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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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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복금: 바둑술어‘사석’(단편소설)
2019년 07월 11일 14시 37분  조회:360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바둑술어 ‘사석’

저복금

 

 

사석선점.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은 모두 자기의 장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양최득의 장점은 일단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면 과감히 바둑돌을 버리는 것이다. 바둑을 두다가 간혹 몇개의 바둑돌이 어느 한 귀에서 서로 맞물려 진흙탕 싸움을 벌일 때면 그는 돌연 바둑돌을 버리고 다른 한 외각에서 포위전을 벌여 보다 많은 집을 차지한다.   

“바둑돌 하나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선점을 잃으면 안되지!” 

양최득은 평소 별로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바둑을 둘 때만은 지긋이 손으로 입을 움켜쥐고 있다가 이런 말 한마디씩 불쑥 내뱉군 한다. 

“넌 지指를 버리는 대가로 도시를 얻으려 했지!” 

양최득과 맞장구를 친 사람은 ‘면도칼’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식이다. 이 자식은 말할 때 언제나 다른 사람의 아픈 곳만을 찔러서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가 방금 말한 손가락 ‘지指’는 바둑돌을 가리키는 ‘자子’와 발음이 거의 비슷하다. 양최득은 못 들은 척 머리를 들지 않고 바둑판만 응시했다. 바둑돌을 잡은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사람들의 시선에 환히 로출된 그의 손은 새끼손가락 하나가 없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그 자리에는 매듭을 방불케 하는 종기가 흉하게 부풀어있다. 

양최득의 세대는 과거 중학교만 졸업하면 무조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재교육을 받으러 가야 했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나서자란 농촌애들과는 달리 생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농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마치 도시의 버림을 받고 농촌에 처박힌 ‘삽자插子’ 같은 존재였다. 그들이 내려간 강북 농촌의 공수(工分=로동 점수)는 형편 없이 낮았다. 한공에 겨우 일이십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은 하루종일 강바닥에서 진흙을 퍼올려도 1.5공 밖에 벌지 못했다. 현찰로 환산하면 겨우 이십전이 되는 셈이다. 삽으로 진흙을 퍼올리다가 간혹 삽자루가 부러지면서 유기유리로 만든 옷단추라도 떨어뜨리면 그 날 하루의 일은 거의 헛탕을 친 거나 다름 없다. 공수가 하도 낮아서 농한계절만 되면 지식청년들은 너도나도 뿔뿔이 도시로 돌아가버리군 했다. 농한기에 하는 일들은 공수가 적은 데다가 집에 있어보았자 추운 고생만 하기 때문이였다. 대개 그맘 때면 지식청년들이 합숙하는 숙소에는 양최득 한사람만 외롭게 남아서 들락거릴 뿐이였다. 년말에 공량을 바치고 나서 생산대에서는 1년 농사 수익을 계산하게 되는데 그 때면 사원들에게 공수를 돈으로 환산해주기도 하고 쌀과 채소 같은 것들을 고루 나누어주기도 했다. 지식청년들은 수입이 없기에 모두 집에서 부쳐온 돈으로 쌀과 채소를 사서 나누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유독 양최득만은 쌀과 채소를 나누어가진 외에도 얼마간 돈을 타기도 했다. 그는 어느덧 농사일을 전부 몸에 익혀 당지에서 내노라 하는 농군과도 어깨를 겨루었다. 동료들은 양최득이 탄 돈이라 해봤자 겨우 집으로 갔다올 차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며 픽픽거렸다. 매번 집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다가오면 지식청년들은 모두 기차표를 사지 않고 집으로 갔다온 자기의 경험을 소개하느라 소근댔다. 이렇게 농촌에서 몇년 지내고 나면 금방 농촌에 내려올 때의 격정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남는 것이란 허탈 밖에 없다. 적지 않은 지식청년들은 한번 집으로 가면 도시에 숨어서 돌아오지 않았다. 농촌에 남아있는 지식청년들도 날마다 빽을 써서 도시로 돌아갈 방법만 연구했다.

그 해 양력설이 지난 뒤 농민들마저도 설 쇨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설치고 있었으나 유독 양최득만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홀로 마을에 남아 말없이 대장이 시키는 여러가지 잡일들을 수걱수걱 했다. 

양최득은 혼자 일하면 조용해서 오히려 더 좋다고 외로운 자신을 위로했다. 마을 사람들은 뒤에서 양최득의 집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가고 수근거렸다. 그들은 지금까지 양최득이 아버지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들었다면 고작 양최득이 자기가 이제는 나이도 많고 어른이여서 더는 어머니 돈을 쓸 수 없다는 말 뿐이였다. 설을 며칠 앞두고 변강농장에서 상춘생이라는 지식청년이 어느 날 문득 나타나서 양최득을 찾았다. 그 때의 장거리 기차표는 유효기간이 4일이였기에 상춘생은 도시로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내려 양최득이 사는 숙소를 찾은 것이다. 그는 양최득과 련속 이틀간이나 바둑을 두었는데 날이 어두워지면 석유등까지 켜놓고 겨루기를 반복했다. 둘은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겨우 밖으로 나와 도랑길을 따라 걸었다. 그 날 마을 사람들은 어쩌다가 양최득의 얼굴에 어려있는 득의양양한 빛을 보았다. 

상춘생은 양최득이 시내 바둑판에서 사귄 바둑친구였다. 상춘생이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은 큰소리를 잘 치는 것이였다. 그는 입만 벙긋하면 나폴레옹이 어쩌고 저쩌고 소크라테스가 어쩌고 저쩌고 했다. 평소 문학서적 읽기를 좋아하는 양최득은 몇번 상춘생과 접촉해보고 나서 상춘생이 여러가지 책들을 많이 읽어서 지식면이 넓고 깊다는 것을 알았다. 도시에 있을 때 그는 쩍하면 상춘생을 찾아가 세상을 론하고 인생을 론했다. 말할 때 간혹 양최득이 자기 관점이라도 내놓으면 상춘생이 고금중외 명작이나 경구들까지 인용하면서 반박해와서 뭐가뭔지 모를 정도로 오리무중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마치 바둑을 둘 때 바둑돌 하나를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양최득은 별로 변론하기를 좋아하지 않기에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열변을 토하는 상춘생의 얼굴만 빤히 쳐다볼 뿐이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자기 관점을 바꾸거나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농촌에 내려간 뒤에도 서로 자주 련락했다. 상춘생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양최득은 시장에 가서 고기를 사다가 그를 반갑게 맞을 준비를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집으로 돌아갈 차비마저 다 날려버렸다.

둘이 산책할 때 양최득은 상춘생에게 강북마을의 논밭과 농사를 소개하면서 자기가 이제는 농촌사람들 못지 않게 일을 잘한다는 자랑을 했다. 상춘생은 두손을 팔소매에 찔러넣고 하늘을 한참 쳐다보다가 얼굴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강남의 기운은 바로 그래서 아름다운 거야. 수천년 력사의 지혜와 아름다움이 루적된 곳이니까”

그 해는 립춘이 빨리 찾아와서 설 무렵에 내린 가랑비에 공기가 때이르게 축축했다. 양최득이 재미 있다는듯 상춘생의 말을 받았다.

“아니, 수천년의 땀과 눈물이 루적되여있는 곳이지.”

“너에게 약간 문학인이 갖고 있는 비감한 정서가 있구나!”

상춘생이 얼굴을 돌리며 양최득에게 물었다.

“넌 농사를 짓는 데 대체 어느 정도의 기술이 필요된다고 생각하니?”

상춘생이 이어 또 물었다.

