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changbaishan 블로그홈 | 로그인
《장백산》문학지

※ 댓글

  •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2018년도 -> 2018년 제1기

허은명: 벽(壁)(단편소설)
2019년 07월 09일 21시 43분  조회:388  추천:0  작성자: jinhua

벽(壁)

허은명

 

출항

상해 우숭구국제크루즈터미널.

출렁이는 바다 속에 거인같이 서있는 8만톤 크루즈, 드디여 승객들이 하나 둘씩 탑승하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한시다. 

오전 열시부터 와서 내내 대기만 몇시간째다. 투덜거리며 내 불만 만큼이나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크루즈에 올랐다.

“SkySea 탑승 환영합니다!”

예쁜 서양 승무원이 탑승입구에서 구면처럼 웃어준다.

벌써 이 놈의 낡아빠진 늙다리 크루즈에 오른 지 다섯번째라 별로 신나지도 않는다.

안전검사 마치고 방키를 받아들고 나는 방이 아닌 11층으로 곧장 향했다.

11층에 위치한 SHISKIN, 스파와 면세점이 같이 있는 회사 운영 매장이다. 이곳 스파에 회사 아카데미가 있다. 륙지에서는 여러 법규 때문에 진행 불가한 프로젝트들이 여기 공해를 리용해 진행된다. 난 이번 아카데미 진행과 강의 통역을 담당한다.

“직원이 또 바뀌였네…”

나는 빠른 걸음으로 프런트데스크를 지나 아카데미 라이브가 진행될 스파룸 두개를 하나씩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로 온 녀직원이 역시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 들어온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가요?”

“래일 라이브 진행 시 침대를 오른쪽에 더 갖다 대주세요. 탁자 우 모든 물건은 다 치워주세요. 수술포 펼 자리예요. 룸 두개 사이 문은 열어주시고 테이프로 고정해주세요.”

“아…”

그제야 직원은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무영등도 잘 고정해주세요. 배가 많이 움직일 수도 있으니.”

“아, 네.”

“방마다 하나씩요.”

“네…”

대답에 귀찮음이 묻어난다.

그러는 직원을 보며 난 약이라도 올리듯이 “부탁해요” 하고 웃어보이며 스파를 나섰다. 

뒤죽박죽인 가방 속을 한참 휘저어 방키를 꺼내보니 418번 룸, 실망이다.

“아 뭐야 짝수잖아…”

짝수는 배머리 쪽, 홀수는 배의 뒤부분, 스파는 배의 뒤부분, 11층 식당도 배의 뒤부분… ‘출근길’이 멀다.

한참을 찾아 겨우 방에 들어오니 침대 두개인 심플한 방이다. 창으로는 바다수면이 거의 눈앞에 보인다. 특별히 요구한 2인실이다. 여기서 설명하자면 크루즈 룸과 룸 사이 방음은 안 좋다. 난 옆방 휴대폰 벨소리도 방구소리도 말소리도 코 고는 소리까지도 다 들은 적이 있다. 예민해서 잠도 깊이 못 자는 나에겐 정말 최악인 셈이다. 하여 이번엔 특별히 침대 두개로 왼쪽이 시끄러우면 오른쪽에, 오른쪽이 시끄러우면 왼쪽에 이렇게 번갈아 잘 생각이다.

-띵똥-

“잘 도착했어?”

“밥은 먹었어?”

남자친구다.

“응, 이따 먹으려고.”

“감기는 좀 어때?”

“내가 사다준 홍삼차는 두고 갔더라? 왜 갖고 가서 마시지.”

“래일 몇시부터야?”

“자기야, 나 짐정리 좀 할게.”

“그래 알겠어…”

조금 풀이 죽은듯한 남자친구와의 대화를 끊고 나는 그대로 벌렁 침대에 드러누웠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눈을 떠보니 벌써 방안은 어둡고 창밖엔 검은 바다가 넘실거린다. 휴대폰을 보니 신호가 없다. 곧 공해에 들어선다는 표시다. 쿵쾅대며 등을 켜고 인터넷련결을 결제하려고 SkySea 메신저앱을 등록하는 순간 문자 하나가 들어온다.

