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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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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해연: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통해 본 중국조선족의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
2019년 07월 12일 19시 43분  조회:809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통해 본 중국조선족의 어제, 오늘 그리고 래일

   리해연

 

1. 문제 제기

본고는 김금희(1979- )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에 실린 <월광무>, <노마드>, <세상에 없는 나의 집> 등 세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가 노마디즘 시각에서 말하고저 했던 중국조선족 디아스포라와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알아보는 글이다.

김금희는 한족 집거지인 길림성 구태시에서 출생한 조선족 작가로서 자신을 포함한 조선족들의 노마드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고저 하였으며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김금희는 《두만강》 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전쟁과 가난, 시장경제 같은 것들 말고 우리 민족이 떠나는 더 근원적인 리유는 없을가’라는 의문을 던지면서 중편소설 <노마드>의 창작배경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는 조선족들의 떠돌이 생활을 유목민의 삶, 유목민의 근성과 비교하면서 조선족 공동체의 유목적인 삶에 대해 탐구하였다. 

노마드에서 파생된 노마디즘은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일체의 방식을 의미하며 철학적 개념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 심리 현상을 설명하는 말로도 쓰이면서 유목주의로 번역된다. 자크 아탈리는 현대사회를 노마드의 시대로 규정하고 노마디즘을 현대문화의 특징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으며 신 유목사회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현대인들을 ‘호모 노마드’라고 부르고 현대사회를 유목적인 시각에서 노마디즘 시대로 인식하고 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고국을 떠나 거주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노마드들은 노마디즘 시대의 새로운 디아스포라이다. 조선반도 밖에 사는 백의겨레는 호모 노마드로서 디아스포라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유목의 시대에 코리안 디아스포라문학은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시대의 중국조선족 또한 호모 노마드적인 디아스포라로서 그 문학 역시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금희는 노마디즘의 시각으로 조선족들의 삶을 바라보았고 이를 통해 현시대의 조선족 공동체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제기하였으며 현재를 반성하고 래일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금희는 목적성과 회귀의식이 없는 조선족들의 노마디즘적 삶의 방식은 작게는 가정의 파괴, 더 나아가 민족의 해체로 이어질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조선족으로서 마땅히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떠남의 전제에는 그 목적과 원 위치에로의 회귀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노마드와 엉겅퀴의 공통점, 방황과 회귀를 통한 미래, 정체성 찾기에 이은 뿌리 내리기 등 세개 부분으로 나누어 김금희의 조선족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문제에 대한 의식 및 그 작품세계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2. 노마드와  엉겅퀴의  공통점 

노마디즘을 중심으로 한 노마드적인 삶의 욕망의 저변에는 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는 지난한 고통과 희망이 점철된다. 소설 <월광무>의 주인공 ‘유’는 노마디즘 시대의 대표적인 노마드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유’는 계획경제라는 거대한 사회주의의 경제체제 속에서 국영기업에 출근하며 안일한 삶을 살다 갑자기 불어닥친 사회주의의 시장경제체제와 그 사회변화 속에서 ‘철밥통’을 버리고 장사의 길에 올라 중국 국내는 안 다녀본 곳이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소설의 또 다른 인물 ‘마로얼’은 ‘유’가 사는 조선족 동네로 이사온 최초의 한족이였다. ‘마로얼’ 일가는 ‘유’의 가족에서 키우던 곰을 받아 웅담장사를 하면서 생활을 일구었고 그 후 사정이 안 좋게 되니 그 일을 접고 더욱 깊은 산골로 들어가 농사와 방목을 통해 재물을 축적하였다. 여러 형 구조로 된 이 소설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돌기만 하는 조선족들의 삶과 그와 반대로 한번 정착하여 뿌리내린 곳이면 어디서든 그 삶을 확장해나가는 한족들의 삶의 특성을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대조적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동시에 작가는 주인공의 무정착의식, 무회귀의식적인 삶과 마지막 한족의 돈의 노예로 전락시킨 그의 삶을 비판하였다. 이는 작가가 전반 조선족사회에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이며 현재의 조선족들의 삶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일제의 식민지침략하에 두만강을 건넜던 조선인 이주1세대들은 광복이 되면 돌아가리라는 귀향의 꿈을 가슴에 새긴 채 토착민-한족들의 소작농으로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이라는 낯선 땅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반도가 남, 북으로 갈라지며 그들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새 중국이 창건되면서 소수민족정책하에 당당한 중국의 공민-중국조선족으로 살게 되였다. 그러나 조선족들은 현실에 대한 불만, 좀더 미래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떠돌이생활을 시작했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중국은 사회, 경제 등 면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조선족들의 삶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위해 국내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떠남에는 종착역이 없었다. 한국으로 향했던 이들은 고국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달래보기도 전에 소외와 환멸을 느꼈고 관내 대도시로 향했던 이들은 한족과 한국인 사이에서 정체성에 대한 갈등을 겪게 되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선족들은 둥지 없는 새가 이 나무 저 나무 떠돌듯 어디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끝없는 방랑을 반복하기만 한다.