“너 이런 일들을 좋아하니?”

그다음 또 물었다.

“너 정말 이곳에서 일만 잘하면 로동자로 뽑히거나 대학에 추천받을 거라고 생각하니?”

상춘생은 떠나갔다. 양최득은 홀로 숙소에 남아 또 한해의 설을 쓸쓸하게 쇴다. 그는 집에 앉아 상춘생과 벌였던 바둑판을 다시 한번 눈앞에 떠올리며 한수한수 꼼꼼히 따져보았다. 그 한판의 사석선점! 사실 너무나 뻔한 일이여서 바둑판을 다시 앞에 펴놓고 생각해볼 필요마저 없었다. 그는 바둑돌을 하나씩 잡으며 천천히 비닐로 된 바둑판에 배렬해갔다. 그러다가도 웬 영문인지 이따금씩 바둑돌을 잡은 손가락을 지긋이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의 손가락은 원래 가늘고 길었다. 어렸을 때 누군가 그의 손가락을 보고 피아노를 치기 안성맞춤한 손가락이라며 치하한 적이 있었다. 그렇던 손가락들이 이제는 못이 박혀 보기 흉하게 굵어지고 두꺼워졌다. 하얗고 부드럽기만 했던 손가락 피부도 이제는 실농군의 손가락처럼 검게 타고 터슬터슬 거칠어졌다. 

그 해 설 후에 집으로 돌아갔던 몇몇 지식청년은 도시에 눌러앉아 더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두사람은 돌아왔다가 며칠도 안되여 다시 종적을 감추었다. 듣는 말에 의하면 로동자에 초빙되였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양최득은 자기가 누구보다 농촌에 온 시간이 길고 들뜨지 않고 착실하게 일해왔지만 로동자로 뽑혀 도시로 돌아갈 기회는 자기에게 쉽게 차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름철 수확 때 밭에 나가 밀가을을 할 때면 양최득은 솜씨가 빨라서 항상 밭고랑 제일 앞머리에 서군 했다. 혹시 정말 몸을 내번지고 일한다면 그보다 더 빠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이 하나 적게 하나 다 한가지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굳이 앞을 다투며 힘들게 일하려 하지 않았다. 양최득이 밭고랑 끝에 막 이르렀을 때 뒤따르던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한창 밀을 베고 있었다. 바로 그 때 갑자기 짧고 급촉한 신음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그 소리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우뢰소리 같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허리를 펴고 신음소리가 울려온 방향을 두리번거렸다. 밭두렁 우에 양최득이 우뚝 서있는 게 보였다. 웬 영문인지 밭두렁 우에 선 양최득이 그 날 따라 각별히 커보이고 돋보였다. 두손을 번쩍 쳐든 양최득이 한손으로 다른 한손을 누르고 있었는데 그 손가락 사이에 웬 손가락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 손가락은 마치 다른 한손에서 뽑아온 손가락 같았다. 쳐들린 손가락 아래로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 예리한 낫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렇게 예리하게 빛나는 낫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번쩍번쩍 은빛을 발하는 낫날 아래로 빨간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양최득은 즉시 공사 위생소에 호송됐다가 다시 현병원에 옮겨졌고 나중에는 그의 부모들이 사는 남성南城에 옮겨졌다. 이 기간이 다만 며칠 밖에 되지 않았으나 그는 이전처럼 여전히 침착했고 태연했다. 그는 병원에 갈 때 요나 이불 같은 침구를 가지고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간 뒤 더는 그의 소식이 없었다. 나중에야 마을 사람들은 양최득이 불구라는 리유로 도시로 돌아가게 되였다는 것과 이제부터 더는 농촌에 붙박힌 지식청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양최득이 병으로 도시로 돌아간 뒤 얼마 안되여 지식청년에 대한 정책이 새롭게 나와 모든 지식청년들이 다 도시로 되돌아가게 되였다.

도시에 남게 된 양최득은 지식청년 직장배치정책에 의해 어느 한 공예품공장에서 일하게 되였다. 이 공예품공장은 소집체기업에 속했다. 그 때 기업들은 모두 세가지로 나뉘였다. 즉 대집체기업, 소집체기업, 국영기업 등이였다. 같은 도시에서도 공장에 따라 대우가 달랐지만 너무 큰 차이는 없었다. 양최득은 전문 종이에 그림이나 글을 새기는 부서에 배치받았다. 이 부서는 가두에서 경영하는 작은 공장이였지만 취급하는 공예품의 품목만은 결코 적지 않았다. 이를테면 목조木雕, 죽조竹雕, 옥조玉雕 등을 다 취급했다. 종이조각 품목은 공장을 참관하러 온 시장의 제의에 의해 하게 되였다. 시장이 지구에서 전근해왔기에 그 지구의 재래항목인 종이조각예술을 추천했던 것이다. 종이조각은 작은 항목이라 평소 전문가 한 사람이 학도 몇을 거느리고 일하는 정도였다. 양최득이 공장에 갓 들어왔을 때 종이조각은 전 공장에서 경제적인 효률이 가장 높은 부서였다. 그 때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유족하지 못한 때여서 한장에 몇전 밖에 하지 않는 종이조각을 사서 희사나 길일을 경축했다. 황경중이라는 스승은 이 종이조각공예품의 계승자였다. 종이조각예술은 그의 손에 의해 영향면이 크게 확대되였다. 그도 지구에서 전근해왔는데 웬 영문인지 그가 받는 학도마다 모두 녀자 뿐이였다. 남자인 양최득을 받은 것은 그가 원해서가 아니라 받지 않으면 안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목조, 죽조, 옥조 같은 일은 모두 섬세하고 치밀한 기술성을 요구했다. 공장 령도들이 양최득을 그의 수하에 억지로 안배한 것은 양최득이 불구이기에 직종을 배려해주지 않으면 안되였기 때문이다. 종이조각공예는 전지剪纸예술에서 발전해왔다. 전지는 한번에 한장의 종이만을 오려야 하기에 각별히 손재주가 좋아야 한다. 그러나 종이조각은 도안에 따라 새기기에 한번에 여러장을 새길 수 있었다. 도안은 스승인 황경중이 그린 뒤 몇몇 학도들에게 넘겨주어 새기게 했다. 황경중은 50살이 넘었는데 아래턱에 항상 수염을 남기고 다녔다. 평소 그는 항간에서 류행되는 유머로 사람들을 곧잘 웃겼다. 그 시대에는 자극적인 육담이나 걸직한 롱담을 하는 것이 크게 실례되는 일이 아니였다. 황경중스승의 특기는 평소 주고받는 모든 화제를 녀자에 관한 롱담으로 유도해가는 것이였다. 아마도 외설적인 화제에는 항상 욕망의 힘이 넘치기 때문이리라. 그만큼 황경중스승이 그린 도안은 장군이든 재상이든 부처님이든 날아다니는 새든, 네발 가진 짐승이든 관계없이 언제나 속되고 거친 갈망으로 가득차있었다. 따라서 그의 도안은 언제나 신선하고 진실하고 활기로 넘쳤다.

스승과 제자 사이라고 하지만 황경중은 유독 양최득만은 스스로 알아서 종이에 그림을 새기게 했다. 녀자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몸 가까이 밀착해서 손까지 꼭 잡고 가르쳐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런 편애가 전혀 리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였다. 농촌에서 못이 박히게 일해서 거칠어진 투박한 손을 잡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런 차별대우를 받으면서도 양최득은 마치 종이를 새기는 조각칼 끝에 정말 무슨 큰 비결이라도 숨어있는 것처럼 항상 스승님, 스승님 하고 부르며 자주 황경중 집을 들락거리며 물도 길어주고 석탄도 날라주었다. 마치 스승에게서 정말 큰 비결이라도 배워낼 것처럼…

황경중스승이 그에게 얼마간 가르쳤다면 말로 되는대로 지시하는 것 뿐이였다. 그가 양최득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그림은 마음속에 그려져있어야 한다”는 것 뿐이였다. 

