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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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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근: 황혼찬가 더불어 인류(수필)
2019년 07월 12일 20시 12분  조회:504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황혼찬가 더불어 인류

리근

 

황혼이란 대자연으로 말하면 해가 저물어 어득어득할 때를 일컫는데 인간으로 말하면 한창 때를 지나 쇠퇴하여 ‘종말’에 가까운 시기를 말한다. 

인류는 지구란 이 독특한 행성이 태양을 한바퀴 공전하는 일년을 춘, 하, 추, 동으로 나누었고 광명과 암흑을 자연스레 엇바꾸며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한바퀴 자전하는 하루를 조, 우, 석, 야로 분류했으며 인류가 고고성을 울려서부터 심장박동이 멎을 때까지를 소, 청, 장, 로로 갈랐다. 그리고 소년시절은 불타는 아침해살로, 청년시절은 7~8시의 눈부신 태양으로, 장년시절은 혈기왕성한 한낮의 해님으로, 로년시절은 진붉은 석양으로 비유했다. 하기에 망팔을 넘어서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나는 어언간 황혼기에 들어서 조용히 대자연의 황혼을 진맥해본다. 

황혼은 서천에서 오래동안 머물지 않지만 그 한때나마 자신을 황금빛으로 당차고 화려하게 단장한다. 이를테면 때로는 너울너울 춤추는 선녀마냥, 때로는 갈기를 휘날리며 무연한 초원을 내닫는 준마마냥, 때로는 끝없는 사막을 터벅터벅 주름잡는 락타마냥, 때로는 사품치는 만경창파를 줄기차게 헤가르는 고래상어마냥…

그런가 하면 황혼은 자체의 찬란한 빛갈로 부단히 대지를 곱게 분장시키며 자신의 도고한 위풍과 기개를 남김없이 과시한다. 그러면서 찬란한 금빛가루를 삼라만상에 골고루 분여해 신주를 곱게 물들인다. 동시에 여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웅위로운 서산 우에서 진붉은 병풍을 둘러세우며 창공에 두둥실 떠도는 구름들을 꽃보라로 아롱지게 만든다. 그러는 와중에 대자연은 부단히 숨 쉬고 조을고 뛰놀며 미소 짓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웅심 깊은 황혼은 부단히 추억을 더듬으며 현황을 진흥시키고 티 없는 백지마냥 깨끗한 바탕으로 미래를 기약한다. 동시에 래일을 고무하고 만사에 삼가해야 할 일들을 사전에 인류에게 속속들이 아뢴다. 다시 말해 어느 때 강풍이 불겠는가, 소나기가 억수로 내리겠는가, 기온이 급변하겠는가, 짙은 안개가 자옥히 서리겠는가, 우박이 무더기로 쏟아지겠는가… 등등이다. 그 뜻인즉 서천에 황혼이 깃들면 이튿날은 쾌청하고 황혼이 종적을 감추고 그 자리에 먹장구름이 뒤덮이면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광풍이 휘몰아치거나 소나기나 우박이 억수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하기에 인류는 이런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사전에 각종 대책을 강구한다. 

황혼은 평생 말 한마디 없지만 흉벽을 치는 실제행동으로 자신을 부단히 불태우며 우주를 곱게 장식한다. 그런가 하면 하현달이 서천에 걸리면 마치 친혈육을 만난듯이 무척 반가워하고 하현달이 서서히 서산마루를 넘어설 때면 무등 섭섭해하며 아미를 다소곳이 숙인다. 

그러다가 일단 지구촌에 삼복철이 도래하면 어른들은 만사를 불문하고 한자리에 모여 오구작작 떠들며 진종일 개추렴을 한다. 이때면 황혼은 그들을 굽어보며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이같이 다감다정한 황혼이 때가 되면 아무런 조건도 보상도 미련도 없이 조용히 서산 뒤로 사라진다. 후세의 갱신과 추진을 위한 이같은 자각적인 자리비움은 얼마나 도고하고 보귀하고 자랑차고 거룩한가!?

이로 하여 대자연은 또 용왕매진하는데 지구촌의 이쪽 절반은 고스란히 자장가를 부르고 저쪽 절반은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약동의 스타트를 뗀다. 그런가 하면 명월의 옥토끼는 자유자재로 뛰놀고 계수나무는 지구촌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뜻깊은 웃음을 짓는다. 동시에 창공의 애기별들은 어미별과 숨박곡질을 하고 반짝이는 뭇별들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서서히 에도는데 때로는 밝디밝은 류성이 밤하늘을 쪼개며 쏜살같이 지구촌을 향해 내리꽂히는 장관을 이룬다.  

이 뿐만이 아니라 황혼의 아룀으로 부엉이와 박쥐들은 나래를 활짝 펴고 동분서주하며 먹거리를 찾느라고 여념이 없고 박꽃은 곤충들을 한품에 안고 정겹게 키스한다.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벌레들의 대 합창이 귀맛 좋게 들려온다. 

그런가 하면 황혼이 깃들 때면 기러기, 두루미, 물오리, 원앙새, 까치, 까마귀, 제비 등 모든 조류들이 제각기 자기의 보금자리로 찾아든다. 그리고 산천초목도 고스란히 설레이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황혼의 덕분이다. 

대자연은 이러는 와중에 황혼을 맞고 바래는바 마치 운동건장이 부단히 계주봉을 받아쥐고 줄기차게 내닫듯한다. 

만약 황혼이 없다면 지구촌은 이같이 찬란한 아침도 불타는 정오도 칠흑 같은 야밤도 결코 있을 수 없다. 

광휘롭고 휘황찬란한 황혼의 생애, 그 절개와 기백 속에서 인류와 모든 동식물들은 부단히 생의 층계를 톺으며 새로운 삶의 탑을 줄기차게 쌓는다. 다시 말해 이같이 거룩한 황혼은 만물이 생존하는 이 독특한 행성ㅡ지구촌을 보다 활기차고 아름답게 만든다. 

인류는 수천만년 대대손손 살아오며 줄곧 이 친근하고 자애롭고 거룩한 황혼을 절친한 벗으로 삼아왔는데 그 손에는 나도 있다. 하기에 나는 자애자정한 황혼을 본받아 여생을 보람차게 살련다. 심장박동이 멎을 때까지! 

출처:<장백산>2018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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