없고 짐짓 부끄러움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순수한 그대로 토종 그대로의 것이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진달래도, 시골 계집애도 그리고 이런 시를 터뜨린 원로시인마저도…

이상 강효삼시인의 근작시 몇수를 살펴보았다. 모두어보면 북방을 대변하는 원로시인 강효삼선생은 흙냄새를 밥냄새라고 생각하고 북륙의 흑토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을 토로함에 있어 잔잔한 시내물이 아닌 폭포수처럼 쾅쾅 독자들의 가슴을 울려주고 있다.

언젠가 《도라지》 문학행사에 같은 뻐스로 동행한 적이 있었다. 아침 여섯시 출발하는 뻐스라 우리 젊은이들이 아침 챙겨먹지 못할 것을 미리 짐작하신 선생은 찰떡을 사가지고 뻐스에 오르셨다. 그 때 먹었던 그 콩고물의 찰떡맛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배고플 때 찰떡 같은 존재이신 강효삼시인께서 새해 더욱 문운형통하시기를 기원해본다.

출처:<장백산>2018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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