크루즈 내 메신저 앱, 방번호로 서로 련락이 자유롭게 되여있다.

“안전훈련(安全演习)에 안 가셨어요?”

헉, 누구지? 하고 발신 방번호를 보니, 416번 바로 왼쪽 옆방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안전훈련시간이다. 출항하기 전 가장 중요한 안전훈련이다. 승객전원은 물론 선원들 모두가 대극장에 모여 안전훈련을 진행한다.

“놀라지 마세요, 금방 그쪽 방에서 소리가 크게 나서.”

“…”

“려행이신가요? 전 그렇습니다만.”

“… 어디서 유시진의 말투를…”

난 무시해버리고 49불을 지불하고 인터넷을 련결했다. 순간 띵동띵동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자기야 밥 먹었어?”

“출항했어?”

“난 지금 퇴근하는 길이야.”

“지금 뭐 해?”

옆방이 신경쓰인 나머지 난 조금 짜증이 났다.

“얼른 밥 먹고 쉬여. 이제 출항이야.”

“그래 이따 또 련락할게~”

남자친구 문자가 끝나자 바로 또 들어오는 문자 한통.

“그럼 좋은 려행 되세요.^^”

 

공해

전쟁이다.

공해의 깨끗한 비취색 바다를 구경할 틈도 없이 나는 원장님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어렵게 모셔온 국제전문가시라 한치 불편함도 갖게 해서는 안되는 게 내 역할이다. 강의부터 시작하여 라이브 동시통역까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의대를 나오지도 않은 내가 어떻게 의료업계에서 그것도 삼년씩이나 일하게 되였는지 나조차도 신기할 따름이다. 

“제니는 의대 가자.”

원장님이 제일 자주 하시는 롱담이다. 

“차라리 원장님한테서 지방흡입수술 받는 게 더 쉬워요!”

뚱뚱하다고 지방흡입하라고 하실 때마다 홀랑 벗고 어찌 수술해요, 수술 받고 나서 어떻게 원장님 얼굴 보고 일해요, 하면서 머리를 젓던 나다.

“실리프팅의 여러 방식 중 고정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가 큽니다. 고정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요. 요즘은 측두부위 절개하여 고정하는 방식으로 하기도 합니다. 효과는 좋은 반면 유지기간이 짧다는 단점이 있지요.”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먼저 간단한 모노실과 가시가 달린 코그실을 리용한 시술방법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땀이 난다.

누군가는 통역이 얼마나 쉽냐고 입만 놀려 돈 번다고 하겠지만 징그럽게 힘이 드는 게 통역이다.  특히나 강의통역을 위해 몇날 밤을 꼬박 샜는지… 얼굴 신경과 동맥 이름은 왜 그리 어려운지…

“커피 한잔 하자.”

원장님의 뒤를 따라 11층 뷔페식당에 들어섰다. 식사시간대가 훌쩍 지나 이미 메인료리들은 치워져있고 샐러드와 과일만 보였다. 

손에 커피 한잔씩 들고 갑판에 올라갔다.

바람이 시원하다.

“언제 결혼하니?”

“다음해 2월에요.”

“예비신부가 나 때문에 맨날 외박이구나.”

곧 결혼을 앞둔 내가 출장 나온 것이 조금은 미안하신지 원장님이 장난스럽게 놀리신다.

나는 웃으며 대답 대신 어두운 밤바다를 멀리, 최대한 멀리 바라보았다. 저기가 끝인가? 아니면 더 가야 끝인가…

“집사람이랑 딸이랑 같이 탔으면 좋았을걸.”

원장님은 가족이 그리우신가보다.

다시 11층에 내려와 라이브를 저녁 여덟시까지 마치니 11층 로천BAR에서 파티가 열렸다.

