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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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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규: 자잘하다 평범하다 맛있다 멋있다(수필평)
2019년 07월 12일 19시 09분  조회:409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자잘하다 평범하다 맛있다 멋있다

천상규

 

수필은 자잘할 수 있다.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려주어도 괜찮다는 말이다.

수필은 평범할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이 흔히 겪는 일상을 수필의 소재로 삼아도 괜찮다는 말이다.

자잘하고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작가의 메시지를 도출해내고 문학적 가공을 거쳐 예술적 승화를 시킨다면 훨씬 강한 설득력을 획득하게 된다.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조원의 수필 <모멘트>는 바로 아무라도 겪을 법한 범상한 일상으로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스한 인정을 견인해내고 다소 이색적인 기술법으로 펼쳐지면서 독자들을 글 속에 깊숙이 끌어들여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모멘트>라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것은 그냥 일상의 어떤 순간 포착이고 그 순간 포착으로 인생포인트를 잡아내서 수필의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범람하고 있는 신변잡사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신변잡사도 이렇게 재미있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마저 느낄 정도로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시작이 인상적이다. 말로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작품 속으로 들어가보기로 하자.

 

수필 <세렌디피티>는 사랑의 순애보를 떠올리고 있다. ‘나’는 련휴를 맞아 이것저것 짓거리를 펼치다가 결국 책을 펼쳐든다. 그리고 그 책에서 심쿵스런 문자를 발견하고 만다. ‘1991. 9. 27. / 용인 동아서점에서. / 남편이 사줬음. / -최’라는. 그래서 호기심 많은 ‘나’는 그것으로부터 추리(상상)를 해나간다. 우선 친구의 손때가 묻었지만 친구의 지인의 책은 아니며 그래서 친구가 중고에서 구입한 책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얻은 단서는 이 책을 소유했던 아무도 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는 추정. 그래서 ‘나’는 ‘최씨 녀자에게로 걸어들어간다’. 잠시 책에 대한 추리는 여기서 한단락 짓고 《세렌디피티》라는 제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이 책의 내용을 반추해보자. 뉴욕의 한 남자와 한 녀자가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반한다. 남자는 녀자에게 다시 만날 수 있는 련락주소와 전화번호를 묻는다. 녀자는 거절한다. 그러나 녀자는 자기의 책 첫 페지에 자신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서 헌 책방에 넘긴다. 인연이 닿으면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면서. 7년이란 시간이 지난다. 남자가 녀자에게 건네려고 했지만 바람에 날려간, 전화번호가 적힌 5딸라짜리 지페는 사람들 손에서 떠돌고 남자와 녀자는 서로를 찾아떠난다… 그리고 ‘나’는 련휴에 고른 다른 책 이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떠올린다. 인연과 운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경험하는 모습이다.

모든 문학쟝르에서 사랑은 영원한 주제라는 데 동의한다면 수필 <세렌디피티>가 우리에게 시사하고저 하는 의미는 분명해진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고 사랑의 순애보이며 사랑을 통한 생명의 찬가인 것이다. 인연이고 운명이고 숙명이라는 명제를 떠나서 인간은 사랑을 해야 하고 사랑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인가.

수필 <웃음소리가 손가락말을 닮을 때> 역시 일상의 사소하고 자잘한 이야기가 모티브이다. 살면서 리유 없이 그냥 좋아지는 낱말들을 떠올려본다. ‘어스름’, ‘다만’, ‘창’, ‘순간’, ‘사이’ 등. 특히 이 ‘사이’라는 낱말은 홀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우리 사는 세상을 집약시키고 있다. 누군가 ‘인생’이라는 시를 ‘망网’이라는 단 한글자로 쓴 적이 있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결국 인간人间세상이 아니던가. 작가는 수많은 사이들을 렬거하면서 누군가에게 던져주었던 손가락말을 떠올린다. ‘내 손가락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을, 메시지를 전한다. 따스한 마음이 보는 이들의 눈망울마저 따스하게 어루만져준다. 자신에 대한 반성과, 타인을 보다 다정하게 대해야겠다는 다짐과, 인간 사이가 보다 부드럽고 따스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이 두루 녹아있어서 이 수필은 이 봄에 더욱 와닿는다.

수필 <하지>는 ‘내 출퇴근길의 코스’로 시작된다. 역시 더 이상 평범할 수 없는 일상이다. 그 출퇴근길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이들이 있다. 대개는 코를 싸쥐고 피해다니는 고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스함 그 자체이다. 자칫 쓰레기 취급을 당할지도 모르는 고물상인데 질서정연, 안성맞춤, 다양한 모습 등 따스한 언어들과 주인들의 취향과 마음마저 읽을 수 있다는 필놀림이 례사롭지 않다. 그러다가 마침내 ‘뛰여들어 촬영’을 감히 해대고 주인장한테 ‘쫓겨’나오는 모습들을 려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골목길을 다시 찾는 ‘나’, 뒤바뀐 풍경이 펼쳐진다. 고물상 할아버지를 설치예술가로 둔갑시킨 작가의 의도는 분명하다. ‘누군가의 기억의 손때 묻은 것들이 모여있는, 버려져서 쓸모 없게 된 것들이 대화하는, 버려져서 버려지지 않은 것들을 구원하는 곳인 고물상네 울안’이라는 문구가 충격적으로 안겨온다. 하기야 이 세상 무엇인들, 누구인들 쓰레기로 되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그것을 사뭇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줄 때 쓰레기는 더 이상 쓰레기가 아니고 인간세상을 향해 마지막 아름다움, 마지막 철학적 메시지를 던져주는 일말의 존재로 각인되는 것이다. ‘고물상네 할아버지의 설치예술은 일년 중에서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의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가장 짧은 하지날의 밤을 기다리면서’라는 결말구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목이 1차적인 것에서 벗어나 2차, 3차적으로 변화하고 그런 변화과정에서 인간들의 아름다운 심성이 더욱 커다란 아름다움으로 화해주었으면 하는 작가의 메시지인 것이다.

 

이상 3편의 짧은 수필 묶음을 헤쳐보았다. 주지하다 싶이 소설가 조원씨는 사뭇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인간세상을 바라보면서 밝고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이 세상이 차고넘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사람 사이에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시키고 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사랑의 감정은 그대로 씨앗이 되여 가슴 속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서 마침내 커다란 사랑나무가 되여 사랑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맛본 사람들 역시 사랑에 전염되여 또 다른 사랑나무들을 키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점차 사랑의 물결로 출렁이게 되리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참으로 따스하게 다가오는 수필 묶음이다.

자잘한 일상에서 따스한 사랑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인간세상의 씨앗으로 삼아 보다 큰 사랑을 키워가고저 하는 작가 조원씨의 애정 어린 심성은 그래서 이 봄에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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