 

떠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였을가? 어떤 설렘? 열정? 도전 같은 것이였던가?(P121)

유는 그 문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엇 때문에 다니는 줄 안다니, 대체 뭘 안다는 걸가. 유의 할아버지 세대가 떠났던 것이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였다는 것? 유의 아버지가 떠났던 것은 자유를 위해서라는 것? 아니면 유가 떠났던 것처럼 어떤 꿈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P141).

마지막으로 사내는 유의 성씨가 남을 유遗인지 류랑할 류流인지를 말장난처럼 물어보았다.(P102)

 

주인공 이름을 ‘유’라고 했던 것이 작가의 의도된 설정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중국조선족으로 살면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류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넓게 분포되여있지만 동시에 그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의 대상인 조선족, ‘유’라는 이름 한글자로 작가는 조선족들의 이동적인 삶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세세대대 대물림되는 조선족들의 떠돌이생활을 력사라는 거울에 비춰보았을 때 그 어느 세대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적이 없었다. 이제는 방랑의 종지부를 찍고 뿌리를 내려야 할 때가 되였다.

 

순간, 유는 어떤 큰 짐승의 것이 분명한 포효를 똑똑히 들었다. 크르릉어엉-! 낮고 웅글진, 가슴을 허비는듯한 울음소리, 그럴 리 없겠지만 유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곰이 내는 소리라고 확신했다. 철창 속에 갇혀서 고향산을 그리며 검은 눈만 슴벅이던 웅담용 사육곰이 아니라 머루, 다래, 돌배와 찔광이를 뜯어먹고 물고기, 두더지도 잡아먹는 진정한 산의 곰 말이다. 숲속 어느 은밀한 공지, 한가위 보름달을 올려다보면서 곰은 앞발을 들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었다. 유흥을 아는 한량이나 한을 푸는 녀인네처럼 고즈넉한 정적과 일체를 이루며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어간 채. 혹독한 겨울추위와 굶주림, 덫의 위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점점이 별들이 살포시 내려와 파란 반디불로 그 주위를 날아다녔다. 인간이 추구하는 다른 모든 것처럼, 그것 역시 잡으면 벌레가 되고 바라보면 아름다운 빛이 되는 것이였다. 유는 캐리어의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월병박스를 옆구리에 낀 채 그것을 따라 걸어갔다. 룡의 머리를 새겨넣은 마로얼의 높은 대문이 바로 유의 앞에 있었다.(P141)

 