다들 손에 맥주 혹은 칵테일을 들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다. 평소 꽁꽁 봉인을 해뒀던 령혼들이 풀려나와 자유롭게 소리지르고 광란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그들 속을 간신히 빠져 지나가려던 그 순간 나의 손을 스치고 지나는 손 하나!

흠칫 놀랐지만 내가 예민한 거겠지 생각하며 가까스로 사람들 속을 빠져나와 방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가슴이 뛴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니 남자친구의 문자가 수두룩이 들어와있다.

첫번째 문자를 확인하려는 중 옆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갑자기 긴장이 되고 옆방 쪽으로 신경이 쏠린다.

방문 쪽에서 이쪽 창가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난다. 뚜벅뚜벅…

창가에 멈췄다 다시 랭장고 쪽으로 걸어간다. 뚜벅뚜벅… 그러다 다시 침대 쪽 정확히 내 옆에 앉는 소리가 난다. 나는 다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불도 켜지 않은 방안에서 난 한참을 숨 죽이고 옆방에 신경쓰고 있었다.

“아침에 정장 입고 나가는 모습이 예뻤어요.”

“!”

내가 듣고 있는 걸 알기라도 한듯이 416번 방에서 날아온 문자, 여전히 도둑고양이마냥 숨 죽이고 듣기만 하는 나…

“12층 다용도실에서 강의하시는 걸 봤어요. 예뻤어요.”

여전히 숨 죽이고 있는 나…

“손이 차거웠어요.”

“!”

또 한번 가슴이 뛴다. 아까 나의 손을 스치고 지나가던 손 하나가 생각난다. 부드러운 손이였다. 아니, 이 남자가!

“무례하시네요. 다시 문자 보내지 마세요.” 하고 아주 바보 같은 답신을 보내고 난 급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 문자를 무시라도 하듯 또다시 날아온 문자.

“래일 후꾸오까 려행, 저 혼자인데 같이 할래요?”

그리고 나의 방에도 그의 방에도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참 후 날아온 그의 문자…

“잘 자요. 래일 봐요.”

그렇게 나는 수두룩이 회신을 못한 남자친구의 문자를 멍하니 보며 결국 잠을 설쳤다.

 

후꾸오까

후꾸오까 하까따항의 맑은 경치를 구경하며 원장님이랑 크루즈에서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난 자유의 몸이 되였다. 원장님은 바로 크루즈를 내리셔서 후꾸오까-서울 비행기로 돌아가셨다.

벌써 방문 앞 복도는 시끄럽다. 맞은켠 방도 방문을 활짝 열고 후꾸오까 관광에 들뜬 소리란 소리는 다 내고 있다.

“뭐 입지?” 하며 옷장에 걸어놓은 옷들을 만지던 중 첫날 입었던 정장이 눈에 들어온다.

저도 모르게 어제 밤 그 한마디가 생각난다.

“래일 후꾸오까 려행, 저 혼자인데 같이 할래요?”

귀신에라도 홀린듯 난 그 정장을 꺼내입었다. 려행엔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정장차림, 그럼에도 이 설레임은 뭘가?

떨쳐내듯 와락와락 벗어내고는 간단한 반바지에 티를 입고 도망치듯 방문을 나와버렸다. 

후꾸오까는 귀여운 도시다.

낮고 아담한 지붕이며 정갈한 나무들이며 고운 백사장이며 오래 머물렀다간 사랑이 싹틀 것 같은 신비로움마저도 있다. 그 도시 속을 걷고 있으니 이 한달간 아카데미를 준비하며 고생한 모든 지겨움들이 다 씻겨내려가는 기분이다. 

“자기야, 나 지금 후꾸오까 도착했어.”

남자친구한테 사진 한장 찍어 보냈더니 10초 만에 문자폭풍이다.

“기분 좋아?”

“후꾸오까는 좋아?”

“날씨는 어때?”

“운동화 신었지? 편하게 하고 다녀 알았지?”

“감기는 어때? 약은 먹었어?”

남자친구답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친구는 정말이지 나 바라기이다. 나 밖에 모른다.

