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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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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 수세미앓이(수필)
2019년 07월 12일 19시 24분  조회:407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수세미앓이

리미

 

우리의 만남

야물딱지게 잘하는 청소는 아니지만 야금야금 피여오르는 봄의 기운은 정서적으로 행동적으로 나를 가만히 있게 하지 못했다. 진공청소기의 존재로 쉽게 먼지청소를 할 수 있는 거실과 안방과는 달리 주방은 녀성의 구역이 아니랄가봐 손이 좀더 많이 가는 곳이였다. 류통기한이 지난 각종 야채와 이미 물러터질 대로 터져버린 과일들을 모조리 치우고 조금씩 흘러버린 조미료들을 말끔히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쉰내가 진동하는 이미 맛이 가버린 밑반찬통은 고스란히 설겆이거리로 전락되였다. 하나 둘 나의 일거리를 많이 만들기에는 그들은 참 협조적이였다. 싱크대에는 어느 순간 설겆이거리들이 가득 쌓여버렸다.

란장판이 되여버린 주방은 흡사 전쟁터에 나와있는 느낌이였다. 기름과 조미료 범범이 되여버린 싱크대는 또 어떠하리. 군인에게 총이 있다면 주방에서 주무기는 고무장갑과 수세미다. 하지만 그 날에는 어찌된 일인지 고무장갑은 보이지 않고 수세미도 옛날식 배배 꼬인, 철사수세미만 덩그러니 있었다. 할 수 없이 몽실몽실한 수세미에 세척제를 몇방울 떨구고 비누거품 놀이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바닥을 보일 때 쯤 철사수세미의 한가락은 고집스럽게 나의 손가락을 훑고 지나갔고 날렵한 그의 속도감에 내 손가락에서는 빨간 피가 샘솟아났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이 이 상황에 부합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가끔 날카롭고 작은 것에 더 베이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뜬금이 없는 얘기지만 회사에서 금방 인쇄해나온 복사지에 손가락을 베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만큼 홀시하기 좋은 작은 것들은 언제나 작지만은 않은 또 다른 무언가를 안겨준다. 싱크대에 서있으면서 찰나에 베임과 함께 많은 작은 것에 대한 회억을 한번 해보았다. 그러면서 엄마에게는 이러한 작은 무언가에 쓰라렸던 적이 얼마나 많을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였다. 가느다란 철사수세미 한가락에 마구 내뿜는 선홍색을 그녀들은 아마도 아무렇지 않게 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처럼 피야, 피를 웨치면서 호들갑을 떨 새도 없이 말이다.

 

기억의 습작

녀자의 가슴처럼 봉긋한 수세미는 처음에는 우아한 자세를 머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에 묻히기 전, 기름때가 잔뜩 묻혀진 접시와 어쩔 수 없는 상봉을 하기 전까지 흐트러짐이 없는 꼿꼿한 아가씨 같은 자세를 유지했었을 수도, 도도하게 코대를 치켜세우며 손에 물 한방울, 기름 한방울 묻히지 않았을 것 같은 이미지로 말이다. 아무런 화장품의 도움이 없이도 촉촉한 피부를 자랑하고 청바지에 티 하나 입어도 그냥 젊음이 뿜어져나오는 그녀들의 소시적은 이미 머나먼 과거의 이야기가 되였다. 설겆이는 남의 나라 일일뿐더러 부드러운 손가지를 만들려 수시로 핸드크림을 듬뿍 발라줬을 터이다.

과거에는 핸드크림으로 손을 촉촉히 적셨다면 지금은 설겆이용 세척제나 빨래비누로 손을 거칠게 적시고 계신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엄마의 가녀린 손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선물해드린 핸드크림은 줄어들건만 그녀들의 손은 반대로 더 거칠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려운 것도 아닌데 제때에 핸드크림을 바르쇼.”

안타까운 마음을 난 오히려 짜증을 머금은 말투로 툭 내쏘았다. 

“바르면 설겆이할 때 미끌미끌해서 싫다.”

새침떼기 아가씨는 이젠 그냥 낡은 사진첩의 그녀의 과거일 뿐인가보다.