이 부분은 소설의 결말이자 소설의 제목에 대한 해석이며 작가의식이 가장 응축되여 표현된 부분이다. 산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가던 ‘곰’의 패기 넘치던 포효가 ‘유’에게 ‘가슴을 후비는’ 최후의 울부짖음으로 들려온다. ‘혹독한 겨울추위와 굶주림, 덫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한가위 보름달을 올려다보면서’ 한풀이를 하는 무당처럼, 유흥을 즐기는 한량처럼 ‘앞발을 들고 빙글빙글 춤을 추고 있’는 ‘곰’-‘유’는 정착점 없이 방랑하는 조선족들의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곰’은 ‘유’이고 더 나아가 조선족 공동체이다. 따뜻했던 둥지를 버리고 새로운 둥지를 찾아헤매다 최후를 맞는 새처럼, 뿌리가 송두리채 뽑혀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나무처럼 조상들이 일궈놓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났던 ‘유’는 지팡살이를 살던 조상들의 생활을 되풀이할 위기에 처하게 되였다. ‘유’의 최후는 더 나아가 전반 조선족 공동체가 위태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현실을 암시하기도 한다. 

김금희는 이처럼 조선족들의 목적성 없는 노마드적 삶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비판하였으며 그런 삶의 비참한 최후를 과감하게 예측하면서 동시에 현실적 대안을 세워야 하는 때임을 호소하고 있다. 

 

3. 방황과  회귀를  통한  미래

우의 소설에서의 주인공 ‘유’는 정착점이 없이 끝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캐릭터였다면 소설 <노마드>의 ‘박철’은 자신의 정착점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고 떠남의 궁극적인 목적이 회귀에 있음을 인지하는 ‘유’와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박철’은 ‘돈을 벌어 집을 사고 색시를 얻어서 시내에 나가 자그마한 가게라도 열어 먹고 살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는 꿈을 안고 한국으로 시집간 누나의 초청하에 로무일군으로 한국행에 오른다. 애초부터 박철의 ‘떠남’은 ‘돌아오기 위함’이였기에 한국에서 죽은듯이 살면서 그 곳 사회와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박철’은 축구경기에서는 한국팀을 응원하지만 정작 ‘중국산 꽃게에서 또 다시 발암물질이 검출’되였다는 한국뉴스를 볼 때면 분개의 감정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낀다. 그는 자신이 한국인과는 동족이고 동시에 중국인임을 인지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지다가 결과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중국조선족으로 살기를 택한다. 

한국사회에 비쳐지는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거부감은 박철에게는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 더 나아가 한국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이된다. 이런 박철의 감정은 탈북녀성 선아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선아’는 ‘박철’에게 있어서 한국인 눈 속의 조선족이 되여버린다. 목숨 걸고 탈북한 ‘선아’에게 ‘박철’은 처음에는 련민과 동질감을 느끼다가 만약 어느 순간 ‘진정한 한국인’이 되는 날이 온다면 그는 자기가 흠모하고 있던 조선족 불법체류자인 ‘수미’에게 가해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선아를 거부한다. 이렇게 ‘박철’은 동족이지만 하나로 어울릴 수 없는 한국인, 조선족, 탈북인 세 부류의 인간들의 련대적인 관계를 통해 민족적 정체성의 갈등을 겪게 되며 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에 와보니 그의 사촌남동생은 한족 녀성과 결혼하고 농촌 총각으로 결혼하지 못한 친구는 탈북녀성과 잠시 살림을 합쳤다가 버림을 받는가 하면 사촌녀동생은 한국 남자의 내연녀로 살면서 경제적으로 보상을 받는 등 주변 모두가 기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는 조선족 음식점이라는 간판을 걸고 한족들이 장사를 한다. 조선족사회가 와해되고 붕괴되는 현실에서 ‘박철’은 힘이 얼마가 들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물질적, 정신적 투자를 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며 고향땅을 지키려는 미래에 대한 굳은 결의를 다진다.

