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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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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덕:출제인생(수필)
2019년 07월 12일 19시 28분  조회:458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출제인생

신기덕

 

출제인생

세월은 류수라더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1997년도에 처음 대학입시출제활동에 참가해서부터 어언 20년이 넘어흘렀다. 그 때로부터 기본상 한해도 빠뜨리지 않고 대학입시, 고중입시, 자격시험, 학업시험 등의 명제활동에 참가했고 이외에도 길림성교육청, 길림성인사청, 길림성교육학원, 장춘시교육국, 장춘시교육학원 등 단위에서 주관하는 여러가지 시험의 출제에 참가했으니 나의 출제시간은 참으로 길었으며 그냥 나도 모르게 출제는 내 인생의 한부분으로 되여버렸다. 

한해에 시험명제로 ‘감옥 아닌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많을 때엔 다섯번이나 되였으니 나의 친구들이 나를 ‘시험전문호’로 부르는 데에도 너무 일리가 없지는 않다. 지금 이 시각에도 나는 출제하러 ‘감옥 아닌 감옥’에 들어와있다. 이곳도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곳이 되였다. 나이가 이미 60이 되였으니 이제 곧 나의 출제인생에도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여온다. 하여 출제하러 다니면서 있었던 일들 가운데서 인상 깊은 몇가지를 골라 미니수필 형식으로 적어보려 한다. 

 

무릉도원

중국 고대의 저명한 작가 도연명이 <무릉도원>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가 시험출제하러 들어오는 이곳도 무릉도원에 못지 않다. 하루 세끼 식사를 안배해주고 경찰들이 보위를 서면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니 더없이 안전한 곳이며 휴대폰도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기에 외계의 간섭도 받지 않으니 더없이 조용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라 할 수가 있겠다. 하여 나도 《도라지》잡지에 <무풍지대>라는 제목으로 이곳의 생활을 적어 발표한 적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글을 읽었었고 특히 출제와 관련이 된 사람들은 많이 읽었었다.

무릉도원이나 무풍지대로 불리우리 만치 고요하고 안전하고 행복해보이는 이곳에서는 사실 나라의 극비에 속하는 출제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표정이 안온해보이는 출제자들은 모든 말초신경까지 동원하여 이 중대한 임무의 완성을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출제기간에는 그야말로 밤낮이 따로 없다. 사람들은 시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출제의 간고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모든 시험문제가 출제자들의 열번 이상의 수정을 거쳐서 완성이 된다. 하기에 무릉도원이나 무풍지대가 사실은 고강도의 뇌력활동이 진행되는 긴장한 로동장소인 것이다.

 

걷기운동

나는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다. 배구나 탁구와 같은 구류운동과 장기나 바둑과 같은 기류棋类운동을 아주 즐기는 편이였다. 하지만 출제활동에 참가하면서부터는 걷기운동의 매력에 푹 빠져 지금까지 그냥 걷고 있다. 출제장소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걷기운동을 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첫시작이다. 걸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하기에 걷다 보니 시간을 넘겨 70분간을 걸어 350메터 코스를 20고패 훨씬 넘긴 적도 적지 않다. 지금은 의사의 부탁 대로 30분간만 걷는다. 그저 즐겁게 걷고 있는 나를 보고 ‘궁리 없이 걷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걷기운동을 운동의 왕이라고 한다. 다른 특수한 시설도 필요 없이 그저 자기의 두 다리로 걷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걷기운동에도 자기의 표준자세가 있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 자세만 잘 장악하고 그대로 걸으면 된다. 여기서 관건은 견지이다. 사실 집에 있을 때에는 여러가지 일에 밀리고 또 술을 마셨을 경우에는 걷지 못한다. 하지만 출제장소에 와서는 견지하기가 비교적 쉽다. 이젠 걷기운동에도 웬간히 미립이 터서 속도가 비교적 빠르다. 집에 있을 때 승리공원에 가서 걷다 보면 천여명 중에 나를 초월하는 사람이 극상해야 한두명 뿐이다.