양최득의 마음속에는 항상 황경중이 그린 도안이 우렷이 떠올랐다. 그는 한칼한칼 그 도안에 따라 새겨갔다. 그렇게 반복해서 새기노라니 칼이 점차 자연스럽게 그의 뜻을 따라주었다. 양최득은 이만하면 스승의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황경중은 그가 그린 도안을 보자 아래턱 수염을 쭈볏이 치켜세우며 한참 후에야 말문을 열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왜 죄다 우거지상이야.”

그 말을 듣고 양최득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꺼내 다시 자세히 훑어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비결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그린 그림과 스승이 그린 그림을 펼쳐놓고 비교해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그린 도안이 스승이 그린 도안과 모양은 비슷하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스승이 그린 도안은 뱀 한마리를 그린 거나 쥐 한마리를 그린 거나 모두 살아숨쉬는듯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나 그가 그린 도안은 살진 돼지를 그린 거나 오동통한 아이를 그린 거나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모두 수심과 비애에 젖어있었다.

그는 엷은 종이를 스승이 그린 도안 우에 놓고 그대로 모방해 그리고는 그것을 다시 새겨놓고 섬세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몇번이나 반복하고 나자 그의 칼끝 아래에서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도안을 그릴 때 조금만 한쪽에 치우쳐도 스승이 말한 ‘우거지상’이 또다시 되살아나는 것이였다. 

양최득은 그렇게 되는 것은 그의 칼솜씨가 아직도 제 수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벽구석에 놓인 탁자 가장자리에 앉아 숨 죽이고 조용히 그림을 새겼다. 그에게 있는 것이란 인내심 뿐이였다. 그는 듬직하게 자리에 앉아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래 앉아있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은 다 그가 바둑을 두면서 련마한 내공이였다. 마음이 갑갑할 때면 그는 이따금 일어서서 스승의 탁자 앞에 놓여있는 화책을 펼쳐보기도 했다. 그 때의 화책에 그려진 그림은 대부분 단순한 선전적인 표현들 뿐이였다. 그는 공휴일이 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곳으로 찾아가서 그 곳에 전시된 그림들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했다. 때로는 어떤 명화가의 명작품 앞에 얼빠진 사람처럼 멈춰서서 뚫어지게 응시하는 때도 있었다.

농촌에 있을 때처럼 공예공장에서 양최득의 작업량은 조금씩 선두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갓 결혼한 몇몇 녀학도들은 일찍 집에 돌아가고 싶어서 쩍하면 자기들이 맡은 임무를 양최득에게 떠맡겼다. 양최득은 그러한 일을 별로 개의치 않게 생각했다. 조각칼은 가늘게 갈아놓으면 한번에 몇장은 족히 새길 수 있었다. 양최득은 그중 한장이라도 편차가 생기면 가차없이 구겨버리고 다시 새겼다.

조각칼을 다루는 그의 솜씨는 어느덧 능수능란한 경지에 이르러 곧게 새기려고 마음 먹으면 곧게 새겨지고 동그랗게 새기려고 마음 먹으면 동그랗게 새겨졌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형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전히 ‘우거지상’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황경중스승과는 비할 수 없었지만 다른 녀학도들과는 얼마든지 비할 수 있었다. 그녀들이 새긴 선은 아직도 비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인물형상의 표정들은 행복함과 경쾌함을 잃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흠집들은 그림을 사가는 사람으로 말하면 별로 문제 될 것까지는 없었다. 그림을 살 때 누가 까짓 한장의 그림을 놓고 그렇게 오래 관찰하겠는가!

개혁개방이 시작되자 공예공장 밖의 다른 공장들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한 공장들의 유혹에 빠져 이미 공예공장의 녀학도만 해도 둘이나 다른 곳으로 전근해갔다. 다른 한 녀학도도 이틀이 멀다 하게 병휴가서를 내밀었다. 황경중스승은 이미 퇴직 나이가 되였으나 공장에서는 퇴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전에 비해 많이 자유로와졌다. 평소 그는 공장에 자주 나오지 않았다. 간혹 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 새로 설계한 도안 한장을 들고 와서 양최득더러 새기게 했다. 때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으면 양최득을 불러 대신 구사하게 하고 그것을 종이조각 형식으로 다시 표현해보게 했다.

양최득은 시간이 많았다. 전에 비해 공장의 생산임무가 적어졌기 때문이였다. 사회의 발전추세가 돈벌이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어서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종이조각 같은 것은 점점 외면당하고 있었다. 

양최득은 결혼했다. 안해는 그의 바둑친구 류진취의 누이동생이였다. 양최득과 류진취는 같은 골목에서 살았었다. 양최득은 골목 어귀에서 살았고 류진취는 골목 끝 쪽에서 살았다. 농촌에 내려갔을 때 매년 설 쇠러 시내로 올 때마다 양최득은 류진취 집에 가서 바둑을 두군 했다. 류진취 집은 성분이 높았으나 양최득 같이 농촌에 내려간 ‘삽자插子’를 별로 꺼리지 않았다. 

류이미는 다른 처녀들과는 달리 피부는 순수한 황인종이였지만 피부색은 검은 편이였고 두 눈은 작고 가늘었다. 약하고 메마른 몸매는 언제나 푸들 줄 몰라서 피부가 마치 뼈우에 가죽을 들씌워놓은 것 같았다. 처음 보면 못나게 생각되나 자주 보면 별로 눈에 거슬리지 않는 얼굴이였다. 농촌에서 도시로 돌아와 처음 류이미를 봤을 때 양최득은 그녀가 못생겼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같이 마주 서서 대화하면서 그녀가 상을 찡그리거나 웃거나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친근감이 들었다. 

양최득이 도시로 돌아오던 해 그의 나이는 이미 30살에 가까웠다. 류이미 나이도 결코 적지 않았다. 인물 때문에 그녀에게는 그 때까지 남자친구가 없었다. 류이미가 양최득을 보고 이렇게 그를 치하했다.

“오빠는 정말 들뜨지 않는군요. 요즘 세상에 오빠 만큼 듬직하고 침착한 남자는 드물지요!” 

양최득과는 달리 그녀의 오빠인 류진취는 듬직하지 못했고 항상 마음이 들떠있었다. 양최득이 바둑을 두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갈 때마다 그는 어디로 갔는지 항상 집에 있지 않았다. 양최득은 집을 지키고 있는 그의 녀동생과 심심풀이로 한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말저말 나누는 사이에 둘은 자신들도 모르게 정이 통해 서로를 사랑하게 되였다. 

류이미가 고중을 졸업할 때 오빠인 류진취는 이미 회북이라는 농촌에 재교육을 받으러 갔다. 부모의 신변에 자식 하나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정책이 있어서 류이미는 쉽게 도시에 남아 일할 수 있게 되였다. 나중에 그녀는 도시 환경청결을 담당하는 일을 하게 되였다. 류이미는 양최득과 같이 있을 때면 양최득의 이야기를 듣기를 가장 좋아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양최득이 책의 내용들을 복사하듯 그대로 옮긴 것들이였다. 그로 인해 양최득은 더 많은 문학서적들을 읽어야 했다. 평소 별로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양최득이였지만 류이미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만은 례외였다. 그 때면 그는 비단 말을 많이 할 뿐만 아니라 청산류수처럼 술술 잘하기도 했다. 양최득이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할 때면 류이미는 옆에서 아이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흐느꼈다. 그 때면 양최득의 눈에 류이미가 각별히 예뻐보였다. 양최득은 더는 참을 수 없어 손을 내밀어 안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섬세하고 부드럽고 윤나는 그녀의 피부가 손끝에 닿을 때마다 그의 느낌이 그대로 투명한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짜릿하게 녹아들었다.