“나 후꾸오까 벌써 세번째야…”

언제부턴가 난 나의 무뚝뚝함을 남자친구의 열정을 죽이는 무기로 쓰고 있는 것 같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여있다.

“선물 뭐 사다줄가? 저번에 그 안약?”

남자친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살갑게 굴어봤다.

“아니야, 자기 사고 싶은 거 많이 사고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 돼, 난 됐어.”

착해서 얄밉다. 가끔은 저 착함이 날 피곤하게도 한다. 

우리는 촬영이라는 같은 취미 때문에 우연히 서로를 알게 되였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만났음에도 장장 6년이라는 시간을 련애만 해왔다. 서로 사귀자는 말도 없었고 결혼하자 프로포즈는 더욱 없었다. 불 같은 나의 성격과는 달리 온순하고 잔잔한 성격의 남자친구는 마냥 나를 받아주고 예뻐하기만 했다. 조금은 심심하고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던 우리의 관계가 결혼으로 넘어가게 된 건 내가 삼십대 중반으로 넘어가자 로산이 걱정이 된 나머지 남자친구의 아버지가 결혼날자를 받아오셨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후꾸오까에는 유명한 이색스타벅스가 있다. 이 스타벅스만 다른 인테리어로 되여있다고 한다. 후꾸오까에 올 때마다 들리는 곳이다. 오늘도 나는 홀로 이곳에 들려 아메리카노 한잔 주문하고 멍을 때리기로 작정했다. 천장의 나무격자 인테리어는 보고만 있어도 빠져드는 묘한 느낌이 있다.

“반바지도 이쁘세요.” 하고 해살같이 웃으며 내 앞에 앉는 한 남자.

“스토커예요?”

그 웃음에 홀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잘 잤어요?”

그의 눈은 크지는 않으나 눈동자가 깨끗하고 빛났다.

“결혼하셨네요?”

결혼반지를 낀 그의 손가락은 길고 부드러워보였다. 

“전 재하라고 해요.”

그는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저 애인 있어요.”

심장이 쿵쾅대고 있다. 분명 나는 화나고 당황한 것일 거다.

“밤에 크루즈에서 같이 맥주 한잔 해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의 몸에서 싱그러운 향이 나의 얼굴을 감싼다. 그렇게 안절부절하는 나를 남겨놓고 그는 사라졌다.

크루즈의 밤은 항상 열기가 넘친다.

후꾸오까 하까따항을 떠나기 시작하는 크루즈의 움직임에 따라 내 마음도 야릇하게 숨가빠온다. 꼭 무엇을 기다리기라도 하는듯이 나는 조급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방에 돌아가면 왠지 안될 것 같은 마음에 갑판에서 밤바람을 쐬여보지만 머리는 여전히 뜨겁다. 그렇게 젊은 피들의 파티가 조용해질 때까지 멍하니 있는 나의 옆으로 싱그러운 그 향이 다가온다. 아까 낮이랑 조금 다른 느낌으로.

큰 키는 아니지만 곧고 다부진 체격이다. 

“한잔만 해요.”

그는 역시 홀리울 것 같은 웃음을 지으며 나의 손에 맥주 한병 쥐여준다. 호가든의 향긋함이 코끝을 스친다.

어데서 난 용기인지 나는 머리를 돌려 과감히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그도 웃으며 바라본다. 나와 남자친구가 이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부인은 같이 안 타셨어요?”

나는 그의 결혼반지를 슬쩍 보면서 입을 열었다.

“헤여진 지 2년 됐어요.”

그의 눈에 한오리 슬픔이 살짝 비추었다가 연기같이 사라진다.

“어떤 분이셨어요?”

실은 헤여진 리유가 궁금했다.

“강한 녀자예요. 강한 나머지 제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맥주병을 입에 갖다 댔다. 한모금에 반이 내려갔다.

“제가 어떻게 사랑해줄지 몰라서 보내줬어요.”

문득 얼마 전 다투던 중 남자친구의 한마디가 귀가에 울린다.