 

자기보다 훨씬 앞서 나간 도시에서 아빠트를 사고 가게를 사느니, 대신 이 넓은 옥수수밭에서, 혹은 논밭에서, 마을에서, 아니면 이보다 더 궁한 시골구석으로 들어가서 무어라도 시도해보는 건 어떨가? 도시사람들 앞에서는 도무지 기를 쭈욱 펴고 다닐 수 없었던 박철이지만 이렇게 마을로 돌아올 때면, 아직도 소수레를 끌고 휘청거리며 가는 한족 농부들을 볼 때면, 장마철의 김치움에 물이 차오르듯 자신감이란 것이 리유도 없이 절로 솟기 때문이다.(P260)

 

소설의 제목 <노마드>와 걸맞게 ‘박철’은 생계를 찾아 이곳저곳 다니다가 마지막 종점은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였다.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로정에서 박철은 동족 사이에서 느끼는 이중적 갈등에 대한 해답을 찾고 그 해답에 따라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나가려 하였다. 이러한 주인공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을 통해 작가는 소설 <월광무>에서 찾고저 했던 조선족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고 그것은 지극히 희망적이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조선족은 이제 더 이상 목표 없이 떠도는 방랑자로 살아서는 안된다. 조상들이 힘들게 가꿔온 고향으로 회귀하여 잃었던 어제를 되찾아야만이 래일을 살 수 있다. <월광무>의 ‘유’처럼 또다시 지팡살이를 하기 전에, 뼈아팠던 조상들의 력사를 되풀이하기 전에 조선족은 반드시 현실을 정시하고 정확한 대책을 세워 미래를 개척해야 할 것이다.

 

4. 정체성  찾기에  이은 뿌리  내리기

우 소설의 주인공 ‘박철’은 자신과 주변인들의 삶을 통해 자기 삶의 정착점을 찾고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는 캐릭터였다면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주인공 ‘나’는 ‘박철’이의 소망을 현실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나’에게는 중국인-한족녀성 ‘닝’과 한국인 녀성 ‘연주’라는 벗이 있다. ‘닝’과 ‘나’, ‘나’와 ‘연주’는 자주 마라탕麻辣烫을 즐겨 먹는다. 중국인인 ‘닝’은 대충 맵게, 한국인인 연주는 소마다라少麻多辣 로, ‘나’는 그들 중 가장 맵고 가장 얼얼하게 먹는 편이다.

 

나는 닝이 보라는듯 나의 다마다라식 마라탕 그릇에서 한저가락 면발을 크게 감아 입안에 스윽 집어넣었다.… -독한 것, 넌 맵지도 않냐? 참 조선족스럽다…(P12).

코물을 훌쩍거리면서도 열심히 면발을 감아 입에 넣는 연주는 그 환상적인 맛의 지경 속에 푹 빠져서 몹시나 행복해했다. -참, 너도 한국스럽다. 나보다도 먼저 그릇을 비우는 연주를 보고 있자면 나는 그녀 앞에서 닝이 된 것 같은 느낌이였다…(P18)

 

마라탕 한그릇을 먹는 풍격에 따라 각자의 민족적 특성이 돋보이고 있다. 한족 친구는 강렬한 입맛을 가진 ‘나’를 보며 ‘조선족스럽다’고 하고 ‘나’는 나와 입맛이 비슷한 한국인 친구를 보며 ‘한국스럽다’고 한다. 매운 맛과 초산맛을 더욱 강하게 조리해서 전신으로 퍼지는 짜릿짜릿한 자극을 받으며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와 ‘연주’는 입맛이 같다는 점에서 ‘조선족스럽다’와 ‘한국스럽다’로 표현되면서 결과적으로는 ‘한민족스럽다’로 귀결되며 궁극적으로 조선족과 한국인은 같은 민족임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이로써 주인공은 민족적 정체성 문제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조선족의 고민과 그 속에서 정체성을 찾고저 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음을 암시하였다.