류이미는 양최득과 결혼한 뒤 더는 환경청결공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장기청가를 맡고 대학입시준비를 했다. 류이미의 수입이 끊어지자 가정생활은 전부 양최득 한사람의 월급에만 매달려야 해서 생활은 언제나 빠듯했다. 양최득은 늘 류이미에게 과거 농촌생활에 비해 지금의 생활이 어디가 더 나아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류이미로서는 양최득의 이 말을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로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양최득이 한 말은 확실히 가식 하나 없는 진실이였다. 

류이미는 몇년간 련속 대학입학시험을 보았으나 번마다 락방되였다. 그러나 전혀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였다. 대학입시에 락방한 대신 임신했기 때문이였다. 식구가 하나 더 불어나자 양최득은 가급적 밤작업을 늘여 상금을 받으려 했다. 그의 조각칼 아래에서 새겨지는 그림들은 환골탈태하여 과거와는 풍격이 많이 달라졌다. 양최득은 원래 황경중스승만이 할 수 있었던 기술적인 일들을 어느덧 전부 배워내고 익혔다. 필경 그는 적지 않은 책들을 읽은 사람이라 문화수양이 결코 낮지 않았다. 그의 종이조각 솜씨와 재능이 늘면서 도안은 보기 좋으면서도 통속적이였고 전통적인 유산의 틀 속에서도 새로운 기상과 빛을 발했다. 

아이를 낳고서도 류이미는 전혀 몸에 살이 오르지 않았다. 피부는 여전히 팽팽했고 부드럽고 섬세하고 매끄러웠다. 양최득은 비록 생활이 바빠졌지만 과거 농촌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어서 어떠한 가정 일이든 다 할 줄 알았다. 저녁이 되면 안해와 아이가 그의 품속에 함께 기대와서 그러한 나날이 그로서는 가장 만족스러웠다. 마음에 드는 안해와 아이가 있는 데다가 그가 새긴 종이조각도 호평을 받고 있었고 판매량도 크게 늘고 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데다가 대학입시에서 또 한번 락방돼서 류이미는 원래 출근하던 도시환경청결소에 다시 복직하려 했다. 그 몇년은 사회변화도 커서 출신을 문제 삼던 일은 어느덧 력사의 한페지로 넘겨져 해외친척관계 같은 것을 더는 문제삼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해외에서 살던 류이미의 친척이 친척방문으로 와서 류이미에게 출국하여 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류학하기를 권했다. 귀국한 뒤에도 친척은 련락을 계속 끊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당숙이 되는 해외 친척이 그녀의 해외에서의 학비와 생활비를 전부 부담하겠다는 희소식을 전해왔다. 

그 날 저녁, 류이미는 양최득의 품에 안겨 출국에 관한 화제를 꺼내면서 “해외에서 생활한다니 듣기만 해도 겁나 죽겠어요. 당신의 그늘이 없이 제가 어떻게 살아?!” 했다.

며칠 뒤 류이미는 도시환경청결소에 복직하는 일을 말하다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흐느끼면서 외국에 나가보고 싶다고 했고 이후에 기회를 만들어 양최득과 아이를 데리고 외국구경을 시켜주겠노라고도 했다. 그 뒤 류이미는 출국했고 양최득은 혼자 아이를 데리고 살았다. 그는 때로는 아이를 쓰다듬으면서 애엄마가 해외에 간 거나 그가 과거 농촌에 간 거나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자기는 시골에 내려가 단련을 받았고 안해는 해외에 가서 단련을 받고 있으니까. 그는 안해가 외국에 갔으니 꼭 많은 점에서 습관되지 않고 불편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때로는 아들을 품에 꼭 끌어안고 아들이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속으로 비애와 미묘한 예감이 엇갈려 찾아들었다. 

안해가 외국에 나가있는 그 몇년 동안 양최득은 밖에 잘 나가지 않았고 바둑도 잘 두지 않았다. 설사 밖에 나간다 해도 아이를 안고 나왔고 마치 아이에게 바둑을 가르치기라도 할듯 언제나 손으로 바둑판을 가리켜보였다. 그는 바둑은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찍 가르치면 바둑에 대한 기초가 튼튼해져서 평생 가도 잊지 않으니까. 그래서 동자공童子功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아이는 두세살 때 몹시 여위고 약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혼자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가고 걱정했다. 그러나 양최득 자신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애엄마가 있을 때도 아이는 거의 그가 키웠기 때문이였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양최득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 애에게 끝없이 말을 걸었다.

“너 장차 뭘 할래?”

“바둑 둘 거야!”

“혼자 두면 재미없지.”

“아빠두 혼자 두지 않아?”

“너와 바둑 둘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나 혼자 둘래.”

몇년 전 바둑 두러 곧잘 찾아오던 북쪽 골목의 왕씨도 요즘 양최득을 별로 부르지 않았다. 양최득은 사람들이 자기가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불편한 몸이기에 찾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론 손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을 때면 그는 아이를 안고 류진취 집에 찾아가서 류진취와 한판 겨루기도 했다. 그런 때면 장모가 아이를 대신 봐주었다. 류진취의 원래의 바둑 실력은 그와 비슷했으나 요즘에 와서는 늘 그에게 지고 있었다. 류진취의 바둑판에서의 살상력은 눈에 띄게 무뎌지고 약해졌다. 양최득은 류진취와는 달리 자기의 바둑실력이 더 는 것 같았다. 그동안 혼자 장기를 두면서 바둑 두는 비결을 깨쳤기 때문일가? 

양최득은 이미 아이를 돌보는 생활에 습관되였다. 아이가 소학교에 다니게 되자 안해가 전화를 걸어와 그들을 외국에 데려가는 문제를 의논하자고 했다. 그러나 양최득은 선뜻 응하지 않았다. 안해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게 공부하는데 가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자기는 불구이고 외국어마저 모르는데 어떻게 외국에서 사는가? 양최득으로서는 안해가 자기와 아이를 먹여살리는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안해가 대학을 졸업할 때도 다되여갔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면 안해가 곧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바로 이 때라는듯 류이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흥분된 어조로 자기가 그 곳에서 취직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녀가 기뻐하는지 괴로워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 뒤 안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더는 혼자 외국에서 살 수 없고 그렇다고 귀국할 수도 없다면서 만약 당신이 정 올 생각이 없으면 아이를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했다. 양최득은 금방 그녀의 뜻을 리해했다. 그녀가 그와 헤여지려는 것이였다. 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외국에 데려가려 했다. 혹시 양최득은 진작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리혼문제를 협의하는 동안 류이미는 하루 건너 전화를 걸어왔다. 양최득은 그녀가 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명색 뿐이고 사실은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었다는 것을 후에야 알았다. 그녀는 클리트라고 하는 한 외국 남자가 그녀에게 반해 밤낮없이 쫓아다닌다고 실토했다. 그녀는 또 국내에 있을 때는 사람들로부터 줄곧 밉게 생겼다는 말만 들었는데 외국에 와서는 사람마다 자기를 동방미인이라고 찬미한다고도 했고 그녀와는 달리 그녀와 같은 호텔에서 일하는 다른 한 중국 처녀 상염은 눈이 크고 피부색이 희여서 국내에 있을 때에는 미녀로 떠받들렸지만 외국에 와서는 남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도 했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녀의 피부가 아무리 희여봤자 백인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백인들은 자기 같은 피부를 만들려고 해빛에 일부러 살을 검게 태운다고도 했다. 외국사람은 사람마다 다 눈이 크기에 희소가치라는 말처럼 자기 같이 작은 눈이 오히려 더 인기라고 했다. 그리고 클리트라는 남자가 그녀의 피부를 찬미하고 그녀의 피부를 쓰다듬으면 중국의 실크를 만지는 것 같다고 한다고 했다. 