“너 너무 강해서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왜 갑자기 그 한마디가 다시 떠올랐는지…

갑자기 그의 얼굴이 내 얼굴 가까이로 훅 들어온다. 

“저기요!”

당황한 나머지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요!”

여전히 내 얼굴 가까이에서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나의 대답 따위는 처음부터 필요 없었다는듯이 그는 낮게 그리고 단호하게 말한다.

“손만 잡을게요.”

차거운 내 손 우로 그의 부드럽고 기다란 손가락이 올라탄다. 조금씩 조금씩 손끝에서 손등으로, 그리고 약지를 스치며 나의 손바닥을 펴서 깍지를 낀다. 나는 얼어붙은 자세 그대로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이 당황스러움과 마음을 간지럽히는 그 무엇이 나를 어쩔 바를 모르게 하고 있다. 그러는 나를 그는 꿰뚫어보기라도 하듯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다. 

“참 예쁘네요.”

그의 목소리는 선체를 치는 파도와 바람소리와 잘 어울리고 있다.

“놀랐어요?”

역시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그는 나를 끌어당겨 갑판 란간에 기대선다. 나의 손을 잡은 채로. 나는 그 손을 뺄 힘도 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말없이 손만 잡은 채 나란히 서서 보이지도 않은 밤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나의 모든 신경은 깍지를 낀 손에 쏠려있고 그의 향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였다.

“놓으세요!”

갑자기 정신이 들기라도 한듯 손을 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향했다. 나의 몸 뒤로 그의 눈빛과 미소를 느낄 수 있었다.

방에 들어온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가슴을 붙들고 있었다. 나의 손에는 아직도 그 온기와 향이 남아있다. 나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던 그의 얼굴이 아직도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오른쪽 침대에 누워 왼쪽 방 문이 열리는 소리를 기다리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너무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공해

마지막 하루다.

간밤의 숙면 덕에 몸도 머리도 가볍다. 

창문 밖에 보이는 파도가 예쁜 에메랄드 보석처럼 부서지고 있다. 그 파도들을 보고 있으니 어제 밤 갑판이 생각난다.

SkySea 메신저 앱을 열어보았다. 문자가 없다.

뭐지? 내가 지금 뭘 기다리는 건가?

이러는 나 자신이 못마땅하면서도 나는 저도 몰래 왼쪽 침대로 자리를 옮겨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조용하다.

이름 모를 실망감이 밀려온다. 옆방 그 사람한테도 이러는 나한테도.

캐리어에서 3일 간 잊고 살았던 책 한권을 꺼낸다. 커피를 마시려고 포트에 물을 올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또박또박. 제 구두소리가 자동차 바퀴소리와 어울려 너무도 생생히 들리는 늦은 밤의 귀가길 속에서 녀자는 자기의 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스라이 머나먼 곳에 있는 별들처럼 자신의 꿈도 저 멀리 있는 현실이 서글펐습니다…”

-<그래도 행복해지기> 속 구절 인용

 

얼마나 읽었을가…

복도 저 끝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발걸음소리 천천히 그리고 무게 있게 한걸음 한걸음 이쪽을 향해 아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뚜벅뚜벅…

그 발걸음은 내 방 앞에 몇초 간 멈추었다 다시 옆방 문앞으로 간다. 이내 들려오는 방안의 소리들… 

그는 웃옷을 벗고 있다.

그의 웃옷은 옷장에 걸리고 있다.

그는 구두를 벗고 있다.

그리고 창가로 걸어가고 있다.

마치 그가 나의 방안에 있기라도 하듯이 나는 그를 보고 또 듣고 있었다.

그는 뭔가를 꺼내든다. 

‘탁~’ 하고 맥주캔 따는 소리가 난다.

바로 나의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들어온다.

“방에 있죠? 같이 마셔요.”

아까 내 방 앞에서 몇초 간 멈춤의 의미를 알 것 같다.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맨발로 조심조심 문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들을가 두렵고 또 묘하게 흥분이 된다.