 

사전가치

우리 력사의 한시기에 사전词典을 아주 중시했었다. 그 때 어느 학자의 집에 사전이 많으면 그것은 그야말로 지식의 상징이고 부유의 상징이였다. 하기에 나도 천여원이라는 돈을 들여 6권사전을 갖춰놓았었고 그외에도 또 많은 사전을 갖춰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많은 사전이 하나의 부담으로 되였다. 버리자니 아깝고 둬두자니 가치가 적다. 지금은 컴에 모든 사전이 들어있어 사용하기가 특히 편리하다. 하여 나의 책장의 가장 눈에 뜨이는 위치에 배렬되였던 사전들이 아예 책장 우 ‘옥상’으로 쫓겨 올라가는 신세로 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꿔온 보리자루 신세라고나 할가?

하지만 컴퓨터의 사전을 사용할 수 없는 이 출제장소에서만은 사전의 몸값이 대단하다. 조선어사정위원회에서 진행한 규범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사전은 그 규범에 따라 쉽게 편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이전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편찬한 《조선말사전》을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학과의 번역도 컴의 번역사전을 사용할 수가 없기에 책으로 된 《중한사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력사의 흐름에서 밀려났는가 싶은 물건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자기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도 하는구나 하는 깊은 인상을 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명태사건

명태와 출제생활이 무슨 련계가 있을가? 어찌 보면 련계가 없어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련계가 아주 크다고 해야겠다. 명태와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가 련계되기에 우리 민족과 관련된 출제생활에도 명태가 등장하게 되고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길 수가 있는 것이다. 명태는 동태국을 해먹어도 맛있고 말린 명태로 반찬을 해먹어도 맛있다. 그리고 마른 명태를 그대로 쭉쭉 찢어서 맥주안주를 해도 제격이다. 하기에 마른 명태는 우리 생활중에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려행시에 마른 명태를 가지고 떠나는 것이 하나의 습관으로 되였다. 출제장소에 오면서 명태를 가지고 오는 사람도 많았다.

몇년 전 출제에 참가했던 세명이 명태사건을 일으켜 우리 모두에게 웃음 한바구니를 안겨준 적이 있다. 출제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 명태가 적어져서 이젠 명태대가리도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로 명태가 귀중해졌다. 그 때 한칸에 류숙하던 두 선생이 다른 칸에 류숙하는 선생이 자기들 칸으로 놀러 온 기회를 리용하여 명태대가리를 상 우에 올려놓은 것이 사건의 발단으로 되였다. 한 선생은 명태를 내놓으라 재촉하고 두 선생은 명태가 없다고 시치미를 떼는 신경전이 며칠 동안 지속되였는데 너무 재미가 있어서 나는 그 재미나는 이야기를 적어 《청년생활》잡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고기잡이

여기 출제기지에는 비교적 큰 양어장이 두개 있는데 출제가 끝나 휴식단계에 들어서면 많은 아마츄어 어옹들이 즐기는 곳이다. 고기들도 잘 잡혀나오는데 자그마한 붕어가 특히 많이 잡혀나왔다. 나도 고기잡이를 무척 즐긴다. 하지만 낚시가 아니라 반두나 채발로 잡기를 즐기며 혹간 투망으로 잡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고기잡이방식이 많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우산으로 고기잡이를 하는 곳은 보지 못했었다. 이 세상의 기상천외한 일이라고나 할가? 바로 아무런 마술재능도 갖추지 못한 내가 우산으로 고기를 잡아봤다. 그것도 한두마리가 아닌 수십마리를. 

어느 해 출제가 끝나고 휴식단계에 들어선 어느 날이였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양어장 주위를 돌고 있는데 그 때 바로 담장 밖의 물도랑에서 큰 호스管子로 양어장에 물을 더 넣어주고 있었다. 호스가 양어장에 신선한 물을 넣어주니 고기들이 산소가 많아 기뻤는지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나오는 곳으로 푸드득푸드득 뛰여오르는 것이였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쓰고 있던 우산을 가져다 거꾸로 댔더니 거퍼 몇분 사이에 수십마리의 붕어가 저절로 그 곳에 날아들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 장면을 구경하였다. 물론 고기는 다시 놓아주었고.