 

연주는 택배기사가 주소를 확인하는 전화를 걸어올 때마다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나한테 휴대폰을 넘겨주며 투덜댔다. … 이봐, 나도 언니처럼 하잖아. 근데 왜 내 말은 못 알아듣는 거냐고? 닝도 가끔 내게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우리 집에서 샤브샤브를 해먹던 날, 한국방송을 보며 그 분위기를 깊이 즐기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어쨌든 두 나라 말을 다 하니 넌 참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P20)

 

한족친구에게 있어서 ‘나’는 한국인과 많이 닮아있고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부러운 존재라면 한국인 친구에게 ‘나’는 자기와 같은 민족인 데도 자신보다 중국어를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고 특히 중국에서 한족들과 어울리며 화합이 될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한족과 한국인의 립장에서 볼 때 ‘나’는 그렇게 한국인스러운 중국인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한족도 한국인도 아닌 중국조선족이다. 그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했으나 ‘나’는 오히려 정체성을 갖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때로 차라리 그들처럼 한가지 말만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 만약 그랬더라면 나는 그 둘 중의 한사람이 되였을 것이고 준표의 학교문제 따위를 가지고 머리를 썩일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였다.(P20)

 

남들의 눈에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으나 본인은 정작 그러한 이중적 삶보다는 정체성을 갖고 살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고 때문에 ‘나’는 조선족으로서 자기 민족의 고유의 특성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한국인 친구인 ‘연주’네 딸내미의 ‘표준한국어’ 억양을 들을 때마다 소위 한국어 선생이라는 자신이 슬그머니 무색해지곤 했고 또래 한국애들보다는 한국말이 처지고 동갑내기 중국애들보다는 중국어 표현력이 부족한 아들 ‘준표’를 보면서 늘 걱정하고는 했다. 하여 장춘시내에서 집과 가까운 곳에 한족유치원이 있지만 ‘나’는 남편의 권고도 무시하고 아들 ‘준표’를 집과 멀리 떨어져있는 조선족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혈액만 조선족이고 정작 생활습관이며 언어며 모든 것이 한족인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나’와 남편의 공동명의하에 새로 장만한 집의 인테리어 콘셉트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오로지 조선족 집답게 장식하려고 애를 썼고 끝내는 옛스러운 조선족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자기만의 집을 완성하였다. 

 

나는 연주와 본능적으로 많이, 아주 많이 닮아있었지만, 같은 배경 속에서 살지 않은, 곧 분화의 위기에 놓인 두마리의 도롱룡 같아서 도무지 같은 시각으로 함께 현실을 해석할 수 없었다. 반면 닝과 나는 애초부터 한 배경 속에서 살고 있는 오리와 닭이였다. 우리는 우리의 시대와 배경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개인적인 습관과 취향을 송두리채 공유할 수는 없었다. 매번 그들과 만나고 돌아올 때면 나는 어느 누구하고도 같지 않은 나 자신을 더 또렷이 느끼곤 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사람이 있을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 자체일 것이다. (P20)

 

이 부분은 작가의 내면의 목소리가 그대로 울려퍼지는 대목이다. 그렇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은 비록 같은 나라,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한족들과 화합하고 어울리며 살 수는 있지만 완전히 다른 생활습관과 생활방식 때문에 결국은 하나가 될 수 없다. 반면 생활습관이며 삶의 방식이며 많은 면에서 서로 닮아있는 한국인들과는 살아온 환경과 공간적, 문화적 차이로 넘을 수 없는 벽 때문에 역시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렇게 조선족은 한족도, 한국인도 아닌 중국조선족 그 자체로 두 나라의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는 이른바 이중성을 띤 삶을 살고 있다. 사과도 아니고 배도 아닌 사과배처럼 조선족은 그렇게 갈등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저 노력하였고 오로지 그 자체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탈경계와 초국가주의의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소수자의 상징으로, 바다의 외로운 섬처럼 다민족사회에 뿌리내린 민족적 정체성의 상징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5. 결말