양최득은 류이미와 리혼했다. 그는 아이를 그녀의 신변에 데려다줄 때 또 한번 아이 대신 비애를 느꼈다. 이번엔 아이가 아버지의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였다. 양최득이 류이미에게 아이를 맡긴 원인은 그가 직장을 그만두었기 때문이였다. 공예공장을 공장장 한 사람이 도맡게 되자 평소 리윤을 내지 못하던 종이조각부서부터 없애버렸다. 그는 클리트라는 외국 남자가 생활조건이 괜찮기에 류이미가 그와 같이 살면 자연히 잘살 것이라고 믿었다. 양최득은 아이로 말하면 어머니를 따르는 것이 아버지를 따르는 것보다 더 좋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로서는 아이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아이에게 리롭게 하고 싶었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었다.

양최득은 날마다 밖에 나가 바둑을 두었다. 지금까지 그는 마음이 이렇듯 홀가분한 적이 없었다. 그는 무엇도 관계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잊고 오직 바둑판에만 매달렸다. 홀로 사는 그의 생활은 마치 버림받은 바둑알과도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텅 빈 방안을 보고 있으면 웬 영문인지 마음이 흐리멍텅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정원에서 바둑을 두었다. 매판마다 그는 전투에 뛰여든 사람처럼 진지하고 엄숙했다. 누군가 그에게 왜 처자와 함께 외국에 나가지 않았는가고 물으면 양최득은 “왜 외국에 가지 않았는가구 ? 외국에 가면 한가하게 바둑을 둘 수 있는가?”고 반문했다. 그 때 그의 말을 누군가 이렇게 받았다. 

“자넨 자식 하나를 잃는 대가로 공장장이 되려 했잖아!”

양최득은 머리를 들지 않고도 불청객처럼 불쑥 대화에 끼여든 사람이 다름아닌 면도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마음이 덜컹 했으나 여전히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리혼할 때 류이미는 확실히 그에게 목돈을 주었다. 그는 류이미의 마음이 리해되여 그녀가 내미는 돈을 받았다. 외국으로 놓고 말하면 그만한 돈이 아무 것도 아니겠으나 외화와의 환률 차이가 커서 외국에서는 반달 급여도 안되는 그 돈이 그를 일시에 ‘만원호’로 되게 했다. 그는 입을 하 벌리고 흐리멍텅하게 침대 우에 앉아있었다. 방금 둔 바둑이 현실이 아니라 환영 같았다. 면도칼은 언제나 집문 앞에 놓인 바둑판에만 있었고 정원은 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진실해보였고 면도칼다워보였다. 원래 양최득과 같이 한 공장에서 일했던 두 사람은 공장을 도맡은 공장장과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던 간부였다. 그들은 해체된 공예공장을 다시 세우려 했다. 양최득에게 일정한 자금이 있는 것을 알고 그들은 집까지 찾아와서 양최득을 출자지분의 주주로 모시겠다며 설득했다. 이리하여 양최득은 그들과 동업자로 되였다. 양최득이 제기한 출자조건은 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종이조각항목을 보류하는 것이였다. 그는 자기에게 관리재능은 없고 오직 종이조각 솜씨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다년간 종이조각 업종에 종사하면서 그는 점점 종이 우에 한칼한칼 여러가지 도안을 새기는 일을 좋아하게 되였다.

새로운 공장이 끝내 개업되였다. 양최득은 여전히 매일 출근하면서 그만의 종이조각 일에만 몰입했다. 공장의 경영에 대해 그는 언제 한번 묻지 않았다. 지어 그에게 전달되는 자금손익명세표마저 보지 않았다. 사실 그런 수자거래는 봐도 잘 몰랐다. 

주문이 있으면 그는 그림을 새겼고 주문이 없을 때에도 여전히 그림을 새겼다.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잘하든 못하든 그는 여전히 성심껏 일만 했다. 지각도 조퇴도 하지 않았다. 그의 존재는 공장의 판매창구의 항목이 하나 더 늘어나게 했다.

어쩌다가 공장장 사무실에라도 가면 공장장은 밖에서 온 손님들에게 그를 합자주주라고 소개했다. 손님들은 그를 양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그 무슨 사장이니 회장이니 하는 사람은 아니나 주식 초과배당금은 받으며 과거처럼 더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 몇년간 사회변화는 갈수록 커졌고 그 기류를 타고 공장규모도 커져서 높고 으리으리한 공장건물까지 보라는듯이 일어섰다. 공장장들은 떼돈을 벌어 자가용차도 몰고 다니고 큰 주택에서 살기도 했다. 그러나 양최득은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고 낡고 낮은 집에서 그림만을 새겼다. 

비록 양최득이 가장 일찍 출자한 합자자이지만 그의 출자금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의 투자금은 이미 다른 투자자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미소해졌다. 그러나 그것을 미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받는 초과배당금도 그만큼 미소했기 때문이다. 혼자 공장을 들락거려도 누구도 그를 의식하지 않았다. 그는 낡은 공장건물의 한 구석에서 소리없이 자기 일만 했다. 마치 버림받은 바둑돌처럼…

그는 출퇴근하면서 간혹 한가할 때면 바둑을 두기도 했다. 그러나 승부를 다투지 않았고 높고 낮음을 비하지도 않았다. 기회 있으면 업무를 련계했고 업무를 련계하지 못하면 자기가 새기려고 했던 도안을 계속 그려갔다.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기니 오히려 홀가분하고 자유스러웠다. 이미 새긴 도안은 스스로 가져다가 앞에 있는 판매부의 창고에 넣어두었고 그것이 팔리든 팔리지 않든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로서는 그것들이 필경 아직도 멋져보였기 때문이였다. 

중년 이후의 인생은 참으로 빨리 흘러갔다. 언뜰하는 사이에 몇년이 흘러갔고 뒤돌아보니 남은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한판한판의 바둑판처럼 둘 때에는 매 걸음마다 다 뜻이 있고 함정이 있고 쟁탈이 있고 모략이 있고 허虚와 실实이 있었지만 손을 떼고 나앉으면 잡히는 것이란 공허 뿐인 것과 똑같았다. 외국에 간 아들은 어느덧 결혼하여 살림살이를 하고 있었고 그동안 양최득에게만 해도 두번이나 왔다갔다. 그들은 서로 낯설음 때문에 어색해했다. 양최득에게 있어서 변하지 않은 것이란 매일 도안을 새기는 것 뿐이였다.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발전 추세에 순응하기 위해 공장에서는 종이조각예술품을 사회홍보용으로 포장했다. 양최득은 새긴 매 한장 한장의 그림을 투명한 종이 사이에 끼운 다음 접어서 박스 안에 넣었다. 한 간부가 공예공장을 참관 왔을 때 양최득은 현장에서 도안을 새기는 표현을 해보였다. 그 간부는 그의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종이조각공예가 아직도 사회에 홍보가 제대로 되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홍보가 제대로 안됐다고 한 그 간부의 말은 그냥 례의적으로 해보는 인사치례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돌아갈 때 공장에서 홍보를 위해 종이조각품을 선물로 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선물로 박스에 넣는 것은 종이조각품이 아니라 옥조각품 같은 것들이였다. 다행히 학교에서 조직한 아동견학단원들만은 떠나갈 때 매 아이들마다 한장씩 사서 조심스럽게 손에 받쳐들고 갔다. 마치 바람이 불면 그림이 날려가기라도 하듯 아주 조심조심…

양최득은 긴 시간 할일이 없어도 전혀 당황해하지 않고 다만 자신이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그림을 새기기에만 바빴다. 그는 그림을 구사할 때 매 장의 형상을 다 다르게 그리려고 정성을 다 기울였다.