 

돼지료법

고강도의 뇌력로동을 진행하자면 뇌건강과 더불어 강한 체력이 뒤받침해주어야 한다. 밤늦도록 일하고 나면 이튿날 오후에는 한잠을 푹 자게 되는데 우리는 보통 이불을 덮고 잔다. 대낮에 그렇게 자다나니 보기엔 게으름뱅이가 잠 자는 모습이다. 하여 나는 나름 대로 ‘돼지료법’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였다. 이 이름이 물론 아름답지는 못하지만 생동감과 형상성이 뚜렷한 이름임에는 틀림이 없다. 긴장하던 며칠 동안의 출제임무가 완성되면 우리 출제인원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는 것이 바로 이 돼지료법이다. 해탈감에서 느끼는 돼지료법의 그 느긋하고 미묘한 감각은 참으로 일품이다.

글을 쓰다 보니 《모택동전》에서 보았던 내용이 떠오른다. 모택동동지는 밤에 사업하기를 즐겼다. 그리고 독서도 밤이 가고 새벽이 올 때까지 하기가 일쑤였는데 이런 생활이 습관이 되다 보니 그에게는 오전시간이 바로 취침시간이 되여버렸다. 위인에게 감히 돼지료법이란 말을 붙이기에는 안됐지만 살다 보면 이렇게 대낮에도 이불을 덮고 푹 잘 때가 있게 된다. 내가 이미 발표한 글에 이 돼지료법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나의 한 친구는 그 돼지료법이 자기는 제일 부럽다고 했다. 자기는 신경이 쇠약해져 밤에도 잘 자지 못하는데 낮에 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란다.

소화기능

먹은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면 소화불량이 오고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소화시키지 못해도 소화불량이 온다. 무릇 소화가 안되면 언제나 몸이 뜨직하고 따라서 기분도 말째여서 생활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데 출제하는 이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장소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시간으로 인한 소화불량이다. 출제나 번역하러 이곳에 오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경험이 없기에 출제가 끝난 후 차례지는 10일 남짓한 여유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어쩔 줄 모른다. 운동도 하고 오락도 하지만 이 시간으로 인한 소화불량은 쉽게 낫지를 않는다.

나도 이런 소화불량이 온 적이 한두번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시간적인 여유가 그리워진다. 사실 나의 80여편의 론문 중의 절반은 아마 출제장소에서 씌여졌을 것이다. 그리고 허다한 문학작품도 여기서 만들어지고. 나는 출제하러 올 때 시험에 수요되는 자료를 200여편 가져오는 외 일거리를 알뜰히 차려온다. 론문과 문학작품을 쓰다 보면 시간이 언제 흐르는지도 모르게 흘러가버리고 어떤 때에는 시간이 모자라기도 한다. 여기서 일하면 그 로동효률이 아주 높다. 문득 이렇게 좋은 장소에서 소설이나 썼으면 하는 생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여기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

 

개척정신

살다 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개척정신을 발휘할 때가 있었다.  2017년 학업시험출제차로 길림교육인쇄공장으로 가게 되였는데 우리는 고중입시와 맞띠우지 않으려고 4호별장을 사용하게 되였다. 30여명의 출제인원이 별장에 꽉 들어찼으니 식당도 없어 탁구실을 운동실 겸 식사실로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보다도 걷기운동을 좋아하는 나에겐 걸을 수 있는 장소가 없는 것이 큰 문제였다. 넓이가 3메터, 길이가 40여메터 남짓한 콩크리트길이 우리가 활동하는 유일한 장소였는데 거기서 바드민턴도 치고 태극권도 하며 줄뛰기도 해야 하니 우리 걷기운동은 하기가 힘들었다. 

하여 나는 이튿날 새벽에 나절로 겁도 없이 나만의 걷기운동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별장의 북쪽 화원에 장방형의 오솔길을 냈다. 이것은 개척이 아니라 파괴였다. 돈을 들여 만든 화원에 오솔길을 낸다는 자체가 사실 파괴에 가까웠다. 그 날 저녁 나는 아예 우리 조선족 몇명과 함께 남쪽 화원에도 오솔길을 만들었다. 별장의 둘레를 따라 오솔길을 만드니 그 길이가 200메터 좀 넘는 걷기운동길이 완성된 셈이다. 그 후 인쇄공장의 공장장을 보고 그 길을 따라 좁은 콩크리트길을 만들라는 요구도 제기했었다. 공장장은 사람좋게 웃으면서 꼭 만들겠다고 대답했다. 이런 것이 개척인가?