가만히 열었음에도 문에서는 ‘덜컹’ 소리가 천둥소리 만큼이나 크게 난다. 문 앞에는 맥주 세캔이 놓여있다. 

귀신에라도 홀린듯 나는 왼쪽 침대에 앉았다. 

‘탁~’

나는 용기를 내서 캔을 땄다.

“오늘은 파도가 유난히 이뻐요.”

그는 나한테도 이쁘다고 했었다.

“그러네요. 오늘은.”

나도 모르게 ‘오늘’에 힘을 주게 된다.

“곧 밤이 어두워지겠죠.”

그의 문자에는 아쉬움이 묻어나있다.

나 역시 이름 모를 아쉬움에 마음이 떨린다.

‘탁~’

다시 들려오는 맥주캔 따는 소리… 

나도 두번째 캔을 땄다.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요.”

그의 얼굴과 미소가 또다시 보인다.

“여전히 무례하시네요.”

지금 나의 미소를 그는 보았을가?

“우리 같이 있을래요?”

그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쿵쾅쿵쾅.

심장이 튀여나올듯이 뛰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들킬가봐 나는 가슴을 꼭 부여잡았다.

그가 침대에 올라 벽 쪽에 다가온다. 

“가까이 와요.”

그의 문자가 그의 목소리로 변해 내 귀가에 울리는 듯하다.

나는 손을 들어 벽을 쓰다듬었다, 천천히 천천히…

그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한 곳에 멈추어 등을 대고 앉았다.

그의 향기가 또다시 나의 얼굴을 살랑살랑 간지럽히는 듯하다.

‘탁~’

나는 세번째 캔마저도 땄다.

이어 한뼘 벽 뒤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난다. 

묘한 행복함이다. 가슴 속에 노루만 뜀박질을 살살 해준다면.

“제가 갈가요?”

그는 달콤하게 그리고 위험하게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다.

나는 대답 대신 살며시 벽에 얼굴을 댔다. 

그 역시도 미동조차 없다.

창밖으로 높아진 파도소리만 출렁출렁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나는 등뒤로 그의 온기를 느끼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마치 사랑을 나눈 뒤 련인마냥 말없이 조용히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띵똥

“래일 아침에 도착하지?”

“데리러 갈게.”

남자친구다.

뭐라고 회신을 해야 할지 몰라 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주차장이 머니까 걸어나오지 말고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찾으러 갈게.”

남자친구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꼭 마치 길을 잃은 나를 찾으러 나온듯이 매 한글자마다 나를 잡아끌고 있다.

“보고 싶어 많이…”

문자 속에 남자친구의 착한 얼굴이 나를 슬프게 바라본다.

난 발치에 놓인 따기만 하고 한모금도 마시지 않은 맥주 세캔을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난다. 

배가 흔들거리며 방도 침대도 내 눈물도 같이 부르르 떨린다.

이미 차겁게 식은 벽에 대고 나는 가만히 얘기했다.

“잘 자요.”

 

하선

“승객 여러분, 상해 우승구국제크루즈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SkySea 크루즈를 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방문 앞에 멈춰서서 머리를 돌려 방을 둘러보았다.

창가엔 페지가 접힌 책 한권과 따뜻한 커피 한잔이 놓여있다.

“좋은 아침!”

나는 만족하며 방문을 나섰다.

출처:<장백산>2018제1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 알리무노:몽등교(수필) 2019-07-09 0 459
7 김수연: 가을의 바이러스엔 백신이 없다1(시, 외2수) 2019-07-09 0 414
6 박영화: 외할머니 전 상서(수필) 2019-07-09 0 722
5 허은명: 벽(壁)(단편소설) 2019-07-09 0 388
4 최창륵: 가치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지성인(인물전기) 2019-07-09 0 399
3 마성욱: 엄마의 밥상(시) 2019-07-09 0 384
2 강혜라: 흙냄새는 밥냄새보다 구수하다(시평) 2019-07-09 0 340
1 리태복: 겨울 뒤에는 봄이 정말 있을가(작품평) 2019-07-09 0 36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