그는 이따금 공장구역의 아스라하게 높은 빌딩을 따라 낡고 허름한 옛 단층건물 안에 들어서면 해빛이 가리워진 건물 안이 너무나 음침해서 도안을 그릴 때 쓰는 탁자 하나, 의자 하나, 조각칼 한자루, 도안 한무더기 앞에 우두커니 서서 자기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실 그는 지난 몇년간 줄곧 이렇게 걸어온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필요가 있는지 그는 스스로도 의심이 갈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일단 앉아서 손에 조각칼을 잡으면 그의 잡념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오직 조각그림에 대한 집념만 남았다. 이 일을 하는 것은 그의 숙명이였다. 피할래야 피할 수 없고 버릴래야 버릴 수도 없는 숙명이였다.

도안을 그리는 한자루의 조각칼은 잡기는 쉽지만 그것을 파악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조각칼 끝에서 오려지는 하나하나의 직선과 곡선, 여러가지 형태의 선은 머리카락 만큼 가늘어서 오래동안 쌓아온 내공이 없이는 그러한 경지에 이를 수 없다. 당년에 황경중스승이 한 “마음에 도안이 있어야 한다”던 말이 진리임을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머리를 돌려 황경중스승이 새긴 간단한 도형들을 살펴보니 그것들이 오늘따라 각별히 생동하고 활기 있게 느껴졌고 거칠고 속된 저변에 무성하게 깔려있는 정감과 환락, 행복 같은 것들이 크게 확대되여왔다. 그런데 이전에는 왜서 이 모든 것들을 느끼지 못하고 보아내지 못했는지 양최득은 스스로도 리해되지 않았다. 그는 일단 여러가지 느낌과 깨달음이 오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러한 것들을 오래 삭혀둔다. 놀라운 것은 그 속에서 그가 즐거움과 보람, 희열을 느꼈고 그러는 중에 자기도 모르게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고 새롭지도 낡지도 않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조금씩 그것에 더 중독되고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더는 조각칼을 버릴 수 없다. 밀을 가을하면서 박혔던 그의 손가락 굳은살은 이 칼로 해서 더욱 두꺼워졌다. 손바닥에 난 장알 도시에서든 농촌에서든 그와 여전히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 날은 찌뿌둥하게 음침한 데다가 질척질척 비까지 내려서 공예공장의 매대 앞은 살벌하게 휑뎅그렁했다. 양최득이 매대의 종이조각품을 바꾸러 가자 그 때까지 호젓이 서서 매대를 지키고 있던 아가씨가 반색했다. 그녀는 일시 손님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양최득더러 잠간만 대신 매대를 봐달라 부탁하고는 자기 일 보러 몸을 사렸다. 매대에 선 양최득이 밖에서 쏟아져내리는 비를 보며 넋을 잃고 있을 때 문득 한 사람이 뛰여들어왔다. 매대를 사이 두고 살펴보니 웬 양복 차림의 사나이였다. 사나이는 얼핏 보기에도 아주 위엄이 있어보였다. 양최득은 그가 공예품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찾아든 것이 아니라 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들렸을 것이라 생각하고 별로 알은체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나이는 오른쪽 벽 모서리 앞에 뚝 멈춰서더니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는 것이였다. 사나이가 바라보는 벽면에는 양최득이 그린 종규钟馗 형상의 조각그림이 걸려있었다. 이 조각그림은 원래 양최득이 마음 내키는 대로 가볍게 새긴 것이였는데 새기고 보니 마음에 들어서 액틀에 넣어 걸어놓았던 것이다. 종규그림은 도법이 간결했고 조각그림의 독특한 투각술透刻术로 생동하게 인물형상을 표현했다. 넉넉하고 여유로운 표정, 넓고 멀리 바라보는 눈, 바람에 날리는 수염, 보면 살아숨쉬는 실제 인물처럼 립체감이 있었다. 원 도안의 액틀 형식도 돌파해서 공백을 많이 두었고 오른쪽 아래의 귀만 남겨두고 무성한 숲과 바위와 이어지게 하여 마치 손으로 조각한 도장을 방불케 했다. 그 종규는 세상 밖의 비애와 처량함 속에 홀로 서있지만 세간과 련계하는 넓고 찬연한 기품과 아름다움을 다 보여주고 있었다. 양최득 자신은 혹시 그 그림 속에 그가 지난 몇십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이겨오면서 겪어온 복잡한 심경이 투영되여 세상을 살피고 있는듯한 은유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줄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양최득이 사나이의 뒤로 걸어가자 그가 뒤로 얼굴을 돌렸다. 어딘가 퍽 눈에 익은 얼굴이였다. 양최득과 눈이 마주치자 사나이는 격동된 목소리로 양최득의 이름을 불렀다. 양최득은 그제야 그가 바로 옛날 시골에서 자기와 바둑을 두었던 상춘생임을 알아보았다. 

“이 그림 말이야, 참 대단해!…”

상춘생은 손으로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가리키며 입으로 연신 혀를 찼다. 둘은 잠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춘생은 자기는 지금 바둑을 적게 두지만 파고들 정도로 바둑에 인이 박혀서 완전히 끊지 못했다고 했다. 

상춘생은 말하면서도 자주 머리를 돌려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살펴보았다. 

자네 보기에 이 그림이 좋아보이는가? 살 수 있겠는가?

당연히 살 수 있지. 얼마인가?

양최득은 벽에 걸린 그림을 내리우며 상춘생에게 그저 선물하겠노라고 했다. 상춘생은 그림 액틀을 받쳐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다시 양최득을 보며 말했다.

“이 그림이 자네의 걸작이 맞는가?”

“보아하니 자네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은데 자네만 마음에 든다면 선물할 만하지!”

상춘생은 한동안 그림에만 빠져있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나 원래 이 그림을 사려고 했는데 이것이 자네의 작품이라니 사양하지 않고 받겠네. 기회 되면 어느 날 자네를 우리 집에 청해서 예술을 둘러싸고 진지하게 말해보고 싶네.”