이주력사와 함께 시작된 조선족 디아스포라 문제는 오랜 시간 동안 풀어내야 할 숙제였고 그 연구는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김금희작가는 늘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작품으로 승화시킨 조선족 녀성작가로서 때로는 녀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때로는 거침없는 필치로 조선족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예리하게 짚어냈고 그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김금희는 작품 <월광무>를 통해 목적성 없는 조선족들의 방랑생활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풀이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국내 타지-한족집거지를 돌아다니며 돈만 쫓아 방랑하는 주인공 ‘유’는 이름 그대로 종착점이 없이 부평초 같은 일상을 살다가 결국엔 귀향길에 오른다. 그러나 그 귀향길은 회귀의식에 의한 자발적인 귀향이 아닌 인생의 벼랑 끝에서 고향마을의 한족친구에게 마지막 구걸을 위한 귀향이였다. 김금희는 조선족들의 이러한 목적성 없는 방랑생활을 비판하면서 회귀의식이 없는 방랑생활은 결과적으로 파멸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는 관점을 작품을 통해 표출하였고 이러한 현상은 궁극적으로 민족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민족공동체에 존재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보다 희망적인 미래를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였으며 작품 <노마드>를 통해 그 해답을 제시하였다. 

<노마드>의 주인공 ‘박철’은 희망을 품고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났다가 그 곳에서 역시 소외와 멸시를 당하면서 삶에 대한 고민 끝에 고향마을의 건설에 자신을 이바지하려는 목적으로 귀향길에 오르는 인물이다. 비록 ‘박철’이 역시 돈을 위해 고향을 떠나지만 그 출발점에는 이미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오리라는 회귀의식과 목적의식이 깔려있었다. 작가는 ‘박철’이라는 인물을 통해 조선족들의 노마드적 삶의 전제에는 반드시 목적성과 회귀의식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고 그것만이 민족 공동체의 희망적인 미래를 위한 해결책임을 제시하고 있다. <월광무>의 ‘유’는 중국 국내 한족집거지를 돌아다닌 인물이고 <노마드>의 ‘박철’은 고국에서 멸시와 소외를 받다가 귀향하는 인물로서 작가는 조선족들의 처지를 두 인물을 통해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작가는 작품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통해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는 조선족은 그 자체만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주인공 ‘나’는 한족집거지인 대도시 장춘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으로서 한족친구와 한국인친구 사이에서 정체성 문제로 갈등하고 고민하는 인물이다. 한족친구는 한국어를 잘하는 ‘나’를 부러워했고 한국인친구는 중국에서 한족들과 화합하고 어울리며 토착민처럼 살고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정작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그들을 부러워하는 디아스포라이다.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갈등 속에서 고민하던 주인공은 끝내는 조선족 그 자체로만으로의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지에서 자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본 민족답게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김금희는 예리한 시각으로 조선족공동체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문제를 거침없이 폭로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제시하였다. 발 빠르게 변화하는 이 사회에서 진정 성공한 노마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이 시각에도 쉼 없이 민족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는 김금희는 중국조선족문단에서 굵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현직 작가이며 조선족문학을 연구하는 연구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로서 앞으로 그의 행보와 작품들에 기대를 해본다. 

참고문헌

1. 자료

김금희,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창비, 2015.

______, <영원에서 떠나 영원으로 가다>, 《두만강》, 연변소설가학회 제3호, 2011.

2. 론문 

김호웅. 김관웅, <전환기 조선족사회와 문학의 새로운 풍경>, 《한중인문학연구》 제37집, 한중인문학회, 2012, p35-p55. 

최병우, <한중수교 이후 조선족 소설에 나타난 삶과 의식>, 《한중인문학연구》 제37집, 한중인문학회, 2012, p107-p128.

오상순, <이중정체성의 갈등과 문학적 형상화>, 《현대문학의 연구》 29권 0호, 한국문학연구학회, 2006, p37-p69.

장윤수, <코리안 디아스포라문학의 정체성 연구>, 《재외한인연구》 제25호, 재외한인학회, 2011, p7-p40.


출처:<장백산>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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