투박한 손이 곱디고운 아가씨의 손이 되였을 소시적에는 아마 그녀도 가녀린 존재임이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도깨비도 때려잡을 것 같은 무적의 아줌마 파워를 보여주는 그녀지만 불쑥불쑥 튀여나오는 옛날옛적 이야기에서는 혼자 밤거리를 누빌 때 무서웠던 얘기, 아빠가 출장을 가있는 동안에 혼자서 갓난애기인 나를 돌보며 안절부절 못했다는 얘기, 맥주로 머리를 감으면 노랗게 염색이 된다는 말에 맥주에 머리를 감았다는 얘기 등등 그저 마냥 귀여운 소녀이거나 여전히 가녀린 그녀의 이야기가 기억을 헤매고 있었다.

 

아름다운 앓이

얼기설기 배배 꼬여진 수세미의 가락들 사이로 덕지덕지 기름때가 너저분하게 붙어있다. 봉긋하던 수세미는 펑퍼짐하게 변형되여가고 있고 원래의 이쁘장하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날카로운 심경을 수세미는 가끔 가다가 날카로운 한가닥의 스침으로 주인에게 피를 보이게도 하고 있다. 그녀들의 말 못할 앓이는 마치 수세미앓이처럼 묘하게 아픔을 전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많은 앓이들이 존재한다. 철부지였던 일곱살 때 앓았던 이앓이, 갸우뚱거리며 앓았던 사랑앓이, 어떠한 아픔은 말 그대로 아픔이지만 수세미앓이는 아픔을 동반한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설겆이거리를 빛나게 해주는 데 일등 공신인 수세미처럼 그녀들은 자신의 안위보단 집안일의 일등공신임이 틀림이 없다. 이쁘게 한 네일아트도 금방 떨어지고 곱디고운 손은 늦가을의 물기 없는 단풍잎처럼 말라져가고 엄마라는 존재는 늘 녀자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 속에는 그냥 많은 걸 내려놓아야만 하는 엄마일 뿐이다. 어릴 적에는 초불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무언가를 빛나게 해준다. 아파도 참고 어쩐다 하는 밥 먹듯 제시하는 주제에 관한 작문주제는 따분하고 무언가를 많이 보태여서 형용을 해야만 그의 희생성이 더 부각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평생 대부분을 수세미앓이 같은 작지만 작지 않은 인내, 고통을 감내한 엄마라는 존재는 구태여 과장된 형용을 하지 않아도 그 존재로만 빛나고 있다.

 

언젠가 엄마는 한때 소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늘 맥심커피만 마시던 엄마를 모시고 커피숍을 방문했을 때에 딸기와플을 음미하시고는 이렇게 맛있는 것도 있구나 하시던 그 소녀 같은 모습에 나는 반대로 마음이 저미여왔던 적이 있다. 사소한 것에 기뻐하던 그녀는 엄마이기 전에 역시나 녀자였다.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덕지덕지 기름때가 묻어있는 싱크대를, 찰나의 부주의로 뿜어져나오는 피를, 그녀도 어쩌면 마주하기 싫을 수도, 아파할 수도 있는 엄마라는 또 다른 이름-녀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작은 것에 슬퍼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는 걸 나는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나한테로는 작은, 그녀한테는 큰 비수를 꽂기도 한다. 세상의 그 많은 자녀들은 어째서 일관되게  타인에게는 온화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 정작 그녀한테는 짜증세례만 퍼붓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작디작은 가녀린 수세미에 손을 훅 베였듯이 엄마라고 불리우는 그녀들의 마음 또한 작지만 작지 않은 인내와 상처를 동반하고 있을 것이다.

고요한 수면 우가 더 아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소리없이 잔잔하지만 그 잔잔함 속에는 말 못할 아픔이 몸부림쳐있어보이기 때문이다. 이십대 처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은 수세미앓이에서 시작되는 작디작은 구석진 곳에서부터 령감을 받아 그녀를 보듬어주고 싶었던 것처럼 그녀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구석지고 잔잔한 무언가를 동반했을 것인가를 우리는 깊게 늘 마음속에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마치 언제 훅 우리를 스칠 줄 모르는 수세미앓이처럼 말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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