환갑 나이 되여서인지 동지 추위를 만나자 양최득은 몸이 싸늘하게 얼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여전히 매일 출근했다. 물가가 오르고 있는 시세를 외면하고 조각그림을 원 격 대로 파는 데도 판로는 점점 좁아지기만 했다. 양최득은 단정하게 의자에 앉아 조각칼을 잡았다. 그러자 마음속에 하나의 도안이 붕 떠올랐다. 손에 잡은 조각칼이 종이에 닿는 순간 양최득의 온 신경은 모두 칼끝에만 쏠렸다. 칼끝에서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춘 그림이 그려져서야 그는 칼질을 멈추었다. 그제야 손이 시린 느낌이 들어 그는 팔소매에 손을 찔러넣고 조용히 금방 새긴 작품을 살펴보았다. 문득 전화벨이 울렸다. 그제야 그는 요즘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많이 적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송수화기를 집어들자 상춘생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상춘생은 그를 집으로 청했다. 그깟 한장의 그림이 뭐가 대단해서 집에 청하기까지 하는가! 양최득은 사양하려다가 상대가 바둑을 두자는 말에 생각을 바꾸었다. 혼자 사는 양최득에게는 다른 취미가 별로 없었다. 바둑을 두는 재미로 그는 매일을 버텼다. 그러나 요즘에 이르러 바둑친구와의 만남이 많이 적어졌다. 과거와는 달리 사람들은 친구를 집에 청해서 바둑을 두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운영하는 바둑실에 가서 간식까지 먹어가면서 바둑을 두었다. 양최득은 이러한 사교적인 바둑판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다. 요즘 더 많은 바둑친구들은 인터넷에 올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바둑을 두면 언제든지 바둑을 놀아줄 상대를 찾을 수 있었다. 양최득은 이렇게 두는 바둑에도 습관되지 않았다. 그는 바둑을 진지하게 두기를 원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 바둑을 두다 보면 상대가 억지를 부리거나 생떼를 쓰는 경우가 있게 된다. 양최득은 바둑 품위가 낮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그러한 사람들이 바둑판을 더럽힌다고 격분해했다.

상춘생의 집은 도시에서 가까운 근교에 있었는데 거의 인기척이란 드문 편벽한 곳이였다. 상춘생이 알려준 집주소 대로 찾으니 눈앞에 파란 칠을 한 철란간에 둘러싸인 별장동네가 나타났다. 정문에 들어서자 경비원이 불쑥 나타나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다. 집 문어귀에 앉아있던 개가 양최득을 보자 사납게 짖어댔다. 여기는 호화주택구여서 오히려 시골풍의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인기척을 듣고 상춘생이 급히 밖으로 뛰쳐나오며 개를 제지시키고 양최득을 집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는 북방의 습관 그대로 두손을 가운 스타일의 잠옷 소매에 찔러넣고 말했다.

“루추한 우리 집을 찾아주어 고맙네.”

“자네의 이 집을 루추하다고 하면 다른 집들은 뭐라고 해야 하나?”

“정말 루추한 집이라네. 이곳에 집을 산 사람들은 거의 모두 투자자들 뿐이고 진짜 눌러살고 있는 사람은 몇집이 안된다네. 그러니 집이 루추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듣자니 요즘 마을 뒤쪽에 높은 아빠트를 짓는다던데 장차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면 시끄러워지니까 그 때에 가서 이 집을 팔고 이사 갈 거네. 내가 이 집을 산 건 바로 아늑한 분위기가 좋아서였으니까.”

상춘생은 집을 팔고 사는 어마어마한 일을 아이들의 장난처럼 쉽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최득은 자기가 몇십년간 살아온 달팽이처럼 비좁은 지금의 집 공간을 좀 넓히는 일마저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몇마디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양최득은 상춘생이 수장품 대가라고 할 만한 큰 인물임을 알았다. 그는 수장품 업종에서 하나의 인기인물이 되여 수장품에 관한 텔레비죤강좌도 한 적이 있었다. 양최득은 평소 그러한 텔레비죤채널을 잘 보지 않기에 그런 일은 잘 모르고 있었다.

“수집대가는 무슨 놈의 수집대가인가. 난 그냥 장사할 뿐이네. 그러나 수집을 생업으로 삼는 장사군들과는 좀 다르지. 난 그래도 력사를 알고 예술을 말하니까.”

상춘생은 양최득을 이끌고 그의 별장을 보여주었다. 수집대가는 확실히 다르기는 달랐다. 별장의 매 층마다 예술품들이 촘촘히 걸려있었고 계단을 올라가는 벽도 작고 귀여운 예술품들로 오밀조밀하게 꾸며져있었다. 아래층은 주방과 넓은 대청이였다. 양최득은 마치 고급가구점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였다. 유럽식 주방시설과 전자제품들을 죽 스쳐보던 그의 눈길이 예술품들에 미치자 놀란 빛을 띠며 정전된듯 뚝 멈추었다. 식당칸 바람벽에 걸려있는 한폭의 그림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화가가 그린 작품이였다. 양최득이 몸 담고 있는 공예공장의 어떤 직원들은 평소 요즘 잘 나가는 화가들을 곧잘 화제로 삼았다. 그래서 양최득도 일찍 이 화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 그림은 화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화법이 대담하고 개방적이여서 녀자의 자태가 유난히 짙고 요염했다. 

“이 그림은 그저 그렇네. 왜냐하면 화가는 내가 작심하고 띄워줘서 된 거니까. 그래서 평소 우리 집에 자주 찾아오기도 하지. 이 그림을 걸어놓지 않으면 그를 보기 미안해서 그냥 보기 좋으라구 걸어놓았을 뿐이네.” 

상춘생은 잠간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여기 밑층에는 모두 일반적이고 수수한 그림들만 걸어놓았네. 이 그림들은 그냥 보기 좋게만 그린 그림들이지. 이 마을엔 경비가 있기는 하지만 편벽한 데다가 사람까지 적어서 도적이 들 위험이 많다네. 그래서 혹 예술에 대한 고상한 취미라도 있는 도적이 들어오면 보기 좋은 걸 갖고 가라고 여기에 부러 방편처럼 걸어놓았네. 그런 그림을 잃으면 마음이 별로 아프지 않으니까!”

2층 침실에 놓인 가구들은 간단하면서도 완비했다. 계획적으로 남긴 공간에는 예술적인 분위기로 꽉 차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들은 거의 모두 국내외 명인들의 작품들이였다. 상춘생은 자기는 전문 국내 장사를 하기에 여기에 걸어놓은 작품들은 모두 그가 좋아하는 화가나 서예가의 작품이라고 했다. 양최득은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이 작품들이 그냥 조건도 없이 아무 모임에서나 쉽게 그린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상춘생은 그 작품들의 우점들을 말할 줄 알았고 부족한 점들도 지적할 줄 알았다. 작품의 예술표현을 론하는 그의 말은 조리정연했고 화가가 어느 년대에 그림을 그렸고 매 화가는 모두 그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갖고 있기에 화가가 늙으면 늙을수록 값진 것만은 아니라는 섬세한 문제까지 론했다. 소장한 작품 속에 있는 한두폭 서화작품의 작자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지만 상춘생은 그들이 유명하지 않은 것은 아직 젊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기가 아직 성숙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들 모두가 큰 잠재력을 갖고 있어서 자기가 추천하고 띄워주면 꼭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3층은 서재였는데 안에 서화를 소장하는 칸이 별도로 설치되여있었다. 긴 탁자 우에는 융단천이 고급스럽게 덮여있었다. 상춘생은 자기도 여기에 와서 그림을 그리거나 서예를 하기도 하나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모두 찢어버렸다고 했다. 모처럼 모셔온 서화가는 일반적으로 모두 묵보를 남기는데 그러한 서화는 모두 그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용으로 쓴다고 했다. 이 층에는 작품은 많지 않았으나 모두 명품들이였다. 서재에 있는 컴퓨터 앞에 외국의 유화 한폭이 걸려있었는데 관례 대로 그는 외국의 그림을 취급하지는 않았다. 여기에 외국 유화를 걸어놓은 것은 그가 그냥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였다. 양최득이 보기에도 그림이 좋아보였다. 그림 속의 시내물과 넓은 들이 너무나 깨끗하고 조용하고 우아하고 치밀해서 마치 인간세상 밖의 다른 한 세상 같은 불도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양최득은 그와 상춘생이 작품을 감상하고 흔상하는 눈 높이가 같다는 것을 놀랍게 발견했다. 