 

음주문화

내가 출제장소에 와서 쓴 많은 문학작품 가운데서 아마 제일 환영을 많이 받은 작품이 술군의 이야기를 적은 <주옹련가>일 것이다. 그 외 <술타령신곡>도 이곳에서 만들어진 해학적인 글이다. 이곳은 여러 민족이 함께 모이는 사회의 한 축소판이다. 하기에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다다소소 여기서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음주문화는 민족의 특색이 잘 반영되는 문화이다. 우리 조선족과 몽골족은 술을 비교적 즐기는 편이다. 하여 어느 해엔가는 한족 세명과 몽골족 두명, 조선족 두명이 함께 한상에 앉게 되였는데 그 상에 앉을 수 있는 유일 기준은 바로 반근 이상이 되는 주량이였다. 

몇년 전만 해도 출제장소로 오면 조선족을 위해서는 개를 잡고 몽골족을 위해서는 양을 잡았다. 평소에는 술을 제한하다가도 그 날에는 술을 마신다. 한족 지도자들도 그 날만은 밥상을 돌아다니면서 술을 권하는데 참으로 열정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술문화가 몰라보게 많이 변했다. 식당에서도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시간을 정해놓아 오래 마시지 못한다. 하지만 침실에 돌아와서 마시는 것은 량과 시간을 제한하지 않는다. 아예 랭장고도 갖춰놓고 안주도 보관하게 한다. 이런다고 하여 자기의 주량도 모르고 마구 퍼마시는 경우는 기본상 없다. 오히려 더 자제하면서 신사적으로 마신다. 

 

출제생애

1997년부터 출제에 참가하여 지금까지 출제에 바친 시간도 꽤나 된다. 1997년부터 시작된 전국고중입시 시험개혁에 호흡을 맞춰 우리 조선족은 1998년부터 개혁을 시작하여 4년 후인 2002년에 결속하게 되였다. 그 때 알게 된 우리 학원의 장익건张翼健선생을 통하여 실로 많은 걸 배우게 되였다. 사실 처음으로 시험개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그 때 알게 되였으며 이 경험은 금후 진행된 대학입시의 개혁에서도 귀감으로 되여 빛을 뿌리게 되였다. 그 때 먼저 고중입시 출제에 참가하여 임무를 완성하고 경찰차에 ‘압송’되여 대학입시문제를 출제하러 가던 기억이 어제런듯 새롭다.

소학교 교원들이 대학전과 학력을 얻는 시험을 대부분 내가 내게 되였고 그 채점도 맡게 되였다. 이렇게 시험출제로 ‘감옥 아닌 감옥’에 가서 보낸 시간도 일년에 평균 두달은 된다. 그 시간을 합하면 40개월이 되니 해수로 계산하면 3년도 넘는 셈이다. 그 외에 시험을 위해 기울인 학습시간과 연구시간을 가첨한다면 아마 어마어마한 수자가 될 것이다. 사실 나는 이 시간 때문에 후회해본 적이 없다. 지금 이 시각 제일 많이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 민족과 이 시대가 나에게 부여란 이 출제라는 과업을 나는 훌륭하게 완성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70점 이상이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출제미래

2018년부터 대학입시와 고중입시가 개혁의 세찬 물결을 이루며 진행이 되고 있다. 이 세찬 물결 속에서 안전하게 나아가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에 장익건선생님께서 알려주던 방법 대로 한족들의 개혁보다 한발작 떨어져 한족들의 경험을 살리면서 개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한족들의 시험개혁과 우리 조선어문의 특점을 잘 결부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리고 작년에 길림성시험원吉林省考试院의 요구에 따라 시간을 들여 난생처음으로 길림성조선어문대학입시 시험요강을 만들어보았는데 아주 인상이 깊었다. 고중입시 조선어문 시험요강도 누군가 만들어야 할텐데…

지금 미래학교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른다. 지금의 현실에서 엄격하게 말하면 미래학교는 학술술어라고 하기보다는 시대가 발전하면서 나타난 교육화제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학교가 던져준 도전과 미래학교의 발전추세를 잘 알아보면서 거기에 따르는 시험개혁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도 중시를 돌려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근심은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미래의 출제임무를 떠메고 나갈 젊은 세대들이 어련히 잘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꼭 잘해나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선어문의 출제미래가 더욱 밝기를 기원한다.

출처:<장백산>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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