제일 웃층은 루각이였다. 상춘생은 양최득에게 이 루각은 그가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바둑실이라고 정중하게 소개했다. 양최득은 바둑실이 화려하고 고급스러울 것이라고 여겼으나 정작 상춘생을 따라 올라가 보니 생각과는 달리 하나의 명실상부한 루각이였다. 루각은 옛날 성안에 있었던 루각처럼 그다지 크지 않았고 꼭대기에 호랑이를 조각한 지붕창문 하나가 있었다. 그걸 보자 양최득은 일종 말할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다. 양최득은 어렸을 때부터 바로 이런 루각에서 살았었다. 지금의 새집들은 모두 비둘기장 같이 비좁은 아빠트들 뿐이여서 이런 루각은 거의 찾아불 수 없었다. 

루각의 한가운데는 바둑탁자가 있었다. 탁자 우에는 박달나무로 만든 단단한 바둑판이 고풍스럽게 놓여있었다. 그 옆에 놓여있는 덮개 열린 두개의 바둑돌 통에는 마노바둑돌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루각 벽에는 세폭의 예술품이 정중하게 모셔져있었다. 한폭은 당대 초성草圣이라 불리는 인물의 서예작품이였는데 상춘생은 당대의 많은 서화작품들은 모두 시간의 고험과 검증을 거치지 않았으며 무릇 세간에서 인기를 끌고 주목받는 작품들은 모두 조작해서 계획적으로 띄워준 것들에 불과하다며 자기도 그런 조작자들 중의 일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초성의 서예작품은 정말 명작이였다. 이것은 초성과 문우들이 시를 담론하는 내용을 담은 한폭의 서예작품이였다. 초성은 시에 대해 각별히 관심이 있어서 시에 대한 그의 담론에는 그만의 독특한 견해가 담겨있었다. 이 자폭은 임의대로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지 특별히 서예작품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였다. 진정한 예술작품은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며 내심을 고백하고 발설하는 것이다. 그로써 문화의 수양과 예술의 견해가 하나로 융화되고 유착된다. 

다른 한폭은 이국타향에서 사는 중국계 화가가 그린 그림이였는데 그림 속에는 중국인만이 갖고 있는 함축성과 절제된 필묵이 엿보였고 어떻게 해도 떨쳐버릴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향수乡愁가 처연하게 응축되여있었다.

또 다른 한장은 양최득이 새긴 종규钟馗 조각그림이였다. 상춘생은 이 공간은 자기가 줄곧 비워두고 좋은 그림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었는데 양최득의 종이조각품을 얻은 뒤에야 그것으로 이 자리를 메우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여기에 걸어놓은 그림이야말로 진정으로 독특한 예술품이라고 했다. 

“나 말이야, 자네의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온몸과 마음이 전률하는 느낌이였네. 나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예술작품들을 보아왔지만 이 그림 만큼 예술성이 독특한 그림은 별로 보지 못했네. 그 때 난 몽환의 세계를 헤매다가 갑자기 인간세상에로 내려온듯한 기분이였지. 결국 눈에 차지도 않는 그 자그마한 공예품 판매점 벽에 걸려있던 이 그림이 나의 눈을 틔워주었지.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난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회에 젖어들게 된다네.”

상춘생은 옆에 선 양최득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작품은 구도로 보나 표현으로 보나 모두 일반에 머물지 않고 있네. 그림 속 형상의 기질은 슬퍼하면서도 쇠락하지 않고 분노하면서도 원망하지 않으며 도법은 또 불가사의할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고 공백은 버림이 도달하고저 하는 경지를 돌파해버리고 또 버려야 비로소 이 그림이 보여주고저 하는 진정한 미를 발견할 수 있지. 천재적인 유전자가 없고 인생의 고통이 없고 참고 지켜보는 인내력이 없다면 이런 걸작을 완성할 수 없지.”

상춘생의 찬탄에 양최득은 머리를 흔들어보일 뿐이였다.

“자넨 원래부터 자네 자신이 예술창작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상춘생이 손을 펼쳐보이며 말했다.

“내가 저것을 제일 높은 곳에 놓은 것은 자네가 내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네. 완전히 예술적인 각도에서 엄선한 것이네. 같은 조각그림을 놓고도 자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돌파하려 했다면 소가 소 같지 않고 말이 말 같지 않게 그릴 수도 있지. 현대 예술인들은 모두 창의성을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다만 모방에만 머물러있네. 말하자면 외국의 것을 모방한단 말일세. 그들은 어떻게 황당무계하게 그려도 외국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폭의 공예품이니까 돈으로 가치를 계산한다면 근본적으로 그 가치를 계산할 수 없을 수도 있지. 그러나 경매장에서 내가 소장한 작품이 몇백만 몇천만원에 팔려나간 적도 있다네. 물론 나에게도 나로서의 비애가 있다네. 나의 예술흔상과 작품을 소장하고 팔고 하는 것 사이에는 항상 괴리가 생긴다네. 졸부들과 접촉하면 그들이 말하는 것이란 오직 돈 밖에 없네. 경영과 경전은 언제나 한차원에 있지 않지. 그것들이 너무 어긋나서 난 두 얼굴을 가진 투페이스로 되는 때가 많네. 그러나 내가 더 큰 경제적인 리익을 얻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좋아하는 예술품을 소장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자네가 예술에 대해 이렇듯 깊은 리해와 표현력을 갖고 있으니 만약 진작부터 그림을 그렸더라면 긍적적으로 큰 실적을 쌓았을 거네. 지금 그림 한장이 걸핏하면 수만원을 호가하는데 거기에 내가 자네를 포장하고 띄워줘서 미술협회주석 자리라도 낚는다면 1년에 몇십만원을 벌기는 식은 죽 먹기지. 물론 지금 이 나이에 와서 업종을 바꾸기엔 늦은 감도 없지 않지만 종이조각예술과 비슷한 것이 바로 전각篆刻이지. 다 조각칼을 다루니까. 요즘 금석 업종이 아주 벌이가 잘되는 모양이더군. 방각仿刻을 갖춘 도장 하나가 몇만원에 팔린다네. 그런데 자네는 그런 일을 하려고 하지 않겠지. 부류가 다르고 표현이 다르니까. 도장의 면이 너무 작아서 자네의 상상을 발휘할 수도 없지. 보아하니 자넨 여전히 자네의 종이조각 업종에 종사해야 하겠군. 이건 하나의 버림받은 예술의 패턴이기에 내가 자네를 도와 조작하고 띄우려고 해도 안되네. 지금 같은 상품화 시대에 표현이 독특한 예술을 견지하자면 자그마한 희생은 감내해야 하네. 혹시 자네의 돌파나 노력, 로고 같은 것들은 다만 한 사람의 표현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자네는 현시대 사람들과 같은 선에 서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현시대 사람들이 접수할 만한 작품을 그려낼 수 없을 거네. 설사 자네 종이조각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진정으로 리해하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서 나 한사람 뿐일 거네.”

“난 자네 한사람만으로 족하네!”

양최득은 손에 잡고 있던 바둑알 하나를 바둑판 천원점 우에 힘있게 놓았다. 검은 마노바둑돌 하나가 바둑판 한가운데서 맑고 눈부신 초록색 빛을 외롭게 발했다.

(김재국 옮김)

출처:<장백산>2018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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